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이 따로 따로 다른 곳에서 자며 예고치 못한 작별의 위기라고도 할 수 있는 밤이 지났다. 혜정이 누나와는 아직 이런 예고치 못한 작별을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로그르뇨’라는 대도시에서 만나기로 했다. 태수형도 오늘 로그르뇨까지 간다는 것 같았다. 태수형이 어제 잔 마을은 로그르뇨에서 9.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혜정이 누나도 길어야 17.5km 떨어져있다. 문제는 나다. 어제 그 이른 점심시간에 몸이 좋지 않다고 혼자 이 ‘로스 아스꼬스’에 짐을 풀었으니, 다시 이 사람들을 만나려면 오늘 28.5km를 가야된다. 혼자 갈 길이 너무 멀다. 아침에 바티, 크리스티나, 그리고 이탈리안 부부한테 어디까지 가냐고 물었더니 로그르뇨까지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혼자 일찍 길을 나선다. 아무레도 남들보다 오늘 하루 가야할 거리가 10km는 더 많기 때문에 발걸음이 빨라질 수 밖에 없다. 문제는...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비에서 멈췄다면 그러려니 했을텐데 이 비가 점차...우박이 되기 시작한다. 그리곤 바람이 분다. 우박이 바람과 조화를 이루기 시작하면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건 간에, 아무 신명나게 머리를 얼음조각들이 두들겨 주신다. 안그래도 오늘 갈길이 먼데 아침부터 엄음으로 얼굴마사지를 당하니, 서럽다. 혜정이누나한테 어디즈음이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아직도 상당히 많이 떨어져있다. 누나가 있는데는 비가 안온덴다. 그러고 보니...저 앞에는 해가...있네???
조금만 더 가면! 햇빛을 쐴 수 있길레 안면에 얼음조각을 콕콕 박혀주며 빨리 걸어갔으나...보기엔 가까워보여도 이게 거리가 상당하다. 1시간을 넘게 우박을 맞으며 걸었을까. 드디어 구름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비온뒤 하늘은 맑음이란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닌 듯하다. 우박을 거쳐낸 햇빛이란...황홀.
갈길이 급하다 보니 오늘 내가 갈 코스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습득하지 못했다. 그런데...갑자기 왠 언덕길의 입구가 나타난다. 분명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은 길이다. 워낙에 우박 맞으며 힘이 쫙 빠진 터라,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쉬기로 한다. 이 때 당시엔 20살 패기로 쉬는 법도 모르고 무작정 목적지에 도착하는거에 미쳐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걷는 것 만큼이나 쉬는 것도 너무나 중요하다.
잠시 앉아서 혜정이누나랑 연락을 하니, 태수형은 이미 로그르뇨에 도착했단다. 태수형의 여행일정에 따르면 오늘 로그르뇨에서 형은 버스를 타고 3일치를 건너 뛰어야 한다. 난 아직 로그르뇨에 가려면 멀었으니...이대로면 태수형과의 작별을 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나도 여행일정상으론 언젠가는 3일치를 건너뛰어야 된다는 것. 버스를 타고 싶을 때 아무때나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로그르뇨나 이미 지나친 빰쁠로냐 같이 터미널이 있는 대도시에서만 탈 수 있는 것이다. 로그르뇨에서 나 역시 버스를 타도 되지만, 지금으로서는 태수형과 충분히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고 생각한다. 뭐 아쉬운건 사실이지만...그래도 혼자온 여행이니 헤어짐은 헤어짐이라고 생각한다.
배가 고프다. 거의 뛰다 싶이 왔기에 어느새 10km를 왔다. 태수형이 어제 잔 마을이다. 오늘 무슨 축제날인가보다. 마을에 퍼레이드도 보이고 동네가 상당히 활발하다. 마을 중심부에 있는 성당은 작은 마을치고는 상당히 웅장하다.
이 마을에서 어제 묵은 태수형이 부러워진다. 마을 자체가 너무 예쁘다. 게다가 언덕위에 있는 마을이어서 전망도 예쁘다. 특히 집들. 똑같은 집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색깔마저도 개성이 넘친다.
크리스마스가 지난지도 꽤 되었는데도 아직도 창문에 산타가 달려있다. 아침 내내 빠른 걸음으로 왔으니 배가 너무 고픈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 마을에서 편히 않아 점심까지 느긋하게 먹는 다면 언제 로그르뇨까지 가겠냐는 생각에 멈춤 없이 마을을 통과한다.
순례자의 길을 안내해주는 노란 표지판이다. 처음 몇일은 '예쁜 화살표'네 라는 생각뿐이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이 화살표의 소중함을 정말 깊이 깨닫게 된다. 앞으로 우리들이 살아갈 길에도 이런 화살표가 항상 존재하면 얼마나 좋겠는가만, 그렇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이 길고 힘든 이 길위에서 저 조그만 노란 화살표의 가치가 엄청나진다.
대도시가 가까워진다는 증거다. 길이 이렇게 닦여있는 지역을 찾는게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어째 오늘은 길에서 어떠한 순례자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지금 걸은지 몇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시계볼틈도 없고 일단은 혜정이 누나를 다시 만나야된다는 생각뿐이다.
로그르뇨의 도입부가 시작되는게 느껴진다.
분명 저럭 용도로 세워둔 돌기둥이 아닐 텐데, 누군가가 버려둔 등산화 한짝이 날 맞이한다. 아무것도 아니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길 위에서는 저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걷는 이에겐 새로움이고 감동이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로그르뇨. 저 다리 건너편에서 혜정이누나가 보여서 남의 나라에서 한국어를 누나이름을 외친다. 누나가 깜짝놀란다. 어떻게 벌써 여기에 있냐는 거다. 그러고보니 3시간반밖에 지나지 않아있었다. 급한 마음에 28.5km를 3시간반만에 걸어온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리고 지금 다시 해보라해도 못할 일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태수형이 아직 로그르뇨에 있었다. 어제 같이 묵은 한 외국인 순례자와 버스 터미널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2시가 아직 안되었기 때문에 알베르게들은 열지 않는다. 태수형과 다시 만나게 되었고, 5시에 버스를 타고 같이 가자는 제의를 받았다. 내 개인적인 여행을 봤을땐 이 로그르뇨에서 버스를 타는게 맞는 일정이다. 하지만, 아직 혜정이누나와 작별하고 태수형과 단 둘이 버스를 타고 떠날 준비가 안되었다. 그래서 감기기운이 심하다는 핑계를데고 오늘은 이 로그르뇨에서 자겠다고했다. 그런데 태수형이 내가 걱정된다고 그럼 자기도 일정 하루를 늦추고 기다려주겠다고했다. 이 순간 참 별의별 생각이 다들었지만, 태수형이 너무나 고마워졌다. 우리 모두가 혼자 온 여행이다. 자기만의 여행 일정이 있고, 걸어가야할 거리가 있다. 알게된지 이제 1주일쯤된 자기보다 10살이나 어린 동생을 위해 자신의 일정을 바꾸기란, 쉽지 않은 길이다.
태수형한테 미안해진다. 그동안의 형과의 갈등도 미안해진다. 분명 감기기운이 있던건 아니었는데, 정말로 감기기운이 생기기 시작했다. 약먹고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 태수형과 함께 버스를 타기로 했다. 혜정이누나와는 오늘이 마지막인 셈이다. 감기기운에 나는 알베르게에 누워있고 누나와 형이 장을 봐왔다. 우리 셋이 함께하는 마지막 만찬이었다. 처음으로 제대로된 작별을 하게 된다. 1주일 알게된 혜정이 누나지만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8시가 되서 다들 피곤한터라 자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크리스티나와 바티였다. 원래 목적지까지 너무 일찍 도착해버려서 로그르뇨까지 오고 말았다는 것이다. 5명이 함께 아는 사람들이니 이렇게 반가울수가 없다. 크리스티나와 바티와도 내일 정식으로 제대로된 작별을 하기로 하고 오늘은 아픈 몸때문에 일찍 잠에 든다.
스페인을 걷다 Day8 로스 아르꼬스 ~ 로그르뇨 (2012.01.02)
세 사람이 따로 따로 다른 곳에서 자며 예고치 못한 작별의 위기라고도 할 수 있는 밤이 지났다. 혜정이 누나와는 아직 이런 예고치 못한 작별을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로그르뇨’라는 대도시에서 만나기로 했다. 태수형도 오늘 로그르뇨까지 간다는 것 같았다. 태수형이 어제 잔 마을은 로그르뇨에서 9.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혜정이 누나도 길어야 17.5km 떨어져있다. 문제는 나다. 어제 그 이른 점심시간에 몸이 좋지 않다고 혼자 이 ‘로스 아스꼬스’에 짐을 풀었으니, 다시 이 사람들을 만나려면 오늘 28.5km를 가야된다. 혼자 갈 길이 너무 멀다. 아침에 바티, 크리스티나, 그리고 이탈리안 부부한테 어디까지 가냐고 물었더니 로그르뇨까지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혼자 일찍 길을 나선다. 아무레도 남들보다 오늘 하루 가야할 거리가 10km는 더 많기 때문에 발걸음이 빨라질 수 밖에 없다. 문제는...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비에서 멈췄다면 그러려니 했을텐데 이 비가 점차...우박이 되기 시작한다. 그리곤 바람이 분다. 우박이 바람과 조화를 이루기 시작하면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건 간에, 아무 신명나게 머리를 얼음조각들이 두들겨 주신다. 안그래도 오늘 갈길이 먼데 아침부터 엄음으로 얼굴마사지를 당하니, 서럽다. 혜정이누나한테 어디즈음이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아직도 상당히 많이 떨어져있다. 누나가 있는데는 비가 안온덴다. 그러고 보니...저 앞에는 해가...있네???
조금만 더 가면! 햇빛을 쐴 수 있길레 안면에 얼음조각을 콕콕 박혀주며 빨리 걸어갔으나...보기엔 가까워보여도 이게 거리가 상당하다. 1시간을 넘게 우박을 맞으며 걸었을까. 드디어 구름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비온뒤 하늘은 맑음이란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닌 듯하다. 우박을 거쳐낸 햇빛이란...황홀.
갈길이 급하다 보니 오늘 내가 갈 코스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습득하지 못했다. 그런데...갑자기 왠 언덕길의 입구가 나타난다. 분명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은 길이다. 워낙에 우박 맞으며 힘이 쫙 빠진 터라,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쉬기로 한다. 이 때 당시엔 20살 패기로 쉬는 법도 모르고 무작정 목적지에 도착하는거에 미쳐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걷는 것 만큼이나 쉬는 것도 너무나 중요하다.
잠시 앉아서 혜정이누나랑 연락을 하니, 태수형은 이미 로그르뇨에 도착했단다. 태수형의 여행일정에 따르면 오늘 로그르뇨에서 형은 버스를 타고 3일치를 건너 뛰어야 한다. 난 아직 로그르뇨에 가려면 멀었으니...이대로면 태수형과의 작별을 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나도 여행일정상으론 언젠가는 3일치를 건너뛰어야 된다는 것. 버스를 타고 싶을 때 아무때나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로그르뇨나 이미 지나친 빰쁠로냐 같이 터미널이 있는 대도시에서만 탈 수 있는 것이다. 로그르뇨에서 나 역시 버스를 타도 되지만, 지금으로서는 태수형과 충분히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고 생각한다. 뭐 아쉬운건 사실이지만...그래도 혼자온 여행이니 헤어짐은 헤어짐이라고 생각한다.
배가 고프다. 거의 뛰다 싶이 왔기에 어느새 10km를 왔다. 태수형이 어제 잔 마을이다. 오늘 무슨 축제날인가보다. 마을에 퍼레이드도 보이고 동네가 상당히 활발하다. 마을 중심부에 있는 성당은 작은 마을치고는 상당히 웅장하다.
이 마을에서 어제 묵은 태수형이 부러워진다. 마을 자체가 너무 예쁘다. 게다가 언덕위에 있는 마을이어서 전망도 예쁘다. 특히 집들. 똑같은 집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색깔마저도 개성이 넘친다.
크리스마스가 지난지도 꽤 되었는데도 아직도 창문에 산타가 달려있다. 아침 내내 빠른 걸음으로 왔으니 배가 너무 고픈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 마을에서 편히 않아 점심까지 느긋하게 먹는 다면 언제 로그르뇨까지 가겠냐는 생각에 멈춤 없이 마을을 통과한다.
순례자의 길을 안내해주는 노란 표지판이다. 처음 몇일은 '예쁜 화살표'네 라는 생각뿐이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이 화살표의 소중함을 정말 깊이 깨닫게 된다. 앞으로 우리들이 살아갈 길에도 이런 화살표가 항상 존재하면 얼마나 좋겠는가만, 그렇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이 길고 힘든 이 길위에서 저 조그만 노란 화살표의 가치가 엄청나진다.
대도시가 가까워진다는 증거다. 길이 이렇게 닦여있는 지역을 찾는게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어째 오늘은 길에서 어떠한 순례자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지금 걸은지 몇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시계볼틈도 없고 일단은 혜정이 누나를 다시 만나야된다는 생각뿐이다.
로그르뇨의 도입부가 시작되는게 느껴진다.
분명 저럭 용도로 세워둔 돌기둥이 아닐 텐데, 누군가가 버려둔 등산화 한짝이 날 맞이한다. 아무것도 아니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길 위에서는 저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걷는 이에겐 새로움이고 감동이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로그르뇨. 저 다리 건너편에서 혜정이누나가 보여서 남의 나라에서 한국어를 누나이름을 외친다. 누나가 깜짝놀란다. 어떻게 벌써 여기에 있냐는 거다. 그러고보니 3시간반밖에 지나지 않아있었다. 급한 마음에 28.5km를 3시간반만에 걸어온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리고 지금 다시 해보라해도 못할 일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태수형이 아직 로그르뇨에 있었다. 어제 같이 묵은 한 외국인 순례자와 버스 터미널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2시가 아직 안되었기 때문에 알베르게들은 열지 않는다. 태수형과 다시 만나게 되었고, 5시에 버스를 타고 같이 가자는 제의를 받았다. 내 개인적인 여행을 봤을땐 이 로그르뇨에서 버스를 타는게 맞는 일정이다. 하지만, 아직 혜정이누나와 작별하고 태수형과 단 둘이 버스를 타고 떠날 준비가 안되었다. 그래서 감기기운이 심하다는 핑계를데고 오늘은 이 로그르뇨에서 자겠다고했다. 그런데 태수형이 내가 걱정된다고 그럼 자기도 일정 하루를 늦추고 기다려주겠다고했다. 이 순간 참 별의별 생각이 다들었지만, 태수형이 너무나 고마워졌다. 우리 모두가 혼자 온 여행이다. 자기만의 여행 일정이 있고, 걸어가야할 거리가 있다. 알게된지 이제 1주일쯤된 자기보다 10살이나 어린 동생을 위해 자신의 일정을 바꾸기란, 쉽지 않은 길이다.
태수형한테 미안해진다. 그동안의 형과의 갈등도 미안해진다. 분명 감기기운이 있던건 아니었는데, 정말로 감기기운이 생기기 시작했다. 약먹고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 태수형과 함께 버스를 타기로 했다. 혜정이누나와는 오늘이 마지막인 셈이다. 감기기운에 나는 알베르게에 누워있고 누나와 형이 장을 봐왔다. 우리 셋이 함께하는 마지막 만찬이었다. 처음으로 제대로된 작별을 하게 된다. 1주일 알게된 혜정이 누나지만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8시가 되서 다들 피곤한터라 자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크리스티나와 바티였다. 원래 목적지까지 너무 일찍 도착해버려서 로그르뇨까지 오고 말았다는 것이다. 5명이 함께 아는 사람들이니 이렇게 반가울수가 없다. 크리스티나와 바티와도 내일 정식으로 제대로된 작별을 하기로 하고 오늘은 아픈 몸때문에 일찍 잠에 든다.
내일 이 정든 사람들과 헤어진다. 그리고 난 태수형과 함께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