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크 소리

미스터리박물관2013.01.29
조회1,638

출처: 네이버 미스터리 박물관

       (http://cafe.naver.com/mysterymuseum)

 

 

작성자 angel_entity

 

 

 

 

 

 

 

오겠다는 남자친구가 오지 않아서 잔뜩 화가 나 있었어 

 

평소라면 화를 내다가

 

애꿎은 수화기를 던져버렸겠지만

 

그 날은 그럴 기운도 없었어

 

 

어찌할 줄 모르고 우울해져서는

 

나 자신을 위로한답시고 크림 스파게티를 만들려고 했어

 

그런데 우유가 없는 거야

 

되는 일이 없다고 더 낙심해서는 이걸 나가서 사와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어

 

약간...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어

 

초인종을 누르면 될 텐데 이런 식으로 호출 당한 건 처음이라-

 

하지만 틀림없이 쓸데없는 사람일 거라

 

아무도 없는 척 했어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으면 사라져 주는 게 예의일 텐데 말이지

 

쓰레기 같은 자식

 

끈질기게 노크를 해 대서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난 여기 없는 사람이라고!

 

배짱을 부려보다가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어

 

 

보통은

 

- 계세요? 계십니까?

 

한 마디라도 하고서는 쿵쿵쿵, 리드미컬하게 두드려야 정상 아냐?

 

그런데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사람의 음성이란 전혀 섞이지 않고

 

단조롭게, 같은 박자로

 

쿵....... 쿵...... 쿵......

 

.

.

.

 

 

 

이미 스파게티 같은 건 머리 속에서 지워지고

 

그 노크 소리에만 집중하게 되었어

 

현관의 구멍으로 누군지 확인할 수 있었겠지만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아서

 

얼어붙은 듯 한 자리에 서 있었어

 

 

그런데 조금 뒤에

 

그게 현관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

 

더 정확히 말하자면

 

더 이상 현관에서는 그 소리가 나지 않았어

 

콩....... 콩......

 

아까보다 조금 더 작게

 

신발장 나무문에서 그 소리가 나고 있었어

 

 

내가 헛것을 듣나보다 도리질을 쳐도

 

자꾸자꾸 다시 또 다시

 

내 의심을 사그러뜨리고 존재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그 소리가 나에게 다가왔던 거야......

 

 

순간 무슨 용기였는지 나는

 

- 꺼져! 어디서 장난질이야! 저리 꺼져! 나가 죽어버려!

 

라고 소리쳤어......

 

 

그러자 이번엔 보란듯이 현관문이 덜그럭거리더니

 

열려버렸어

 

.

.

.

 

 

 

 

 

- 그렇게 말할 것 까지는 없잖아?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고 남자친구가 들어왔어

 

갑자기 울컥해서 눈물이 솟았어

 

긴장이 풀려 손에 들고 있던 스파게티 면은 다 쏟아버렸고-

 

 

그 저질스런 장난은 뭐냐고 그를 비난했어

 

물론 그는 장난 따위 치지 않았다고 했어

 

안그래도 약속을 어겨 미안한데 장난 칠 마음의 여유가 있었겠냐고

 

자기가 들어오는 걸 눈치채고 나가 죽으라 악담을 한 거 아니었냐고

 

미안한 건 미안한 건데 너도 좀 심하다고

 

정색을 하더라고

 

 

- 신발장

 

하고 내가 말했어

 

- 너가 신발장에도 장난을 한 거 아냐?

 

 

그는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라

 

신발장에서 나는 소리 따위

 

만들고자 마음 먹으면 못 만들 리 없었어

 

 

아직도 현관에 멀뚱히 선 채로

 

신발장? 하고 그가 묻더니 그게 뭐 어떻냐는 식으로

 

신발장의 나무문을 열었어 그리고는

 

- 이런 거나 들어있구만

 

낙엽 한 장을 꺼내 내 눈 앞에 펄럭여 보였어

 

 

가을이면 어디에나 즐비한 낙엽,

 

그 중 하나가 신발에 붙어 온 모양이었어

 

 

- 잎이 이제 많이 져버렸잖아

 

그가 창문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고

 

제법 앙상하게 드러난 가지들을 보며

 

그제서야 나는 과거의 어떤 기억이 겹쳐지는 걸 느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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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첫번째로 낙엽의 의미를 가르쳐 준 사람은

 

우리 외할아버지야

 

난 어려서 외가에서 자랐거든

 

가을에 창밖에 낙엽이 지는 모습을 보고

 

저게 뭐냐고 물었더니

 

외할아버지가

 

나뭇잎이 죽는 거라고 했어

 

이제 수명이 다 되어서 나무를 떠나는 거라고

 

 

사람도 죽냐고 물었더니

 

할아버지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목소리로

 

그렇다고 했어

 

난 죽는 게 뭔지는 모르지만 그림책에서 무덤을 본 적이 있어서

 

죽어서 혼자 무덤에 들어가면 심심할 테니

 

무덤에 창문을 내고 밖을 쳐다보는 게 낫겠다고 했어

 

가끔 나와서 누구하고나 같이 놀다 가는 게 낫겠다고 했어

 

할아버지는 그렇게는 안 된다고 했어

 

죽은 사람은 산 사람과 섞일 수 없다고 했어

 

 

그런데 나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맹랑하게도

 

- 할아버지도 아직 안 죽어봤으면서 그건 어떻게 알아?

 

라고 반문했고

 

티격태격 약간의 논쟁이 오가다가

 

남들과 다른 독특한 구석이 있어 서로 죽이 잘 맞았던 할아버지와 나는

 

그 자리에서 손가락을 걸어버렸어

 

보고싶을 테니까

 

만약 언젠가 할아버지가 죽어서 여기 올 수 있다면 한번 와서 나를 보는 걸로...

 

 

.

.

.

 

 

 

내 이야기를 듣고 남자친구는

 

- 외할아버지야말로 장난이 심하셨구나 정말 엉뚱하신 분이었네

 

자기는 도무지 손녀에게 죽으면 보러 온다는 둥,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어

 

 

하지만 그와 함께 장을 봐 오고 고대하던 크림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는 동안

 

엉뚱한 할아버지의 손녀인 엉뚱한 나는

 

할아버지에게 미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

 

뭘 알지도 못하고 꺼지라 욕이나 하다니-

 

 

할아버지가 나를 만나러 왔던 거라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병상에서

 

말씀을 하기 힘드셔서

 

무언가 두드리는 것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셨기 때문이야

 

 

.

.

.

 

 

 

 

또......

 

남자친구가 신발장을 열 때 이끌려 나온

 

웬 검은 형체가 슬슬 움직여

 

아직도 열려있는 현관으로

 

순식간에 스윽 빠져나가는 걸 봤기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