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설 연휴를 보내고 새해 복들 많이 받으셨는지요.. 어제 모바일로 글쓰다가 저장을 잘못했는데 수정이 안되서 다시 글 올립니다. 저는 29살 평범한 직장인입니다ㅡ조만간 저도 결혼을 생각하고 있어 제목과는 맞지 않지만 친정얘기가 될거같아 여기에 글을 씁니다 버스도 다니지않는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부모님, 언니, 저, 동생 이렇게 5식구에요 비가 많이 오면 다리에 물이 넘쳐 일찍 마치고, 비가 많이 와서 논에 있는 벼가 쓰러지면 일손을 돕기 위해받에가서 쓰러진 벼를 세워 짚으로 묶기도 하는 (초등학교때)그런 시골이었죠.소풍도 6년 내내 거의 같은 곳에 갈 정도였고 아침에 출발해서 걸어가면 딱 12시 도착해서 밥 먹고 놀고다시 집에 걸어오던 기억이 나네요.. 그 때도 몹시 시간이 길었던거 같아요. 어른들이 잘 갔다오라고 용돈이라도 주시면 학교 앞 문방구에서 담배나 맥주를 샀어요 어른들이 좋아한다고 (그 당시는 아이들에게도 팔았나봐요 그런걸).. 어머니는 9남매(10남매였으나 어릴때 고모가 홍역으로 돌아가셨어요)중 7번째 4남5녀중 3남에게 시집오셔셔 고생만하셨어요 동생이 태어나고 4개월이 됐을까ㅡ아버지는 허리디스크로 6년동안 누워계셨대요ㅡ저는 기억이 잘안나요ㅡ그냥 누워서 아파하시고 복대차고계시던 기억만 간간히 나네요 그때는 어머니가 근처바닷가ㅡ지금은 갯벌ㅡ에서 김을 띁어 바닷물에 행구고 김틀에 넣어 김발에 하나씩 떠서 말려서 팔아 생계 및 아버지 약값으로 쓰셨네요 김만드는 방법이 맞는진 모르지만 4살 제기억엔 그냥 까맛 김을 틀에 붓는게 놀이같고 언니가 많이 도와드렸던거 같아요ㅡ바닷가서 나는 굴도 까서 팔고 그렇게 살았던거 같아요.. 어머닌 실공장에 다니면서 실독이올라 힘들어하셨고ㅡ저희는 중학교때까지 한방에서 5명이 같이 잤네요 부모님은 농사짓는게 힘겨웠고ㅡ저희집에서 40분정도 떨어진곳에서 중국집을 여섰어요 저희 언니는 초등학교3학년 동생은 유치원생 어린 아이들때문에 매일 출퇴근 하시며 저흴 키웠고 믿기어려우시겠지만 언니는 그나이때에 저희에게 밥을 해주고 계란도 구워줬어요ㅡ 없는살림에 빛내서 장사를 시작하고 주방장에게 어머니가 음식을 배우고 아버지는 배달업무를 보셨습니다가게주변에 학교도 있고, 공장도 있어 처음에는 장사가 잘 됐어요. 중국집도 처음 생겼고 그당시는 저도 중국집 음식을 먹는건 목욕탕 가거나 졸업식 그때나 먹는거였거든요, 그러다 비가 많이 온해는 가게 지대가 낮아서 가게가 물에 잠겨 곰팡이 핀 세간살이 다 버리고..거기다 가게에 문제가 있어 철거를 해야했고 근처 지인분 가게옆에 작게 터를 잡아 장사도 하셨어요.. 젋음사람이 술먹고 시비도걸고 속상한일도 많았답니다ㅡ거기다 점심때 음식을 대준 업체는 부도가 나서 돈도 날리고...동생은 사춘기때 짱개집아들이란 놀림에 친구랑 싸우기도 하고.. 암튼 파란만장했죠.. 지금은 깨끗한 곳에 옮기고 총 4식구가 일하고 있어요.. 아버지, 어머니, 주방장 아저씨, 식당 아주머니...아버지는 1992년인가 93년부터 계속 배달을 하셨고, 어머닌 주방장을 하셨는데 너무 오랬동안 무거운걸들고 2명이서 일하다보니 팔에 인대가 늘어나서 지금은 서빙을 하시고, 주방장 아저씨도 일하시고, 아주머니도 계시죠.. 장사가 잘되냐구요? 아닙니다. 주변에 중국집이 2개나 더 생겨서...사람도 줄고, 이제는 특별식이 아닌 그냥 평범한 음식이 되어버린터라... 이번 설에 얘기를 했죠.. 아주머니라도 그만두게 해야하는게 아니냐고.. 어머니께서 그러시더군요.. 바쁘고 잘 될땐 사람 쓰고 안되면 자르고.. 그건 아니다 그사람도 우리집 아님 먹고 살기 힘든데, 언젠가는 잘 될꺼랴면 묵묵히 장사하고 계세요 점심 땐 손님이 없어서 너무 힘들다고 투정부리시네요.. 저희집은 깍두기나 김치도 어머니가 담그세요.. 여름엔 콩국수가 정말 맛있어요 외숙모 고향 고성에서 집접기른 콩 가지고 갈아서 얼음만 넣고 만들죠.. 중국집은 500원 올리기도 겁나요. 밀가루값 계란값, 가스비 등등 다 올라도 말이죠.. 저는 아버지가 이 일을 그만했음 좋겠어요.. 밖에 배달가서 있던일은 잘 얘기 안하지만어린 사람이 술먹고 아버지에게 몹쓸말 행동 많이 한거 안답니다... 음식 잔반 처리할때도 담배꽁초 음식위에 다 버리고, 정말 도와주면서 많이 울었네요.. 어머니도 고생많이 하셨지만, 아버지도 고생많이 하셨어요어린나이에 소 여물 베어오고, 나무해오고, 남의 집 머슴도 살고.. 전에 아버지 다리에 난 상처를 본적이 있어요. 어찌된거냐 여쭸더니, 산에 나무를 하러 갔는데날카로운 나무를 못 보고 가다 찔렸답니다. 허벅지에.. 병원갈 돈 없어 된장만 발랐더니 상처가 이렇게 커졌다고.. 꼭 화상자국이에요.. 우리가 시집가고 장가갈때까지 하신다니 맘이 찢어집니다. 나이 60에 중국집 배달.. 젊어선 좋은것도 못 입고, 못 먹고.. 얇디 얇은 청바지만 입어도 자식 입에 맛있는거 들어가고 머라도시켜주고 싶은 그맘... 글쓰는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부모님 살아생전에 잘해드리세요.. 얼마전에 돌아가신 황금알에 황수관 박사님이 하신말이 생각납니다. 아들이 지붕에 날아온 까치를 보고 아빠 저게 뭐야? 하고 묻자.. " 응, 까치야.."아빠 저게 뭐야/ 응 까치야., 아빠 저게 뭐야/ 응 까치야.. 아버지가 자식에게 물으면저게 뭐니? 까치/ 저게 뭐니? 까치라고/ 저게 뭐니? 까치라고 했잖아... 부모는 자식이 물으면 수백번 대답하지만, 자식은 물어보면 화만 낸다더군요.. 저는 우리 부모님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이제라도...저희 부모님 많이 응원해주세요..
저희 아버지는 60세 중국집 배달원입니다.
저는 29살 평범한 직장인입니다ㅡ조만간 저도 결혼을 생각하고 있어 제목과는 맞지 않지만 친정얘기가 될거같아 여기에 글을 씁니다
버스도 다니지않는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부모님, 언니, 저, 동생 이렇게 5식구에요
비가 많이 오면 다리에 물이 넘쳐 일찍 마치고, 비가 많이 와서 논에 있는 벼가 쓰러지면 일손을 돕기 위해받에가서 쓰러진 벼를 세워 짚으로 묶기도 하는 (초등학교때)그런 시골이었죠.소풍도 6년 내내 거의 같은 곳에 갈 정도였고 아침에 출발해서 걸어가면 딱 12시 도착해서 밥 먹고 놀고다시 집에 걸어오던 기억이 나네요.. 그 때도 몹시 시간이 길었던거 같아요. 어른들이 잘 갔다오라고 용돈이라도 주시면 학교 앞 문방구에서 담배나 맥주를 샀어요 어른들이 좋아한다고 (그 당시는 아이들에게도 팔았나봐요 그런걸)..
어머니는 9남매(10남매였으나 어릴때 고모가 홍역으로 돌아가셨어요)중 7번째 4남5녀중 3남에게 시집오셔셔 고생만하셨어요
동생이 태어나고 4개월이 됐을까ㅡ아버지는 허리디스크로 6년동안 누워계셨대요ㅡ저는 기억이 잘안나요ㅡ그냥 누워서 아파하시고 복대차고계시던 기억만 간간히 나네요
그때는 어머니가 근처바닷가ㅡ지금은 갯벌ㅡ에서 김을 띁어 바닷물에 행구고 김틀에 넣어 김발에 하나씩 떠서 말려서 팔아 생계 및 아버지 약값으로 쓰셨네요 김만드는 방법이 맞는진 모르지만 4살 제기억엔 그냥 까맛 김을 틀에 붓는게 놀이같고 언니가 많이 도와드렸던거 같아요ㅡ바닷가서 나는 굴도 까서 팔고 그렇게 살았던거 같아요.. 어머닌 실공장에 다니면서 실독이올라 힘들어하셨고ㅡ저희는 중학교때까지 한방에서 5명이 같이 잤네요
부모님은 농사짓는게 힘겨웠고ㅡ저희집에서 40분정도 떨어진곳에서 중국집을 여섰어요 저희 언니는 초등학교3학년 동생은 유치원생 어린 아이들때문에 매일 출퇴근 하시며 저흴 키웠고
믿기어려우시겠지만 언니는 그나이때에 저희에게 밥을 해주고 계란도 구워줬어요ㅡ
없는살림에 빛내서 장사를 시작하고 주방장에게 어머니가 음식을 배우고 아버지는 배달업무를 보셨습니다가게주변에 학교도 있고, 공장도 있어 처음에는 장사가 잘 됐어요. 중국집도 처음 생겼고 그당시는 저도 중국집 음식을 먹는건 목욕탕 가거나 졸업식 그때나 먹는거였거든요,
그러다 비가 많이 온해는 가게 지대가 낮아서 가게가 물에 잠겨 곰팡이 핀 세간살이 다 버리고..거기다 가게에 문제가 있어 철거를 해야했고 근처 지인분 가게옆에 작게 터를 잡아 장사도 하셨어요.. 젋음사람이 술먹고 시비도걸고 속상한일도 많았답니다ㅡ거기다 점심때 음식을 대준 업체는 부도가 나서 돈도 날리고...동생은 사춘기때 짱개집아들이란 놀림에 친구랑 싸우기도 하고.. 암튼 파란만장했죠.. 지금은 깨끗한 곳에 옮기고 총 4식구가 일하고 있어요.. 아버지, 어머니, 주방장 아저씨, 식당 아주머니...아버지는 1992년인가 93년부터 계속 배달을 하셨고, 어머닌 주방장을 하셨는데 너무 오랬동안 무거운걸들고 2명이서 일하다보니 팔에 인대가 늘어나서 지금은 서빙을 하시고, 주방장 아저씨도 일하시고, 아주머니도 계시죠.. 장사가 잘되냐구요? 아닙니다. 주변에 중국집이 2개나 더 생겨서...사람도 줄고, 이제는 특별식이 아닌 그냥 평범한 음식이 되어버린터라... 이번 설에 얘기를 했죠.. 아주머니라도 그만두게 해야하는게 아니냐고.. 어머니께서 그러시더군요.. 바쁘고 잘 될땐 사람 쓰고 안되면 자르고.. 그건 아니다 그사람도 우리집 아님 먹고 살기 힘든데, 언젠가는 잘 될꺼랴면 묵묵히 장사하고 계세요 점심 땐 손님이 없어서 너무 힘들다고 투정부리시네요.. 저희집은 깍두기나 김치도 어머니가 담그세요.. 여름엔 콩국수가 정말 맛있어요 외숙모 고향 고성에서 집접기른 콩 가지고 갈아서 얼음만 넣고 만들죠.. 중국집은 500원 올리기도 겁나요. 밀가루값 계란값, 가스비 등등 다 올라도 말이죠.. 저는 아버지가 이 일을 그만했음 좋겠어요.. 밖에 배달가서 있던일은 잘 얘기 안하지만어린 사람이 술먹고 아버지에게 몹쓸말 행동 많이 한거 안답니다... 음식 잔반 처리할때도 담배꽁초 음식위에 다 버리고, 정말 도와주면서 많이 울었네요.. 어머니도 고생많이 하셨지만, 아버지도 고생많이 하셨어요어린나이에 소 여물 베어오고, 나무해오고, 남의 집 머슴도 살고.. 전에 아버지 다리에 난 상처를 본적이 있어요. 어찌된거냐 여쭸더니, 산에 나무를 하러 갔는데날카로운 나무를 못 보고 가다 찔렸답니다. 허벅지에.. 병원갈 돈 없어 된장만 발랐더니 상처가 이렇게 커졌다고.. 꼭 화상자국이에요.. 우리가 시집가고 장가갈때까지 하신다니 맘이 찢어집니다. 나이 60에 중국집 배달.. 젊어선 좋은것도 못 입고, 못 먹고.. 얇디 얇은 청바지만 입어도 자식 입에 맛있는거 들어가고 머라도시켜주고 싶은 그맘... 글쓰는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부모님 살아생전에 잘해드리세요.. 얼마전에 돌아가신 황금알에 황수관 박사님이 하신말이 생각납니다. 아들이 지붕에 날아온 까치를 보고 아빠 저게 뭐야? 하고 묻자.. " 응, 까치야.."아빠 저게 뭐야/ 응 까치야., 아빠 저게 뭐야/ 응 까치야.. 아버지가 자식에게 물으면저게 뭐니? 까치/ 저게 뭐니? 까치라고/ 저게 뭐니? 까치라고 했잖아... 부모는 자식이 물으면 수백번 대답하지만, 자식은 물어보면 화만 낸다더군요.. 저는 우리 부모님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이제라도...저희 부모님 많이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