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리사 스테판에게는 어린 시절이 없다. 또래 아이들과 즐겁게 놀았던 행복한 기억이 없다. 아이로서의 삶을 전혀 살지 못하고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는 지금 매우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것도 여자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리는 풍요로운 삶을. 그러나 서른일곱 그녀의 삶은 너무 일찍 시작되었다. 두 살 때부터 아버지가 그녀에게 재능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켰기 때문이다. 그 때 처음으로 지능검사를 받았고, 그 후 베버리힐스 서부지역에서 다양한 종류의 사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제 IQ는 180-190으로 상당히 높았어요. 아버지는 제가 천재라고 생각하셨고 무한한 잠재력을 가졌다고 믿으셨죠. 두 살 때 지능 검사를 받았는데, 전 단지 네 살 언니들처럼 시험 보는 방법을 잘 알았을 뿐이었어요. 그래서 점수가 높게 나왔을 뿐 저는 결코 천재가 아니었습니다.”
스테판의 아버지는 당시 다이라나 젠슨Dylana Jensen 같은 음악 신동을 모범으로 제시했다. 젠슨의 콘서트에 아버지가 데려갔던 때를 그녀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젠슨이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시기였다. 아버지는 ‘다이라나가 어렸을 때 힘든 시기를 거쳤다’고, ‘음악 신동에서 어른 바이올리니스트, 그것도 자기보다 훨씬 재능이 많은 그들과 경쟁하는 단계로 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무섭게 말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말 속에서 차가운 비교를 느껴야만 했다.
“제 유년시절은 철저하게 혹사당했습니다. 지나치게 심했던 재능교육이 제게서 즐거움을 뺏어갔습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말도 타지 않고,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발레를 하지도 않습니다.” 말하면서 그녀는 점점 흥분했다.
스테판은 ‘어릴 때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정말로 그녀는 그 모든 것을 하고 있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또는 책을 읽으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금발의 그녀. 그 웃음은 그것들을 정말로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스테판은 로스앤젤레스의 웨스체스터Westchester 지역에 살고 있었다. 그 곳은 로스앤젤레스 공항LAX 근처로, ‘항공산업을 기념하기 위해 도로의 이름이 보잉항공사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지역’이다. 열일곱 살 때부터 그녀는 방위산업을 위해서 일했다. 현재 그녀는 엘 세군도El Segundo에 있는 레이시온Raytheon이라는 방위산업체에서 전기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1940년대에 조성된 점잖은 중산층 지역의 한 단층집에서 남편과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바로 뒤여서 그런지 나무 옆 커다란 양말에서 아이들의 이름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사람의 가치를 보여주는 성공의 지표가 있다고 아버지는 믿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 지표를 성취했다면, 당신은 탁월하고 영리합니다. 만약 당신이 말을 타고 질주하는 법을 배웠다면, 당신은 훌륭한 기수입니다. 만약 캘리포니아 수학시험에서 성적이 상위 2%에 들었다면, 당신은 대단합니다. 누구나 이런 지표를 성취했다면,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현재의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진정한 성취와 성공은 우리가 즐기는 과정에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유명 바이올리니스트가 바이올린을 탁월하게 연주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을 즐기면서 연주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세 살 때조차 저는 바이올린을 싫어했습니다. ‘제대로 쉬지 못하고 많은 레슨에 시달려야 했던 상황’에 분노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제게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습니다. 플루트와 바이올린, 체스, 미술, 기타 등 늘 두서너 가지 이상을 동시에 배워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뭔가에 흥미를 보이면 아버지는 바로 레슨을 시켰던 것입니다.”
덕분에 그녀는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다. 열다섯 살에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했고 스물한 살에 버클리대학교에서 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아버지의 열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열심은 그 성취를 그녀에게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버지에게 제는 천재였어요.” 스테판은 말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단지 제게 풍성한 삶을 선물하려고 했어요. 그러나 그것은 제 삶을 공허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답니다.”
내 아이에게 필요한 진정한 성취
라리사 스테판에게는 어린 시절이 없다. 또래 아이들과 즐겁게 놀았던 행복한 기억이 없다. 아이로서의 삶을 전혀 살지 못하고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는 지금 매우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것도 여자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리는 풍요로운 삶을. 그러나 서른일곱 그녀의 삶은 너무 일찍 시작되었다. 두 살 때부터 아버지가 그녀에게 재능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켰기 때문이다. 그 때 처음으로 지능검사를 받았고, 그 후 베버리힐스 서부지역에서 다양한 종류의 사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제 IQ는 180-190으로 상당히 높았어요. 아버지는 제가 천재라고 생각하셨고 무한한 잠재력을 가졌다고 믿으셨죠. 두 살 때 지능 검사를 받았는데, 전 단지 네 살 언니들처럼 시험 보는 방법을 잘 알았을 뿐이었어요. 그래서 점수가 높게 나왔을 뿐 저는 결코 천재가 아니었습니다.”
스테판의 아버지는 당시 다이라나 젠슨Dylana Jensen 같은 음악 신동을 모범으로 제시했다. 젠슨의 콘서트에 아버지가 데려갔던 때를 그녀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젠슨이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시기였다. 아버지는 ‘다이라나가 어렸을 때 힘든 시기를 거쳤다’고, ‘음악 신동에서 어른 바이올리니스트, 그것도 자기보다 훨씬 재능이 많은 그들과 경쟁하는 단계로 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무섭게 말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말 속에서 차가운 비교를 느껴야만 했다.
“제 유년시절은 철저하게 혹사당했습니다. 지나치게 심했던 재능교육이 제게서 즐거움을 뺏어갔습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말도 타지 않고,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발레를 하지도 않습니다.” 말하면서 그녀는 점점 흥분했다.
스테판은 ‘어릴 때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정말로 그녀는 그 모든 것을 하고 있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또는 책을 읽으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금발의 그녀. 그 웃음은 그것들을 정말로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스테판은 로스앤젤레스의 웨스체스터Westchester 지역에 살고 있었다. 그 곳은 로스앤젤레스 공항LAX 근처로, ‘항공산업을 기념하기 위해 도로의 이름이 보잉항공사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지역’이다. 열일곱 살 때부터 그녀는 방위산업을 위해서 일했다. 현재 그녀는 엘 세군도El Segundo에 있는 레이시온Raytheon이라는 방위산업체에서 전기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1940년대에 조성된 점잖은 중산층 지역의 한 단층집에서 남편과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바로 뒤여서 그런지 나무 옆 커다란 양말에서 아이들의 이름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사람의 가치를 보여주는 성공의 지표가 있다고 아버지는 믿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 지표를 성취했다면, 당신은 탁월하고 영리합니다. 만약 당신이 말을 타고 질주하는 법을 배웠다면, 당신은 훌륭한 기수입니다. 만약 캘리포니아 수학시험에서 성적이 상위 2%에 들었다면, 당신은 대단합니다. 누구나 이런 지표를 성취했다면,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현재의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진정한 성취와 성공은 우리가 즐기는 과정에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유명 바이올리니스트가 바이올린을 탁월하게 연주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을 즐기면서 연주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세 살 때조차 저는 바이올린을 싫어했습니다. ‘제대로 쉬지 못하고 많은 레슨에 시달려야 했던 상황’에 분노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제게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습니다. 플루트와 바이올린, 체스, 미술, 기타 등 늘 두서너 가지 이상을 동시에 배워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뭔가에 흥미를 보이면 아버지는 바로 레슨을 시켰던 것입니다.”
덕분에 그녀는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다. 열다섯 살에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했고 스물한 살에 버클리대학교에서 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아버지의 열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열심은 그 성취를 그녀에게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버지에게 제는 천재였어요.” 스테판은 말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단지 제게 풍성한 삶을 선물하려고 했어요. 그러나 그것은 제 삶을 공허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답니다.”
"영재부모의 오답백과(앨리사 쿼트, 알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