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을 걷다 Day6 뿌엔떼 라 레이나 ~ 에스떼야 (2011.12.31)

진형록2013.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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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예고치 않은 야간 도보때문에 혹이나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뭐 일단 아침에 일어나보니 다행히도 괜찮았다. 내 옆에서 자고 있던 이탈리아 부부는 눈을 뜨니 사라져있었다. 다들 오늘 목적지가 22km 떨어진 에스떼야로 갖다. 있다가 저녁에 보자며 Buen Camino를 외치고는 하나 둘씩 출발한다. 오늘이 2011년의 마지막날이기 때문에 에스떼야에 가면 아마 파티를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하루하루 걷다보니 벌써 이 길위에서도 4일째다.
Buen Camino(부엔 카미노), '좋은 여행하세요', '당신의 앞날에 좋은 일이 있기만을 바랍니다'란 뜻을 지닌 이 말은 카미노를 걷는 사람이라면 하루에도 몇번씩 듣고 말하는 용어다. 순례자들에게는 인삿말과도 같은 것이다. 스페인 현지인들이 순례자들을 보면 항상 큰 소리로 외쳐주는 말도 역시 Buen Camino다.
오늘 하루동안 아무런 이변이 생기지 않는 다면 모두들 에스떼야에서 다시 만나겠지만, 지난 몇일만 돌이켜보더라도 그게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다. 어제의 피로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 셋은 오늘 도착시간이 몇시이건 간에 에스떼야서 자기로 하고 길을 나선다. 

 

어제는 오밤중에 헤드랜턴 불빛에만 의존해서 찾아왔고, 알베르게 찾는데에만 정신이 팔려서 미처 알아채지 못했는데, 뿌엔떼 라 레이나, 상당히 예쁜 마을이다.


 

혜정이누나의 카메라 삼각대가 단체 사진 찍기에는 안성맞춤이다.(하지만 이 삼각대...나중에 부러지고 만다.)


 

전형적인 카미노의 안내판이다. 노란가리비와 순례자 그림, 그리고 노란 화살표. 이 세가지중 한가지만 찾아도 길을 잃을 일은 없다. 나중에 가서 몸소 느끼게 되지만, 상대적으로 프랑스와 가까운 이 나바라 지방이 안내판을 매우 잘 설치해 놨다. 어젯밤에 우리 세명이 무사히 도착하게 된것도 안내판의 덕이 크다.


아침이고 하니, 혜정누나와 태수형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천천히 걷다보니 갑자기 배가 심히 고파진다. 당장 갖고 있는 식량은 물이 전부니, 뭔가를 먹고 싶다면, 빨리 다음 마을에 도착하는거 말곤 방법이 없다. 저 앞에 마을 하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니 나도 모르게 얘기 도중에 걸음 속도를 높이고 만다. 한두번 이런게 아니기 때문에 혜정이누나도 "형록이 또 배고픈가 보다.'라고 한다. 20분쯤 걸었을까. 마을 입구에 도착했는데, 할 말을 잃었다. 분명 저 멀리서 봤을때는 고도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 마을 상당히 높다.


 

위 사진은 혜정이누나가 뒤에서 찍어준 사진인데, 사진만 놓고 봤을 때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사진이다. 하지만 사진이 멋있는 것과는 별개로 저 당시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 '여길 언제 올라가.' 뿐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난지 6일 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아직도 마을 곳곳에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있다. 카미노를 상징하는 카리비마크 옆에 산타인형이 매달려있다. 식료품점에서 점심으로 먹을 것들을 사고 우선은 이 마을을 통과해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역시 이 마을, 상당한 오르막길을 자랑한다. 장거리 산행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산을 오를때보다는 산에서 내려올때 다리에 무리가 더 간다. 이 높은 마을을 올랐으면, 다음 순서는 내려오는건데, 나도 태수형도 무릎에서 상당한 통증을 느꼈다. 어제 페르돈 언덕을 넘는데서 비록된 거라고 본다. 


 

내리막길에서 다리 통증을 줄이는 방법은 뒤로 혹은 옆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보기는 흉해도 다리는 안아프다. 


 

마을 출구 쪽에 할아버지 두분이 보인다. 혜정이누나가 반가워서 올라(스페인 인삿말)!라고 인사했는데 이 할아버지들, 우리도 다 들을 정도의 크기로 '치노, 치노'라고 말했다. 중국인이란 뜻이다. 순간 발끈한 혜정이누나, 큰 소리로 우린 코리아노라고 소리쳐보지만, 할아버지들은 그저 웃을뿐...


오늘 길이 상당히 사람 피곤하게 만든다. 처음부터 평지면 됫을 길인데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나와 태수형이 무릎통증으로 내리막 길에 약한 반면, 혜정이누나는 오르막길에 상당히 약하다.


 

오그막 길을 오르면서 우리에게 먼저가서 기다리라고 손짓하는 혜정이누나. 저 뒤로 방금전에 올라갔다왔던 마을이 보인다. 혜정이누나가 오르막길에서 속도를 못내는걸 알기 때문에 나랑 태수형은 먼저가서 기다리기로 한다. 가다보니 어제 내 옆 침대에서 잔 이탈리안 부부가 보인다. 아줌마는 상당히 차가워 보이는데 이 배불뚝이 아저씨 매우 능글맞게 생겼다. 우리를 흘깃 보고는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어준다. 


태수형도 나도 배가 고플데로 고팠기에 그만 가고 혜정이누나를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혜정이누나가 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까 식료품점에서 산 것들을 바게트에 넣어서 얼추 샌드위치 비스무리한 것을 만들었다.


 

그냥 빵가르고 치즈넣고 잼바르고 햄넣고 하면 끝난다. 이 곳에서 파는 바게트를 한국의 파리바게트에서 파는 보드라운 마늘 바게트와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곳 바게트는 빵이라기 보단, 돌에 가깝다. 빵을 가르는 것도 손으로는 안되고 스위스 칼을 써야만 가능하다. 여정 내내 배낭에 바게트를 꽂고 다녀야 될 만큼 주요한 식량인데, 부드러운 밥만 먹던 한국인들. 초반에 이 바게트땜에 입천장까지 다 까지며 고생좀한다.


  

...완성이 됫긴 했는데...배고파 돌아가시겠는데 바게트 4분의 1조각. 이게 전부란다. 그렇다고 다같이 돈모아서 산거니 나만 더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사실 이런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태수형과 슬슬 보이지 않는 마찰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거의 항상 혜정이누나가 우리 둘 사이에서 중재를 해주는 역할이다. 저 빵조각도 점심은 점심이기에 먹고 소화나 시킬겸 밴치에 잠시 누웠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간다.


점심도 먹었으니 다시 걷기 시작한다. 오늘 걷고 있는 이 길이 영화 The Way 에서 꽤 유명한 길인가보다,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야 저 영화를 봤는데, 태수형과 혜정이누나는 미리 영화를 보고 왔단다.


 

전형적인 카미노의 풍경이다. 나와 혜정이누나의 가방에서 가리비가 빛난다. 사진에서 보이듯 혜정이누나의 삼각대는 때로는 짐이다. 


시간이 지나자 혜정이누나와의 거리차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서로 얘기하면서 걷는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에 서로 알아서 격차를 벌이기도 한다. 태수형이 선두 그 바로뒤에 내가 간다.


 

12시가 넘어가니 햇살이 상당히 뜨겁다. 그렇다고 겉옷을 벗으려니, 12kg짜리 가방을 풀렀다가 다시 메기가 번거롭다. 쭉 앞서 걷던 태수형이 갑자기 멈춰서 나를 기다린다. '형 왜 안가요?'라고 소리쳐 묻기엔 힘이 들기에 일단 형이 있는 곳까지 갔더니, 여기 옆에 서보란다. 갈대밭이다.


 

나는 태수형이 사진찍어달라고 할 때 말고는 태수형을 거의 안찍었는데, 난 태수형 사진모델 역할 아주 제대로 해줬다. 저 당시에는 걷다가 멈추고 사진찍고 다시 걷는게 귀찮았는데, 지금와서 보면 그래도 형 덕분에 내 사진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다.


 

초반만 하더라도 사진은 거의다 디카로 찍었는데 이게 하루이틀 지나다 보니 주머니에서 번번히 카메라 꺼내기도 귀찮아져서 결국에는 핸드폰으로 다 찍게 된다. DSLR을 목에 걸거나 가방에 넣어갖고 다니는 순례자들도 있는데, 대단한 분들이다.


햇살때문에 더워서 헥헥거리며 걷는데 어디서 상당히 높은 여자 목소리가 우리 이름을 부르는게 들린다.


 

바티와 크리스티나다. 바티도 바티지만 크리스티나는 무한 긍정의 아이콘이다. 상당히 높은 음석에 과한 리액션과 웃음 소리때문에 카미노 전체의 활력소가 되준다. 현재 미국 구글 경제팀에서 일하는 크리스티나는 한국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영어 총 4개국어가 가능하기 때문에 활력소 역할과 동시에 순례자들사이에서 통역사 역할도 해준다. 한국어는 어디서 배웠냐고 물었더니, 연세대학교 어학당에서 배웠단다. 멕시코에서 온 바티는 멕시코에 남편과 딸아이를 두고 혼자 카미노 위에 선 주부다. 걸음이 상당히 느린 이 둘은 어느새 단짝이 되었다.


태수형과 나는 드디어 에스떼야의 바로 전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에 들어서면서 부터 계속 이상한 바퀴끄는 소리가 들렸는데, 얼마 안가서 그 정체가 드러났다.


 

이 아이들이 내는 소리였다. 정말, 퀵보드를 이렇게 역동적으로 타는 애들은 처음봤다. 만화 같은걸 보면 스케이트 보드나 인라인을 탈때 바퀴에서 불꽃이 튀기는거. 그걸 얘들이 보여줬다.왼쪽에 입가리고 혼자 감격스러워하는 애가 거의 대장급인데 조금전에 저 오르막길에서 내려오다가 차에 치일 뻔 했는데 거기에 본인도 놀란거다. 그런 위험을 겪고서도


 

다시 올라간다.


저 아이들 덕에 한참을 웃고는 다시 걷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스떼야의 입구가 보인다. 근데 에스떼야도 작지 않은 마을이었다. 3개의 알베르게가 있는데 그 중 한 곳만 문을 열었다고 한다. 어디부터 가봐야될지 몰라서 제일 가까운 알베르게부터 갔는데 다행히도 이곳이 그 문연 알베르게였다. 할머니 한분이 운영하는 듯한 알베르게인데, 그 손자가 할머니의 일을 돕고 있다. 


 

이름은 안톤. 우리가 머문 이날 하루에만 할머니한테 5번은 넘게 혼났다. 아침에 함께 출발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혜정이 누나가 왔는데, 아까 우리가 본 이탈리안 부부와 함께 왔다고 했다. 그 이탈리안 부부는 어디 갔는고 하니, 한해의 마지막 날인 오늘을 부인께선 특별히 보내고 싶었나보다. 아저씨가 자기는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이 도시의 호텔에서 보내게 되었다고 했단다.


상당히 잘 꾸며진 알베르게였다. 게다가 오늘은 2011년의 마지막날이기에 순례자를 위한 만찬이 준비되있다고 했다. 스페인에서는 한해의 마지막날에 포도 12알을 먹는 다고 한다. 그래서 주인 할머니가 슈퍼에 포도사러 가는데 같이 갈 사람들은 따라오라고 해서 태수형과 혜정이누나와 장 보러 따라갔다.


 

계산 하기는 분이 주인 할머니다.(물론 계산은 본인 것만) 지난 몇일 상당한 식량난에 부딪힌 우리였기 때문에 이번엔 작정하고 아주 제대로 샀다. 가방에 어떻게 다 넣을지는 나중일이다. 


알베르게에 돌아오다가 어느 한 남자가 한국인 아니시냐고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난 되게 놀랐는데, 혜정이누나는 그 아저씨한테 혹시 여기 태권도관장님이 아니시냐고 물었다. 한국에 있는 카미노 카페에서 이미 유명인사라는 것이다. 관장님이 지금은 연말행사에 자기가 색소폰을 연주하러 가야되서 있다가 밤에 자기집으로 초대하겠다고 하셨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이웃 주민들도 와서 만찬을 거들고 있었다. 기대 이상의 만찬이었다. 


(왼쪽부터 크리스티나, 바티, 카르멘, 쥬디)


배부르게 만찬을 마치고 침대 위에서 일정 정리를 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이틀이 부족하다. 분명 어제 이틀치를 한번에 걸어왔는데도 이틀이 부족하다. 게다가 나는 피스테라(최종 목적지에서 버스로 3시간가량 떨어진 스페인의 서쪽 끝 바다마을)에 갈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3일이 부족한 것이다. 태수형은 나보다 출국날짜가 더 빠르기 때문에 중간에 버스를 탈 심산이었다. 그래서 얼마 후에 로그로뇨라는 대도시가 나오는데 거기서 함께 버스를 타자고 했다. 생각해보니 이거 자칫하면 끝까지 태수형과 함께 갈수도 있을 노릇이었다. 물론 반갑고 고맙고 좋은 동행인이지만, 태어나서 처음보는 사람하고 33일을 같이 지낸다는게 절대 쉬운일은 아니었다. 이건 심각히 고려해볼 문제였다. 일정문제로 고민하던 중 태권도 관장님께서 오셨다. 그 시끄럽던 안톤이 조용해졌다. 안톤도 태권도장에 다닌덴다. 


관장님 집이 알베르게 바로 옆에였다. 부인과 아들 딸 모두 한국인이었는데, 그 모습이 한국 현지 모습과는 심히 달랐기 때문에 뭔가 이국적이었다. 부인께서 직접 요리하신 빵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는 알베르게에 돌아오니 이미 모두들 잠자리에 들어있었다. 눕긴 누웠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렇게 2011년이 끝났고, 2012년, 스무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