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톨머리 너에게 쓰는 편지.

nayahaha201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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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처음 봤던 OT때가 생각난다.

 

우린 다들 너무 어색해서 멀찍히들 떨어져 앉아있었지.

 

그날 소주를 두병은 마신 것 같은데도

 

긴장했던 나는 취하지도 않았었어.

 


 

니가 나에게 반한 건 이튿 날 아침이었지.

 

햇빛이 비추는 내 얼굴 뒤로 후광이 보였다고 그래서 첫눈에 반했다고.

 

그 말은 아마 평생 기억할거야.

 

당사자가 나인데도 그 얘길 들을 때 난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았거든.

 

그 말 처음 너에게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웃었었는지.

 


 

같은 오티조에서 두명의 조원이 날 좋아한단 걸 알았을때

 

나는 기숙사 방에서 머리를 쥐어뜯곤 했어.

 

내 룸메는 드라마가 따로 없다고 옆에서 웃고 있었고 말이지.

 


 

처음에 난 둘 다 거절이었고.

 


 

그리고 MT, 너의 의도와 네 주위 친구들의 의도로

 

우린 담력훈련 짝이 됐었고 난 무척 용감한 척 했었지.

 

끝내는 한번 망신당했지만 말이야.

 

그때 내가 소리 한 번 지른 걸 웃으며 동기들한테 말한 건 좀 얄미웠어.

 


 

나는 니가 날 좋아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널 외면했고

 

그러다 내 생일이 왔어.

 

학교안의 작은 공연장같던 그 곳에 예쁘게 놓여져있던 촛불길,

 

그리고 하트모양의 종착지엔 꽃다발을 든 너.

 

니 전재산 5만원을 털어 했던 너의 이벤트.

 

미리 눈치채는 바람에 감동의 눈물 보여주지 못했지.

 


 

그래도 난 그날 니 마지막 고백에 답례로 Yes를 줬어.

 

사실 그때만 해도 니가 좋았던 건 아냐.

 

'그냥 한번 만나보지 뭐.' 이정도 생각이었어.

 


 

 

 

너. 그거 알아?

 

나 사람이다~ 그것도 아주 평범한 사람이야~

 

근데 떠올려보면 너한테 그때의 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아.

 

이슬만 먹을 것 같았나 내가.

 


 

학교 앞 김밥이 커다랗지만 맛있었던 곳.

 

넌 내가 그 김밥을 먹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며 그 곳엔 가지 않았었잖아.

 

사실 난 입 안 가득 음식이 차는 걸 좋아하지 않기는 해.

 


 

무거운 가방을 들어서 멍이 든 내 팔뚝을 신기해하며

 

주변 동기들에게 자랑하듯 보여주던 너.

 

몸뚱아리가 약한 건 자랑이 아닌데,

 

그게 너에겐 연약함의 상징이라도 되는 거였나봐. 

 


 

그리고 니가 제일 친한 친구한테 날 소개시켜주기로 했을 때 말이야.

 

사실 난 좀 널 팰 뻔했어.

 

내가 실제로 널 팼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여자친구를 자랑하고 싶었던 니 마음은 이해를 하겠지만

 

김태희보다 예쁘다고 말을 하면

 

니 친구가 실제로 보고 실망을 얼마나 할거며 얼마나 화가 나겠니. - _ -

 


 

아마, 그때 우리가 너무 어렸었기에

 

그러니까 넌 나에 대한 환상에 가득 차 있었겠지만

 

난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람"이란다!

 

 

 

예쁜 기억, 고마운 기억, 미안한 기억이 꽤나 많아.

 


 

운동장 계단에 둘이 앉아 있을 때

 

넌 내가 자일리톨을 씹고 싶다고 하자

 

운동장 건너편에 있는 매점을 뛰어 갔다 왔었지.

 


 

카페에 앉아있다가 레몬맛 사탕이 먹고 싶다는 내 말에

 

편의점 세군데를 뒤져서 사다줬던 너.

 

놀라울 만큼 얼굴이 얇았던 너는

 

사탕이 없던 처음 두 곳의 편의점에서 드링크제를 사마시고 와서는

 

내게 레몬맛사탕을 건네주고 물배에 힘겨워했지.

 

그 모습이 바보스러우면서도 참 기분이 좋았어.

 


 

난 내 가방은 내가 들자는 주의인데도

 

넌 만나기만 하면 내 가방을 뺏어갔었어.

 


 

축제날 쌀쌀하던 때에 날 덮어주겠다며 기숙사에서 가져 온 핑크색 가디건.

 

아무날도 아닌데도 날 맞아주던 장미꽃 한송이.

 

기숙사 앞 50m까지 사다줬던 죽.

 

(참치죽을 사달라고 해서 미안해.

 

기어이 다른 죽을 사온 니가 이상했는데

 

너와 사귀기 전, 다른 아이가 참치죽 사다줬던 걸 니가 알고있는지는 몰랐어.

 

기분 안 좋았을텐데 티도 안내고!)

 

 

난 자주 장난이 지나쳤었지.

 

봄날의 캠퍼스에서 니 머리에 커다란 꽃을 꽂아놓고는 못빼게 하고

 

니가 가르쳐 준 때리는 법을 사람 많은 거리에서 네게 하기도 하고

 

풍선을 무서워하는 니 옆에서 풍선으로 장난을 치기도 하고

 

가만보면 난 좀 사악한가봐.

 

 

 

내 얼굴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던 넌 한참을 내 손도 잡지 못했었지.

 

네 손 먼저 잡은 거 나였잖아.

 

근데 손 잡고 걷게 된지 좀 지나서 니가 진지하게 했던 말 기억해? 

 

다리에 손이 자꾸 닿는다고

 

그래서 내가 오해할까봐 자꾸 신경이 쓰인다고.

 

손을 잡고도 그 손 내 몸에 닿지 않게 하려고 애쓰던 너

 

귀여워서 웃음만 나왔었어.

 


 

나랑 사귀기 전에 자른 머리.

 

밤톨같이 되버려서 술에 취해서 그랬다며,

 

나 만나야 하는데 머리가 그렇게 됐다고 어떡하냐고

 

아 내 머리! 아 내 머리!

 

니가 울부짖었다고 그 술자리 있던 애한테 전해들었어.

 

그랬을 니 모습 상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

 

근데 그 밤톨 머리 귀여웠어~ 

 

 

 

난 너에게 고마웠던 게 참 많지만,

 

그 중 가장 고마운 건 예쁜 첫키스의 기억인 것 같아.

 


 

자주 가던 카페 겸 밥집 기억하지?

 

거기 주인 이모가 나보고 문어다리해도 되겠다고 해서

 

니가 기분나빠했었잖아.

 

그래도 저녁 무렵 카페 2층에 우리 둘만 남았을 때 촛불을 제외한 조명은 끄고

 

예쁜 분위기를 만들어주셨던게 그 이모니까 미워하지마~

 


 

그 때 그 첫키스의 순간

 

모든게 아름다웠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떨림이야.

 

어찌나 덜덜 떨던지 내 볼에서 입술까지 그 떨림이 선명히 전해지는데

 

나 웃을 뻔 했잖아.

 


 

그렇게나 떨리는 마음으로 나를 사랑해줬다는게, 예뻐도 너무 예쁜 기억이라

 

너의 그 때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워.

 


 

항상 손이 찬 나는 따듯한 니 손이 참 좋았어.

 

사실 내 손이 따듯했다면 난 손이 차가운 사람은 별로 였을 것 같은데

 

흔치 않게 내 손이 따듯했던 어느 날 니가 말했지.

 

내 손이 따듯해서 실망했다고.

 

내 차가운 손을 녹여주는게 너무 좋은데 오늘은 손이 따듯하다고.

 

그 말이 얼마나 내 마음을 따듯하게 했는지 넌 알까? 

 

 

 

 

넌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을 때 절대 잡지 않는 타입이라고 했지.

 

사실 그래도 난 그렇게나 날 좋아하는 니가 그럴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형편이 어려웠던 너였기에 데이트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했던 나는

 

니가 알바라도 하길 바랬는데 넌 그런 것에 대해 너무 몰랐고

 

또 부모님의 반대를 이유로 들었었지.

 

그게 사실이었던 거 알아.

 

니가 나한테 뭔가를 아까워하거나 계산하기에는 넌 날 너무 좋아했잖아.

 


 

근데 그때는 이것 저것 조금씩 다 답답했었어.

 


 

넌 나에게 큰소리 한 번 내는 일이 없었어.

 

우리가 기분이 안 좋을 땐 넌 풀이 죽어 있었고 난 짜증을 냈고

 

그게 다였어.

 


 

마지막으로 싸웠던 건 내가 집에 걸어오는 길에

 

아는 남자 선배랑 마주쳐서 같이 걸어왔던 일 때문이었지.

 

넌 질투에 속상했던건데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고

 

매번 풀죽어 있을 뿐 제대로 말을 하지 않는 너에게

 

너무 답답했던 나는 이렇게 답답할 바엔 그만두겠다는 생각에

 

너무 쉽게 헤어지자고 말했고 진심이라고 문자까지 보냈어.

 

사실 그때까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몇 시간 뒤 니가 인터넷에 내 흔적을 모조리 지운 걸 보니

 

그제서야 실감이 나더라.  

 

 

 

한번도 이별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던 난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몰랐어.

 

마음이 아파 널 다시 잡으려 했을때

 

난 아무 것도 되돌릴 수 없었어.

 


 

그리고 니가 군대에 간다는 얘길 들었지.

 

동기로부터 전해들은 말에서

 

어렴풋이 군대갔다와서 다시 날 찾겠다는 니 생각을 알았을 땐

 

사실 난 널 비웃었어.

 

그땐 무척이나 너에게 화가 나 있었거든.

 

먼저 헤어지자고 한 건 나였는데도 그냥 그때는 그렇게 화가 났었어.  

 

 

 

우리가 만날 때

 

내가 적어도 열 명의 남자는 만나보고 결혼을 해야한다는 말을 했을 때

 

넌 너 군대 가 있는 동안 그 열명 만나고 다시 널 만나면 안되겠냐고 했었는데

 

어쩌면 너 그 말 진심이었나봐.

 

 

 


 

사실 너와 헤어지고 나 한동안은 널 많이 미워했고

 

또 한동안은 널 잊고 싶어했고.

 

그리고 한참동안 너를 까맣게 잊었어.

 

 

 

그런데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때의 너,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지.

 


 

솔직히 나 널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아.

 

이제는 예전처럼 그렇게 순수하게 아무런 계산없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만나는 거 못하게 됐거든.


 

흘러버린 시간이 내가 겪어온 날들이

 

나를 성숙하게도 했지만

 

나를 계산적인 겁쟁이로 만들기도 했거든.

 

 

 

 

그렇지만 너에게 꼭 말하고 싶었어.

 

니가 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고 마 워.

 

그 짧은 만남 동안에 이렇게나 예쁜 기억을 선물해 준 네게 정말 고마워.

 

널 기억하며 웃을 수 있으니 정말 정말 고마워.

 

 

 


부디 이 거친 세상에 넘어지는 일 없길

 

구혜선 닮은 예쁜 여자친구도 만나길

 

네 앞길에 햇살만 가득하길 바랄께.

 


 

나의 첫 남자친구야.

 

고마웠어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