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원(廢園)

럽이200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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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원(廢園)

박목월


그는
앉아서
그의 그림자가 앉아서

내가
피리를 부는데
실은 그의
흐느끼는 비오롱 솔로

눈이
오는데
옛날의 나직한 종이 우는데

아아
여기는
명동
사원 가까이

하얀
돌층계에 앉아서
추억의 조용한 그네 위에 앉아서

눈이 오는데
눈 속에
돌층계가
잠드는데

눈이 오는데
눈 속에
여윈 장미 가난한 거지가
속삭이는데

옛날에
하고
내가 웃는데
하얀 길 위에 내가 우는데

옛날에
하고
그가 웃는데
서늘한 눈매가 이우는데

눈 위에
발자국이 곱게 남는다
망각의 먼
지평선이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