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엄마를 때려요 살려주세요

ㅇㅇ201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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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8살 고등학생입니다. 저에겐 엄마, 아빠, 언니, 남동생이 있습니다. 


일단 아빠께서 가장이시니깐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에겐 엄마가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들이 아닌 둘째 딸로 태어났던게 문제였습니다. 그 때 저는 당연히 기억을 못하지만 할머니께서 엄마를 많이 힘들게 하셨대요. 갑상선 있잖아요 커다란 혹 생기는거.. 원래 그거 나면 바로 수술하거나 치료를 받는게 올바른데 저희 엄마께서는 타조알 만한 혹을 목에 10년이 넘게 동안 가지고 계셨어요. 수술은 물론 치료조차 받지 않았던 거죠. 아빠의 남동생인 작은아빠께서 저희 집보다 더 일찍 아들을 낳으셔서, 할머니께서 작은엄마한테 말씀하셨대요. 그 아들, 우리 집한테 주라고. 큰집에 아들이 없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작은엄마께서는 울고불고 안 된다고 애원하셨대요.

 

제가 8살이었을 때 저희 가족은 영국으로 잠시 이사를 갔습니다. 아빠가 그쪽으로 발령 나셔서 2년 동안만 갔다 올 계획이었는데 그 사이에 저에게 드디어 남동생이 생긴 거에요. 저희 언니랑 저도 영어를 더 배워야 하고 갓난아기가 비행기를 타면 뇌 발달에 안 좋다는 말이 있어서 2년이 지난 뒤, 동생이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아빠 혼자서 한국으로 돌아갔고, 저희 엄마는 사춘기 소녀 두 명과 갓난아기를 돌봐야만 하셨습니다. 그 때 언니랑 저는 미처 몰랐습니다. 아이를 낳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무도 모르는 낯선 땅에서 살아야 한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저희는 친구들과 놀러 다니느라 바빴습니다. 그때 중학교를 입학해서 이미 영어는 한국어보다 더 유창하게 말할 수 있어서 그 어린 나이에 친구들과 화장을 떡칠하고 다니고, 짧은 미니스커트와 하이힐을 입으며 엄마의 속을 썩였습니다. 엄마께서 그렇게 1년 반 동안 목에는 타조알 만한 혹을 짊어진 채로 저희를 돌보셨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중학교를 입학하고 첫 성적표를 받았을 때 저는 처음으로 아빠한테 맞았습니다. 한국어를 많이 까먹어서 저에게 수업시간이란 반 친구들과 떠드는 시간이었고,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1,2학년 내내 제 평균점수는 4~50점 대였습니다.

 

저희 아빠는 주먹으로 때리세요. 다른 집안들처럼 회초리 몇 대, 이런게 아니에요.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찬답니다. 첫 번째 맞는 충격에 손이 저절로 맞은 얼굴로 가게 되거든요? 그럴 경우엔 그 반대쪽 얼굴을 때리십니다. 그때는 내가 왜 맞는지도 모르고, 이게 잘못된 일인지도 모르고 그저 울면서 죄송하다고 애원했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저는 그 놈의 공부, 성적 때문에 맞았어요. 아 그리고 한번은 제가 앞머리를 혼자 잘라보다가 너무 짧게 잘라서 병신같이 그게 뭐냐고 맞은 적도 있어요.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엔 제가 반 친구들한테 왕따를 당했다는 이유로 벌을 받았습니다. 친구들이랑 왜 싸우냐고. 너한테 문제가 있는거라고.

 

언니는 저랑은 조금 달랐습니다. 저는 둘째라서 그런지 눈치 하나는 엄청 빨라서 아빠한테 안 들키도록 이리저리 숨어서 행동을 했는데요, 언니는 외국에서 중학교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눈치 보거나 이중인격적인 행동은 절대 안 합니다. 그래서 아빠가 안 계시는 주말에 늦잠을 11시까지 자면 당연히 아빠한테 그 사실을 알리면 안되잖아요? 그런걸 잘 몰라서 말했다간 밥주걱이나 테니스 채로 쓰러질 때까지 맞곤 했습니다. 항상 언니가 저보다 더 심하게 맞았어요.

 

중학교 3학년 때 저희는 지방으로 이사를 갔어요. 그 때부터 일이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지역은 인문계 고등학교가 몇 군데 없는지라 중3들이 수험생들처럼 연합고사에 목숨을 걸고 공부를 한답니다. 45명 중에서 15등 안에 안 들면 실업계 고등학교에 입학을 해야 하니깐요. 저는 그 상황이 너무나도 싫어서 어느 날 집에서 혼잣말로 "서울로 다시 전학 가고 싶다." 라는 말을 했다가 아빠한테 엄청나게 맞았습니다.


그 해 여름, 아빠와 엄마는 무척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더위 때문에 그랬던 걸까요. 저희가 매년 강원도로 휴가를 가는데 둘이서 어찌나 그렇게 티격태격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지. 심지어 아빠가 엄마가 들어가있는 방문을 발로 세게 차서 엄마의 다리에는 피멍이 들었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엄마께서 저에게 이혼 얘기를 꺼내셨습니다. 제가 그 동안 바래온 이혼! 하지만 일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을 해서 처음으로 맞은 일은 제가 아빠한테 인사를 안 드려서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갓 입학을 해서 야자가 끝나고 집에 10시 반에 돌아와 엄마한테 학교에 있었던 일을 쫑알쫑알 다 풀어놓는데, 아빠께서 회사에서 오셨어요. 엄마가 그때 저에게 무슨 질문을 해서 저는 "응" 이라고 대답하고, 뒤돌아 아빠한테 "다녀오셨어요" 라고 인사를 드릴 계획이었는데, 그 당시 아빠께서 엄청 기분이 안 좋으신 기간이었어요. 저야 당연히 그걸 모르죠 일주일 내내 10시 반, 11시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침대로 들어갔었는데. 하지만 아빠는 제가 아빠에게 인사를 안 한다는 착각에 너무나도 화가 나셔서 저를 때리셨어요. 엄마랑 제가 아니라고, 인사할거였다고 말을 해봐도 거짓말하지 마라고 소리를 지르시며 때리셨어요. 그때 저는 화장실로 도망을 갔어요. 마스카라를 한 상태에서 울면 화장이 번질 것이 뻔하고, 제가 화장을 한걸 아빠께서 아시면 더 혼날 까봐 화장을 지우러 일단 화장실로 갔어요. 화장실에서 침착하게 눈물을 닦고 마스카라를 지우려고 하는데 부엌에서 엄마랑 아빠가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애 가정교육 잘 시키라고 하다가 갑자기 무슨 소리가 나더니 엄마께서 비명을 지르셨습니다. 저는 상황이 어떻게 된 줄 모르고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명소리가 그치지 않길래 뛰쳐나갔더니 엄마는 땅바닥에서 구르고 있고 아빠는 엄마를 내려다보며 손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울부짖었어요. 하지 말라고, 그만 하라고. 이 모든 게 현실인지 가상인지 구분이 안 갔습니다. 아빠가 저랑 언니를 아무리 많이 개 패듯이 때려도 엄마는 한번도 안 때렸었거든요. 엄마는 아빠의 소유물이 아니잖아요. 결혼이라는 계약 하나만으로 같이 사는 것 밖에 안되잖아요. 그 다음날 아침,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빠에게 장난을 치고 아침을 차리셨습니다. 그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동생 때문에 그랬죠. 저는 학교에서 하루 종일 울었습니다. 엄마는 아빠가 때리셨을 때 넘어지면서 발목이 동생의 장난감에 찍히는 바람에 큰 상처와 피멍이 났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맞았을 때는 제가 전화를 안받아서 맞았습니다. 그 당시 학교에서 반 친구들끼리 장기자랑을 위해 열심히 춤 연습을 했습니다. 방학 때 땀을 뻘뻘 흘리며 4시간 연속으로 연습을 했습니다. 여름에는 언니가 해외대학에서 한국에 잠시 옵니다. 그 때 언니가 저를 데리러 학교에 오기로 했습니다. 한국에 온 지 별로 안돼서 언니랑 저는 수다 떨 내용도 많아서 어떻게 하다 보니깐 두 시간 동안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동네를 계속 돌아다녔던 겁니다.당시 저는 핸드폰을 학교에 뺏긴 상태여서 할머니의 폴더폰을 잠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니랑 계속 돌아다니면서 큰 사거리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진동을 잘 못 느끼는 게 당연하잖아요? 집에 돌아왔을 때 아빠는 크게 화를 내셨습니다. 왜 전화를 받지 않았냐고.

 

저는 이미 너무 지친 상태여서 진동을 못 들었다고, 다음엔 그렇지 않겠다고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습니다. 화가 난 아빠는 저를 또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 저는 항상 맞을 때마다 앞에서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혼자서 오열을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너무 화가 나서 아빠한테 난생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아빠의 개가 아니라고, 작작 때리라고. 집이 싫다고, 나가고 싶다고. 아빠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집이 그렇게 싫으면 나가, 네가 얼마나 잘 사는지 보자. 아빠 덕분에 이렇게 좋게 사는데 뭐? 니가 내 개냐고? 지금 부모한테 그게 할 소리냐?


그 다음날, 아빠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 “나도 너희를 때리는 건 싫어. 하지만 너희가 내 말을 안 듣는다면 나도 어쩔 수 없어.” 그 말을 듣고 충격에 빠진 저는 그 날 밤, 천장에 줄을 매달아 자살을 시도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친구의 설득으로 결국에는 목을 매달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오열을 하며 의자에서 내려왔던게 기억이 나네요. 제 인생이 혐오스럽고, 자살도 못하는 상황이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아빠한테 직접적으로 싫다는 표시를 해왔습니다. 아빠도 저를 이제는 반쯤 포기하신 것 같습니다.

 

아빠가 엄마를 두 번째로 때린 날, 시험공부를 하느라 저는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밤늦게 집에 왔을 때 언니가 저에게 알려줬어요. 엘리베이터에서 엄마랑 언니랑 이야기를 하는데, 어떤 남자가 엘리베이터에 탄 거에요. 엄마랑 언니는 별 신경을 안 쓰고 조용히 떠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운다는 등 화를 내며 결국엔 차에서 언니와 8살짜리 동생이 보는데 엄마를 때렸다고 합니다. 엄마는 이 사건이 제 시험 공부에 영향을 끼칠 까봐 언니한테 나한테 알리지 말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그날 밤, 또 오열을 했습니다. 며칠 후에 언니가 “아빠가 죽었으면 좋겠어” 라고 한 말을 어떻게 들으셨는지 그 때 또 아빠께서 크게 화를 내셨습니다.


제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차라리 아빠께서 누가 봐도 정신병자처럼 매일같이 엄마를 때리신다면 바로 경찰에 신고하죠. 하지만 그게 아니잖아요. 아빠께서 기분이 좋으신 날에는 맛있는 빵을 엄청나게 많이 사오시고, 주말에는 공부 열심히 하라고 용돈도 주시고, 힘든 일 있으면 말하라고 항상 말씀하세요. 자기 자신 때문에 제가 이렇게 힘든 줄도 모르시고요.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담임선생님들께 말씀은 드렸다만 그 분들도 저에게 적절한 조언을 하시지 않으셨어요. 그저, 네가 아빠한테 한번 잘 말해보라. 하지만 아빠는 아빠만의 가치관과 생각이 너무나도 뚜렷하시고 자존심도 강하셔서 제가 아무리 말을 해도 오히려 더 화를 내실 것이 뻔합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도움이 안 됩니다. 60%는 제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잘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우리 아빠는 안 그러는데~” 라고 하고 별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나머지 30%는 자신의 가정사에 대해 길게 늘어놓습니다. 우리 아빠도 병신이라고.하지만 그 아이들의 아버지들은 저희 아빠처럼 육체적인 폭력을 가하지 않습니다. 제 마음을 몰라주는 그런 친구들이 너무나도 밉고 가소롭게 여겨집니다. 나머지 10%, 제 진정한 친구들만 저를 진심으로 위로해줍니다. 그러나 아직 고등학생들이므로 그들도 저를 위해 딱히 해 줄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이 없습니다.

 

저와 언니는 이제 아빠랑 같이 생활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러나 우리 엄마, 사랑하는 우리 엄마, 그리고 올해에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우리 동생. 동생은 다행히도 아직은 맞아보지 않았지만 아빠께서 벌써부터 애를 노예처럼 훈련시키려고 하세요. 어제만 해도 동생이 집에 들어왔으니 손을 씻으라는 말을 듣지 않고 장난감과 놀이만 해서 몇 십분 동안 계속 양손을 든 채로 벌을 세우게 했습니다. 방에서 공부를 하려던 제가 그 소리에 너무나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중간에 “그만해!” 라고 크게 말했더니 결국엔 저도 크게 혼났습니다. 니가 뭔데 뭐라고 하냐고. 니가 그딴 식으로 말을 하면 애가 자신이 억울하게 벌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지 않겠냐고. 오늘 중요한 수행평가가 있어서 그 때 공부를 해야 했던 저는 분노의 눈물을 참고 독서실로 도망갔습니다. 항상 이런 식입니다. 아빠가 엄마나 동생한테 소리를 지르고 있으면 저는 밖으로 도망을 갑니다. 고등학교 생활 때문에 안 그래도 힘든데 집에 들어와서까지 스트레스를 받는게 싫어서 어느샌가부터 아빠가 퇴근하시기 전에 독서실에 갔다가 주무실 때 돌아옵니다.


여러분, 도와주세요. 여러분의 댓글 하나하나가 저에게 큰 희망이 된답니다. 혹시 저희 부모님께서 이혼을 하신다면 어떻게 될련지 알려주실 수 있다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