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말. 클로버. - 2편

By라떼201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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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시간과 비례하게 몸은 점점 더 녹초가 되었다.

수고했다는 사장님의 말을 뒤로 한 채 급하게 나오면서 목도리를 둘렀다. PC방 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런지 목도리에 희미하게 스며든 담배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미간이 찌푸려졌다. 카운터는 분명 금연석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베어버린 담배 냄새를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나는 집에 가려면 적어도 15분을 걸어야 했다.

오늘 저녁부터 눈이 온다고 했는데 우산도 없는 내게 하늘이 눈치 없이 눈을 퍼부어 대지 않길 바랐다.

발걸음을 재촉해 밖으로 나와 보니 역시나 나의 느낌은 정말 딱 들어맞았다.

이 추위에 펑펑 내리는 눈을 보니 기분이 좋다기 보단 착잡했다.

주머니에 쑤셔 박아둔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딱히 들을게 없었던 나는 눈 내리는 겨울날 춥지 않게 따뜻한 발라드를 선곡했다. 그리고 귓가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려 할 때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바스락’

깜짝 놀라 빠르게 등을 돌렸다.

 

“놀랐어요?”

 

나보다 더 놀랐다는 듯 한 표정으로 준호가 서있었다.

그의 양볼은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눈송이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 저 세상 밖에서 한바탕 씨름을 하고 왔다는 걸 증명하듯 그는 흰 눈과 완벽하게 동화되어 있었다.

신이 난 듯한 얼굴로 준호가 내게 말했다.

 

“누나. 함박눈 오는데 나랑 놀아줘요.”

 

나는 오른손에 들려있던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려 했지만 준호가 재빠르게 핸드폰을 낚아채며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지금 몇 시인지 보면, 늦었다며 집에 갈 테니 잠깐 압수~!”

 

어린아이처럼 달려 나가던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방금 전까지 시간과 비례하게 피곤함을 느꼈던 내 몸은 그가 가져간 내 시간처럼 정지된 듯 했고 새로운 몸을 받아 태어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순수하게 흰 눈을 보고 돌진하는 모습에 마음이 간지러웠다. 잠시나마 힘들던 일상을 던져버리고 그와 함께 함박눈이 내리는 하늘에 얼굴을 묻고 겨울을 맞이하고 싶었다.

 

어느새 복잡한 생각을 하던 나는 과거가 되었고, 지금 나는 준호와 함께 눈이 쌓인 거리를 함께 걸었다. 그는 내 앞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명쾌하게 들려오는 뽀드득 소리가 즐거운지 눈을 밟고 또 밟았다.

그리곤 언제부터 잡았는지 모르는 우리의 손을 신나게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처럼 잡은 손이 편하고 따뜻했다. 이제야 만난 것만 같은 체온에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종점 없이 거닐던 우리의 발자국이 무수히 많이 찍혀 갈 때쯤 준호가 말도 없이 발걸음을 멈췄다. 준호는 갑자기 뭔가 생각난 얼굴로 잡고 있던 내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장갑을 끼고 있음에도 스며드는 추위를 막으려는 듯 한 꽉 쥔 주먹이 그의 손가락 움직임을 따라 천천히 펴졌다. 내 손바닥을 말없이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 끝에 뭔가 알수 없는 진심이 전해졌다.

 

“이게 뭐야?”

 

나는 앉아 있는 준호 옆에 궁금한 얼굴로 나란히 앉았다. 분명 차갑고 시려야 할 엉덩이가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클로버.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하트가 아니라 클로버로 표현하고 싶었어. 사랑은 곧 하트지만 하트보다 더 누난 내게 특별한 사람이니까 클로버야. 내 마음속에 클로버는 누나로만 기억 될 거야.”

 

그의 진심어린 마음이 들려왔다.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 같은 눈동자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한 치의 망설임 또한 없었다. 좋아한다는 말을 아무런 밀당 없이 돌직구로 내게 날렸고, 그를 보는 내내 떨리던 심장이 점점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가 내 손바닥에 새긴 클로버 모양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가 누구든, 어떤 사람이든, 그 끝이 동화 속에 나오는 슬픈 엔딩이라 할지라도 그가 내민 손을 맞잡을 것을 나는 알아버렸다.

 

좀처럼 시간을 알수 없는 시린 새벽하늘이 다가왔고 쌓여만 가는 우리의 하얀 겨울눈이 세상을 덮어가고 있었다. 그가 내게 준 순수한 마음이 내 손바닥을 간질이는 눈과도 같았다. 하얗고 맑고 순수하고 명랑하며 티끌 한 점 없는 그런 마음을 나는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