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난 꿈을 꾼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나만의 꿈을... 꿈속에서 난 촉망받는 대학 교수이며, 예쁘고 젊은 아내... 그리고 재력가인 아버지와 으리 으리한 대저택은 아니지만 소박하다고 할 수 도 없는 서울 근교의 전원주택에서 살고있다. 부족함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풍족한 삶. 어쩌면 꿈속에서 부족함을 찾는다는 것부터가 모순일지도... 그에 반해 나의 현실은... 우스개소리가 아닌 진심으로 시궁창이다. 초등학교때 아버지의 알콜중독과 폭력으로 이혼하신 부모님. 그리고 남겨진 아버지와 나. 알콜에 침식당한채 벌써 10년째 병상에 누워있는 짐짝 같은 아버지. 대학교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어 방항하던 나를 매질로 대하시던 아버지. 지긋지긋함에 군대로 도망치듯 숨어갔고, 제대하고 얼마 후 아버지는 그렇게 쓰러져버렸다. 난 그런 짐짝 같은 아버지의 보호자라는 명목으로 월급의 거의 전부를 병원비에 쏟아붓고있다. 빨리 죽어버려.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아버지가 없으면 나 혼자 남는다는 쓸데없는 감상에 젖어 그런것도 아버지라고 위안을 삼는 내꼴이 당해도 싸다라는 생각이든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은... 아버지로부터 망해왔고... 망해갈것이다. 내 엄마처럼... 몇 해 전... 고등학교 동창 경식이와 술자리에서 루시드드림이라는 기묘한 이야기를 접하게된다. 워낙 독특한 놈이기에 그 놈 말을 듣는둥 마는둥 하며 술을 입에 털어 넣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놈이 흥미로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경식 : 야 나도 첨엔 뭐 이런게 가능해? 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다들 너무 진지한거지. 그래서 뭐... 귀신을 부르겠다는것도 아니고... 솔직히 우리도 한번씩 꿈꾸면 꿈인지알면서도 꿈을 꾸는 경우 있잖아... 뭐 그런 논리랄까? 뭐 전혀 안되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이 들더라고... 나 : 그래서... 니가 인셉션이라도 찍었다는거야? 미친새끼 경식 : 크크크크크크 쉐캬~ 고작 꿈을 컨트롤 할 수 있는데 인셉션이 뭐냐. 꿈은 크게 갖으라고 안그러냐... 나 : 그럼 뭐 로또 번호라도 알려주디? 경식 : 헉.....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아.. 이새끼 이럴땐 머리가 잘 돌아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 그 자식의 손을 신경질 적으로 쳐내며 한마디 한다. 나 : 미친놈아 꿈을 컨트롤 한다며.., 웬 또 백투더퓨쳐야... 노선을 잘 잡아... 병신아. 경식 : 뭐... 그건 그렇고... 경식은 무슨 은밀한 얘기라도 하려는 듯 의자를 테이블로 바짝 당겨 앉으며 몸을 내 쪽으로 깊숙이 숙였다. 나 : 병신아.. 무슨 얘기할라고... 징그러... 경식 : 그래서... 내가 무슨 꿈을 어떻게 컨트롤 한지... 안 궁금한거냐? 나 : 너 이 쉐키... 뻔한거 아냐... 신애라도 불러내서 쪽쪽 빨았겠지. 경식 : 허.... 경식은 테이블 뒤로 몸을 밀쳐내며 혀를 끌끌 찼다. 경식 : 고작! 내가!!! 선영이를?? 헐... 어따대고 아이유랑 신애 따위를 비교해... 신애는 아이유에 대면 쓰레기지... 나 : 뭐? 아이유...!!! 야... 이 병자새끼야. 너 이쉐키 변태냐..?. 그건 범죄야. 경식 : 아.. 이 고귀함을 코스프레하는 쉐키!! 미친쉐끼 넌 아이유 싫냐? 나 : 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 고등학생인 애를... 경식 :이 쉐키는 이렇게 판을 깨니깐 내가 졸라... 막 변태 같잖아. 하~ 이 개쉐키!!! 나 : ㅎㅎㅎㅎㅎㅎ 그래서 고작 너의 큰 꿈이 아이유냐? 경식 : 야... 나라를 구하는것보다 아이유가 먼저지... 새꺄 넌 아니야? 나 : ㅋㅋㅋㅋㅋ 뭐... 그럴....지....도?? 난 입을 삐쭉 내밀며 고개를 위아래로 작게 흔들었다. 경식 : 그래서... 말이야. 경식은 또 말소리를 줄이며 고기 한 점을 집어 들고 젓가락을 내 쪽을 향해 흔들어댔다. 경식 : 이 루시드드림이라는거 정말 필요한건 너가 아닐까한다. 솔직히 너... 에효.... 그렇잖아. 나 : 내가 뭐... 난 경식이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술잔을 채웠다. 경식 : 너 행복하냐...? 난 어울리지 않게 무거운 주제를 꺼내는 경식의 말에 흠짓 당황했다. 한번도 이런식의 대화는 나눠본적이 없다. 나 : 행복이라는거 나 그런거 몰라. 그러는 넌 행복하냐? 경식 : 뭐... 나도.. 그렇긴 하지만... 불쌍한 30대 중반의 대화다. 우울하다. 씨팔... 그렇게 난 경식과 2차 3차까지 마치고 첫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술 기운이었는지 경식과 했던 대화는 싸그리 다 잃어버리고 주말을 맞이했다. 일요일은 일주일중 유일하게 아버지를 만나러가는 날이다. 난 미리 인터넷으로 주문해놓은 각 티슈와 패드 물티슈를 쇼핑백에 담아 병원으로 향했다. 불행중 다행은 아버지는 이 병원 저 병원을 돌고 돌며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는거다. 그래서 따로 간병인을 둘 필요는 없다는 것... 간호사 : 지난번에 가지고 오신 물티슈는 많이 남았어요. 다음번엔 패드만 좀 넉넉하게 가지고 오시면 될 것 같구요. 난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며 간호사가 말한 내용을 머릿속에 넣고 있다는 표현을 한다. 간호사 : 그리고, 아버님이 저혈압 때문에 약이 들어가고 있는데 그것땜에 오늘 주치의 선생님 만나보고 가시라고 하셨거든요. 한 20분쯤 후에 이 찬희 선생님 만나 뵙고 가시면 되세요. 아. 원무과도 들리시구요. 나 : 이 찬희 선생님이요? 선생님이 바뀌신건가요? 간호사 : 아뇨. 담당선생님만요. 나 : 네... 그럼 면회 끝나고 패드만 더 사오면 시간이 딱 맞겠네요. 간호사 : 네... 원무과도요. 원무과에선 나 같은 사람은 위험하다 생각한건지 툭하면 오라가라하며 중간 정산을 요구했다. 원래 절차가 그런것이라곤 하나... 기분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는것 같다. 이게 없는 자의 자격지심 같은 건가? 난 손목의 시계를 들여다보고 5분 정도 남은 면회시간을 서둘러 마친 후 간호사에게 짧게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약국에서 패드를 산 후 바로 원무과로 가 중간 정산을 하고 다시 2층 중환자실로 돌아왔다. 아까 그 간호사가 방긋 웃으며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제스춰를 보냈다. 난 보호자들이 모두 떠난 중환자실에 앉을 곳도 없이 간호사 데스크 앞에서 멀뚱 멀뚱 서있었다. 보호자들이 있을때와는 다르게 간호사들도 한층 여유가 있는 모습들이다. 난 그녀들의 모습을 무의미하게 쳐다보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슬슬 짜증이 났다. 간호사 : 어.. 오셨어요? 간호사는 내 뒤에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곤 나를 보며 "오셨어요." 라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그리곤 의사 선생님 방향으로 손바닥을 올려 가르켰다. 난 뒤를 돌아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찬희 : 아.. 안녕하세요. 난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했던 그에게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찬희 : 다름이 아니고... 아버지가 저혈압이 있으셨다는건 아셨죠? 나 : ................네... 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살피고 또 살폈다. 이럴수가... 이럴수가... 그녀는 내 눈빛에 당황해하며 고개를 살짝 틀어 입꼬리를 올렸다. 난 그녀의 표정에 순간 정신이 돌아온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찬희 : 아버지의 혈압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서 약을 투여하는데... 이 약이 일정수치이상이 되면 아무 의미가 없어져요. 지금으로썬 혈압이 더 떨어지지 않게 해야하겠지만 아버지 상태도 위중하시기도 하고... 어느 순간 내 눈은 또 그녀를 향해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찬희 : 저기요... 보호자님. 보호자님... 찬희는 이 이상한 남자가 왜 이런지... 두려움에 가득한 눈으로 간호사를 돌아봤다. 간호사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응시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참다 못한 그녀는 내 가슴팍을 손가락 두 개로 툭툭 치며 보호자님... 보호자님을 불렀고.. 난 그녀의 손길에 그제서야 다시 정신을 차리고 눈을 아래로 내렸다. 뒤에서 간호사들이 킥킥거리는 웃음 소리가 들렸고, 그녀도 어이 없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띄며 다시 차근 차근 설명해 나갔다. 그렇게 난 그녀에게 아버지의 위중함을 설명받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녀였다. 그녀... 꿈속의 나의 아름다운 그녀. 난 버스를 타고 가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한채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내가 그녀를 봤었던가?‘ 아마 그럴 것이다. 난 그녀를 병원 어디에선가 스쳐 지나가듯 봤을것이고...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을테니 내가 나도 모르게 그녀를 내 꿈속의 아내로 만들어 냈었을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난 묘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이런게 운명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현실세계에서 찌질한 직장인과 예쁜 여의사가 이뤄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이젠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 즐거워질 것 같은 기분이다. 그 날 이후... 난 전에 없이 행복이라는걸 느꼈다. 행복이라는게 이런건가? 아버지를 보러가면 이제 그녀를 볼 수 있는건가? 그렇게 1달이란 시간이 지났고,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녀와의 대화는 어려웠다. 아버지보다 그녀쪽에 더 눈길을 보내고 있었기에 그녀의 짧은 목례를 받기 했지만 그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그러다 한 달이 지난 시점 병원에서 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연락을해왔다. 점심시간 때 쯤 다급하게 걸려온 전화에 난 침착하게 겉옷을 입고 동료인 승환에게 사정을 설명한 후 택시를 잡아 탔다. ‘안돼~ 이대로 보낼 수 없어...’라는 생각과... ‘난 그동안 최선을 다했어... 쉬고싶어...’ 라는 생각... 그리고, 그녀를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지금 가장 아쉬운건 무엇일까? 난 빨갛게 충혈된 눈을 하고 택시 뒷자리에 깊숙이 누웠다. 운전기사가 도착했다는 소리에 난 눈을 뜨고 메타기를 확인한 후 돈을 지불하고 서두르는 걸음으로 중환자실로 빠르게 올라갔다. 그녀가 아버지 옆에서 아버지를 휘감고 있는 가늘고 굵은 호스들을 체크하며 걱정스런 얼굴로 아버지옆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의 하얀색 가운이 김치국물과 볼펜잉크로 지저분하게 번져있었고... 그녀의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난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그녀를 쳐다봤다. 찬희 : 환자분 기계호흡장치를 달아야할 것 같습니다. 자발호흡이 어려우세요. 나 : 기계호흡이요? 그게.... 찬희 : 본인 스스로 호흡을 못하니 기계로 호흡을 시켜드리는겁니다. 기계 호흡을 하게 되면 환자분은 많은 고통을 느끼실꺼고 저희는 그 고통을 줄여드리고자 잠을 재워드릴꺼에요. 나 : 그럼... 계속 주무신다는거에요? 앞으론 눈깜박임도 하지 못한채요? 찬희 : 잠깐씩 보호자님이 오시면 깨워드리긴 할 껍니다. 나 : 고통스럽다면서요... 찬희 : 보호자님이 원하시면요... 나 : 그러다... 기계호흡장치를 끼고 평생 돌아가시지 않으시면요!!! 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놀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당신 아버지잖아... 당신 아버지... 라며 날 책망하는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평정심을 찾곤... 내게 이렇게 말했다. 찬희 : 간혹 기계호흡 장치에 의지해 십수년이 넘게 사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녀의 표정은 고요했지만 모든 걸 말하는듯 했다. 당신의 고통을 이해하겠어요. 당신의 마음도 이해해요. 다들 그러니깐... 그게 인간이니깐.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입밖으로 그런 무서운 말을 내 뱉진 않아요. 라고 말하는 듯 하다. 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곤 숨죽여 울었다. 내 어깨는 마치 율동이라도 하듯이 위 아래로 요동쳤고, 그녀는 약간의 텀을 주고는 바로 질문을 했다. 찬희 : 보호자님. 또 그런 상황이 오면 기계 삽관을 하실건지... 거부하실건지...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 찬희 : 동의하시면 간호사가 주시는 서류에 사인을 하고 가시면 됩니다. 그녀는 마냥 나를 기다려 줄 수 없다는 듯이 차갑게 뒤돌아섰다. 그녀는 나를 떠났고, 내 옆에선 이런 상황은 항상 어려워~ 라는 표정의 간호사만 내 옆을 지켰다. 난 간호사에게 잠깐만 시간을 달라고 말한 듯 중환자실을 나왔다. 난 그렇게 중환자실 앞 대기 의자에서 반나절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앉아있었다. 회사에선 끊임없이 전화가 오고... 난 그 어떤 연락도 받지 않은채 천장을 바라보다 의자에 누웠다 일어났다... 눈을 감았다... 잠들었다를 반복하며 넋빠지 눈으로 앉아있었다. 중간 중간 곡을 하는 보호자들 사이에서 내 마음을 더 피폐해졌다. 오늘도... 두명이나 죽어나갔다. 옆에 있는것 만으로도 그들이 어떤 관계였는지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난 메마른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쳤다. 난 고개를 들어 그 대상을 쳐다봤다. 그녀다 찬희 : 여기 계속 이러고 계셨어요? 난 그녀의 질문에 대답도 하지 못한채 그냥 바닥으로 눈동자를 움직였다. 찬희 : 아직 결정 못하신건가요? 아버지가 많이 위독하세요. 지금 돌아가신다고 해도 이상할게 없는 상태입니다. 최대한 빨리 결정을 내려주셔야 아버지 상태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을 수 있어요. 수시로 호흡곤란 증세가 오는데 저러다 산소가 뇌에 전달이 안되거나 하면,,,, 내가 결정을 내리다고 해도... 아버지의 상태가 좋아질 순 없는 모양이다. 말끝을 흐리던 그녀는 내가 대답이 없자 포기한채 다시 가던길을 갔다. 난 그렇게... 중환자실 의자에서 만 하루를 더 보냈다. 중간 중간 면회가 허용될때와 생리현상때가 아니면... 그녀는 이제 습관적으로 내게 다가와 말을 건다. 혐오스럽게 날 쳐다보던 그녀의 눈빛이 이제 연민까지 느껴진다. 찬희 : 점심 드셨어요? 나 : 아... 아직요... 어느정도 정신을 차린 나는 자리에서 몸을 가다듬고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찬희 : 그래도 아버지가 잘 기다려주고 계시네요............... 난 그녀의 말에 또 눈이 충혈되어 가고 있었다. 그녀는 헛기침을 두어번 하더니... 찬희 : 구내식당 밥 말고... 다른걸 좀 먹어볼까 하는데... 보호자님 괜찮으시면 같이 점심하실래요? 난 그 와중에... 어찌된 인간인지... 이렇게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 해도 되는건지... 정말 이 상황이 웃음 밖에 안나오지만... ................기뻤다. 난 그녀를 말없이 올려다봤고, 그녀는 살짝 웃음을 지으며 맛있는걸로 사주세요~ 라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끼니도 거른채 앉아있는게 마음에 걸렸던걸까? 산 송장 하나 치우기전에 적선이라도 할 셈인가? 그녀의 말때문인지 허기가 갑자기 밀려왔다. 난 옆에 구겨져있던 정장 마이를 집어들고 일어났다. 그녀는 생긋 웃으며 가운주머니에 깊게 손을 찔러넣었다. 나와 그녀와 병원을 벗어나지 못한채 지하 푸드코너에 앉아 7,000원짜리 돈가스를 사와 마주앉아있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내 꿈속에서처럼 그녀를 리드할 수 있었을텐데... 목구멍으로 음식물이 갑자기 들어가자 기침이 났다. 그녀는 자신의 물을 권하며 걱정스런 눈빛을 보냈다. 난 한손을 크게 올려 괜찮다는 표현을 보냈다. 그녀도 금새 괜찮은 내 표정을 보고 칼질을 시작했다. 찬희 : 회사는 안나가보셔도 되요? 나 : 네... 휴가 냈어요. 거짓말이다. 회사에서는 끊임없이 연락이 오고있고 난 아마도 이번일로 내 자리를 보장 할 수 없을 것이다. 찬희 : 다행이네요. 흠... 그녀는 할말이 끊긴 채 민망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찬희 : 저 첨이에요. 나 : 네? 찬희 : 보호자님과 이렇게 밥먹는거요. 상상할 수도 없는일인데... 제가 이러고 있네요. 나는 그녀의 말에 순간 어질함까지 느꼈다. 난 신음소리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아... 그렇군요. 라는 뜻을 보였다. 그녀는 내 반응이 맘에 들지 않았었는지 그 작은 입으로 또 조잘조잘 거렸다. 찬희 : 저희 아버지도... 보호자님 아버지와 같은 병으로 돌아가셨어요. 요번년에요. 그런데 공부한답시고... 시간이 없다고... 잘 찾아뵙지도 못하고... 그렇게 보냈어요. 딸이 꼴에 의산데... 뭐... 아직 정식 의사라고 하긴 뭐하지만요. 그녀는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했고, 난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 표정변화가 없는 그녀가 더 놀라웠다. 찬희 : 전 아빠랑 사이가 안 좋았거든요. 그런데 돌아가시고 나니깐 이제야 아빠와의 추억이 하나씩 떠오르는거에요. 내가 사랑받았구나...... 라고. 난 그녀의 말에 나도 추억될 추억같은게 있을까? 하며 예전일을 꺼내보려했다. 찬희 : 그런데 말이에요. 환자분... 저희 아빠랑 많이 닮았어요. 저 첨엔 환자분 보고 정말 많이 놀랐어요. 그래서... 이번엔 정말 그렇게 보내면 안된다고... 안된다고.... 하늘이 내게 기회를 주신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난 그녀를 멍하니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녀의 울먹거림이 창피한건지 말 중간중간 큰 숨을 넣어 말을 이어갔다. 난 그녀의 마음이 너무 애잔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지금까지 내뱉은 말을 후회하는 듯한 표정을 순간 보이더니... 고개를 들어 날 쳐다봤다. 찬희 : 고맙습니다. 환자분옆을 지켜주셔서... 저 어쩌면 제가 못한 일을 보호자님이 해주셔서 대리 만족하는것도 있었어요. 애써 농담으로 넘기려는 그녀의 말에 난 머쓱해져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또 병신같이 어깨를 들썩였다. 나 :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전 추억이 없어요. 좋았던 추억이... 전혀.... 내 고해성서같은 말에 그녀는 순간 움찔하는 표정을 보이며 이내 순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찬희 : 오래 아프셨다는 얘기 들었어요. 그만큼 오래 아프셨다면... 누굴 욕할 순 없죠. 난 더 이상 그녀의 좋은 기억에 먹칠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나의 이 히스테리도 그녀에겐 긴 병에 효자없다는 옛 속담의 한 구절처럼 이해하고 넘길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그대로 묻어두자라고 생각했다. 그녀와의 짧은 런치타임이 끝나고 그녀는 호출을 받고 반도 못 먹은 돈가스를 뒤로한채 올라가버렸고 난 남아있는 돈가스 잔해를 보며 의자 뒤로 몸을 묻었다. 난 또 있을 수 있는 그녀와의 런치타임을 기대하며 하루를 더 중환자실 앞에서 대기했고, 아버지의 호흡장애는 목에 낀 주먹만한 가래때문임을 알고 뽑아낸 후 아버지는 다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난 회사로 돌아갔고, 회사에서는 연락두절인 상태의 나를 징계할 줄 알았지만 특수한 상황임을 이해하고 이번만큼은 눈감아 주고 넘어가는걸로 처리되었다. 그동안 나 때문에 열배 백배는 힘들었을 동료들에게 일일이 찾아가 미안함을 전했고... 그들은 말없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쓴 미소를 지어보였다. 난 토, 일요일 아버지를 찾아 문병을 갔고, 중간 중간 그녀의 도움으로 평일 면회시간을 넘긴 시간에 면회를 하는걸 암묵적으로 승인받았다. 그녀는 아닐 수 있겠지만... 난 그게 그녀와의 데이트라고 생각했다. 그 어느때보다 난 행복했다. 그녀는 나에게 다정다감했고, 나를 보고 웃어주었으며 내게 장난도 걸어주었다. 이게 지금까지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일들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이런식으로 나에게 그녀와의 추억을 주는거라고...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눈빛에서 그녀도 내게 호감이 있음이 느껴졌다. 나같은 미천한 놈이 올라다 볼 수 없는 나무지만 그녀가 욕심났다. 하지만, 난 누구보다 날 잘 안다. 내 위치를... 이 세계를... 난 그녀를 내 밤의 세계에서 사랑하는걸로 만족해야한다. 꿈속에서 그녀는 말수는 없지만 항상 내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준다. 미술을 전공한 그녀는 작업실에서 몇일이고 나오지 않을때도 있지만 내가 작업실에 찾아갔을땐 항상 내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준다. 그거면 된다. 현실에선 갖을 수 없는 그녀의 따뜻한 미소.... 그 후로 또 한 달이 지났다. 아버지는 안정화를 찾았고, 병원에서는 요양기관으로 옮기길 눈치를 주는 시기가 됐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런 독촉이 없다. 둘중 하나겠지. 아버지의 상태가 안좋다는것과... 그녀의 입김이겠지... 그게 무엇이든 난 상관없다. 그녀를 계속 볼 수 있다면.... 다른날과는 다르게 전화벨이 비명을 지르듯 울린다. 어제와 똑같은 벨이지만... 웬지 이 전화가 의미하는 바를 통화하지 않아도 그 불길함은 느껴진다. 난 통화버튼을 누르며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안경철님 아드님 되시나요?” 전화기 너머로 급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 아버님이 위독하십니다. 빨리 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친지분들이 있으시면...” 나 : 없습니다. “빨리 오세요.” 난 힘없이 전화기 잡은 손을 떨구며 승환을 쳐다봤다. 승환도 무슨 내용인지 알겠다는 듯 나를 한번 쳐다보곤 팀장석을 쳐다봤다. 난 팀장에게 다가가 사정을 빠르게 설명하고 회사를 뛰어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그렇게 난 병원에 도착하고 아버지가 있던 자리로 코너를 돌자 아버지 자리는 급하게 커텐을 친건지 다 가려지지 않은 침대가 보였다. 그녀가 아버지 위에 타고 앉아 아버지의 가슴을 압박하고 있었다. 112
(루시드드림)-1
오늘도 난 꿈을 꾼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나만의 꿈을...
꿈속에서 난 촉망받는 대학 교수이며, 예쁘고 젊은 아내...
그리고 재력가인 아버지와 으리 으리한 대저택은 아니지만 소박하다고 할 수 도 없는 서울 근교의 전원주택에서 살고있다.
부족함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풍족한 삶.
어쩌면 꿈속에서 부족함을 찾는다는 것부터가 모순일지도...
그에 반해 나의 현실은...
우스개소리가 아닌 진심으로 시궁창이다.
초등학교때 아버지의 알콜중독과 폭력으로 이혼하신 부모님.
그리고 남겨진 아버지와 나.
알콜에 침식당한채 벌써 10년째 병상에 누워있는 짐짝 같은 아버지.
대학교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어 방항하던 나를 매질로 대하시던 아버지.
지긋지긋함에 군대로 도망치듯 숨어갔고, 제대하고 얼마 후 아버지는 그렇게 쓰러져버렸다.
난 그런 짐짝 같은 아버지의 보호자라는 명목으로 월급의 거의 전부를 병원비에 쏟아붓고있다.
빨리 죽어버려.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아버지가 없으면 나 혼자 남는다는 쓸데없는 감상에 젖어 그런것도 아버지라고 위안을 삼는 내꼴이 당해도 싸다라는 생각이든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은...
아버지로부터 망해왔고... 망해갈것이다.
내 엄마처럼...
몇 해 전...
고등학교 동창 경식이와 술자리에서 루시드드림이라는 기묘한 이야기를 접하게된다.
워낙 독특한 놈이기에 그 놈 말을 듣는둥 마는둥 하며 술을 입에 털어 넣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놈이 흥미로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경식 : 야 나도 첨엔 뭐 이런게 가능해? 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다들 너무 진지한거지.
그래서 뭐... 귀신을 부르겠다는것도 아니고...
솔직히 우리도 한번씩 꿈꾸면 꿈인지알면서도 꿈을 꾸는 경우 있잖아...
뭐 그런 논리랄까? 뭐 전혀 안되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이 들더라고...
나 : 그래서... 니가 인셉션이라도 찍었다는거야? 미친새끼
경식 : 크크크크크크 쉐캬~ 고작 꿈을 컨트롤 할 수 있는데 인셉션이 뭐냐.
꿈은 크게 갖으라고 안그러냐...
나 : 그럼 뭐 로또 번호라도 알려주디?
경식 : 헉.....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아.. 이새끼 이럴땐 머리가 잘 돌아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 그 자식의 손을 신경질 적으로 쳐내며 한마디 한다.
나 : 미친놈아 꿈을 컨트롤 한다며.., 웬 또 백투더퓨쳐야... 노선을 잘 잡아... 병신아.
경식 : 뭐... 그건 그렇고...
경식은 무슨 은밀한 얘기라도 하려는 듯 의자를 테이블로 바짝 당겨 앉으며 몸을 내 쪽으로 깊숙이 숙였다.
나 : 병신아.. 무슨 얘기할라고... 징그러...
경식 : 그래서... 내가 무슨 꿈을 어떻게 컨트롤 한지... 안 궁금한거냐?
나 : 너 이 쉐키... 뻔한거 아냐... 신애라도 불러내서 쪽쪽 빨았겠지.
경식 : 허....
경식은 테이블 뒤로 몸을 밀쳐내며 혀를 끌끌 찼다.
경식 : 고작! 내가!!! 선영이를?? 헐... 어따대고 아이유랑 신애 따위를 비교해... 신애는 아이유에 대면 쓰레기지...
나 : 뭐? 아이유...!!! 야... 이 병자새끼야. 너 이쉐키 변태냐..?. 그건 범죄야.
경식 : 아.. 이 고귀함을 코스프레하는 쉐키!!
미친쉐끼 넌 아이유 싫냐?
나 : 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 고등학생인 애를...
경식 :이 쉐키는 이렇게 판을 깨니깐 내가 졸라... 막 변태 같잖아. 하~ 이 개쉐키!!!
나 : ㅎㅎㅎㅎㅎㅎ 그래서 고작 너의 큰 꿈이 아이유냐?
경식 : 야... 나라를 구하는것보다 아이유가 먼저지... 새꺄 넌 아니야?
나 : ㅋㅋㅋㅋㅋ 뭐... 그럴....지....도??
난 입을 삐쭉 내밀며 고개를 위아래로 작게 흔들었다.
경식 : 그래서... 말이야.
경식은 또 말소리를 줄이며 고기 한 점을 집어 들고 젓가락을 내 쪽을 향해 흔들어댔다.
경식 : 이 루시드드림이라는거 정말 필요한건 너가 아닐까한다.
솔직히 너... 에효.... 그렇잖아.
나 : 내가 뭐...
난 경식이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술잔을 채웠다.
경식 : 너 행복하냐...?
난 어울리지 않게 무거운 주제를 꺼내는 경식의 말에 흠짓 당황했다.
한번도 이런식의 대화는 나눠본적이 없다.
나 : 행복이라는거 나 그런거 몰라. 그러는 넌 행복하냐?
경식 : 뭐... 나도.. 그렇긴 하지만...
불쌍한 30대 중반의 대화다.
우울하다.
씨팔...
그렇게 난 경식과 2차 3차까지 마치고 첫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술 기운이었는지 경식과 했던 대화는 싸그리 다 잃어버리고 주말을 맞이했다.
일요일은 일주일중 유일하게 아버지를 만나러가는 날이다.
난 미리 인터넷으로 주문해놓은 각 티슈와 패드 물티슈를 쇼핑백에 담아 병원으로 향했다.
불행중 다행은 아버지는 이 병원 저 병원을 돌고 돌며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는거다.
그래서 따로 간병인을 둘 필요는 없다는 것...
간호사 : 지난번에 가지고 오신 물티슈는 많이 남았어요.
다음번엔 패드만 좀 넉넉하게 가지고 오시면 될 것 같구요.
난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며 간호사가 말한 내용을 머릿속에 넣고 있다는 표현을 한다.
간호사 : 그리고, 아버님이 저혈압 때문에 약이 들어가고 있는데 그것땜에 오늘 주치의 선생님 만나보고 가시라고 하셨거든요.
한 20분쯤 후에 이 찬희 선생님 만나 뵙고 가시면 되세요.
아. 원무과도 들리시구요.
나 : 이 찬희 선생님이요?
선생님이 바뀌신건가요?
간호사 : 아뇨. 담당선생님만요.
나 : 네... 그럼 면회 끝나고 패드만 더 사오면 시간이 딱 맞겠네요.
간호사 : 네... 원무과도요.
원무과에선 나 같은 사람은 위험하다 생각한건지 툭하면 오라가라하며 중간 정산을 요구했다.
원래 절차가 그런것이라곤 하나... 기분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는것 같다.
이게 없는 자의 자격지심 같은 건가?
난 손목의 시계를 들여다보고 5분 정도 남은 면회시간을 서둘러 마친 후 간호사에게 짧게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약국에서 패드를 산 후 바로 원무과로 가 중간 정산을 하고 다시 2층 중환자실로 돌아왔다.
아까 그 간호사가 방긋 웃으며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제스춰를 보냈다.
난 보호자들이 모두 떠난 중환자실에 앉을 곳도 없이 간호사 데스크 앞에서 멀뚱 멀뚱 서있었다.
보호자들이 있을때와는 다르게 간호사들도 한층 여유가 있는 모습들이다.
난 그녀들의 모습을 무의미하게 쳐다보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슬슬 짜증이 났다.
간호사 : 어.. 오셨어요?
간호사는 내 뒤에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곤 나를 보며 "오셨어요." 라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그리곤 의사 선생님 방향으로 손바닥을 올려 가르켰다.
난 뒤를 돌아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찬희 : 아.. 안녕하세요.
난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했던 그에게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찬희 : 다름이 아니고... 아버지가 저혈압이 있으셨다는건 아셨죠?
나 : ................네...
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살피고 또 살폈다.
이럴수가... 이럴수가...
그녀는 내 눈빛에 당황해하며 고개를 살짝 틀어 입꼬리를 올렸다.
난 그녀의 표정에 순간 정신이 돌아온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찬희 : 아버지의 혈압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서 약을 투여하는데...
이 약이 일정수치이상이 되면 아무 의미가 없어져요.
지금으로썬 혈압이 더 떨어지지 않게 해야하겠지만 아버지 상태도 위중하시기도 하고...
어느 순간 내 눈은 또 그녀를 향해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찬희 : 저기요... 보호자님. 보호자님...
찬희는 이 이상한 남자가 왜 이런지... 두려움에 가득한 눈으로 간호사를 돌아봤다.
간호사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응시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참다 못한 그녀는 내 가슴팍을 손가락 두 개로 툭툭 치며 보호자님... 보호자님을 불렀고..
난 그녀의 손길에 그제서야 다시 정신을 차리고 눈을 아래로 내렸다.
뒤에서 간호사들이 킥킥거리는 웃음 소리가 들렸고, 그녀도 어이 없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띄며 다시 차근 차근 설명해 나갔다.
그렇게 난 그녀에게 아버지의 위중함을 설명받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녀였다.
그녀... 꿈속의 나의 아름다운 그녀.
난 버스를 타고 가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한채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내가 그녀를 봤었던가?‘
아마 그럴 것이다.
난 그녀를 병원 어디에선가 스쳐 지나가듯 봤을것이고...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을테니 내가 나도 모르게 그녀를 내 꿈속의 아내로 만들어 냈었을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난 묘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이런게 운명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현실세계에서 찌질한 직장인과 예쁜 여의사가 이뤄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이젠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 즐거워질 것 같은 기분이다.
그 날 이후...
난 전에 없이 행복이라는걸 느꼈다.
행복이라는게 이런건가?
아버지를 보러가면 이제 그녀를 볼 수 있는건가?
그렇게 1달이란 시간이 지났고,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녀와의 대화는 어려웠다.
아버지보다 그녀쪽에 더 눈길을 보내고 있었기에 그녀의 짧은 목례를 받기 했지만 그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그러다 한 달이 지난 시점 병원에서 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연락을해왔다.
점심시간 때 쯤 다급하게 걸려온 전화에 난 침착하게 겉옷을 입고 동료인 승환에게 사정을 설명한 후 택시를 잡아 탔다.
‘안돼~ 이대로 보낼 수 없어...’라는 생각과...
‘난 그동안 최선을 다했어... 쉬고싶어...’ 라는 생각...
그리고, 그녀를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지금 가장 아쉬운건 무엇일까?
난 빨갛게 충혈된 눈을 하고 택시 뒷자리에 깊숙이 누웠다.
운전기사가 도착했다는 소리에 난 눈을 뜨고 메타기를 확인한 후 돈을 지불하고 서두르는 걸음으로 중환자실로 빠르게 올라갔다.
그녀가 아버지 옆에서 아버지를 휘감고 있는 가늘고 굵은 호스들을 체크하며 걱정스런 얼굴로 아버지옆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의 하얀색 가운이 김치국물과 볼펜잉크로 지저분하게 번져있었고...
그녀의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난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그녀를 쳐다봤다.
찬희 : 환자분 기계호흡장치를 달아야할 것 같습니다.
자발호흡이 어려우세요.
나 : 기계호흡이요? 그게....
찬희 : 본인 스스로 호흡을 못하니 기계로 호흡을 시켜드리는겁니다.
기계 호흡을 하게 되면 환자분은 많은 고통을 느끼실꺼고 저희는 그 고통을 줄여드리고자 잠을 재워드릴꺼에요.
나 : 그럼... 계속 주무신다는거에요?
앞으론 눈깜박임도 하지 못한채요?
찬희 : 잠깐씩 보호자님이 오시면 깨워드리긴 할 껍니다.
나 : 고통스럽다면서요...
찬희 : 보호자님이 원하시면요...
나 : 그러다... 기계호흡장치를 끼고 평생 돌아가시지 않으시면요!!!
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놀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당신 아버지잖아... 당신 아버지... 라며 날 책망하는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평정심을 찾곤...
내게 이렇게 말했다.
찬희 : 간혹 기계호흡 장치에 의지해 십수년이 넘게 사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녀의 표정은 고요했지만 모든 걸 말하는듯 했다.
당신의 고통을 이해하겠어요.
당신의 마음도 이해해요.
다들 그러니깐... 그게 인간이니깐.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입밖으로 그런 무서운 말을 내 뱉진 않아요.
라고 말하는 듯 하다.
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곤 숨죽여 울었다.
내 어깨는 마치 율동이라도 하듯이 위 아래로 요동쳤고, 그녀는 약간의 텀을 주고는 바로 질문을 했다.
찬희 : 보호자님. 또 그런 상황이 오면 기계 삽관을 하실건지... 거부하실건지...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
찬희 : 동의하시면 간호사가 주시는 서류에 사인을 하고 가시면 됩니다.
그녀는 마냥 나를 기다려 줄 수 없다는 듯이 차갑게 뒤돌아섰다.
그녀는 나를 떠났고, 내 옆에선 이런 상황은 항상 어려워~ 라는 표정의 간호사만 내 옆을 지켰다.
난 간호사에게 잠깐만 시간을 달라고 말한 듯 중환자실을 나왔다.
난 그렇게 중환자실 앞 대기 의자에서 반나절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앉아있었다.
회사에선 끊임없이 전화가 오고... 난 그 어떤 연락도 받지 않은채 천장을 바라보다 의자에 누웠다 일어났다... 눈을 감았다... 잠들었다를 반복하며 넋빠지 눈으로 앉아있었다.
중간 중간 곡을 하는 보호자들 사이에서 내 마음을 더 피폐해졌다.
오늘도... 두명이나 죽어나갔다.
옆에 있는것 만으로도 그들이 어떤 관계였는지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난 메마른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쳤다.
난 고개를 들어 그 대상을 쳐다봤다.
그녀다
찬희 : 여기 계속 이러고 계셨어요?
난 그녀의 질문에 대답도 하지 못한채 그냥 바닥으로 눈동자를 움직였다.
찬희 : 아직 결정 못하신건가요?
아버지가 많이 위독하세요. 지금 돌아가신다고 해도 이상할게 없는 상태입니다.
최대한 빨리 결정을 내려주셔야 아버지 상태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을 수 있어요.
수시로 호흡곤란 증세가 오는데 저러다 산소가 뇌에 전달이 안되거나 하면,,,,
내가 결정을 내리다고 해도... 아버지의 상태가 좋아질 순 없는 모양이다.
말끝을 흐리던 그녀는 내가 대답이 없자 포기한채 다시 가던길을 갔다.
난 그렇게... 중환자실 의자에서 만 하루를 더 보냈다.
중간 중간 면회가 허용될때와 생리현상때가 아니면...
그녀는 이제 습관적으로 내게 다가와 말을 건다.
혐오스럽게 날 쳐다보던 그녀의 눈빛이 이제 연민까지 느껴진다.
찬희 : 점심 드셨어요?
나 : 아... 아직요...
어느정도 정신을 차린 나는 자리에서 몸을 가다듬고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찬희 : 그래도 아버지가 잘 기다려주고 계시네요...............
난 그녀의 말에 또 눈이 충혈되어 가고 있었다.
그녀는 헛기침을 두어번 하더니...
찬희 : 구내식당 밥 말고... 다른걸 좀 먹어볼까 하는데... 보호자님 괜찮으시면 같이 점심하실래요?
난 그 와중에... 어찌된 인간인지...
이렇게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 해도 되는건지... 정말 이 상황이 웃음 밖에 안나오지만...
................기뻤다.
난 그녀를 말없이 올려다봤고, 그녀는 살짝 웃음을 지으며 맛있는걸로 사주세요~ 라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끼니도 거른채 앉아있는게 마음에 걸렸던걸까?
산 송장 하나 치우기전에 적선이라도 할 셈인가?
그녀의 말때문인지 허기가 갑자기 밀려왔다.
난 옆에 구겨져있던 정장 마이를 집어들고 일어났다.
그녀는 생긋 웃으며 가운주머니에 깊게 손을 찔러넣었다.
나와 그녀와 병원을 벗어나지 못한채 지하 푸드코너에 앉아 7,000원짜리 돈가스를 사와 마주앉아있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내 꿈속에서처럼 그녀를 리드할 수 있었을텐데...
목구멍으로 음식물이 갑자기 들어가자 기침이 났다.
그녀는 자신의 물을 권하며 걱정스런 눈빛을 보냈다.
난 한손을 크게 올려 괜찮다는 표현을 보냈다.
그녀도 금새 괜찮은 내 표정을 보고 칼질을 시작했다.
찬희 : 회사는 안나가보셔도 되요?
나 : 네... 휴가 냈어요.
거짓말이다. 회사에서는 끊임없이 연락이 오고있고 난 아마도 이번일로 내 자리를 보장 할 수 없을 것이다.
찬희 : 다행이네요. 흠...
그녀는 할말이 끊긴 채 민망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찬희 : 저 첨이에요.
나 : 네?
찬희 : 보호자님과 이렇게 밥먹는거요.
상상할 수도 없는일인데... 제가 이러고 있네요.
나는 그녀의 말에 순간 어질함까지 느꼈다.
난 신음소리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아... 그렇군요. 라는 뜻을 보였다.
그녀는 내 반응이 맘에 들지 않았었는지 그 작은 입으로 또 조잘조잘 거렸다.
찬희 : 저희 아버지도... 보호자님 아버지와 같은 병으로 돌아가셨어요.
요번년에요.
그런데 공부한답시고... 시간이 없다고... 잘 찾아뵙지도 못하고... 그렇게 보냈어요.
딸이 꼴에 의산데... 뭐... 아직 정식 의사라고 하긴 뭐하지만요.
그녀는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했고, 난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 표정변화가 없는 그녀가 더 놀라웠다.
찬희 : 전 아빠랑 사이가 안 좋았거든요.
그런데 돌아가시고 나니깐 이제야 아빠와의 추억이 하나씩 떠오르는거에요.
내가 사랑받았구나...... 라고.
난 그녀의 말에 나도 추억될 추억같은게 있을까? 하며 예전일을 꺼내보려했다.
찬희 : 그런데 말이에요.
환자분... 저희 아빠랑 많이 닮았어요.
저 첨엔 환자분 보고 정말 많이 놀랐어요.
그래서... 이번엔 정말 그렇게 보내면 안된다고... 안된다고....
하늘이 내게 기회를 주신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난 그녀를 멍하니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녀의 울먹거림이 창피한건지 말 중간중간 큰 숨을 넣어 말을 이어갔다.
난 그녀의 마음이 너무 애잔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지금까지 내뱉은 말을 후회하는 듯한 표정을 순간 보이더니...
고개를 들어 날 쳐다봤다.
찬희 : 고맙습니다.
환자분옆을 지켜주셔서...
저 어쩌면 제가 못한 일을 보호자님이 해주셔서 대리 만족하는것도 있었어요.
애써 농담으로 넘기려는 그녀의 말에 난 머쓱해져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또 병신같이 어깨를 들썩였다.
나 :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전 추억이 없어요. 좋았던 추억이... 전혀....
내 고해성서같은 말에 그녀는 순간 움찔하는 표정을 보이며 이내 순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찬희 : 오래 아프셨다는 얘기 들었어요.
그만큼 오래 아프셨다면... 누굴 욕할 순 없죠.
난 더 이상 그녀의 좋은 기억에 먹칠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나의 이 히스테리도 그녀에겐 긴 병에 효자없다는 옛 속담의 한 구절처럼 이해하고 넘길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그대로 묻어두자라고 생각했다.
그녀와의 짧은 런치타임이 끝나고 그녀는 호출을 받고 반도 못 먹은 돈가스를 뒤로한채 올라가버렸고 난 남아있는 돈가스 잔해를 보며 의자 뒤로 몸을 묻었다.
난 또 있을 수 있는 그녀와의 런치타임을 기대하며 하루를 더 중환자실 앞에서 대기했고, 아버지의 호흡장애는 목에 낀 주먹만한 가래때문임을 알고 뽑아낸 후 아버지는 다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난 회사로 돌아갔고, 회사에서는 연락두절인 상태의 나를 징계할 줄 알았지만 특수한 상황임을 이해하고 이번만큼은 눈감아 주고 넘어가는걸로 처리되었다.
그동안 나 때문에 열배 백배는 힘들었을 동료들에게 일일이 찾아가 미안함을 전했고...
그들은 말없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쓴 미소를 지어보였다.
난 토, 일요일 아버지를 찾아 문병을 갔고, 중간 중간 그녀의 도움으로 평일 면회시간을 넘긴 시간에 면회를 하는걸 암묵적으로 승인받았다.
그녀는 아닐 수 있겠지만...
난 그게 그녀와의 데이트라고 생각했다.
그 어느때보다 난 행복했다.
그녀는 나에게 다정다감했고, 나를 보고 웃어주었으며 내게 장난도 걸어주었다.
이게 지금까지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일들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이런식으로 나에게 그녀와의 추억을 주는거라고...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눈빛에서 그녀도 내게 호감이 있음이 느껴졌다.
나같은 미천한 놈이 올라다 볼 수 없는 나무지만 그녀가 욕심났다.
하지만, 난 누구보다 날 잘 안다.
내 위치를... 이 세계를...
난 그녀를 내 밤의 세계에서 사랑하는걸로 만족해야한다.
꿈속에서 그녀는 말수는 없지만 항상 내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준다.
미술을 전공한 그녀는 작업실에서 몇일이고 나오지 않을때도 있지만 내가 작업실에 찾아갔을땐 항상 내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준다.
그거면 된다. 현실에선 갖을 수 없는 그녀의 따뜻한 미소....
그 후로 또 한 달이 지났다.
아버지는 안정화를 찾았고, 병원에서는 요양기관으로 옮기길 눈치를 주는 시기가 됐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런 독촉이 없다.
둘중 하나겠지.
아버지의 상태가 안좋다는것과... 그녀의 입김이겠지...
그게 무엇이든 난 상관없다.
그녀를 계속 볼 수 있다면....
다른날과는 다르게 전화벨이 비명을 지르듯 울린다.
어제와 똑같은 벨이지만... 웬지 이 전화가 의미하는 바를 통화하지 않아도 그 불길함은 느껴진다.
난 통화버튼을 누르며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안경철님 아드님 되시나요?”
전화기 너머로 급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 아버님이 위독하십니다. 빨리 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친지분들이 있으시면...”
나 : 없습니다.
“빨리 오세요.”
난 힘없이 전화기 잡은 손을 떨구며 승환을 쳐다봤다.
승환도 무슨 내용인지 알겠다는 듯 나를 한번 쳐다보곤 팀장석을 쳐다봤다.
난 팀장에게 다가가 사정을 빠르게 설명하고 회사를 뛰어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그렇게 난 병원에 도착하고 아버지가 있던 자리로 코너를 돌자 아버지 자리는 급하게 커텐을 친건지 다 가려지지 않은 침대가 보였다.
그녀가 아버지 위에 타고 앉아 아버지의 가슴을 압박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