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군생활 많이 했다면 많이 했고 아직 멀었다면 멀은 상꺾입니다 150일정도 남았네요 모처럼 제설없는 행복한 주말 맞아 네이트판 눈팅하다가 참..들어와서는 안됬을 <군화와 고무신> 카테고리에 들어와버리고 말았습니다
곰신군화들의 이쁜사랑들 보고있다가 많은 군화분들이 겪었을 슬픈 이별이제게 일어난지도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이젠 다시 하고싶은 감정이라던가 질질짜고 돌아와달라거나 그런감정없지만 전역한 친구들이 하나둘 여자친구 사귀고, 크리스마스다 연말이다 연초다 지나면서 외로움도 심해지고 옛날 생각도 나네요
그사람이 제 글을 봐줄리도 없고(지금 사귀는 사람은 군인이 아니니까)봐주길 바라면서 쓰는건 더더욱 아니지만 그냥 군대에서 곰신이 뒤집혀버린 불쌍한 군화들, 세상이 사라져버리고 모든게 끝나버리고여기가 군대라는사실따윈 망각해버리고 다 필요없이 멀리멀리 도망쳐버리고싶은그런 아픔을 겪은 장정 여러분에게 당신 혼자만이 그런 아픔을 겪지 않았다고,당신 말고도 여기 돌아온 솔로가 되버린 군화들이 많다고이젠 더이상 군화라고 불리지 못하는, 그저 '00이병', '00일병',... 그저 병사일 뿐이게 되어버린많은 분들에게 그 여자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고 너무나 뻔한, 그렇지만 꼭 필요한위로의 글을 전하고 싶어 이렇게 씁니다
전 11년 9월군번, 8주의 훈련병 기간 후 자대는 11월 말에 받았습니다 09년 12월부터 사귀어온.. 그리고 너무나 사랑한 여자친구가 있었고 입대 당일에도, 가족 모두가 바빠서 마중 못왔음에도여자친구가 혼자서 절 보충대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날, 보충대에서 장정 여러분, 가족 여러분 이제 이별의 시간이 왔습니다 장정 여러분은 좌측으로, 가족분들은 우측으로 가주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아픈 이별의 시간이지만 저는 사랑하는 사람 앞이라서 가슴속부터 끓어오르는 뭔가 뜨거운.. 감정들을 그것들이 눈에서 방울져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멀리서 손 흔들며 한 100미터 떨어진 데서조차 보일정도로 빨갛게 부어오른 눈을 손으로 비비며 저에게 억지로.. 미소 짓고 있는 그녀를 제대로 돌아보지도 않고 그저 힐끗 보고, 쿨한척, 손만 휙 들어주고 그대로 뒤돌아서 갔습니다.
가족에게 내가 살아있다고 그저 내가 입고온 사제 옷, 사제 신발, 그리고 내가 가져온 여러 물품들..그런것들을 군소포를 통해 집에 보내고 나의 생존여부조차 세상 누구도 알지 못한채, 아니 그저 인터넷을통해 000장병이 어디어디에 있다는 사실만 알려진 채 일주일..10여일이 지났습니다 장병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보충대, 그리고 훈련소 입소주차의 지옥의 시간이 지나고 그 주 주말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편지 분출의 시간이 왔습니다
당시 신교대 제 생활관에 동기들은 40명, 그런데 편지는 10여통밖에 없더군요 생활관에는 'ㅅ'으로 시작하는 이름부터 'ㅊ'으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훈련병이 있었는데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엔 이씨 성이 많습니다.. 특히 제 생활관에는 10여명이나 이씨였습니다 이외에도 다른 성들도 많고, 저는 맨 끝에서 대여섯 번째 순서였는데
참 이상하게도,저한테 가까이 오도록 편지는 대여섯 통밖에 분출이 안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바로앞 전우가 두 통을 받고마침내 제 차례가 되었을때!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때 절 바라보던 동기들의 시선은 진짜.. 자대에 와서 상관에게 포상휴가를 받는 전우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도그정도까지는 아니었을겁니다.. 부러움 반 시샘 반, 아니, 나가고싶다는 눈빛..
청소시간도 끝나고 저녁점호 전 시간에 전너무나도 떨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하나하나 뜯어 보았습니다 종이 가득 메워진 하트와 사랑한다는말, 고생하고있다는말, 보고싶다는말.. 아, 제 당시 여자친구가 애교나 사랑을 말로 표현하는걸 잘 못해서모르는 사람들이 볼땐 여자친구 맞냐고 할 정도로 쌀쌀맞았는데 그래서 전 더더욱 알 수 있었습니다.그 서투른..그렇지만 그래서 더욱 진심이 담기고 애틋한 사랑 표현.. 편지를 읽으면서 제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이후로도 전 여자친구 덕분에 편지 분출 시간마다 동기들의 시샘과 조교의 부러움 섞인 얼차려를한몸에 받았고관물대 한가득 쌓여가는 편지를 바라보며, 그리고 훈련 마치고 돌아와 하나씩 읽어보며힘든 훈련병 시기를 마음이나마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8주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꿈에만 그리던 자대배치와 연대대기!
하지만...
연대대기.. 해보신 분들은 아실테지만..정말..말년 병장보다도 더 잉여롭고 한가한 시간을 보냅니다저 있었을땐 전화시간 통제가 있었는데.. 전 통제받은 시간때마다 전화 붙잡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너무나도..
행복..
했을것 같나요?
아닙니다..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지 않아.. 고객님께서 통화중..고객님의 핸드폰이 꺼져있어...
..........
연대대기 4박 5일동안 저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지 못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3일째 되는 날에그녀의 집에 전화를 했습니다여자친구 어머님이 받더군요 "여보세요?" "아, 어머님, 안녕하세요 저 000이에요" "오~ 고생하는구나.. 근데 XX지금 집에 없는데" "아, 어디 갔나요?" "응, 어제부터 뭐 엠티인가 갔을거다" "아, 네.. 그럼 다음에 전화드릴게요 건강히 지내세요" "그래, 몸조심하고.."
원래부터 저와 제 당시 여자친구는..그전부터 공부할때나 서로 어디 놀러갔을땐연락을 잘 안해서 저도 하릴없이 그녀에게 전화거는걸 그만두었습니다
편했던..그러나 마음이 너무나 차갑고 외롭고 슬프고 아팠던 연대대기가 끝나고 자대에 배치받고 가게되었습니다
고무신은 잘뒤집어지는거같아요
150일정도 남았네요
모처럼 제설없는 행복한 주말 맞아 네이트판 눈팅하다가
참..들어와서는 안됬을 <군화와 고무신> 카테고리에 들어와버리고 말았습니다
곰신군화들의 이쁜사랑들 보고있다가 많은 군화분들이 겪었을 슬픈 이별이제게 일어난지도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이젠 다시 하고싶은 감정이라던가 질질짜고 돌아와달라거나 그런감정없지만
전역한 친구들이 하나둘 여자친구 사귀고, 크리스마스다 연말이다 연초다 지나면서 외로움도 심해지고 옛날 생각도 나네요
그사람이 제 글을 봐줄리도 없고(지금 사귀는 사람은 군인이 아니니까)봐주길 바라면서 쓰는건 더더욱 아니지만
그냥 군대에서 곰신이 뒤집혀버린 불쌍한 군화들,
세상이 사라져버리고 모든게 끝나버리고여기가 군대라는사실따윈 망각해버리고 다 필요없이 멀리멀리 도망쳐버리고싶은그런 아픔을 겪은 장정 여러분에게
당신 혼자만이 그런 아픔을 겪지 않았다고,당신 말고도 여기 돌아온 솔로가 되버린 군화들이 많다고이젠 더이상 군화라고 불리지 못하는, 그저 '00이병', '00일병',... 그저 병사일 뿐이게 되어버린많은 분들에게
그 여자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고
너무나 뻔한, 그렇지만 꼭 필요한위로의 글을 전하고 싶어 이렇게 씁니다
전 11년 9월군번, 8주의 훈련병 기간 후 자대는 11월 말에 받았습니다
09년 12월부터 사귀어온.. 그리고 너무나 사랑한 여자친구가 있었고
입대 당일에도, 가족 모두가 바빠서 마중 못왔음에도여자친구가 혼자서 절 보충대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날, 보충대에서
장정 여러분, 가족 여러분 이제 이별의 시간이 왔습니다
장정 여러분은 좌측으로, 가족분들은 우측으로 가주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아픈 이별의 시간이지만 저는 사랑하는 사람 앞이라서
가슴속부터 끓어오르는 뭔가 뜨거운.. 감정들을
그것들이 눈에서 방울져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멀리서 손 흔들며 한 100미터 떨어진 데서조차 보일정도로 빨갛게 부어오른 눈을
손으로 비비며 저에게 억지로.. 미소 짓고 있는 그녀를
제대로 돌아보지도 않고 그저 힐끗 보고, 쿨한척, 손만 휙 들어주고
그대로 뒤돌아서 갔습니다.
가족에게 내가 살아있다고 그저 내가 입고온 사제 옷, 사제 신발, 그리고 내가 가져온
여러 물품들..그런것들을 군소포를 통해 집에 보내고
나의 생존여부조차 세상 누구도 알지 못한채, 아니 그저 인터넷을통해
000장병이 어디어디에 있다는 사실만 알려진 채
일주일..10여일이 지났습니다
장병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보충대, 그리고 훈련소 입소주차의 지옥의 시간이 지나고
그 주 주말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편지 분출의 시간이 왔습니다
당시 신교대 제 생활관에 동기들은 40명, 그런데 편지는 10여통밖에 없더군요
생활관에는 'ㅅ'으로 시작하는 이름부터 'ㅊ'으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훈련병이 있었는데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엔 이씨 성이 많습니다.. 특히 제 생활관에는 10여명이나 이씨였습니다
이외에도 다른 성들도 많고, 저는 맨 끝에서 대여섯 번째 순서였는데
참 이상하게도,저한테 가까이 오도록 편지는 대여섯 통밖에 분출이 안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바로앞 전우가 두 통을 받고마침내 제 차례가 되었을때!
무려 여섯 통의 편지가 저의 것이었습니다
"000,나와""207번 훈련병 000!"
"000, 뭐야 또있네"
"김XX, 누구야?""207번 훈련병 000, 제 여자친구입니다"
"또 김XX, 김XX, 너 죽는다, 네통이나 있어? 나도 여자친구 없는데? 엎드려, 팔굽혀펴기 실시!하나에 XX야 둘에 사랑한다, 하나""XX야!""둘"
"사랑한다!"
"일어나, 가져가버려, 얼른 갖고 사라져 5초준다, 5,4,3,2,..."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때 절 바라보던 동기들의 시선은 진짜.. 자대에 와서 상관에게 포상휴가를 받는 전우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도그정도까지는 아니었을겁니다..
부러움 반 시샘 반, 아니, 나가고싶다는 눈빛..
청소시간도 끝나고 저녁점호 전 시간에 전너무나도 떨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하나하나 뜯어 보았습니다
종이 가득 메워진 하트와 사랑한다는말, 고생하고있다는말, 보고싶다는말..
아, 제 당시 여자친구가 애교나 사랑을 말로 표현하는걸 잘 못해서모르는 사람들이 볼땐 여자친구 맞냐고 할 정도로 쌀쌀맞았는데
그래서 전 더더욱 알 수 있었습니다.그 서투른..그렇지만 그래서 더욱 진심이 담기고 애틋한 사랑 표현..
편지를 읽으면서 제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이후로도 전 여자친구 덕분에 편지 분출 시간마다 동기들의 시샘과 조교의 부러움 섞인 얼차려를한몸에 받았고관물대 한가득 쌓여가는 편지를 바라보며, 그리고 훈련 마치고 돌아와 하나씩 읽어보며힘든 훈련병 시기를 마음이나마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8주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꿈에만 그리던 자대배치와 연대대기!
하지만...
연대대기.. 해보신 분들은 아실테지만..정말..말년 병장보다도 더 잉여롭고 한가한 시간을 보냅니다저 있었을땐 전화시간 통제가 있었는데.. 전 통제받은 시간때마다 전화 붙잡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너무나도..
행복..
했을것 같나요?
아닙니다..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지 않아..
고객님께서 통화중..고객님의 핸드폰이 꺼져있어...
..........
연대대기 4박 5일동안
저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지 못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3일째 되는 날에그녀의 집에 전화를 했습니다여자친구 어머님이 받더군요
"여보세요?"
"아, 어머님, 안녕하세요 저 000이에요"
"오~ 고생하는구나.. 근데 XX지금 집에 없는데"
"아, 어디 갔나요?"
"응, 어제부터 뭐 엠티인가 갔을거다"
"아, 네.. 그럼 다음에 전화드릴게요 건강히 지내세요"
"그래, 몸조심하고.."
원래부터 저와 제 당시 여자친구는..그전부터 공부할때나 서로 어디 놀러갔을땐연락을 잘 안해서 저도 하릴없이 그녀에게 전화거는걸 그만두었습니다
편했던..그러나 마음이 너무나 차갑고 외롭고 슬프고 아팠던 연대대기가 끝나고
자대에 배치받고 가게되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