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겨워 요강에 똥을 싸는 나

rkauswod2201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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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저는 뱃속에 3개월 아이를 가지고 있는 이십대 초반 여자입니다.

 

올해 중순에 결혼해 결혼한지 한두달만에 아이를 가져 지금은 삼개월째 접어드네요.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또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없지만 제 마음을 도저히 알 수 없어 여러분들의 질책이

 

라도 받고자 글을 씁니다.

 

저는 참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나를 감추고 나를 꾸미는 그런 사람이었죠.

 

그러기에 저는 제 진짜 마음을 터놓는 친구한명 없었구요, 물론 겉으로 보이는 친구는 많았지만 정작 속얘

 

기를 할 수있는것은 제 여동생하나였습니다.

 

원래도 넉넉치 않은 형편에 부모님이 이혼을 하게 되셨어요.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죠,

 

엄마가 바람이 나셔서 ..그게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저희 아빠도 문제가 많았지요 술에 폭력에, 저와 제동

 

생들이 보는 앞에서도 서슴치 않았어요. 이런저런 이유로 엄마와 따로 살게 되었고 아빠와 여동생 어린남

 

동생과 살게 된 전 밥이며 빨래에 그렇게 남은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어요. 철이 좀 일찍 들었던 것 같아요.

 

아빠가 술집여자한테 빠져 허우적대는걸 보며 동생들만 지키자 나랑 상관없어 얼른 크면 그만이야 라는

 

다짐을 한 것이 생각 나거든요. 그렇게 중학교에 올라오고 엄마의 끈질긴 요구 끝에 저희들은 다시엄마에

 

게로 그러다 엄마와 사시는 아저씨와의 마찰로 다시 아빠에게로를 반복하다 중학교 3학년 때 부터는

 

는 줄곧 엄마와 살게 되었어요.중학교 3학년 때 아빠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 했거든요 . 그때 치료를 잘 받

 

았어야 했는데 . 아빠를 용서하는 대신 저를 감추는 정신병이 생겨 버린것 같아요

 

그렇게 고 1. 2 저는 인문계에 진학했고, 예쁘장한 외모, 165의 키,꾸며진  좋은 성격을 가진 전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티없이 밝게 사랑 많이 받고 자란. 가난과는 먼 삶을 사는 그런

 

아이인냥 행동했어요, 그냥 저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간거죠, 일종의 정신병인것 같아요. 사실은 추운 한겨

 

울에 보일러도 못틀고, 온수도 안나오는 바퀴벌레 들끓는 집에서 이불을 두겹세겹덮고 동생들과 꽁꽁 뭉

 

쳐서 자는 생활 이었거든요. 밖에 있는 허름한화장실, 다세대 주택 월세방 , 그게 제 생활이었는데 말이죠.

 

그러다 아빠가 쓰러지졌어요. 고 3때 일이었죠,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해놓고도, 아빠에 대한 연민은 쉽게

 

저버려지지 않습디다. 고 3인데 학교도 빠지고 아빠를 병원에 데려가려 많이 애쓰고 치료도 받게 해주려

 

고하고 , 그때 엄마도 같이 참 고생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부탁한끝에 아저씨가 집에서 나가고 저희집 다

 

세대 주택 옆에 또 월세를 구해 아빠를 살게 했어요. 병명은 없고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다리신경이 무뎌

 

져서 걷지를 못하게 되셨는데 , 걸을려는 의지가 전혀없고, 씻지도 않고 이발도 하려하지않고 진짜 주는

 

밥만 받아먹는 ..SOS보다 못한 생활을 했어요, 소리도 쳐보고 애원도 해보고. 모두 소용없었죠, 그래도 아

 

빠는 아빤지.. 퇴직금으로 나온 천만원 남짓한 돈을 제 등록금으로 엄마에게 줬어요. 저는 지방 국립대에

 

가게 되었고, 엄마는 첫 등록금과 100에 20하는 작은 월세방을 구해줬어요 나머지돈은, 멀어진 아저씨와

 

의 사이를 호전시키는 술값으로 엄마가 다 썼어요, 원래 아저씨랑 술먹으려고, 제가 어릴때 받은 용돈 모

 

아 사준 금반지도 팔아먹는 엄마였거든요, 학창시절엔 아저씨와 잘 지내지 않는단 이유로 , 아빠한테 맞을

 

때 보고만 있었단 이유로 칼도 휘두르고 물건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많이 바왔던 터라, 아빠퇴직

 

금을 다쓴 걸 안 이후 혼자서 살 방법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가면을 쓰기위해요, 가난하게 보이기

 

도 싫었고, 끔찍했거든요, 이게 다 핑계일 거같아요. 지금도 그일은 후회하고 있고, 네, 술집에 나갔어요

 

평일엔 학교를 가고 주말엔 술집에 나가 돈을 벌고, 그땐 죄책감도 없었고 살아야한단 생각 뿐이었죠.

 

방학이 되고, 집으로 돌아와 계속 술집일을 하던중 거기서 엄마를 만나게 됬어요, 엄마도 그곳에서 일했던

 

거죠,  엄마가 야간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줄 알았던 저도 , 마냥 놀기 좋아서 반항하느라 제가 밤에 들어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엄마도 둘다 진짜 하늘이 무너졌어요. 서로에게 놀라서.. 그엄마에 그딸이라고 하셔

 

도 상관없네요, 그래도 저는 그일을 계속했어요. 엄마는 말리지 못하였는지 말리지 않은건지. 생활비까지

 

요구했고, 아빠처럼 알코올 중독에 빠지기 시작한 엄마는 또 병들어가기시작했어요, 아빠처럼요, 알코올

 

성 치매 같은 ..그 뒤 엄마는 저에게 더럽다. 돈 내놔라 뭐 사내라 , 몸도 파냐. 온갖 막말도 해가며 , 돈을

 

요구했고, 집에 쌀값 엄마 병원비 그놈의 외식은 왜 그렇게 많이 하고 싶은건지.외식비에 동생 교복비 까

 

지 이렇게 적고 보니 정말 집에 퍼다 주고 살았네요, 웃음 팔아가며,, 그렇게 일년 일을 했어요, 그렇게 마

 

음의 문을 닫고 있었을 차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어요. 저와 열살 가까이 차이나는.. 제가 그런일을 하는

 

것을 밝혔고, 남편은 하지말라, 하란 소리도 하지않았어요. 그냥 새벽마다 일끝나고 울며 힘들다고 전화하

 

는 저를 묵묵히 받아주었어요. 진짜 무슨 폰팅도 아니고 그렇게 오래 매일을 전화하다가 제가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여행을 갔는데 거기에 쫒아왔었어요. 그 떄가 두번째 만남이었는데. 잠자리도 없었고, 큰 얘기

 

도없었는데 참편했어요, 그리고 다 얘기했어요. 아무에게도 하지못한. 내 진짜 모습들을요. 제가 잘못했다

 

고도 잘했다고도 하지않았어요, 일을 그만두라고도 하지않았어요. 그냥. 안아주더라구요. 그냥 사랑한다

 

더라구요, 몇번보지도 못한날. 이렇게 상처많은 날 그냥 너무 따뜻하게 안더라구요. 그날 이후 , 매일 만났

 

어요, 일도 안가고 오빠 퇴근만 기다리며 만나고 또만나고 또만나고 그러다보니. 그냥 제가 일을 그만두고

 

싶었어요. 진심으로요. 그렇게 오빠한테 당당해지려고 피시방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사귄지 삼개월,

 

결혼을 하자고 했어요. 갑작스러웠고, 이상했지만 결혼을 한다면 꼭 이사람이랑 했으면 좋겠다고 사귄지

 

일주일만에 생각했으니 오빠 생각대로 따라가기로 했고. 그동안 모은 작은돈으로 결혼을 하게 된거죠,

 

시어머님 시아버님과 한집에 살게 되었고, 단아하고 교양넘치는 시어머님, 작은 사업하시는 유쾌한 시아

 

버님, 두분다 혼수 예단 예물 정말 일체 저에게 해오란 말씀 없으셨고, 저희부모님이 허락하셨단 것

 

에도 고마워 해주셨어요, 생전 보지도 못했던 비싼 옷들은 옷장에 쌓이고, 명품가방, 명품옷, 스물둘에

 

다이아목걸이 , 물방울 반지.. 시댁이 많이 부자는 아니라도 , 며느리에게 다 해주고싶으신지. 정말 다 받

 

고, 못해드리고 결혼했어요, 결혼한지 다섯달남짓, 임신 세달남짓. 남편은 제게 끔찍하고 먹는것 입는것

 

모두 신경쓰고 관리해요, 술마시고 늦게 들어온적 한번없고, 일요일엔 칼같이 일어나 저깨워서 놀러 다니

 

고,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전 지금 임신과 더불어 시험 준비중이거든요, 그래서 어머님 아버님이 경제적

 

으로 도움 주시는데, 감사하게도 어머님은 제가 설겆이 한번 하게 안놔두세요, 남편 아침에 일어나면 저한

 

테 제일먼저 뽀뽀하는게 일상이고, 제가 허리아파서 숙이는 허리에도 길가며 잠시놓는 손에도 저한테

 

무슨 일있나 깜짝 깜짝놀래는 그런사람.. 그런사람을 제 남편으로 맞았어요. 내년엔, 시댁에서 사주시는

 

아파트에 들어갈 살 예정이에요. 네. 정말 인생역전이죠. 찬물로 머리감아야하는 다세대주택 월세에 살다

 

사십평대 아파트에서 내가 걸고싶은 목걸이 반지 하며 살고있고, 거기에 시댁완벽, 시누이 시동생없고,

 

남편은 저라면 끔찍하니.. 근데 문제는 전 지금도 가면을 쓰고 있어요. 결혼식때 아빠는 어짜피못오니

 

그냥 나는 새아빠와 오래전부터 함께 살고 있다고, 친아빠는 얼마전 돌아가셨다고 거짓말도 했어요.

 

다리도 못쓰고 폐인처럼 있다는 말.. 하기싫었어요, 여태 신랑을 친정집에 한번도 데려간적도 없어요. 

 

안간힘을 다해 밖에서 만나고, 상견례 ..오빠와의 자리 모두 그때마다 엄마 아저씨 새옷 사줘가며

 

그렇게 봤어요. 남편한테도 이렇게 가면을 쓰고 있죠, 임신한 지금, 아직도 그환경에 사는 엄마 날 죽을

 

만큼 힘들게 했지만 가엾고, 아빠도 꿈에 자주나와요, 그렇지만 , 친정에 손뻗기는 싫어서는 , 엄마가 전

 

화오면 겁부터 납니다. 친정엔 두달에 한번 갈까말까.. 다시 그생활로 돌아갈것같아 집안엔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밖에서만 밥한끼. 그러곤 집에와서 울어요.. 이게 뭔가. 이게뭐지 . 나 진짜 행복한데 왜 눈물이

 

나지. 그러곤 다시 피하게 되는 친정, 점점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고, 진짜 딸같아 감기걸릴까 않 좋

 

은거 먹을까 쥬스한잔까지 갈아다 주시는 시어머니가 참 편해보여 미워지고 , 친정에 애정 안보이는 신랑

 

내가 친정에 하도 데인거 많아서 엄마한테 당한거 아빠한테 당한거 다얘기해서 그런거 알면서도 그러는

 

신랑 갑자기 서운해지고, 그러다 우울해지고, 이게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네요,

 

혹시 저와 비슷한 친정을 가지신 분이나 안그러신 분이라도 저를 질책해 주실분이계시다면 따끔하게 질

 

책도 해주시고 위로도 좀 해주세요. 글이 뒤죽박죽 길어졌네요. 이렇게 제마음 글로나마 적어보는 것도

 

힐링에 도움이 되는 것같아요. 혹시 이글을 여기까지 읽어주신분이 계시다면 정말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