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 에게.

그냥저냥2013.02.11
조회687

 

Y야 잘 지내니

 

너한테 직접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이제 새로운 사람과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 너에게 부담 주기 싫어 이렇게 숨겨본다.

그렇다고 나만의 비밀공간에 적자니,

그래도 너가 즐겨보던 판에 남기면 혹시나, 혹시나 볼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내 마음 한켠에 있는 작은 욕심을 내본다.

 

1.

 

내가 하루이틀 면도를 하지 못할때면,

너가 그렇게나 내 턱수염을 뽑아주곤 했던게 생각이 난다.

 

2.

 

전화를 하다가 다른 연인들이 한때 그랬듯 미래를 약속하는 장난을 치곤 했는데,

내가 나랑 살면 고생길이 훤할텐데 라고 농담삼아 던지니까

드라마 대사를 따라하면서

그것이 저승길이라고 해도 따라간다고 했었다.

 

3.

 

너랑 밤늦게 통화할때면 너가 가끔 졸고는 했는데

그러면 그런줄 알고 너한테 장난을 치곤 했었다.

이상한 질문도 하고 농담도 던지고..

그러다가 몇분뒤 반응이 아예 없어진 너한테 내가

기다리다가 이제 정말 끊는다~ 할때면

귀신같이 알아채서 비몽사몽하게 끊지마.. 했었는데..

 

4.

 

내가 살면서 대신 죽어줄 수 있는 사람이 세명이 있다고 했었는데..

우리 엄마, 가장 친한 친구, 그리고 너라고 말했었는데..

웃긴건 헤어진지 두달이 되가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직도 너를 그만큼 사랑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냥 그만큼 나를 안사랑하는 것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우리가 2년동안 서로 사랑하면서 했던 수많은 약속과 기약들은

다 옛날일이 되었구나.

 

5.

 

우리 주민번호 남녀부분만 빼고 같다며 천생연분이라고 했던게

문득 생각이 난다.

 

6.

 

그렇게 나는 장거리 연애에 지친 너에게 이별통보를 받았다.

우리는 좋았던 기억만 간직하자고, 나중에 다시 인연이 된다면 다시 시작해보자고..

그렇게 아름답다면 아름답게 이별했는데.

 

나는 정말로 여러사람과 사랑을 하는 것보다,

한사람과 여러번 사랑에 빠지고 싶다고 했다.

 

다시 만나게 되면 다시 달라진 서로의 모습에 설레고

가슴 터질듯한 사랑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래, 나는 나 잊으면 안돼 라고 말하는 너를 굳게 믿었고

좋은 감정이 아직은 남아있다고 말하는 너의 친구를 믿었어..

그래서 너를 정리하지 못했는데..

 

요즘 드는 생각은 아.. 정말 너는 나를 정리해버렸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어.

여자는  마지막을 아름답게 남기고 싶어한다고. 여자는 떠나는 남자의

기억속에서 아.. 좋았던 사람이었지.. 라는 생각을 남기고 싶어하고

나중에 다시 잘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고 이성친구가 그러드라.

 

여지를 남겨둔 너의 말이 진심인지 거짓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7.

 

시간이 모든것을 부드럽게, 해결해준다는 것은 알고 있어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는 내 감정선이 언젠가는 수렴할거라는 것도 다 알고 있어.

 

시간이 흐르면 서로 완전한 남남이 된다는 거..

다 괜찮아 질거 라는거 알아.

 

근데 그러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내 마음도 언젠가는 바뀔거라는게 슬프다.

 

8.

 

혜민 스님이 그랬다던데,

너무 좋아해서 노력하는데도 자꾸 힘들다고 느껴지면 인연이 아니라고..

몸부림 치지 않아도 이루어진다고.. 너무나 힘들게 하는 인연은 놓아주라고

 

우리가 인연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인연이 아니라면.. 놓아주라고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다

놓치고 싶지 않다.

 

9.

 

헤어지고 난후에,

죽고싶을 만큼 힘들었던거는 없어.

가끔 정말 미치게 보고싶은 적이 자고 일어나면 허탈한 마음에 들때도 있긴 해.

 

헤어진지 며칠, 몇주가 지난 다음엔

그냥 아련한 마음이 있어 무표정으로 생각이 나기만 해.

좋았던 기억만 남아서 내 기억속으로 너를 미화시킨다.

 

반대로 나는 너에게 못해준 기억들만 남아

아, 좀 더 잘해줄껄, 사랑했을때 조금더 사랑해줄걸,

나 때문에 힘들지 않게 해줄걸 이라는 후회가 남는다.

 

버벌진트 좋아보여를 가끔 들어보면 마지막에

남자들은 헤어지고 나면 꼭 이러더라고 멘트를 던지는데,

그걸 들으면 내 이야기 같구나 하며 허탈하게 웃음이 나온다.

정말 내가 남자라 미련이 남아 이런건가? 하고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10.

 

그리고 며칠이 지나,

어떻게 너하고 연락이 닿아 통화를 하게 되었어.

원래 정말 기분좋게, 산뜻하게 통화하려고 했는데, 헤어진 사람에게

부담같은거 남기고 싶지 않아서..

울먹거리는 너의 목소리를 들으니까 나도 그렇게 되지 않더라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지.

지금 새로 만나는 사람이 생겼다고.

그래서 나한테 미안하고 죄책감이 든다고..

 

당연히 괜찮은 척했어. 나한테 죄책감 같은 감정 느낄 필요 없다고

이미 헤어진 사인데 뭣하러 그런 감정 느끼냐고

단지 2년동안 사귀었는데, LTE급으로 갈아타는거 아니냐고 농담을 던졌어.

 

마음은 울고 있는데, 나한테 죄책감 느끼고 있을 필요가 없는 너가

조금은 안쓰러워서 괜찮은 척하며 그 짐을 덜어 줬어.

 

헤어질때 여지를 남겨둔 너가 미워지기도 했었어.

하지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 하는 너를 내가 어떻게 마음에 품고 있겠니.

그렇게 나는 내 스스로 official 하게 너를 정리해야 겠다고 했어.

 

11.

 

그렇게

두달이 지난 지금의 나는

아직도 과거에 허우적 대고 있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수도 있는 두달인데,

아직도 너는 내 삶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어.

 

물리적으로 정리를 해도

같이 했던 것, 같이 먹었던 곳, 그런 흔적들이 내 주위에 너무 많아

너를 생각나게 한다.

그렇다고 힘든건 아니야. 가끔 힘들때도 있긴 한데,

그냥 무표정으로 생각나.

 

이상하다. 이전에도 몇번의 이별을 경험했던 나인데,

그때도 지금처럼 기억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을까..

 

12.

 

사실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한다.

힘들다기보단 아련한 마음만 남은 지금,

내게 남은 감정이 미련인지, 찌질한건지, 진짜 사랑인건지 분간도 안가지만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해.

 

나는.. 멈춰 있어 헤어진 그때 그대로..

 

13.

 

그런데 그러면 안돼지. 계속 멈춰 있을 수 없다는 거 알아.

그래서 정말로 이젠 너를 정리하려고 해.

물론 아직도 새로운 사람과 너와 했던 모든 것들을 어떻게 다시 반복하지?

하는 물음이 남지만.

 

그냥 가끔 생각나는 정도로만 너를 마음속에 남겨두고

다 정리할거야.

 

정말 그러고 싶지 않은데,

이제 혜민스님의 말처럼 인연의 끈에 우리를 맡겨볼거야.

 

14.

 

너 너무나 대견해. 항상 옆에서 너가 너의 꿈을 향해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봐왔는데, 그것이 실현되어가고 있는거

정말 너무나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힘들때도 있겠지만,

나는 너가 언제나 다 잘해낼거라고 굳게 믿고 있어.

이젠 너라는 삶에서 나는 주인공이 아니지만,

언제나 보고싶게 만드는 영화라서 관객이라도 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ㅎㅎ

 

평소답지 않게 이런말이 좀 오글거리지?

많이 센티해져서 그런가봐..

 

15.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지만..

더 이상은 못하겠다.

 

마지막으로..

나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이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우리의 인연이 닿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로 서로 이런 아픈과정 남겨주지 않고

정말로 열심히 열렬히 사랑할거야. 정말정말 바보 같은 말이지만

정말 잘할거야.

 

그럼

정말로

안녕.. ㅜ

 

 

 

 

T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