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사람.. 17세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쫓기듯 혼자 대책 없이 미국 유학을 와서값비싼 학비와 생활비 차별과 냉대에 힘들었고날 그저 유학생 돈벌이로 이용하려는 사람에 상처를 입었다. 고등학교때에..열심히 공부했지만..원하는 대학을 한번에 가지 못했고1년을 시골학교에서 보내고, 원하는 소위 명문대란 곳으로 갔다.그러나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기분이랄까.4년동안 수업을 겨우 따라갔고 헤메었다.성적 관리는 엉망이였고 공부는 뒷전이였다. 난 치과의사가 꿈이다.치대를 너무 가고 싶었지만현실은 너무 냉정했다.내 성적은 형편이 없었고 이렇다할 봉사활동이나 흔히 말하는 스펙은 바닥을 쳤다. 대학을 졸업 하고 1년 일하는 자격을 받아 리서치 연구원 일을 했다. 월급은 한국돈으로 70만원 받았고 8-10시간을 일했다.열심히 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한국인 조교에게 냉대를 받았고 꾸지람을 받았다.교수가 날 안타깝게 생각했는지 그냥 생물학과로 진로를 바꾸라고 추천했다. 하지만 치대를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열심히 했고 준비했다. 2번 여자친구를 사귀었다.두명다 한국에 있었다. 난 미국에 있었다. 난 정말 좋아했는데.. 헤어졌다. 치대에 3번을 지원했지만 모두 낙방했다.면접의 기회는 두번 있었으나 두번 다 내가 누군지 왜 치대에 가고 싶은지 피력하지도 못하고 떨어졌다. 그들은 관심이 없었다.열심히 다시 치대 입학시험도 준비했다.세번을 쳤으나 결과가 형편 없었고 마지막 시험을 치겠다고 지원했을때엔.. 내가 전년도 치대에 지원했으나 떨어졌다는 편지를 시험관이 요구했다. 치욕적이였다. 마지막 시험은 열심히 죽을 각오로 공부했다.과목이 총 6과목중 5과목 결과는 좋았는데 영어과목이 낙제점이였다. 영어공부를 안한게 후회스러웠다. 9년을 미국에서 공부하며 살았는데... 창피 했다. 치대에 지원할때...뭔가 다른 지원자들과 다른 나만의 것이 필요했다.그래서 파나마로 의료봉사를 갔다. 더운 여름.. 15시간 7일을 일했다. 하지만 난 이상하리 만치 즐거웠다. 현지인이 무료 의료서비스를 받으려 줄을 섰다. 몇백명은 되어 보였다. 눈물이 났다. 난 그래도 운좋게 좋은곳에서 태어나 행복한 놈이였구나.. 현지 치과의사를 열심히 도왔다.피부색도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았고 고맙다는 말도 듣지 못했지만그들은 나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날 의사라 생각했는지 존경하듯 바라 보았다. 치과의사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도중에 학생 비자가 만료되어버린 적도 있었다.불법체류자로 전락하여 살아봤다.미국을 떠나라는 말도 들어봤다.떠나면 미국에 다시는 못들어 온다는 말을 들었다.떠나버릴까도 생각해봤다.군대로 가버리면 차라리 편할꺼라는 생각도 해봤다. 너무 힘들고 한국으로 그냥 가버리고 싶었지만 엄마에게 미안했다.엄마는 내가 자랑스럽다고 생각하니깐. 엄마가 보내준 돈과 믿음을 져버릴순 없었다.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버리면 실패한 유학생이라는 오명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그래.. 끝까지 버틸때까지 버텨보자고 결심했다. 열심히 나의 상황을 설명한 뒤 뜻밖에 난 다시 합법체류자 신분이 되었다. 서류만 몇백장.. 2달을 준비한 결과였다. 눈물이 났다.다시 20여곳의 치대 문을 두드려봤다. 졸업한 학부도 다시 했다.결과는 모두다 No 였다.미안하다는 말과 충분히 자격은 있으나 경쟁에서 밀렸다는 편지만 왔다. 한곳에서 석사를 추천한다는 대학이 있었다.그냥 무조건 한다고 했다. 텍사스에서 일리노이로 왔다.이사를 올때 엄마가 한국에서 오셔서 도와줬다.엄마와 너무 많이 싸웠다. 의견도 안맞고 너무 힘들었다.내 고집으로 엄마가 눈물을 보일때 난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했다.잘못했다고 빌었다. 석사를 시작할무렵 한국 유학생 친구를 만났다.나와 동갑이였는데 군대를 안갔다고 했다.알아보니 난 내년까지만 군 연장이 되고 그 이상은 안된다고 했다.알고 보니 내년엔 나이 때문에 무조건 군대를 가야하는 상황이 된것이다. 치대 시험도 이번 년도가 마지막으로 유효했다. 내년이면 만료가 되고 다시 쳐야한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생각했다. 4번째로 지원했다.뜻밖에 두곳에서 면접이 왔다.캘리포니아와 일리노이에 있는 두 치대. 두곳이 나에게 흥미를 보이며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미친듯이 인터뷰를 준비했다. 내가 누구이며 왜 치과의사가 되고 싶은지 이런저런 생각과 내가 생각하는 미래. 치과의사로서의 사명. 앞으로 치과가 나가야할 방향까지 생각해서 정리했다.한곳은 만족스럽다고 면접관이 이야기했다. 다른 한곳은 예상치 못한 질문만 했다. 내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2012 년 12월 3일.. 첫결과가 나왔다.일리노이에 있는 치대에 합격했다.합격.. 정말일까? 몇번을 확인한 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가 너무 좋아했다.아는 은사님께도 전화드렸다. 난 그냥 막막할뿐 기쁨도 눈물도 그냥 멈추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하려 한다. 열심히 해야겠다.군대도 다녀올것이다. 당당해지고 싶다.하나님께 감사하고 엄마에게 고맙고 날 도와준 두 치과의사에게 고맙고 날 도와준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어느 미국 유학생의 이야기.
17세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쫓기듯 혼자 대책 없이 미국 유학을 와서값비싼 학비와 생활비 차별과 냉대에 힘들었고날 그저 유학생 돈벌이로 이용하려는 사람에 상처를 입었다.
고등학교때에..열심히 공부했지만..원하는 대학을 한번에 가지 못했고1년을 시골학교에서 보내고, 원하는 소위 명문대란 곳으로 갔다.그러나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기분이랄까.4년동안 수업을 겨우 따라갔고 헤메었다.성적 관리는 엉망이였고 공부는 뒷전이였다.
난 치과의사가 꿈이다.치대를 너무 가고 싶었지만현실은 너무 냉정했다.내 성적은 형편이 없었고 이렇다할 봉사활동이나 흔히 말하는 스펙은 바닥을 쳤다.
대학을 졸업 하고 1년 일하는 자격을 받아 리서치 연구원 일을 했다. 월급은 한국돈으로 70만원 받았고 8-10시간을 일했다.열심히 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한국인 조교에게 냉대를 받았고 꾸지람을 받았다.교수가 날 안타깝게 생각했는지 그냥 생물학과로 진로를 바꾸라고 추천했다. 하지만 치대를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열심히 했고 준비했다.
2번 여자친구를 사귀었다.두명다 한국에 있었다. 난 미국에 있었다. 난 정말 좋아했는데.. 헤어졌다.
치대에 3번을 지원했지만 모두 낙방했다.면접의 기회는 두번 있었으나 두번 다 내가 누군지 왜 치대에 가고 싶은지 피력하지도 못하고 떨어졌다. 그들은 관심이 없었다.열심히 다시 치대 입학시험도 준비했다.세번을 쳤으나 결과가 형편 없었고 마지막 시험을 치겠다고 지원했을때엔.. 내가 전년도 치대에 지원했으나 떨어졌다는 편지를 시험관이 요구했다. 치욕적이였다. 마지막 시험은 열심히 죽을 각오로 공부했다.과목이 총 6과목중 5과목 결과는 좋았는데 영어과목이 낙제점이였다. 영어공부를 안한게 후회스러웠다. 9년을 미국에서 공부하며 살았는데... 창피 했다.
치대에 지원할때...뭔가 다른 지원자들과 다른 나만의 것이 필요했다.그래서 파나마로 의료봉사를 갔다. 더운 여름.. 15시간 7일을 일했다. 하지만 난 이상하리 만치 즐거웠다. 현지인이 무료 의료서비스를 받으려 줄을 섰다. 몇백명은 되어 보였다. 눈물이 났다. 난 그래도 운좋게 좋은곳에서 태어나 행복한 놈이였구나.. 현지 치과의사를 열심히 도왔다.피부색도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았고 고맙다는 말도 듣지 못했지만그들은 나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날 의사라 생각했는지 존경하듯 바라 보았다. 치과의사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도중에 학생 비자가 만료되어버린 적도 있었다.불법체류자로 전락하여 살아봤다.미국을 떠나라는 말도 들어봤다.떠나면 미국에 다시는 못들어 온다는 말을 들었다.떠나버릴까도 생각해봤다.군대로 가버리면 차라리 편할꺼라는 생각도 해봤다.
너무 힘들고 한국으로 그냥 가버리고 싶었지만 엄마에게 미안했다.엄마는 내가 자랑스럽다고 생각하니깐. 엄마가 보내준 돈과 믿음을 져버릴순 없었다.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버리면 실패한 유학생이라는 오명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그래.. 끝까지 버틸때까지 버텨보자고 결심했다.
열심히 나의 상황을 설명한 뒤 뜻밖에 난 다시 합법체류자 신분이 되었다. 서류만 몇백장.. 2달을 준비한 결과였다. 눈물이 났다.다시 20여곳의 치대 문을 두드려봤다. 졸업한 학부도 다시 했다.결과는 모두다 No 였다.미안하다는 말과 충분히 자격은 있으나 경쟁에서 밀렸다는 편지만 왔다. 한곳에서 석사를 추천한다는 대학이 있었다.그냥 무조건 한다고 했다.
텍사스에서 일리노이로 왔다.이사를 올때 엄마가 한국에서 오셔서 도와줬다.엄마와 너무 많이 싸웠다. 의견도 안맞고 너무 힘들었다.내 고집으로 엄마가 눈물을 보일때 난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했다.잘못했다고 빌었다.
석사를 시작할무렵 한국 유학생 친구를 만났다.나와 동갑이였는데 군대를 안갔다고 했다.알아보니 난 내년까지만 군 연장이 되고 그 이상은 안된다고 했다.알고 보니 내년엔 나이 때문에 무조건 군대를 가야하는 상황이 된것이다. 치대 시험도 이번 년도가 마지막으로 유효했다. 내년이면 만료가 되고 다시 쳐야한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생각했다.
4번째로 지원했다.뜻밖에 두곳에서 면접이 왔다.캘리포니아와 일리노이에 있는 두 치대. 두곳이 나에게 흥미를 보이며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미친듯이 인터뷰를 준비했다. 내가 누구이며 왜 치과의사가 되고 싶은지 이런저런 생각과 내가 생각하는 미래. 치과의사로서의 사명. 앞으로 치과가 나가야할 방향까지 생각해서 정리했다.한곳은 만족스럽다고 면접관이 이야기했다. 다른 한곳은 예상치 못한 질문만 했다. 내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2012 년 12월 3일.. 첫결과가 나왔다.일리노이에 있는 치대에 합격했다.합격.. 정말일까? 몇번을 확인한 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가 너무 좋아했다.아는 은사님께도 전화드렸다. 난 그냥 막막할뿐 기쁨도 눈물도 그냥 멈추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하려 한다. 열심히 해야겠다.군대도 다녀올것이다. 당당해지고 싶다.하나님께 감사하고 엄마에게 고맙고 날 도와준 두 치과의사에게 고맙고 날 도와준 교수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