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권] 따뜻함을 드세요

Elly2013.01.13
조회12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기분 나쁜 일도 괴로운 일도 그때만큼은 전부 잊을 수 있으니까」

 

저자 : 오가와 이토

역자 : 권남희

출판사 : 북폴리오

출판일 : 2012년 8월

 

■ 반짝거리는 입술 끝을 내 오른손 검지로 닦아서 혀에 대보니 달콤한 맛이 났다. 빙수 시럽의 달콤함이 아니었다. 뭐랄까, 더 복잡한 맛이었다. 역시 할머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달콤하게 발효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p.26

 

■ 상어 지느러미 수프는 마치 초원에 내린 눈처럼 부드럽게 내 위를 채워갔다. 땅 위에 내린 순간 사르륵 모습을 감춰버리는 눈처럼 위에서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갔다. 허무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기분 나쁜 일도 괴로운 일도 그때만큼은 전부 잊을 수 있다. "어째서 이렇게 맛있는 걸까?" -p.37~38

 

■ 내가 프러포즈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표정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아케미라고 부르는 애인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기분 좋게 울렸다. "그러게. 평생 맛있는 것을 먹게 해줄 사람인지 아닌지, 잘 지켜봐야지." 조금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사람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사소한 행복을 느꼈다. 순간, 벅찬 감정이 세차게 몰아칠 것 같았다. 소리 내어 울고 싶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배가 너무 불러 그저 애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게 고작이었다. -p.45

 

■ "그럼 아빠는 내가 태어난 걸 원망하지 않아?" "당연하지." 아빠는 그 말이 정말로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 말이 농담처럼 드린 모양이다. 나는 진심인데. "엄마는 코하루 속에 살아 있어. 전혀 외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 된장국 속에도 엄마가 있는 걸." -p.86

 

■ 어째서 그럴까. 잃어버린 뒤가 아니면 소중한 것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 -p.145

 

리뷰

 

며칠 전, <유희열의 음악도시>를 시청하다 오프닝멘트에서 희열님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겨울은 따뜻해서 좋은 것 같아요. 이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란게 있죠."

맞아, 정말 그렇다. 추운 겨울이 되야만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따뜻하다'라는 느낌. :)

그 느낌이 좋아서 이번 책이 더 끌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제목만 봐도 이미 따뜻함이 물씬 묻어나는 책.

따끈따끈한 고구마와 차를 준비해서 편안히 읽어나가는데 몸도 마음도 이렇게 따뜻해질 수가 없다.

 

오가와 이토라는 작가는 이미 <달팽이 식당>이란 책으로 더 많이 알려진 작가라지만,

나는 이번 책을 통해 그녀를 처음 만났다. 이 작가의 유명세보다 그저 제목이 마음에 들어

선택한 책이었기에 다른 사전지식없이 이 책을 통해 조금씩 작가에게 다가갈 수 있었고,

그러면서 왜 이 작가가 음식이라는 소재를 통해 감동을 자아내는 작가라고 알려졌는지 금세 알 수 있었다.

이 책에는 7개의 단편이야기가 실려있는데 각각의 이야기들은 그 속에 나름의 추억을 담고 있고,

특히 그 추억들은 모두 '음식'과 관련이 있어서 그것을 통해 독자들에게 마음에 힐링을 주고 있다.

와, 음식이라는 이렇게 평범한 소재를 가지고도 가슴 따뜻한 글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 감동적이다. :)

 

다시 말해서 이 곳에 실린 이야기들은 뭔가 대단한 사건이나 굵직굵직한 이야기들이라기보다

그냥 인생의 어느 한 순간, 특히 음식과의 소박한 추억이 담긴 어느 한 순간들의 풍경을 묘사한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위해 후지 산을 닮은 빙수를 사오던 손녀딸의 모습,

생전 아버지가 즐겨찾던 삼겹살 덮밥집에서 프러포즈를 하던 한 남자의 모습,

결혼을 하루 앞둔 딸이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아빠를 위해 된장국을 끓이던 모습,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홀로 레스토랑을 찾아 늘 함께 먹던 크로켓을 추억하던 할머니의 모습,

포근하고 따뜻하면서도, 왠지모르게 쓸쓸하고 먹먹함이 전해져와 가슴이 저릿해지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마음속으로 전해지면서 음식에 대한 지난 추억들을 떠올리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사람이 살면서 행복함을 느낄 때 중의 하나가 바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가 아닐까.

또, 우리는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거나 누군가를 기억할 때 같이 먹었던 음식도 함께 떠올린다.

내게도 이런 추억의 음식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보니 지금 이 순간에 떠오르는 것들이 몇 개 있다. 

밥솥에서 쪄먹던 만두,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던 줄줄이햄, 은박지 옆구리를 반으로 나눠서 먹던 김밥.

뭐 하나같이 대단한 음식들은 아니지만, 어쩌면 너무나도 평범하고 소박한 그런 음식들이지만,

그 때 그 시절 참 소중했던 사람들과 함께였기에 더 없이 소중했던 음식들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지나버린 오랜 추억들이 되었지만 가끔 그 때를 회상하면 미소가 지어지면서도 가슴이 짠해온다.

 

이 책은 따뜻한 음식이야기들로 마음속에 있던 허전함들을 하나하나 포근하게 채워주는 느낌이다.

소중한 사람들과 소박한 음식들을 나눠먹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끼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이지, 책 뒷부분 옮긴이의 말에서처럼, 왠지 이번 책은 다 읽고 난 뒤에

"잘 읽었습니다" 대신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해야할 것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세세하고 먹음직스러운 음식묘사들 덕분에 읽는동안 군침이 돌만큼 참 맛있는 책이었다. :)

그러고보니 언젠가부터 포스팅이 멈춰있는 내 블로그의 <요리>폴더.

사실 잘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하는 건 즐거워하는 편인데, 새해엔 독서와 함께 요리도 좀 더 열심히 해봐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