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하고 아버지와의 관계는 제가 아버지를 많이 어려워하는 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고 자란 저에게는 아버지는 모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가제트처럼 보였고 혹은 넘볼 수 없는 벽. 커다란 산 같은 분이셨습니다. 그만큼 아버지는 제게 어려운 존재였습니다. 끙끙 고민을 하면 하지 아버지와 상담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기쁜 일이 있어도 아버지에게 제일 먼저 알린 적 또한 없었습니다. 그렇게 높은 산으로만 보이던 아버지가. 모든 지 하는 만능 가제트처럼 보이던 아버지가. 고등학교 3학년 말에. 제게 처음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했었었습니다. 집안사정이 좋지 않아 대학교를 포기하면 안 되겠냐는 아버지의 말에는 미안하고 씁쓸하고 안타까운 감정이 가득했습니다. 비록 무덤덤해 보이는 표정을 너머 전 아버지가 이제는 더 이상 태산 같은 존재가 아닌 태산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그때서야 처음으로 볼 수 있었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여태껏 아버지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있었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무리하고 무리하면 갈 수 있는 대학교이겠지만 그렇게까지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삶의 반을 희생하신 아버지에 비해서 저는 잠깐만 희생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전 대학교를 포기하고 일찍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집안사정이 좋지 않은 걸 알기에 휴가를 나와서도 용돈을 받은 적이 없었고, 기어코 휴가 나온 아들 주머니에 용돈을 넣어주시려는 걸 전 거부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겠지만. 괜찮았으니까요. 그렇게 2년을 보내고 일찍 일을 시작하면서 집안사정은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달에 생긴 여윳돈으로 내가 살 거 다사고 돈이 없다는 핑계로 못 사드리는 것이 아닌. 가정을 위해 희생하면서 정작 신발 하나를 못 사고 계시는 아버지를 위해 튼튼하고 따뜻한 신발을 드렸습니다. 정말 함박 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고맙다. 아들아. 잘 신을게.' 친구에게나 여자친구에게는 선뜻 주던 선물을 아버지에게 드리기 위해서는 무려 2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제 아버지는 22년 만에 아들에게 처음 받아 본 선물을 들고서 그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맙다. 잘 신을게.' 라고 말씀하시는 그 모습에 못난 저는 뿌듯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반성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왜 이제서야 주었을까, 하고 말이죠. 무덤덤해 보이지만 행복해 보이시는 아버지의 모습과 오늘 출근길에 또 다시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는 아버지의 문자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톡커님들도 비록 선물은 힘들더라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해보세요. 쑥스러워 하시겠지만.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그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
처음으로 아버지께 선물을 해드렸습니다.
저하고 아버지와의 관계는 제가 아버지를 많이 어려워하는 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고 자란 저에게는
아버지는 모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가제트처럼 보였고
혹은 넘볼 수 없는 벽. 커다란 산 같은 분이셨습니다.
그만큼 아버지는 제게 어려운 존재였습니다.
끙끙 고민을 하면 하지 아버지와 상담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기쁜 일이 있어도 아버지에게 제일 먼저 알린 적 또한 없었습니다.
그렇게 높은 산으로만 보이던 아버지가.
모든 지 하는 만능 가제트처럼 보이던 아버지가.
고등학교 3학년 말에. 제게 처음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했었었습니다.
집안사정이 좋지 않아 대학교를 포기하면 안 되겠냐는 아버지의 말에는
미안하고 씁쓸하고 안타까운 감정이 가득했습니다. 비록 무덤덤해 보이는 표정을 너머
전 아버지가 이제는 더 이상 태산 같은 존재가 아닌 태산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그때서야 처음으로 볼 수 있었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여태껏 아버지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있었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무리하고 무리하면 갈 수 있는 대학교이겠지만 그렇게까지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삶의 반을 희생하신 아버지에 비해서 저는 잠깐만 희생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전 대학교를 포기하고 일찍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집안사정이 좋지 않은 걸 알기에 휴가를 나와서도 용돈을 받은 적이 없었고,
기어코 휴가 나온 아들 주머니에 용돈을 넣어주시려는 걸 전 거부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겠지만. 괜찮았으니까요. 그렇게 2년을 보내고 일찍 일을 시작하면서
집안사정은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달에 생긴 여윳돈으로
내가 살 거 다사고 돈이 없다는 핑계로 못 사드리는 것이 아닌. 가정을 위해 희생하면서
정작 신발 하나를 못 사고 계시는 아버지를 위해 튼튼하고 따뜻한 신발을 드렸습니다.
정말 함박 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고맙다. 아들아. 잘 신을게.'
친구에게나 여자친구에게는 선뜻 주던 선물을
아버지에게 드리기 위해서는 무려 2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제 아버지는 22년 만에 아들에게 처음 받아 본 선물을 들고서
그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맙다. 잘 신을게.' 라고 말씀하시는 그 모습에
못난 저는 뿌듯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반성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왜 이제서야 주었을까, 하고 말이죠.
무덤덤해 보이지만 행복해 보이시는 아버지의 모습과 오늘 출근길에
또 다시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는 아버지의 문자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톡커님들도 비록 선물은 힘들더라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해보세요.
쑥스러워 하시겠지만.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그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