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 어려운 사실(3)

종달2008.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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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부모를 경멸했다.

형제들(형2, 여동생1, 남동생2)에게 별로 애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내게는 평생 단 한 명의 친구도 없었다.

 

나는 30여년 동안 나를 괴롭혔던 마누라를 무척 싫어한다. 그녀의 히스테리는 광적이다. 내가 퇴근하면 곧바로 귀가해야하고 외출은 금지다. 퇴근길에 동네 복덕방에서 친구들과 바둑을 두다 들킨 적이 있었다. 마누라는 눈을 까뒤집고 창백해진 얼굴로 발광을 했다. "이 강아지들 도끼로 해골을 깨버리겠다."

 

그녀는 나 모르게 1억 5천만원을 날렸다.  주식으로 1억을 날렸고, 이자를 후하게 준다는 말에남대문 사채업자에게 5천만원을 빌려주고 결국 떼였다. "왜 나와 사전에 상의하지  않았는가?"라고 물으니, "그랬다면 당신이 허락했겠어?"가 대답이었다. "왜 일이 터졌을 때 내게 말하지 않았는가? 그러면 문제해결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나 혼자 고민하면 되지 당신까지 괴롭게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2년 동안 가출한 후에도 매달 생활비를 보냈다.

 

나는 내 두 아들을 무척 싫어한다. 나는 그들에게 입고 먹는 것은 물론 장난감까지 무조건 최고로 비싸고 좋은 것만 사주었다. 용돈도 넉넉하게 주었다. 피아노로 새로운 찬송가를 칠 때마다 1천원(당시 최고액권)씩 주었다.

 

큰아들은 서울공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후 12년간 변리사 시험공부를 하다 포기했다. 나는 그가 33세가 될 때까지 생활비를 보냈다.

 

작은아들은 동국대 건축과를 졸업한 후 ROTC 장교로 제대했다. 그는 약 4년 동안 실업자 생활을 했다. 나는 그가 30세가 될때까지 생활비를 보냈다. 그는 해마다 9급 공무원 시험에 떨어졌다

 

그러다 내나 뒤늦게 국가유공자가 되었다. 10% 가산점 혜택을 받은 큰아들은 7급 공무원, 작은아들은 9급 공무원이 되었다. 그러자 마누라는 내게 합의이혼을 요구했고 나는 선뜻 응했다.

 

작은아들은 완전히 미친 상태에서  커다란 의자를 들어 나를 치려했다. 내가 그의 어머니를 학대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술김에 큰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그 대답은,"야, 너도 이제 늙으니까 외롭니? 과자 한봉지 사들고 찾아갈까?"

 

이제 그들과 완전히 소식이 두절된지 5년이 넘었다(내 전화번부에 그들의 번호들을 삭제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은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그들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잊기로 했다. 그들은 사회생활이 무척 힘들거라는 불쌍한 생각도 든다.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그들이 선택한 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내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외로움을 거의 느껴본 적이 없다. 내 인생이 초라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나는 인생을 다시 살아보고 싶지 않다. 나는 타고난 패배자가 아니라 승리자라고 믿는다. I am not a born loser. I am a winner. 나는 지금 현재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중 한 명이라 믿는다. I am one of the happiest men in the whole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