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같은 장관마인드의 소유자 이석채 회장의 말말말

정오의메밀2013.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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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 피라 그라 비아 전시장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2013 기조연설 현장. “입술이 부르텄다. 영어를 한국말처럼 하면 좋겠다.” 이석채 KT 회장(67)이 잠깐 긴장했어요.

이석채 KT 회장은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의 4명 기조연설자 중 3번째 발표를 맡았는데요. 

이석채 KT 회장이 기조연설에서 선택한 첫 단어는 ‘에어리언’.

“제 스타일이 아마 다른 통신사 CEO와는 다를 것입니다. 제 주장이 외계인이 하는 말처럼 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4년 동안 KT는 네트워크에 4조원을 투자했지만, 수익을 늘지 않았습니다. 이대로는 통신사들은 망합니다. 그런데 전 세계에 1000조원에 달하는 가상재화(Virtual Goods) 시장이 열리고 있어요. 통신사들은 합작법인을 만들어서라도 이 시장에 진입해야 합니다.”

 가상재화라. 청중은 독특한 용어 때문인지 이 회장의 기조연설에 별다른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어요. 르네 오버만 도이치텔레콤 CEO, 한스 베스트버그 에릭슨 CEO, 탈몬 바이버미디어 CEO 등 다른 기조연설자들은 ‘카카오톡’같은 서비스에 과금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한판 격론을 벌였답니다. 통신망을 이용하지만 돈 한 푼 내지 않는 서비스들이 창궐하는 것은 전 세계 통신업체의 현안이기 때문이죠.

 

일단 기조연설장에선 이석채 KT 회장이 가상재화를 이슈로 만드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석채 KT 회장 회장은 다른 통신사 사장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 거침없는 구조조정 후 내놓은 ‘가상재화론’

 기조연설 전날. 25일 오후 7시 바르셀로나 외곽의 한 한식당. 저녁 식사를 겸한 한국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도 KT 이석채회장은 2시간 30분 넘게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얘기했어요. 잠깐 인사말만 하겠다고 단상에 올라가서는 40여분(이미 김치찌개는 끓고 있었다), 와인 대신 소주를 달라고 주문한 식사 자리에서 2시간가량 숨 가쁘게 현안을 훑었어요. KT 혁신과 구글 안드로이드의 독점 가능성까지. 역시 핵심은 가상재화.

이뿐이 아니었어요. MWC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난 8일. 이번엔 KT 3만6000명 전 직원에게 MWC를 둘러본 소회와 자신의 생각을 이메일을 보냈어요. 결론은 같았죠. “KT가 글로벌 가상재화 유통 그룹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힘을 모아주십시오.”

 사실 KT 이석채회장이 4년 전 KT에 왔을 때 벤치마킹 모델은 ‘IT 서비스’와 ‘스마트 워킹(smart working)’을 내세운 영국의 통신회사 BT였어요. 실제로 회장은 BT 출신 사람을 대거 영입했고(김일영 사장, 김홍진 사장 등) 이 사람들은 KT 내부출신 간부보다 더 잘 나가고 있답니다.


◆ 장관 마인드와 ‘잃어버린 10년’ 

KT 이석채회장 KT 사장으로 취임한 것은 2009년 1월 14일. 지난 4년은 숨 가쁜 구조조정의 연속 과정이었어요. 삼성전자와 맞짱 뜨면서 ‘아이폰’을 국내에 도입하고(2009년), KTF와 KT를 합병시켰고(2010년), 검사 출신인 정성복 부회장을 영입해 사실상 일부 직원을 정리하는 ‘윤리 경영’을 가동했습니다.

 아프리카 통신업체 인수를 추진하는 등 글로벌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고 전화국 등 부동산을 매각한 대신 금호렌터카와 BC카드 등 적지 않은 회사를 인수했습니다. KT와 KTF 통합 전산 시스템을 클라우드 기반으로 통째로 바꾸는 수천 억원이 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랍니다. 그 사이에 명예퇴직자로 직원 5000여명이 회사 밖을 나갔어요. 고강도 구조조정 속에서 이뤄진 임원 연봉 인상과 낙하산 인사에 대한 내부 직원들의 불만도 적지 않았죠.

“난 KT에 와서 국가정책, 기업 전략 따로 하는 것 아니다. 기업활동이 곧 국가정책과 함께 하도록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장관마인드는 ‘주인 마인드’라는 점. 1992년 그가 경제기획원 예산실장이던 시절, 예산 편성을 놓고 정치권과 계속 부딪혔어요. 꼭 필요한 사업이 아니면 예산을 주지 않았죠. ‘대통령과 정보통신부(이현덕 지음)’에 따르면, 그의 추진력을 아끼던 선배가 충고했습니다.

“당신은 공무원 자격이 없다. 공무원은 주어진 일만 충실히 하면 된다. 당신은 그게 아니다. 마치 나라 주인처럼 행동한다. 그렇게 하려면 공무원을 그만두고 정치를 해라.”

KT 이석채회장은 1997년 미국으로 간 시점부터 2009년 KT 사령탑이 될 때까지 “12년을 허송세월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한창때 잃어버린 10년이 ‘한(恨)’이 됐다면 지금 그의 행보와 목표에 그 한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그 세월이 이 회장에게 타협과 순응을 가르치지는 않은 것 같다는 것은 주위 평가.

그렇다면, 다시 장관을 꿈꾸고 있을까. KT 이석채회장은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하마평(박근혜 정부에선 기자들 하마평이 맞지 않지만)에 오르내리고 있어요. 그는 공개 석상에서 정색을 하며 “관심이 없다. KT 거버넌스(지배구조)를 바꾸는 데 힘쓰겠다. 주인 없는 회사의 거버넌스를 바로 세우는 게 더 보람된 일 아니겠느냐”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