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롯데가 SK와 치열한 접전을 펼치다 결국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된 직후 구단은 일본 롯데구단에 있던 어떤 이를 영입했다. 새 용병이냐고? 아니.. 前 지바 롯데 국제편성부장' 이문한, 롯데 운영부장으로 영입 아마 야구팬들이라면 이문한을 삼성의 스카우트로 기억할 분들도 많을테고, 롯데팬들이라면 1988년에 선수협 파동 직후에 삼성으로 등떠밀려 간 선수로 기억할 것이다. (1988년 11월 23일에 롯데의 최동원, 오명록, 김성현, 삼성의 김시진, 허규옥, 오대석, 전용권 트레이드 그리고 며칠 후 동년 12월에 롯데의 김용철, 이문한, 그리고 삼성의 장효조, 장태수가 2:2로 트레이드) 1961년생으로 경남상고-동국대를 졸업한 후, 1984년에 롯데에 입단하여 (최동원과 입단 동기) 그 해 한국시리즈 멤버로도 뛰었지만 허리가 좋지 않았던데다 다른 팀 유니폼으로 갈아입던게 사실상 팽당하는 걸로 여겨지던 시절에 트레이드까지 겪었으니 선수시절이 그리 유쾌하진 못했을 터.. 실제로 그의 통산 성적은 9승 9패 3세이브... 한 해 성적이 아니라 1984년부터 삼성에서 은퇴한 1991년까지 다 합한 기록이다. (1984년부터 1991년까지 통산 105경기 출장, 완투 1987, 88년 각 1회 기록, 통산평균자책점 4.12) 하지만 그의 전성기는 선수시절이 아닌 그 이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은퇴 후 구단 (삼성)의 제안으로 시작한 스카우트직에서 그는 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의 활약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바로 박충식의 영입이었다. 경희대 재학 시절 이렇다할 성적도 못낸데다, 잇단 무단이탈로 '경희대 빠삐용' 소릴 듣던 박충식을 이문한 스카우트는 숨은 그의 재능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았고 마침내 1992년 말에 그를 영입했다. 박충식은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는 듯 입단 첫 해인 1993년에 14승을 거두는 기염을 토했고 당해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는 문희수, 선동열, 송유석 등 해태의 무시무시한 투수들을 맞상대하면서 15이닝 동안 181구를 묵묵히 던지는 투혼을 보여줬다. 박충식을 영입해 온 이문한 스카우트도 그의 활약 덕에 1994년에 대리로 특진할 수 있었다. (한겨레 1999년 12월 16일자) 아마 이문한 스카우트가 아니었으면 박충식은 해태나 아니면 OB의 품으로 갔을련지 모른다. 해태야 박충식이 호남지역 출신이고 광주상고 나왔으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OB는 왜? 이문한 스카우트 외에 또 다른 스카우트 한 명이 조용히 박충식을 지켜봤었는데 막상 지명 당시 그 스카우트가 속한 구단 코칭스태프들이 박충식 대신 다른 선수를 희망하는 바람에 결국 쓰린 속 부여잡고 박충식이 삼성으로 가는 걸 지켜봐야만 했었다. 그 스카우트가 누구냐고? 전 롯데 감독님. (당시 양승호 감독은 OB 스카우트로 재직했었다. 그래서 유망주 영입을 둘러싸고 둘 사이의 경쟁이 알게 모르게 벌어졌었는데 박충식 영입은 이문한 스카우트의 승리로 끝났지만 2년 뒤 진필중 영입 때 양승호 스카우트는 이문한 스카우트에게 회심의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양승호 스카우트는 이후 OB 코치로 복귀하는 바람에 이문한 스카우트는 반격할 기회조차 놓친다.) 전도유망한 선수들을 영입하는데 연달아 성공하면서 이문한 스카우트는 7년 이상 걸릴 과장직을 4년 6개월 만에 꿰어찼다. 한국 프로야구에 자유계약제도 (FA)가 시작된 뒤에도 이문한 스카우트의 활약은 계속되었다. 1999년 말에 해태의 잠수함 투수 이강철을 삼성으로 영입해 온 것. 치밀한 업무능력에다 동국대 선후배 사이라는 인연을 십분 더해 이강철 영입을 성공시켰던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해 이문한 스카우트는 상처 하나를 입게 되는데 하필 해태가 FA 보상선수로 미국에서 수술받던 박충식을 지목한 것. 거물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자기가 데려왔던 선수를 내치는 일이 그의 눈앞에 벌어졌던 것이다. 이후 2004년부터 그는 미국 LA에 상주하면서 삼성의 외국인 선수 선발 업무를 맡아왔고 그 과정에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전력분석원으로도 뛰어 국가대표팀의 4강 진출에 조력하였다. (국내선수 영입과는 달리 외국선수 영입에 대해서는 삼성팬들의 반응이 좀 미온적이긴 했지만...) 그리고 올해 일본 지바롯데에서 외국인 선수 관리, 한국 방송 중계권, 스폰서 계약 등을 담당하는 국제편성부장직을 맡았지만, 지바롯데에 있던 김태균 선수를 염두에 둔 자리라 그런건진 몰라도 김태균 선수가 중도에 지바롯데를 그만 두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그 역시 연말에 지바롯데를 떠났다. 그리고 88년 말에 삼성으로 이적한지 거의 23년만에 친정팀인 롯데에 운영부장으로 복귀하였는데... 작년 이승호, 정대현 영입하고 올해 보상선수로 홍성민,김승회 데려오는 한 수에 자린고비라고 불렸던 롯데프론트에 새 바람을 일으키는 중 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진정한 신의 한수지 ㅋㅋㅋㅋㅋ 2
롯데의 진정한 신의 한수
2011년 롯데가 SK와 치열한 접전을 펼치다
결국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된 직후
구단은 일본 롯데구단에 있던
어떤 이를 영입했다.
새 용병이냐고? 아니..
前 지바 롯데 국제편성부장' 이문한, 롯데 운영부장으로 영입
아마 야구팬들이라면 이문한을 삼성의 스카우트로 기억할 분들도 많을테고,
롯데팬들이라면 1988년에 선수협 파동 직후에
삼성으로 등떠밀려 간 선수로 기억할 것이다.
(1988년 11월 23일에
롯데의 최동원, 오명록, 김성현, 삼성의 김시진, 허규옥, 오대석, 전용권
트레이드
그리고 며칠 후 동년 12월에 롯데의 김용철, 이문한,
그리고 삼성의 장효조, 장태수가 2:2로 트레이드)
1961년생으로 경남상고-동국대를 졸업한 후,
1984년에 롯데에 입단하여 (최동원과 입단 동기)
그 해 한국시리즈 멤버로도 뛰었지만
허리가 좋지 않았던데다
다른 팀 유니폼으로 갈아입던게
사실상 팽당하는 걸로 여겨지던 시절에
트레이드까지 겪었으니
선수시절이 그리 유쾌하진 못했을 터..
실제로 그의 통산 성적은 9승 9패 3세이브...
한 해 성적이 아니라
1984년부터 삼성에서 은퇴한 1991년까지 다 합한 기록이다.
(1984년부터 1991년까지 통산 105경기 출장, 완투 1987, 88년 각 1회 기록, 통산평균자책점 4.12)
하지만 그의 전성기는 선수시절이 아닌 그 이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은퇴 후 구단 (삼성)의 제안으로 시작한
스카우트직에서 그는 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의 활약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바로 박충식의 영입이었다.
경희대 재학 시절 이렇다할 성적도 못낸데다,
잇단 무단이탈로 '경희대 빠삐용' 소릴 듣던 박충식을
이문한 스카우트는 숨은 그의 재능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았고
마침내 1992년 말에 그를 영입했다.
박충식은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는 듯
입단 첫 해인 1993년에 14승을 거두는 기염을 토했고
당해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는
문희수, 선동열, 송유석 등 해태의 무시무시한 투수들을 맞상대하면서
15이닝 동안 181구를 묵묵히 던지는 투혼을 보여줬다.
박충식을 영입해 온 이문한 스카우트도
그의 활약 덕에 1994년에 대리로 특진할 수 있었다.
(한겨레 1999년 12월 16일자)
아마 이문한 스카우트가 아니었으면
박충식은 해태나 아니면 OB의 품으로 갔을련지 모른다.
해태야 박충식이 호남지역 출신이고
광주상고 나왔으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OB는 왜?
이문한 스카우트 외에 또 다른 스카우트 한 명이 조용히 박충식을 지켜봤었는데
막상 지명 당시 그 스카우트가 속한 구단 코칭스태프들이
박충식 대신 다른 선수를 희망하는 바람에
결국 쓰린 속 부여잡고 박충식이 삼성으로 가는 걸 지켜봐야만 했었다.
그 스카우트가 누구냐고? 전 롯데 감독님.
(당시 양승호 감독은 OB 스카우트로 재직했었다.
그래서 유망주 영입을 둘러싸고 둘 사이의 경쟁이 알게 모르게 벌어졌었는데
박충식 영입은 이문한 스카우트의 승리로 끝났지만
2년 뒤 진필중 영입 때 양승호 스카우트는
이문한 스카우트에게 회심의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양승호 스카우트는 이후 OB 코치로 복귀하는 바람에
이문한 스카우트는 반격할 기회조차 놓친다.)
전도유망한 선수들을 영입하는데 연달아 성공하면서
이문한 스카우트는 7년 이상 걸릴 과장직을
4년 6개월 만에 꿰어찼다.
한국 프로야구에 자유계약제도 (FA)가 시작된 뒤에도
이문한 스카우트의 활약은 계속되었다.
1999년 말에 해태의 잠수함 투수 이강철을 삼성으로 영입해 온 것.
치밀한 업무능력에다 동국대 선후배 사이라는 인연을 십분 더해
이강철 영입을 성공시켰던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해 이문한 스카우트는 상처 하나를 입게 되는데
하필 해태가 FA 보상선수로 미국에서 수술받던 박충식을 지목한 것.
거물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자기가 데려왔던 선수를 내치는 일이 그의 눈앞에 벌어졌던 것이다.
이후 2004년부터 그는 미국 LA에 상주하면서
삼성의 외국인 선수 선발 업무를 맡아왔고
그 과정에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전력분석원으로도 뛰어
국가대표팀의 4강 진출에 조력하였다.
(국내선수 영입과는 달리 외국선수 영입에 대해서는
삼성팬들의 반응이 좀 미온적이긴 했지만...)
그리고 올해 일본 지바롯데에서
외국인 선수 관리, 한국 방송 중계권, 스폰서 계약 등을 담당하는
국제편성부장직을 맡았지만,
지바롯데에 있던 김태균 선수를 염두에 둔 자리라 그런건진 몰라도
김태균 선수가 중도에 지바롯데를 그만 두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그 역시 연말에 지바롯데를 떠났다.
그리고 88년 말에 삼성으로 이적한지 거의 23년만에 친정팀인 롯데에
운영부장으로 복귀하였는데...
작년 이승호, 정대현 영입하고
올해 보상선수로 홍성민,김승회 데려오는 한 수에
자린고비라고 불렸던 롯데프론트에
새 바람을 일으키는 중
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진정한 신의 한수지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