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전 세계의 역사는 인육을 섭취해왔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도 인육을 즐겨하였다는데... 춘추시대전국시대 노나라 사람인 공자는 이 ‘해’를 즐겨서 해 없이는 식사를 안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공자가 아끼던 제자 자로가 위나라의 신하로 있다가 왕위다툼에 휘말려 살해되고, 그의 시체는 잘게 토막내어져 해로 만들어지고 말았다. 이 해는 사자에 의해 공자의 식탁에까지 전해졌다. 이 일 후로 공자는 그렇게 좋아하던 해를 먹지 않았다. 중국 역사사회에서는 생존경쟁의 패자가 승자의 먹이로 식탁에 오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리고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식인이 자행되기도 했다. 춘추전국시대의 유명한 제나라 환공은 미식가로도 유명했다. 그가 진미를 찾자 요리사인 역아(易牙)는 자기의 장남을 잡아서 삶아 바쳤다. 역아뿐 아니라 극한 상황에서는 자기 살을 베어내거나 아내나 자식을 잡아 주군을 대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흔히 이런 경우는 충성으로 기려졌다. -네이버 발췌- 비단 중국뿐 아니고 우리나라의 전례동화 콩쥐팥쥐에서도 팥쥐와 그 새어미를 큰 항아리에 담아 젓갈로 담았다는 얘기가 전해져오고 있다. -구전-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공자의 변태적인 식습관도 아닌 콩쥐의 사이코 패스적인 복수심을 얘기하자는게 아니다. 검색창을 열어 "공자"라는 단어만 쳐도 "인육"이라는 단어가 따라붙고 거의 모든 글에선 공자의 문제가 아닌 시대적배경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 당시의 인육섭취는 하나의 식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먹을 수 있는지 그 잔인함에 치를 떨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한다면... 우리는 소와 돼지 및 닭 오리 등의 생명을 빼앗아 그것을 섭취한다는것 자체만으로도 잔인한거다. 아무 죄책감 없이 빨간 등 아래 상품처럼 전시되어있는 동물의 살점을 거리낌 없이 구입하고 그것을 잘게 저며 굽고 튀기고 으깨어 먹는다. 우리는 그것이 살아있었던 생명이라고 생각지 못하고 그냥 감자와 고구마를 먹듯 그것들을 대한다. 예를 들어보자... 난 개고기를 먹지 못해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이유가 개가 불쌍해서이다. 개고기는 살아있는 개를 생각해내곤 불쌍하다. 잔인하다. 라고 생각하지만... 왜 우린 소, 돼지 고기를 먹으면서 살아있는 소와 돼지를 생각해내지 못할까? 인간의 뇌라는것은 우리가 소와 돼지를 먹으며 살아있는 소와 돼지를 이입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육을 먹으면서 이것을 사람이라고 생각지 못하고 먹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니었을까? 공자 또한 인육을 즐겨하여 먹었지만, 자신이 아끼던 제자가 왕위다툼에 휘말려 공자가 좋아했던 "해"로 담겨져 돌아 왔을때... 아무 것도 몰랐던 공자는 그 제자의 살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그러다, 자신이 먹었던 그 젓갈이 아끼던 제자로 담궈졌다는 걸 알고 이 이후 인육을 먹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게 바로 인간의 편협한 자기최면이다. 내가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건 인간의 마음도, 생각도 아닌... 인육의 조달의 문제이다. 공자가 즐겨먹고, 시대적 배경으로 인육을 먹는 습관이 터부시되거나 손가락질 받는게 아닌 그저 소와 돼지를 먹는것과 같은 음식의 식재료였다면... 과연 그 많은 양의 인육은 어디서 났을까? 우리 나라의 육류 소비량을 알고 있는가? 인신매매...? 과연 인신매매로 그 많은 양의 인육을 공급 할 수 있었을까? 이제부터 시작할 글은 픽션일뿐이다. 하지만 완전히 100% 픽션이라고 말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난 그 시대를 살아본적도 없고, 여러 정황상 전혀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아닌 것 같기에... 316
[19금]사육-예고
예로부터 전 세계의 역사는 인육을 섭취해왔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도 인육을 즐겨하였다는데...
춘추시대전국시대 노나라 사람인 공자는 이 ‘해’를 즐겨서 해 없이는 식사를 안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공자가 아끼던 제자 자로가 위나라의 신하로 있다가 왕위다툼에 휘말려 살해되고, 그의 시체는 잘게 토막내어져 해로 만들어지고 말았다.
이 해는 사자에 의해 공자의 식탁에까지 전해졌다. 이 일 후로 공자는 그렇게 좋아하던 해를 먹지 않았다.
중국 역사사회에서는 생존경쟁의 패자가 승자의 먹이로 식탁에 오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리고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식인이 자행되기도 했다.
춘추전국시대의 유명한 제나라 환공은 미식가로도 유명했다.
그가 진미를 찾자 요리사인 역아(易牙)는 자기의 장남을 잡아서 삶아 바쳤다.
역아뿐 아니라 극한 상황에서는 자기 살을 베어내거나 아내나 자식을 잡아 주군을 대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흔히 이런 경우는 충성으로 기려졌다.
-네이버 발췌-
비단 중국뿐 아니고 우리나라의 전례동화 콩쥐팥쥐에서도 팥쥐와 그 새어미를 큰 항아리에 담아 젓갈로 담았다는 얘기가 전해져오고 있다.
-구전-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공자의 변태적인 식습관도 아닌 콩쥐의 사이코 패스적인 복수심을 얘기하자는게 아니다.
검색창을 열어 "공자"라는 단어만 쳐도 "인육"이라는 단어가 따라붙고 거의 모든 글에선 공자의 문제가 아닌 시대적배경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 당시의 인육섭취는 하나의 식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먹을 수 있는지 그 잔인함에 치를 떨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한다면... 우리는 소와 돼지 및 닭 오리 등의 생명을 빼앗아 그것을 섭취한다는것 자체만으로도 잔인한거다.
아무 죄책감 없이 빨간 등 아래 상품처럼 전시되어있는 동물의 살점을 거리낌 없이 구입하고 그것을 잘게 저며 굽고 튀기고 으깨어 먹는다.
우리는 그것이 살아있었던 생명이라고 생각지 못하고 그냥 감자와 고구마를 먹듯 그것들을 대한다.
예를 들어보자...
난 개고기를 먹지 못해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이유가 개가 불쌍해서이다.
개고기는 살아있는 개를 생각해내곤 불쌍하다. 잔인하다. 라고 생각하지만...
왜 우린 소, 돼지 고기를 먹으면서 살아있는 소와 돼지를 생각해내지 못할까?
인간의 뇌라는것은
우리가 소와 돼지를 먹으며 살아있는 소와 돼지를 이입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육을 먹으면서 이것을 사람이라고 생각지 못하고 먹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니었을까?
공자 또한 인육을 즐겨하여 먹었지만, 자신이 아끼던 제자가 왕위다툼에 휘말려 공자가 좋아했던 "해"로 담겨져 돌아 왔을때... 아무 것도 몰랐던 공자는 그 제자의 살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그러다, 자신이 먹었던 그 젓갈이 아끼던 제자로 담궈졌다는 걸 알고 이 이후 인육을 먹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게 바로 인간의 편협한 자기최면이다.
내가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건 인간의 마음도, 생각도 아닌...
인육의 조달의 문제이다.
공자가 즐겨먹고, 시대적 배경으로 인육을 먹는 습관이 터부시되거나 손가락질 받는게 아닌 그저 소와 돼지를 먹는것과 같은 음식의 식재료였다면...
과연 그 많은 양의 인육은 어디서 났을까?
우리 나라의 육류 소비량을 알고 있는가?
인신매매...?
과연 인신매매로 그 많은 양의 인육을 공급 할 수 있었을까?
이제부터 시작할 글은 픽션일뿐이다.
하지만 완전히 100% 픽션이라고 말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난 그 시대를 살아본적도 없고, 여러 정황상 전혀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아닌 것 같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