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소리에 눈을 떳는데 뭔가 불길하다. 전혀 밝지가 않다. 비가오는 것이었다. 걷기 시작한지 이틀만에 비...라니. 겨울철 카미노를 걷는 사람들에게 필수품으로 제시되는 것중 한가지는 '판초'다. 판초는 우비와 비슷한데 배낭을 메고 입으면 배낭까지 다 덮어주는 우비다. 그런데 판초를 입으면 외부의 비는 판초가 다 막아주지만 안에서 몸의 열기로 생기는 땀이 방출이 안되기때문에 비 때문이 아니라 땀 때문에 옷이 다 젖게 된다. 고어텍스도 왠만한 비는 다 막아주기 때문에 난 판초를 챙겨가긴 했지만 입은 적은 한번도 없다. 태수형, 대연이형, 아버님, 혜정이누나 모두 갈준비를 마치고 출발.
아침 8시에 출발했기에 아침을 먹지 못했다. 30분밖에 안걸었는데도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다행히 10분만 더가면 바로 다음 마을이 나온다기에 5명 모두 속도를 올렸다. 그렇게해서 도착한 다음 마을.
상당히 예쁜 마을이다. 마을에 도착하고보니 어제 같이 잔 마리아나 부부와 네덜란드인 가족도 보였다. 모두 아침식사를 해결할 식당을 찾는 중이었다. 3곳이나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 열지 않았다. 이 마을은 아니다 싶어서 그냥 지나가려는 찰나에, 불이 켜진 한 가게가 있어서 우리 모두 그 곳으로 들어갔다.
아르헨티나인 부부가 하는 이 가게에서 각자 원하는 걸 시켜먹었는데 그래봤자 아침은 거의 빵과 커피다. 원래 카페인 알레르기가 있어서 고등학교 내내 커피는 먹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알레르기가 문제가 아니다. 밤과 아침엔 기온이 낮게 내려가기 때문에 몸을 녹이기 위해서라도 커피는 마셔줘야 한다.
(왼쪽부터 혜정이누나, 태수형, 나, 대연이형)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서려는데 엄청 큰 허스키가 보인다. 이 가게에서 키우는 개였다. 사람말도 잘 들어서 이 개 재롱 보는데만 몇 분이 걸렸다.
카미노 길에서 대도시는 기껏해야 5번 정도 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항상 시골길을 걷는 것이다. 대부분이 목축업이나 농업이게 때문에 항상 주위가 트여있다.
(왼쪽부터 태수형 대연이형 나)
출발하고 근 30분에서 1시간 정도는 함께 출발한 사람들끼리 속도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 하지만 각기 다른 걸음 속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점차 거리가 벌어지게 마련이다. 태수형과 내가 제일 빠르고 그 다음이 혜정이 누나, 그 다음이 대연이형과 아버님이기 때문에, 출발을 5명이서 함께 하더라도 1시간만 지나면 거의 태수형과 단둘이서 걷게 되었다. 장교 출신이라 그런지 이 형, 결정력이 상당히 강하다.
오늘은 평지보다는 산이 상당히 많이 나왔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계속해서 오르락 내리락 해야했다. 게다가 아침부터 비를 맞은 상태라서 점점 피로가 쌓인다.
태수형이 알게 모르게 내 사진을 참 많이 찍어줬다.
이 길위에선 하나의 풍경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다시말하면, 계속해서 풍경이 바뀌기 때문에 다음은 어떤 장관이 펼쳐질지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런데 오늘은...어제 피레네 산맥을 넘은데서 오는 피로감과 더해져서인지, 몸이 너무 무겁다. 빨리 오늘의 목적지가 나오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내가 힘들어서 뒤쳐지려고 할때마다 태수형이 참 고맙게도 기다려주면서 조금만 더 가면 이제 다왔으니 힘내라고 해줬다. 목적지에 거의 다왔을때 마리아나 부부를 만났고, 4명이서 함께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수비리'에 도착했다. 하루종일 걸으면서 가장 기쁜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그날 당일의 목적지가 내 눈앞에 나타날 때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근데, 마을이 너무 고요하다. 자료에 따르면 이 마을에는 2곳의 알베르게가 있다. 한 곳을 찾았으나, 닫혔다. 그리고 다른 한 곳을 찾았는데, 여기도 닫혔다...What the...
겨울철 카미노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알베르게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여름철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카미노를 찾기 때문에 거의 모든 알베르게가 문을 열어도 그 인원을 다 수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정반대로 겨울철에는 카미노를 찾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줄기 때문에 문을 열지 않는 알베르게들이 발생한다. 첫날 생장에서 순례자 여권을 만들어 주시는 할아버지께서 각마을의 알베르게 오픈 현황이 적힌 자료를 건내주면서 우리에게 그 자료가 100%맞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분명 자료에 수비리의 알베르게는 열려있다고 했는데...출발한지 이틀만에 자료가 100%맞지 않다는걸 몸소 경험하게 된 셈이다.
마을에는 알베르게 이외에도 우리나라로 치면 모텔같은 곳이 있다. 마리아나 부부는 자기들은 오늘 목적지가 딱 여기까지라면서 그 모텔로 들어가버렸다. 나도 오늘 목적지가 여긴데......모텔은 알베르게보다 가격이 현저히 비싸다. 그럼에도 그 돈을 지불하고 수비리에서 잘 생각이 있었는데 태수형이 다른 사람들 올때까지 점심이나 먹으면서 조금만 기다려보자고 했다. 점심이랄 것도 없는게. 과자와 초콜릿 그리고 물이 전부다.
오는동안 물을 한모금도 안마셨기에 여기서 쉬는 동안 한통을 다 마셔버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혜정이 누나도, 대연이형도, 아버님도 보이질 않았다. 그러자 태수형이 날 설득하기 시작했다. 5km만 더 가면 마을이 하나 더 있다고, 거기 알베르게도 안열었으면 거기서는 모텔에서 자자고. 그리고 난, 보기좋게 넘어갔다. 흔히 일반사람들이 걸어서 1시간이면 4km를 간다. 그래서 5km는 금방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지와 오르막길은 다.르.다.
피로가 절정이었다. 그렇다고 그 상황에서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쉬기 위해선 빨리 다음 마을에 도착하는 것 말곤 답이 없다. 5km만 가면 되는데도 얼마나 남았는지 써있는 안내판이 뭐 그리도 많은지, 난 많이 걸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직도 4km나 남았다는 안내판이 보이면, 힘이 쫙쫙 빠진다. 태수형도 이쯤되니 힘들어 보였다.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둘 사이에 침묵만이 있기를 20분쯤 지났을까, 드디고 다음 마을인 라라소냐가 100m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기쁘지 아니 할 수 가 없는 상황이다. 태수형이 너의 기쁨을 빨리 표현하라고 해서 두 팔 벌려 만세를 불렀다.
다행히 이곳 알베르게는 문을 열었다. 그런데...이 알베르게...쓰레기다. 어떠한 난방시설도 찾아 볼 수 없으며, 와이파이도 안되고 콘센트도 없고 벽에는 곰팡이가 보인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여기서 자야만 하는 판국이다. 나와 태수형 모두 다 씻고 나니 누가 들어온다. 혜정이 누나와 대연이형과 아버님이다. 한국인들...돈 더내고 자는 것보다는 조금 더 걷고 제 가격에 자는걸 택한다.;;; 나머지 외국인들은 모두 수비리의 모텔에서 자기로 했나보다. 결국 작별인사도 못하고 헤어지게 된것이다. 카미노에선 예고 없는 만남이 대부분이지만 그 예고 없던 인연들이 예고 없이 헤어는 일이 태반이다.
아침에 먹은거라곤 빵하나랑 커피한잔, 점심도 과자랑 초콜릿이 전부였기때문에 심히 배가 고팠다. 보통 마을에는 식당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이 마을, 지금 연말이라서 식당들이 다 문을 닫았덴다. 밥을 먹으려면 택시를 타고 전 마을인 수비리까지 가야된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수비리에서 이 고생을 하면서 5km를 더 왔는데 배고프면 거길 다시 가란 소리다.ㄷㄷㄷ
그 누구도 찬성하지 않았고,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모르고 있을 그때, 태수형이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쌀이었다. 첫날 생장에서 만난 28세 한국인이 자기는 이제 여행이 다 끝났다면서 남을 쌀을 줬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 알베르게에는 부엌이 있다. 그 쌀만으로도 우리한텐 감사함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라면스프를 5봉을 챙겨왔는데 그 중 한봉을 여기서 썼다. 도저히 그냥 쌀죽은 그날의 허기상태로는 용납할 수 없었다. 대연이형이 본인 요리실력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결국엔 라면스프죽이긴 해도 요리는 요리다. 다행히 5인이 배부를만큼의 양이 나와서 우리 모두 저녁을 해결할 수 있었다.
(왼쪽부터 혜정이누나, 나, 아버님, 대연이형, 태수형)
위에 나와있듯이, 이 알베르게는 난방시설이 없다. 고로 밤이 무지하게 춥다는 것이다. 이런 알베르게에서도 추위를 견디는 방법은 다 있다. 혜정이누나는 핫팩을 사용한다. 나도 하나 받았는데, 앞으로를 위해 아껴뒀다. 난 물통을 사용한다. 1L짜리 큰 물병인데 부억에 가서 물을 끓이고 그 물을 물병에 넣는다. 조금만 지나면 물병이 아주 뜨거워진다. 화상의 위험이 있기때문에 수건으로 물병을 감싸고 그걸 그대로 안고 잔다. 뭐 결국 자다가 물병이 뜨거워서 침낭밖으로 꺼내놓긴 한다.
여기오기전 한국에서 내가 최종목적지인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엽서를 쓰겠다고 친구들의 주소를 다 적어온 엽서들이 있었다. 난 이날 밤에 모든 엽서를 다 썼다. 힘들어 죽겠다고. 너넨 오늘 방학식을 하겠다고. 내가 왜 여깄는지 모르겠다고.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온갖 푸념을 다 써놓고 결국 잠에 들긴했다.
스페인을 걷다 Day4 론세스바예스 ~ 라라소냐 (2011.12.29)
삼각대까지 챙겨온 혜정이 누나덕에 출발전 단체사진.(왼쪽부터 아버님, 대연이형, 혜정이누나, 나, 태수형)
아침 8시에 출발했기에 아침을 먹지 못했다. 30분밖에 안걸었는데도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다행히 10분만 더가면 바로 다음 마을이 나온다기에 5명 모두 속도를 올렸다. 그렇게해서 도착한 다음 마을.
상당히 예쁜 마을이다. 마을에 도착하고보니 어제 같이 잔 마리아나 부부와 네덜란드인 가족도 보였다. 모두 아침식사를 해결할 식당을 찾는 중이었다. 3곳이나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 열지 않았다. 이 마을은 아니다 싶어서 그냥 지나가려는 찰나에, 불이 켜진 한 가게가 있어서 우리 모두 그 곳으로 들어갔다.
아르헨티나인 부부가 하는 이 가게에서 각자 원하는 걸 시켜먹었는데 그래봤자 아침은 거의 빵과 커피다. 원래 카페인 알레르기가 있어서 고등학교 내내 커피는 먹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알레르기가 문제가 아니다. 밤과 아침엔 기온이 낮게 내려가기 때문에 몸을 녹이기 위해서라도 커피는 마셔줘야 한다.
(왼쪽부터 혜정이누나, 태수형, 나, 대연이형)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서려는데 엄청 큰 허스키가 보인다. 이 가게에서 키우는 개였다. 사람말도 잘 들어서 이 개 재롱 보는데만 몇 분이 걸렸다.
카미노 길에서 대도시는 기껏해야 5번 정도 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항상 시골길을 걷는 것이다. 대부분이 목축업이나 농업이게 때문에 항상 주위가 트여있다.
(왼쪽부터 태수형 대연이형 나)
출발하고 근 30분에서 1시간 정도는 함께 출발한 사람들끼리 속도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 하지만 각기 다른 걸음 속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점차 거리가 벌어지게 마련이다. 태수형과 내가 제일 빠르고 그 다음이 혜정이 누나, 그 다음이 대연이형과 아버님이기 때문에, 출발을 5명이서 함께 하더라도 1시간만 지나면 거의 태수형과 단둘이서 걷게 되었다. 장교 출신이라 그런지 이 형, 결정력이 상당히 강하다.
오늘은 평지보다는 산이 상당히 많이 나왔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계속해서 오르락 내리락 해야했다. 게다가 아침부터 비를 맞은 상태라서 점점 피로가 쌓인다.
태수형이 알게 모르게 내 사진을 참 많이 찍어줬다.
이 길위에선 하나의 풍경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다시말하면, 계속해서 풍경이 바뀌기 때문에 다음은 어떤 장관이 펼쳐질지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런데 오늘은...어제 피레네 산맥을 넘은데서 오는 피로감과 더해져서인지, 몸이 너무 무겁다. 빨리 오늘의 목적지가 나오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내가 힘들어서 뒤쳐지려고 할때마다 태수형이 참 고맙게도 기다려주면서 조금만 더 가면 이제 다왔으니 힘내라고 해줬다. 목적지에 거의 다왔을때 마리아나 부부를 만났고, 4명이서 함께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수비리'에 도착했다. 하루종일 걸으면서 가장 기쁜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그날 당일의 목적지가 내 눈앞에 나타날 때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근데, 마을이 너무 고요하다. 자료에 따르면 이 마을에는 2곳의 알베르게가 있다. 한 곳을 찾았으나, 닫혔다. 그리고 다른 한 곳을 찾았는데, 여기도 닫혔다...What the...
겨울철 카미노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알베르게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여름철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카미노를 찾기 때문에 거의 모든 알베르게가 문을 열어도 그 인원을 다 수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정반대로 겨울철에는 카미노를 찾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줄기 때문에 문을 열지 않는 알베르게들이 발생한다. 첫날 생장에서 순례자 여권을 만들어 주시는 할아버지께서 각마을의 알베르게 오픈 현황이 적힌 자료를 건내주면서 우리에게 그 자료가 100%맞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분명 자료에 수비리의 알베르게는 열려있다고 했는데...출발한지 이틀만에 자료가 100%맞지 않다는걸 몸소 경험하게 된 셈이다.
마을에는 알베르게 이외에도 우리나라로 치면 모텔같은 곳이 있다. 마리아나 부부는 자기들은 오늘 목적지가 딱 여기까지라면서 그 모텔로 들어가버렸다. 나도 오늘 목적지가 여긴데......모텔은 알베르게보다 가격이 현저히 비싸다. 그럼에도 그 돈을 지불하고 수비리에서 잘 생각이 있었는데 태수형이 다른 사람들 올때까지 점심이나 먹으면서 조금만 기다려보자고 했다. 점심이랄 것도 없는게. 과자와 초콜릿 그리고 물이 전부다.
오는동안 물을 한모금도 안마셨기에 여기서 쉬는 동안 한통을 다 마셔버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혜정이 누나도, 대연이형도, 아버님도 보이질 않았다. 그러자 태수형이 날 설득하기 시작했다. 5km만 더 가면 마을이 하나 더 있다고, 거기 알베르게도 안열었으면 거기서는 모텔에서 자자고. 그리고 난, 보기좋게 넘어갔다. 흔히 일반사람들이 걸어서 1시간이면 4km를 간다. 그래서 5km는 금방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지와 오르막길은 다.르.다.
피로가 절정이었다. 그렇다고 그 상황에서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쉬기 위해선 빨리 다음 마을에 도착하는 것 말곤 답이 없다. 5km만 가면 되는데도 얼마나 남았는지 써있는 안내판이 뭐 그리도 많은지, 난 많이 걸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직도 4km나 남았다는 안내판이 보이면, 힘이 쫙쫙 빠진다. 태수형도 이쯤되니 힘들어 보였다.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둘 사이에 침묵만이 있기를 20분쯤 지났을까, 드디고 다음 마을인 라라소냐가 100m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기쁘지 아니 할 수 가 없는 상황이다. 태수형이 너의 기쁨을 빨리 표현하라고 해서 두 팔 벌려 만세를 불렀다.
다행히 이곳 알베르게는 문을 열었다. 그런데...이 알베르게...쓰레기다. 어떠한 난방시설도 찾아 볼 수 없으며, 와이파이도 안되고 콘센트도 없고 벽에는 곰팡이가 보인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여기서 자야만 하는 판국이다. 나와 태수형 모두 다 씻고 나니 누가 들어온다. 혜정이 누나와 대연이형과 아버님이다. 한국인들...돈 더내고 자는 것보다는 조금 더 걷고 제 가격에 자는걸 택한다.;;; 나머지 외국인들은 모두 수비리의 모텔에서 자기로 했나보다. 결국 작별인사도 못하고 헤어지게 된것이다. 카미노에선 예고 없는 만남이 대부분이지만 그 예고 없던 인연들이 예고 없이 헤어는 일이 태반이다.
아침에 먹은거라곤 빵하나랑 커피한잔, 점심도 과자랑 초콜릿이 전부였기때문에 심히 배가 고팠다. 보통 마을에는 식당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이 마을, 지금 연말이라서 식당들이 다 문을 닫았덴다. 밥을 먹으려면 택시를 타고 전 마을인 수비리까지 가야된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수비리에서 이 고생을 하면서 5km를 더 왔는데 배고프면 거길 다시 가란 소리다.ㄷㄷㄷ
그 누구도 찬성하지 않았고,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모르고 있을 그때, 태수형이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쌀이었다. 첫날 생장에서 만난 28세 한국인이 자기는 이제 여행이 다 끝났다면서 남을 쌀을 줬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 알베르게에는 부엌이 있다. 그 쌀만으로도 우리한텐 감사함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라면스프를 5봉을 챙겨왔는데 그 중 한봉을 여기서 썼다. 도저히 그냥 쌀죽은 그날의 허기상태로는 용납할 수 없었다. 대연이형이 본인 요리실력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결국엔 라면스프죽이긴 해도 요리는 요리다. 다행히 5인이 배부를만큼의 양이 나와서 우리 모두 저녁을 해결할 수 있었다.
(왼쪽부터 혜정이누나, 나, 아버님, 대연이형, 태수형)
위에 나와있듯이, 이 알베르게는 난방시설이 없다. 고로 밤이 무지하게 춥다는 것이다. 이런 알베르게에서도 추위를 견디는 방법은 다 있다. 혜정이누나는 핫팩을 사용한다. 나도 하나 받았는데, 앞으로를 위해 아껴뒀다. 난 물통을 사용한다. 1L짜리 큰 물병인데 부억에 가서 물을 끓이고 그 물을 물병에 넣는다. 조금만 지나면 물병이 아주 뜨거워진다. 화상의 위험이 있기때문에 수건으로 물병을 감싸고 그걸 그대로 안고 잔다. 뭐 결국 자다가 물병이 뜨거워서 침낭밖으로 꺼내놓긴 한다.
여기오기전 한국에서 내가 최종목적지인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엽서를 쓰겠다고 친구들의 주소를 다 적어온 엽서들이 있었다. 난 이날 밤에 모든 엽서를 다 썼다. 힘들어 죽겠다고. 너넨 오늘 방학식을 하겠다고. 내가 왜 여깄는지 모르겠다고.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온갖 푸념을 다 써놓고 결국 잠에 들긴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등산화께선 내게 큰 충격을 선사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