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뻗었는가, 깊은 계곡을 허리에 끼고 달리는 태산준령의 험산은 휘황한 보름달 아래 장엄한 위용을 드러내고, 굽이치는 강물은 고요하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계곡에서 간간이 맹수의 울음소리만 들려올 뿐, 깊은 산에는 태고의 세월을 내려오며 사람의 그림자조차 어른거리지 않았으리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우뚝 선 봉우리,
천 길의 벼랑을 하늘로 치솟아 구름 위로 떠오른 북두봉, 신선의 그림자처럼 두 사람이 북두봉에 마주앉아 있었다. 하얀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오는 노인과 준수한 얼굴의 미소년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안광이 날카롭고 꼿꼿한 허리의 노인은 상당한 무공의 소유자로 보이며, 십팔 세 가량의 소년도 역시 대단한 무공의 소유자이리라,
“도련님, 벌써 삼년이나 흘렀군요. 주인님이 타계하신지......”
노인의 말에 소년은 옆에 서 있는 묘비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이슬이 방울방울 맺힌 비석에는 묘주인의 이름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천봉자지묘(天鳳子之墓)
“주인님이 도련님과 이곳에 은거한 세월이 십오 년이고, 타계하신지 삼년이 지났습니다. 주인님이 천기도 석실에서 지낸 도련님과의 세월은 바로 강호출사를 위한 내일을 위한 세월이었습니다.”
노인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찬찬히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달빛 아래 푸른빛을 발하는 소년의 얼굴은 천봉자를 그대로 박아 놓은 모습이다. 굵은 눈썹은 의협심을 나타내며 초롱초롱한 눈빛에는 총명함이 엿보인다.
천봉자 고욱(高旭)
강호에 홀연히 나타나 무림의 오대문파와 일대교파의 무공을 두루 연마하여 무림의 일가를 꿈꾸었던 대협객이었다. 호방한 기질과 의협심, 그리고 무공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소질을 가진 천봉자는 강호의 고수들과 친분을 두터이 하며 지냈다.
무림의 대문파인 소림사의 장문 혜정선사(惠晶禪師)는 천봉자를 일컬어 “그의 무공은 절대자비의 온화함이 있으며 깊이를 알 수 없다. 의협심은 청솔 같으며 그윽한 인품은 함께 있기만 하여도 향기롭다.”고 하였다.
또한 서역의 라마승 묘연존자(妙蓮尊子)는 천봉자와 삼년에 한번씩 만나서 무공을 겨루었으며, 천봉자의 무공을 극찬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천봉자의 무공은 벽을 허무는 과정을 목표로 한다. 흐름에 거침이 있어서도 안 되며, 특정한 모양이 있어서도 안 된다. 또한 이름도 없다. 흡사 바람과 같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태산과 같으며, 밀고 당기는 힘은 있지만 실체가 없다.”
노인은 긴 수염을 쓸어내리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죽림장의 대혈투 이후에 강호에서는 주인님이 이미 죽거나 폐인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워낙 큰 상처를 입고 깊은 호수에 빠졌기 때문에 그런 소문이 난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소년은 눈을 감았다. 밤이면 기의 흐름이 역행하여 진땀을 흘리며 몸을 바들바들 떨던 천봉자였다. 소년은 아버지의 고통을 보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천봉자는 희미한 눈빛으로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 아들의 심성이 이렇듯 다정하니 네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 같도다.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곧 자비일 것이니 너의 그 마음이 매우 흡족하다.”
무공을 연마시킬 때에는 추상같은 천봉자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울고 있는 자식을 위로하며 잠자리를 챙겨주던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도련님이 강호에 발을 딛는 것은 주인님의 원수를 갚거나 명성을 날리려는 것도 아닙니다. 주인님은 과거를 거슬러 보복을 일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지난 일은 묻어버리고 앞날만 근심하라는 분부입니다. 또한 명성이란 합당한 자에게 저절로 쫓아오게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달빛에 길게 늘어진 노송의 그림자를 보는 소년의 뇌리에는 고통에 일그러진 아버지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십오 년의 긴 세월을 일어서지 못하는 앉은뱅이로 지낸 천봉자였다. 신음으로 밤새도록 뒤척이다가 겨우 동트는 새벽에 잠드는 아버지의 처참한 모습이었다.
죽림장(竹林莊)의 대혈투,
강호에서는 십팔 년 전에 있었던 피비린내 나는 그 사건을 기억조차 하기 싫어할 뿐만 아니라 입 밖에 내지도 않는다. 세간의 사람들 사이에서만 전설처럼 천봉자의 눈부셨던 무공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올 뿐이다. 당시에 죽림장에서 은거하던 천봉자 하나를 상대로 일선교에 포섭된 무림의 오대문파와 일선교의 고수들이 대혈전을 벌였다.
천봉자가 갓 태어난 아들을 가슴에 안고 벌인 이틀간의 혈투였다. 삼십여 명의 고수들을 상대하였다는 것만 해도 천봉자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추측할 수 있는 일이다. 무림의 오대문파에서 몇 명의 고수가 목숨을 잃었으며 이대교파에서도 역시 십여 명의 고수가 죽었다. 그 이외에 십수 명의 고수가 폐인이 되었으니, 어느 문파에도 속하지 않았던 천봉자 한 명에게 그렇듯 커다란 손실을 본 강호에서는 죽림장의 혈투에 관한 이야기를 입에 올리기 조차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한번 펼쳤던 손속은 두 번 다시 되풀이 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나오는 새로운 무공은 그 바닥을 드러내지 않았다. 끝을 알 수 없는 천봉자의 무공은 별빛이 뿌려지는 듯 사방으로 휘날렸으니, 무림역사에 있어서 다시는 볼 수 없었던 장관이었다. 밤에 벌어진 이틀째 혈투에서 천봉자는 날카로운 표창과 태산 같은 벽공장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는 깊은 호수에 빠졌다. 사람들은 천봉자가 죽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뒤늦게 이 사건을 전해들은 소림사의 혜정선사는 경솔한 무림인들을 탓하며 깊게 탄식하였다.
“우리는 강호의 대고수 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하는 의협심을 가진 큰 인물을 잃었다. 멀쩡한 사람들이 탐욕과 허명의 귀신에게 희롱 당했다. 실로 통탄스러운 일이로다.”
그리고 소림사를 삼년간 폐쇄하여 강호와 두절하였다. 물론 은밀하게 그 혈투에 가담했던 승려들은 모두 산문에서 추방하였다.
서역의 묘연존자도 역시 가슴을 쳤다.
“중원 무림을 넘어선 동쪽의 대무공이 사라졌다면 서쪽의 내가 강호에 나설 일은 전혀 없다. 눈을 뜨던 대무공의 싹이 짓밟혔도다.”하고는 서역의 천산으로 그 자취를 감추었다.
소년은 돌부처의 형상으로 굳어져 있다. 노인의 낮은 음성이 이어졌다.
“도련님의 몸에는 중후한 천봉자님의 내공이 전수되어 있으며 또한 석실의 천장에 그려진 천기도(天基圖)의 운행을 따라서 걸음마를 배웠습니다. 주인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천기도를 깨우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흉내만 내는 것으로도 대무공의 기틀을 잡을 수 있다고,”
서역에서 평생 동안 만다라만 그리던 주정뱅이가 그린 천기도,
천봉자가 서역을 여행할 적에 묘연존자가 소개시켜준 사람이 있었다. 바로 파한천(芭翰泉)이었다. 하루를 술로 시작하고 술로 끝내는 기인이었다. 모두가 그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였지만 묘연존자는 그의 심오한 내면을 알아보고 있었다. 비록 속세의 술주정뱅이로 지내지만 마음은 이미 해탈의 경지에서 노니는 파한천이었다.
천봉자가 그를 보았을 때에 그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하늘의 운행을 붓 가는 대로 그리고 있었지만, 심오한 무공의 길을 펼치고 있음을 천봉자는 직감했다. 실로 섬뜩한 느낌이었다. 비단위에 찍힌 한 점이 솟아오르며 밤하늘을 날았다. 움찔움찔하며 우주의 별을 그리고 선을 그으며 천지를 휘돌아 치다가 다시 땅 위로 뚝 떨어지는 비단위에 찍힌 한 점은 무공의 끝이었다.
천봉자는 파한천과 같이 지내며 고개 숙여 간청하였다. 자신이 그린 그림의 비밀을 한 눈에 알아본 천봉자을 대하는 파한천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흘렀다. 드디어 자신의 천기도를 알아본 임자를 만났다. 천봉자의 간청에 응하여 파한천은 북두봉을 향한 먼 길을 동행했다. 그리고 북두봉 석실의 천정에 미친 듯이 천기도를 그렸다. 무림의 대가(大家)가 탄생할 것이다. 천기도를 깨우치는 자는 무공의 끝인 천무(天武)에 도달할 것이다.
죽림장에서 겨우 목숨만 건진 천봉자가 다시 이 석실로 돌아와 은거하였을 때에 그의 품에는 갓난아기가 있었다. 아기는 눈을 깜빡이며 천장을 응시했다. 그리고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아기는 천기도의 운행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천기도에 젖어든 아기를 본 천봉자는 기뻐했다. 자신의 아들이 바로 천기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재목이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이 기쁨이 바로 천봉자의 수명을 십오 년이나 연장했는지 모른다. (계속)
강호에 부는 바람, 천무 / 天武 [1]
북두봉에 뜨는 달
1.
얼마나 뻗었는가, 깊은 계곡을 허리에 끼고 달리는 태산준령의 험산은 휘황한 보름달 아래 장엄한 위용을 드러내고, 굽이치는 강물은 고요하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계곡에서 간간이 맹수의 울음소리만 들려올 뿐, 깊은 산에는 태고의 세월을 내려오며 사람의 그림자조차 어른거리지 않았으리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우뚝 선 봉우리,
천 길의 벼랑을 하늘로 치솟아 구름 위로 떠오른 북두봉, 신선의 그림자처럼 두 사람이 북두봉에 마주앉아 있었다. 하얀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오는 노인과 준수한 얼굴의 미소년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안광이 날카롭고 꼿꼿한 허리의 노인은 상당한 무공의 소유자로 보이며, 십팔 세 가량의 소년도 역시 대단한 무공의 소유자이리라,
“도련님, 벌써 삼년이나 흘렀군요. 주인님이 타계하신지......”
노인의 말에 소년은 옆에 서 있는 묘비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이슬이 방울방울 맺힌 비석에는 묘주인의 이름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천봉자지묘(天鳳子之墓)
“주인님이 도련님과 이곳에 은거한 세월이 십오 년이고, 타계하신지 삼년이 지났습니다. 주인님이 천기도 석실에서 지낸 도련님과의 세월은 바로 강호출사를 위한 내일을 위한 세월이었습니다.”
노인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찬찬히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달빛 아래 푸른빛을 발하는 소년의 얼굴은 천봉자를 그대로 박아 놓은 모습이다. 굵은 눈썹은 의협심을 나타내며 초롱초롱한 눈빛에는 총명함이 엿보인다.
천봉자 고욱(高旭)
강호에 홀연히 나타나 무림의 오대문파와 일대교파의 무공을 두루 연마하여 무림의 일가를 꿈꾸었던 대협객이었다. 호방한 기질과 의협심, 그리고 무공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소질을 가진 천봉자는 강호의 고수들과 친분을 두터이 하며 지냈다.
무림의 대문파인 소림사의 장문 혜정선사(惠晶禪師)는 천봉자를 일컬어 “그의 무공은 절대자비의 온화함이 있으며 깊이를 알 수 없다. 의협심은 청솔 같으며 그윽한 인품은 함께 있기만 하여도 향기롭다.”고 하였다.
또한 서역의 라마승 묘연존자(妙蓮尊子)는 천봉자와 삼년에 한번씩 만나서 무공을 겨루었으며, 천봉자의 무공을 극찬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천봉자의 무공은 벽을 허무는 과정을 목표로 한다. 흐름에 거침이 있어서도 안 되며, 특정한 모양이 있어서도 안 된다. 또한 이름도 없다. 흡사 바람과 같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태산과 같으며, 밀고 당기는 힘은 있지만 실체가 없다.”
노인은 긴 수염을 쓸어내리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죽림장의 대혈투 이후에 강호에서는 주인님이 이미 죽거나 폐인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워낙 큰 상처를 입고 깊은 호수에 빠졌기 때문에 그런 소문이 난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소년은 눈을 감았다. 밤이면 기의 흐름이 역행하여 진땀을 흘리며 몸을 바들바들 떨던 천봉자였다. 소년은 아버지의 고통을 보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천봉자는 희미한 눈빛으로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 아들의 심성이 이렇듯 다정하니 네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 같도다.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곧 자비일 것이니 너의 그 마음이 매우 흡족하다.”
무공을 연마시킬 때에는 추상같은 천봉자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울고 있는 자식을 위로하며 잠자리를 챙겨주던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도련님이 강호에 발을 딛는 것은 주인님의 원수를 갚거나 명성을 날리려는 것도 아닙니다. 주인님은 과거를 거슬러 보복을 일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지난 일은 묻어버리고 앞날만 근심하라는 분부입니다. 또한 명성이란 합당한 자에게 저절로 쫓아오게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달빛에 길게 늘어진 노송의 그림자를 보는 소년의 뇌리에는 고통에 일그러진 아버지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십오 년의 긴 세월을 일어서지 못하는 앉은뱅이로 지낸 천봉자였다. 신음으로 밤새도록 뒤척이다가 겨우 동트는 새벽에 잠드는 아버지의 처참한 모습이었다.
죽림장(竹林莊)의 대혈투,
강호에서는 십팔 년 전에 있었던 피비린내 나는 그 사건을 기억조차 하기 싫어할 뿐만 아니라 입 밖에 내지도 않는다. 세간의 사람들 사이에서만 전설처럼 천봉자의 눈부셨던 무공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올 뿐이다. 당시에 죽림장에서 은거하던 천봉자 하나를 상대로 일선교에 포섭된 무림의 오대문파와 일선교의 고수들이 대혈전을 벌였다.
천봉자가 갓 태어난 아들을 가슴에 안고 벌인 이틀간의 혈투였다. 삼십여 명의 고수들을 상대하였다는 것만 해도 천봉자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추측할 수 있는 일이다. 무림의 오대문파에서 몇 명의 고수가 목숨을 잃었으며 이대교파에서도 역시 십여 명의 고수가 죽었다. 그 이외에 십수 명의 고수가 폐인이 되었으니, 어느 문파에도 속하지 않았던 천봉자 한 명에게 그렇듯 커다란 손실을 본 강호에서는 죽림장의 혈투에 관한 이야기를 입에 올리기 조차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한번 펼쳤던 손속은 두 번 다시 되풀이 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나오는 새로운 무공은 그 바닥을 드러내지 않았다. 끝을 알 수 없는 천봉자의 무공은 별빛이 뿌려지는 듯 사방으로 휘날렸으니, 무림역사에 있어서 다시는 볼 수 없었던 장관이었다. 밤에 벌어진 이틀째 혈투에서 천봉자는 날카로운 표창과 태산 같은 벽공장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는 깊은 호수에 빠졌다. 사람들은 천봉자가 죽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뒤늦게 이 사건을 전해들은 소림사의 혜정선사는 경솔한 무림인들을 탓하며 깊게 탄식하였다.
“우리는 강호의 대고수 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하는 의협심을 가진 큰 인물을 잃었다. 멀쩡한 사람들이 탐욕과 허명의 귀신에게 희롱 당했다. 실로 통탄스러운 일이로다.”
그리고 소림사를 삼년간 폐쇄하여 강호와 두절하였다. 물론 은밀하게 그 혈투에 가담했던 승려들은 모두 산문에서 추방하였다.
서역의 묘연존자도 역시 가슴을 쳤다.
“중원 무림을 넘어선 동쪽의 대무공이 사라졌다면 서쪽의 내가 강호에 나설 일은 전혀 없다. 눈을 뜨던 대무공의 싹이 짓밟혔도다.”하고는 서역의 천산으로 그 자취를 감추었다.
소년은 돌부처의 형상으로 굳어져 있다. 노인의 낮은 음성이 이어졌다.
“도련님의 몸에는 중후한 천봉자님의 내공이 전수되어 있으며 또한 석실의 천장에 그려진 천기도(天基圖)의 운행을 따라서 걸음마를 배웠습니다. 주인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천기도를 깨우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흉내만 내는 것으로도 대무공의 기틀을 잡을 수 있다고,”
서역에서 평생 동안 만다라만 그리던 주정뱅이가 그린 천기도,
천봉자가 서역을 여행할 적에 묘연존자가 소개시켜준 사람이 있었다. 바로 파한천(芭翰泉)이었다. 하루를 술로 시작하고 술로 끝내는 기인이었다. 모두가 그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였지만 묘연존자는 그의 심오한 내면을 알아보고 있었다. 비록 속세의 술주정뱅이로 지내지만 마음은 이미 해탈의 경지에서 노니는 파한천이었다.
천봉자가 그를 보았을 때에 그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하늘의 운행을 붓 가는 대로 그리고 있었지만, 심오한 무공의 길을 펼치고 있음을 천봉자는 직감했다. 실로 섬뜩한 느낌이었다. 비단위에 찍힌 한 점이 솟아오르며 밤하늘을 날았다. 움찔움찔하며 우주의 별을 그리고 선을 그으며 천지를 휘돌아 치다가 다시 땅 위로 뚝 떨어지는 비단위에 찍힌 한 점은 무공의 끝이었다.
천봉자는 파한천과 같이 지내며 고개 숙여 간청하였다. 자신이 그린 그림의 비밀을 한 눈에 알아본 천봉자을 대하는 파한천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흘렀다. 드디어 자신의 천기도를 알아본 임자를 만났다. 천봉자의 간청에 응하여 파한천은 북두봉을 향한 먼 길을 동행했다. 그리고 북두봉 석실의 천정에 미친 듯이 천기도를 그렸다. 무림의 대가(大家)가 탄생할 것이다. 천기도를 깨우치는 자는 무공의 끝인 천무(天武)에 도달할 것이다.
죽림장에서 겨우 목숨만 건진 천봉자가 다시 이 석실로 돌아와 은거하였을 때에 그의 품에는 갓난아기가 있었다. 아기는 눈을 깜빡이며 천장을 응시했다. 그리고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아기는 천기도의 운행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천기도에 젖어든 아기를 본 천봉자는 기뻐했다. 자신의 아들이 바로 천기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재목이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이 기쁨이 바로 천봉자의 수명을 십오 년이나 연장했는지 모른다. (계속)
글 / 은하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