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겠다. 내가 그 사람을 아직도 미워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용서하지 못한 건지. 하나 분명한건 난 그 사람과 관련된 무언가를 볼 때 마다 아직도 며칠을 앓아야 한다는 거다. 사람과의 만남은, 분명 사람을 물들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넌 지독한 사람이었고 난 참 지독한 앓이를, 너를 만났던 그 순간부터 1년 동안 앓아오고 있다.
너를 처음 보았던 날, 느꼈던 그 왠지 모를 위화감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 나 자신을 책망하면서 1년이 지났다. 정말 끔찍하게 자기 자신밖에 사랑할 줄 모르던, 정말 끔찍하다는 말밖에 어울리는 게 없는 너를 만나면서 내가 왜 그토록 내 모든 걸 바쳤는지, 왜 인생에서 아주 소중한 내 젊은 날을 날려버린 건지. 그 결정을 나는 지금까지도 뼛속까지 후회한다.
하나하나 분명하게 써놓으면 그렇지 않아도 잊혀지지 않는 그 끔찍한 기억이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어디에도 쓰지 않으려했다. 그럼 정말로 덮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매일 쓰는 일기에도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움직이는 펜을 움켜잡았던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울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괜찮은 척 하고 1년을 살았다. 그리고 나서야 알았다. 차라리 그 때 다 울고, 그 때 다 욕하고, 그 때 너를 다 토해냈어야 했다는 걸. 괜찮은 척 하느라고 애써 감추고 눌러놓았던 기억이 그리고 그 상처가 시간이 지나니 썩어간다. 지난 1년 동안 내 상처는 나아지지 않았다. 난 그 시간동안 썩어가는 걸 느끼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래서.
늦었지만, 니가 어떤 짓을 나에게 저질렀는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지독하게 앓고 있는지를 하나하나 쓰려고 한다. 이것이 나에게 잔인한 짓이 된다고 해도 그러려고 한다. 니가 읽게 될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니가 언제나 너 자신을 위한 말만 지껄였으니, 내가 한번 그렇게 지껄인다 해서 크게 문제될 것도 없을 것이다.
넌 나를 그럴싸한 말로, 꼬드겼다. 나라는 인간 자체가 좋아져서 그런게 아니라, 여자를 갖고 싶은 마음에 나를 꼬드겼다. 난 내가 순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여자애였고, 말재주가 좋은 너에게 넘어갔다. 네가 가진 화려한 경력이 멋져보였다. 솔직히 외로웠고,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는 게 기뻤다. 그래서 쉽게 넘어갔다. 그랬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내가 받은 대가는 너무 가혹한 것이라고, 나중에야 생각하게 되지.
사귀게 됬을 때, 너는 그랬다. 빨리 작업해서 넘어오지 않는 여자는 그냥 빨리 포기하고 다른 사람으로 넘어가서 들이댄다고. 그래서 니가 좋다고. 나를 좋아해줘서 좋다고.
나는 그 말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너는 처음부터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관심도 없었다. 내가 어떤 색깔을 갖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웃는지, 어떤 이야기에서는 시무룩해지는지. 넌 처음부터 나를 읽으려고 하지 않았다. 난 어렴풋이 그걸 느꼈지만, 그게 어른답고 서로 간섭하지 않는 쿨한 연애라고 생각했다. 지금와 생각해보니 참 어렸다.
우리의 연애는, 너의 작은 자취방에서 내가 무언가를 갖다 바치는 걸로 시작해, 갖다 바치는 걸로 끝이 났다. 나는 너에게 무언가를 주었던 사실이 화가 나고 슬픈 게 아니다. 난 널 사랑했다. 그래서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걸 주었고, 거기에는 정말 후회가 없다.
니가 나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고, 가끔은 내가 손에 모른 척 용돈을 주어야 해서 너를 원망하는게 아니다. 사랑하는 남자 기 죽이기 싫어서 모른 척 돈을 쥐어주는 거,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나는 그런 사실들 때문에 너를 이제까지 맘 속에서 열두번은 넘게 죽였다 살렸다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너를 용서할 수 없는 건, 너는 나와 사귀는 동안 내내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넌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인냥, 너는 그렇게 나에게 내내 사랑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너와 있는 동안 오해했었다. 뜨거운 여름날, 달구어진 아스팔트 위에서 화가 난 너를 따라잡느라 넘어져서 무릎이 깨져 피가 나는 나를 뒤로 하고 니 길을 성큼성큼 화가 난 걸음으로 가던 너를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해주고, 끝까지 따라가 잘못했다고 빌어가며 네 눈치를 보는 것을 너는 이해심이 넓은 사랑의 한 형태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그런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너는 계속 최면을 걸 듯 말을 해댔다. 다른 여자와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나에게는 쓸 수가 없던 돈을 새로운 여자들을 만나는데는 쓰는 걸 이해하는 것도 사랑의 한 형태라고 말했을 때,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고 그게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우리 집에 놀러와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일을 해대고 너는 TV를 보며 앉아 있는 너에게 핀잔을 주었을 때, 불같이 화를 내면서 뛰쳐 나가는 너를 맨발로 뛰어나가 잡아오는 나를, 그런 나를 너는 아마도, 사랑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모든 걸 견뎠던 이유는, 그래도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흐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조금 더 헌신적인지도 모르겠지만, 연애에는 어느 한쪽이 더 좋아할 수 있는거니까, 그건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나는 니가 나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너는 그 모든 말도 되지 않는 행동을 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어댔고, 나중에는 그나마도 하지 않았지만, 너의 말을 믿었다. 솔직히 말해, 믿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헌신을 다 하는 남자가 나를 사랑하길 정말 간절히도 바랬다. 그래서 나는 너한테 이별통보를 받는 그 순간까지도 미련하게 매달리지 않았더냐.
넌 조금씩 날 갉아먹어가는 존재이기도 했다. 특유의 이기적인 사상과, 경쟁주의, 사람에 대한 신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으면서도 그럴싸한 포장을 떡칠한 너의 사람에 대한 가치관은 나를 물들였다. 넌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었다. 박식해보였고, 실제로 아는 것도 많았다. 그래서 무언가를 보는 폭이 넓었다. 나는 그게 참 신기했다. 이제까지 내 주변에는 나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없었다. 너라는 존재는, 신선하고 자극적인 말들로 나를 간지럽혔다.
그러다 차츰, 니가 하는 말들을 문득 돌이켜보니 도대체 배려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 볼수 없다는 걸 알았다. 너는 여유가 없는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저 성공하기만을 원했고, 성공을 위해서 남을 밟고 올라서는게 너무나 당연한 사람이었다. 누가 너 때문에 아프고, 피해 받는 건 아랑곳 하지 않는, 너는 그런 사람이었다. 행여 어딘가에서 프로젝트라도 할라 치면, 다른 조에 속한 사람들은 먼저 깔보기부터 했다. 공동의 적을 만들어 사람을 똘똘 뭉치는게 팀워크를 높이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넌 사람을 밀어 붙이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 결국 언제나 네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다. 네가 성공하고 싶어했던 걸, 잘 기억하고 있다. 가난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거친 전형적인 캐릭터가 너라고, 넌 웃으면서 말했었고 나는 니가 정말 그 모든 것들을 잘 이겨가길 바랐다. 그렇지만 네가 가진 그 정말 정신이 가난하기 그지 없는 방식으로는, 넌 네가 바라는 최고가 절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이제와서야 말한다.
나는 네가 하는 말에 물들기 시작했다. 여유가 없어지고, 세상은 정말 경쟁으로 가득차서 사방이 정말 적으로 둘러싸인 것 같았다. 네가 말하는 세상은 정말 지옥에 가까웠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의 경쟁을 이야기하던 너와 붙어있으면서, 맹세컨대 이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던 적이 단 한 순간도 없다. 나는 하루가 다르게 성마른 사람이 되어갔고, 어느 샌가 빠른 말투로 짜증을 내뱉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너는 자주 김어준을 들먹이면서 그의 연애론을 찬양했다. 하지만 난 아무리 그 사람의 말을 들어도 그가 ‘닥치고 꼴리는 대로 사랑하라’ 라고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진정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그건 정말로 어른이 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니까 그의 요구에 맞게 변하는 것이 과연 당연한가’ 에 대한 김어준의 입장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변화를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었지, 사랑하니까 연인의 있는 그대로를 다 찬양하라는 말은 아니었다.
너는 사랑하니까 있는 그대로의 너의 이기적인 모든 부분까지를 다 사랑하라는 말을 나에게 한 적이 있다. 이 이기적인 모습도, 이 모난 모습도 나의 한 부분이니 나를 사랑한다면 이 부분도 그냥 인정해야 한다고. 그러니 내가 사랑을 할 때 조금 이기적인 부분도, 변화를 강요하지 마라는 말을 너는 노래를 부르듯이 말했다. 나는 그때 묻고 싶었다. 그럼 너는 나를 그렇게 사랑하고 있는지. 나의 모나고, 추한 모습을 너는 인정해주려고 했는지. 내가 목소리라도 올리라 치면 일그러지던 너의 모습을, 내 의견을 이야기하면 비웃음에 입꼬리부터 올라가던 너는 김어준의 그 연애론을 편리한대로 갖다 붙이고 있는 건 아니냐고 쏘아붙이고 싶은 날도 많았다.
나는 너를 사랑해서 너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의 추한 모습은 좀 더 낫게 고치고 싶었고, 나의 모난 부분은 너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다듬고 싶었다. 열심히, 나름의 최선을 다해서 뭔가를 주고도, 더 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한 구석에 늘 남았다. 나는 너를 그렇게 사랑했다. 그래서 나는 후회가 없다. 그렇지만 너는 후회하지 않았더냐.
니가 나보다 어리고, 신선하다는 일곱 살이나 어린 후배와 이제 진지하게 만나고 싶으니, 나와 헤어져야겠다고 말할 때, 너는 그래도 니가 최소한 정말로 바람을 피우기 전에 말했으니 최악은 아니라고 말했다. 왜 그때 뺨을 한 대 올려치지 못했는지가 아직도 내 한이지만, 너는 이미 최악에, 최악이었다. 그때도 미련한 나는 너를 울면서 붙잡았고 너는 이런 나를 버리고, 또 나에게서 도망쳤다. 넌, 정말 비겁했다. 그리고 정말 찌질했다. 그 순간에 너는 사랑했던 사람에게 최소한 갖추어야 할 예의는 정말 다 말아먹은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었던 너의 더러운 짓에 대해서는 정말로 쓰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써야겠다.
헤어지자마자 나는, 믿기지 않겠지만 너의 전화번호와 사진을 모두 지웠고 친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술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정말 이 글을 쓰는 나도 믿기지 않지만 너를 이해했다. 너를 미워하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마지막으로 너에게 내가 네 자취방에 두고 온 책을 받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마지막 전화가 되리라는 마음으로, 나는 내 책을 내 사물함에 넣어달라고 너에게 부탁했고, 잘 지내라고 했다. 너는 알겠다며, 너도 잘 지내라는 말을 했다. 딴에는 너도 영화를 찍었다. 너는 니 기분에 취한 연극 배우 같은 대사를 내뱉었다. 유치해서 쓰고 싶지도 않다. 너는 그 순간까지도 너 자신에게 취해있는 가엾은 사람이었다.
물건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너에게 거짓말처럼 다시 전화가 걸려와 친구로 지내자는 말을 했다. 연락만이라도 하고 지내자는 너의 비겁한 말을, 약해진 내 마음은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그러자고 말했고, 힘들어지는 것 같은 때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는 처음에는 나에게 제법 공손한 태도로 전화를 받고 헤어진 연인 놀이를 해주었다. 그러다 곧, 내가 카페에서 남자가 번호를 물어보았다는 말에 ‘나는 솔직히 니가 다른 남자 안 만났으면 좋겠어. 그냥 1년만 이렇게 지내보고.. 딱 1년만 이렇게 지내보다가 내가 다시 만나면 안 돼?’ 라는, 사상 초유의 개념 없는 질문을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너는 내 태도에 어물쩡, 이야기를 흐렸지만 연락을 할 때마다 너는 은근하게 계속 1년만 이렇게 지내보자는 말을 해댔다. 나는 여전히 눈이 흐렸다.
그리고 그러다, 내가 나를 다시 돌아보기 위한 철학 강좌를 들은 날, 나는 너에게 이것도 안되겠으니 연락을 끊자고 말했다. 너는 ‘앞으로 연락을 끊으면 평생 연락 안 받아줄거야’ 라는 강경한 태도로 나에게 은근한 뉘앙스의 협박을 했다. 나는 그러자고, 이때도 우습게도 눈물을 머금은 채 그러겠노라고 했다.
너는 또 한 번 니 기분에 취한 연극 배우 같은 대사를 내뱉었다.
‘.영원히...안녕.’
아. 정말 이 말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 다시 보니 좀 우습기까지 한 니 말은 그때는 참 날 후벼 파는 말이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 크리스마스 저녁, 너는 밤에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마음이 가라앉은 채로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냐는 나의 목소리에 너는 어렵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 이런 말을 했다. 지금, 만나는 그 애가.. 나랑 안 맞는 것 같다고. 니가 생각 나서 전화 했다고.
나는 딱 한 가지를 물었다.
지금 그 아이랑 정식으로 사귀느냐고.
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지금 그 아이랑 정식으로 사귀느냐고.
너는 거기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게 여기서 중요하냐고.
나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너는 머뭇거리다가,
어.
이렇게 내뱉었다.
나는 이 말과 동시에 전화 끊겠습니다, 는 말로 너를 잘라냈다.
그리고 너는 여전히 무엇이 너의 잘못이었는지는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너와 관련된 것들을 모두 내다 버렸다. 그리고 이따끔 걸려오던 전화와 문자를 몽땅 깡그리 무시한 채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오늘, 아주 우연히 네가 연애와 관련된 팟캐스트를 하고 싶어한다는 걸 알았다. 앞으로 네가 살 인생에 대해 나는 어떤 해도 입힐 생각이 없다. 그렇지만 네가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면, 그건 이야기가 좀 다르지 않나 싶어 이렇게 글을 쓴다.
난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듯 말해본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로 해야겠다. 그 팟캐스트 조용히 접어라.
너는 사랑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다. 사랑을 해본적도 없고, 누군가의 사랑을 이해하지도 못하며, 심지어는 너에게 사랑을 주던 누군가를 알아보던 눈조차 없었던 네가. 무슨 자격으로 누군가의 사랑을 이야기할 것이냐. 너는 그저 누군가를 조롱하고, 그저 그럴싸한 말로 주목 받고 싶어 안달이 났을 뿐이다. 그래서 누군가 너를 떠받들어주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주었으면 한다는 거. 너를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봐온 연인이어서 아주 잘 알고 있다. 네 허약하기 그지없는 자존심이 벗겨질까봐, 네가 언제나 조마조마하기 그지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내가 하나 알려줄까. 정말 멋진 남자가 가진 건, 자존심이 아니라 자신감이라는 거다. 그리고 그 자신감의 뿌리는 건강하고 깊은 사랑이라는 것도, 같이 알려주고 싶다. 네 자존심의 뿌리는 얼마나 허약하고 초라한 것인지ㅡ 너를 떠나간 나는 알겠다. 네가 나에게 모질게 대해서, 나를 비참하게 만들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너는 모든게 허약하고 초라한 사람이고, 그 이유는 네가 못나고 가난해서가 아니라 네가 사람과 사랑을 깡그리 무시하는 무뢰배에 가깝기 때문이다.
네가 정말 사랑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사랑에 대해 말해라. 그게, 네가 지금 너에게 마지막으로 예의를 갖춰서 해줄 수 있는 말의 전부다.
툭툭 털어놓듯이 쓰고 갑니다.
잘 모르겠다. 내가 그 사람을 아직도 미워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용서하지 못한 건지. 하나 분명한건 난 그 사람과 관련된 무언가를 볼 때 마다 아직도 며칠을 앓아야 한다는 거다. 사람과의 만남은, 분명 사람을 물들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넌 지독한 사람이었고 난 참 지독한 앓이를, 너를 만났던 그 순간부터 1년 동안 앓아오고 있다.
너를 처음 보았던 날, 느꼈던 그 왠지 모를 위화감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 나 자신을 책망하면서 1년이 지났다. 정말 끔찍하게 자기 자신밖에 사랑할 줄 모르던, 정말 끔찍하다는 말밖에 어울리는 게 없는 너를 만나면서 내가 왜 그토록 내 모든 걸 바쳤는지, 왜 인생에서 아주 소중한 내 젊은 날을 날려버린 건지. 그 결정을 나는 지금까지도 뼛속까지 후회한다.
하나하나 분명하게 써놓으면 그렇지 않아도 잊혀지지 않는 그 끔찍한 기억이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어디에도 쓰지 않으려했다. 그럼 정말로 덮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매일 쓰는 일기에도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움직이는 펜을 움켜잡았던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울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괜찮은 척 하고 1년을 살았다. 그리고 나서야 알았다. 차라리 그 때 다 울고, 그 때 다 욕하고, 그 때 너를 다 토해냈어야 했다는 걸. 괜찮은 척 하느라고 애써 감추고 눌러놓았던 기억이 그리고 그 상처가 시간이 지나니 썩어간다. 지난 1년 동안 내 상처는 나아지지 않았다. 난 그 시간동안 썩어가는 걸 느끼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래서.
늦었지만, 니가 어떤 짓을 나에게 저질렀는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지독하게 앓고 있는지를 하나하나 쓰려고 한다. 이것이 나에게 잔인한 짓이 된다고 해도 그러려고 한다. 니가 읽게 될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니가 언제나 너 자신을 위한 말만 지껄였으니, 내가 한번 그렇게 지껄인다 해서 크게 문제될 것도 없을 것이다.
넌 나를 그럴싸한 말로, 꼬드겼다. 나라는 인간 자체가 좋아져서 그런게 아니라, 여자를 갖고 싶은 마음에 나를 꼬드겼다. 난 내가 순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여자애였고, 말재주가 좋은 너에게 넘어갔다. 네가 가진 화려한 경력이 멋져보였다. 솔직히 외로웠고,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는 게 기뻤다. 그래서 쉽게 넘어갔다. 그랬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내가 받은 대가는 너무 가혹한 것이라고, 나중에야 생각하게 되지.
사귀게 됬을 때, 너는 그랬다. 빨리 작업해서 넘어오지 않는 여자는 그냥 빨리 포기하고 다른 사람으로 넘어가서 들이댄다고. 그래서 니가 좋다고. 나를 좋아해줘서 좋다고.
나는 그 말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너는 처음부터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관심도 없었다. 내가 어떤 색깔을 갖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웃는지, 어떤 이야기에서는 시무룩해지는지. 넌 처음부터 나를 읽으려고 하지 않았다. 난 어렴풋이 그걸 느꼈지만, 그게 어른답고 서로 간섭하지 않는 쿨한 연애라고 생각했다. 지금와 생각해보니 참 어렸다.
우리의 연애는, 너의 작은 자취방에서 내가 무언가를 갖다 바치는 걸로 시작해, 갖다 바치는 걸로 끝이 났다. 나는 너에게 무언가를 주었던 사실이 화가 나고 슬픈 게 아니다. 난 널 사랑했다. 그래서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걸 주었고, 거기에는 정말 후회가 없다.
니가 나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고, 가끔은 내가 손에 모른 척 용돈을 주어야 해서 너를 원망하는게 아니다. 사랑하는 남자 기 죽이기 싫어서 모른 척 돈을 쥐어주는 거,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나는 그런 사실들 때문에 너를 이제까지 맘 속에서 열두번은 넘게 죽였다 살렸다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너를 용서할 수 없는 건, 너는 나와 사귀는 동안 내내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넌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인냥, 너는 그렇게 나에게 내내 사랑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너와 있는 동안 오해했었다. 뜨거운 여름날, 달구어진 아스팔트 위에서 화가 난 너를 따라잡느라 넘어져서 무릎이 깨져 피가 나는 나를 뒤로 하고 니 길을 성큼성큼 화가 난 걸음으로 가던 너를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해주고, 끝까지 따라가 잘못했다고 빌어가며 네 눈치를 보는 것을 너는 이해심이 넓은 사랑의 한 형태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그런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너는 계속 최면을 걸 듯 말을 해댔다. 다른 여자와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나에게는 쓸 수가 없던 돈을 새로운 여자들을 만나는데는 쓰는 걸 이해하는 것도 사랑의 한 형태라고 말했을 때,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고 그게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우리 집에 놀러와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일을 해대고 너는 TV를 보며 앉아 있는 너에게 핀잔을 주었을 때, 불같이 화를 내면서 뛰쳐 나가는 너를 맨발로 뛰어나가 잡아오는 나를, 그런 나를 너는 아마도, 사랑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모든 걸 견뎠던 이유는, 그래도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흐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조금 더 헌신적인지도 모르겠지만, 연애에는 어느 한쪽이 더 좋아할 수 있는거니까, 그건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나는 니가 나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너는 그 모든 말도 되지 않는 행동을 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어댔고, 나중에는 그나마도 하지 않았지만, 너의 말을 믿었다. 솔직히 말해, 믿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헌신을 다 하는 남자가 나를 사랑하길 정말 간절히도 바랬다. 그래서 나는 너한테 이별통보를 받는 그 순간까지도 미련하게 매달리지 않았더냐.
넌 조금씩 날 갉아먹어가는 존재이기도 했다. 특유의 이기적인 사상과, 경쟁주의, 사람에 대한 신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으면서도 그럴싸한 포장을 떡칠한 너의 사람에 대한 가치관은 나를 물들였다. 넌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었다. 박식해보였고, 실제로 아는 것도 많았다. 그래서 무언가를 보는 폭이 넓었다. 나는 그게 참 신기했다. 이제까지 내 주변에는 나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없었다. 너라는 존재는, 신선하고 자극적인 말들로 나를 간지럽혔다.
그러다 차츰, 니가 하는 말들을 문득 돌이켜보니 도대체 배려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 볼수 없다는 걸 알았다. 너는 여유가 없는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저 성공하기만을 원했고, 성공을 위해서 남을 밟고 올라서는게 너무나 당연한 사람이었다. 누가 너 때문에 아프고, 피해 받는 건 아랑곳 하지 않는, 너는 그런 사람이었다. 행여 어딘가에서 프로젝트라도 할라 치면, 다른 조에 속한 사람들은 먼저 깔보기부터 했다. 공동의 적을 만들어 사람을 똘똘 뭉치는게 팀워크를 높이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넌 사람을 밀어 붙이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 결국 언제나 네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다. 네가 성공하고 싶어했던 걸, 잘 기억하고 있다. 가난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거친 전형적인 캐릭터가 너라고, 넌 웃으면서 말했었고 나는 니가 정말 그 모든 것들을 잘 이겨가길 바랐다. 그렇지만 네가 가진 그 정말 정신이 가난하기 그지 없는 방식으로는, 넌 네가 바라는 최고가 절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이제와서야 말한다.
나는 네가 하는 말에 물들기 시작했다. 여유가 없어지고, 세상은 정말 경쟁으로 가득차서 사방이 정말 적으로 둘러싸인 것 같았다. 네가 말하는 세상은 정말 지옥에 가까웠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의 경쟁을 이야기하던 너와 붙어있으면서, 맹세컨대 이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던 적이 단 한 순간도 없다. 나는 하루가 다르게 성마른 사람이 되어갔고, 어느 샌가 빠른 말투로 짜증을 내뱉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너는 자주 김어준을 들먹이면서 그의 연애론을 찬양했다. 하지만 난 아무리 그 사람의 말을 들어도 그가 ‘닥치고 꼴리는 대로 사랑하라’ 라고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진정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그건 정말로 어른이 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니까 그의 요구에 맞게 변하는 것이 과연 당연한가’ 에 대한 김어준의 입장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변화를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었지, 사랑하니까 연인의 있는 그대로를 다 찬양하라는 말은 아니었다.
너는 사랑하니까 있는 그대로의 너의 이기적인 모든 부분까지를 다 사랑하라는 말을 나에게 한 적이 있다. 이 이기적인 모습도, 이 모난 모습도 나의 한 부분이니 나를 사랑한다면 이 부분도 그냥 인정해야 한다고. 그러니 내가 사랑을 할 때 조금 이기적인 부분도, 변화를 강요하지 마라는 말을 너는 노래를 부르듯이 말했다. 나는 그때 묻고 싶었다. 그럼 너는 나를 그렇게 사랑하고 있는지. 나의 모나고, 추한 모습을 너는 인정해주려고 했는지. 내가 목소리라도 올리라 치면 일그러지던 너의 모습을, 내 의견을 이야기하면 비웃음에 입꼬리부터 올라가던 너는 김어준의 그 연애론을 편리한대로 갖다 붙이고 있는 건 아니냐고 쏘아붙이고 싶은 날도 많았다.
나는 너를 사랑해서 너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의 추한 모습은 좀 더 낫게 고치고 싶었고, 나의 모난 부분은 너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다듬고 싶었다. 열심히, 나름의 최선을 다해서 뭔가를 주고도, 더 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한 구석에 늘 남았다. 나는 너를 그렇게 사랑했다. 그래서 나는 후회가 없다. 그렇지만 너는 후회하지 않았더냐.
니가 나보다 어리고, 신선하다는 일곱 살이나 어린 후배와 이제 진지하게 만나고 싶으니, 나와 헤어져야겠다고 말할 때, 너는 그래도 니가 최소한 정말로 바람을 피우기 전에 말했으니 최악은 아니라고 말했다. 왜 그때 뺨을 한 대 올려치지 못했는지가 아직도 내 한이지만, 너는 이미 최악에, 최악이었다. 그때도 미련한 나는 너를 울면서 붙잡았고 너는 이런 나를 버리고, 또 나에게서 도망쳤다. 넌, 정말 비겁했다. 그리고 정말 찌질했다. 그 순간에 너는 사랑했던 사람에게 최소한 갖추어야 할 예의는 정말 다 말아먹은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었던 너의 더러운 짓에 대해서는 정말로 쓰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써야겠다.
헤어지자마자 나는, 믿기지 않겠지만 너의 전화번호와 사진을 모두 지웠고 친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술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정말 이 글을 쓰는 나도 믿기지 않지만 너를 이해했다. 너를 미워하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마지막으로 너에게 내가 네 자취방에 두고 온 책을 받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마지막 전화가 되리라는 마음으로, 나는 내 책을 내 사물함에 넣어달라고 너에게 부탁했고, 잘 지내라고 했다. 너는 알겠다며, 너도 잘 지내라는 말을 했다. 딴에는 너도 영화를 찍었다. 너는 니 기분에 취한 연극 배우 같은 대사를 내뱉었다. 유치해서 쓰고 싶지도 않다. 너는 그 순간까지도 너 자신에게 취해있는 가엾은 사람이었다.
물건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너에게 거짓말처럼 다시 전화가 걸려와 친구로 지내자는 말을 했다. 연락만이라도 하고 지내자는 너의 비겁한 말을, 약해진 내 마음은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그러자고 말했고, 힘들어지는 것 같은 때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는 처음에는 나에게 제법 공손한 태도로 전화를 받고 헤어진 연인 놀이를 해주었다. 그러다 곧, 내가 카페에서 남자가 번호를 물어보았다는 말에 ‘나는 솔직히 니가 다른 남자 안 만났으면 좋겠어. 그냥 1년만 이렇게 지내보고.. 딱 1년만 이렇게 지내보다가 내가 다시 만나면 안 돼?’ 라는, 사상 초유의 개념 없는 질문을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너는 내 태도에 어물쩡, 이야기를 흐렸지만 연락을 할 때마다 너는 은근하게 계속 1년만 이렇게 지내보자는 말을 해댔다. 나는 여전히 눈이 흐렸다.
그리고 그러다, 내가 나를 다시 돌아보기 위한 철학 강좌를 들은 날, 나는 너에게 이것도 안되겠으니 연락을 끊자고 말했다. 너는 ‘앞으로 연락을 끊으면 평생 연락 안 받아줄거야’ 라는 강경한 태도로 나에게 은근한 뉘앙스의 협박을 했다. 나는 그러자고, 이때도 우습게도 눈물을 머금은 채 그러겠노라고 했다.
너는 또 한 번 니 기분에 취한 연극 배우 같은 대사를 내뱉었다.
‘.영원히...안녕.’
아. 정말 이 말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 다시 보니 좀 우습기까지 한 니 말은 그때는 참 날 후벼 파는 말이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 크리스마스 저녁, 너는 밤에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마음이 가라앉은 채로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냐는 나의 목소리에 너는 어렵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 이런 말을 했다. 지금, 만나는 그 애가.. 나랑 안 맞는 것 같다고. 니가 생각 나서 전화 했다고.
나는 딱 한 가지를 물었다.
지금 그 아이랑 정식으로 사귀느냐고.
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지금 그 아이랑 정식으로 사귀느냐고.
너는 거기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게 여기서 중요하냐고.
나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너는 머뭇거리다가,
어.
이렇게 내뱉었다.
나는 이 말과 동시에 전화 끊겠습니다, 는 말로 너를 잘라냈다.
그리고 너는 여전히 무엇이 너의 잘못이었는지는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너와 관련된 것들을 모두 내다 버렸다. 그리고 이따끔 걸려오던 전화와 문자를 몽땅 깡그리 무시한 채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오늘, 아주 우연히 네가 연애와 관련된 팟캐스트를 하고 싶어한다는 걸 알았다. 앞으로 네가 살 인생에 대해 나는 어떤 해도 입힐 생각이 없다. 그렇지만 네가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면, 그건 이야기가 좀 다르지 않나 싶어 이렇게 글을 쓴다.
난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듯 말해본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로 해야겠다. 그 팟캐스트 조용히 접어라.
너는 사랑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다. 사랑을 해본적도 없고, 누군가의 사랑을 이해하지도 못하며, 심지어는 너에게 사랑을 주던 누군가를 알아보던 눈조차 없었던 네가. 무슨 자격으로 누군가의 사랑을 이야기할 것이냐. 너는 그저 누군가를 조롱하고, 그저 그럴싸한 말로 주목 받고 싶어 안달이 났을 뿐이다. 그래서 누군가 너를 떠받들어주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주었으면 한다는 거. 너를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봐온 연인이어서 아주 잘 알고 있다. 네 허약하기 그지없는 자존심이 벗겨질까봐, 네가 언제나 조마조마하기 그지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내가 하나 알려줄까. 정말 멋진 남자가 가진 건, 자존심이 아니라 자신감이라는 거다. 그리고 그 자신감의 뿌리는 건강하고 깊은 사랑이라는 것도, 같이 알려주고 싶다. 네 자존심의 뿌리는 얼마나 허약하고 초라한 것인지ㅡ 너를 떠나간 나는 알겠다. 네가 나에게 모질게 대해서, 나를 비참하게 만들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너는 모든게 허약하고 초라한 사람이고, 그 이유는 네가 못나고 가난해서가 아니라 네가 사람과 사랑을 깡그리 무시하는 무뢰배에 가깝기 때문이다.
네가 정말 사랑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사랑에 대해 말해라. 그게, 네가 지금 너에게 마지막으로 예의를 갖춰서 해줄 수 있는 말의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