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끔찍한 사고로 네가 나의 곁을 떠난지도 어언 10년이 흘렀구나

보고싶다2013.02.26
조회5,752

밤은 늦었는데 왠지 오늘따라 네 생각이 많이 나서

10년동안 담아왔던 이야기를 용기내어 처음으로 꺼내본다.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해야 할까,

내게는 아직도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10년이나 지났다는 것이 솔직히 믿어지지 않는구나.

얼마 전,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고 네 생각이 나 참 많이 울었단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지?


2003년 2월 18일, 

그 뜨거운 불구덩이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눈을 감은 넌 어떤 생각을 하며 떠나갔을까.




고등학교 시절 처음 만난 넌,

소심하고 숫기없는 여학생이던 나에게 우상같은 존재였단다.

매일 점심시간이면 다른 남자아이들과 뒤엉켜 축구를 하는 널,

난 교실 창문에 걸터앉아 바라보며 몰래 얼굴을 붉히곤 했었어.

하지만 나 말고도 많은 여학생들에게 인기 있던 너였기에

나는 차마 너에게 고백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지.

결국 졸업식이 가까워 질 때까지 난 너에게 단 한마디의 말도 건네지 못했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만 갔단다.



해서 마침내 고등학교 졸업을 하던 날,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너를 볼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난 있는 용기 없는 용기를 모두 쥐어짜서 다른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널 조용히 불러내었다.

그리고 그 날 내가 알게 된 사실은, 부족함 없는 가정에서 곱게 자랐을거란 내 예상과 달리

너는 부모님이 일찍이 이혼하시고 할머님과 단둘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어.


그 땐 솔직히 많이 놀라웠단다.

항상 완벽하다고 느껴왔던 너에게 그런 상처가 있다는 사실이 말이야.

그렇게 학교 운동장 구석에서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채 버벅거리는 말투로 고백을 한 나에게,

곧바로 차일거란 내 예상과는 반대로 넌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었지.

난 단지 헤어지기 전 내 마음을 전하려 했을 뿐인데, 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더구나.

솔직히 마음 속 한켠으로는 여태 나에게 말 한마디 해주지 않은 채

내 마음을 애태웠던 네가 야속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너에게 내 마음을 전했다는 것과

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크게 기쁨으로 다가왔단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설레는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지.



연애기간동안 넌 나에게 최고의 사람이었단다.

소박하지만 부족함 없는 연애를 했고

난 너에게, 넌 나에게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었던걸 기억하고 있니?

대학시절, 네 할머님이 돌아가셨을 때에 휑한 장례식장에서 처음 뵌 너의 어머니 앞에서

상주였던 너보다 더 구슬프게 오열했던게 나였고,

우리집이 잠시 힘들었을 때 아르바이트를 몇개씩 뛰고 몸을 상하게 하면서도

내 학비에 보탬을 해주었던것도 너였어.

네가 군대에 가 있을 2년 동안 나는 단 한순간도 눈돌린 적 없이 너만을 기다렸고,

2년 뒤 네가 전역한 후에도 여전히 변함없던 우리는

서로에게 헌신하며 계속해서 달콤한 사랑을 이어갔었지.

힘든 일도 있었고 가끔은 서로가 엇갈릴 때도 있었지만

그보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컸던 우리였기에

오롯이 서로만을 바라보며, 서로에게 의지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난 너의 아이를 갖게 되었단다.

그 시절의 나는 아직 어리다면 어린 나이였기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초조해 했었지만

너는 그런 나와는 달리 진지한 얼굴로 내 손을 잡고는 

당당히 나와함께 우리 부모님께로 찾아가 주었어. 그 때 새삼 너의 남자다움에 놀랐고,

난 양친 없이 혈혈단신이었던 너를 부모님께서 반대하시면 어쩌나 마음졸였지만

당신들께서는 흔쾌히 우리 사이를 허락해주셨었지. 내색은 안 했지만 

그 때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너는 알까? 그날 우리집에서 나와 나를 와락 껴안으며 

해맑게 미소짓던 너의 얼굴이 나의 눈 앞에 아직도 선하구나.

웨딩드레스는 배 나오기 전에 입어야 예쁘다며 어여삐 눈웃음 짓던 너.

어쩌다 나에게 너같은 사람을 주셨는지 더는 바랄 것이 없는 삶이었단다.



그리고 그 날은 우리가 드레스를 보기로 한 날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어.

갓 입사한 회사에 월차까지 낸 너에게 나는 원래 정했던 약속시간보다 조금 더 빨리 만나자며 널 재촉했고

한번도 내 고집을 이긴적이 없던 너는 여느 때처럼 빙그레 웃으며 그러겟노라고 대답해 주었지.

아직도 가끔 생각하곤 한단다. 내가 그 날 너에게 그런 고집을 부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고 말이야.

헌데 그 날 따라 단 한번도 나와의 약속에 늦은 적이 없던 넌 약속시간이 훨씬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고


난 슬그머니 화가 나기 시작했지만

괜한 자존심으로 너에게 문자 한 통 넣지 않은 채 약속장소 앞에서 덩그러니 널 기다렸단다.

마침내 만나기로 한지 30분이 넘어서야 내 핸드폰 액정엔 너의 이름이 떴고

잔뜩 성이 난 나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들었지.

그리고 너의 목소리를 들으며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을 때에는 이미 늦은 후였던 것 같구나.


너는 타들어가는 목소리로 내게 다급하게 어디냐고 외쳤고

이미 도착해 널 기다리고 있다는 내 대답에 연신 '다행이다...'라는 말만 중얼거렸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내가 초조하게 너에게 무슨일이냐 물었지만

너는 그저 나에게 늦어서 미안하다며 웨딩드레스는 다음에 보자, 라는 말만을 하곤

마지막으로 들릴듯 말 듯 '사랑해' 라는 중얼거림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자리에서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버린 나는 

너에게 몇 번이나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너는 끝내 받지 않더구나.

그렇게 영문도 모르고 그자리에 미친여자처럼 주저앉아 엉엉 울면서 너에게 다시 전화를 걸기도 수십번,

중간에 어머니가 보내 온 문자를 본 나는 그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어.

지하철에 불이 났단다. 네가 나에게 오고있던 그 시간에 불이 났단다.

너와 무사히 만났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난 한동안 넋을 놓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

내 답장이 오지 않자 어머니는 나에게 전화를 거셨고 전화를 받은 후에도 아무 말을 할 수 없던 나는

겨우겨우 목소리를 쥐어 짜 몇마디 말을 나눈 후 곧바로 중앙로역으로 향했단다.



그 곳까지 어떻게 갔는지 사실 기억조차 나지 않는구나.

이미 역에서 한 참 떨어진 곳에서부터 뿌연 연기로 가득했고

내가 그 곳에 도착했을 땐 이미 많은 소방대원들과 몰려온 사람들로 가득해서,

난 그냥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귀에서는 이명이 웅웅 울렸고 머리는 핑핑 돌아 제대로 된 사고조차 나는 할 수가 없더구나.

이윽고 생존자들과, 대원들에 의해 들것으로 실려나오는 사망자들이 속속히 보이기 시작하고

그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달려가보았지만 너는 없더라. 하나하나 사망자들의 얼굴을 확인하면서

한편으로 안심이 되면서도 알 수 없이 불안한 마음에 끝까지 자리를 지켰지만 끝끝내 넌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이야기를 전해듣고 오신 아버지가 나를 끌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나는 그자리에서 넋을 놓고 앉아있을 뿐이었다.


한동안 뉴스에 뜬 사망자 명단을 살펴보고, 네가 없다는 사실에 다시 안심하고,

그러면서도 난 하루종일 뉴스가 흘러나오는 TV앞을 떠날 수가 없었단다.

결국 끝끝내 그 속에서 너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고

나는 네가 다른 사고가 나서 잠시 연락이 두절된 거라고 애써 나를 다잡으며

네 연락을 기다렸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너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지.

무기력한 나대신 우리 부모님께서 너의 실종신고를 하셨지만

그때에 들어온 실종신고만 400건이 넘는다며 아마 기대하기는 어려울거란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절망의 바닥을 보아야 했단다.



하루하루가 사는 것 같지가 않더구나. 당신들께서는 뱃속의 아이도 생각해야 한다며

나를 몇번이나 달래고, 다그쳐보시기도 했지만 내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어.

결국 영겁같았던 시간 끝에 너의 사망확정소식을 들은 나는 오열하다 몇번이고 혼절을 했단다.

법적으로 혼인신고조차 되어있지 않았던 우리였기에 나는 그저 가슴만 펑펑 칠 뿐이었다.

밀려오는 한없는 슬픔과 죄책감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하루만에 온 세상을 잃은 기분이었단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날짜는 허무하게 흘러가버렸고

원래대로라면 순백의 신부가 되어 웃고있어야 할 난 그저 눈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었지.




그러다 문득, 이렇게 살고 있으면 안되겠다는 마음이 들더구나.

나에겐 아직 너의 아이가 있었고, 주위사람들의 말처럼 네몫까지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멀리하던 밥도 입으로 꾸역꾸역 집어 넣었다. 여전히 먹지 못하고 개워내는 것이 다반사였지만

산 사람 입에 거미줄은 치지 않는다고, 어찌어찌 살아가게 되었어.




그리고 그 해 12월, 너와 나의 아이가 태어났단다.

몇시간의 진통과 정신이 아득히 멀어져가는 그 고통속에서

내가 천번을 불러도 오지 않을 네 이름만 수없이 불러대었다면 너는 믿을 수 있을까.

그 고통 속에 생각나는 것이 네 이름 뿐이었기에 그리 할 수 밖에 없더구나.

그렇게 태어난 우리 아이는 예쁜 딸이면 좋겠다던 너의 바람과는 달리

널 쏙 빼닮은 씩씩한 왕자님이었어. 그 자그마한 것이 어찌 너를 그리도 닮았던지.

아이를 끌어안고 있으니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 주체할 수가 없더구나.

눈을 감은 그 조약돌같은 얼굴위로 겹쳐지는 너의 모습이 너무나도 선명했거든.

그건 네가 나에게 남겨준 마지막 선물이자 가장 큰 선물이었단다.

아이의 고사리같은 손을 맞잡으며 난 지금 이 순간에 네가 함께 했었더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고 생각했었어.




홀몸으로 아이를 키운다는건 정말 쉽지는 않더구나.

아이가 어릴 적엔 회사에 가야 하는 나 때문에 언니와 어머니가 거의 우리집에 살다시피 했었고,

가끔씩 자신은 왜 아빠가 없냐며 순진하게 묻는 아이에게

나는 차마 아무 대답도 해 줄 수가 없어 서글프게 웃기만 했었단다.

하루는 아이의 유치원에서 부모님의 결혼사진을 가져오라 한 적이 있었어.

집에 도착해 결혼사진을 달라 하는 아이에게

고작 사진 한 장 없다고 말하기가 얼마나 힘이 들던지,

결국 대학시절 너와 함께 찍었던 사진 한장을 쥐어주고는

그날 밤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아이몰래 펑펑 운 적도 있었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지낸지도 11년이 흘러 다음달이면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된단다.

해서 지난 월요일에는 처음으로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대구에 내려갔었어.

매번 왔던 곳인데 누군가와 함께라는 것 때문이었을까, 새삼 새로운 기분이었단다.

거리 곳곳에는 분향소와 희생자들이 추모하는 글들이 써져있고 그들을 향한 편지들이 즐비하더구나.

그곳에서 저를 앞에 두고 태어나 처음으로

아빠 얘기를 들려주는 엄마를 어찌나 똘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보던지.

결국 또 바보같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단다.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바보같은 건 똑같지?

그런데 이번엔 너 대신 그 조그마한 아이가 고사리같은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며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엄마 울지마, 하고 말하더구나.


그 때 알았단다. 신께서 널 데려가신 대신 나에게 이 아이를 주셨다는 걸 말이야.





인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 뽀얗던 얼굴에 잔주름도 많이 생겼어.

10년 전 꽃다운 20대였던 나는 이제 4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간단다.

하지만 웨딩드레스는 나중에 입자던 너의 그 말 때문에, 난 아직까지도 웨딩드레스를 입어보지 못했어.

네가 돌아오면 입으려고 말이야.


너와 마지막으로 통화했었던 10년 전의 핸드폰도,

인제는 켜지지도 않는 고물이 되어버렸지만 버리지 못했어.

그 속에 남아있는 너와 했던 문자, 사랑해라고 속삭이던 전화 녹음들,

인제는 차마 들을 수도 없게 되어서

요즘은 가끔 핸드폰을 꺼내 몇 번쯤 열고 닫다가 다시 집어넣곤 한단다.




이렇게 난 잘 살아가고 있어.

너에게 항상 전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는데 이제야 입 밖에 내놓는 나를 용서하려무나.

아이는 오늘 태권도장에서 썰매장에 놀러간다며 잔뜩 들떠 집을 나섰단다.

널 닮은 우리 아이가 집을 비웠을 뿐인데 왜 오늘따라 그렇게 네 생각이 나는지,

인제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넌 아직 내 가슴에 꽃다운 20대의 모습으로 살아있단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고등학생의 너도,

10년 전의 너도,

내 가슴에 살아 숨쉬는 너도,


그리고 우리 아이의 모습에 남아있는 너도.




나는 아주 많이 사랑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