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인연, 그리고...

이상엽2013.03.12
조회328

1번은 우연, 2번은 인연, 3번은 운명...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쯤 있을까요?


"무엇으로 주문 하시겠어요?"

"..음...녹차라떼에 초코티라미슈...그걸로 주세요."

식성이 특이한 손님이라는 듯한 눈빛. 하긴...나도 처음에는 굉장히 이상해했었으니까. 그런데 오늘따라 평소보다 이 특이한 조합이 자꾸 생각이 나서 결국 사먹고야 말았다. 아직 고아원 봉사시간까지는 여유가 남아있으니까.

"주문하신 녹차라떼 1잔, 초코티라미슈 케잌 1조각, 나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녹차라떼 한 모금. 달콤하면서도 끝 맛은 씁하다. 처음 달콤함 뒤에 느껴지는 쓴 맛...

그리웠다. 그리고 그립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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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무엇으로 주문하시겠어요?"

"음...녹차라떼랑 초코티라미슈로 주세요..."

...굉장히 식성이 특이한 손님이다. 이 카페에서 알바한지 2년도 넘었거늘...녹차라떼랑 초코티라미슈의 조합은 처음이다.

"네, 녹차라떼 1잔, 초코티라미슈 1조각. 맞으시죠?"

"네."

하긴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이런 손님도 있고, 저런 손님도 있는거 아니겠는가.

"네, 9천원 되겠습니다."

"여기요."

"만원 받았구요, 거스름돈 천원입니다."

지금은 오전 10시 34분...가장 손님이 적은 시간이다. 그래서 알바생은 가장 편한 시간, 점장님은 가장 싫은 시간, 손님은 가장 편한 시간. 주문한게 빨리 나오니까.

"여, 성훈아, 6번 테이블 주문나왔다."

"아, 예."

6번 테이블....6번 테이블...

"주문하신 녹차라떼, 초코티라미슈 나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서빙을 하고, 자리로 돌아왔지만 손님도 별로 없었는데다가, 6번 테이블이 그냥 바로 눈에 닿는 곳이라서 무심결에 그냥 그곳을 바라보게 되었다.

"......"

..보통 커피와 조각케잌은 두가지 맛에 조화를 느끼면서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먹는 것이 일반적인데...

'뭘 저리 급하게 먹어...'

먹는 분위기로 봐서는 1조각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다.

"음..."

그리고 그런 생각은 얼추 들어맞았다. 나온지 5분도 되지 않아서, 케잌 한조각을 다 먹고는 입맛을 다시더니 시간을 확인했다.

'...10시 48분...'

무언가에 늦은 것인지, 급하게 라떼를 원샷하고는 급하게 뛰쳐나갔다.

"...재밌는 손님이구만."


"어서오세요."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1달하고도 2주째,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30분. 늘 녹차라떼 1잔, 초코티라미슈 1조각을 주문하고 6번 테이블에 앉아서 35분에 나오는 음식을 10~15분 정도에 먹고나서 매번 같은 인삿말을 남기고 간다.

오늘 역시 10시 29분...딱 잘맞춰서 왔다.

"안녕하세요, 그...녹..."

"예, 녹차라떼 1잔, 초코티라미슈 케잌 1조각, 9천원 되겠습니다."

"후훗, 여기요 만원, 만원 받으니까 거스름돈 천원이죠?"

"예, 여기 있습니다. 35분에 6번 테이블로 가지요."

"네~"

그런데 도대체 매주 토요일에 어디를 가는 것일까. 궁금하네...


"응?"

카페 앞 문 앞에 붙어있는 하얀 종이.

"자원봉사? 흠..."

만월 고아원이란 곳에서 자원 봉사자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오래는 하는 것은 아니고, 매주 토요일에 1달 동안만 하는 것. 고아원 아이들에게 여러가지 직업에 대한 프로그램이라...정식 바리스타 자격증도 있으니 자격조건은 만족시킨다.

"문제는 토요일 알바지...일단 들어가서 얘기해봐야겠다."

'딸랑딸랑'

"오, 성훈이 왔냐."

"예, 형. 점장님은요?"

"나, 여기있다. 왜?"

"아, 저 혹시 1달동안 토요일만 알바 빠질 수 없을까요?"

"왜?"

점장님께 봉사활동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사실 딱히 중요한 일도 아닌 것 가지고 알바 빼달라하기가 조금 그렇지만...

"뭐, 좋은 일이네. 4번? 좋아, 빼줄께."

우리 점장님은 쿨하시니까.

"감사합니다!!"

"대신..."

"대신...?"

"그 만큼 알바비는 뺀다잉."

...전혀 쿨하지 않으시다. 착각이었군.


"음....느, 늦었을려나?"

자원봉사신청할 사람은 토요일에 10시 40분까지 오라고 했었다. 그래서 한번 만나보고 결정해서 합격하면 11시부터 곧바로 시작, 떨어지면....알바가야지...

길을 잘못드는 바람에..5분이나 지각해버렸다. 뭐..일단 들어가봐야지.

"저기...실례합니다."

"네, 무슨 일이시죠?"

"그, 자원봉사원 구하는 안내문 보고 왔는데요."

"아~이쪽으로 오세요."

작은 방으로 들어가서 의자에 앉았다...면접인가...

"무슨 직업이신가요?"

"어...지금 딱히 하고 있는 직업이 있는 것은 아니구요. 정식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어요."

"아~바리스타요?"

"예."

"그거 괜찮네요. 지금까지 신청해주신 직업이...어디보자...경찰이 있구요, 의사도 있었구요...아, 화가도 있었네."

"......"

경찰, 의사...화가..? 이거이거...바리스타가지고 될려나...

"음..선생님에...디자이너도 있네요. 그쪽까지 총 6명이네요."

"아, 할 수 있나요?"

"네, 바리스타면 애들도 좋아할꺼에요. 지금이...56분이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11시까지 다른 자원봉사자분들도 오시거든요. 그 때 같이 할께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대답을 하긴 했지만...난 호기심이 많은 O형!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후후...

답답해서 일단 밖에 나왔다. 큼지막하게 붙어있는 '만월 고아원'

"만월이라...보름달..? 의미가 뭐지..."

건물의 외형은...전형적인 고아원같이 생겼다. 흠...

"...들어가야겠다. 벌써 11시..3분이구나."

"어어~!"

"응? 으엌!"

'쿵!'

"아...씁..."

뭐...뭐지...누군가와 부딛힌것 같은데...

"죄,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어?"
낮익은 얼굴, 아니 낮익은 수준도 아닌 굉장히 익숙한 얼굴과 목소리.

"어어...그...혹시 카페에 아르바이트 하시지..."

"아, 예 맞습니다. 그...녹차라떼..."

"풉! 녹차라떼. 네 맞아요. 안녕하세요."
"아, 예. 안녕하세요."
오늘 봉사활동으로 알바를 가지 않아서 못본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기서 보다니...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오늘 카페에 안보이시던데..."

"아아, 고아원에 봉사활동 왔습니다. 그래서 점장님께 토요일만 알바 빼달라고 하고 왔어요."
"여기서 봉사활동 하세요?"
"아, 네. 오늘부터 한 달 동안..."

"무슨 직업으로 하세요?"
"네? 아...바리스타 자격증이 있어서..."

"우와~그랬어요?! 그런데 왜 여태 계산만..."

...분명히 난 정식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다. 그런데 난 단 1분도 주방에 들어가서 일한적이 없다. 왜냐고?"
"그건...저 보다 훨씬 잘하시는 분들이 엄청 계시기 때문에..."
"...하, 할튼 잘됬네요! 저도 여기서 매주 자원봉사해요! 1달동안은 같이 하겠네요!"
"...그럼 여태까지 매주 토요일에 시간을 딱 맞춰서 오고 간 이유가..."

"네, 이 봉사활동 오기 전에 잠시 시간내서 가는거였어요. 이게 재밌거든요, 매주 애들 보는게...이제 시간도 어느정도 되다보니까 애들하고도 꽤 친해지더라구요."

"...그렇군요. 그런데 말이죠..."
"네?"
"지금 벌써 11시 10분이 넘었는데 말이죠."
"에에에?! 뭐해요? 어서 가요! 또 늦었다아~!"

"...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

"...저기..."

"예? 아 저는 괜찮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커피에 3번 데이는 것 쯤이야 바리스타 자격증 따는 연습하다보면 일상입니다. 하하하하하"

...젠장...봉사활동 따위 하는게 아니었어. 아니, 할꺼면 조용한 양로원이나 가서 빨래 라던가...청소 라던가...안마 라던가...그런 걸 했어야 해! 내가 왜 고아원에 온거지...

"애들이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들이 와서 신기해해서 그래요. 조금만 이해해주세요."
"아, 예 물론이죠. 저는 쿨한 남자랍니다. 하하하."

지쳤다. 이거 이래서 다음주 부터 어떻게 버티지...뭐, 그래도 생각보다 재미는 있다. 생각보다 훨씬 힘들어서 그렇지. 애들이니까 이렇게 웃으면서 참는다...참자...

"아! 그러고보니 저희 아직 통성명도 안했네요. 음...저는 서연아라고 해요. 대학교 3학년이긴한데...1년 휴학하고 있어요."
"아...저는 이성훈이라고 합니다. 저도 등록금 번다고 1년 휴학하고 있죠. 결국 동갑이네요."

"음...그래서 카페에서 알바를..."
"아, 뭐...그렇죠. 그래도 평일에는 과외도 하면서 돈을 벌고 있죠."
"아..."

아...배고프다. 고아원 점심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상상 그 이상의 퀄리티였다...하하...얼마 먹지도 못하고 버렸...

"아...배고프다..."

"아...그러고보니 점심을 얼마 안드시던데...그럴만도 하죠."

"하하하..."

"그러고보니 저녁시간도 슬슬 다 되어가는데 어디가서 저녁이나 같이 먹을까요?"
......? 내가 보수적인 것인가, 이 여자가 개방적인 것인가...혼란스럽다. 아니, 아니 그냥 단순히 혼자 먹기 뻘쭘하니까 같이 먹자는건가?

"...어..."

"풉! 뭘 그렇게 당황해요? 그냥 같이 밥이나 먹자구요. 모르는 사이도 아니잖아요?"
"아..그, 그렇죠. 그럼 그렇게 하죠."
"그럼...어디갈까요?"
"그, 글쎄요?"
결국 5시 반 부터 시작된 '무엇을 먹을까'의 고뇌는 6시가 조금 넘어서야 결정되었다.

굉장히 어색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밥 먹으면서도 굉장히 편한 사람이었다. 성격도 밝고...앞으로 토요일...생각보다 굉장히 재밌을 것 같다.


"어? 오늘은 늦지 않으셨네요."

"아~?! 저 매일 늦는 것은 아니라구요!"

"하하, 성훈씨 연아씨는 절대로 매번 늦지 않는답니다."
"그렇죠?"
"네, 격주로 늦더군요."
...어쩐지...카페에서도 한 주는 그냥 가고, 그 다음 주는 시계보고 뛰어가고...그리고 반복하더니 격주로 지각하는 것이었구만.

"자, 자 이제 놀고 시작하도록 하죠. 연아씨가 지각한 덕분에 조금 늦었으니까요."

...아아아~"

힘들다...내가 들어서자마자 '맛있는거 주는 아저씨'라며 우르르 몰려드는 아이들 덕분에 인기가 많다는 것을 난생 처음 체험해 보았다. 허허...아, 인기가 많은 것은 내가 아니라 케잌이려나? 아직 어린 애들이라서 커피는 만드는 것만 보여주고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케잌은 직접 만들게도 해보고, 먹을 수도 있게 해줬다. 역시 애들은 '먹어야'하더라.

"힘들어요?"
"네? 아, 네...뭐, 조금요."
"그래도 저번 주 보다는 조금 낫죠?"
"뭐, 그건 그렇네요."
"그나저나 커피랑 케잌 정말 잘 만드시더라구요. 먹어봤는데 되게 맛있었어요."
"아...그냥 조금 하는거죠, 뭐.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이구요."
어디가서 명함도 못 내밀 실력이다. 우리 카페에만 해도 주방에 나 보다 잘하는 사람이 수두룩 하니...

"뭐든지 만들 수 있어요?"
"네? 뭐...왠만한 것들은...?"
"그럼...아직 저녁시간까지 조금 남았으니까, 우리 커피 마시러가요!"
"에..? 원래 커피는 밥 먹고 마시는 게...아니던가요?"
"에이~괜찮아요, 원래가 어딨어요. 그냥 먹으면 되죠."
결국 내가 알바하는 카페에 가게 되버렸다. 이 시간이면 손님이 꽤나 있지 싶은데...시끄러운건 별로인데 말이다.

"형, 저 왔어요."

"엉? 니가 오늘 왠일이냐?"

"왜라니요. 저 오늘 당당히 손님으로 왔습니다만?"
"어? 어...잠만...이놈보소...옆에 분은 누구시냐? 설마...여자친구?!"
알바생 형의 시선이 내 옆으로 돌아갔다. 여자친구라니...뭐, 오해할 수도 있는 풍경인가?

"아, 아니에요! 저는 성훈씨랑 같은 고아원에서 봉사하는 서연아라고 합니다."
"...에이...그렇구나."

뭘 기대한거에요, 형...이러지 맙시다.

"형, 저희 안쪽으로 들어갈께요. 시끄러운건 싫어서요. 괜찮죠?"

"네? 아, 네."
아직 2층에까지 사람이 많을 시간이 아니니까 연아씨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뭐 드실레요?"

"저는 뭐..."
아차, 실수...연아씨는 늘 언제나 녹차라떼와 초코티라미슈였으니...오늘은 내가 다른 것을 만들어 드려야겠다.

"아, 제가 그냥 오늘은 다른 걸 만들어 드릴께요."
"네? 다른거요?"
"네, 매번 녹차라떼만 드시니까...이번에는 다른 걸로..."

"음...알았어요. 실력, 믿어도 되죠?"
"하하하, 당연하죠. 제일 자신있는 것이니까 기대해도 좋습니다."
2층 자리에 연아씨를 남겨두고 주방으로 내려왔다. 양해를 구하는 것은 물론...주방 한쪽에 자리를 잡아서 사용했다.

연아씨에게 만들어 줄 것은 아포가또. 차가운 아이스크림위에 진한 에스프레소를 부어서 먹는 디저트류이다. 뭐, 밥 먹기도 전에 디저트 부터 먹는 것이 좀...그렇긴 하지만, 연아씨는 이 정도로 밥 맛이 없어질 사람이 아닌 것 같으니...패스.

"다 됬다..."
생각보다 조금 오래 걸린 느낌...연아씨를 혼자서 오래 있게 한 것 같다.

"여, 연아씨?"

"아, 왔어요? 후음...좀 오래 걸렸네요."
"아, 미안해요. 생각보다..."

"여자를 혼자 있게 하는건 실례라구요."
"아...미, 미안해요. 대신에 맛있는거 만들어 드리는 거니까, 한 번만 봐주세요."
"음...그런데 이게 뭐에요? 아이스크림 같은데..."
"아포가또라고 하는 것인데요, 디저트의 한 종류로 아이스크림위에 진한 에스프레소를 부어서 떠먹는거죠."

"음...흠...맛있어요!"
...언제 벌써 한 숟가락 떠 드셨나요...빠르네요..역시...

"맛있다니 그거 다행이네요."

"아...그런데요..."

"예?"
"아까 생각한건데요, 우리 전화번호 교환해요."
"전화번호요?"
"예, 이제 우리 친한사이인데 친구끼리 전화번호 정도는 교환해야죠."

"아...그, 그래요. 그렇게 해요."

만난지 2주째...우리는 그렇게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카페에서 조금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후..."

긴장된다. 이상하게도 말이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따라 더 외모에 신경쓰는 것 같다. 분명히 어제도 머리 감고, 샤워했는데 방금 또 하고 나왔다. 평소에는 그냥 옷장에서 아무거나 꺼내 입고 나가는데, 오늘은 옷 고르는데만 해도 20분 넘게 써버렸다.

"후...어? 으아아아아아악! 지각이다아아!"
...웁스...현재 시각 10시 40분. 적어도 가는데 20분은 더 걸린다. 큰일났다...

"으으으으으..."

버스도 놓쳐버렸다. 벌써 47분. 이 상태로면 지각도 심각한 지각이다...아나...어쩔 수 없다. 이럴 때 이용하라고 있는 것이 택시!

"택시~!"

"만월 고아원으로 가주세요! 빨리요!"
잔돈따위는 받지도 않았다. 현재 시각 11시 6분. 늦었다!

'덜컹!'

......아아...반칙이야...어째서 오늘은 연아씨도 지각하지 않은거지...원래 지각하는 날인데...

"어어? 성훈씨 지각하셨어요!"

"아아...죄송합니다. 그런데...연아씨는 오늘...지각 안하셨네요?"
"네? 아..그..좀 일찍 일어나서요. 알람을 잘못맞춰놔서..."

"아아...운이 좋네요. 저는 늦게 일어나서..."

오늘은 내가 지각한 덕분에 10분이나 늦게 시작했버렸다....웁스.


"......"

"왜 그래요? 오늘 더 힘들었어요?"
"아니요...더 힘들지는 않았어요."
"그러면 왜 그래요?"
"아니요...이제 애들하고 마음이 맞고, 정 붙였는데 벌써 다음 주가 마지막이니까요."
이제는 내 말도 잘 들어주고, 마음도 어느정도는 잘 맞게 되었다. 궁합도 맞고...그런데 벌써 다음 주가 마지막이라니...조금은...슬프다.

"흠...그렇죠. 저도 이제......네요..."

"네? 뭐라구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밥 먹으러 가자구요!"


"...떨린다."

맞다, 굉장히 떨린다. 오늘이 마지막 봉사활동이자, 연아씨와 마지막으로 아무런 거리낌없이 만날 수 있는 마지막 날...

일주일 동안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다. 기분이 조금 별로다가도, 연아씨의 전화 한 통에 기분이 좋아지고, 진상손님 상대한다고 진을 다 빼놓고 난 후에라도, 연아씨의 문자 한 통이면 모든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그리고 깨달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난 연아씨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그리고 오늘...고백한다.


"어? 연아씨...오늘도 지각...안하셨네요?"

"아...네, 헤헤...저도 마지막 날 까지도 지각 할 수는 없잖아요?"
"하하, 그렇긴하죠. 저도 그래서 어제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오늘은 10분이나 일찍 왔답니다."

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일찍 온거지만...

"헤헤, 잘하셨어요."

"아아, 두분 분위기 알콩달콩하니, 좋은데 말이죠. 이제 슬슬 시작해야 되는데 말입니다."
"아, 네!"

"......"


"수고하셨습니다. 성훈씨, 연아씨. 그 동안 고마웠어요."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계세요."

...끝났다. 1달간의 봉사활동이 끝났다. 이제 나는 간다고 하자, 다들 가지 말라고 소리치고 심지어 몇명은 울기까지 했었다. 후...그래 이 정도면 굉장히 잘한 것 일려나.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갈수록 내가 더 재미를 붙인 것 같다. 아깝네...더 오래했으면 좋았을텐데.

"저기...성훈씨..."

"예?"
"그...할 말이 있어서요...저희 어디 들어갈까요?"

"할 말이요?"
"네, 성훈씨 아르바이트하는 곳으로 가요."

"그, 그러죠."
'딸랑~'

역시나 오늘도 알바형이 혼자서 열심히 서빙하고 있었다.

"형, 자주 보네요."
"어, 또 왔냐."

"저기...저희 안쪽자리로 주세요."
"아...네, 그럼 이리로 오시죠."
...연아씨의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가 않다. 뭐랄까...말로는 표현하기 힘들지만...마치...무언가를 굳게 결심하고 준비하는 사람이랄까...

"뭘로 하시겠어요? 아...녹..."

"아, 아뇨. 아포가또로 할께요."

"아...괜찮으셨나봐요. 그럼...저는..."

"성훈씨는 녹차라떼랑 초코티라미슈 시켜보세요. 그 조합 은근히 괜찮아요."
"...그, 그럴까요?'

"네. 그럼 시킬께요."
주문을 하고 나선, 둘 다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연아씨의 분위기가 굉장히 무거웠고, 나 역시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말을 막 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주문나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성훈씨 어서 한 번 먹어보세요."
"아, 네..."

녹차라떼 한 모금...단맛 뒤에 느껴지는 쓴 맛 조금...초코티라미슈 한 입...달다...굉장히...

"...어, 어때요?"
"어...음...아..생각보다 괜찮네요."
"그렇죠? 헤헤..."

"네, 그렇네요..."

또 다시 잠시동안의 정적. 이 상태로 가다가는 100년이 지나도 둘 다 아무 말도 못할 것 같았기에 결국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로 했다.

"저기...연아씨."
"네?"
"하실 말이란게..."

"아...저기...그러니까...저, 저는 성훈씨랑 있으면 굉장히 편해요. 아무런 거리낌 없이도 있을 수 있구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보이는 내숭도 성훈씨 앞에서는 없게 되더라구요."

"......"

...뭐, 뭐지...이 말은 마치...

"그래서 저는 성훈씨가 굉장히 좋아요."

...고...백인가? 나 연아씨에게 고백 받은건가? 그, 그렇다면! 이 것이 기회다!

"...여, 연아씨..저, 저도..."

하지만 나의 말은 끝까지 닿지 못했다. 내 말은 중간에 끊길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뒤에 이어지는 연아씨의 말 때문에...

"그런데...저...이제 학교에 다시 나가요. 휴학기간도 끝나서..."

"...보, 복학이요?"

"네. 그래서 이제 성훈씨 볼 수 없을 것 같아요."

"보, 복학하고 나서 학교 마치고 가끔씩 보면 되잖아요."

나는 필사적이었다.

"아니요. 저, 여기서 학교 다니는게 아니에요. 다른 지방에서 다니는데 휴학기간 중에 이쪽에 부모님이 사셔서 내려온거에요."

"........."

아무 말도, 아무런 반응도 내보일 수 없었다. 왜 하필 오늘인가. 왜 하필 내가 고백하려고 마음먹은 오늘인가...

"연아씨..."

"그...미안해요. 이제 겨우 우리 굉장히 친해졌는데..."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놓칠 수 밖에 없었다. 겨우 1달. 그것도 토요일...결국 고작 4번의 만남밖에 가지지 못한 이 부족한 남자가 어떻게 잡겠는가...

결국 나는 그렇게 연아씨를 보냈다. 그리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알바를 계속했고, 나도 복학을 했고, 졸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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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참..."

시간을 보았다. 아직 10시 29분. 시간은 충분히 여유롭게 남았다.

'딸랑~'

"어서오세요."
이 애매한 시간대에 나 말고도 커피를 마시러 온 사람이 있구나...

"...아포가또...1잔 주세요."
아포가또라...오늘이 무슨 날인 모양이네. 이런 우연도 있구나.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그 손님.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간다.

".....어...?"
익숙한 분위기다. 아니, 익숙한 옆모습이다.

"........."

한 동안 나는 그렇게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공허한 벽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멍하니 있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10시 48분.

그 손님은 나온 아포가또를 허겁지겁 먹더니 급하게 계산을 하고 뛰쳐나간다.

"......"

모든 것이 익숙하다. 심지어 손목시계를 바라보는 그 모습까지도.

"아아...나도 늦었버렸군."
마치 환상속에 빠진 듯한 기분은 신비롭지만, 이미 그 손님도 나갔다. 내가 여기 더 있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그 환상같은 기분에 넘어가서 봉사활동에 지각할 이유도 없다.

"안녕히 계세요."

계산을 하고 봉사할 양로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아, 성훈이 형, 늦었네요."
"미안, 미안해. 일이 조금 있어서..."

"뭐, 됬어요. 아! 그러고보니 아까전에 오늘부터 새로 봉사할 사람이 들어오셨어요."

"새로 봉사할 사람?"

"네, 여자였는데...제 스타일이에요! 분위기도 밝고, 활기차요! 커피도 좋아한데요. 특히...그...아포가또? 그걸 좋아한데요. 형 바리스타 자격증 있잖아요? 그..,아포가또가 뭐에요?"
"...아포가...또?"
"예."

"그...사람 어딨어? 이름은?"
"아, 저기 휴계실에 있을거에요. 이름은....서연아였어요. 이름도 예쁘죠?"
"........"

나에게 계속 말을 하는 영준이의 말은 이미 나에게 듣기지 않았다. 나의 발걸음은 본능적으로 휴계실로 향했다.

"어어~"

'쿵!'

"...아...죄, 죄송합니다. 으...앞을 좀 보고 다녀야하는데...급하다보니까..."

...확신이 되었다. 지금 소름이 끼칠 정도로 첫만남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낸 이 사람은....분명했다.

"연아씨."

"네? 저를 어떻...게...서, 성훈씨...?"
"...보고싶었어요..."

안았다. 나도 모르게 연아씨를 확인한 순간 나도 모르게 있는 힘껏 안았다.

"서, 성훈씨...저, 저기..."

"혹시...이런 말 알아요?"

"네?"
"1번은 우연...2번은 인연...3번은 운명..."

".....아...."

"이것으로 저희는 2번...인연...이번에는 반드시 놓치지 않을거에요. 연아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