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터넷 글에,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은 없어도 덜 아픈 손가락은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가난한 꽃집 첫째딸로 태어나, 엄마아빠가 사업에 성공해서 건물 몇채 갖고 있던 시간도 함께 보냈고,그 후 동생이 태어나고, 시간이 지나 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그 시간동안 경영이란 단어 자체를 모르는 엄마아빠가 사업을 운영하느라 힘들 때,그래도 집으로 들어오는 수익은 있었기에겉으로 보이는 집안은 잘 굴러갔었죠. 엄마아빠와 친할머니 사이의 싸움.어릴 때부터 할아버지가 남기신 유산 때문에 낫들고 친형을 위협하는 아빠의 모습을보았었고, 작은 고모를 감싸주던 친할머니에게 옷을 벗겨 내쫓으라는 막말을 들으며 컸고, 엄마 또한 이기적이던 친할머니에게 받는 스트레스를 풀다 못해 가끔은 저에게 풀었던 기억. 일이년을 참지 못하고 계속 같은 업종의 사업을 갈아없고 다시하던 아빠의 모습.남에게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가족모임이라 해놓고 곧 있음 또 바뀔 사업동료란 분을 데려와서 술판을 항상 벌여놓고, 친척모임이 있던 날, 모임이 끝나고 함께 집에 가면 좋으련만, 그런날도 중간에 내려서 술한잔 더 하고 와야 하는 그런 지긋지긋한 패턴. 초등학교 3학년때, 가족끼리 노래방에 간 날,쑥쓰럽기도 하고 노래에 자신도 없어 안부른다고 뺀 나를집에 오자마자 매를 들고 음악책을 펴 노래를 억지로 부르게 했던 기억..우는 건지 노래를 하는건지 모르지만 억지로 라도 뽑아내서 만족해 하던 표정.. 내가 21살인 이제, 미칠듯이.. 말은 안했지만 위염약, 타이레놀을 달고 살며 알바해서 모은공부자금.. 사업할때 필요하다며, 카드값을 막아야 한다며 고스란히 달라했죠.그래도 아빠니.. 전 바로 계좌이체 해서 드렸네요.항상 같은 모습.. 사업 한번 성공해서 번 돈으로, 야금야금 사업한다고 다 날려버리고,이제 집에서 팔게 없으니, 잘 되던 첫 사업도 망해서 남아있는게 없으니, 내 미래자금까지 넘어보셨죠.앞으로 1주일 후면 가져가신 돈의 일부인...약속하신 50만원을 다시 주시기로 한 날인데, 별로 기대는 안하고 있어요..50만원이 저에겐 2달동안 실컷 공부하고 남는.. 피같은 돈이지만, 이미 줘버린 거, 생각 안하려구요.
엄마도... 애 낳는건 쉽지만 부모되는게 어려운 거라는 한 어른의 말씀의 좋은 예시를 보여주시네요.7남매인가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막내로 자라, 누구를 책임진다는게 익숙한 일은 아니였겠죠.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건 단 하나.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엄마나 나나 신앙이 있으니, 신앙적으로 멘토가 되어주고,항상 내 편이 되어주고.. 그게 끝인데.나는 엄마에게 학원비를, 책값을, 유학비를 강요한 적이 없어요. 중2때부터 고3까지, 보내주신 미국 유학.솔직히 지금 풀어 놓자면, 영어를 배우고 새로운 세상을 보고, 경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그것보다, 딸려오는 자유가 너무 좋았어요.밤 10시에 학원이 끝나 걸어돌아오는 길에, 교복이 너무 불편해서 블라우스를 치마 밖으로꺼냈었죠. 그날 엄만 나의 그런 흐트러진 모습이 단정치 못하다고 집앞 놀이터에 불러내날 그네에 앉히고 엄만 앞에서 팔짱끼고.. 그런 딸 키운적 없단 말을 했었죠. 다른 사람에게는 날 방목시켜 길렀다고.. 학원에 얽매이지 않게 자유롭게 길렀다 말하고 다니시지만,그게 날 위한 자유였을까요? 아니면.. 손 댈 자신이 없으니 그냥 맡겨버리고 모른체 한 것일까요?그냥 달달이 학원, 학교 상담철, 이야기 하고 오고 매달 학원비 내고, 책값내고...그 외에 것은 전혀 관심이 없던 엄마.겉으로 보기엔, 아람단, 걸스카웃 부터 중학교 시험감독 까지 열성적인 엄마로 보였겠지만..내가 초등학교 3학년,아람단을 할때, 다른 5,6학년 언니들 틈에 껴 왕따를 당했다는 건 아시는지...어릴 때부터 낮은 자존감에, 성적을 잘 받으면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걸 깨닫고초등학교 때부터 새벽까지 시험공부 했던 것.. 애들과 말다툼을 하면, 내가 정말 소름끼치도록 증오하는엄마의 그 비꼬는 것,, 그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죽고싶을 정도로 제가 싫었죠. 항상 돈으로만,, 돈,,돈.. 엄마가 돈이 없어서 음대를 못갔다며, 나는 그런 부분에서 부족하지 않게 해주고 싶다며...그래요. 공부할때 물질적은 부분은 풍족 했어요. 하지만, 집이 기울어 지니까 왜 모든 부분을 내 탓으로 돌리는 거죠?죽을똥 말똥 돈줘서 유학보냈더니, 지금은 돈이 없다고 무시하는 거냐며....엄마아빠 힘든거 알고 유학.. 제가 먼저 그만둔다고 했었죠. 나름 악착같이 해서 아이비리그 꿈꾸며 고등학교 생활 했었는데, 괜찮다며. 한국가서도 열심히 할 수 있다고..그 와중에도 돈을 빌려서라도 보내줄테니까 유학 계속 하라 했던 것은 엄마였어요. 지금 엄마랑 한 집에 살며 항상 부딪히는 건...엄만 내가 엄마를 무시한다고 생각해서... 전.. 엄마의 그 날카롭고 상처주는 말 때문에...이미 벽이 생겨버렸네요. 한국와서 당장 돈이 필요하니, 알바때문에, 입시준비를 제데로 못해서그리고, 적응도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힘들어서 늦어진 대학입시... 의도치 않게 올해를 포함해서 삼수까지 하게 되었네요. 엄마아빠한테 짐되기 싫어서, 그리고 항상 엄마가 노래를 불렀던,대학교는 네가 알아서 해라. 그말 때문에, 책임을 지고 싶어서공부해야 할 시기에 학원알바를 풀타임을 뛰며 돈을 모았죠.그러고는 모든 통장을 가져오라는 엄마..그게 한국의 정서라며, 엄마말에 복종해야 한다며 강요했던 기억..전 절대 못드린다 했었죠. 엄만 또 내가 돈이 이제 없으니 니 혼자 먹고살겠다는 거냐며.. 그럼 집을 나가라 ..하셨었죠.지금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한다는, 식당에서 내가 지금 일하는게 창피하다는 엄마말을 듣고, 전 확실히 알았어요.엄만 교회를 다니는 신앙인이 아니에요. 엄마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감사..사랑..믿음.. 을 알았겠죠. 생활비 오십만원이 부족하니 좀 보태라... 이말이 어려워서집 어려우니까 오십만원 내놔. 라고 아침 밥상에서 얼굴도 안쳐다 보고 말하셨죠.삼일만에 딸에게 건넨말이 돈내놔.. 였어요. 오십만원? 드릴수 있어요, 당연히. 하지만 엄마의 그.. 내놔.. 하며 표정없는 말투가 너무 상처여서집에서 혼자 저 운건 아시나요?2만원이 없어졌다며,. 전화하셨었죠. 옷 개어놓은 곳에서 좀 찾아보라며..집 어려운 상황에 그 2만원이 큰 것이줄 알기에 정말 열심히 구석구석 찾았었어요..그때 동생이 장난삼아 옆에서 어? 2만원 나 가져도돼? 하는 말을 엄만 제가 한 말인줄로 오해하고 몇일동안 저에게 말을 안하셨죠.제가... 그렇게 철없어 보였나요? 아니면.. 그 말이 동생이 한건지 내가 한건지 객관적인 것은 안들리고, 그냥 제가 했었길 바랬나요?.... 어차피 나중에 오해 풀으려 설명을 해도 안믿으셨죠... 믿지않는데 어떻게 억지로 믿게 하나요.. 그냥 그 .. 부분에서 엄마가 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비춰져서 되게 큰 상처를 받았어요.그후로 계속 된 엄마의 대결구도..체해서,,속이 안좋아서 저녁을 안먹는다 했더니, 그냥 먹지말고 뒤지라고... 했던 것..동생이랑 오랜만에 맛있는걸 먹고오면 저년은 돈이 남아 쳐 돌아서 그런다고...엄만 머리 파마에 손톱 매니큐어에.. 글쎄요... 적어도 전 동생에게 맛있는걸 사주고 싶은 마음이었는데,엄마가 그 말을 하실 수 있으신지요..동생 과외비도 제게 내라고 하셨죠. 저보고 동생 영어도 책임지라 하셨죠.그래요. 왜 못하겠어요.. 친 동생인데. 하지만 엄만 동생은 한 없이 불쌍한 우리 아가, 나는 ... 독한년. 그거 뿐 아닌가요? 그게 싫어서 그래요. 이미 엄마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날 자식이 아닌 그냥 스트레스 풀 구석으로 엄마 마음속에 만들어 놓고,제가 무릎꿇고 빌며, 엄마가 다 옳다고 이제 복종하겠다고, 내 돈 다 드리겠다고 이걸 바라며이를 갈고 계시는 지금...제가 그렇게 하면 엄마의 삶이, 마음이 더 여유로와 질까요?아니면 돈은 없지만 서로 사랑하며, 이해하고 대화하며 사는게 더 좋을까요....? 다른 교회 사람들... 이모들.. 이모부들.. 외숙모, 외삼촌들 모두 우리 집안의 뚜껑을 열어보시면 무슨 말을 하실까 되게 궁금해요...그분들은 엄마가 참 기독교인이고, 신앙이 있고, 항상 하나님만 따라가며 엄마노릇 잘 하고 있을거라 생각하실 텐데... 오랜만에... 거의 2년만에 만난 친구가 그러더라구요.너 아닌거 같다고.전에 자신감 다 어디갔냐고.. 밝던 모습 다 없어져서 다른 사람 같다고..빨리 전모습으로 돌아오라고...겉으로는 그냥 웃으며 입시스트레스가 이렇게 크다! 하고 넘겼지만,속으로 자꾸 엄마아빠 얼굴이 왜 떠오를까요... 돈 없지만,진짜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하고..전 자식으로써 엄마아빠 존경하고, 엄마아빠는 부모로써 본을 보이고..큰소리 나지않고 언제 터질까 살얼음 걷지 않는 집..그런 가정..그걸 원한 것이 그렇게 큰 바람인가요? 상처받아도 말 안하고 속으로만 삭히고, 혼자 울고, 겉으로는 밝은 척, 괜찮은 척, 하는 것이 엄마 눈엔 재수없어 보인건가요?근데요.. 이제 그런거 하는것도 못하겠어요..아프단말 잘 못하는 성격이라.. 표현을 못하지만 알아주셨음 해요.엄마가 그렇게 날 공격하고 벼르고 하는 그 시간동안 난 이미 문닫아 버린 것 같아요..근데 오늘도 보니..엄마가 날 낳았지만 나를 아직 잘 모르는것 같아요...가장 큰 힘이 되어야 할 가족이 나에게 가장 큰 벽이니 참 힘드네요. -------------길어서 스크롤 내리신 분께도 감사해요.그냥 너무 속상한데, 누구 하나 말할 사람이 없어서 적어보았어요.혼자 울어도 내일이면 같은 상황이 올테지만,한 오년만 있으면 내 직장 갖고.. 독립할 수 있겠죠.그냥.. 힘내라고. 이 세상엔 널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한마디만 남겨주시면 고마울 것같아요..
깨물어 덜 아픈 손가락인 저...
가난한 꽃집 첫째딸로 태어나, 엄마아빠가 사업에 성공해서 건물 몇채 갖고 있던 시간도 함께 보냈고,그 후 동생이 태어나고, 시간이 지나 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그 시간동안 경영이란 단어 자체를 모르는 엄마아빠가 사업을 운영하느라 힘들 때,그래도 집으로 들어오는 수익은 있었기에겉으로 보이는 집안은 잘 굴러갔었죠.
엄마아빠와 친할머니 사이의 싸움.어릴 때부터 할아버지가 남기신 유산 때문에 낫들고 친형을 위협하는 아빠의 모습을보았었고, 작은 고모를 감싸주던 친할머니에게 옷을 벗겨 내쫓으라는 막말을 들으며 컸고, 엄마 또한 이기적이던 친할머니에게 받는 스트레스를 풀다 못해 가끔은 저에게 풀었던 기억.
일이년을 참지 못하고 계속 같은 업종의 사업을 갈아없고 다시하던 아빠의 모습.남에게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가족모임이라 해놓고 곧 있음 또 바뀔 사업동료란 분을 데려와서 술판을 항상 벌여놓고, 친척모임이 있던 날, 모임이 끝나고 함께 집에 가면 좋으련만, 그런날도 중간에 내려서 술한잔 더 하고 와야 하는 그런 지긋지긋한 패턴.
초등학교 3학년때, 가족끼리 노래방에 간 날,쑥쓰럽기도 하고 노래에 자신도 없어 안부른다고 뺀 나를집에 오자마자 매를 들고 음악책을 펴 노래를 억지로 부르게 했던 기억..우는 건지 노래를 하는건지 모르지만 억지로 라도 뽑아내서 만족해 하던 표정..
내가 21살인 이제, 미칠듯이.. 말은 안했지만 위염약, 타이레놀을 달고 살며 알바해서 모은공부자금.. 사업할때 필요하다며, 카드값을 막아야 한다며 고스란히 달라했죠.그래도 아빠니.. 전 바로 계좌이체 해서 드렸네요.항상 같은 모습.. 사업 한번 성공해서 번 돈으로, 야금야금 사업한다고 다 날려버리고,이제 집에서 팔게 없으니, 잘 되던 첫 사업도 망해서 남아있는게 없으니, 내 미래자금까지 넘어보셨죠.앞으로 1주일 후면 가져가신 돈의 일부인...약속하신 50만원을 다시 주시기로 한 날인데, 별로 기대는 안하고 있어요..50만원이 저에겐 2달동안 실컷 공부하고 남는.. 피같은 돈이지만, 이미 줘버린 거, 생각 안하려구요.
엄마도... 애 낳는건 쉽지만 부모되는게 어려운 거라는 한 어른의 말씀의 좋은 예시를 보여주시네요.7남매인가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막내로 자라, 누구를 책임진다는게 익숙한 일은 아니였겠죠.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건 단 하나.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엄마나 나나 신앙이 있으니, 신앙적으로 멘토가 되어주고,항상 내 편이 되어주고.. 그게 끝인데.나는 엄마에게 학원비를, 책값을, 유학비를 강요한 적이 없어요.
중2때부터 고3까지, 보내주신 미국 유학.솔직히 지금 풀어 놓자면, 영어를 배우고 새로운 세상을 보고, 경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그것보다, 딸려오는 자유가 너무 좋았어요.밤 10시에 학원이 끝나 걸어돌아오는 길에, 교복이 너무 불편해서 블라우스를 치마 밖으로꺼냈었죠. 그날 엄만 나의 그런 흐트러진 모습이 단정치 못하다고 집앞 놀이터에 불러내날 그네에 앉히고 엄만 앞에서 팔짱끼고.. 그런 딸 키운적 없단 말을 했었죠.
다른 사람에게는 날 방목시켜 길렀다고.. 학원에 얽매이지 않게 자유롭게 길렀다 말하고 다니시지만,그게 날 위한 자유였을까요? 아니면.. 손 댈 자신이 없으니 그냥 맡겨버리고 모른체 한 것일까요?그냥 달달이 학원, 학교 상담철, 이야기 하고 오고 매달 학원비 내고, 책값내고...그 외에 것은 전혀 관심이 없던 엄마.겉으로 보기엔, 아람단, 걸스카웃 부터 중학교 시험감독 까지 열성적인 엄마로 보였겠지만..내가 초등학교 3학년,아람단을 할때, 다른 5,6학년 언니들 틈에 껴 왕따를 당했다는 건 아시는지...어릴 때부터 낮은 자존감에, 성적을 잘 받으면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걸 깨닫고초등학교 때부터 새벽까지 시험공부 했던 것.. 애들과 말다툼을 하면, 내가 정말 소름끼치도록 증오하는엄마의 그 비꼬는 것,, 그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죽고싶을 정도로 제가 싫었죠.
항상 돈으로만,, 돈,,돈.. 엄마가 돈이 없어서 음대를 못갔다며, 나는 그런 부분에서 부족하지 않게 해주고 싶다며...그래요. 공부할때 물질적은 부분은 풍족 했어요. 하지만, 집이 기울어 지니까 왜 모든 부분을 내 탓으로 돌리는 거죠?죽을똥 말똥 돈줘서 유학보냈더니, 지금은 돈이 없다고 무시하는 거냐며....엄마아빠 힘든거 알고 유학.. 제가 먼저 그만둔다고 했었죠. 나름 악착같이 해서 아이비리그 꿈꾸며 고등학교 생활 했었는데, 괜찮다며. 한국가서도 열심히 할 수 있다고..그 와중에도 돈을 빌려서라도 보내줄테니까 유학 계속 하라 했던 것은 엄마였어요.
지금 엄마랑 한 집에 살며 항상 부딪히는 건...엄만 내가 엄마를 무시한다고 생각해서... 전.. 엄마의 그 날카롭고 상처주는 말 때문에...이미 벽이 생겨버렸네요.
한국와서 당장 돈이 필요하니, 알바때문에, 입시준비를 제데로 못해서그리고, 적응도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힘들어서 늦어진 대학입시... 의도치 않게 올해를 포함해서 삼수까지 하게 되었네요.
엄마아빠한테 짐되기 싫어서, 그리고 항상 엄마가 노래를 불렀던,대학교는 네가 알아서 해라. 그말 때문에, 책임을 지고 싶어서공부해야 할 시기에 학원알바를 풀타임을 뛰며 돈을 모았죠.그러고는 모든 통장을 가져오라는 엄마..그게 한국의 정서라며, 엄마말에 복종해야 한다며 강요했던 기억..전 절대 못드린다 했었죠. 엄만 또 내가 돈이 이제 없으니 니 혼자 먹고살겠다는 거냐며.. 그럼 집을 나가라 ..하셨었죠.지금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한다는, 식당에서 내가 지금 일하는게 창피하다는 엄마말을 듣고, 전 확실히 알았어요.엄만 교회를 다니는 신앙인이 아니에요. 엄마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감사..사랑..믿음.. 을 알았겠죠.
생활비 오십만원이 부족하니 좀 보태라... 이말이 어려워서집 어려우니까 오십만원 내놔. 라고 아침 밥상에서 얼굴도 안쳐다 보고 말하셨죠.삼일만에 딸에게 건넨말이 돈내놔.. 였어요. 오십만원? 드릴수 있어요, 당연히. 하지만 엄마의 그.. 내놔.. 하며 표정없는 말투가 너무 상처여서집에서 혼자 저 운건 아시나요?2만원이 없어졌다며,. 전화하셨었죠. 옷 개어놓은 곳에서 좀 찾아보라며..집 어려운 상황에 그 2만원이 큰 것이줄 알기에 정말 열심히 구석구석 찾았었어요..그때 동생이 장난삼아 옆에서 어? 2만원 나 가져도돼? 하는 말을 엄만 제가 한 말인줄로 오해하고 몇일동안 저에게 말을 안하셨죠.제가... 그렇게 철없어 보였나요? 아니면.. 그 말이 동생이 한건지 내가 한건지 객관적인 것은 안들리고, 그냥 제가 했었길 바랬나요?.... 어차피 나중에 오해 풀으려 설명을 해도 안믿으셨죠... 믿지않는데 어떻게 억지로 믿게 하나요..
그냥 그 .. 부분에서 엄마가 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비춰져서 되게 큰 상처를 받았어요.그후로 계속 된 엄마의 대결구도..체해서,,속이 안좋아서 저녁을 안먹는다 했더니, 그냥 먹지말고 뒤지라고... 했던 것..동생이랑 오랜만에 맛있는걸 먹고오면 저년은 돈이 남아 쳐 돌아서 그런다고...엄만 머리 파마에 손톱 매니큐어에.. 글쎄요... 적어도 전 동생에게 맛있는걸 사주고 싶은 마음이었는데,엄마가 그 말을 하실 수 있으신지요..동생 과외비도 제게 내라고 하셨죠. 저보고 동생 영어도 책임지라 하셨죠.그래요. 왜 못하겠어요.. 친 동생인데. 하지만 엄만 동생은 한 없이 불쌍한 우리 아가, 나는 ... 독한년. 그거 뿐 아닌가요? 그게 싫어서 그래요.
이미 엄마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날 자식이 아닌 그냥 스트레스 풀 구석으로 엄마 마음속에 만들어 놓고,제가 무릎꿇고 빌며, 엄마가 다 옳다고 이제 복종하겠다고, 내 돈 다 드리겠다고 이걸 바라며이를 갈고 계시는 지금...제가 그렇게 하면 엄마의 삶이, 마음이 더 여유로와 질까요?아니면 돈은 없지만 서로 사랑하며, 이해하고 대화하며 사는게 더 좋을까요....?
다른 교회 사람들... 이모들.. 이모부들.. 외숙모, 외삼촌들 모두 우리 집안의 뚜껑을 열어보시면 무슨 말을 하실까 되게 궁금해요...그분들은 엄마가 참 기독교인이고, 신앙이 있고, 항상 하나님만 따라가며 엄마노릇 잘 하고 있을거라 생각하실 텐데...
오랜만에... 거의 2년만에 만난 친구가 그러더라구요.너 아닌거 같다고.전에 자신감 다 어디갔냐고.. 밝던 모습 다 없어져서 다른 사람 같다고..빨리 전모습으로 돌아오라고...겉으로는 그냥 웃으며 입시스트레스가 이렇게 크다! 하고 넘겼지만,속으로 자꾸 엄마아빠 얼굴이 왜 떠오를까요...
돈 없지만,진짜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하고..전 자식으로써 엄마아빠 존경하고, 엄마아빠는 부모로써 본을 보이고..큰소리 나지않고 언제 터질까 살얼음 걷지 않는 집..그런 가정..그걸 원한 것이 그렇게 큰 바람인가요?
상처받아도 말 안하고 속으로만 삭히고, 혼자 울고, 겉으로는 밝은 척, 괜찮은 척, 하는 것이 엄마 눈엔 재수없어 보인건가요?근데요.. 이제 그런거 하는것도 못하겠어요..아프단말 잘 못하는 성격이라.. 표현을 못하지만 알아주셨음 해요.엄마가 그렇게 날 공격하고 벼르고 하는 그 시간동안 난 이미 문닫아 버린 것 같아요..근데 오늘도 보니..엄마가 날 낳았지만 나를 아직 잘 모르는것 같아요...가장 큰 힘이 되어야 할 가족이 나에게 가장 큰 벽이니 참 힘드네요.
-------------길어서 스크롤 내리신 분께도 감사해요.그냥 너무 속상한데, 누구 하나 말할 사람이 없어서 적어보았어요.혼자 울어도 내일이면 같은 상황이 올테지만,한 오년만 있으면 내 직장 갖고.. 독립할 수 있겠죠.그냥.. 힘내라고. 이 세상엔 널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한마디만 남겨주시면 고마울 것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