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만에 만난 그 사람

인연2013.03.14
조회73,696

 

 

                                                   (네이트 국어사전 발췌)

 

 

 

 

 

 

 

 

 

 

 

1

 

'사각..사각..사각'

 

주섬주섬 돈을 세어 동그랗게 말았다.

도토리만한 내 주먹에 쥐어주며

 

"책상 사렴.."

"학교도 가야하고 공부도 해야하니.."

 

이윽고 눈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그냥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고작 6살 이였으니까..

 

"엄마.."

 

참 낯선 단어다.

그렇게 엄마는 떠났고 언제 볼 수 있을거라는 기약도 없이..

초라한 뒷모습을 보이며 시야에서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갔다. 

 

 

 

 

 

2

 

"동혁아.. 잘 지내야된다."

 

상추와 김치가 전부인 밥상..

고기가 없는 상추쌈 밥상을 차리며 아버지는 나지막히 얘기했다.

분명히 눈물을 참고 계셨다. 7살 어린 나이에도 느낄 수가 있었다.

가난해서 고기 살 돈이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우걱우걱 상추쌈을 드시고 계셨다. 급한 사람 처럼.

서로를 껴안고 엉엉 울었다. 아버지는 갑자기 구토를 하셨다. 체했으리라.

아버지도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났다. 아주 멀리.

 

 

 

 

 

3

 

문맹이신 할머니 손에 이끌려 국민학교 입학식을 우여곡절 끝에 마치고,

할머니 손에 키워졌다. 급변하는 80년대 후반.. 국민학교 1학년의 시선엔,

손짓하는 호돌이.. 색깔별 동그라미 다섯개(오륜기).. 그것뿐이였다.

우리나라는 들썩들썩 했다. 그것이 올림픽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탄탄대로 였지만, 앞으로 내 삶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그 어린 나이에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빵빠레 사줘.. 빵빠레.."

"이 녀석이.."

 

한 푼이라도 아껴야 했던 할머니는

귀찮은 듯 내 손을 잡고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4

 

"돈 내놓으라고!!"

 

섬뜩한 식칼이 내 목에 들어왔다. 몇 년만에 돌아온 아버지는 날 인질로 붙잡고

할머니, 삼촌(아버지 친동생) 에게 협박을 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날 죽이겠다고..

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날 죽이지 못할 거라고.

말은 분명하고 단호했지만. 내 목을 감싼 팔과 손에는 힘을 주고 있지 않았다.

내가 다치면 안되니까..

 

아버지는 건달, 노름꾼이였다. 

폐륜아라 불리우는 아버지라도 자식에 대한 남다른 감정은 어쩔 수 없나보다.

아버지가 미웠지만.. 적어도 아버지는 내 옆에 계시니까..

미묘한 애증을 느낄 수 밖에..

내 나이 12살..

 

 

 

 

 

5

 

배운게 없어 막노동으로 연명하며

매일 같이 술에 취해 집안을 쑥대밭을 만드는 삼촌과

불쌍한 나를 키우겠다고 노력하신 할머니..

그리고 백수건달 아버지..

어린시절부터 급변하는 사춘기까지,

아무런 사랑을 받지 못했다. 의지할 곳이 없었다.

삼촌한테 매일같이 맞았고.. 아버지에게 무관심을 받았으며..

아무 힘이 없는 할머니는 나를 가엾게만 보셨다.

삼촌은 막노동으로 힘들게 번 돈을 나를 위해

쓰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빈둥 빈둥 놀며 건달 생활 하는 나의 아버지도 미웠을 것이다.

 

그래서 나를 그렇게 싫어하고 미워했다.

삼촌은 공포 그 자체였다.

 

 

 

 

 

6

 

나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도벽이 점점 심해졌고..

강박증과 결벽증이 심해졌다.

조그마한 상황에도 예민하고 기민하게 움직였고

눈치를 봐야 했다.

집에서는 삼촌과 할머니 셋이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공부다운 공부도 할 수 없었다.

누구 하나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문맹인 할머니와 국민학교도 마치지 못한 삼촌은

나에게 가르쳐 줄 무언가가 없을 것이다.

 

아버지와 삼촌에게 나는 쓸모없는 골동품 같은 존재였다.

버리자니 아쉽고 아끼자니 미친 짓 같고..

 

"하.."

"나도 사랑받고 싶다"

"엄마 라는 사람은 대체 뭐하고 살까?"

"내가 엄마 손에 길러졌다면.. 어땠을까?"

 

엄마라는 존재를 알고 싶은..

 

16살.. 나는 사춘기다..

 

 

 

 

 

 

7

 

"이.. 진.. 숙..?"

 

엄마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장농속의 낡은 앨범을 보다가 발견한 엄마의 주민등록증..

60년생이다.. 생일은 4월달 이구나..

아버지가 몰래 숨겨놓았던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이제서야 엄마의 실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찾고 싶었다. 보고 싶었다.

왜 날 그렇게 버리고 갔는지.. 묻고 싶었다..

 

"왜 날 버리고 떠나셨나요..?"

"엄마도 날 생각하고 있을까..?"

 

 

 

 

 

8

 

무능력하게 노름만 하는 아버지가 싫었고..

술에 취해 매일 괴롭히고 때리는 삼촌이 싫었고..

치매에 걸려 비상식적 행동을 하는 할머니가 싫었다..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고 믿을 수 없었다.

 

"난 혼자야.."

 

중학교 때부터 무슨일이든 혼자 해결해야 했던 나는

미리미리 준비해야 했다.

세탁기에 돌린 빨래를 건조대에 널고, 도시락도 혼자 싸서 등교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

학교 마치고 돌아오면 말라 있어야 할 건조대위의 빨래가 늘 젖어 있었다..

 

"치..매.."

 

치매가 심해진 할머니는 내가 빨았던 빨래를

하루 종일 빨았다 널었다를 반복 하고 계셨던 것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아!! 왜!!"

 

 

 

 

 

9

 

"여보세요?"

"동혁이 맞니?"

"동혁아 잘 들어.."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단다"

"전철역에서 그만.."

 

딸깍.. 뚜 뚜 뚜 뚜 뚜..

 

전화를 끊고 한 동안 정신이 멍해졌다..

치매가 오신 할머니는 그만..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도 그럴것이 삼촌은 매일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하고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하고 돈 달라고 횡포를 놓았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어린 나까지..

할머니도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셨다..

 

눈물이 나왔다.. 어찌됐던 나를 키워준 분이니까..

하염없이 울었다..

사고 전 날 할머니는 내 손을 꼭 한번 잡아보자고

우리 동혁이 손 한번 꼭 잡아보자고 했었는데

완강히 거부했다..

예민한 사춘기이기도 했고.. 치매 걸린 할머니와 다툼이 많았었다.

 

아직도 그 일이 제일 후회된다. 가슴이 찢어질 듯..

그렇게 할머니를 보냈다..

 

질풍노도의 시기.. 내 나이 18살.. 

 

 

 

 

 

10

 

세상이 원망 스럽다..

그렇지만 나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

나는 아버지와는 다르게.. 삼촌과는 다르게..

나는 다르게 살아야 했다..

성공하고 싶었다..

 

 

 

 

 

 

11

 

중학교때.. 추운 겨울 새벽에 일어나 신문배달을 하고 등교를 했고

고등학교때는 일과 끝나고 새벽까지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평균 수면 시간 두 세시간..

그래야만 했다. 집안에 돈이 없었으니까. 가난했으니까.

먹고 살아야했으니까.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사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더 심했다.

삼촌의 폭력.. 할머니의 치매.. 아버지는 백수건달..

 

신문배달로 한달 동안 받을 수 있는 수입은 고작 15만원이였다.

등교를 하려면 차비도 벌어야 하고, 반찬이라도 사야지 도시락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 돈 마저 빼앗아가려는 못난 아버지..

쓰러져가는 체력에도 강해지기 위해 늘 내 자신을 채찍질 했다.

 

"살아야 돼.."

 

학교를 다니면서 알바를 했고 틈틈히 합기도를 시작했다.

 

"강해지고 싶어.."

 

그렇게 폭풍같은 청소년기를 보냈고.

드디어 성인이 되었다.

 

 

 

 

 

 

12

 

고등학교도 간신히 졸업해서 이끌려 간 곳은 편의점..

관장님 소개로 친한 지인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사회생활이였다.

 

닥치는 대로 일을 시작했다.

배운 게 없으니 일이라도 해야 했다.

그리고 군대.. 세번의 연기..

24살 늦은 나이에 국방의 의무를 지기 위해

군대로 가야했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벌써 군인 아저씨가 될 만큼 커버렸는데.."

 

엄마는 그 동안 한번도 날 찾지 않았었다.

사실 나도 엄마를 그리워할 시간 조차 없었다.

 

살아야 하니까.. 사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13

 

힘든 군복무.. 시간은 금새 지나갔다.

2004년 입대해서 2006년 어느 새 병장이 되어 있었고..

 

그 쯤 있었던 일이다.

 

군대에서도 주말마다 컴퓨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가끔 한번씩 대대장님 개인 홈페이지에 들러 안부 방명록을 남겼다.

 

그것은 싸이월드 였다. 싸이월드의 열풍은 대단했다.

하지 않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였으니까.

심심할 때마다 싸이월드에 들러 지인들에게 안부를 건냈고

늘 나에게 신경써주셨던 대대장님께도 안부를 불었다

 

"대대장님 건강하십시요"

"늘 감사합니다"

"충 성"

 

 

 

 

 

14

 

'딸각.. 딸각.. 딸각..'

 

마우스 소리가 요란하다.

어느 날이였다.

주말이 된 그 날도 어김없이 싸이월드를 했다.

의지할 곳 없는 나에게 싸이월드는 희망이였고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낙이며 꿈같은 시간이였다.

내 미니홈피에 들러 남겨주는 일촌들의 방명록은 큰 힘이 되었다.

 

방명록을 살펴보던 중

 

낯설은 이름 하나가 보였다.

"이..진..숙..?"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설마.. 엄..마..?

뭔지 모를 이 느낌..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동혁아. 잘 지내니?

사진을 보니 내 아들이 맞는 거 같구나.."

연락바란다.."

010-5425-5425

 

엄마의 미니홈피를 둘러보았고, 20분간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분명 엄마 였다.."

 

 

 

 

 

 

15

 

하염없이 울었다.

어떻게 날 찾았을까?

정신이 혼미했다. 도대체 이 상황은.. 뭘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루 하루 엄마 생각만을 하며

전역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16

 

전역 날..

군복을 입은 채로 엄마를 만나기로 결심했다.

 

입대 당시 수많은 부모님들이 자식 앞에서 울었었다.

나는 당연히 혼자 입대했고

그 누구도 반겨주거나 아쉬워해주거나 하는 이 없었다.

 

다만, 동기들을 위해 울어주는 다른 부모님들을 바라보며

혼자 눈물을 삼켰다.

 

나도 엄마라는 존재 앞에 군복 입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17

 

"동혁아!"

"동혁아!"

강남역 지하차도는 내 이름으로 가득찼다.

 

엄마와의 약속 장소는 강남역 지하차도..

엄마는 나를 찾기 위해  큰 소리로 나를 부르고 계셨다.

 

"어.. 엄..마.."

 

그토록 불러보고 싶었지만 낯선 이름..

"엄..마"

 

엄마라는 분은 나를 보자마자  내 아들이 맞다며

내 얼굴을 감싸며 엉엉 우셨다.

사람들이 보던 말던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였다.

내 나이 26.. 

6살 때 헤어지고 20년 만에 만났으니까..

 

"엄..마.."

군대 안에서 그렇게 울었겄만..

막상 엄마를 만나니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낯설었다.

키워준 정이 없었기 때문일까?

뭔지 모를 어색함.. 이질감..

  

과거 속 엄마는 정말 예쁘고 아름다웠는데

시간이 흘러버린 엄마는

헬쓱하고 야윈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엄마를 만났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도 엄마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 아들.."

"어렸을 때 모유를 먹이지 못해 이렇게 말랐구나.."

 

엄마는 내 손을 꽉 쥐었다.

이윽고 서둘러 집으로 안내했다.

 

 

 

 

 

 

18

 

"엄마, 난 어떻게 태어났어?"

 

그랬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다.

내 자신도 모르는 나에 대해 미치도록 궁금했다.

26년이라는 세월동안 그 누구도 나에 대해서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쉴 새 없는 질문 공세로 궁금했던 퍼즐조각을 맞춰 나갈때 쯤..

 

"넌.. 아버지의 성폭행으로.."

"그리고 널 갖게 됐단다.."

 

"성폭행이라니.."

 

좋게 말해 성폭행이었다.

강제로 엄마를 외진 곳으로 끌고가서는..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어린 나이에 나이 많은 아버지에게..

엄마는 그렇게 꽃다운 시절 봉우리 한번 펴 보지 못하고 나를 가졌다.

그리고 배 속에 나를 지키려고 애썼다.

 

엄마의 임신 소식을 알자 뱃속에 있는 나를 유산시키려고

아버지는 엄마 가슴과 복부를 수도 없이 걷어 찼다고 했다.

그 때문에 갈비뼈에 이상이 생겼고

피를 토하는 폐렴 증세까지 왔다.

구타는 시시때때로 이루어졌고

내가 살아있는게 기적이라고 했다.

 

"콜록 콜록"

 

엄마의 말투가 약간 어눌했다.

엄마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아직까지도 그 후유증으로 안면 마비가 왔으며,

그로 인해 제대로 된 발음이 어려웠고

갈비뼈를 제거하는 대 수술까지..

병원을 다니며 지속적인 약물 치료를 받고 있었다.

 

아버지가 건달에 노름꾼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날 끝까지 버리진 않았으니까..

무관심 했지만 가끔은 날 아들로서 대해줬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충격이었다.

 

성폭행에.. 배속에 나까지 죽이려 했다니..

 

형편없는 아버지였지만 그래도 내 아버지였기에!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했는데..

머리 속이 혼란스러웠다. 실망감은 이내 분노로 바뀌고 있었다.

 

 

 

 

 

19

 

난 살아야했다. 살고 싶었다.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살기 위해 이렇게 죽기 살기로 살았다.

엄마 배속에 있을 때부터 죽을 고비를 넘기고

끈질긴 생명줄을 안고 태어났다

비로소 엄마에게.. 어머니에게.. 감사했다.

이렇게 무사하게 태어나게 해 준 것만으로도..

 

"동혁아.."

 

"응 엄마.."

 

"아버지한테 절대 엄마 만났다고 해선 안돼.. 알겠니..?"

 

엄마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깊은 공포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엄마한테 미안했다.

아버지의 외관을 닮은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정적이 흘렀다..

 

 

 

 

 

 

20

 

'쓰각.. 쓰각.. 쓰각..'

 

엄마가 해주는 첫 요리 소리다.

김치를 써신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다니..

낯설다. 이상했다. 신기했다.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몸은 계속 바스스 떨렸고..

몸과 마음이 일체가 되지 않았다.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20년 만에 엄마를 만나는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수저를 들기가 무섭게 울었다..

뚝뚝 떨어지는 굵은 눈물 방울..

서러웠다. 슬펐다. 아니 기뻤다.

군복을 입고 있는 다 큰 젊은 청년이

밥상에서 서글프게 울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치볶음밥

 

엄마가 해주는 맛이 이런 맛이구나..

 

"엄마 우리 이제 헤어지지 말자"

"나 자주 찾아올게"

"맛있는 밥 또 해줄거지..?"

 

 

 

 

 

 

 

 

 

 

 

 

 

 

 

 

 

 

 

 

 

 

 

 

 

 

 

 

 

 

 

 

 

 

그리고..

 

 

그 꿈같은 일은 오래가지 못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밥상을 뒤로하고..

 

 

 

 

 

 

 

 

 

 

 

 

 

 

 

 

 

 

 

 

 

 

 

 

 

얼마 후 엄마는 폐결핵으로 돌아가셨다.

 

 

 

 

 

 

 

 

 

 

 

 

 

 

 

 

 

 

 

 

 

 

 

 

 

 

 

 

 

 

 

 

 

 

 

 

 

 

 

 

 

 

 

 

 

 

 

"엄마"

"나 어떻게 찾았어?"


"응, 너희 대대장님 미니홈피를 우연히 들어가게 됐는데,

대대장님 방명록에 니 이름이 있더라"

" 내 아들과 똑같은 이름이라 혹시나 해서

들어가봤는데"

"우리 동혁이가 맞더구나"

 

 

 

 

 

 

 

 

 

 

 

 

 

 

 

 

 

 

 

 

 

 

 

 

 

 

 

 

 

 

 

 

 

 

"그리워 하는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  故 피천득님의 인연 中 -

 

 

 

 

 

 

 

 

 

 

 

 

 

 

 

 

 

 

 

 

 

 

 

 

  

   <글쓴이의 말>

 

   늘 힘든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인생을 포기했다면 삶을 포기했다면

   세상에 대한 악을 품었다면 저는 벌써 이 세상에 없거나

   소년원, 구치소, 교도소를 수도 없이 드나들었지도 모릅니다.

  

   어린시절 보고 자란 것은 

   도박, 술, 담배, 폭력, 가난 뿐이였습니다.

   삼촌에게 이유없이 연장, 칼로 맞았고 

   아버지에게 수차례 목졸림을 당했으며

   심지어 할머니는 어린 저를 끌고 야산으로 들어가 동반자살을 하려고  

   저의 목과 당신의 목에 전기줄을 감았습니다.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살고 싶었습니다..

   그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아니 또래처럼 사랑받으며 평범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남들보다 일찍 시작한 사회생활.. 직장생활..

   그 누구도 인생에 대해, 미래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몸으로 부딪혀가며 인생을 배웠습니다.

   머리보다 몸으로 먼저 터득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지 못한 만큼 틈틈히 책을 읽었습니다.

  

   이 글은 저의 살아온 인생이며 그 삶을 바탕으로 한 99.9% 실화 입니다. 

   저의 인생을 페이지 한 장으로 표현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으나

   최대한 간략하고 함축적으로 써 내려 갔습니다.

   미흡한 실력으로 글을 쓰려하니

   부족한 부분은 지속적으로 수정 보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 글은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나 더 슬프게 이야기를 꾸밀까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내가 이렇게 살았노라고.. 이렇게 죽기살기로 살다보니

   누구도 믿지 못할 드라마틱한 우연이 찾아왔고

   우연이 인연이 되면서

   만날 사람은 언젠가 만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무덤덤하게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엄마가 우연히 들어간 대대장님의 미니홈피..

   그리고 대대장님의 미니홈피 방명록에서 찾은 나의 흔적..

   이것은 어쩌면 기가막힌 우연이 아니라 필연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살아 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엄마가 살아 계시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우연이 아니라 다시 만날 수 밖에 없는 인연이었을 겁니다.

 

  더불어 도용이나 절대 지어낸 소설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엄마와 저의 이름은 부득이하게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이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이 땅의 모든 분들

   그리고 지금도 부모에게 버림 받아 힘들게 살고 있을 소년소녀 가장들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바라며..

 

   또한 열심히 살았노라고 위로받고 싶은 나를 위해..

  

  

  * 마지막으로 엄마와 저를 다시 만나게 해 준 싸이월드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댓글 157

실수오래 전

Best자작이였으면좋겠다...너무슬퍼ㅜ

오래 전

Best글쓴이분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는 여성분이 반드시 옆에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사람에게 치유받는거니까요

추억오래 전

Best완전울면서 정독했어요.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까 생각하니 옆에계시면 꼭 안아드리고싶을만치..맘이아프네요.. 올림픽때 입학하셨음 저와 비슷한 나이실꺼같은데., 좋은여성분 만나 가정꾸리셔서.. 많이 사랑받고 행복하시길 바랄께요.. 더이상 외롭지도 무섭지도 힘들지도 않으실껍니다.. 고생많으셨어요 토닥토닥! 행복하세요 꼭^^

진실만이오래 전

저하고 동갑이신것 같네요. 힘내서 열심히 살아주세요. 저도 열심히 살게요.ㅎ

감지해변오래 전

눈물흘리며 읽어보긴 처음이다 감동에 감동이다

오래 전

너무감동적이네요............. 글쓴이님을 본받아서 저도 알뜰하게 성실하게 살아야겠어요... 어릴적,2년에 성폭행으로 힘들고 거의 집에 가족이잇지만, 외롭도록 혼자있는시간이 대부분에 가족은 아빠,언니뿐인데 언니는 나갓고, 엄마는 재혼했고,,, 아빤 술과 부정적인 말과 잘 챙겨줄라고 하지만 똑같은일생활과 ,,, 전 어릴적 유치원때 아는 오빠로부터 성폭행당햇으나 십녀후,,, 소꿉친구한테마저 당해서 17에 애기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힘들어서 자살시도 여러번해도 안되더군요, 계속 지속되는 포기와 좌절로 지금 망가졌지만... 글쓴이님의 훌륭한 모습에 저도 감동받고... 사정은 다르지만, 아픔은 좀 비슷하기에 깨닫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도록 노력할게요 ㅎㅎ 그러니깐, 글쓴이님도 힘내시고 행복하길 바래요 ^^

왕대박오래 전

저도 싸이월드 미니홈피로 언니의 헤어졌던 조카들을 찾았어요 언니가 많이 보고 싶어하고 그리워했었는데.. 지금은 언니가 조카들 챙기면서 살아요~ 싸이월드 아니였음 우리조카들 고아로 살았을텐데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글쓴님도 어렵고 힘든 고난길 잘헤쳐 나오셨으니까 앞으론 좋은일만 있을거예요 힘내요~~~

88학번오래 전

참 대견스럽고 너무나 바르게 잘 자라셨어요. 어른들이 잘못되어도 글쓴님 본인은 올바르게 훌륭하게 잘 자라셨어요. 나쁜길로 빠지지 않고 잘 자라서 의젓한 성인이 되어줘서 고맙습니다. 이담에 님 아내되실분은 님을 자랑스러워 하시고 존경하고 사랑하실거에요. 님의 자녀들도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고요. 그리고 장인장모님 처가 형제분들이 글쓴님을 친 자식처럼 형제처럼 진심으로 따뜻하게 대해줄겁니다.

날게씨오래 전

안녕하세요. 날게씨 입니다. 2013 판춘문예 "우리의 첫만남 이야기" _ 최종 본선진출작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공지사항 및 메일을 확인해주세요.

txt오래 전

좋은 글 감사합니다 투표하고 갈게요. 사람에겐 견딜수있을 만큼의 시련만 주어진다죠 분명 생에 겪을 고난들을 미리 다 겪었으니 앞으론 행복만 남아있을거 같아요

먹둥이오래 전

판춘문예라는 이벤트 배너 보자마자 전에 읽은 이 글 떠올리고 투표하려고 찾아왔는데.. 역시나 후보에 있네요! 모쪼록 판춘문예 1위하셔서, 글쓴님의 행복한 삶의 시작점이 되었음 좋겠습니다 ^^

25오래 전

이글이 1등햇음좋겟다.

앞ㅇ로오래 전

앞으로 진짜 좋은일만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하세요^^

닉네임을 다르게 변경할 수 있어요!
 님이
인연님에게 댓글을 남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