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을 걷다 Day1 인천 ~ 파리 (2011.12.26)

진형록201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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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1달간의 준비를 마치고, 크리스마스를 싱숭생숭하게 보내곤 드디어 12월 26일의 날이 밝았다. 한국에서는 누가봐도 이상하게 보일 11kg짜리 배낭을 차에 싣고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서도 내가 곧 길고 긴 여행을 떠난다는게 실감나지 않았다. 방학식도 하기 전이라 친구들은 다 학교에 있을 시간. 잘갔다오라는 인사카톡에 답장을 해주며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이 여행이 처음부터 자발적으로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대학입시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수능시험을 망쳤기 때문에 내 점수로는 서울권 상위 대학은 진학이 불가능했었다. 논술을 준비하긴 했지만 수능성적이 워낙 낮아서 논술에 그리 큰 기대를 걸 수도 없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중2때부터 책으로 접하면서 '와...힘들겠다.', '나중에 꼭 가봐야지.'라는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던 곳이다. 그런데 엄마가 어느날 뜻밖의 발언을 하였다.
"지금 상태로 재수해봤자 결과는 같다. 스페인가서 정신차리고 와라."
그 당시에는 혼자 한번도 안가본 나라에 33일동안 걸으러 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대입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더 강했기에 바로 'CALL'을 외쳤고, 이게 앞으로 이어질 나의 33일간의 여정의 시발점이었다. 뭐 결과적으론 대학도 붙어버려서 고행길이 여행길로 바뀌어버리긴 했지만말이다.)


비행기 시간이 다되어 부모님과 인사를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에서  시작을 하기 때문에 출발점은 스페인이 아닌 프랑스다. 그래서 난 파리 직행 비행기를 탔다. 지금와서 하는 후회지만 유럽같은 10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에 있어서 대한한공이나 아시아나같은 고가 항공을 택할 이유는 전혀 없다. 어차피 5시간만지나면 허리가 아프고 더이상 잠도 오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고행길이라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목적으로 가는 것이라면 러시아 항공같은 저가 항공을 이용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고2 제주도 수학여행 이후 1년 반만에 타는 비행기였기에 당연히 신이 날 수 밖에 없다. 파리까지 총 13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되었다. 13시간동안의 비행에서는 잠을 자는데에도 한계가 있다. 물론 동행이 있으면 같이 얘기하면서 가면 되겠지만, 혼자 덩그러니 앉아가야했던 나에게 할거라곤, 대한한공 선정 영화를 보는 것 뿐이었다. 영화를 한 편 보고나니 기내식이 나왔다.

 


역시 대한항공 기내식이 맛은 있다. 하지만, 이 점심 기내식을 먹고 난 체하고 말았고 그 이후 어떠한 기내식도 받지 않은체 복통과 두통만 호소하며 얼른 파리에 도착하기만을 바랬다.


파리 드골국제공항에는 밤이 다되서야 도착했다. 프랑스 국경인 생장까지는 다음날 TGV와 또 다른 열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기 떄문에 이날은 미리 예약해둔 파리에 있는 호텔에서 자야했다.


(카메라의 시간 설정은 한국시간으로 되있기 때문에 27일로 뜸)


하룻밤 자기에는 너무 좋은 호텔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은 후회. 4성금답게 와이파이가 되는 덕에 한국에 있는 사람들한테 연락을 하고는, 어디 나가서 관광할 틈도 없이 너무 몸이 고단했기에 다음날 기차시간에 넉넉하게 알람을 맞춰놓고 바로 잠들었다. 33일간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천 년의 세월 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조개껍질을 매달고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온 길이 있다.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였던 야고보(스페인식 이름은 산티아고)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의 도시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로 가는 길이다.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길은 ‘카미노데프란세스(프랑스 사람들의 길)’이라고 불리는 코스. 프랑스 남부의 국경 마을인 생장피데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이어지는 800km다. 모든 갈림길마다 노란 화살표와 조개껍질로 방향을 표시해준다. 덕분에 길을 걷기보다 길에서 헤매기 바쁜 길치들조차 최종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다다를 수 있다. 마을마다 있는 ‘알베르게’라 불리는 순례자 전용 숙소에서 잠자리와 취사를 해결할 수 있어 유럽의 비싼 물가도 가뿐하게 극복할 수 있다. 그 길에는 전설보다 오래된 교회와 십자군 전쟁의 흔적, 성당기사단의 비밀과 마녀로 몰린 여자들의 화형대, 로마시대의 돌길까지 상상력을 자극하는 자취로 가득하다. 진한 역사의 향기가 배어있는 길이다.


2011년 12월 26일. 33일간의 순례길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