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10분 후부터 투표할 수 있습니다.

무채색2012.12.19
조회47

어쩌다, 왜, 이렇게 글을 쓰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이 오늘 있을 대통령 선거, 또 그 결과에 쏠려 있을 것 같습니다.

며칠 동안 오늘을 기다리며 생각한 것들을 글로 적어 봅니다.


먼저 저는 경상도에서 태어나서 경상도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서른이 조금 넘은 남자입니다. 또 지지하는 정당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두 번의 선거에서 투표를 했고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는 지금의 통합진보당 정도의 정치색을 가진 정당 후보를
지지하였습니다.

제가 통합진보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저는 주위 사람들과 투표를 할 때는 항상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선거는 반드시 해라. 누굴 뽑을지 모르겠다면 니 인생에 100원이라도 보탬이 될 것 같은 사람을 뽑아라. 선거 하나만으로 인생이 확 하고 바뀌지는 않습니다.
또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당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한 개인을 만족시키는 정당도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꽤
급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안보에 있어서는 보수주의자에 가깝습니다. 단지 제가 가진 많은 가치 중 어느 것을 더 우선시하느냐의 문제일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이 계십니다. 제가 가장 우선시하는 가치는 일한 만큼 풍족하게 사는 사회. 그것입니다. 제 부모님은 제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열심히 사시는 분들입니다. 여름에는 해가 뜨기 한참 전에 밭에 가십니다. 잘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10분만 일을 해도 이슬에 신발이 다 젖어
철퍽철퍽 소리를 내며 일을 해야 합니다. 밭에서 맞는 여름 아침은 생각보다 따갑습니다. 언제 신발이 이슬에 젖었냐 싶게 마른 신발은 땀으로 다시 젖습니다.

저야 어쩌다 한 번, 그것도 며칠, 심지어 그것도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잘 가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 부모님은 30년을 훌쩍 넘는 시간을 그렇게 반복하며 사셨습니다.

 

어렸을 때, 제 기억은 해가 질 무렵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해가 질 무렵이면 항상 경운기 소리를 기다렸습니다. 다 똑같은 경운기 소리다 생각하시겠지만
소리가 들릴 때부터 아버지가 모시는 경운기인지, 옆집 아저씨나 뒷집 할아버지가 모시는 경운기인지 한번에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의 대부분은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경운기가 집으로 들어섰습니다.


겨울은 농한기입니다. 농사를 짓는 많은 분들이 겨울철에는 일을 하지 않고 술로 시간을 보냅니다. 동네 점빵(가게)가 없어지지 않는 한 농부는 부자가 되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겨울에도 가을에도 저희 부모님은 쉬시는 날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공장에 나가셨고, 아버지는 다른 일거리를 또 다른 일거리를 찾으셨습니다.


네. 저는 자라는 내내 가난했고, 지금도 풍족하게 살지 못합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 저와 비슷한 부모님이 있으신 분들은 대부분 공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때, 저는 저녁 시간이 너무 좋았습니다. 저녁에는 급식을 먹으니까요. 그러나 점심 시간은 정말 싫었습니다. 짧게는 일주일, 혹은 한 달이 지나도
제 도시락 반찬은 항상 같은 것이었습니다. 새학기가 되면 친구가 생깁니다. 한 달이 지나면 같이 도시락을 먹던 친구들 중 한둘이 저를 피합니다. 여름방학쯤 되면
저와 같이 도시락을 먹어주는 친구는 한둘밖에 없습니다.

왜 저는 가난했을까요? 틀림없이 그때 저에게는 돈을 벌 힘이 없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부모님이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제 부모님은 가난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한 만큼 대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원래 가지고 있던 돈이 없고 그래서 못 배웠다는 이유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휴일도 없이
일해도 가난하기만 했습니다. 제가 통합진보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저는 공산 사회를 바라지 않습니다. 또, 유럽의 몇 나라 같은 복지 사회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단지 대한민국이 일한 만큼만 입고 먹고 잘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지지하는 정당의 대표가 한 판의 쇼를 하고 사퇴해 버렸습니다. 그는 큰 착각을 한 것입니다. 그 정당에 속한 사람들만이 자신을 지지해 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당 차원의 결정이었다 하더라도 그를 지지한 수많은 사람들의 바람을 흔한 정치 쇼에 써 버렸습니다. 반드시 조금 더 정중한 사과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 결정에 분노하지만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더 좋아지기 어렵다면 더 나빠지는 것은 막아 보자는 거겠지요.


몇 달만에 집에를 갔습니다. 항상 그렇듯 아버지는 뉴스를 보고 계셨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대학생들은 누구를 지지하노?"

잘 알려져 있듯, 이번 선거는 세대 선거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대학생들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합니다. 그런데 경상도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합니다.
그 이유를 다 알기는 어렵습니다. 알 필요도 없습니다.

"아마 조금 더 많은 숫자가 문재인을 찍을 것 같아요."
"그 참. 이상하다. 와 대학생들은 민주당을 찍노?"

 

꽤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 아버지는 보통의 경상도 60대 남성들처럼 새누리당 지지자입니다.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시의원 선거까지 거르지 않고 꼭 투표해서

새누리당(한나라당)을 뽑아 주시는 분입니다. 저는 현 정부가 잘한 것이 무엇이 있냐? 정권을 교체해야 되지 않겠냐? 등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안철수 전 후보를 지지했었더군요. 안철수 전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 같이 있는데, 왜 새누리를 뽑으려고 하시냐고 물었습니다.

 

답은 간단했습니다. 민주당이 지난 10년간 했던 대북 정책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버지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또 이야기를 이으셨습니다. 김대중 정부 들어와서 북한에 쌀이며 비료를 주더라. 그 때 비료값이 2500원까지 올랐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 비료값이 좀 내리긴 했지만
여전히 2000원이 넘었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 비료값이 1200원까지 내렸다구요.

제가 항상 이야기하던 것입니다. 네 삶에 100원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그 후보를 찍어라! 그 이야기가 있은 후에 우리는 정치, 선거 이야기를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흔한 일상의 이야기로 돌아갔습니다. 혼자 사느라 밥 굶지 마라. 뭐 먹고 다니냐? 방은 안 춥냐?

가끔 친구들과 가족들과 연인들과 선거 이야기를 합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좋겠지만 생각이 다를 땐, 조금 흥분을 하기도 합니다.

선거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소위 말하는 권리, 그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정권이 바뀐다고 가족이, 친구가, 연인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집을 나설 때 어머니가 그러시더군요. "꼭 1번 찍으레이." 그래서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누굴 찍어도 좋으니까 1번만 찍지 마세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가족을, 친구를, 연인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투표해야 합니다. 투표는 나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또 나와 생각이 다른 가족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사실 지난 1주일 간의 선거 흐름이 꽤 재미있었습니다. 메가톤급의 굵직한 사건은 없었지만 소소하게 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처음 이 글을 적을 때, 아주 주관적으로
그 사건들을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글을 쓰며, 깨달았습니다. 주위에서 벌어진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경험하고 겪고 있는 세 번째의 대통령 선거라는 것입니다.
지난 열다섯 번의 대통령 선거를 저는 알지 못합니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대통령이 누구인지만 결정하면 됩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6시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투표를 하고 싶어서 기다리며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잠깐 밖에 나가봤는데 머리가 지끈거릴 만큼 추운 날씹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아직 투표하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작게나마 바라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지금 투표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