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을 넘어서

mayday201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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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바다 건너 나라에서 홀로 학사과정과 계약직을 연속으로 병행하느라 잠시의 휴식/방학도 없이 4년을 집시처럼 옮겨다니며 지내왔다. 4개월 계약을 단위로 여러장소의 직장들을 옮겨다니며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꿈꿨지만, 크고 작은 사건들로 인해 번번한 인간관계의실패의 결과와 그 두려움으로, 마음을 닫아놓은체 나만의 세계에서 몇년의 시간이 흘렀다. 혼자 다니는 여행들로 다져진 경험으로 나를 사로잡은건 한 사람의 마음이 아닌, 모 도시. 그 도시에 대한 동경과 "졸업을 하자마자 그 곳으로 자리를 잡아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노라." 라는 다짐만 마음에 문신처럼 새겨둔채 (남들이 보기에는) 쓸쓸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오랬만에 얻게 된 2주의 짧은 휴가를 우연히 모국(한국)에서 보내게 되었고, 틈만 나면 가고 싶고, 하루라도더 보내고 싶은 그 동경의 도시가 아닌, 바다 건너의 서울방문으로 내 금같은 휴가의 일부를 14시간의 시간차에 치여 보내야 하겠구나 라는 조금의 회의감과 아쉬움만 가진채 인천공항을 향했다.


기대가 별로 없는 여정길 뒤에는, 항상 예상을 뒤엎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랬만에 만나게 된 친구의 친구 자격으로써 이미 몇년전 그 곳에서 통성명을 통해, 얼굴만 알고 있었던, 한 사람이 그 친구와의 만남에 동행해주었다. 몇년만에 본 친구와 마찬가지로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셋이서 얼굴을 맞댄 술자리에서, 친구가 화장실로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리는 어색한 말문을 열어보려 너무나도 건조하고 담백한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나: “여행 좋아하니?”

그녀: “으응”

 

어색한 자리가 끝이 나고, 우린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오랬만에 한국을 찾아온 내게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하루쯔음 시간을 비워달란 요청에 난 흔쾌히 따라 나섰다. 우린 9월의 첫날, 매미소리가 환청으로 들릴 듯 한 인디안썸머의 무더운날의 저녁, 북적이던 혜화동 대학로로 향했고 그녀가 예약한 연극을 보았다. 여전히 마음의 문이 단단한 나에게 미동이 오게 될 줄은 모른체.


코미디 장르였던 연극도중 우리는 우연히 서로 얼굴이 마주친 체 활짝 웃었다. 실눈으로 여전히 깔깔되며 웃고 있는 그녀의 표정을 보았다. 잉? 나는 마음이 흔들렸다. 자신있게 나는 미소 하나에 흔들리는 그런 단순한 사내녀석만큼은 아니라 자만해왔는데... 그 미소가 예뻐서일까, 혹은 오랬만에 이성과의 데이트에 대한 설례임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감정에 당황하였다.


그 마음의 근원을 찾기위해서 수만은 머리속 신경세포들이 폭발하던 와중, 정신을 차려보니, 난 연극이 끝나고 그녀와 술잔을 기울이고있었고, 나의 혼란은 계속되어갔다. 혼란이라기 보단, 그 설례임에 대한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이였는지도. 물론 알콜은 더 많은 내 머릿속 신경세포들을 죽였고 그녀가 더더욱 예뻐보이게 만들어 줄 뿐.


막차를 같이 얻어타고 헤어지며, 더더욱 친해지자는 인사와 함께, 그녀의 선물과 편지를 받았다. 왠일이지?


다시 정신을 차려봤을땐, 우린 이미 다음날 이태원의 거리를 걸으며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예뻣고, 난 내 마음을 조심하고 싶었다. 더더욱 이전의 연애관계에 있어서 많은 상처를 받아온 기억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이 앞서왔기 때문에.


늦은시간 다시 그녀를 보내고 그 전날 그녀가 편지를 골목길의 전봇대 아래에서 불빛에 비추어 열어보았다. 더욱 친하게 지내보자는 내용이였다. 무지 설례였다.


하아. 이러면 안되지만 조금씩 빠져들어가는것 같았다. 큰일이였다. 이미 나는 며칠후 다시 바다건너 돌아가야 하는데.

 

그 날이 왔다. 혼자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이 심심하지 않겠냐며 직장에휴무를 내어 동행해주었던 그녀와의 사이가 더욱 발전되지 못한 아쉬움만을 가득 담은체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다. 신나게 달리는 공항철도바깥의 화창한 서울 풍경이 야속했다. 여유있게 공항 구경을 하며 커피를 시켜놓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가 내게 용기내어 내가 그녀에게 가졌던 비슷한 감정에 대한 설명을 그녀가 먼저 내게 해주었다.


조금 당황하고 긴장하였는지 살짝 떨리는 듯 한 목소리와 흔들거리며 다리를 어색하게 꼬고 떨고 있는 그 모습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확신과 용기가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비행기표를 찢어버리고 말았을텐데. 나는 아무런 대답을 못했다.

 

그 후로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 버리던지. 짧지 않은 침묵과 당황함을 숨기려 영양가 없는 빈 말들을 내뱉으며, 비행기 탑승까지 촉박해져가는 야속한 시간만을보며, 도저히 지금 그녀를 잡을 용기는 없었다. 과연 장거리를넘어서도 우린 연인이 될 수 있을지.. 복잡한 마음을 숨긴체 “우리동네에선 이렇게 인사하는거야”라며, 어색한 포옹으로 작별을하고 착찹한 마음으로 바다를 건넜다.12시간이 넘는 비행거리는 사색에 잠겨 너무나 금방 지나갔다.

 

나는 외톨이 생활이 일상이였던 학교로 복학하였고, 조금씩 조금씩 시간차에적응해가며, 동시에 그녀와의 깊어가는 대화에 빠져들었다. 낮과밤이 다른 시간차를 넘어, 각자의 일상이 대화내용이 되어버렸다.

“잘잤어?”

“집에 조심히 들어갔어?”

"피곤하지 않게 일찍 자야지"

라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맺는 인사들 사이에 끊임없이 부족했던 틈들을 채워주는 대화가 오고가며 나도모르게 이미 내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그리고 쏜쌀같이 내려오는 그녀의 흔적들로 채워만 갔다.

 

이젠 그녀와의 안부메세지 없이는 하루가 불안한 일상에 익숙해져 버린 어느 날,사건이 터졌다. 그녀의 주변을 맴돌던 한 사람의 영양가없는 구애쪽지를 (지난 며칠간 직장에서 지켜보았는데, 관심있으니 연락달라는 내용의) 그녀가 보여주었고, 나는 덜컥 그녀를 영영 잃게 될 두려움에 소심하게 말했다.


나: “연락하지 않았으면 해, 아직 난 네게 관심이 많단말야. 보여주고 싶은것도 해주고 싶은말도 많은데.”

 

분명히 짧지 않은 시간이였겠지만, 온 세상이 멈춘듯한 기분이였다. 그리고 그녀가 답장해주었다.


그녀:  “내가 듣고싶었던 말이야. 이제 하트 날릴 수 있는거지? 책임져 남친 있다고 답장했으니..”


나:  “<3 .. .:)”


참으로 소심하고 멍청한 나의 표현이였다. 무지 좋아하고 있었다고, 왜 진심을 당당히 이야기 하지 못했을까 라며 속으로 채찍질을 해댔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장거리 커플이 되어있었고, 힘들지만서도 참 많이 행복했던 6개월이 지났다.

 

하루하루 그녀와 연인으로써 나누던 하루 두 통의 전화통화와 간간히 나누던 화상통화의 산소같았던 일상을 넘어, 그녀가 오프라인으로 바다건너 내게 잠시 찾아와주었다. 공항에서 마주친활짝 웃는 그녀의 모습은, 그동안 카톡의 대화 이모티콘 혹은 노트북 화상 모니터를 넘어서 상상도나 신화에서나보았을 해태 혹은 유니콘을 직접 쓰다듬었을때의 기분이랄까. 세상은 우리를 위해 멈추었던것 처럼 오직그녀만 바라볼수 있게되어 행복했다. 그동안 그녀생각만을 하며 혼자 터벅터벅 걸어가던 거리는 그녀와 꼭잡은 손으로 함께 거닐며 밀렸던 이야기를 나누는 추억의 장소로 새롭게 탈바꿈 하였고, 어떻게 혼자서시간을 때울지 고민하며 돌아가는 퇴근길은 얼른 그녀를 빨리 만나러 달려가야 하는 너무나 길어보이는 여정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시간은 나를 속이고 몰래 전광석화처럼 지나가 어느순간 내가 정신을 차렸을땐 나는 그녀를 바래다주는 공항길안의 택시 안이였다. 야속하게 첫 만남의 행복함과 황홀함을 뒤로하고 우린 3개월 후 다시만날 약속을 뒤로 한 체, 난 그녀를 공항에 바래다 주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새벽의 풍경을 보며 오랬동안 눈물을 훔쳤다. 서로 쓰다듬고 끌어안았을때의 따듯함이 잠시 전해지지 못해서, 그리고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떨어져 몇달을 보내야 하니까. 그리고 같이 보내며 머릿속에 퍼지던 마약과 같은 환각에 너무나 갑자기 각성이 되어 버렸으니.

 

하루하루 놓히고 싶지 않은 전화통화를 위해 시간차를 맞추기 위하여 새벽까지 잠을 설치고, 그녀가 힘들땐 나도 같이 몰래 힘들고 아프고. 거리가 무색하게 느껴질정도로 같은 느낌과 같은 생각과 같은 공감대를 넒혀갔기 때문에 태평양거리마져도 사랑이 통할 수 있었던 것 같다.같은 꿈을 가지고 같은 삶의 스타일을 지향하고, 서로에 같은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있었기에 힘든 제약들을 견뎌냈다. 참 담백하고 소소하고 재미없는 사연이지만, 우리에겐 서로 큰 이벤트였다.


나는 다시 곧 만나서, 제약들을 넘어서, 정말 내가 원하는 사람과 이젠 떨어져 있지 않을 거라는, 새로운 희망으로 지난 7개월간의 어려웠던 길을 잘 해쳐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꼭 필요할때 어깨를 내어 줄 수 없고, 아무런 말 없이 안아줘야 할 때 멀리에서 발만 동동 굴리게 되어 아쉬운때도 많지만, 하루를 바로 옆에서 보내듯 메세지와 통화를 하다보면, 거리는 참 무색해지게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평소에 목숨걸었을만한 사소한 것들의 부질없음을 깨닳게 해주었고, 사랑을 주고 그리고 사랑을 받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확실히 짧은 단어지만, 그 힘은 너무나 크다, 그리고 강하다.

 

아 맞다, 그녀를 만나기 전 내가 집착해오던 그 도시. 그녀와 같이 만나서 가기로 했다. 이젠, 나만의 꿈이 아닌 우리의 꿈이다.


이상 여기는 서울에서 10590.33km 떨어진 도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