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20살입니다.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나기도 하는 일이 있는데 너무너무 속상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판에 글을 올립니다. 저는 특성화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쉽게 말해 전문계 고등학교를 다닌거지요 전문계라고 안좋은 학교도 아니고 경쟁률도 있고 시험도 봐서 들어가야하는 영상쪽 학교였습니다. 아버지께서 반대 하셨지만 그래도 제가 하고싶은 일이 있었기에 제 꿈을 위해서 그 학교에 진학을 했습니다. 학교의 특성상 저는 기숙사에서 생활을 해야했고 가족들에게 신경을 못쓴 사이 아버지께서는 암에 걸리셨고 그때부터 저희집은 점점 힘들어 졌습니다. 친척 어른들께서는 할아버지가 남기신 땅을 팔아 도와 준다고 약속 하셨고 아버지를 요양보내자는 이야기 도 나왔습니다. 다행히 아버지께서는 병원에 다니시면서 조금씩 차도를 보이셨고 집 분위기도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 설에 저희는 아버지를 모시고 친가에 갈 수 있었습니다. 설을 지낸 뒤 동생 졸업식이 있다는 말에 할머니께서는 그럼 아버지 말동무도 되 줄겸 동생 졸업식에 오신다고 저희와 함께 집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점점 차도를 보이던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위암이셨고 자극적인 음식은 절대 드시면 안되는데 할머니께서 아버지와 점심을 드시면서 미음만 드시는 아버지 앞에서 고추장에 밥을 비벼 드셨고 평소 자극적인 음식을 굉장히 좋아한 아버지께선 할머니를 따라 드셔 그게 위에 무리가 가 급속도로 암이 번지고 합병증까지 오셔서 제 얼굴도 못보시고 돌아가버리셨습니다. 아버지 장례식날은 많이 사람들이 오셨습니다. 평소 대인관계가 굉장히 좋으셨기에 근조화환도 많이 들어오고 사람들도 정말 많았습니다. 거기서 저희 친척은 저와 제동생에게 말했습니다. 너희 대학학비는 내가 다 대주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자기만 믿으라고... 저희는 아니 저희 어머니는 믿으셨습니다. 다들 너무나도 친했고 서로 위해주던 친척들이었기에 아무리 남이 남편죽으면 친가와는 남이라고 말을 해도 어머니는 믿으셨습니다. 우리 친가는 아니라고... 근데 그 말이 맞았나 봅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땅을 팔아 도와주겠다던 친척도, 요양비를 대주겠다던 친척도 아무도 저희에게 먼저 전화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어머니께서 전화하시고 안부를 묻고 평소처럼 대한건 어머니 뿐이셨습니다. 그리고 거의 2년이란 시간이 지나 저는 대학에 갈 나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었고 아무리 열심히해도 중간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는게 다 였습니다. 이 성적으로는 실기준비 없이 절대 4년제 대학에 갈 수 없었고 한달에 이백가량되는 실기학원에 보내달라는 말을 차마 어머니께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신 실기를 보지 않는 전문대에 진학을 해 편입을 하자는 생각을 하고 최대한 등록금을 대준다던 친척의 집과 가까운 대학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원서비도 넉넉하지 못해 세곳이 고작이었고 저는 결과를 기다리며 초조했습니다. 하늘이 저를 버리셨는지 세곳 모두 예비가 떳고 저는 일단 어디라도 가자는 생각에 친척의 집에서 좀 먼 곳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그 곳은 아무렇지 않게 합격이었고 어머니는 친척분께 전화를 거셨습니다. 친척집안이 모두 반대했습니다. 너무 멀다고 어떻게 다닐거냐고 기숙사에 들어간다고 했더니 그럼 생활비는 어떻할거냐고 알바를 한다고 했습니다. 안된다고 너무 힘들다고 가까운 곳이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라고....... 그래서 저는 그 대학을 포기했습니다. 너무 친척집이 도와주겠다는 것이 확고해 보였기에 다른 곳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말도안되게 그날 친척집과 가장 가까운 대학에 추합이 되었다는 전화가 왔고 어머니는 굉장히 기뻐하시며 전화를 거셨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전문대 나와서 뭐할거냐' '취직이나 시켜라' 였습니다. 자고 먹는거 친척집에서 한다고 쳐도 한달 생활비가 백만원 정도라고 그거 대줄 수 있겠느냐고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백만원? 저는 친척분들께 받는 설날 용돈 40만원 정도로 5개월을 지냅니다 학교까지 왕복 2만원 2주에 한번 씩 나가면서 말입니다. 한달에 4만원씩 다섯달, 20만원 빼고 20만원으로 5개월을 지냅니다. 코트도 인터넷에서 제일 싼거만 사입고 티 하나에 만원이상 쓰면 사치라고 생각합니다. 제 입장에선 그러니까요 어머니께선 아무말도 못하고 전화를 끊으시곤 우셨습니다. 그리곤 다른 친척분께 전화를 하셨습니다. 그 분과 이야길하니 이미 친척들끼리 이야기가 끝난거 같았습니다. 누군가가 저희 집안이 살만한거 같다고 선동을 했고 친척분들은 그 분 말에 다 넘어가신거 같았습니다. 그 분이 어머니께 그러셨답니다. 저 라식수술했냐고 ... ... 정말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라식이요? 그분이 제게 너무 자랑을 하시길래 어머니께서 저도 해줘야겠다고 말씀하신걸..... 제가 2년동안 쓴 렌즈를 끼고 찍은 사진을 보고... 제가 라식도 했다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그래도 엄마가 계속 부탁하셔서 등록금을 주셨습니다. 저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려고 전화를 걸었는데 거부하시더군요 ... 제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대학을 다녀야 하는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그냥 취직준비하는게 더 옳을까요? 정말...... 이렇게 까지 하면서 그 집안에서 다니고 싶지 않습니다. 특성상 대학을 꼭 졸업하지 않아도 되기에.... 정말로... 속상합니다.... 혹시라도 다 읽어 주신분 정말 감사합니다 감정이 격해서 두서없이 썼네요.. 1
말할 곳이 없어 판에 털어놓습니다..
저는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20살입니다.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나기도 하는 일이 있는데
너무너무 속상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판에 글을 올립니다.
저는 특성화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쉽게 말해 전문계 고등학교를 다닌거지요
전문계라고 안좋은 학교도 아니고 경쟁률도 있고 시험도 봐서 들어가야하는 영상쪽 학교였습니다.
아버지께서 반대 하셨지만 그래도 제가 하고싶은 일이 있었기에
제 꿈을 위해서 그 학교에 진학을 했습니다.
학교의 특성상 저는 기숙사에서 생활을 해야했고 가족들에게 신경을 못쓴 사이
아버지께서는 암에 걸리셨고 그때부터 저희집은 점점 힘들어 졌습니다.
친척 어른들께서는 할아버지가 남기신 땅을 팔아 도와 준다고 약속 하셨고 아버지를 요양보내자는 이야기
도 나왔습니다.
다행히 아버지께서는 병원에 다니시면서 조금씩 차도를 보이셨고 집 분위기도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 설에 저희는 아버지를 모시고 친가에 갈 수 있었습니다. 설을 지낸 뒤 동생 졸업식이 있다는 말에
할머니께서는 그럼 아버지 말동무도 되 줄겸 동생 졸업식에 오신다고 저희와 함께 집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점점 차도를 보이던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위암이셨고 자극적인 음식은 절대 드시면 안되는데 할머니께서 아버지와 점심을 드시면서
미음만 드시는 아버지 앞에서 고추장에 밥을 비벼 드셨고 평소 자극적인 음식을 굉장히 좋아한
아버지께선 할머니를 따라 드셔 그게 위에 무리가 가 급속도로 암이 번지고 합병증까지 오셔서
제 얼굴도 못보시고 돌아가버리셨습니다. 아버지 장례식날은 많이 사람들이 오셨습니다.
평소 대인관계가 굉장히 좋으셨기에 근조화환도 많이 들어오고 사람들도 정말 많았습니다.
거기서 저희 친척은 저와 제동생에게 말했습니다. 너희 대학학비는 내가 다 대주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자기만 믿으라고... 저희는 아니 저희 어머니는 믿으셨습니다.
다들 너무나도 친했고 서로 위해주던 친척들이었기에 아무리 남이 남편죽으면 친가와는 남이라고 말을
해도 어머니는 믿으셨습니다. 우리 친가는 아니라고...
근데 그 말이 맞았나 봅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땅을 팔아 도와주겠다던 친척도, 요양비를 대주겠다던 친척도
아무도 저희에게 먼저 전화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어머니께서 전화하시고 안부를 묻고
평소처럼 대한건 어머니 뿐이셨습니다.
그리고 거의 2년이란 시간이 지나 저는 대학에 갈 나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었고 아무리 열심히해도 중간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는게 다 였습니다.
이 성적으로는 실기준비 없이 절대 4년제 대학에 갈 수 없었고 한달에 이백가량되는 실기학원에
보내달라는 말을 차마 어머니께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신 실기를 보지 않는 전문대에
진학을 해 편입을 하자는 생각을 하고 최대한 등록금을 대준다던 친척의 집과 가까운 대학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원서비도 넉넉하지 못해 세곳이 고작이었고 저는 결과를 기다리며 초조했습니다.
하늘이 저를 버리셨는지 세곳 모두 예비가 떳고 저는 일단 어디라도 가자는 생각에 친척의 집에서
좀 먼 곳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그 곳은 아무렇지 않게 합격이었고 어머니는 친척분께 전화를 거셨습니다.
친척집안이 모두 반대했습니다. 너무 멀다고 어떻게 다닐거냐고 기숙사에 들어간다고 했더니 그럼
생활비는 어떻할거냐고 알바를 한다고 했습니다. 안된다고 너무 힘들다고 가까운 곳이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라고....... 그래서 저는 그 대학을 포기했습니다.
너무 친척집이 도와주겠다는 것이 확고해 보였기에 다른 곳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말도안되게 그날 친척집과 가장 가까운 대학에 추합이 되었다는 전화가 왔고
어머니는 굉장히 기뻐하시며 전화를 거셨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전문대 나와서 뭐할거냐'
'취직이나 시켜라' 였습니다.
자고 먹는거 친척집에서 한다고 쳐도 한달 생활비가 백만원 정도라고 그거 대줄 수 있겠느냐고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백만원? 저는 친척분들께 받는 설날 용돈 40만원 정도로 5개월을 지냅니다
학교까지 왕복 2만원 2주에 한번 씩 나가면서 말입니다. 한달에 4만원씩 다섯달, 20만원 빼고
20만원으로 5개월을 지냅니다. 코트도 인터넷에서 제일 싼거만 사입고 티 하나에 만원이상 쓰면
사치라고 생각합니다. 제 입장에선 그러니까요
어머니께선 아무말도 못하고 전화를 끊으시곤 우셨습니다.
그리곤 다른 친척분께 전화를 하셨습니다. 그 분과 이야길하니 이미 친척들끼리 이야기가 끝난거
같았습니다. 누군가가 저희 집안이 살만한거 같다고 선동을 했고 친척분들은 그 분 말에 다
넘어가신거 같았습니다.
그 분이 어머니께 그러셨답니다.
저 라식수술했냐고 ...
... 정말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라식이요? 그분이 제게 너무 자랑을 하시길래 어머니께서
저도 해줘야겠다고 말씀하신걸..... 제가 2년동안 쓴 렌즈를 끼고 찍은 사진을 보고...
제가 라식도 했다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그래도 엄마가 계속 부탁하셔서 등록금을 주셨습니다. 저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려고 전화를 걸었는데 거부하시더군요 ...
제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대학을 다녀야 하는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그냥 취직준비하는게 더 옳을까요?
정말...... 이렇게 까지 하면서 그 집안에서 다니고 싶지 않습니다.
특성상 대학을 꼭 졸업하지 않아도 되기에.... 정말로... 속상합니다....
혹시라도 다 읽어 주신분 정말 감사합니다
감정이 격해서 두서없이 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