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은 줄 알았다.

나나201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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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은 줄 알았다.

 

윤아, 나는 너를, 대학 신입생 때 동아리 오디션 날 처음 만났다.

다행히 나도 너도 모두 합격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언제라도 함께일 수 있었다.

 

무심하게 기타를 치는 너의 손이 좋았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내가 노래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반 년의 짝사랑 끝에 운 좋게도 너는 내게 왔다.

 

스무 살. 미친 듯이 사랑했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도 아무렇지 않았다. 너랑 있어서 좋았다.

집에서 용돈 받아 쓰는 처지라 아르바이트를 해서 데이트 비용을 마련했다.

너의 사정도 나와 같았으리라.

 

서로 다른 성격 때문에 다투기도 얼마나 많이 다투었나. 살 얼음판 걸어가듯 지내온 시간도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아무래도 좋았다. 아무리 싸워도 난 네가 좋았다.

 

반 년 쯤 지났을까. 너와 나는 한 번 헤어졌었다.

그러나 얼마 못가 우린 다시 만났다. 그 때 네가 그랬다.

 

"우린 헤어지면 안 돼."

 

그 날 나는 얼마나 안심했는지 모른다. 정말 잘 해야지 다짐했다.

 

 

 

 

그러나 얼마 못가 너와 나는, 살아온 환경과 가치관이 너무나 달랐다는 걸 또 깨닫게 되었다.

네가 먼저 사귀자고 했던 것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누가 먼저 헤어지자 했는지는 기억이 없다.

너와 내가 연애한 지 307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헤어지자 말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그 날은 기억조차 안 난다. 지웠나보다. 너무 힘들어서.

 

헤어졌으면 서로 안 보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공연을 해야 했다.

동아리 안에서 연애를 하다 그치면 누군가는 나가는게 암묵적인 룰이었다.

그런데 나는 나갈 수 없었다.

그 때 나는 내가 나가지 못한 이유가 마지막 공연에 대한 책임감인줄 알았다.

 

 

너와 나의 헤어짐으로 인해 같은 기수 동기들은 눈치아닌 눈치를 봐야했다.

공연이 잘 될 리가 없었다.

그래도 동기들은 묵묵히 참아주었다.

 

너와 헤어지고 정확히 1개월 후.

나는 도망치듯 다른 남자를 만났다.

너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그런 사람을 만났다.

 

보여주고 싶었다. 너 없이도, 나는 이렇게 잘 산다.

 

나는 유치했다.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무대 뒤에서 펑펑 울었다.

헤어진 남자친구와 소리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 슬펐나보다.

뒷풀이도 즐기는 둥 마는 둥 대충 했다.

너를 피하고 싶었다.

 

그 후로 한동안 나는 동아리방에 가지 않았다.

 

 

그렇게, 너와 헤어지고 사귄 그 남자분과는 1년 10개월 사귀고 헤어졌다.

슬펐다. 똑같이 슬펐다. 그래서, 나는 너를 잊은 줄 알았다.

 

 

그 후로 나는 한 번의 연애를 더 했다. 그리고 또 헤어졌다.

똑같이 슬펐다. 나는 너를 정말로 잊은 줄 알았다.

 

 

 

 

그리고, 며칠 전. 동아리 행사가 있었다. 나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아서 갔다.

너를 만나도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다.

하필 술자리에서 내 맞은 편에 앉은 너.

 

예전과는 다르게 여유가 있어졌고, 더 멋져지고, 세련된 모습으로 너는 내게 말을 걸었다.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연기하느라 말이다.

너를 보니, 너의 목소리를 들으니 스무 살 내 첫사랑이 내 머리 속을 뒤덮었다.

첫 연애, 첫 사랑. 너와 있었던 기억들 도대체 주체가 안되었다.

기억이 쏟아져 버렸다.

 

 

이미 동아리 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버린 너와 나의 연애.

후배들이 장난을 쳐도 아무렇지 않았었다.

그런데 너를 다시 보니 어지러웠다.

너와 헤어진 지 벌써 4년이 넘어가는데 말이다.

 

동기 녀석에게 들었다.

너에게 2년 연애한 여자친구가 있고, 어리고, 귀엽다고.

 

행복하구나. 너는 현재의 여자친구에게 잘 하는 것 같더라.

나를 경험삼아 그 여자친구에게 정말 잘 하는 너의 모습이 그려져서 슬펐다.

 

 

 

너와 헤어지고 내가 연애를 안 한 것도 아닌데.

그리고 이젠 진짜 잊을 만 한데.

왜 나는 너를 보면 아직도 가슴이 저리나.

 

 

결국 술자리에 오래 있지 못하고 나왔다.

집에가는 버스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창피할 정도로 울었다. 헤어지고, 다른 여자의 남자인 너인데 나는 아직도 감정조차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이러고 있다는게 힘들었다.

 

 

 

 

나의 모든 처음을 가져간 너다.

돌려달라 하지 못한다. 그건 이미 너의 것이니까.

 

 

다 잊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너를 잊을 수 있을까.

이만큼 시간이 흘렀으면 이젠

손가락으로 쓰윽 문대면 다 지워질만큼 옅은 기억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하지만, 윤아.

정말 너도 나를 사랑했다면

언젠가 나를 다시 만났을 때, 한 번만 꽈악 안아주지 않으련.

그 때 사랑했었고, 정말 고마웠다고 한 마디만 해 주지 않으련.

 

 

 

 

그러면, 그땐 나도 너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