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을 바로 알자-영화 26년은 거짓말

쨔샤^ ^*2012.12.14
조회855

당시 시대를 조망해 보자
박통령 저격후 그야말로 국정은 어수선햇다
그기다 연일 일어나는 데모
역시 대한민국 냄비근성은 어쩔수 없었다
대학교 대부분은 아예 수업을 하지 않았다
저마다...
한목소리씩 내어 한 밑천 잡아볼려는 그야말로 빌어먹을 종~놈의 근성

그런데 당시 양 김은 어떠했는가
이제는 마치 제 세상이 온 마냥...
어떻게든 대통령을 해 먹을려고 불법 폭력등을 서슴치 않았다
서로 창당 대회때 깡패를 동원했다
상대를 막으면 유일무일한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줄 알았던 모양
권력에 눈이 멀어 그렇게 하면 또 다시 쿠테타가 일어날거란 예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최규하는 그야말로 대통령의 자리에 맘껏 흡족해 있었다
능력도 안 되면서 그 넘의 해외순방이란...
 
전승하 육참은 육참대로 정치권에 빌어붙을 생각에 가득했다
자기도 이번에 얼굴을 내밀어 국방부 장관 한자리라도 얻을 속셈
"양 김중 어느쪽을 고르나.."하고 구상중이었다
그 음흉한 속셈은 바로 행동으로 나타난다
김재규를 범인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딴 속셈은 김을 단죄하면 자기도 엮일수도 있다는 계산도 있었다
그는 김을 미국으로 보내려했다

(당시를 아버지께 물어보라~ 김재규 미국 망명설이 파다했다)
 
일이 이 지경이니 박통령에게 충성하던 하나회가 결코 가만히 있을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쿠테타를 일으킨것도 아니고 단순 대통령을 저격했는데 스믈 스믈 단죄를 미루고 있으니 이게 말이 될 뻠한 소린가?

그리고 분명 양 김의 입김 또한 들어갔을 것이다

박정희를 완벽하게 독재자로 몰고 김재규를 슬며시 독재자 처단 애국자로 갖다 붙여야지 자신들이 정권을 잡는데 획을 그을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시엔 박정희 애도 세력이 너무 컸기에 대선을 치루면 어쩌면 권력이 후계자인 김종필에게 돌아갈수 있다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김종필 또한 당시엔 박정희와 정권 이양 문제로 변복하여 상당 지위가 밀려나 있던 모습이었기에 남다른 속셈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수사 책임자였던 전두환이 이 일을 바로 잡으려하자 곧바로 전승하 눈밖에 나고 말앗던 것이다
육참은 전을 경질시켜 버리려했고 이를 눈치챈 하나회는 드디어 행동 개시에 들어간다

 

당시 김재규 단죄만 옳게 되었더라면 군사 쿠테타는 없었을련지도 모른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지금도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김의 단죄가 이뤄지지 않으면 박정희와 아직도 권력을 쥐고 있는 그의 사람들, 그리고 군의 일부인 하나회가 정통성을 잃게 되고 바로 역적의 잔재로 몰려 이 사회에서 퇴출되는 위기 상황이었다

 

그리고 국민들은 무엇보다 김재규의 단죄를 원했다

하지만 당시 조금이나마 대통령직을 유지하고픈 최규하나 상황을 읽지 못하고 자신에게 실 권력이 있는 모양 행동했던 정승하 육참의 오판으로 전두환을 만들어 낸 것이다

 

전이 권력을 잡고 바로 실행한것이 바로 김재규의 처형이었다

바로 전통성을 세워 버린 것이다

미국이 김재규 망명을 허락 안 했을수도 있다

적어도 내가 미국이라면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미국으로 가 버렸으면 어쩌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것이 되어 버렸을텐데...


위 글은 당시 파다한 소문들이었다
결코 나 자신의 생각만은 아니다
 
당시 지역감정이 극히 안 좋았다
김대중이 정권을 잡으면 경상도민은 모두 종으로 부릴것이란 소문이엇고 잔라도 역시 그러했다
무엇때문인가?
바로 대중이와 영삼이가 잇었고 그 소문의 근원지가 아니던가
 
이때부터 지역 감정은 극에 달한다
물론 그 이전에는 전라도가 죽어 지낸것은 잇어도 지역감정이란 용어조차 없었다
 
쿠테타가 일어났을때 이를 바로 감지한 이는 김대중이다
그는 앞으로 닥쳐올 일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많이 당해본 경험이 그러했다
 
쿠테타후 전국적으로 전두환 물러가라는 데모가 다시 시작되었고
하지만 전라도는 그 특성이 사뭇 달랐다
 
특히 광주민들에겐 아주 특이한 소문이 떠 돌기 시작한다
경상도가 다시 정권을 잡아 군대를 동원하여 전라도민들 다 죽이러 온다는 것이다
당시엔 그러한 소문이 계속 번지고 있엇고 이에 분개한 전라도민들의 분도도 극에 달했다
특히 데모의 양상은 사로 잡아서 초~죽임을 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누가 먼저 사람을 그렇게 때렸는지는 알수없다
하지만 그것은 곧 보복성으로 이어졌다
광주가 제일먼저 시작한 것은 관공서, 방송국 점령이었다
즉 행정과 언론을 아예 마미시켜 무정부 상태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것은...
6.25전 빨갱이 수법이다
무정부 상태...
또한 이것은 분명 계획적이었다
비밀리에 전두지휘하는 이가 없었다면 이렇듯 조직적으로 전개될 순 없다
 
광주만 그러했다
다른 지역은 관공서나 언론사가 점령당한곳은 없다

 

당시 광주가 했어야 한 일은 간디처럼 무폭력 무 저항주의가 맞다

무수한 사람들이 잡혀가더라도 그러한 운동을 전개했어야 했다

 

만일 그렇게 했더라면 그야말로 온 나라의 도화선이 되엇을지도 모르고 전두환은 정말 물러갓을지도 모른다

당시엔 세계가 지켜보고 있었다

가장 따분하고 지루한 세계정세에서 당시 한국의 쿠테타는 가장 큰 이슈거리엿으니깐...

 

하지만 광주는 그러지 않았다

오로리 선동으로만 시민들이 일어났다

정작...

무저항으로 맞서기엔 응집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드뎌 광주에 군이 투입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
경상도 군인들이 진짜로 광주민들 다 죽이러 왔다는 것
 
그러자 여기저기서 우리도 무장을 하자는 얘기가 쏟아졌고 그들은 무수한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경찰서와 예비군 훈련장을 습격한다
 
물론 이를 지휘하던 숨은 세력도 여기까지는 바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은 걷잡을수없이 커진다
 
이제 군과 시민군이 진짜 총기를 가지고 대치하는 상황이었다
 
전두환은 절대 사태가 심각해지는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는 무혈 쿠테타를 세계 각국에 주장하였고 특히 시선이 곱지않은 미국에 이를 역역히 설명했다
 
그는 절대 광주에서 사고가 발생하기를 원치 않았다
광주에 군을 투입하기전 아마도 미국의 사전 승인을 받은걸로 안다

군 통수권은 미국에게 있었기에...
이미 쿠테타로 불법으로 군을 동원한 두환이가 광주마저 단독으로 군을 투입하진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광주민의 경찰서등 습격위헙이 가장 좋은 이슈였을것이다
 
두환은 정말 바라지 않았지만 이미 총을 든 시민들이 -리비아처럼- 내전으로 번질 위협이 있었기에 어쩔수없이 작전을 하달한다
하지만 최대한 충돌은 피하라는 지시...
 
그렇다면 분명 총을 먼저 쏜 이는 분명 시민군 쪽일 것이다
당신도 군을 가 봐서 알겠지만 군에서 그 발포가 과연 우발적으로 일어날수 있는 일인가!
앞서 살펴본바와 같이 총을 쏘기 시작하면 걷잡을수 없을텐데 작전권을 부여받은 지휘관이라도 쉽게 발포명령을 내릴수 있었겠는가
무엇보다 시민들에게 총을 쏜다는것이 어떤것인지 너무 잘알고 있을텐데..

과연 당신이 지휘관이라면 쉽게 발포 명령을 내릴수 있었겠는가?
세계가 지켜보고 무엇보다 미국의 승인을 얻어 군을 출동한 상황에서 먼저 발포란 있을수 없다

아마도 광주 투입군 속엔 미국 감시단도 있었을 것이다
 
내 생각엔 시민군이 발포하고 그것을 보고하고... 군이 발포하기전 무엇보다 미국의 승인을 얻엇을 것이다
 
당시 북이 움직였고 미국은 이를 좌시할수 없었을 상황이었을 것이다
 
일단 피를 보면 사람은 달라진다
자기 동료가 아니더라도 상대가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것을 보면 미묘한 감정이 흐른다는 것이다

사람은 원래 사악하다
그떄부턴 제 정신이 아닌 것이다
처음 죽일때가 쉽지 그 다음은 더 쉽고 또 그다음은..
그가 이성을 차릴떄까지 허가된 살상은 계속될 것이고
동료가 죽어가면서 분도와 복수심이 극에 달한다
그러니 서로 죽였던 상황에서 어떻게 죽였니..하는 논쟁은 아무런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마 이때부터 사태를 깨달은 선동세력들은 급속히 잠수를 타기 시작한다
아니 그들이 빠지기 시작한것은 아마도 총을 드는것을 극히 반대한 세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또한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믿어 의심치 않는것은 아마도 김대중의 배후세력이 아닌가 한다
 
80년대
대학 운동권에서도 누가 먼저 발포하였나...하는 문제는 크다란 이슈였다
그들도 그들 스스로 죄를 알기에 그렇게 스스로 자문했던 것이다
그들은 누구였던가
당시엔 포토샵이 없었으므로 미대생들의 그림으로 일부 그려진 조잡한 조작된 사진

즉 여인의 젓가슴이 짤려진 사진등을 비밀리에 배포되고 일반 대학생들에게 보게 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없었다
그러나 굳이 임산부 배가 갈린 사진이나 특히 여인의 젓가슴이 도려진 사진을 조작하면서까지 보여주는 이유는 그것이 주는 충격적 효과이다
즉 남성들의 오묘한 변태심리를 자극하여 이성을 마미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들에게도 볼것을 극히 권유했는데 여성 또한 그러한 심리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옛날 미국의 연쇄살인이 일어나는 공원에 여성들이 때 기지로 몰리는 심리랄까?
여성은 무의식속에 구속의 본능이 있고 그것을 자극할려는 의도도 맞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불안해하는 여성과 그러한 사진을 보고 더욱 자극을 받는 남성을 만들려는 의도
 
암튼 광주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총을 든 시민군
파다한 소문
정치적 음모
멋 모르고 나서길 좋아하는 한국의 냄비근성
 
똑 같은 상황이 신라말에도 전개되었다
바로 청해진의 장보고의 죽음이었다
당시 전라도민들의 우상이었던 장보고가 암살당하자 분개한 병졸들과 주민들이 대거 일어났다
하지만 그들은 토벌되었고 염장은 청해의 주민들을 모두 끌어내 이주시켜 버렸고 청해를 폐허로 만들어 버렀다
 
당시 조정에서 보면 장보고는 왕권에 도전하는 역적이었다
장보고 사후, 만일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청해는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것이 더 역사적인 손실인가?
 
하지만 김대중은 장보고처럼 해상 무역을 개척한 일도 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