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할땐 천사같은 소녀 지금은 무시무시한 남자로 돌변한 아내..

진한궁물쟁이2012.12.07
조회5,446

그냥 지하철에서 힐끔 네이트만 보다 오늘눈도오고 한가해서 문득 들어왔는데 함 써보고 싶어짐.

글솜씨가 없어도 이해해주실거죠..??^^*

소녀같은 아내 지금은 남자같은 아내 너무 무서워 하도 답답해  남기고 싶네요..

 만남부터 지금까지 한편의 이야기 긴 글이래도 이해해주세요..

 

아내가 아내가 아니에요~~

 

난 29살 아낸 26살 결혼하고 올해 10년되었다. 휴~ 많이도 살았네.

근데 10년동안 다른건 변해도 안변한게 성격이다. 그저 맞추며 사는것이 원래 부부라고 의미있는 덕담을 들은지도 꽤 되었건만. 우리 부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상하게, 이해가 안될만큼 안맞는다.

아니 솔직히 아내가 너무 무서울 정도다.

 

아내는 고교시절 전체 학생회장을 하고 고3시절. 난 그때 나이 22살 군대 7월 입영을 앞둔 따뜻한 봄이었다. 아내는 그시절 교복을 입고 있었고 난 대학을 다니는 시골 촌놈. 금요일 저녁 또는 토요일 점심때 고향에 내려오는 자취생이었다. 토요일날 하루 고향서 묵고 일요일 오후에 김치랑 쌀이랑 바리바리 보자기에 챙겨주시는 부모님 인사드리고 버스타고 대도시로 오는 그저 평범한 남자였다.

 

벚꽃이 피고지는 4월에 주말 토요일 점심때 난 고향에 내려가는 있었다. 직행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버스로 갈아타려고 하는데 때마침 점심이 거의 다되어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었으며 그 많은 학생들중 친구랑 함께오는 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비단같이 고운 긴 생머리에 한번 빠져보고싶은 호수처럼 큰 쌍커플의 두 눈, 우유빛깔 새하얀 얼굴, 눈 감으면 세상을 모두 덮어버릴 것 같은 긴 눈썹. - 어느 하나 가만히 둘 수 없는 그녀의 모습이 내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숨이 떨리고 있었다. 그당시 내가 다니던 과는 여학생이 참 많은 곳이었지만 별 관심이 없었는데 그녀를 본 그때부터 난 이미 '남자'가 된 나를 느끼고 있었다.

 

아~ 하지만 용기없는 나! 내가 무슨 이유로 그녀한테 볼일이 있을까?? 내 자신이 참 미웠다.

..........................................

2주에 한번씩 쌀이 떨어지는 터라 난 또 학교를 마치고 시골에 내려가고 있었다. 역시 그 터미널에 집에 갈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때..어디서 낯익은 소녀가 교복을 입고 내쪽으로 오고있었다. 전에 보았던 그 소녀였다. 숨이 차기 시작했다.

핑계꺼리를 찾았다. "저기 혹시 00사는 00이 동생 아니에요?" "아닌데요" 아~실수...

말주변이 없던 나..그냥 포기가 되었다.

그냥 버스에 올라탔다. 앉아있는데 앞 출입문에 그녀가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녀가 내가 앉은 좌석 바로 앞에 앉는 것이었다.

그녀는 너무 예뻤다. 165cm정도 잘룩한 허리에 교복과 구두가 딱 어울리는 그런 모습이었다.

군대를 앞둔 시기였고 난 내 마음이 가는대로 그냥 그녀에게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사실 너무 닮아서 아까는 말을 꺼냈다고. 어디까지 가냐고. 몇학년이냐고, 대학은 어디 생각하냐고. 난 00대 다닌다고. 사실 2주전에도 한번 보았다고.. 그녀의 마을이 어느새 다가오고 있었다. 난 웃음을 지으며 잘가라고 인사를 했고 그 소녀도 내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2주후 시골에 내려오는 내내 난 그녀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토요일 아침일찍 출발해서 터미널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오후 3시가 되니 그녀가 오는게 보였다. 아~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난 서슴없이 그녀한테 다가가 친절히 인사했다. 서점에 간다해서 난 고향집을 멀리두고 소녀와 함께 서점에 갔다. 책도 보고 배고프다고 떡볶이도 먹고,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 다시 나와서 원래 터미널로 다시 도착했다. 그녀는 기숙사로 들어간다고 하여 내가 어떤 용기가 났는지 꽃집에가서 꽃을 선물했다. 난처한 표정을 짓는 그녀! 하지만 고맙다고 ..나를 뒤로한채 학교로 뛰어가는 그녀가 벌써부터 보고싶기 시작했다.

연애시절 난 이렇게 그녀와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만남이 그리 길지 않았는지 군대에 간 뒤로 소식이 끊어지게 되었다. 그녀는 고3이었고 난 군인이었기때문에...

군인시절은 참 힘들었다. 잠이 늘 부족해서 내 얼굴은 노란 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휴가도 낼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

재대 전 병장, 말년휴가때 막노동을 했다. 9박10일, 4박5일 거쳐 용돈을 모았다. 서울 형네집서..

다시 복학하고 시골에 내려갔지만 그 터미널에서는 예전의 모습은 더이상 볼 수 없었다.

그후 6개월이 흐르고 2월 설날전 학교에서 내려오는 중 수 많은 인파중에 그녀를 보게 되었다.

그녀는 2학년이었고 날 알아보았다.

"반가워 연희", "오빠~ "

"그동안 잘 지냈어?" "응, 오빠는?"

"나도"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저기 혹시...남자..친구는 있지?" "아니"

"왜? 왜 없어?" "너무 바빴어. 실습도 많고 알바도 하고 그래서~"

"그래?"

"핸드폰은 있어?" "없어"

"그럼 사는 주소 알려주라 . 편지하게.."

그녀는 친절하게 주소를 적어주었다.

 

당시 01X패밀리 폰이 참 유행이었다.

내 친구가 여친이랑 깨져 그 폰을 처분할려는데 내가 산다고 해서 한대에 2만원씩 4만원을 얼른 주고 그 폰을 사서 바로 그녀에게 택배로 보내주었다.

 

평생 무료라는 패밀리폰으로 밤을 낮삼아 매일매일 통화하게 되었고.. 결혼에 성공했다!!!!

서울에 사는 그녀를 데리고 시골에서 살게 되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나만 보고 시골 깡촌으로 시집을 오게 된것이다. 오로지 나만 보고...

 

결혼할때 돈이 하나도 없던 나..-1500 대출하며 식을 올린 나..

한달 월급 95만월 초봉에 나는 매년2-30만원씩 인상되는 월급을 그녀에게 바쳤고 그녀는 행복해했다.

하지만 그녀는 시골이 싫다고 했다.

재미없고 너무 심심하고 아는 사람도 없고...

발령을 냈다. 조그만 소도시로..

아내는 가만히 못있는 성격이다. 음식을 정말 잘하며 집안일은 정말 최고로 잘했다.

하지만 가난이 뭔지 나와 관계한 시댁과 내 형제들과는 불편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아내는 소도시로 이사가고부터 일을 시작했다. 너무 예쁜 그녀가, 고운 그녀가 일을 시작한것이다.

하지만 난 아내보다 가족과의 불편한관계가 더 싫었다. 어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녀의 피곤함을 보고도 난 눈을 감게 되었고 어느덧 둘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오해가 또다른 오해를 낳는다고 ... 결혼할때부터 시집 대접이 좋지 못했던 아내 입장에서 그럴만 했지만 당시 철없던 나는 그러지 말라며 친부모와형제를 더 감싸게 되었고 이내 아내와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내는 아내 자신의 일은 철저히 잘하였다.

나도 내 일을 철저히 했다. 그러나 아내가 서운하다고 느껴질때 회사까지 찾아와 나에게 뭐라뭐라 소리치는게 정말 싫었다.

시아버지를 욕하는게 싫었고 무력한 시어머니를 무시하는게 싫었다.

아내가 일을 시작하고 내 월급도 쌓아지면서 -1500하던것이 5년이 지나면서 안정이 되고 집도 사게 되었다. 하지만 삶은 정말 고단하였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처럼 내 직장일도 순탄지 못했다.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당뇨로 쓰러질때 형제들 십시일반할때 난 돈 10만원도 주지 못하였다. 아내가 관리를 했기 때문이다.

처 부모께 잘하면 잘 할거라 얘길 들어 장인어른 심근경색으로 새벽에 돌아가시려는데 그나마 가깝게 살아서 큰 종합병원으로 모시고 병원비도 지불했지만 사실 그때 뿐이었다. 

다시 지방의 큰 도시로 이사를 갔다. 아내는 친정에서는 양념이랑 갖다먹는것 많이 주는데 시댁에서는 하나도 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렸고 훗날 시댁과 친정을 비교차원을 벗어나 시댁에는 돈 10만원도 주지않으나 친정에는 이것저것 선물을 사서 나 몰래 보내주었고 용돈도 보내주었다.

 

2년전 아내는 서울로 가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뜬금없이 말하는 아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서울~서울~ 노래를 부르던 아내.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던 수많은 말들..

돈도 모았고 나라는 남편은 다 필요없고. 그저 애랑 같이 살겠다는 무언의 폭탄선언.!!

그리고 두달 뒤 서울에서 집을 분양을 그냥 받았다. 그것도 3억 5천짜리..

계약을 하고 내려오는 동안 우리는 내내 말이 없었다.

우리는 그것으로 우리의 관계는 끝이었던 것이다.

 

지방에서 서울 발령은 쉽지 않다.

그것도 내가 원한다고 해서 바로 되는 것도 아니다. 몇년을 기다려야 될똥말똥하는 인사시스템

그러나 참 이상하게도 서울 발령이 났다.

다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동안 돈도 많이 벌었다.

새아파트를 계약 분양받고도 돈이 남을 정도 자산은 늘었지만 둘의 관계는 어떤 의미도 부여할수 없었다.

시댁을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해가 갈수록 병원치레를 더 하는 부모님들의 모습이 안타깝기 짝이 없는데 아내는 돌직구다. 우리 아니어도 다른 형제들이 하면 되는거지 않냐면서..

우리에게 뭘 해줬냐면서,...

그래 맞다. 해준게 없다. 내 남자지만 솔직히 한게 없었다.

 

아내와 싸우면서 난 참 많이 맞았다. 아내는 정말 무서웠다.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고,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고..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119에 전화도 했다.

때론 경찰서에도 전화를 한적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 만들었나?? 이게 뭐지?? 도대체 왜 저렇게 된걸까? 내가?? 내가 만들었을까?

무엇이 날 이렇게 비참케 만드는 걸까?

아내를 이해해주지 못한거? 결론은 마음과 마음이겠지. 진심이 통해야겠지.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

서울에 올라오니 지방보다는 일이 몇배나 더 힘든것 같다.

지방에 있었으면 지금쯤 승진도 가능할터 ..올라오니 인맥도 없고 다시 시작하려니 말이 아니다.

세상에 본인기준으로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아이를 봐서라도 부모님게 그러면 안된다고, 좀 참을때도 있고 사람에게 용서도 필요하다고..

그러나 단순히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좀 억울할지라도 적어도 서로 지켜가며 우리의 울타리를 가꾸어 나가야 하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지만,

아내에게는 세상의 모든것이 자신의 실험대상이다. 그냥 저지르고 승부를 거는 성격이다.

뒷감당은 내가 다 진다.

난 자신한다. 아내가 이시대 남자로 태어났다면 아마 별 5개짜리 장군이 되어있을거라고..

어느 누구도 건들수 없는...아내의 형제들도 혀를 내두른...모든것이 180도 이상하게 되어버린지금

나에게 삶이란 어떤 것인지 표현하기 힘들다.

그저 한달 월급 350중 용돈 10만원으로 그런 아내를 이해하며 살아가는 바보같은 남자일뿐...

 

그 천사같은 소녀! 그녀가 보고싶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