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동생이 군대 갈 때보다 내가 군대 갈 때 훨씬 더 슬퍼했다. 왜냐하면 나를 더 아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는 동생보다 나한테 더 비싼 물건을 많이 사줬다.
동생이 지금껏 가진 전자제품은 진열 상품이라 삼십퍼센트 할인하던 삼성 옙이 전부였다. 나는
아이팟도 있고, 엠씨스퀘어도 있고, 피엠피도 있고, 두께가 케이크 썰 기세인 애플 노트북도 있고, 스마트폰도 있고, 옷도 죄다 메이컨데.
동생과 함께 쓰는 옷장에 내 옷이 한가득이다. 동생 옷은 여덟 개이다. 얼마 전에 동생에게 십구만원짜리 라코스테 점퍼를 사줬더니 동생은 스물 세살인데도 친구들에게 형이 사준 비싼
옷이라며 무척이나 자랑을 하고 다녔다고, 엄마를 통해 들었다.
사업하는 아빠가 테니스장을 가는 시간이 점점 일러질 무렵, 엄마는 막내 이모의 한약방에서 일하게
됐다. 엄마에게 전화가 오면 항상 일렉트릭 음악이 들린다. 사실
그냥 기계소리다. 우우우웅 착.
앞면과 뒷면이 그려진 저마다의 롤이 돌아가며 약이 들어갈 때 우우우웅. 자를 때, 착.
기계는 그림에 유의하지 않고 자르기 때문에 앞면의 그림은 대부분 토막 나 있다. 뒷면의 설명서는
조금 작게 쓰여 잘릴 염려가 없다.
오래된 건강원의 건방진 기계 놈이 밀봉을 제대로 못 하고 끓는 약을 쏟아내면 엄마의 팔엔 물방울이 생겼다.
한약 기계와 벽 사이는 너무나 좁아서 엄마가 쭈그리고 앉으면 공간이 다 찬다. 그러면 아마 엄마는
기계를 마주하고 걔가 만들어내는 한약을 포장박스에 담는다. 아무튼, 엄마는
나를 참 좋아한다.
물에 휩쓸려서 떠내려갔던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수영도 못하면서 물에 뛰어들었다. 물에 휩쓸려가다가 발이 땅에 닿길래 일어섰더니 강가였다. 엄마가
달려와서 내 뺨을 후려쳤다. 난 빙긋 웃었다.
최근에 엄마 손을 봤는데 엄마 손이 너무 쭈글쭈글했다. 아마도 갓 만들어진 뜨거운 한약 봉지가
엄마 손을 다 익혔기 때문일 거다. 기계 놈은 혼이 좀 나봐야 한다.
엄마 친구들은 다 손이 예뻤다. 엄마는 맨날 수세미로 한약 솥을 빡빡 문지른다. 솥이 우리 엄마를 너무 힘들게 한다. 엄마는 참 꼼꼼하다. 그래서 몸이 더 상한다. 집에는 한약이 많이 굴러다닌다. 연필이랑 볼펜이 있는 소쿠리에도 한 두어 개, 서류뭉치 옆에도, 커피 소쿠리에도, 냉장고 맨 아래 칸에도 터진 채 있다. 한약은 참 많다. 돈은 쥐뿔도 없는데. 엄마는 다 몸에 좋은 것이라며 억지로 먹이려고 한다. 써서 먹기
싫은데. 한약의 최대 소비자는 아빠다. 집에서 남는 건 다
아빠 몫이다.
엄마는 동생보다 나를 좋아하고 아빠보다 나를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아프면 장기도 쉽게 떼어줄
수 있댔다. 근데 극성맞은 엄마들처럼 자식 맞는 꼴을 못 보진 않는다.
뭐 맞는 꼴을 잘 본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강남 엄마들은 아드님이 선생님께 맞고 오면 학교든
경찰서든 어디든 냅다 달려간다는데, 우리 엄마는 자식새끼 좀 잘 키워달라고 말 안 들으면 때려달라고, 달리지 않고 말만 했다.
나는 받아쓰기를 참 잘했는데 언젠가 처음으로 40점을 맞은 적이 있었다. 빨강 빗금이 허다한 받아쓰기 공책 맨 위에 적힌 빨갛게 적힌 40이란
숫자와 강조하는 두 개의 밑줄은 나를 슬프게 했다. 나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앉아 빨강 볼펜을 꺼내 40이 변할 수 있는 가장 비슷하고 높은 숫자를 떠올리다 세모를 조금 동그랗게 그리고 줄을 길게 내려 90으로 삐뚤빼뚤 점수를 고쳤다. 가방에 책을 꼬물꼬물 넣고 집으로
걷고 있는데 엄마가 보온병을 들고 오고 있었다. 엄마는 받아쓰기 점수를 물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감기 걸려 목아플까봐 꿀에 재어놓은 토마토를 갈아왔댔다. 토마토주스를
엄마가 먹여주는데 목이 많이 아팠다. 엄마에게 점수를 고백했더니 눈물이 났다. 엄마는 다음에 잘 치면 된다고 하며 나를 안았다.
엄마는 진주에 내려오면 티셔츠 하나를 사준다고 했다. 실은 내가 전화로 티셔츠를 갖고 싶다고
했다. 4월 22에 진주에 갔다. 엄마와 아빠와 동생과 나는 갤러리아 백화점을 갔는데 가족끼리 이런 곳에 와서 돈 걱정 안 하고 옷을 왕창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했다. 엄마는 티브이에서 얇은 점퍼를 입고 있는 연예인을 보니깐 단정해보여서
좋다 했다. 엄마는 항상 옷을 두껍게 입으라고 한다. 더우면
벗으면 되지만 겉옷을 안 가져가면 추워도 못 입으니 얼어죽는다고 항상 말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 때문에
땀도 많이 흘렸지만 갑작스런 추위에도 잘 견뎠다. 엄마가 골라주는 얇은 점퍼는 하나같이 맘에 안 들었다. 아마도 저렴해서 디자인이 눈에 안 들어왔을 수도 있다. 가족들을
내가 좋아하는 비싼 매장으로 조심조심 끌고갔다. 그래서 정말 비싸고 멋진 남방을 집고선 이게 정말정말
맘에 든다고 말했다. 엄마는 네가 서울에 있어서 반찬도 못해먹이는데 옷이라도 단정하게 입히고 싶다며
남방에 어울리는 티셔츠도 고르랬다. 엄마가 한약방에서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버는지 생각했다. 비싸고 예쁜 티셔츠가 두장이나 맘에 들어서 엄청 비싼 티셔츠 두 개를 사야 했다. 엄마는 동생에게도 티셔츠를 고르라고, 사달라고 조르지 않길 바라며
물었는데 동생은 다행히 안 산다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에서 엄마가 ‘동생은
엄마 힘든 거 알고 사달라고 안 졸라서 참 착하네’랬더니 동생은 조금 훌쩍였다. 엄마는 비싼 옷은 오래 입을 수 있고 더 멋이 난댔다. 엄마는 동생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
엄마는 화가 났을 때 방으로 숨은 우리를 부를 땐 엄마만의 숫자를 셌다. 하나아 두울 세에 개애
차알싸악. 나는 엄마가 찰싹을 외치기 전에 꼭 나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는 늘 누전차단기를 내리고 나갈 거라고 협박을 했다. 엄마는 누전차단기를 올스위치라고 했다. 올스위치라는 말이 그땐 정말 무섭게 느껴졌다. 엄마가 불을 끄고
집 밖으로 나가버리면 나는 엄마를 찾아 맨발로 밖을 뛰어나갔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늘 문 뒤에 숨어있다가 웃으며 나를 불렀다.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엄마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녀야 했다. 계모임에 개가 없어서
의문이었던 아주 어릴 적이었다. 엄마는 살찐 배를 보여주며 가스를 빼러 병원을 가야 한다고 나를 속이고선
모임에 갔다. 꼬맹이들이 따라오면 주사를 놓는다고 했다. 천장이
매우 높고 아주 조그만 창문이 하나 있는 공간에 초록색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를 상상하곤 했는데, 엄마가
배를 올리면 의사 선생님은 엄마를 마취하고 바늘로 엄마의 배를 찔러, 배에 있던 엄마의 공기가 풍선에
있는 바람이 빠지듯 세어나오는 것을 떠올렸다. 가스를 빼고 왔음에도 엄마의 배가 꺼지지 않아서 나는
엄마의 말에 더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난 꼭 경비실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언젠가 이른 시간부터, 엄마가 너무 걱정돼서 아빠에게 전화를 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아빠에게 울면서 아빠에게 엄마 언제쯤 오냐고 물었다. 나는
엄마에게 일어날 수 없는 가장 험악한 상상을 아버지에게 들려줬다. 엄마가 타고 있던 버스가 갑자기 불이나
버스가 산산조각이 난다거나 남강다리를 건너던 버스가 난간 아래로 추락하여 강에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훌쩍이며 물었다. 아빠는 쓰잘데기 없는 소리 할 거면 끊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엄마
곧 올 거니깐 걱정하지 말고 과자 사갈 테니깐 집에 잘 있으라고 했다.
엄마 이야기
엄마는 동생이 군대 갈 때보다 내가 군대 갈 때 훨씬 더 슬퍼했다. 왜냐하면 나를 더 아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는 동생보다 나한테 더 비싼 물건을 많이 사줬다. 동생이 지금껏 가진 전자제품은 진열 상품이라 삼십퍼센트 할인하던 삼성 옙이 전부였다. 나는 아이팟도 있고, 엠씨스퀘어도 있고, 피엠피도 있고, 두께가 케이크 썰 기세인 애플 노트북도 있고, 스마트폰도 있고, 옷도 죄다 메이컨데.
동생과 함께 쓰는 옷장에 내 옷이 한가득이다. 동생 옷은 여덟 개이다. 얼마 전에 동생에게 십구만원짜리 라코스테 점퍼를 사줬더니 동생은 스물 세살인데도 친구들에게 형이 사준 비싼 옷이라며 무척이나 자랑을 하고 다녔다고, 엄마를 통해 들었다.
사업하는 아빠가 테니스장을 가는 시간이 점점 일러질 무렵, 엄마는 막내 이모의 한약방에서 일하게 됐다. 엄마에게 전화가 오면 항상 일렉트릭 음악이 들린다. 사실 그냥 기계소리다. 우우우웅 착.
앞면과 뒷면이 그려진 저마다의 롤이 돌아가며 약이 들어갈 때 우우우웅. 자를 때, 착.
기계는 그림에 유의하지 않고 자르기 때문에 앞면의 그림은 대부분 토막 나 있다. 뒷면의 설명서는 조금 작게 쓰여 잘릴 염려가 없다.
오래된 건강원의 건방진 기계 놈이 밀봉을 제대로 못 하고 끓는 약을 쏟아내면 엄마의 팔엔 물방울이 생겼다.
한약 기계와 벽 사이는 너무나 좁아서 엄마가 쭈그리고 앉으면 공간이 다 찬다. 그러면 아마 엄마는 기계를 마주하고 걔가 만들어내는 한약을 포장박스에 담는다. 아무튼, 엄마는 나를 참 좋아한다.
물에 휩쓸려서 떠내려갔던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수영도 못하면서 물에 뛰어들었다. 물에 휩쓸려가다가 발이 땅에 닿길래 일어섰더니 강가였다. 엄마가 달려와서 내 뺨을 후려쳤다. 난 빙긋 웃었다.
최근에 엄마 손을 봤는데 엄마 손이 너무 쭈글쭈글했다. 아마도 갓 만들어진 뜨거운 한약 봉지가 엄마 손을 다 익혔기 때문일 거다. 기계 놈은 혼이 좀 나봐야 한다. 엄마 친구들은 다 손이 예뻤다. 엄마는 맨날 수세미로 한약 솥을 빡빡 문지른다. 솥이 우리 엄마를 너무 힘들게 한다. 엄마는 참 꼼꼼하다. 그래서 몸이 더 상한다. 집에는 한약이 많이 굴러다닌다. 연필이랑 볼펜이 있는 소쿠리에도 한 두어 개, 서류뭉치 옆에도, 커피 소쿠리에도, 냉장고 맨 아래 칸에도 터진 채 있다. 한약은 참 많다. 돈은 쥐뿔도 없는데. 엄마는 다 몸에 좋은 것이라며 억지로 먹이려고 한다. 써서 먹기 싫은데. 한약의 최대 소비자는 아빠다. 집에서 남는 건 다 아빠 몫이다.
엄마는 동생보다 나를 좋아하고 아빠보다 나를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아프면 장기도 쉽게 떼어줄 수 있댔다. 근데 극성맞은 엄마들처럼 자식 맞는 꼴을 못 보진 않는다. 뭐 맞는 꼴을 잘 본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강남 엄마들은 아드님이 선생님께 맞고 오면 학교든 경찰서든 어디든 냅다 달려간다는데, 우리 엄마는 자식새끼 좀 잘 키워달라고 말 안 들으면 때려달라고, 달리지 않고 말만 했다.
나는 받아쓰기를 참 잘했는데 언젠가 처음으로 40점을 맞은 적이 있었다. 빨강 빗금이 허다한 받아쓰기 공책 맨 위에 적힌 빨갛게 적힌 40이란 숫자와 강조하는 두 개의 밑줄은 나를 슬프게 했다. 나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앉아 빨강 볼펜을 꺼내 40이 변할 수 있는 가장 비슷하고 높은 숫자를 떠올리다 세모를 조금 동그랗게 그리고 줄을 길게 내려 90으로 삐뚤빼뚤 점수를 고쳤다. 가방에 책을 꼬물꼬물 넣고 집으로 걷고 있는데 엄마가 보온병을 들고 오고 있었다. 엄마는 받아쓰기 점수를 물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감기 걸려 목아플까봐 꿀에 재어놓은 토마토를 갈아왔댔다. 토마토주스를 엄마가 먹여주는데 목이 많이 아팠다. 엄마에게 점수를 고백했더니 눈물이 났다. 엄마는 다음에 잘 치면 된다고 하며 나를 안았다.
엄마는 진주에 내려오면 티셔츠 하나를 사준다고 했다. 실은 내가 전화로 티셔츠를 갖고 싶다고 했다. 4월 22에 진주에 갔다. 엄마와 아빠와 동생과 나는 갤러리아 백화점을 갔는데 가족끼리 이런 곳에 와서 돈 걱정 안 하고 옷을 왕창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했다. 엄마는 티브이에서 얇은 점퍼를 입고 있는 연예인을 보니깐 단정해보여서 좋다 했다. 엄마는 항상 옷을 두껍게 입으라고 한다. 더우면 벗으면 되지만 겉옷을 안 가져가면 추워도 못 입으니 얼어죽는다고 항상 말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 때문에 땀도 많이 흘렸지만 갑작스런 추위에도 잘 견뎠다. 엄마가 골라주는 얇은 점퍼는 하나같이 맘에 안 들었다. 아마도 저렴해서 디자인이 눈에 안 들어왔을 수도 있다. 가족들을 내가 좋아하는 비싼 매장으로 조심조심 끌고갔다. 그래서 정말 비싸고 멋진 남방을 집고선 이게 정말정말 맘에 든다고 말했다. 엄마는 네가 서울에 있어서 반찬도 못해먹이는데 옷이라도 단정하게 입히고 싶다며 남방에 어울리는 티셔츠도 고르랬다. 엄마가 한약방에서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버는지 생각했다. 비싸고 예쁜 티셔츠가 두장이나 맘에 들어서 엄청 비싼 티셔츠 두 개를 사야 했다. 엄마는 동생에게도 티셔츠를 고르라고, 사달라고 조르지 않길 바라며 물었는데 동생은 다행히 안 산다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에서 엄마가 ‘동생은 엄마 힘든 거 알고 사달라고 안 졸라서 참 착하네’랬더니 동생은 조금 훌쩍였다. 엄마는 비싼 옷은 오래 입을 수 있고 더 멋이 난댔다. 엄마는 동생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
엄마는 화가 났을 때 방으로 숨은 우리를 부를 땐 엄마만의 숫자를 셌다. 하나아 두울 세에 개애 차알싸악. 나는 엄마가 찰싹을 외치기 전에 꼭 나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는 늘 누전차단기를 내리고 나갈 거라고 협박을 했다. 엄마는 누전차단기를 올스위치라고 했다. 올스위치라는 말이 그땐 정말 무섭게 느껴졌다. 엄마가 불을 끄고 집 밖으로 나가버리면 나는 엄마를 찾아 맨발로 밖을 뛰어나갔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늘 문 뒤에 숨어있다가 웃으며 나를 불렀다.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엄마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녀야 했다. 계모임에 개가 없어서 의문이었던 아주 어릴 적이었다. 엄마는 살찐 배를 보여주며 가스를 빼러 병원을 가야 한다고 나를 속이고선 모임에 갔다. 꼬맹이들이 따라오면 주사를 놓는다고 했다. 천장이 매우 높고 아주 조그만 창문이 하나 있는 공간에 초록색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를 상상하곤 했는데, 엄마가 배를 올리면 의사 선생님은 엄마를 마취하고 바늘로 엄마의 배를 찔러, 배에 있던 엄마의 공기가 풍선에 있는 바람이 빠지듯 세어나오는 것을 떠올렸다. 가스를 빼고 왔음에도 엄마의 배가 꺼지지 않아서 나는 엄마의 말에 더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난 꼭 경비실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언젠가 이른 시간부터, 엄마가 너무 걱정돼서 아빠에게 전화를 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아빠에게 울면서 아빠에게 엄마 언제쯤 오냐고 물었다. 나는 엄마에게 일어날 수 없는 가장 험악한 상상을 아버지에게 들려줬다. 엄마가 타고 있던 버스가 갑자기 불이나 버스가 산산조각이 난다거나 남강다리를 건너던 버스가 난간 아래로 추락하여 강에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훌쩍이며 물었다. 아빠는 쓰잘데기 없는 소리 할 거면 끊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엄마 곧 올 거니깐 걱정하지 말고 과자 사갈 테니깐 집에 잘 있으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