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젝의 관점에서 본 영화 '베를린'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배경을 지닌 한국의 국제적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시대의 통찰력 있는 인문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이 영화를 봤을거라는 추측에서 출발합니다. 자~ 이제 매우 흥미로운 철학의 여행을 떠나볼까요? 우선 영화 속 인물관계도를 통해 정치적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크게 보면 삼자구도입니다. 국가가 없는 전체주의 - 이데올로기 세력 - 권력이 지배하는 민주주의 지젝은 말하죠 "합당한 권력없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여타의 인문좌파와는 다르게 철저히 정치가 윤리에 앞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도덕적 선이란 정치적 고려없이 있을 수 없다. 선과 악의 개념은항상 정치와 함께해야 판단할 수 있다. 대선후보에도 올랐던 지젝은 역사나 고전보다 현존하는 사회가 갖는 숙제를 우선으로합니다. 그런면에서 분단이라는 남북의 대치 상태는 지대한 관심요소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북한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지젝은 자본주의 교양가치주의, 가치적 이노미 상태가 오면서 질서에 대한 요구가 필요를 말합니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승리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공산주의가 법이고 질서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공산주의가 실패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전체주의 국가의 외양을 갖췄지만 그 이면에 있는건 다윈주의적 생존법칙이 지배하는 개인주의 결국 국가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이 국민 각자가 살아남아야하는 자력갱생의 국가이기 때문 마오저뚱의 중국, 스탈린의 소련, 지금의 북한이 그러합니다. 영화 속 표종성, 연정희, 이학수는 그렇게 국가에 버림받는 유령이 되어버리죠 북한은 베를린이라는 영역 즉, 새롭게 쓰여진 김정은 체제의 이데올로기를 겪고 있습니다. 지젝은 정치와 윤리의 양립이 필수부가결한 것이며, 정치적인 공간이 없는 공동선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공동선은 상황 의존적이고 가변적이여서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고, 행위자의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존립할 수 없다. 베를린으로 표현되는 이 공간 속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그것을 설명해줍니다. > 위험에 처한 베를린 세력 = 표류하는 북한 > 베를린을 장악하려는 세력 = 정치적 이데올로기 > 베를린의 음모를 추적하는 세력 = 낡은 민주주의 정치철학에 있어서 정치의 주체가 누구인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동안의 사회주의가 프롤레타리아적 입장의 것이였다면 21세기의 첨예하게 나눠졌습니다. 영화속 구 공산주의를 숭배하던 표종성이라는 아내 연정희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가난해도 당당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 그는 과거의 공산주의에 희망을 갖고 국가가 그것을 이행해 줄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김정일, 김정은이라는 국가의 원수가 해줄 수 있는게 없는 무력한 존재임을 알게됩니다. 표종성은 프롤레타리아적 사회주의의 표상입니다. 노동자 계급 우선, 지식인 기회주의자들의 컴플렉스가 가능했던 시대의 공산주의입니다. 현재 사회에서 억압받는 자는 실업자나 미세한 조직의 계급분화에 따른 하위 계층입니다. 영화 속 정진수가 그러한 인물입니다. 사회라는 것 자체가 계급적 적대관계가 필수라는 지젝의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은 혁명이 필요한 시점의 이데올로기 입니다. 이데올로기의 필연적 상태는 어떻게 오는가? 혁명이 일어나는 상태 1. 빈곤상태에 있을 때 2. 부정의한 상황을 경험했을 때 국제적으로 고립을 자처하는 북한에서 두 번째의 상태는 어렵습니다. 국민이 두번째 상태인 부정의한 상황을 인식하려면 최소한의 자유가 주어져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요구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경제력과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서 최소의 안전을 느껴야 하지만, 현실의 북한은 가난과 자력갱생만이 남은 카오스적 상태입니다. 영화 마지막 부분 표종성은 자신의 부정의한 상황을 인식하게 됩니다. 지젝은 "사회주의가 실패했으면 언제든지 처음부터 다시해야한다"고 말합니다. 표종수의 전향서는 지젝 관점에서 전향하는 자본주의, 새로운 공산주의로 볼 수도 있습니다. 여러 구도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남북 현실을 생각해볼만한 영화 '베를린' '슬라보예 지젝'이라는 정치철학자의 논점에서 해석해보았습니다.
[54호] 지젝의 관점에서 본 영화 '베를린'
- 지젝의 관점에서 본 영화 '베를린'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배경을 지닌 한국의 국제적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시대의 통찰력 있는 인문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이 영화를 봤을거라는 추측에서 출발합니다.
자~ 이제 매우 흥미로운 철학의 여행을 떠나볼까요?
우선 영화 속 인물관계도를 통해 정치적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크게 보면 삼자구도입니다. 국가가 없는 전체주의 - 이데올로기 세력 - 권력이 지배하는 민주주의
지젝은 말하죠 "합당한 권력없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여타의 인문좌파와는 다르게 철저히 정치가 윤리에 앞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도덕적 선이란 정치적 고려없이 있을 수 없다. 선과 악의 개념은항상 정치와 함께해야 판단할 수 있다.
대선후보에도 올랐던 지젝은 역사나 고전보다 현존하는 사회가 갖는 숙제를 우선으로합니다.
그런면에서 분단이라는 남북의 대치 상태는 지대한 관심요소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북한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지젝은 자본주의 교양가치주의, 가치적 이노미 상태가 오면서 질서에 대한 요구가 필요를 말합니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승리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공산주의가 법이고 질서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공산주의가 실패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전체주의 국가의 외양을 갖췄지만 그 이면에 있는건 다윈주의적 생존법칙이 지배하는 개인주의
결국 국가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이 국민 각자가 살아남아야하는 자력갱생의 국가이기 때문
마오저뚱의 중국, 스탈린의 소련, 지금의 북한이 그러합니다.
영화 속 표종성, 연정희, 이학수는 그렇게 국가에 버림받는 유령이 되어버리죠
북한은 베를린이라는 영역 즉, 새롭게 쓰여진 김정은 체제의 이데올로기를 겪고 있습니다.
지젝은 정치와 윤리의 양립이 필수부가결한 것이며, 정치적인 공간이 없는 공동선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공동선은 상황 의존적이고 가변적이여서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고, 행위자의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존립할 수 없다.
베를린으로 표현되는 이 공간 속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그것을 설명해줍니다.
> 위험에 처한 베를린 세력 = 표류하는 북한
> 베를린을 장악하려는 세력 = 정치적 이데올로기
> 베를린의 음모를 추적하는 세력 = 낡은 민주주의
정치철학에 있어서 정치의 주체가 누구인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동안의 사회주의가 프롤레타리아적 입장의 것이였다면 21세기의 첨예하게 나눠졌습니다.
영화속 구 공산주의를 숭배하던 표종성이라는 아내 연정희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가난해도 당당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
그는 과거의 공산주의에 희망을 갖고 국가가 그것을 이행해 줄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김정일, 김정은이라는 국가의 원수가 해줄 수 있는게 없는 무력한 존재임을 알게됩니다.
표종성은 프롤레타리아적 사회주의의 표상입니다.
노동자 계급 우선, 지식인 기회주의자들의 컴플렉스가 가능했던 시대의 공산주의입니다.
현재 사회에서 억압받는 자는 실업자나 미세한 조직의 계급분화에 따른 하위 계층입니다.
영화 속 정진수가 그러한 인물입니다.
사회라는 것 자체가 계급적 적대관계가 필수라는 지젝의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은 혁명이 필요한 시점의 이데올로기 입니다.
이데올로기의 필연적 상태는 어떻게 오는가?
혁명이 일어나는 상태
1. 빈곤상태에 있을 때
2. 부정의한 상황을 경험했을 때
국제적으로 고립을 자처하는 북한에서 두 번째의 상태는 어렵습니다.
국민이 두번째 상태인 부정의한 상황을 인식하려면 최소한의 자유가 주어져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요구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경제력과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서 최소의 안전을 느껴야 하지만, 현실의 북한은 가난과 자력갱생만이 남은 카오스적 상태입니다.
영화 마지막 부분 표종성은 자신의 부정의한 상황을 인식하게 됩니다.
지젝은 "사회주의가 실패했으면 언제든지 처음부터 다시해야한다"고 말합니다.
표종수의 전향서는 지젝 관점에서 전향하는 자본주의, 새로운 공산주의로 볼 수도 있습니다.
여러 구도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남북 현실을 생각해볼만한 영화 '베를린'
'슬라보예 지젝'이라는 정치철학자의 논점에서 해석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