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내게 준 가장 축복인 여보야 저는 오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인연인 남편을 만나게 된 이야기를 할까합니다.‘97년 3월초 소개를 받아 두 사람과 선을 본다는 것을 평택에 사시는 부모님께는 말씀을 안 드리고 선을 보고 온지 며칠이 지나서였습니다.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혹시, 너 선봤니?”라고 대뜸 물으시는 어머니께 어떻게 아셨냐고 되물었습니다. 어머니는 꿈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꿈에 인상 좋게 생긴 아저씨가 나타나선 제가 두 사람과 선을 봤다고 하더랍니다. 조건이 둘 다 너무 좋아서 제가 어느 한 쪽을 선택해서 결혼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따님을 말려 달라고 하더라나요. 그 아저씨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아들이 지금은 그렇게 썩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거나, 돈이 많은 건 아니지만 앞으로 잘 살게 될 것이니 따님이 조건 좋은 사람을 선택해서 결혼하는 것을 말려 달라고 하더랍니다.엄마는 제게 그 이야기를 하며 선을 봤냐고 물으셨습니다. 선을 본 두 사람 다 외모나 조건면에서 빠지지 않았고, 성격 또한 무난한 편이었습니다. 두 사람 다 저에 대해 좋은 호감을 표시했고,저 역시 싫지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한 쪽을 선택할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며칠이 지난 일요일 아침 또 꿈을 꾸셨다며 어머니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저번 꿈에 본 아저씨가 다시 나타나선 아버지와 어머니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더랍니다. 어머니가 그 아저씨께 어디로 데리고 가느냐고 물었지만 아무 대답이 없더랍니다. 그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부모님을 어느 집 앞에 데려다 놓곤 제가 결혼해서 사는 곳이라고 말하곤 사라져 버렸답니다. 그래서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제가 우물가에 앉아 무엇인가를 씻어서 씹고 있더래요. 그래서 무얼 씹고 있나 궁금해서 엄마께서 들여다보니 제가 까만 보리쌀을 질겅질겅 씹고 있더랍니다. 엄마께서 너무 속이 상해서 한마디를 했다고 합니다.“넌 쌀도 없어서 보리를 씹고 있니?”그러자 제가 어두운 얼굴로 “보리가 맛있어서”라고 대답을 하더래요.>어머니는 꿈 이야기를 마치자 선본 사람들에 대해 느낌이 안 좋으니 만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몇 년 전 어머니의 꿈에 세 명의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앞에 키 큰 두 남자는 나를 좋아하는사람이라고 하는데 얼굴이 전혀 보이질 않더랍니다. 그런데 아랫목에 속 쌍꺼풀이 지고, 귀가 잘 생기고, 머리가 짧고 얼굴이 복스럽게 생긴 남자가 턱 버티고 앉아 있더랍니다. 그 사람이 내 인연이라면서요.아랫목에 앉아 있던 남자가 하도 눈에 선해서 어머니는 내게 인상착의가 잊혀지질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97년 가을 시화전이 끝 난지 얼마 안 되는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버지 친구분의 조카라며 사람이 괜찮으니 선을 한번 보자는 전화였습니다. 어른들이 소개해 주는 자리는 어려워서 피하고 있던 저의 이 핑계 저 핑계에도 어머니는 며칠 간격으로 전화를 걸어 오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그 사람 전화번호를 물었습니다. 제가 그 사람과 통화를 해보고 만나보겠다는 말을하자 엄격하신 아버지는 어떻게 여자가 먼저 전화를 하느냐고 반대를 하셨지만, 중매를 서는 당사자 역시도 상대방에 대해 아는 게 없는데 어떻게 사람을 함부로 만나느냐고 아버지께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그 사람의 연락처를 가르쳐 주셨습니다.그렇게 그와 나는 날자와 장소를 정해 만났습니다. 아버지께서 알려 주신 전화번호를 전화를 걸었더니 나즈막한 음성의 남자 목소리가 들려오더군요. 그렇게 그와 나는 날짜와 장소를 정해 만나기로 했습니다. 종각 앞에서 7시에 만나기로 한 날 저는 30분 정도 먼저 나가 제일은행 본점 앞에 앉아 시집을 읽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다 고개를 들어 지나가는 사람들과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처다 보다 어느 한 사람에게 시선이 갔습니다. 큰 키에 체격이 좋고 인상 좋게 생긴 한남자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저런 사람이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그때 “저 혹시... 방 자경씨 아니세요”라고 제 이름을 부르는 귀에 익은 나지막한 목소리에 제가 고개를 들어보니 바로 그 인상 좋은 남자가 제 앞에 서 있질 않겠습니까.“배고픈데 저녁 먹으러 가요. 저녁 먹을 시간이잖아요.”라는 제 말에 그는 순순히 저를 따라 한 음식점으로 들어 왔습니다. 그리곤 해물된장찌게를 참 맛있게 먹더군요. 밥풀 한 톨 남기지 않고 밥그릇을 비우는 걸 보니 가정교육은 됐구나 싶더군요. 차를 마시러 인사동엘 가서 제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도 아무 말 없이 잘 들어주더군요. 담배도 피우지 않고요.헤어지면서 명함을 서로 주고 받았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하루에도 수차례 전화를 걸어오는 그의 전화에 하루해가 참 잘 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 성격이었죠.저는 전화를 자주 거는 편이 아니라서 그런지 전화를 제게 자주 거는 사람에게 익숙치 않았거든요. 당시 모 지방 신문사 회장실에 근무 중이었던 저는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그의 전화에 짜증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꾹 참았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장 친한 천안 친구에게 그를 데리고 갔습니다.친구는 둥글둥글하게 생긴 그의 얼굴과 성격 좋게 생긴 그의 눈을 보며 꽤 마음에 들어하더군요. 천안 친구에게 다녀오고 며칠 후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는데 인사시키고 싶다는 제 말에 작가 선생님은 저녁을 사주겠다며 데리고 나오라더군요.그래서 여러 어른들과 작가선생님이 계시는 자리에 갔습니다.남자는 술을 먹여 봐야 한다는 어른들의 성화에 못 이겨 그는 술을 많이 마셨고, 그가 잠시 화장실엘 가느냐고 자릴 비운 사이 작가 선생님 중 한 분이 제게 한 마디 하셨습니다.“남자는 결혼 전에 술을 먹여 봐야 성격을 알아. 그 점에선 통과야. 그런데 결혼 전에 남자로서 이상 있는지 없는지 알아봐. 더군다나 중매결혼이라 위험부담이 크지. 남자가 숫기가 없고, 32살까지 장가를 안가고 여자가 없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을 수 있거든. 중매는 연애와 달라서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어” 모임 때문에 통화를 할 일이 있으면 작가선생님은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보았냐고 물어 보시는 것이었습니다.평소 그런 말씀을 잘 하시는 분이 아니셨기에 그분의 말씀이 가볍게 지워지진 않더군요. 어느새 저는 진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의 친구 아기 돌잔치에 갔다 오면서 그에게 우리 집에 가서 차 한잔 마시고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집으로 들어와 차를 마시고 과일을 먹으며 TV를 보았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가 저를 가만히 안았습니다. 저를 안은 그의 손과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문득 작가선생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눈 좀 잠깐 감아봐요.”라는 떨리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습니다. 그의 신체는 아무런 변화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결혼식 전에 사고 치지 말라고 어머니가 그러셨어요”라고 말하는 그를 보며‘이 사람이 나이가 지금 몇 살인데 자기 행동에 책임도 못 지고 마마보이 같은 말만 하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결혼을 먼저 한 제일 친한 친구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하자 친구는 대뜸 이상 있는 사람 같다고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는 시각적인 것만으로도 자극을 받는데 키스를 했는데도 변화가 없는 건 이상을 예고하는 거라며 한 마디 했습니다. 친구의 말만을 듣고 어머니에게 그 사람 이상 있는 사람 같다고 말했습니다.그 일로 양쪽 집안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로 그 사람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전화가 와도 자리에 없다고 해달라고 직원에게 부탁을 했고, 삐삐로 호출이 와도 연락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5일이 지났습니다. 퇴근을 해서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오면서 중간에서 내렸습니다. 눈에 보이는 철학관으로 들어갔습니다. 무속인은 제게 그 사람이 남자 구실을 못한다며 만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느 철학관에선 그 사람과 결혼을 하면 아이가 몇 년씩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집까지 40분을 넘게 걸어오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누군가에게 결혼을 하고싶어질 만큼 마음이 빠져 본적이 없던 제겐 무속인과 철학관에서 들은 이야기는 너무도 가슴 아픈 말이었습니다.집으로 돌아와 울고 있을 때 호출이 왔습니다. 음성을 들으니 그 사람이었습니다. 너무 괴롭다는 말과 보고 싶다는 그의 말에 눈물이 더 났습니다. 그의 호출기 번호에 집으로 전화를 해달라고 음성을 남겼습니다. 그는 그 밤 한걸음에 제게 달려 왔습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슬픔을 억누르기 힘든지 잠시 창가로 시선을 돌리곤 고개를 푹 숙이고 앉는 것이었습니다. 우는 제게 가만히 다가와 저를 안는 그의 두 눈에 고인 눈물을 보자 왜 그렇게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요. 얼마나...”말을 채 다 하지 못하고 저를 꼭 끌어안는 그의 가슴은 너무도 따뜻했습니다.성격이 내성적인 그는 군대 가기 전부터 지금까지 여자를 사귀어 본 경험이 없어 심리적으로 여자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고 합니다. 32살까지 여자 경험이 없던 그는 자기가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하나 고민을 했었대요. 그러다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여자와 단둘이 있게 되자 긴장을 하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자기도 자기가 이상이 있을지 모른다는 고민을 많이 했다며 내가 원한다면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이상이 있다고 해도 나는 괜찮아요. 요즈음은 의학이 발달해서 모든지 고칠 수 있대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라는 제 말에, 그는 제가 원하면 병원에 가주겠다고 말하며 눈물로 범벅이 된 제 얼굴을 그의 따스한 가슴에 안아 주었습니다. 제 여동생 결혼식엘 참석하기 위해 그와 평택 집 현관을 들어섰을 때 그를 보자 친정어머니는 놀라셨습니다. 어머니 꿈에서 아랫목에 떡 버티고 앉아 있던 바로 그 남자라고 말씀하시며 어쩌면 눈, 코, 입, 귀, 머리 다 그렇게 똑같으냐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그 후 우린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양쪽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은 그 사건은 32살이 먹도록 여자에 대해 전혀 경험이 없는 그가 너무 당황해서 일어난 일로, 그리고 성에 대해 결벽증을 가진 30살의 제가 너무 몰라서 일어난 사건으로 어른들은 이해 해주셨습니다. 작가선생님이 던지신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고 벌어진 그 일은 우리 두 사람을 부부로 맺어주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그때 제가 그의 사주에 水가 없어서 아이가 없을 거라고 말했던 무속인과 철학관 아저씨의 말을 100% 믿고 그와 헤어졌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제가 결혼하면 제 사주에도 水가 없어서 젖이 안 나올거라고 했던 그 역술인의 말도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98년 3월 양가 어른들의 허락을 받고 혼인신고를 한 뒤 우린 동거에 들어갔습니다. 그와 동거를 들어 가지전에 저는 그에게 네 가지 약속을 받았습니다.종교는 전혀 간섭하지 말 것, 아이를 낳으면 아이 돌잔치는 반드시 고아원이나 양로원 같은 어려운 이웃과 치룰 것, 그리고 10년을 넘게 한 달에 한 번 하는 고아원 봉사활동을 계속하게 해 줄 것,마지막으로 하나 틈나는 대로 수예를 놓고 거북이와 학을 접어서 좋은 일 하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일 많이 해 주시라고 보내는 것은 절대로 간섭하지 말 것입니다.이것만 약속해 준다면 그가 약속해 준 것의 몇 배로 저는 최선을 다해 잘 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동거를 시작한 그 다음 달 바로 임신이 되어 지금은 중3이 되는 큰딸 서영이와 초등학교 6학년인 예은이 두 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습니다. 물론 모유가 남아 돌아서 큰 애가 둘째와 9개월까지 같이 먹였습니다. IMF로 남편은 2년을 집에서 놀았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그 흔한 말다툼 한 번 없이 살았다면 믿어지세요. 2년 동안 놀면서 양쪽 집에는 그가 회사에 나가는 것처럼 했습니다. 낮에 저와 집에 있을 때 전화벨이 울리면 제가 받았고요. 제가 첫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였는데 다행히 아버지를 생각해서였는지 입덧이 없어서 가끔씩 별식이 먹고 싶으면 집 앞 시장에 가서 2,000원짜리 잔치국수를 시켜 먹고 국수사리를 하나 더 시켜서 먹고 오는 것이 다였죠. 그래도 참 행복했습니다.집에 있는 것이 너무 미안했던 남편은 월급도 없는 아는 분의 건축사무실에 나가 빈 사무실을 지켜주다가 들어오곤 했지만, 그래도 남편이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저와 같이 뱃속의 아이를 위해 동화책을 읽어 주고 제가 추울까봐 한 여름에 이불을 차버리고 자면 몇 번이고 깨서 배를 덮어 주고요.제 무릎을 베고 누운 남편의 귀를 파주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 주고 그의 이마를 넓혀서 하는 일이 잘 되라고 족집게로 머리를 뽑아 줄 때면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서 잠이 드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죠.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저와 동대문광장시장에 수예재료를 사러 같이 나가 주고, 제가 접은 거북이와 학 2,100마리를 담은 유리상자를 상도동까지 가서 사다 주는 남편이었습니다. 그렇게 놓은 수예를 TV를 보다가 좋은 일 하는 사람이 나오면 보내고, 학과 거북이를 접은 유리상자를 보낼 때면 “우리도 힘든데 무슨 남을 챙기는 거야“라는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그저 내 뜻을 따라 주는남편에게 늘 고마운 마음이었습니다. 첫아이가 예정일이 8일이 지나도 나오지 않아 친정집에 내려가 산엘 오르고 저녁때면 시내까지 걸어갔다 오고 동네를 몇 바퀴나 돌고 육교를 오르락 내리락 했습니다. 그래도 딸아이는 뱃속에서 참 건강하게 놀더군요. 호랑이띠 아들을 가지고 싶었던 저는 친정어머니와 여자 역술인 집에 가서 뱃속의 아이가 아들인가 딸인가를 물었습니다. 아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낳아 보니 딸이었습니다.임신 중 제일 가슴 아팠던 일은 시어머니께서 다 시들어서 팔지도 않는 포도를 얻어다 쥬스를 만들었다고 끓여서 보내올 때였습니다. 돈이 없어서 좋은 것도 사 주지 못하는데 그런 걸 제게 차마 먹으라고 할 수 없었던 남편은 시어머니께는 죄송했지만 그걸 버렸습니다. 다 시들거나 상한 과일을 발라 먹으라며 보내는 시는 시어머니 때문에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평소 알뜰하신 어머니는 얻어오신 과일들이 상했거나 시들었어도 아까우신 생각에 저희라도 먹으라고 보내오셨지만 저는 그 뜻을 알면서도 제 처지가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그런 날이면 우는 저를 너무도 착한 남편은 말도 못하고 가슴에 안아 주며 미안하다는 말만해야 했습니다.다시 남편이 전기와 소방감리일을 하게 되었을 때 아침에 말끔하게 달여 놓은 옷을 입고 대문을 나서는 남편의 얼굴에 환하게 번지는 미소와 자신감을 저는 지금도 잊지를 못합니다. 맏며느리이자 외며느리인 제가 시댁 큰일을 치루고 잠자리에 드는 날은 남편은 제 손을 꼭 잡고 “수고 했어”라고 말해 줍니다. 그 한마디로 하루의 힘든 일은 눈 녹듯 사그라들지요. 우리 부부는 첫째와 둘째딸 모두 돌을 제가 결혼 전부터 봉사활동을 다니던 의정부 선재동자원에서 했습니다. 역시 큰딸 서영이 때와 마찬가지로 한 주전에 고아원에 가서 아이들 점심을 제가 직접준비해서 돌잔치를 소박하게 치뤘습니다.비록 근사한 선물은 해 주지 못하지만 가장 멋진 날을 보내는 건 물질이 아니라 나눔에 있다는 걸 두 딸아이가 조금씩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서였습니다. 무엇보다 그런 제 뜻을 믿어주고 따라 주던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운명은 내가 가지고 나온 사주팔자로 전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를 이길 수 있느냐는 의지와의 싸움인 것입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만이 소중한 인연을 맞이할 준비가된 것이라고 우리의 두 딸에게 그걸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사주팔자에 연연하는 의지가 약한 사람이기 보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기꺼이 한 걸음 나갈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부족한 것들 투성이인 첫만남이었지만, 남편은 365일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15년을 한결 같이 팔베개를 해주며 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줍니다.그래서 저는 돌아가신 시아버님께서 하늘에서 제게 보내준 착하고 성실한 남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가며 365일 한결 같이 변함없는 사랑으로 함께해주는 남편이 있어 나는 참 행복한 여자입니다. 1
하늘이 내게 준 가장 축복인 여보야
하늘이 내게 준 가장 축복인 여보야
저는 오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인연인 남편을 만나게 된 이야기를 할까합니다.
‘97년 3월초 소개를 받아 두 사람과 선을 본다는 것을 평택에 사시는 부모님께는 말씀을 안 드리고
선을 보고 온지 며칠이 지나서였습니다.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혹시, 너 선봤니?”라고 대뜸 물으시는 어머니께 어떻게 아셨냐고 되물었습니다.
어머니는 꿈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꿈에 인상 좋게 생긴 아저씨가 나타나선 제가 두 사람과
선을 봤다고 하더랍니다. 조건이 둘 다 너무 좋아서 제가 어느 한 쪽을 선택해서 결혼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따님을 말려 달라고 하더라나요.
그 아저씨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아들이 지금은 그렇게 썩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거나,
돈이 많은 건 아니지만 앞으로 잘 살게 될 것이니 따님이 조건 좋은 사람을 선택해서 결혼하는 것을
말려 달라고 하더랍니다.
엄마는 제게 그 이야기를 하며 선을 봤냐고 물으셨습니다. 선을 본 두 사람 다 외모나 조건면에서
빠지지 않았고, 성격 또한 무난한 편이었습니다. 두 사람 다 저에 대해 좋은 호감을 표시했고,
저 역시 싫지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한 쪽을 선택할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일요일 아침 또 꿈을 꾸셨다며 어머니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저번 꿈에 본 아저씨가 다시 나타나선 아버지와 어머니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더랍니다.
어머니가 그 아저씨께 어디로 데리고 가느냐고 물었지만 아무 대답이 없더랍니다.
그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부모님을 어느 집 앞에 데려다 놓곤 제가 결혼해서 사는 곳이라고 말하곤
사라져 버렸답니다. 그래서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제가 우물가에 앉아 무엇인가를 씻어서
씹고 있더래요. 그래서 무얼 씹고 있나 궁금해서 엄마께서 들여다보니 제가 까만 보리쌀을
질겅질겅 씹고 있더랍니다. 엄마께서 너무 속이 상해서 한마디를 했다고 합니다.
“넌 쌀도 없어서 보리를 씹고 있니?”
그러자 제가 어두운 얼굴로 “보리가 맛있어서”라고 대답을 하더래요.>
어머니는 꿈 이야기를 마치자 선본 사람들에 대해 느낌이 안 좋으니 만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몇 년 전 어머니의 꿈에 세 명의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앞에 키 큰 두 남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얼굴이 전혀 보이질 않더랍니다. 그런데 아랫목에 속 쌍꺼풀이 지고, 귀가 잘 생기고, 머리가 짧고 얼굴이 복스럽게 생긴 남자가 턱 버티고 앉아 있더랍니다. 그 사람이 내 인연이라면서요.
아랫목에 앉아 있던 남자가 하도 눈에 선해서 어머니는 내게 인상착의가 잊혀지질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97년 가을 시화전이 끝 난지 얼마 안 되는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버지 친구분의 조카라며 사람이 괜찮으니 선을 한번 보자는 전화였습니다. 어른들이 소개해 주는
자리는 어려워서 피하고 있던 저의 이 핑계 저 핑계에도 어머니는 며칠 간격으로 전화를 걸어 오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그 사람 전화번호를 물었습니다. 제가 그 사람과 통화를 해보고 만나보겠다는 말을
하자 엄격하신 아버지는 어떻게 여자가 먼저 전화를 하느냐고 반대를 하셨지만, 중매를 서는 당사자
역시도 상대방에 대해 아는 게 없는데 어떻게 사람을 함부로 만나느냐고 아버지께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그 사람의 연락처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그와 나는 날자와 장소를 정해 만났습니다. 아버지께서 알려 주신 전화번호를 전화를 걸었더니
나즈막한 음성의 남자 목소리가 들려오더군요. 그렇게 그와 나는 날짜와 장소를 정해 만나기로 했습니다.
종각 앞에서 7시에 만나기로 한 날 저는 30분 정도 먼저 나가 제일은행 본점 앞에 앉아 시집을 읽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다 고개를 들어 지나가는 사람들과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처다 보다 어느 한 사람에게 시선이 갔습니다. 큰 키에 체격이 좋고 인상 좋게 생긴 한남자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저런 사람이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 혹시... 방 자경씨 아니세요”라고 제 이름을 부르는 귀에 익은 나지막한 목소리에 제가
고개를 들어보니 바로 그 인상 좋은 남자가 제 앞에 서 있질 않겠습니까.
“배고픈데 저녁 먹으러 가요. 저녁 먹을 시간이잖아요.”라는 제 말에 그는 순순히 저를 따라
한 음식점으로 들어 왔습니다. 그리곤 해물된장찌게를 참 맛있게 먹더군요. 밥풀 한 톨 남기지 않고
밥그릇을 비우는 걸 보니 가정교육은 됐구나 싶더군요. 차를 마시러 인사동엘 가서 제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도 아무 말 없이 잘 들어주더군요. 담배도 피우지 않고요.
헤어지면서 명함을 서로 주고 받았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하루에도 수차례 전화를 걸어오는
그의 전화에 하루해가 참 잘 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 성격이었죠.
저는 전화를 자주 거는 편이 아니라서 그런지 전화를 제게 자주 거는 사람에게 익숙치 않았거든요.
당시 모 지방 신문사 회장실에 근무 중이었던 저는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그의 전화에 짜증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꾹 참았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장 친한 천안 친구에게 그를 데리고 갔습니다.
친구는 둥글둥글하게 생긴 그의 얼굴과 성격 좋게 생긴 그의 눈을 보며 꽤 마음에 들어하더군요.
천안 친구에게 다녀오고 며칠 후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는데 인사시키고 싶다는 제 말에
작가 선생님은 저녁을 사주겠다며 데리고 나오라더군요.
그래서 여러 어른들과 작가선생님이 계시는 자리에 갔습니다.
남자는 술을 먹여 봐야 한다는 어른들의 성화에 못 이겨 그는 술을 많이 마셨고, 그가 잠시
화장실엘 가느냐고 자릴 비운 사이 작가 선생님 중 한 분이 제게 한 마디 하셨습니다.
“남자는 결혼 전에 술을 먹여 봐야 성격을 알아. 그 점에선 통과야. 그런데 결혼 전에 남자로서
이상 있는지 없는지 알아봐. 더군다나 중매결혼이라 위험부담이 크지. 남자가 숫기가 없고,
32살까지 장가를 안가고 여자가 없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을 수 있거든. 중매는 연애와 달라서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어” 모임 때문에 통화를 할 일이 있으면
작가선생님은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보았냐고 물어 보시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그런 말씀을 잘 하시는 분이 아니셨기에 그분의 말씀이 가볍게 지워지진 않더군요.
어느새 저는 진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의 친구 아기 돌잔치에 갔다 오면서 그에게 우리 집에 가서 차 한잔 마시고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집으로 들어와 차를 마시고 과일을 먹으며 TV를 보았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가 저를
가만히 안았습니다. 저를 안은 그의 손과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문득 작가선생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눈 좀 잠깐 감아봐요.”라는 떨리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습니다. 그의 신체는 아무런 변화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결혼식 전에 사고 치지 말라고 어머니가 그러셨어요”라고 말하는 그를 보며
‘이 사람이 나이가 지금 몇 살인데 자기 행동에 책임도 못 지고 마마보이 같은 말만 하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결혼을 먼저 한 제일 친한 친구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하자 친구는 대뜸 이상 있는 사람 같다고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는 시각적인 것만으로도 자극을 받는데 키스를 했는데도
변화가 없는 건 이상을 예고하는 거라며 한 마디 했습니다.
친구의 말만을 듣고 어머니에게 그 사람 이상 있는 사람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 일로 양쪽 집안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로 그 사람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전화가 와도 자리에 없다고 해달라고 직원에게 부탁을 했고, 삐삐로 호출이 와도 연락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5일이 지났습니다.
퇴근을 해서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오면서 중간에서 내렸습니다. 눈에 보이는 철학관으로
들어갔습니다. 무속인은 제게 그 사람이 남자 구실을 못한다며 만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느 철학관에선 그 사람과 결혼을 하면 아이가 몇 년씩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집까지 40분을 넘게 걸어오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누군가에게 결혼을 하고
싶어질 만큼 마음이 빠져 본적이 없던 제겐 무속인과 철학관에서 들은 이야기는 너무도
가슴 아픈 말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울고 있을 때 호출이 왔습니다. 음성을 들으니 그 사람이었습니다.
너무 괴롭다는 말과 보고 싶다는 그의 말에 눈물이 더 났습니다. 그의 호출기 번호에 집으로
전화를 해달라고 음성을 남겼습니다. 그는 그 밤 한걸음에 제게 달려 왔습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슬픔을 억누르기 힘든지 잠시 창가로 시선을 돌리곤 고개를 푹 숙이고
앉는 것이었습니다. 우는 제게 가만히 다가와 저를 안는 그의 두 눈에 고인 눈물을 보자
왜 그렇게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요. 얼마나...”
말을 채 다 하지 못하고 저를 꼭 끌어안는 그의 가슴은 너무도 따뜻했습니다.
성격이 내성적인 그는 군대 가기 전부터 지금까지 여자를 사귀어 본 경험이 없어 심리적으로
여자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고 합니다. 32살까지 여자 경험이 없던 그는 자기가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하나 고민을 했었대요. 그러다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여자와 단둘이 있게 되자
긴장을 하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도 자기가 이상이 있을지 모른다는 고민을 많이 했다며 내가 원한다면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이상이 있다고 해도 나는 괜찮아요. 요즈음은 의학이 발달해서 모든지 고칠 수 있대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라는 제 말에, 그는 제가 원하면 병원에 가주겠다고 말하며 눈물로
범벅이 된 제 얼굴을 그의 따스한 가슴에 안아 주었습니다.
제 여동생 결혼식엘 참석하기 위해 그와 평택 집 현관을 들어섰을 때 그를 보자 친정어머니는
놀라셨습니다. 어머니 꿈에서 아랫목에 떡 버티고 앉아 있던 바로 그 남자라고 말씀하시며
어쩌면 눈, 코, 입, 귀, 머리 다 그렇게 똑같으냐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우린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양쪽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은 그 사건은 32살이 먹도록
여자에 대해 전혀 경험이 없는 그가 너무 당황해서 일어난 일로, 그리고 성에 대해 결벽증을
가진 30살의 제가 너무 몰라서 일어난 사건으로 어른들은 이해 해주셨습니다.
작가선생님이 던지신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고 벌어진 그 일은 우리 두 사람을 부부로
맺어주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그의 사주에 水가 없어서 아이가 없을 거라고 말했던 무속인과 철학관 아저씨의 말을
100% 믿고 그와 헤어졌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제가 결혼하면 제 사주에도 水가 없어서 젖이 안 나올거라고 했던 그 역술인의 말도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98년 3월 양가 어른들의 허락을 받고 혼인신고를 한 뒤 우린 동거에 들어갔습니다.
그와 동거를 들어 가지전에 저는 그에게 네 가지 약속을 받았습니다.
종교는 전혀 간섭하지 말 것, 아이를 낳으면 아이 돌잔치는 반드시 고아원이나 양로원 같은
어려운 이웃과 치룰 것, 그리고 10년을 넘게 한 달에 한 번 하는 고아원 봉사활동을 계속하게 해 줄 것,
마지막으로 하나 틈나는 대로 수예를 놓고 거북이와 학을 접어서 좋은 일 하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일 많이 해 주시라고 보내는 것은 절대로 간섭하지 말 것입니다.
이것만 약속해 준다면 그가 약속해 준 것의 몇 배로 저는 최선을 다해 잘 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동거를 시작한 그 다음 달 바로 임신이 되어 지금은 중3이 되는 큰딸 서영이와 초등학교 6학년인
예은이 두 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습니다. 물론 모유가 남아 돌아서 큰 애가 둘째와 9개월까지
같이 먹였습니다.
IMF로 남편은 2년을 집에서 놀았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그 흔한 말다툼 한 번 없이 살았다면 믿어지세요.
2년 동안 놀면서 양쪽 집에는 그가 회사에 나가는 것처럼 했습니다. 낮에 저와 집에 있을 때
전화벨이 울리면 제가 받았고요. 제가 첫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였는데 다행히 아버지를 생각해서였는지 입덧이 없어서 가끔씩 별식이 먹고 싶으면 집 앞 시장에 가서 2,000원짜리 잔치국수를 시켜 먹고
국수사리를 하나 더 시켜서 먹고 오는 것이 다였죠. 그래도 참 행복했습니다.
집에 있는 것이 너무 미안했던 남편은 월급도 없는 아는 분의 건축사무실에 나가 빈 사무실을 지켜주다가 들어오곤 했지만, 그래도 남편이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
저와 같이 뱃속의 아이를 위해 동화책을 읽어 주고 제가 추울까봐 한 여름에 이불을 차버리고 자면
몇 번이고 깨서 배를 덮어 주고요.
제 무릎을 베고 누운 남편의 귀를 파주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 주고 그의 이마를 넓혀서 하는 일이
잘 되라고 족집게로 머리를 뽑아 줄 때면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서 잠이 드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죠.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저와 동대문광장시장에 수예재료를 사러 같이 나가 주고, 제가 접은 거북이와 학 2,100마리를 담은
유리상자를 상도동까지 가서 사다 주는 남편이었습니다. 그렇게 놓은 수예를 TV를 보다가 좋은 일 하는
사람이 나오면 보내고, 학과 거북이를 접은 유리상자를 보낼 때면
“우리도 힘든데 무슨 남을 챙기는 거야“라는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그저 내 뜻을 따라 주는
남편에게 늘 고마운 마음이었습니다.
첫아이가 예정일이 8일이 지나도 나오지 않아 친정집에 내려가 산엘 오르고 저녁때면
시내까지 걸어갔다 오고 동네를 몇 바퀴나 돌고 육교를 오르락 내리락 했습니다.
그래도 딸아이는 뱃속에서 참 건강하게 놀더군요. 호랑이띠 아들을 가지고 싶었던 저는
친정어머니와 여자 역술인 집에 가서 뱃속의 아이가 아들인가 딸인가를 물었습니다.
아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낳아 보니 딸이었습니다.
임신 중 제일 가슴 아팠던 일은 시어머니께서 다 시들어서 팔지도 않는 포도를 얻어다
쥬스를 만들었다고 끓여서 보내올 때였습니다. 돈이 없어서 좋은 것도 사 주지 못하는데
그런 걸 제게 차마 먹으라고 할 수 없었던 남편은 시어머니께는 죄송했지만 그걸 버렸습니다.
다 시들거나 상한 과일을 발라 먹으라며 보내는 시는 시어머니 때문에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평소 알뜰하신 어머니는 얻어오신 과일들이 상했거나 시들었어도 아까우신 생각에
저희라도 먹으라고 보내오셨지만 저는 그 뜻을 알면서도 제 처지가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런 날이면 우는 저를 너무도 착한 남편은 말도 못하고 가슴에 안아 주며 미안하다는 말만해야 했습니다.
다시 남편이 전기와 소방감리일을 하게 되었을 때 아침에 말끔하게 달여 놓은 옷을 입고
대문을 나서는 남편의 얼굴에 환하게 번지는 미소와 자신감을 저는 지금도 잊지를 못합니다.
맏며느리이자 외며느리인 제가 시댁 큰일을 치루고 잠자리에 드는 날은 남편은 제 손을 꼭 잡고
“수고 했어”라고 말해 줍니다. 그 한마디로 하루의 힘든 일은 눈 녹듯 사그라들지요.
우리 부부는 첫째와 둘째딸 모두 돌을 제가 결혼 전부터 봉사활동을 다니던
의정부 선재동자원에서 했습니다. 역시 큰딸 서영이 때와 마찬가지로 한 주전에 고아원에 가서
아이들 점심을 제가 직접준비해서 돌잔치를 소박하게 치뤘습니다.
비록 근사한 선물은 해 주지 못하지만 가장 멋진 날을 보내는 건 물질이 아니라 나눔에 있다는 걸
두 딸아이가 조금씩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서였습니다. 무엇보다 그런 제 뜻을 믿어주고
따라 주던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운명은 내가 가지고 나온 사주팔자로 전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를 이길 수 있느냐는
의지와의 싸움인 것입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만이 소중한 인연을 맞이할 준비가
된 것이라고 우리의 두 딸에게 그걸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사주팔자에 연연하는 의지가
약한 사람이기 보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기꺼이 한 걸음 나갈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부족한 것들 투성이인 첫만남이었지만, 남편은 365일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15년을 한결 같이 팔베개를 해주며 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줍니다.
그래서 저는 돌아가신 시아버님께서 하늘에서 제게 보내준 착하고 성실한 남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가며 365일 한결 같이 변함없는 사랑으로
함께해주는 남편이 있어 나는 참 행복한 여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