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 어려운 사실(4)

종달2008.08.19
조회751

나는 지금 내 얼굴에 침을 뱉는. 아니 팬티에 오줌을 싸는 만큼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련다

 

나는 10세(당신 국민학교 3학년)부터 길거리에서 신문팔이를 했다. 번돈은 모두 어머니에게 바쳤다. 나는 1류 중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당신 국민학생들을 모아 과외공부를 시켰다 번돈은 모두 어머니에게 바쳤다. 나는 서울사대 영어과에 대녔기 때문에 가정교사하기가 쉬웠다. 한달 보수는 2만원 정도였는데 당시 9급 공무원 봉급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었다. 그리고 당시 나의 등록금은 한 학기에 1만원이 되지 않았다.

 

1960대 중반에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셨다. 그리고 얼마후 나는 대학 2년을 마치고 군에 징집되었다. 당신 큰형은 장가가서 종적을 감추었다. 나보다 4세 만은 작은형은 부두에서 통나무 나르기를 반나절하고 돌아와 닷새 동안 앓았다. 어머니가 모아두었던 돈은 다섯 식구를 오래 동안 먹여살릴 수 없었다. 가족들은 불안에 떨었다.

 

나는 월남전에 지원했고 백마부대 사령부 닌호아에 근무했다. 매달 전투수당이 집으로 보내졌다. 어느 날 매복근무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웅덩이물로 세수를 했다. 그리고 내 왼쪽눈은 사정없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의무중대에서는 속수무책 점점 악화되었다. 십자성부대 병원으로 보내졌지만 별무신통이었다. 결국 대구 3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왼쪽 눈 각막이 심하게 혼탁되었다. 결국나는 상이 3급 판정을 받고 제대했다. 그때 받은 보상금은 42만원짜리 만기 적금통장이었다.

 

이런 모든 사실에 대해 형은 철저하게 부인한다, "넌 미친 놈이다. 월남전에 참전했다고 전투수당을 받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군인이 전투에 참가하여 재수없이 부상당했다고 그것을 보상해주는 나라는 이 세상에 없다."

 

내게 대통령이 보낸 국가유공자증을 보여주면 형은 외면을 하며 "저리 취워! 난 그런 거 질색이야!"라고 소리를 지른다. "보훈처에 전화 한통만 해보면 내가 상이군인으로 42만원의 보상금을 받은 기록을 알 수 있다."라고 하면 형은 "내가 미쳤냐? 왜 그런 쓸데없는 전화를 하냐?"라고 대답한다.

 

40년전인 당시 42만원은 지금 4200만원 정도이다.(학교교사 월급이 4만원 정도였다). 가난에 찌들렸던 때에 어머니는 일시불로 찾아오라고 했다. 나는 형과 큰 보자기를 들고 은행에 갔다. 당시 최고액권 100원짜리로 100매 묶어 42뭉치였다. 보자기만으로 부족했다. 형과 내 모든 주머니에 쑤셔넣어야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단돈 10원짜리 지폐 한장 주지 않았다.

 

이 사실에 대한 형은 무척 화를 내고 있다. "나는 절대로 너와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온 적이 없다. 또다시 그런 소리를 입밖에 내면 나도 가만있지 않겠다. "

 

"나는 너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네가 월남에 가지 않았더라도 우리 가족들은 굶어죽지 않았을 것이다. 너는 대한민국 모든 남성이 하는 병역의 의무를 했을 뿐이다. 월남에 파병된 것도 한쪽 눈으로 40년을 살게 된 것도 다 네 운명이고 팔짜일뿐이다. 내게는 잘못이 없으니 나를 원망하지 말라."

 

나는 처음에 대꾸했다,"당시 형은 가장으로서 다섯 식구들 벌어먹이지 못했고 불안에 떨고 있었다. 나는 서울대 영어과 휴학생으로 월남전에 징집된 것이 아니라 지원했다."

형:"미친 놈!"

 

형은 대단한 또라이다. 거의 모든 재산 약 4억 5천을 마누라와 두 딸에게 홀랑 다 빼았겼다. 큰 딸은 부부 치과의사이고 작은딸은 유학을 다녀온 대학강사이다. 형은 겨우 5천만원 정도를 챙기고 고향인 인천으로 왔다.  다행히 형은 산재보험금을 매달 80여만 받는다.

 

서울에서 인천에 온 형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중국에 가서 17세 년하의 한족 여자와 결혼한 것이다. 형은 성금하게 여자 호적을 옮기고 결혼신고를 했다. 중국인 형수는 우울증이 심해서 돈을 벌지 못하고있다. 그녀는 형이 먼저 죽을 것이고 그러면 집을 차지하고 연금 수십만원을 죽을 때까지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형은 쉽게 그녀와 이혼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다음에 형은 어떤 다단계 건강기능식품회사에 빠졌다. 그곳에 가면 음양맥락결풀이라고 남녀가 서로 안마를 해준다. 그리고 무료 점심식사를 제공받는다. 그리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강의를 받는다. "사상의학" "나노 기술과 염색체 게놈의 활용" 등등. 형은 그들을 "인류 건강의 전령사들"이라고 격찬하고 맹종한다. 딸기밭에 뿌리는 유기비료 목탄액을 절묘하게 포장하여 50만원에 판다.(원가는 5천원 정도). 지금까지 형이 그들에게 구입한 건강기능식품은 수백만원에 이른다. 언젠가 우리 집에 놀러왔다가 마침 PD수첩이라는 프로에서 시골노인들이 건강기능식품 회사들로보터 교묘한 수법으로 사기를 당하고 있다는 장면을 본 형은 벌떡 일어나서 "TV 꺼! 나 간다."하며 가버렸다. 형은 아직도 매일 그 회사 사무실에 나가고 있다. 거기 아니면 갈곳이 없기 때문이다.

 

형은 신문을 두 가지 구독한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내가 지식인이라는 인상을 동네 사람들에게 심어주려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형은 자기보다 년상의 여자를 4번 만나고 그녀에게 200만원을 빌려주었다. 그녀는 한번 연애을 해주고 돈을 갚지 않은 채 다른 남자에게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