제가 시험과 성적에 하도 민감한 지라 시험끝나고 전화를 안드리면 아들이 못봤구나 지레짐작하고
전화보단 문자를 넣어주시던 엄마였어요. 이번만이 기회냐 인생에 수능이 전부가 아니다 라는 진부한 말들 앞에서 저는 무너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고 매번 힘을 내곤했었네요.
그리고 본 수능. 3년 죽어라 공부했는데 성적이 생각보다 나오지 않았고 겨우겨우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떨어지고 다군에 겨우 추가 입학 했을 때 엄마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네요
엄마가 죄를 많이 지어서 그런거라고 미안하다며 눈물을 떨구던 모습이......
저는 그런 엄마를 다독이며 괜찮다고 머리 나쁜 제탓이라고 애써 태연한척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어요
20살 제겐 너무 꽃다운 시절. 모든 억압과 자유 그리고 통제에서 벗어나 모든 걸 다 누렸었던 것 같아요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고 좋구나를 느꼈죠. 더군다나 서울이 이렇게 큰 도시임을 몸소 느끼면서
부모님께 용돈 타 쓰는 철부지 아들이자 옷도 관심이 많아서 매번 용돈타서 내옷부터 사고 여자친구 먼저
챙기고 친구와 술먹고 놀며 지낸 1년이었어요. 겨울방학 때 집에서 있으면서 매일같이 엄마와 운동다니고
커피를 좋아하는 엄마와 함께 커피 마시면서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며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습니다.
그이유는 군대가면 2년동안 또 떨어져야 한다는 제 마음속 한구석에 뭔가 모를 의무감이 있었으니까요
어느날 엄마가 방학 때 무슨 티켓을 주는 겁니다.
이게 뭐야 라고 물으니 동생이랑 함께 외국갔다오라며 준 여행사 티켓이였어요.
군대가기전에 추억 쌓으라며 웃으면서 제 손에 쥐어준 여행 티켓이 얼마나 눈물나던지 기억이 생생하네요
그때 당시만 해도 엄마의 그런 사랑을 너무 당연시 했네요.
여행을 다녀오고 시간을 보내다가 간 군대. 남자라면 가는 군대
입대하는 날 비는 저와 엄마와 아빠의 이별을 슬퍼하기라도 하듯이 하염없이 내렸어요
제가 들어갈 때 애써 웃으며 괜찮다 괜찮다 들어가는데 엄마는 그자리에서 무너지더라고요
또 떠나버린다고 우리는 언제 붙어 있을 수 있냐고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밤이 될때 까지 제가 들어가 버리고 문앞에서 기다렸다네요 아빠가ㅋㅋㅋㅋㅋ
논산훈련소 조교가 나가라고 할 때 까지
가는 뒷모습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 하나로 추운 날 기다렸어요 엄마 아빠는
그리고 훈련소 때 매일같이 오는 인터넷 편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인터넷을 이용해서 한글자 한글자 엄마의 감수성이 묻어나오는 손편지를 마주하면서 혼자 많이도 울었네요. 지나가는 꽃만 봐도 아들생각이 난다. 아빠의 편지에는 오늘 옆집 아줌마가 "아들 군대 갔어?"라는 한마디에 또 털석 주저 앉았다면서 난 또 훈련소에서 그런 모습 상상에 눈물짓고
그랬어요. 자대배치 받고 첫 전화하는 날 말을 잇지 못하는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도 여전히
또렷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2년간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저는 전역날
충격적인 소식을 들어요.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3기라고. 너무 담담하게 말하는 엄마 앞에서 무너졌어요
1년 전에 걸린걸 온 가족이 숨겼네요. 제가 군생활도 힘든 데 자기가 짐이 되면 안된다고 끝까지 숨겨야 된다는 엄마의 간곡한 부탁에 모두들 쉬쉬 하고 있었네요
제가 휴가 나왔을 때 20kg가 빠진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왜 이렇게 다이어트 많이 했냐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어머니
네이트 판을 즐겨보는 24살 흔남입니다.
여친이 없으나 음슴체보다는 진지한 돋움체로 갈께요.
제목처럼 맞아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어머니가 바로 저희 엄마예요
그렇게 중학교 때까지 엄마와 아버지는 역할이 바뀌셔서 엄마는 저의 모든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으시려고 자주 맞었었죠 ㅋㅋㅋㅋㅋㅋ
반면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이쁜 자식들 왜 때리나며 말리시곤 했어요
참 생각해보면 중학교 때까지 엄한 엄마가 참 무서워서 일탈이라곤 전혀 안해봤네요.
고등학교 때 부터 떨어져 살기 시작할 때부터 엄마와의 정이 두터워 진거 같아요ㅋㅋㅋ
항상 연락오고 아들 밥먹었는지 제가 잘 살고 있는지 한시도 걱정을 놓지 않으셨죠
제가 시험과 성적에 하도 민감한 지라 시험끝나고 전화를 안드리면 아들이 못봤구나 지레짐작하고
전화보단 문자를 넣어주시던 엄마였어요. 이번만이 기회냐 인생에 수능이 전부가 아니다 라는 진부한 말들 앞에서 저는 무너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고 매번 힘을 내곤했었네요.
그리고 본 수능. 3년 죽어라 공부했는데 성적이 생각보다 나오지 않았고 겨우겨우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떨어지고 다군에 겨우 추가 입학 했을 때 엄마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네요
엄마가 죄를 많이 지어서 그런거라고 미안하다며 눈물을 떨구던 모습이......
저는 그런 엄마를 다독이며 괜찮다고 머리 나쁜 제탓이라고 애써 태연한척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어요
20살 제겐 너무 꽃다운 시절. 모든 억압과 자유 그리고 통제에서 벗어나 모든 걸 다 누렸었던 것 같아요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고 좋구나를 느꼈죠. 더군다나 서울이 이렇게 큰 도시임을 몸소 느끼면서
부모님께 용돈 타 쓰는 철부지 아들이자 옷도 관심이 많아서 매번 용돈타서 내옷부터 사고 여자친구 먼저
챙기고 친구와 술먹고 놀며 지낸 1년이었어요. 겨울방학 때 집에서 있으면서 매일같이 엄마와 운동다니고
커피를 좋아하는 엄마와 함께 커피 마시면서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며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습니다.
그이유는 군대가면 2년동안 또 떨어져야 한다는 제 마음속 한구석에 뭔가 모를 의무감이 있었으니까요
어느날 엄마가 방학 때 무슨 티켓을 주는 겁니다.
이게 뭐야 라고 물으니 동생이랑 함께 외국갔다오라며 준 여행사 티켓이였어요.
군대가기전에 추억 쌓으라며 웃으면서 제 손에 쥐어준 여행 티켓이 얼마나 눈물나던지 기억이 생생하네요
그때 당시만 해도 엄마의 그런 사랑을 너무 당연시 했네요.
여행을 다녀오고 시간을 보내다가 간 군대. 남자라면 가는 군대
입대하는 날 비는 저와 엄마와 아빠의 이별을 슬퍼하기라도 하듯이 하염없이 내렸어요
제가 들어갈 때 애써 웃으며 괜찮다 괜찮다 들어가는데 엄마는 그자리에서 무너지더라고요
또 떠나버린다고 우리는 언제 붙어 있을 수 있냐고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밤이 될때 까지 제가 들어가 버리고 문앞에서 기다렸다네요 아빠가ㅋㅋㅋㅋㅋ
논산훈련소 조교가 나가라고 할 때 까지
가는 뒷모습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 하나로 추운 날 기다렸어요 엄마 아빠는
그리고 훈련소 때 매일같이 오는 인터넷 편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인터넷을 이용해서 한글자 한글자 엄마의 감수성이 묻어나오는 손편지를 마주하면서 혼자 많이도 울었네요. 지나가는 꽃만 봐도 아들생각이 난다. 아빠의 편지에는 오늘 옆집 아줌마가 "아들 군대 갔어?"라는 한마디에 또 털석 주저 앉았다면서 난 또 훈련소에서 그런 모습 상상에 눈물짓고
그랬어요. 자대배치 받고 첫 전화하는 날 말을 잇지 못하는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도 여전히
또렷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2년간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저는 전역날
충격적인 소식을 들어요.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3기라고. 너무 담담하게 말하는 엄마 앞에서 무너졌어요
1년 전에 걸린걸 온 가족이 숨겼네요. 제가 군생활도 힘든 데 자기가 짐이 되면 안된다고 끝까지 숨겨야 된다는 엄마의 간곡한 부탁에 모두들 쉬쉬 하고 있었네요
제가 휴가 나왔을 때 20kg가 빠진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왜 이렇게 다이어트 많이 했냐고
무슨 김정일 같다고 웃으면서 놀렸거든요. 그런데 알고보니 항암치료 받고 있던 중이였어요.
휴가 나오면 암관련 책들을 숨기느라 고생했다고 동생이 나중에 말해주는데 왜이렇게도 슬픈건지
아빠는 힘들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기대고 싶어서 말하려 해도
그런 마음 억누르려고 술로 달랬어요. 하필 동생마저도 타지에서 학교를 다니는 바람에
엄마와 아빠 단 둘이서 병마의 고통을 이겨내신게 아직까지 제 마음에 짐입니다.
군대 안에서 어느날 전화를 엄마한테 했더니 엄마가 말을 못하시는 거예요
왜그러냐고 물었더니 너무 아프다고 한마디 하고 휴대폰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기고
놀란 나머지 아빠한테 전화해서 엄마한테 가보라고 소리쳤죠.
그때 마저도 며칠 뒤에 전화를 하니 엄마는 약을 잘못먹었었다고 둘러대는데 암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나는 "약도 못먹네 엄마는"하면서 웃었어요.
전역하고 학교로 돌아와서 생활한지 1년이 다되어갑니다. 아직도 두렵네요. 항암치료도 잘받고
쾌차하고 있으나 언제 엄마가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온적이 한두번이 아니예요.
갑자기 버스에서도 기분 좋은 날이었다가도 나도 모르게 눈물 떨구던 적도 있고
혼자 불안감을 견디지 못해서 술도 마시러도 가네요
항상 소녀같고 감수성이 풍부한 엄마이기에 우리 자식 둘을 지극히 아끼는 걸 아는 저이기에
서울의 가을이 너무나도 쓸쓸하게 느껴지는 2012년입니다.
제가 용돈 부족할 까봐 항상 넉넉히 부쳐주고 행여나 타지에서 외롭지 않을까
매일같이 전화하는 엄마가 없을 것 같은 상상이 들 때마다 솔직히 두려워요.
이 세상에 있는 자식들 모두가 어머니 아버지한테 효도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계실 것 같은 어머니 아버지가 언제 떠나실지 모르거든요 우리곁을
지금 당장 사랑한다는 말도 부족해요. 매일 같이 해야되요. 나중에 후회하기 전에!
전화오거나 사소한 관심도 귀찮아 하지 마시고
내리사랑이라고 생각하고 더 따뜻하게 우리 부모님들 보듬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전국에 있는 아들 딸들이
세상이 흉흉하고 잔소리 하는 부모님 때렸다는 기사 볼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더라고요
다 사랑해서 하는 건데
오늘도 저희들을 위해 돈벌러 가시는 대한민국 어머니 아버지 화이팅입니다ㅋㅋㅋㅋ!!
그리고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