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에 용기내어 글을 적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저 또한 가슴을 두근거리며 글을 적습니다.
그리고 결코 가볍지 않을 이 글은 '5.18'에 관한 내용입니다.
대선을 앞 둔 지금, 서로의 다른 가치관과 이념으로 우리는 갈등하고 있고, 그를 넘어 비방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이념차이 갈등은 피할 수 없단 것을 알고 있고,
또 그러한 갈등이 있어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효율적인 방안이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오해한 것으로 갈등해서는 안됩니다.
경영학을 전공하는 저는 경제, 기업 문제에 주목하여 왔지만, 앞 둔 대통령 선거를 위해 신중한 판단을
하고자 최근 정치에 관한 여론에 귀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과거의 사건의 전말을 잘못 알고
계시는 분들이 소수가 아닌 듯 했고, 이것이 개발도상국을 벗어나고 있는 한국의 국민 의식이라는 것은
충격적이고 부끄러워해야할 문제입니다.
"5.18 사태는 북한의 지시를 받은 폭동이었다.
따라서 전라도 광주사람들은 폭도들이자, 간첩이자, 빨갱이다."
다른 이념문제, 후보공약 문제, 가치관, 현실 갈등 등에 관한 문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단지 '5.18'에 대해서만 말하고자 합니다. 단지, 이 시대의 젊은 세대인 우리가 정치세력의 영향을
벗어나 과거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길 바랄 뿐입니다.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이 무엇이며,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세대 누군가의 역사관이 비록 잘못 됐을지라도, 이는 우리에게 그러한 영향을 준 윗세대의 산물일 것이며, 이는 우리 자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명백히 우리에게 이러한 갈등을 대물림한 선배세대가 반성해야 할 문제이고, 우리는 옳지 않은 말을 들어도 구별할 능력을 길려야 합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셨습니다. 그 후 전두환 전 대통령 휘하의 신군부가, 당시 임시적이지만, 정식절차로 승계된 최규하 과도 정부를 유명무실하게 하고 군부의 권력을 장악한 12·12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1980년 5월 15일
전두환 전 대통령과 신군부 세력이 군사독재를 연장하려하자, 학생을 중심으로한 수만명의 시민들은 1980년 5월 15일 서울역에서 계엄 철폐 등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해산하게 됩니다.
여기서 전두환 대통령의 계엄령이란
" 비상시 국가 안녕과 공공질서 유지하기 위해
헌법 일부의 효력을 일시 중지하고 군사권을 발동하여
치안을 유지할 수 있는 국가긴급권의 하나로 대통령(최고 통치권자)의 고유 권한입니다. "
간단하게 대통령의 권한으로 군대를 이용 및 동원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서울역에서 시위는 이러한 계엄령을 철폐할 것을 주장한 것이었습니다.
1980년 5월 17일
시위는 해산 하였지만 , 전두환 대통령의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을
오히려 전국적으로 확대한다는 발표를 하고
학생 지도자들에 대한 체포, 휴교령 등의 민주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갔습니다.
따라서 민주적 세력 가능성이 있는 전국의 학교는 휴교령이 내려지고 군대의 통치가 본격화 됩니다.
1980년 5월 18일
전남대생 200여명은 휴교령이 내려진 학교에 들어가려 하였으나
계엄군은 이를 저지하였습니다. 이에 계엄군과 학생들은 대립하게 되고 갈등은 심화됐습니다.
투석전에서 부상당한 학생들을 보고 합세한 시민들과 시위를 벌였으나
계엄군의 폭력 진압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광주민중항쟁이 시작되었다.
1980년 5월 19일
5월 19일 시위대가 5,000여명으로 불어나자 계엄군은 장갑차를 앞세우고 착검한 총으로 시위대를 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도로는 군인이 봉쇄하였고 가택 수사 등을 하며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했습니다.
1980년 5월 20일
5월 20일 20만명의 군대에 쫓기는 시민들이 시청으로 모여 광주시청을 장악하여 맞섰고, 시청에서 계엄군과 시민은 대립하였습니다. 계엄군은 모든 시외 전화를 두절하여 광주를 고립시켰고,
밤 11시경 계엄군은 시민에게 발포 하였습니다.
<사살된 학생들>
1980년 5월 21일
5월 21일 계엄군의 발포로 수십여명이 사망하였으며, 이에 아들, 딸, 형제를 잃은 시민들은 스스로를 시민군이라 칭하며, 경찰서나 계엄군으로부터 탈취한 소총으로 무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80년 5월 22일
5월 22일 시민들은 계엄군을 몰아내고 도청을 차지하고 '5.18사태 수습 대책 위원회'를 결성하였습니다.
사태 수습에 들어갔으나, 계엄군의 협상 거부로 협상이 결렬되었습니다.
< 광주 도청광장 집결 >
1980년 5월 27일
5월 27일 계엄군의 총공세로 많은 희생자를 낸 광주 민주화 운동은 막을 내렸습니다.
민주화 운동은
일제치하와 6.25전쟁을 겪으며 고통속에서 일구어낸 한국이란 나라가
한 집단이 무력으로 통치권을 갖고,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이 땅과 이땅의 역사는 어느 누구 하나의 것이 아니라
모두가 신음하며 피흘리고 지켜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정의로움은 광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북한의 세력이 선동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 스스로의 이상과 정의,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나오는
부정한 세력에 대항하는 항쟁이었습니다.
광주 또한, 간첩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다시는 이땅을 피와 더러움으로 물들이지 않기 위해,
부정한 권력에 항쟁한 것입니다.
광주의 그들도, 북한이 보낸 폭도들이 아닌, 태극기를 들고,
대한민국을 위해 정의를 외치던
대한민국 국민이었습니다.
이 글을 쓴 것은 여당과 야당, 어느쪽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의 발전을 위해 여당 정책에 필요한 부분도 있다고 보고, 야당 정책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야당 정책에 대한 북한 협상 정책을 비판받는 것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빨갱이당, 친북당"이라고 하는 것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5.18 민주항쟁을 북한간첩이 시킨 빨갱이들의 폭동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 바로잡아야할 문제라고 생각 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부끄럽지 않는 세대가 되기 위해 잘못된 역사관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5.18 민주항쟁은 북한간첩의 선동이라는 부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24살, 여러분과 같은 대한민국 청년이자 국민입니다.
이 곳에 용기내어 글을 적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저 또한 가슴을 두근거리며 글을 적습니다.
그리고 결코 가볍지 않을 이 글은 '5.18'에 관한 내용입니다.
대선을 앞 둔 지금, 서로의 다른 가치관과 이념으로 우리는 갈등하고 있고, 그를 넘어 비방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이념차이 갈등은 피할 수 없단 것을 알고 있고,
또 그러한 갈등이 있어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효율적인 방안이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오해한 것으로 갈등해서는 안됩니다.
경영학을 전공하는 저는 경제, 기업 문제에 주목하여 왔지만, 앞 둔 대통령 선거를 위해 신중한 판단을
하고자 최근 정치에 관한 여론에 귀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과거의 사건의 전말을 잘못 알고
계시는 분들이 소수가 아닌 듯 했고, 이것이 개발도상국을 벗어나고 있는 한국의 국민 의식이라는 것은
충격적이고 부끄러워해야할 문제입니다.
"5.18 사태는 북한의 지시를 받은 폭동이었다.
따라서 전라도 광주사람들은 폭도들이자, 간첩이자, 빨갱이다."
다른 이념문제, 후보공약 문제, 가치관, 현실 갈등 등에 관한 문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단지 '5.18'에 대해서만 말하고자 합니다. 단지, 이 시대의 젊은 세대인 우리가 정치세력의 영향을
벗어나 과거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길 바랄 뿐입니다.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이 무엇이며,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세대 누군가의 역사관이 비록 잘못 됐을지라도, 이는 우리에게 그러한 영향을 준 윗세대의 산물일 것이며, 이는 우리 자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명백히 우리에게 이러한 갈등을 대물림한 선배세대가 반성해야 할 문제이고, 우리는 옳지 않은 말을 들어도 구별할 능력을 길려야 합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셨습니다. 그 후 전두환 전 대통령 휘하의 신군부가, 당시 임시적이지만, 정식절차로 승계된 최규하 과도 정부를 유명무실하게 하고 군부의 권력을 장악한 12·12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1980년 5월 15일
전두환 전 대통령과 신군부 세력이 군사독재를 연장하려하자, 학생을 중심으로한 수만명의 시민들은 1980년 5월 15일 서울역에서 계엄 철폐 등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해산하게 됩니다.
여기서 전두환 대통령의 계엄령이란
" 비상시 국가 안녕과 공공질서 유지하기 위해
헌법 일부의 효력을 일시 중지하고 군사권을 발동하여
치안을 유지할 수 있는 국가긴급권의 하나로 대통령(최고 통치권자)의 고유 권한입니다. "
간단하게 대통령의 권한으로 군대를 이용 및 동원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서울역에서 시위는 이러한 계엄령을 철폐할 것을 주장한 것이었습니다.
1980년 5월 17일
시위는 해산 하였지만 , 전두환 대통령의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을
오히려 전국적으로 확대한다는 발표를 하고
학생 지도자들에 대한 체포, 휴교령 등의 민주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갔습니다.
따라서 민주적 세력 가능성이 있는 전국의 학교는 휴교령이 내려지고 군대의 통치가 본격화 됩니다.
1980년 5월 18일
전남대생 200여명은 휴교령이 내려진 학교에 들어가려 하였으나
계엄군은 이를 저지하였습니다. 이에 계엄군과 학생들은 대립하게 되고 갈등은 심화됐습니다.
투석전에서 부상당한 학생들을 보고 합세한 시민들과 시위를 벌였으나
계엄군의 폭력 진압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광주민중항쟁이 시작되었다.
1980년 5월 19일
5월 19일 시위대가 5,000여명으로 불어나자 계엄군은 장갑차를 앞세우고 착검한 총으로 시위대를 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도로는 군인이 봉쇄하였고 가택 수사 등을 하며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했습니다.
1980년 5월 20일
5월 20일 20만명의 군대에 쫓기는 시민들이 시청으로 모여 광주시청을 장악하여 맞섰고, 시청에서 계엄군과 시민은 대립하였습니다. 계엄군은 모든 시외 전화를 두절하여 광주를 고립시켰고,
밤 11시경 계엄군은 시민에게 발포 하였습니다.
<사살된 학생들>
1980년 5월 21일
5월 21일 계엄군의 발포로 수십여명이 사망하였으며, 이에 아들, 딸, 형제를 잃은 시민들은 스스로를 시민군이라 칭하며, 경찰서나 계엄군으로부터 탈취한 소총으로 무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80년 5월 22일
5월 22일 시민들은 계엄군을 몰아내고 도청을 차지하고 '5.18사태 수습 대책 위원회'를 결성하였습니다.
사태 수습에 들어갔으나, 계엄군의 협상 거부로 협상이 결렬되었습니다.
< 광주 도청광장 집결 >
1980년 5월 27일
5월 27일 계엄군의 총공세로 많은 희생자를 낸 광주 민주화 운동은 막을 내렸습니다.
민주화 운동은
일제치하와 6.25전쟁을 겪으며 고통속에서 일구어낸 한국이란 나라가
한 집단이 무력으로 통치권을 갖고,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이 땅과 이땅의 역사는 어느 누구 하나의 것이 아니라
모두가 신음하며 피흘리고 지켜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정의로움은 광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북한의 세력이 선동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 스스로의 이상과 정의,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나오는
부정한 세력에 대항하는 항쟁이었습니다.
광주 또한, 간첩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다시는 이땅을 피와 더러움으로 물들이지 않기 위해,
부정한 권력에 항쟁한 것입니다.
광주의 그들도, 북한이 보낸 폭도들이 아닌, 태극기를 들고,
대한민국을 위해 정의를 외치던
대한민국 국민이었습니다.
이 글을 쓴 것은 여당과 야당, 어느쪽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의 발전을 위해 여당 정책에 필요한 부분도 있다고 보고, 야당 정책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야당 정책에 대한 북한 협상 정책을 비판받는 것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빨갱이당, 친북당"이라고 하는 것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5.18 민주항쟁을 북한간첩이 시킨 빨갱이들의 폭동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 바로잡아야할 문제라고 생각 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부끄럽지 않는 세대가 되기 위해 잘못된 역사관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글이 그냥 흘러가고 저 뒤편으로 넘어가더라도
잠시나마 읽어보는 누군가의 역사인식을 깨울 수 있길 바라며 씁니다.
추운 날, 감기 조심하시고 어느 분이 대통령이 되든, 항상 건강 또 건강이 먼저입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네이트 판에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전한 것은 아닌가 염려하며 마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