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기독교에 대한 개인적 시각

prayer2013.02.21
조회536

1. 믿음이란
인간은 불완전하고 모순된 점이 많은 나약한 존재라는 것은 모두 알고있는 사실입니다.

완벽할 수 없기에 언제든 불안과 좌절을 경험하는 때가 오고, 삶과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순간에 직면합니다. 두려움과 위험을 방지하고 극복하기 위하여 인간의 힘으로 최소한의 장치를 만들어 놓은 것이 도덕과 사회규범, 법제입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짧은 삶 속에서 위안과 희망을 얻고 바르고 가치있기 살기 위해서 종교에 의탁하게 됩니다.

즉 종교라는 것은 큰 가르침이고 가르침을 받으려면 먼저 존경하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신은 전지전능하신 위에 있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의 시작이며, 신이 주신 배려와 축복을 감사히 여기고 어려움이 올때 걱정을 털어넣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입니다.

부모님보다도 더 위에 계신 가장 큰 어른이 '그 분' 입니다. 진정으로 섬기는 마음은 일단 부모님과 윗어른, 사회 구성원, 지구상의 다른 존재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발적이고 합당한 순리에 따라 인도되어야 합니다.

목회자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대리해서 신께 연결된 사람으로, 신이 아닙니다. 신은 한 분 뿐입니다.

 

2. 기도의 자세

기도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고민을 부모님이나 어른들께 털어놓듯이 두렵고 힘든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호소하는 대화입니다. 감사하고 기쁜 마음을 가장 먼저 나누고 싶은 그런 마음입니다. 쉽게 혼동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기복신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눈 앞의 인간적인 목표를 이루게 해달라고 비는 것은 자기 욕심대로 해달라고 부모님께 떼쓰는 어린아이 같은 수준입니다. 정말로 믿는다면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예정된 일이기에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눈앞에 죽음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아야 믿음입니다.

 

3. 종파

세계적으로 기독교 종파는 200여개 정도로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등이 있습니다.

기본적 베이스(성서)는 같고 해석에 따라서 여러가지 교파로 나뉘는데 때로 급진적이고 파격적인 해석을 가진 곳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믿음과 교회가 신에서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그 분께서 예수님을 통해 더 가깝게 인간의 삶속으로 내려오셨고 그 분과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한 제자들에 의해 성서가 탄생했고, 교회가 생겨나고 그 와중에 인간의 의도에 의해 역사가 흐르며 변화해 온 것이 지금의 교회입니다. 더구나 다양한 사람들의 해석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분화된 것이 종파일 뿐입니다. 결국 거슬러 올라가면, 그 분이 계셨기에 오늘날의 교회가 있고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그 분이 계시기에 내가 있다' 라는 믿음이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분의 메시지를 항상 고민하고 따라 성실하게 살아갈 노력을 해야하며 인간적인 의도로 재해석을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행동입니다.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말씀, 즉 성경도 여러가지 판이 있고, 사람의 의도에 따라 해석된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 메시지가 무엇일까 진정한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이지, 마음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4. 믿음의 강요

강요는 인간의 의도입니다. 그 분의 뜻과는 전혀 다릅니다.

전도나 포교는 그 분의 뜻을 전하는 신성한 일이므로 매우 신중하고 절실한 나눔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흔히들 말하는 '지옥'이란 것은 인간의 두려움입니다. 내가 지옥에 가는 것이 만약 그 분의 뜻이라면, 주저없이 가야할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인 죽음을 쥐고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저속한 협박일 뿐입니다. 절대로 그 분의 방법이 아닙니다. 인간은 신 앞에 나약한 존재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 분의 뜻으로 지옥에 가야할 사람이라면, 내 말을 믿으면 살 수 있다고 거짓말 하지 마십시오.

 

5. 타 종교에 대한 몰이해와 배척

기억해야 할 점은, 기독교는 천주교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입니다. 신권을 앞세워 인간의 욕심을 채우는 성직자들과 교회를 떠나 기존의 순수한 신앙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고자 다시 만든 종교입니다. 단지 옛날 방식과 새로운 방식의 차이일 뿐입니다. 더 엄격하고 평등하며 사람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고자 재해석된 것이 현대의 기독교입니다. 흔히들 마리아를 믿는다, 우상을 숭배한다 라고들 비난하는데. 그들은 신이 아닙니다. 천주교에서는 '성인'이란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생 그 분의 말씀을 따라 성실하게 노력하고 몸바쳐 애쓴 사람들을 기억하고자 그들을 성인의 이름으로 기억하는 것 뿐입니다. 그렇게 평생동안 타인들의 불행을 어루만지고 돌보며 평안을 기도했던 사람들이 천국에 가서도 놀기만 할까요? 영생을 얻은 그들은 주님의 얼굴 앞에서 더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포함한 성인에게 예의를 표하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주교에서 말하는 '성인의 통공' 입니다.

천주교는 과거에 타락했었지만, 현재는 매우 투명한 조직입니다. 신부와 수녀는 평생 결혼 및 자녀를 갖지 않고 일정기간마다 추기경의 명령에 따라 근무지를 이동하며, 신도로부터 의무적으로 종교세를 납부해야 하며, 교리를 일정기간 학습하고 시험에 통과한 자에게만 신도의 자격을 줍니다. 신도가 등록되면 세계각지로부터 최종적으로 바티칸 교황청에 보고되어 명단이 올라갑니다. 신도들은 지정된 교구의 성당에서만 등록이 가능하며 헌금은 덜 발전된 성당에도 고루 나뉘어집니다.

전통적인 형식들이 많고, 초심자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단점은 있습니다.

 

불교는 전통적으로 아시아권에서 역사가 깊은 종교입니다. 죽음과 고통앞의 인간의 고뇌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기독교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 괴로움의 실체인 자신의 마음에 대한 성찰과 수행으로 번뇌를 초월하여 부처에 이르는 길입니다. 부처는 신이 아닙니다. 우상숭배도 아닙니다. 고타마 싯타르타(붓다)는 최초의 초월한 선지자일 뿐 유일신의 개념이 아닙니다. 스님들이 불상에 절을 올리는 것은 부처의 경지에 이르는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상징이자 존경의 의미이지 신을 숭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성은 만물에 깃들어 있으며, 이를 깨닫고 초월하는 것이 불교의 목표입니다. 이것이 '범신론'입니다. 기독교인 중에 불교를 다신교라고까지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입니다.

 

이슬람교는 무함마드가 창시한 종교로 유일신인 알라를 믿으며, 코란에 근거한 여러가지 기도의식이 엄격합니다. 코란에 기초한 교리는 기독교와 상당히 유사하며 겹치는 부분도 많습니다. 구약성서의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도 있을 정도입니다. 발생지인 서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은 초기 기독교의 영역과 비슷합니다. 십자군 전쟁 시절에 이슬람왕국의 팽창에 대항하면서 상당부분이 왜곡되었고, 폭군들의 야만적인 종교로 날조된 점이 많습니다. 실제로는 하루에 몇 번씩 성실히 기도하며 먹는 고기조차도 짐승에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할랄'이란 방법에 의해 처리된 것만 먹는, 현대 기독교보다 훨씬 엄격하고 양심적인 종교입니다.

 

타 종교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믿음을 지켜나가던지, 그에 대한 존중은 필요합니다.

종교란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사회의 규칙인 법제를 이미 포함하고 있고, 그 이상의 성찰과 포용, 즉 바른 길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기 때문입니다. 유일신인 그 분에 대한 믿음과 다른 이들의 믿음을 비교하고 저울질 할 수 있습니까? 당신도 사람일 뿐입니다. 그들이 잘못된 믿음을 갖고있다면 그분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놓고 생각했을 때 법제의 잣대를 제외하면 사람이 사람에 대해 심판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도 나약하기 때문에 그 분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일 뿐이지 이런 짓을 그 분께서 시키신 적은 없습니다.

우리나라로 유래된 기독교의 뿌리인 역사깊은 미국의 청교도 집안 사람들은 항상 검소하고 절제있고 건전한 삶을 살기위해 노력합니다. 절대로 경박하고 폭력적인 행위를 일삼지 않습니다.

항상 깨어있으며 그 분의 메시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주변이들을 존경하며 작은 보답을 감사히 받아들이십시오. 진정한 믿음은 오랜 기간 노력을 통해 내면에서 싹트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 사람들을 기만하고 그 분을 욕되게 하지 마십시오.

 

모두 믿음안에서 평안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