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에 들어와보면 참 가슴 아픈, 시린, 속상한 글들이 많아. 나도 지금 속상한 마음에 들어와서 여러 이야기들로 위안을 삼고 있다가 내 얘길 써보려고.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아. 그냥 이런 이야기도 있구나.. 하고 다들 너무 힘들어 하지 않길 바라. //
안녕, 뭐라고 말을 시작해야 좋을까. 이렇게나 많은 날들이 지나고서야 용기를 내서 우리 얘길 시작하려해.
다들 알지? 시간이 약이라는 말.. 참 말이 쉽지 어디 사람이 그게 쉽나? 나도 그런 말들 믿지 않았었는데.. 벌써 우리가 헤어진지도 4년하고도 3개월이야. 이제부터 나는 J, 너는 K 라고 칭할게.
2007년 3월 1일. 우리의 첫 만남.. 가족 모임이 있었던 나는 사촌오빠가 오후에 친구들이랑 모인단 소릴 들었고, 아무 생각 없었던 나는 마침 그 근처에서 보기로 한 언니랑 빨리 헤어져서 그 자리에 끼게 되었어. 외국으로 유학간 전 남자친구의 양다리..를 알게 되고 속상해 하던 나. 그리고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마음아파하고 눈시울이 붉어지던 너. 우리는 운명이었을까..? 그 자리에 여러 명이 있었지만 우리는 참 빨리도 친해졌었다. 그치..? 그 날, 내가 구두에 발 아파하는 모습에 말없이 운동화를 벗어준 니모습에 끌렸나봐.. 그렇게 항상 착하고 배려 많았던 K와 철없고 까칠했던 J..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커플이 되었지. 우리가 사귀는 동안 참 많은 싸움과 다툼이 있었지만 항상 철없는 내가 시작한 싸움에 착한 니가 져주고 미안해하는 식이었지. 그런데 나는 잦은 다툼 보다, 행복했던 일 기뻤던 일 즐거웠던 소소한 일들이 더 기억이나. 그거 알아? 나는 그 때의 공기 습도 온도 날씨의 온화함까지 배경과 풍경까지 향기까지 다 생생하게 느껴져. 하지만 그때의 나는 사랑이란 감정을 잘 다루기엔 어렸었고 1년 가까이 K를 못살게 군 것만 같아. 1년을 사귀고 난 후에서야 K에게 미안한 감정이 북받쳤다니 나는 참 모질고도 멍청한 사람이었다. 그 1년이 지나고 누구보다 예쁘게 행복하게 사귀었던 우리.. 이제는 내가 더 K에게 잘해주려던 나날들..
그러다 2008년 9월 4일. 나는 집에 오던 도중에 차에 치여서 날아갔고, 그 순간을 나는 느끼지 못했어. 잠시 꿈을 꾼 듯한 기분에 살짝 눈을 뜨니 모여있던 사람들.. 나는 '내가 왜 누워있지? 이건 꿈이구나.. 왜 다들 날 저렇게 쳐다보는거야?'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어떤 아줌마가 숨을 천천히 쉬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길래 심호흡을 하고, 어떤 사람이 다가와 주민번호를 물어봐서 대답했고, 부모님 폰번호까지 또박또박 말하고 나서야 이미 아스팔트에 번진 내 피를 보고 놀라서 소리를 지르면서 울기 시작했지. 어떻게 구급차에 실려간지 모르겠어. 사고가 난 것보다 엄마가 놀란 걸 보고 달래기 바빴던 나. 내가 어디가 어떻게 다친지 자각도 못한 채로 그렇게 부산 어느 대학병원에 입원했어. 날 담당한 곳은 신경외과병동. 난 머리를 다쳤대. 그래서일까? 첫 일주일은 기억이 희미해. 기억나는 거라곤 여러 검사들, 채혈, 주사, 약물들...그게 반복되는 나날들.. 다행히 날아가면서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감싼 덕에, 그리고 사선으로 날아간 덕에. 나는 온 몸에 타박상, 큰 멍들, 여러 곳에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에 그쳤어. 다리도 깁스만 하고. 덕분에. 첫 몇 일간은 아파서 울고 소리지른 기억뿐이야. 엄마가 나보다 더 많이 아파한 모습도 기억나.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그 때는 그냥 너무 아파서 나를 치고 간 대학생을 잡아서 팔다리를 다 분질러 주고 싶은 맘뿐이었거든.. 엄마 아빠는 혼자 있길 무서워 하는 나를 위해서 직장에서 그리고 우리 집에서 한시간 거리인 병원에서 쪽잠을 자고, 혼자 화장실도 못가고 다리도 못 움직이는 내 병수발을 들었어.. 항상 속만 썩이고 삐딱한 마음으로 살던 나는 그제서야 가족의 사랑, 따뜻함을 깨달았나봐. 멍청하게도.
입원하고 K가 병문안을 왔던 날. 처음으로 엄마, 아빠, 이모네 모두가 있는 곳에서 인사시켰어. 그러고보니 나는 부모님한테 인사시켜 준 사람이 하나도 없었네.. 그러던 또 어느 날 K가 문병을 왔을 때, 나는 K에게 시원한 커피를 사주고 싶었어. 1층에 있는 카페로 가기 위해서, 대학병원에 있는 무수한 엘리베이터 중 하나를 타려고 했는데 가는 도중에 누군지 알 것 같은 사람이 걸어오네.. 아....... 외숙모다! 그 큰 대학병원에서 수많은 병동중에서 우리는 내 외숙모와 마추쳤어. 외숙모는 이 대학병원에서 일하셔. 높은 자리에 계셔서 바쁘셔. 그리고, 내 사촌오빠의 어머니셔. 그 사촌오빠는 K의 친구야. 그리고 그 사촌오빠가 J와 K의 접점이야. 그리고 그 둘은 어릴적 부터 친구고, 외숙모는 K의 모든 것을 다 알아. 애기때부터 봐왔으니까. 왜 하필 외숙모였을까? 왜 하필 K는 그 사촌오빠와 오래된 친구였을까? 어쩌다 나는 사촌오빠 친구를 사귀게 되었지? 별별 생각들이 다들고 이런 우연이 또있나 싶었어.
그 날 저녁에 엄마는 조용히 병실로 들어와서 말했어. 실망이라고. 나는 말했어. 오늘 병원으로 찾아왔길래 헤어지자고 했다고.. 그리고 병실에 있는 화장실도 마다한채 쓰지도 못하는 왼쪽다릴 질질 끌고 울면서 공용화장실로 갔다. 헤어지잔 말 한마디 툭 내뱉고 전화도 툭 내 눈물도 툭 툭 좋은 대학을 나오지도, 졸업조차도 않았지만 나보다 더 풍부한 지식을 갖췄던 너.. 좋은 배경을 가지진 않았지만, 그 여러 상황속에서도 항상 열심히 노력하던 너. 하지만 나는 너무 어렸고, 가족의 소중함이 너에 대한 사랑보다 커져버린 시기였어.
그렇게 헤어지고 무수히 오던 너의 연락. 조기퇴원하고 집에서 요양하던 날 찾아온 널 만나러 내려가서 우린 끝이라는 말만 또 툭. 너는 남들보다 늦게 군대를 갔지. 마침 입영 날짜는 내가 헤어지자고 한지 얼마 안되어서였어. 나는 K가 군대가는 날 새벽 갑자기 온갖 슬픔이 몰려와서 주체할 수 없었고, 그래서 니가 훈련병일 때 백통도 넘는 편지와 수백장의 우리 추억사진을 보냈지. 공.중.분.해...되었지만 그렇게 서서히 아프지만 우리는 서로를 잊으려 노력했어. 글로는 표현되지 않는 그때의 그 슬픔. 아픔. 절망. 막연한 분노. 자세한 사연을 몰랐던 너의 친구들, 지인들은 나를 욕했고 나는 그 시간이 더 견디기 힘들어졌고. 싸이도 네이트온도 무서워졌었어.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 너는 전역을 했고, 우리는 정말로 서서히 멀어져있었다. 타는 듯한 고통이나 슬픔 따위 보다는 살아가야 하는 삶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느꼈어. 아.. 이게 시간이라는 거구나.. 정말 어느정도는 해결이 되는거구나, 하고.
우리가 사귄지 200일이 다되어서 맞춘 커플링을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그 반지가 아직도 내 왼손 약지에만 꼭 맞는게 너무 신기해. 열심히 살고 있는 니 모습, 좋아. 사고를 계기로 가족의 소중함도 알게 되고, 의료계통을 전공하게 된 내 모습도 좋아. 행복해지려고 사랑 받고 싶어서 끊임 없이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이, 좋아.
그게 다야. 우리는 헤어진 지 4년 반이 다 되어가고, 각자의 길에서 노력하며, 사랑을 찾으며 그렇게 살아.
사랑이 끝나면 무척 힘들고 아플거야. 안 아프면 사랑이 아니니까. 시간은 약이 되어주고 어느정도 해결도 해주더라. 그치만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아니야. 나는 아직도 그 때 내가 받은 사랑, 내가 주었던 사랑, 그 따스함을 간직하고 가끔 꺼내보면서 살아. 그런 기억 하나 둘 쯤 없이 어떻게 이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겠어? 그냥 갑자기 나한테 이런 따뜻한 계절도 있었구나.. 하는 맘에 울컥해져서 긴 이야기를 쓰게 됐네. 나는 사랑받기 충분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야. 다시 떠올리게 해주는 이런 추억들, 기억들이 있다는 것에 행복해. 감사해.
언젠가 또 술 한 잔 마시고(ㅋㅋ) 들어와서 그 뒤에 찾아왔던 사랑 혹은 사랑아닌 사랑 이야기를 주절댈지도 모르겠다.언더월드가 없어져서 좀 아쉽긴하네.ㅋㅋ;;; 어차피 이 글보면 누군지 알 사람들도 있겠지만^^;;그런 사람들은 그냥 따뜻한 카톡이나 문자한통 부탁해요^^ 잘 이겨냈다.. 하고^^ 신상 공개는 싫어용~ 날씨 추운데 다들 감기 조심 하시구~ 새해 복 많이들 받아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사랑이야기.
나도 지금 속상한 마음에 들어와서 여러 이야기들로 위안을 삼고 있다가 내 얘길 써보려고.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아.
그냥 이런 이야기도 있구나.. 하고 다들 너무 힘들어 하지 않길 바라.
//
안녕, 뭐라고 말을 시작해야 좋을까.
이렇게나 많은 날들이 지나고서야 용기를 내서 우리 얘길 시작하려해.
다들 알지? 시간이 약이라는 말.. 참 말이 쉽지 어디 사람이 그게 쉽나?
나도 그런 말들 믿지 않았었는데.. 벌써 우리가 헤어진지도 4년하고도 3개월이야.
이제부터 나는 J, 너는 K 라고 칭할게.
2007년 3월 1일. 우리의 첫 만남..
가족 모임이 있었던 나는 사촌오빠가 오후에 친구들이랑 모인단 소릴 들었고,
아무 생각 없었던 나는 마침 그 근처에서 보기로 한 언니랑 빨리 헤어져서 그 자리에 끼게 되었어.
외국으로 유학간 전 남자친구의 양다리..를 알게 되고 속상해 하던 나. 그리고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마음아파하고 눈시울이 붉어지던 너.
우리는 운명이었을까..?
그 자리에 여러 명이 있었지만 우리는 참 빨리도 친해졌었다. 그치..?
그 날, 내가 구두에 발 아파하는 모습에 말없이 운동화를 벗어준 니모습에 끌렸나봐..
그렇게 항상 착하고 배려 많았던 K와 철없고 까칠했던 J..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커플이 되었지.
우리가 사귀는 동안 참 많은 싸움과 다툼이 있었지만
항상 철없는 내가 시작한 싸움에 착한 니가 져주고 미안해하는 식이었지.
그런데 나는 잦은 다툼 보다, 행복했던 일 기뻤던 일 즐거웠던 소소한 일들이 더 기억이나.
그거 알아?
나는 그 때의 공기 습도 온도 날씨의 온화함까지 배경과 풍경까지 향기까지 다 생생하게 느껴져.
하지만 그때의 나는 사랑이란 감정을 잘 다루기엔 어렸었고 1년 가까이 K를 못살게 군 것만 같아.
1년을 사귀고 난 후에서야 K에게 미안한 감정이 북받쳤다니 나는 참 모질고도 멍청한 사람이었다.
그 1년이 지나고 누구보다 예쁘게 행복하게 사귀었던 우리..
이제는 내가 더 K에게 잘해주려던 나날들..
그러다 2008년 9월 4일.
나는 집에 오던 도중에 차에 치여서 날아갔고, 그 순간을 나는 느끼지 못했어.
잠시 꿈을 꾼 듯한 기분에 살짝 눈을 뜨니 모여있던 사람들..
나는 '내가 왜 누워있지? 이건 꿈이구나.. 왜 다들 날 저렇게 쳐다보는거야?'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어떤 아줌마가 숨을 천천히 쉬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길래 심호흡을 하고,
어떤 사람이 다가와 주민번호를 물어봐서 대답했고, 부모님 폰번호까지 또박또박 말하고 나서야
이미 아스팔트에 번진 내 피를 보고 놀라서 소리를 지르면서 울기 시작했지.
어떻게 구급차에 실려간지 모르겠어. 사고가 난 것보다 엄마가 놀란 걸 보고 달래기 바빴던 나.
내가 어디가 어떻게 다친지 자각도 못한 채로 그렇게 부산 어느 대학병원에 입원했어.
날 담당한 곳은 신경외과병동. 난 머리를 다쳤대.
그래서일까? 첫 일주일은 기억이 희미해.
기억나는 거라곤 여러 검사들, 채혈, 주사, 약물들...그게 반복되는 나날들..
다행히 날아가면서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감싼 덕에, 그리고 사선으로 날아간 덕에.
나는 온 몸에 타박상, 큰 멍들, 여러 곳에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에 그쳤어. 다리도 깁스만 하고.
덕분에.
첫 몇 일간은 아파서 울고 소리지른 기억뿐이야.
엄마가 나보다 더 많이 아파한 모습도 기억나.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그 때는 그냥 너무 아파서 나를 치고 간 대학생을 잡아서 팔다리를 다 분질러 주고 싶은 맘뿐이었거든..
엄마 아빠는 혼자 있길 무서워 하는 나를 위해서 직장에서 그리고 우리 집에서 한시간 거리인 병원에서
쪽잠을 자고, 혼자 화장실도 못가고 다리도 못 움직이는 내 병수발을 들었어..
항상 속만 썩이고 삐딱한 마음으로 살던 나는 그제서야 가족의 사랑, 따뜻함을 깨달았나봐. 멍청하게도.
입원하고 K가 병문안을 왔던 날. 처음으로 엄마, 아빠, 이모네 모두가 있는 곳에서 인사시켰어.
그러고보니 나는 부모님한테 인사시켜 준 사람이 하나도 없었네..
그러던 또 어느 날 K가 문병을 왔을 때, 나는 K에게 시원한 커피를 사주고 싶었어.
1층에 있는 카페로 가기 위해서, 대학병원에 있는 무수한 엘리베이터 중 하나를 타려고 했는데
가는 도중에 누군지 알 것 같은 사람이 걸어오네.. 아....... 외숙모다!
그 큰 대학병원에서 수많은 병동중에서 우리는 내 외숙모와 마추쳤어.
외숙모는 이 대학병원에서 일하셔. 높은 자리에 계셔서 바쁘셔. 그리고, 내 사촌오빠의 어머니셔.
그 사촌오빠는 K의 친구야. 그리고 그 사촌오빠가 J와 K의 접점이야.
그리고 그 둘은 어릴적 부터 친구고, 외숙모는 K의 모든 것을 다 알아. 애기때부터 봐왔으니까.
왜 하필 외숙모였을까? 왜 하필 K는 그 사촌오빠와 오래된 친구였을까?
어쩌다 나는 사촌오빠 친구를 사귀게 되었지? 별별 생각들이 다들고 이런 우연이 또있나 싶었어.
그 날 저녁에 엄마는 조용히 병실로 들어와서 말했어. 실망이라고.
나는 말했어. 오늘 병원으로 찾아왔길래 헤어지자고 했다고..
그리고 병실에 있는 화장실도 마다한채 쓰지도 못하는 왼쪽다릴 질질 끌고 울면서 공용화장실로 갔다.
헤어지잔 말 한마디 툭 내뱉고 전화도 툭 내 눈물도 툭 툭
좋은 대학을 나오지도, 졸업조차도 않았지만 나보다 더 풍부한 지식을 갖췄던 너..
좋은 배경을 가지진 않았지만, 그 여러 상황속에서도 항상 열심히 노력하던 너.
하지만 나는 너무 어렸고, 가족의 소중함이 너에 대한 사랑보다 커져버린 시기였어.
그렇게 헤어지고 무수히 오던 너의 연락.
조기퇴원하고 집에서 요양하던 날 찾아온 널 만나러 내려가서 우린 끝이라는 말만 또 툭.
너는 남들보다 늦게 군대를 갔지.
마침 입영 날짜는 내가 헤어지자고 한지 얼마 안되어서였어.
나는 K가 군대가는 날 새벽 갑자기 온갖 슬픔이 몰려와서 주체할 수 없었고, 그래서
니가 훈련병일 때 백통도 넘는 편지와 수백장의 우리 추억사진을 보냈지. 공.중.분.해...되었지만
그렇게 서서히 아프지만 우리는 서로를 잊으려 노력했어.
글로는 표현되지 않는 그때의 그 슬픔. 아픔. 절망. 막연한 분노.
자세한 사연을 몰랐던 너의 친구들, 지인들은 나를 욕했고 나는 그 시간이 더 견디기 힘들어졌고.
싸이도 네이트온도 무서워졌었어.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 너는 전역을 했고, 우리는 정말로 서서히 멀어져있었다.
타는 듯한 고통이나 슬픔 따위 보다는 살아가야 하는 삶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느꼈어. 아.. 이게 시간이라는 거구나.. 정말 어느정도는 해결이 되는거구나, 하고.
우리가 사귄지 200일이 다되어서 맞춘 커플링을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그 반지가 아직도 내 왼손 약지에만 꼭 맞는게 너무 신기해.
열심히 살고 있는 니 모습, 좋아.
사고를 계기로 가족의 소중함도 알게 되고, 의료계통을 전공하게 된 내 모습도 좋아.
행복해지려고 사랑 받고 싶어서 끊임 없이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이, 좋아.
그게 다야.
우리는 헤어진 지 4년 반이 다 되어가고, 각자의 길에서 노력하며, 사랑을 찾으며 그렇게 살아.
사랑이 끝나면 무척 힘들고 아플거야. 안 아프면 사랑이 아니니까.
시간은 약이 되어주고 어느정도 해결도 해주더라. 그치만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아니야.
나는 아직도 그 때 내가 받은 사랑, 내가 주었던 사랑, 그 따스함을 간직하고 가끔 꺼내보면서 살아.
그런 기억 하나 둘 쯤 없이 어떻게 이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겠어?
그냥 갑자기 나한테 이런 따뜻한 계절도 있었구나.. 하는 맘에 울컥해져서 긴 이야기를 쓰게 됐네.
나는 사랑받기 충분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야.
다시 떠올리게 해주는 이런 추억들, 기억들이 있다는 것에 행복해. 감사해.
언젠가 또 술 한 잔 마시고(ㅋㅋ) 들어와서 그 뒤에 찾아왔던 사랑 혹은 사랑아닌 사랑 이야기를 주절댈지도 모르겠다.언더월드가 없어져서 좀 아쉽긴하네.ㅋㅋ;;; 어차피 이 글보면 누군지 알 사람들도 있겠지만^^;;그런 사람들은 그냥 따뜻한 카톡이나 문자한통 부탁해요^^ 잘 이겨냈다.. 하고^^
신상 공개는 싫어용~ 날씨 추운데 다들 감기 조심 하시구~ 새해 복 많이들 받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