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엄마의 배에 머리를 대고 태동을 느꼈던 것이 훗날 웬수이자 때론 친구같고 때로는 자식같은 존재가 될 내 동생에 대한 첫 기억이다.어느날 자다가 일어나니 집에는 나홀로 덩그러니 있었고 얼마 뒤 고모가 " 너 동생 태어났다."며 내가 좋아하는 번데기를 들고 오셨다.멍한 머리로 신나게 번데기를 집어먹던 다음의 기억은 순식간에 초등학교 1학년때로 워프한다.기저귀를 갈아주던 기억, 아기 변기 치우던 기억 등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동생의 더티한 것들 뒷처리를 했던 것 위주다.그래도 그 때는 그토록 원하던 동생이 생겨서 참 좋았던 시기였다.동생과의 전투는 초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시작됐다.동생은 6살이나 어린 주제에 독하기는 나보다 더했다.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아기때는 정말 착하고 순했다는데 내 머리 속에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동생이 앞니로 내 옆구리를 깨물어 유혈사태를 일으킨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난폭한 햄스터같은 지지배.동생의 첫 걸음마는 내가 떼주었는데 그 감동적인 순간 이후 동생은 햄스터에서 원숭이로 진화하게 되었다.벽장, 책장을 타고 다니며 내가 책꽂이 맨 위에 숨겨두었던 나만의 보물들(구슬동자, 딱지, 사탕, 초콜릿 등)을 내가 학교에 간 사이 몰래 탐닉하기 시작했다. (멍청하게도 나는 없어지는 걸 모르고 계속 보물 상자를 채워두는 걸 초등학교 5학년때까지 했다.)내 등만 보이면 어디선가 다다다 달려와 엎히고 비행기 태우기에 말타기 놀이 등 동생의 걸음마를 기점으로 육체노동이 시작되었다.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시기 때문에 동생 유치원 시절 학예회에도 엄마대신 내가 참가했고,운동회 부모님 달리기때도 내가 대신 달렸다.꼴랑 라면만 끓일 줄 알던 초딩시절을 거쳐 중학생 때 배고픈 초딩 동생을 굶길 수 없다는 일념하에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다.첫 요리는 볶음밥. 기름을 많이 넣어 실패.두번째는 칼국수. 그냥저냥 계란 들어간 멸치국수.세번째는 스크램블 에그. 대 호평.동생을 마루타 삼아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대학 시절 자취 4년의 경력이 쌓인 결과 이제는 감자탕, 간장게장, 해물탕, 갈비찜, 백숙, 떠먹는 피자, 파스타 등 웬만한 건 거의 만들 수 있게 되었다.지금은 고등학생이라고 머리 좀 컸다고 바락바락 대들긴 하지만 갈고 닦은 요리실력 덕분에 가끔 음식을 미끼로 동생 서비스센터 하루 이용권을 얻을 수 있다.고등학생이 된 동생은 이제 우리 집에서 서열 2위가 되었다. (1위 엄마, 2위 동생, 3위 아빠, 4위 나)수능만 끝나봐라 하면서 이를 갈고 있지만 아직도 2년 남았다...가끔 자기 바쁘다고 성질부릴 때, 힘들다고 심통부릴 때는 정말 웬수같지만 그래도 나름 잘 챙겨주고 가끔 애교도 부리고 좀 재밌거나 즐거운 일이 있으면 서로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 수 있는 동생이 있어 올해도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이 헬로 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