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실체

종교연구2013.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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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기독교에서 여러가지 형태로 설명하고 있는데, 본질적으로 신의 영적인 능력, 권능 그 자체를 말하며 이 성령의 힘으로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다. 성서에는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본질인 신과 성자, 즉 예수와 함께 인격신의 의미로 해석되어 신학자들이 이 의미를 묶는 과정에서 먼저 세 가지 위격으로 분리되었고 이것은 일체하는 의미라고 정리되었다.

즉, 성령이란 존재가 따로 특별히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귀속된 능력이며 신 그 자체인 것이다. 기존의 유대교에서는 유일신 야훼 외에는 인정하지 않았으므로(유대교에서 예수는 단지 성인의 개념이다) 이런 혼란이 발생하지 않았고, 다신교에서 정리된 이슬람교에서는 초창기 최고신의 개념으로 알라를 내세웠고, 이 과정에서 두 약한 신이 존재했었다.

 

창세기 첫 부분에 이미 '성령'이란 표현이 등장하고, 초창기 기독교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으나  이것은 순수하게 신의 능력이란 이유에서였고, 신약이 쓰여지면서 신의 아들, 인간화된 신 예수를 재조명하고 집중하는 과정에서 성령의 개념이 강조되기 시작한다. '하나의 신이 세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은 모순과 논란의 여지를 남겨 기독교의 맹점이 된다.

신약에 따르면, 예수가 세례를 받는 순간에 성령이 비둘기의 형상으로 내려온다. 비둘기는 후에 성령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예수의 제자들 또한 성령을 받게 되었으며, 이것은 '성령의 은사'로 불리는데 오순절에 사도들에게 내려진 능력이다.

이것이 신에게서 직접 내려온 능력인가, 예수를 통해서 믿음을 가진 누구나에게 내려질 수 있는 능력인가에 따른 의견차이는 기독교가 로마의 몰락과 겹치면서 '대분열'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

 

'밀라노 칙령'을 발표한 시기, 동 서로 분열된 상태였던 로마는 결국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서로마가 몰락하면서 동로마로 남게되고 기존의 로마가톨릭과 별개로 황제가 수장이 된 '동방정교회'로 갈라지게 된다. 

이것은 '성령'에 대한 해석 등 사소한 교리해석의 차이점에서 출발했다. 초기 정교회 측에서는 성령을 신에게서 직접적으로 부여받은 능력이라고 주장했다.

 

공식적으로 교황청 소속인 4차 십자군원정대가 이집트 대신에 동로마를 목표로 잡으므로써 큰 타격을 입었고, 이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점령함으로써 1000년간 번성했던 동로마제국은 멸망한다. 이 시기 로마가톨릭의 교황은 절대권위를 갖게 된다.

옛 동로마제국의 종교적영토였던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은 보통 황제가 종교적 수장을 겸하기도 하는 등 동로마의 전통을 이어갔고, 교황청 대신 국가별로 대주교가 존재했으며 대표격인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있다. 교황청같은 단독적인 의미의 종교조직은 없으며, 성직자들이 연합한 공의회에서 주요 사안을 결정한다.

 

로마가 사라진 유럽에서는 교황의 권위가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고, 프랑스 출신의 교황 클레멘스 5세는 국왕의 압박으로 대부분의 추기경들을 프랑스인으로 임명하였으며, 교황청을 프랑스 내 아비뇽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것이 '아비뇽 유수'이다. 프랑스 내의 '성전기사단'이 숙청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프랑스인으로 마지막 공식적 교황인 그레고리우스 11세는 책임을 지고 교황청을 다시 로마로 이동하였으며, 후임으로 로마에서 교황이 선출되는데 프랑스 측에서 다시 문제를 제기하여 프랑스 출신의 교황을 따로 세우게 된다. 교황은 2명이 되었고, 기독교는 심각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결국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자체적으로 소집된 종교회의에 양측교황은 출석을 거부하고, 서로를 파문하는 등 한치의 양보도 없자 종교회의에서는 할 수 없이 두 교황을 모두 폐위하고 새로운 교황을 선출했다.

그러나 기존의 두 교황이 종교회의의 결정을 거부함으로써 유럽에는 3인의 교황을 동시에 옹립하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로마 측의 새로운 교황은 자질에 문제가 있기도 해서 자체적으로 파문되기도 하는 등 혼란을 거듭하다가, 후임 로마 교황이 자진사퇴한 후 끝까지 저항한 아비뇽 교황이 폐위되고서야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고 이 혼란은 종결된다. 이것은 교황청의 권위를 추락시켰고, 후에 종교개혁의 빌미가 된다. 엄밀히 말해 이 시기부터 기독교는 신의 영역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종교계에서는 '성령의 은사'는 사도시대에 이미 사라진 문제라고 여기게 되었고, 교황권은 약화된 반면 왕권신수설에 근거한 '절대왕정'시대를 맞게 된다.

영국은 대분열시기 헨리 8세가 교황청에서의 분리를 선언한 후, 엘리자베스 1세때 개신교를 허용함으로써 완전히 갈라서게 된다. 이후 제임스 1세가 성공회를 위한 영어성경을 따로 만들라고 지시하는데, 이것이 유명한 '킹 제임스 성경'이다.

 

성경이 성령에 의한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하는 '영감설'이 주목받은 것은 이후 이어진 종교개혁 시기였다. 성서와 말씀 중심의 신앙을 공통적으로 주장했던 종교개혁가들에게 이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삼위일체에서 '성신'(Holy Ghost)이 '성령'(Holy Spirit)의 개념으로 재조명된 것도 이 시기이다. 우리나라의 성경 명칭이 'O약성서'와 같이 '성령에 의해 쓰여진 구원의 약속'을 주 개념으로 잡은 것도 이것과 어느정도 의미가 통하는 듯 하다. 영어 명칭은 'Testament'이며, 이것은 '증거' 프랑스어로는 '유언'의 의미이다.

 

불완전한 종교개혁기에 성직자의 권위와 기존교회의 형식들은 배척되었고, 그것을 대신할 이름은 '성령'이었다. 칼뱅이 영적성장의 근원이며, 예수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는 성령이라고 확정함으로써 이것은 현대 기독교의 기본적 교리로 자리잡게 된다.

 

기독교가 변화를 거치면서 신이 그 의도를 인간에게 알리기 위해 성령을 통해 성경을 기록하게 했다는 '성경영감론'은 비판을 받게 되었는데, 신정통주의 신학에서 이 문제를 제기한다.

성경 자체가 신의 의도가 그대로 전해졌기에 무결점이라는 이른바 '완전 축자 영감론'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졌고, 문자적인 표면적 의미보다 인간 이성에 부합하는 과정 자체가 성령의 역사라는 시각으로 발전하였다. 이 시기 기독교의 사조를 일컫는 분류의 하나인 '복음주의'에서는 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생각하여, 여러가지 해석을 갖기 시작했고 오순절파같은 성령 중심의 교파도 등장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전쟁의 혼란 속에서 기독교는 다양한 양상으로 변화되고 분화되었고, 이미 인간중심으로 변모한 현대사회에서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고리는 성령이었다. 이것은 종교개혁 과정에서 개신교가 종교의 오랜 형식과 권위를 모두 부정하고 본질적인 믿음으로서 권위를 찾으려 했던 시도가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성령 중심의 증거와 권위를 찾으려는 시도들은 기독교의 신성한 가치를 떨어뜨렸고, 사람들은 과학적 증거와 종교적인 믿음의 의미 사이에서 혼란을 일으켰다.

 

성령의 의미에 집중하게 된 종교계에서는 인간 외의 동물과의 영적 차별성을 주장했는데, 이것은 진화론 등 과학적 근거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반응이다. 인간이 가진 영혼에서 '영'의 의미를 따로 떼어내어 성령과 혼동하기도 했고, 성령은 표면적으로 신에게 귀속된 능력이지만 믿음의 결과로 나타나는 인간 능력이라고 인식하기도 했다.

 

이 결과, 이것을 심각하게 착각한 일부 목회자들이 영적성장과 믿음의 증거로 '성령의 은사'를 내세우기 시작했고 일부 교단의 평신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신의 뜻'을 내뱉기 시작했다.

일부 한국 개신교단에서 흔히들 이야기하는 '예수믿으면 천국, 믿지 못하면 지옥'이라는 이야기는 사실 신의 뜻에 의거해 성령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아무런 고민없이 내뱉는 구호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기독교가 종교 자체의 의미에 대한 반성없이 과학적 증거를 성령으로 대체하려는, 신의 뜻을 인간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한 것이며, 매우 부정한 잘못이다.

종교적 영역의 신의 존재와 권능이 인간적 차원의 것과 동일한 의미로 간주되어 이것을 같은 방식으로 '증명'하려고 시도하는 순간, 이미 종교는 끝났다고 본다. 더 이상 이것은 믿음이라고 할 수가 없다.

 

일상적인 활동이 되어버린 '간증'역시 마찬가지다. 일부에서는 성령을 단지 인간의 영혼적 변화와 혼동하여 외부적인 시끌벅적한 음악이나 춤, 통성기도와 방언의 의미에 집중하기도 한다.

신에 귀속된 권능을 인간적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시도는 이미 신비주의와 결합하여, 많은 루머와 억측을 낳았고 이것은 기독교의 종교적 의미에서 벗어나 잘못된 믿음으로 가고 있다.

 

성령은 '신비한 능력'이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신에 귀속된, 신의 힘이란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신의 뜻을 전하기 위한 신으로부터의 힘이며, '인간에게 내려진 신적인 힘'과는 혼동하지 말아야겠다.

 

현대의 기독교는 이미 사람의 손으로 너무 많이 변화시켰기 때문에, 종교 고유의 신성한 권위가 사라진 상태이다. 스스로의 모순과 혼란에 빠져 회복이 어려우며, 믿음은 퇴보한 상태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이 믿음은 의미를 잃고 소멸될 것이다.

성령 중심의 신앙구조에서 벗어나, 떨어진 신의 권위를 회복시키고 내적인 성숙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