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잠이들었는지 익숙한 진동소리에 눈을떠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새 날이밝아 있었고 난 학교에 가기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집에들어온후로 내 머리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았고 그렇게 여러가지를 생각하다가 그만 잠이들었었나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려 12시간 이상 잔셈이다.. 요 몇일간 여러가지 일이있었기에 심신이 지친 탓인듯 했다. 더불어 내가 잠든 동안에도 나이트메어에 의해서 몸은 깨어있으니 실상은 잠을자도 잔게 아닌셈이지.. 나이트메어의 말로 미루어볼때 내가 꿈이라고 생각하는 그 악몽은 현실. 즉, 내가 잠든상황에 내몸은 그곳에 있었다는건데.. 그것뿐 다른 어떠한 특이점도 찾을수 없었던 나는 맥이 빠지는걸 느꼈다. 난 씻지도않고 대충 우유한컵으로 아침을 때운뒤 교복을 챙겨 입고 학교갈 준비를 마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언가 확실한 단서는 찾을수 없었기에 일단은 평상시처럼 생활하며 내가모르는 잠든후의 기억을 필사적으로 찾아낼 요량이었다. 생각을 마치고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여느때와 같이 학교로 향하는 길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어느덧 교문을 지나 3학년 7반에 뒷문을 열었고 반 아이들의 분위기는 사뭇 진지했다. 거들먹 거리던 강준석의 눈빛마저 일말의 흔들림이 있는걸로 봐선 무슨일이 있는게 자명했다. 가방을 아무렇게나 팽기치며 내려놓던 나는 창가쪽 빈자리 위에 있는 국화꽃을 발견하였고 그게 뭘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자리가 누구자린지 아는데까지 그리 오랜시간은 걸리지않았다. 하긴 형사의 말에따르면 어제 새벽에 발견했다고하니 어쩌면 당연한일인지도 몰랐다. 책상위에 수북히 쌓여있는 국화꽃을 보고있자니 나도모르게 아련한 마음에 어느샌가 볼을 타고 한줄기 투명한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정말 인정할수 없었고 형사의 이야길 들은후에도 나이트메어의 이야길 듣고 생각에 잠겼을때에도 어딘가 지민이 살아있을거란 작은 희망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순간 내 몸을 조여오는 진실앞에 더이상 부정할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리자 감정이복받쳐 오르는것이리라. 잠시후 교실 앞문이 열리며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고 담인선생님의 입에서 나온말은 이미 내가 예상한대로였다.
"오늘은 너무 안타까운 소식이 있다.. 다들 짐작하고 있겠지만.. 지민이가.. 스스로 우리곁을 떠났다.."
선생님이 말에 아이들은 웅성웅성 하더니 이내 언제그랬냐는듯 자기할일을 하는아이가 있는반면 억지로 슬픈표정을 짓는 가증스러운 아이들까지 다양했고, 적어도 내가 보기엔 지민의 죽음에 진심으로 슬퍼해주는 인간은 없는것 같아보였다. 반에서 지민이 어떤 존재였는지 여지없이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선생님도 그걸 느꼇는지 오늘 지민이의 장례식이 있으니 되도록이면 모두 참석하라는 말을 끝으로 반을 나갔고 이내 아이들의 웅성임에 다시 교실은 시끄러워졌다.
"야 박지민 걔 왜죽었데?"
"내가 어떻게 아냐. 근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걔네 엄마가 무당이라던데.. 귀신씌어서 죽었나? ㅋㅋ
"아 진짜? 어쩐지 걔 분위기가 좀 소름끼치긴 하더라.."
"야 조용히해 이기준 강준석 듣겠다 쟤들 지민이 좋아했잖아"
"강준석은 그렇다치고 그 빵셔틀이었던 이기준이? ㅋㅋ "
나와 강준석 지민을 거론하며 마치 재밌다는듯 비아냥데던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조용해졌지만 다른아이들까지 조용해진건 아니었다. 사람이 그것도 같은반친구가 죽었다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뒷다마나 까는.. 아무리 친한사이가 아니었다 해도 인간이 어떻게 저럴수 있단말인가.. 인간의 탈을쓴 악마같은 저것들의 꼬락서니를 보고있자니 견딜수없었던 난 신경질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뭐라고 하려던순간 뒤에서 들려온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 신발 애새끼들이 조카 시끄럽네 아가리안닫냐? 잠을못자겠잖아 신발"
강준석이었다. 준석은 그렇게 소리치며 일어나 반 아이들을 한번 훑어보고는 신경질적으로 의자등을 발로 차며 뒷문으로 나가버렸다. 뻘쭘하게 엉거주춤으로 일어나있던 나는 재빨리 자리에 앉았고 아이들은 박지민에서 이번엔 강준석으로 화젯거리가 바뀌었을 뿐 전혀 수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수업 시작종이 울렸고 도저히 수업에 집중할수 없다고 판단한 난 부랴부랴 가방을 싸서 교실을 나왔다. 그 악마같은 녀석들의 소굴에서 벗어나기 위해.. 학교를 나왔으나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어 집으로 향하던 중 좀전의 담임선생님의 말이 떠올랐고 난 지민의 장례식장을 가기위해 핸드폰을 꺼내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 죄송한데 지민이 장례식장 위치좀 알수있을까요?'
'이따가 종례시간에 알려주려했는데....녀석들참..하는수없지.. 알았다. 문자로 보내줄게'
상당히 빠른시간에 선생님의 문자를 받을수 있었고 위치를 확인한 나는 서둘러 그쪽으로 향했다. 걸어서 가기엔 좀 먼거리였기에 택시를 잡아 탔고 얼마안있어 그곳에 도착할수 있었다. 택시비를 지갑에서 꺼내 지불한후 차에서 내려들어간 장례식장에서 어렵지 않게 지민의 이름을 확인한 난 안으로 들어갔다. 식장안은 조문객들로 붐볐고, 저멀리 상주로보이는 한 여성이 지민의 어머니리라.. 말로만 들었지 실물로 보는건 처음이었고 게다가 하나뿐인 딸을 잃었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수없을게 자명했기에 난 조심스러울수밖에 없었다. 조객록에 서명을 한뒤 가방에들어있던 지난달내 월급 전부를 부의금으로 전달하고 분향소로 다가가던 난 지민의 어머니와 절을하고 있는 우리학교 교복의 학생을 발견하자 약간 의아했지만 덕분에 지민의 죽음을 마치 놀이삼아 비아냥데던 그런 악마같은 녀석들만 있는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에서인지 마음은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지민의 영정앞에 다가가 뭐가 그리좋은지 활짝 웃고있는 사진속 지민의 모습을보며 또다시 터져나오는 울음을 안간힘으로 참아내며 향에 불을붙였다. 손을 흔들어 향의 불을꺼 항아리에 담고는 큰절을하고 일어나 상주에게 절을하기위해 돌아서던 찰나 우리학교 학생의 얼굴이 보였고.. 그건 ... 강준석이었다. 준석은 날 못봤는지 간단한 목례후 뒤돌아 식장을 빠져나가고 있었고, 난 상주와 절을하고 일어나 간단한 인삿말을 건냈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내말에 지민이어머니는 날 쳐다보았고, 그 순간 지민이 어머니는 도저히 인간이 상상할수 없는 고음의 목소리로 소리쳤다.
"니놈이 무슨낮짝으로 여길오는게야!! 여기가 어디라고!!! 너때문이야 니놈 때문에 우리 지민이가 죽은거야 니놈 때문에!!!!!!!!!!!!!"
지민어머니의 목소리에 식장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내게 쏠렸고 강준석도 뒤돌아 나를 발견하고는 약간 놀란눈으로 응시했다. 난 당황스러운 이 현실에 아무말도 못하고 묵묵히 서있었고.. 지민어머니는 몇번더 크게 소리치더니 이내 혼절하셨는지 정신을 잃으며 쓰려졌다. 사람들은 서둘러 지민어머니를 병원으로 부축해 데려갔고 순식간에 고요해진 식장엔 아직도 진정이 안된 몇몇 조문객과 차가운 눈초리로 날 쏘아보고 있는 강준석과 납득할수 없는 상황에 놓인 나 자신만이 고요한 적막과 동화되어 갔다.
"야 빵, 잠깐 나좀 보자"
먼저 적막을깨고 입을연건 강준석이었다. 빵이라.. 그때 한판 이후로 빵셔틀에서 빵이된건가.. 뭐가 웃긴지 이상황과 어울리지않게 또라이처럼 혼자 피식 웃던 나는 마치 범인보듯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준석을따라 식장을 급히 빠져나왔다. 장례식장 밖으로 나와 옆으로 나있는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니 담배에 불을붙이고 있는 녀석이 있었다. 준석은 담배를 한모금 깊게 빨아들이다 내뱉으며 입을열었다.
"박지민 니가죽였냐 새꺄?"
뜬금없는 준석의 질문에 어안이 벙벙해졌던 탓일까? 가만히 멍때리고 있던 나는 돌연 날라온 강준석의 발길질에 보기좋게 날아가 쳐박혔다. 준석은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한모금 더 빨더니 이내 땅바닥에다 발로 비벼끄고는 다시 물었다.
"신발 묻고있잖아 니새끼가 죽였냐고"
가뜩이나 의문도 해결되지 않는와중에 방금있던 지민의 어머니가 한말까지 마음 한구석에 박혀 답답해서 죽을지경이었는데 강준석한테까지 발길질을 당하자 참지못한 나는 폭발해버렸고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열었다.
"그래 내가 죽였어 그렇다면 어쩔껀데 이 씹새끼야"
내말이 끝남과 동시에 강준석은 눈에 불이튀더니 달려들었으나 난 신기하게도 가볍게 피해냈다. 맨처음 꿈이라 생각한 곳에서 본 강준석패거리가 지민이에게 했었던 만행. 그리고 그때문에 죽을수밖에 없었던 지민이.. 어찌보면 모든 시작은 강준석으로 비롯된지도 몰랐기에 난 더더욱 주체할수 없었다. 어차피 나이트메어와 바톤터치할 생각도 없었고 억눌러왔던 분노에 의해 지금은 왠지모르게 내 힘만으로도 충분할거란 자신감마저 들었다. 난 일격을 피함과 동시에 오른쪽 다리로 준석의 다리를 걸었고 걸려 넘어지는 찰나 한쪽팔을 잡아 내쪽으로 당겨 오른손으로 있는 힘껏 복부를 가격하니 준석의 몸은 자연스럽에 ㄱ 자로 숙여졌다. 난 그틈을 놓치지 않고 준석의 머리채를 잡고 무릎으로 찍어버렸고 마지막으로 정신을 못차리고 비틀대던 녀석의 얼굴에 결정타를 날려버렸다. 저만치 날아가 쳐박힌 준석을 보며 가쁜숨을 내쉬는 나였다.
"하아..하아.."
나만의 힘으로 녀석을 날려버렸다는 성취감 때문이었을까? 쓰러진 준석을 보는 내 입가엔 살기어린 조소가 맺혔다. 준석은 정신을 차렸는지 미약한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반쯤 일으켰고 날쏘아았고 난 그런 녀석을 보고 가소롭다는듯 미소를 띈채 입을 열었다.
마지막에 내뱉은 말은 나 자신한테 하는 말이기도 했기에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듯 저려왔다. 그래 나때문에 죽은걸수도 있겠지.. 나때문에... 어쩌면 죽도록 쳐 맞아야되는 새끼는 나인지도 모르지.. 어느샌가 억울한건지 미안한건지 여러가지 복잡 미묘한 감정으로 인해 눈가엔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그런 나를 쳐다보고있던 강준석은 약간은 마음을 다스렸는지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강준석은 뒤적뒤적 호주머니에서 힘겹게 담배각을 꺼내더니 이내 담배한개피를 입에 물고 불을붙이며 내게 한마디 던졌다.
"필래?"
내게 담배각을 흔들어 보이며 건넨 준석의 말에 왠지모르게 다가간 나는 담배를 받아물고 불을 붙이고는 깊게 빨아드렸다. 처음 펴보는 담배맛에 죽을듯이 기침을 콜록콜록 하던 나를 보며 강준석은 '초짜 티내기는' 하며 작게 중얼거리곤 능숙하게 들고있던 담배를 빨았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시작되었고 얼마후 이번에도 여지없이 강준석에 의해 침묵은 깨졌다.
"미안했다. 그동안.."
난 잘못들은게 아닌가 내귀를 의심하며 녀석을 바라보았으나 준석은 별것 아니라는듯 거의 다 타들어간 담배꽁초를 땅에 비벼끄며 입을열었다.
"니놈도 그렇고 반아이들도 나만보면 치를떨꺼야.. 내가 그동안 해온걸생각하면 당연한거지.."
마치 꺼내기 싫은 말을 억지로 꺼내는듯 준석의 눈은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아련한 과거를 회상하는것 처럼 보였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때였어. 부모님이 갑작스레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지.. 돌봐줄 사람이 없어지자 나는 고모네집에 맡겨져 키워지게되었는데 아마 그때부터였을거야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걸 알아차린게.. 고모네집에서 생활하면서 매일같이 부모님이 보고싶어 울다지쳐 잠이들곤했는데 .. 어느날 그렇게 그리워하던 부모님이 내앞에 나타났어 그러나 어찌된일인지 부모님은 아무말도 없이 날 가만히 바라만 보고 계셨어. 너무나 치가운 눈빛이었지만 당시 죽음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던 난 그저 부모님 기분이 좀 언짢으셨나보다 했어 기쁜 마음에 다음날 고모에게 이 사실을 말했고.. 내말을 들은 고모는 내정신이 온전치않다고 판단했는지 얼마안있어 고아원에 난 맡겨졌고 그 뒤로 두번다시 고모의 얼굴은 볼수가 없었어.. 그렇게 나름대로 적응을 해가고 있을 무렵 고아원 또래아이들은 내가 기분나쁘다고 피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괴롭히기까지 했어. 그러던중 난 죽음의 개념을 알게되었지 그리고 내가 본건 귀신이었다는것까지.. 그 사실에 다다르자 너무 무서운거야.. 사실을 알아 차린탓인지 그 이후론 부모님으로 보이긴커녕 끔찍하기 짝이없는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난 정말 점점 미쳐가고있었어.. 그러던 어느날 문득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거야..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이렇게 나약해질수록 죽도밥도 안되겠다고 .. 그뒤로 나는 강해지기위해 악작같이 변하기 시작했어.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순간부터 날괴롭히던 녀석들을 오히려 내가 괴롭히고 있더라고.. 그렇게 중학교를 들어갔고 고등학교를 들어갔고 어느새 어딜가나 내 주위의 또래아이들은 나를 무서워하더라고. 너무 통쾌한거야. 귀신을 본다는것 하나로 날 업신여겼던 녀석들의 꼬라지를 보고있자니, 그녀석들을 괴롭히고 다니기엔 하루하루가 너무 짧아서 섭섭하기까지했오. 그렇게 점점 망나니가 되었는지도 몰라.. 그러던중 지민이를 알게되었어 근데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거야. 이질적이지만 한편으론 너무나 익숙한... 난 그런 지민이와 왠지모를 동질감에 끌리기 시작했고 우연치않게 그녀가 무당의 딸인것까지도 알게되었어 난 역시 그녀와 운명이라는 혼자만의 상상은 점점 부풀어올랐고 어느순간 그녀도 날 좋아할거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녀에게 고백까지 하게 되었지.."
준석은 들고있던 담배각에서 한개피를 더 꺼내 입에물어 불을 붙이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후우...........근데 보기좋게 거절당했지. 내가 자신이 무당의딸 이라는걸 알고있다는 말에 따귀까지 날리더라고.. 이건아니다 싶었어.. 하지만 그 뒤에도 난 지민에게 집착할수밖에 없었고 그럴수록 그녀는 점점 날 경멸하기까지 했어. 그런데 문득 지나가던 편의점에서 지민을 보게되었지.. 행복한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너와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걸.. 화가나서 미칠것 같았어. 한참본 나보다도, 처음본 너와 그런 표정을 지을수 있다는게.. 그뒤로 난 지독하리만큼 너한테 못되게 굴었지.. 네가 나보다 못하다는걸 그녀에게 일깨워주기위해.. "
준석의 말을 듣고 있던 내 머릿속엔 빵셔틀을 당하던 그당시 상황들이 스쳐지나갔지만 개의치 않았고. 담배를 한모금 더 깊게 빨아들였다 내쉬던 준석은 다시 입을열었다.
"그런데 그렇게 애를써도 지민은 변하지 않더군.. 오리혀 날 쳐다보는 눈빛은 더욱더 차가워져만 갔고 난 그런 그녀의 눈빛에서 과거.. 귀신을 본다는 이유하나로 괴롭히던 녀석들의 눈빛을 보게됐지. 나와같은 부류인 주제에 무당의 딸년인 주제에 날 내려다 보는듯한 시선에.. 결국 참다못한 나는 폭발했고 그로인해 인간으로썬 해서는 안되는 계획을 세웠지. 억지로라도 그녀의 몸을 취해 내것으로 만들기로.. 그렇게 동혁과 민기까지 불러낸 나는 늦은밤 그녀를 학교로 유인하는데 성공했지.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갑자기 머리에 고통이 느껴졌고 통증을 호소하다 쓰러진 난 깨어나보니 내 방 안인거야. 서둘러 동혁과 민기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된건지 물었지. 그런데 이게 왠걸? 다들 나보고 꿈이라도 꿨냐며 장난하지 말라는거야. 지민을 학교로 불러내긴 커녕 나와 만난적도 없다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듯 했어.. 그 생생한게 꿈이라니..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지.. 그리곤 다음날 학교에서 멀쩡한 지민을보자 난 꿈이었다고 믿을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한편으론 또 화가 나는거야 너무나 멀쩡한 지민이한테 그냥 화가났지.. 지금생각해보면 그때의 난 참 최악이었지.. 결국 난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내일 다시 실행하기로 했어.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썩은 무라도 베야한다는 말도안되는 이유를 들먹이며말야.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 지민은 보이지 않았어.. 그 다음날도.. 그다음날도......
그리고..
지민이는......세상을 떠났지...
내가 죽인거 같았어... 아니 내가 죽인거야... 나때문에...
흐흐흑..."
준석은 죄책감이 컸는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그런 준석에게서 내 모습이 보인건 나만의 착각일까..? 어떻게보면 지민은 죽음을 피할수 없는 어쩔수 없는것일지도 모르겠다. 방법은 달랐어도 결과는 같았기에.. 내가 만약 그날 지민이를 구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준석으로 인해 죽었을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난 생각을 잠시 접고 죄책감에 울고있는 준석에게 말을 건넸다.
"니가 죽인게 아냐.. 죄책감 같지마 더군다나 자살은 더더욱아니고.."
"흐흑.... 뭐..? 너 역시 뭔가 알고있는거지?"
어느샌가 울음을 그친 녀석은 내게 물었고 난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몰라 난감하기만 했다. 이래서 사람은 말을뱉을땐 머릿속에서 생각해보고 뱉어야하는건데.. 이미 입을떠난 말은 주워담을수 없는노릇이었다. 준석의 지민을 범하려던 것은 분명 내가 꿈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본것이 맞을것이고.. 내가 구해냈기때문에 준석은 실패하게된셈 즉, 꿈으로 인식되버렸다는 거라고 할수있겠고.. 하지만 그뒤의 상황을 준석은 모른다. 그럼 지민의 죽음에 대한 특별한 단서는 없다는것. 그럼 내게 지민이를 죽였냐고 물어본건 단순히 자신의 죄책감을 떨쳐버리고 남에게 돌리고 싶었던 기분때문이었다는 건가..
"빵 뭐라고 말좀 하지? 그리고보니 좀전 식장에서의 일은 또 뭐고?"
재촉하는 준석에 의해 좀전의 장례식장에서의 상황이 떠올랐다. 아차, 중요한걸 빼먹고있었다.. 식장에서 지민이 어머니가 내게 했던말... '니놈 때문에 죽었다는.. 니놈때문에' ... 아까의 상황이 머릿속에 두둥실 차오르며 다시한번 죄책감의 후폭풍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그래.. 역시 나때문인건가.. 역시 나때문에 죽은거구나.. 지민인.. 어라?"
불꺼진 어두운방에 갑자기 불을킨듯 새하얀 빛이 머리를 감싸는듯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는 무언가가 있었던 난 서둘러 준석에게 소리쳤다.
난 준석의 말을끊고 고맙단 한마디를 건낸뒤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어지럽게 늘어져있던 퍼즐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고 더이상 준석의 말을 듣고있을 여유는 없었기에.. 홀로 골목길에 남겨진 준석은 엉기적 엉기적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사라진곳을 멍하니 바라보며 남아있던 마지막 한개피의 담배에 불을붙이며 중얼거렸다.
"신발 저새낀 도데체 정체가 뭐야?"
준석의 말에 뽀얀 담배연기만이 대답대신 주위를 멤돌고 있었고 그렇게 어느덧 날은 저물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막상 무작정 뛰다보니 집근처까지 오게 되었음을 알게된 나는 잠시 멈춰서 끼워맞춰진 퍼즐조각들을 떠올렸다.
지민이를 '니가 죽였냐'던 준석은 날 '범인으로 인정'했다는 말이다. 헌데 지민이어머니는 내게 '너 때문에 지민이가 죽었다'고 했다. 보통 범인에게 '너때문'이라고 말하는경우는 드물다 대놓고 '니가죽엿다'고 하는게 맞겠지.. 적어도 지민이 어머니는 '범인이 누군지 모른다'. 그런데도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라거나 '너때문에 죽었다' 란 말을 했다는건 '이미 날 알고있었다는것' 즉, 나이트메어의 존재를 알고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는건 내가 지민에게 말못했던 '나이트메어와 그녀의 아버지죽음과 관련이있다는 점'은 '가정 사실화가' 되는셈이다. '지민이가 지금껏 화를 입지않고' 잘 성장해주었다는건 '어머니가 무당이되는조건. 즉, 계약이 성립되었음을 반증'하는것인데 돌연 갑자기 죽인다는건 앞뒤가 맞지않는다. 더군다나 '내몸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나이트메어는 지민을 죽이지 않았'다고 말했지 '관련이 없다'고는 하지않았다. 거기다 내가 꿈이라 생각한 그곳에서 지민을 보았다는건 내가 있었다는것. 여기까지 정리가 되자 마치 종이가 물을 흡수하듯 이질적인 감각과 함께 머릿속으로 익순한 느낌의 기억들이 빨려들어왔고 그게 나이트메어의 기억임을 알아차린 난 눈을 지긋이 감고 서둘러 그날의 기억을 끄집어내는데 정신을 집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긴잠에서 깨어나듯 천천히 눈을 뜬 나는 나지막히.. 차분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래..."
"그날밤...."
"..그곳에 있었던건.."
"...세명이었어"
'저벅 저벅 저벅'
한치앞도 분간할수없는 어느 컴컴한 지하공간. 한 사내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라도 하듯 소리내어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사내의 눈에선 빛이라도 나오는지 보통사람같으면 열두번도 더 넘어지고 부딪혀도 이상할게 없는 어둠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걷고있었다. 사실 지하란 것도 사내의 발소리를 토대로 추즉한것일뿐 어쩌면 지하가 아닐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얼마나 걸어 내려갔을까 앞이 막힌것을 발견한 사내는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는듯 오른손을 들어 무언가 제스쳐를 취했고, 그 순간 막혀있던 벽이 마치 회전문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신기했던건 그 육중한 벽같은 문이 돌아가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내는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으며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그곳은 언제그랬냐는듯 다시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 벽이되었다. 사내가 들어간 곳은 마치 작은 파티장같은 모습이었는데 거미줄이 꼼꼼하게 감겨있는 너덜너덜한 샹들리에는 아직 생명을 다하지 않았다는걸 증명하려는듯 미약한 불빛을 내고 있었고 그로인해 주변의 모습이 어느정도 드러나고 있었다. 바닥은 온통 피로보이는 붉은색 액체와 쓰레기들이 뒤엉켜 짖이겨져 있었고 중앙엔 몇십년은 된듯한 낡아빠진 원형 테이블과 의자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여기저기 널부러져있는 가구들역시 낡아빠져 흉측한모습인건 다르지않았다. 좌측 구석끝에는 칼과 도끼 전기톱등 보기만해도 섬뜩한 기구들이 즐비해 있었고, 이중에서도 우측 모퉁이에 걸려있는 거울은 가장 참혹했다.. 깨져 금이간건 둘째치고 사람의 손모양으로 보이는 핏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는데 만약 누군가 이모습을 본다면 섬뜩함에 오금이저려 기절할것은 자명해보였다. 그러나 사내는 자기집 안방에 온것마냥 온화한 표정이었고 심지어 그 거울앞에서 머리를 매만지기까지 했다. 왠지 이 사내앞에선 어지간한 귀신이 아니고선 명함도 못내밀것만 같은 그런 느낌... 깨진 거울 유리로 비치는 사내의 모습은 이십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호리호리하다못해 마른 체형이었고 남들보다 심하게 작은.. 그래서 떴는지 감았는지조차 자세히보지않으면 구별이안되는 눈만빼면 별다른 특이점은 없어보였다. 머리와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던 사내는 거울로비친 널부러져있는 가구뒷편에서 나타난 인영을 보곤 고개도 돌리지 않은채 입을 열었다.
"저기.. 박선우상? 먼저왔으면 좀 인기척좀 내고있으라고요"
"이상호. 내가 이름뒤에 상 좀 붙이지 말라고 했을텐데..?"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앳된 사내의 목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아무도 없던것만 같은 공간에서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가 깔렸다.
"아.. 미안요 요새 일본년 하나 물어서 데리고 노느라 입에 베었나봅니다.. 킥킥"
"그놈의 여자친구 타령은.."
"방금 말했죠 데리고 노는애라고.. 여자친구 그런거 아니그등요?"
"아 그래그래 알았다..알았어"
"킥킥 그러는 선배야 말로 여자친구나 만들라구요 킥키킥"
서로 친분이있는듯 장소와 어울리지않는 농담들이 한차례 지나갔고 이내 가구뒷편에서 박선우라 불린 인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얼듯봐도 백팔십센티미터는 훌쩍 넘어보이는 훤칠한 키에 군더더기하나 없이 다져진 몸매는 보는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낼만큼 훌륭했고 샹들리에의 불빛에 이내 살짝 드러난 얼굴은 대충 삼십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다부진 인상은 장소탓인지 약간 기괴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천천히 중앙 테이블까지 걸어온 박선우는 의자를 빼며 자리에 앉았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입고리엔 사악한 미소가 걸려있었는데 그 미소가 마치 악귀를 연상케 했다.
소소한 무서운 이야기 12
출처 - 웃대 (못된야옹)님 -
3부. 진실
언제 잠이들었는지 익숙한 진동소리에 눈을떠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새 날이밝아 있었고 난 학교에 가기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집에들어온후로 내 머리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았고 그렇게 여러가지를 생각하다가 그만 잠이들었었나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려 12시간 이상 잔셈이다..
요 몇일간 여러가지 일이있었기에 심신이 지친 탓인듯 했다. 더불어 내가 잠든 동안에도 나이트메어에 의해서 몸은 깨어있으니 실상은 잠을자도 잔게 아닌셈이지..
나이트메어의 말로 미루어볼때 내가 꿈이라고 생각하는 그 악몽은 현실. 즉, 내가 잠든상황에 내몸은 그곳에 있었다는건데.. 그것뿐 다른 어떠한 특이점도 찾을수 없었던 나는 맥이 빠지는걸 느꼈다.
난 씻지도않고 대충 우유한컵으로 아침을 때운뒤 교복을 챙겨 입고 학교갈 준비를 마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언가 확실한 단서는 찾을수 없었기에 일단은 평상시처럼 생활하며 내가모르는 잠든후의 기억을 필사적으로 찾아낼 요량이었다.
생각을 마치고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여느때와 같이 학교로 향하는 길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어느덧 교문을 지나 3학년 7반에 뒷문을 열었고 반 아이들의 분위기는 사뭇 진지했다. 거들먹 거리던 강준석의 눈빛마저 일말의 흔들림이 있는걸로 봐선 무슨일이 있는게 자명했다.
가방을 아무렇게나 팽기치며 내려놓던 나는 창가쪽 빈자리 위에 있는 국화꽃을 발견하였고 그게 뭘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자리가 누구자린지 아는데까지 그리 오랜시간은 걸리지않았다.
하긴 형사의 말에따르면 어제 새벽에 발견했다고하니 어쩌면 당연한일인지도 몰랐다. 책상위에 수북히 쌓여있는 국화꽃을 보고있자니 나도모르게 아련한 마음에 어느샌가 볼을 타고 한줄기 투명한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정말 인정할수 없었고 형사의 이야길 들은후에도 나이트메어의 이야길 듣고 생각에 잠겼을때에도 어딘가 지민이 살아있을거란 작은 희망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순간 내 몸을 조여오는 진실앞에 더이상 부정할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리자 감정이복받쳐 오르는것이리라.
잠시후 교실 앞문이 열리며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고 담인선생님의 입에서 나온말은 이미 내가 예상한대로였다.
"오늘은 너무 안타까운 소식이 있다.. 다들 짐작하고 있겠지만.. 지민이가.. 스스로 우리곁을 떠났다.."
선생님이 말에 아이들은 웅성웅성 하더니 이내 언제그랬냐는듯 자기할일을 하는아이가 있는반면 억지로 슬픈표정을 짓는 가증스러운 아이들까지 다양했고, 적어도 내가 보기엔 지민의 죽음에 진심으로
슬퍼해주는 인간은 없는것 같아보였다. 반에서 지민이 어떤 존재였는지 여지없이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선생님도 그걸 느꼇는지 오늘 지민이의 장례식이 있으니 되도록이면 모두 참석하라는 말을 끝으로 반을 나갔고 이내 아이들의 웅성임에 다시 교실은 시끄러워졌다.
"야 박지민 걔 왜죽었데?"
"내가 어떻게 아냐. 근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걔네 엄마가 무당이라던데.. 귀신씌어서 죽었나? ㅋㅋ
"아 진짜? 어쩐지 걔 분위기가 좀 소름끼치긴 하더라.."
"야 조용히해 이기준 강준석 듣겠다 쟤들 지민이 좋아했잖아"
"강준석은 그렇다치고 그 빵셔틀이었던 이기준이? ㅋㅋ "
나와 강준석 지민을 거론하며 마치 재밌다는듯 비아냥데던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조용해졌지만 다른아이들까지 조용해진건 아니었다.
사람이 그것도 같은반친구가 죽었다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뒷다마나 까는.. 아무리 친한사이가 아니었다 해도 인간이 어떻게 저럴수 있단말인가.. 인간의 탈을쓴 악마같은 저것들의 꼬락서니를 보고있자니 견딜수없었던 난
신경질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뭐라고 하려던순간
뒤에서 들려온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 신발 애새끼들이 조카 시끄럽네 아가리안닫냐? 잠을못자겠잖아 신발"
강준석이었다. 준석은 그렇게 소리치며 일어나 반 아이들을 한번 훑어보고는 신경질적으로 의자등을 발로 차며 뒷문으로 나가버렸다.
뻘쭘하게 엉거주춤으로 일어나있던 나는 재빨리 자리에 앉았고 아이들은 박지민에서 이번엔 강준석으로 화젯거리가 바뀌었을 뿐 전혀 수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수업 시작종이 울렸고 도저히 수업에 집중할수 없다고 판단한 난 부랴부랴 가방을 싸서 교실을 나왔다. 그 악마같은 녀석들의 소굴에서 벗어나기 위해..
학교를 나왔으나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어 집으로 향하던 중 좀전의 담임선생님의 말이 떠올랐고 난 지민의 장례식장을 가기위해 핸드폰을 꺼내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 죄송한데 지민이 장례식장 위치좀 알수있을까요?'
'이따가 종례시간에 알려주려했는데....녀석들참..하는수없지.. 알았다. 문자로 보내줄게'
상당히 빠른시간에 선생님의 문자를 받을수 있었고 위치를 확인한 나는 서둘러 그쪽으로 향했다. 걸어서 가기엔 좀 먼거리였기에 택시를 잡아 탔고 얼마안있어 그곳에 도착할수 있었다.
택시비를 지갑에서 꺼내 지불한후 차에서 내려들어간 장례식장에서 어렵지 않게 지민의 이름을 확인한 난 안으로 들어갔다. 식장안은 조문객들로 붐볐고, 저멀리 상주로보이는 한 여성이 지민의 어머니리라..
말로만 들었지 실물로 보는건 처음이었고 게다가 하나뿐인 딸을 잃었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수없을게 자명했기에 난 조심스러울수밖에 없었다.
조객록에 서명을 한뒤 가방에들어있던 지난달내 월급 전부를 부의금으로 전달하고 분향소로 다가가던 난 지민의 어머니와 절을하고 있는 우리학교 교복의 학생을 발견하자 약간 의아했지만 덕분에
지민의 죽음을 마치 놀이삼아 비아냥데던 그런 악마같은 녀석들만 있는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에서인지 마음은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지민의 영정앞에 다가가 뭐가 그리좋은지 활짝 웃고있는 사진속 지민의 모습을보며 또다시 터져나오는 울음을 안간힘으로 참아내며 향에 불을붙였다.
손을 흔들어 향의 불을꺼 항아리에 담고는 큰절을하고 일어나 상주에게 절을하기위해 돌아서던 찰나 우리학교 학생의 얼굴이 보였고.. 그건 ... 강준석이었다.
준석은 날 못봤는지 간단한 목례후 뒤돌아 식장을 빠져나가고 있었고, 난 상주와 절을하고 일어나 간단한 인삿말을 건냈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내말에 지민이어머니는 날 쳐다보았고, 그 순간 지민이 어머니는 도저히 인간이 상상할수 없는 고음의 목소리로 소리쳤다.
"니놈이 무슨낮짝으로 여길오는게야!! 여기가 어디라고!!! 너때문이야 니놈 때문에 우리 지민이가 죽은거야 니놈 때문에!!!!!!!!!!!!!"
지민어머니의 목소리에 식장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내게 쏠렸고 강준석도 뒤돌아 나를 발견하고는 약간 놀란눈으로 응시했다. 난 당황스러운 이 현실에 아무말도 못하고 묵묵히 서있었고..
지민어머니는 몇번더 크게 소리치더니 이내 혼절하셨는지 정신을 잃으며 쓰려졌다. 사람들은 서둘러 지민어머니를 병원으로 부축해 데려갔고 순식간에 고요해진 식장엔 아직도 진정이 안된 몇몇 조문객과
차가운 눈초리로 날 쏘아보고 있는 강준석과 납득할수 없는 상황에 놓인 나 자신만이 고요한 적막과 동화되어 갔다.
"야 빵, 잠깐 나좀 보자"
먼저 적막을깨고 입을연건 강준석이었다. 빵이라.. 그때 한판 이후로 빵셔틀에서 빵이된건가.. 뭐가 웃긴지 이상황과 어울리지않게 또라이처럼 혼자 피식 웃던 나는 마치 범인보듯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준석을따라 식장을 급히 빠져나왔다.
장례식장 밖으로 나와 옆으로 나있는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니 담배에 불을붙이고 있는 녀석이 있었다. 준석은 담배를 한모금 깊게 빨아들이다 내뱉으며 입을열었다.
"박지민 니가죽였냐 새꺄?"
뜬금없는 준석의 질문에 어안이 벙벙해졌던 탓일까? 가만히 멍때리고 있던 나는 돌연 날라온 강준석의 발길질에 보기좋게 날아가 쳐박혔다. 준석은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한모금 더
빨더니 이내 땅바닥에다 발로 비벼끄고는 다시 물었다.
"신발 묻고있잖아 니새끼가 죽였냐고"
가뜩이나 의문도 해결되지 않는와중에 방금있던 지민의 어머니가 한말까지 마음 한구석에 박혀 답답해서 죽을지경이었는데 강준석한테까지 발길질을 당하자 참지못한 나는 폭발해버렸고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열었다.
"그래 내가 죽였어 그렇다면 어쩔껀데 이 씹새끼야"
내말이 끝남과 동시에 강준석은 눈에 불이튀더니 달려들었으나 난 신기하게도 가볍게 피해냈다. 맨처음 꿈이라 생각한 곳에서 본 강준석패거리가
지민이에게 했었던 만행. 그리고 그때문에 죽을수밖에 없었던 지민이.. 어찌보면 모든 시작은 강준석으로 비롯된지도 몰랐기에 난 더더욱 주체할수 없었다. 어차피 나이트메어와 바톤터치할 생각도 없었고
억눌러왔던 분노에 의해 지금은 왠지모르게 내 힘만으로도 충분할거란 자신감마저 들었다.
난 일격을 피함과 동시에 오른쪽 다리로 준석의 다리를 걸었고 걸려 넘어지는 찰나 한쪽팔을 잡아 내쪽으로 당겨 오른손으로 있는 힘껏 복부를 가격하니 준석의 몸은 자연스럽에 ㄱ 자로 숙여졌다.
난 그틈을 놓치지 않고 준석의 머리채를 잡고 무릎으로 찍어버렸고 마지막으로 정신을 못차리고 비틀대던 녀석의 얼굴에 결정타를 날려버렸다. 저만치 날아가 쳐박힌 준석을 보며 가쁜숨을 내쉬는 나였다.
"하아..하아.."
나만의 힘으로 녀석을 날려버렸다는 성취감 때문이었을까? 쓰러진 준석을 보는 내 입가엔 살기어린 조소가 맺혔다. 준석은 정신을 차렸는지 미약한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반쯤 일으켰고
날쏘아았고 난 그런 녀석을 보고 가소롭다는듯 미소를 띈채 입을 열었다.
"내가 지민이를 죽였냐고? 크큭.. 병신새끼야 내가 너같은 부류인줄알아? 너같이 주먹하나 믿고 설쳐데는 새끼가 뭘안다고 지껄여. 니새끼가 한짓을 생각해봐
지민이가 싫어하는거 뻔히 알면서 매일같이 추근덕데던 새끼가 이제와서 죄책감이라도 생겼나? 어디서 가증스럽게 위하는척이야 이 위선자 새끼야"
"........"
마지막에 내뱉은 말은 나 자신한테 하는 말이기도 했기에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듯 저려왔다. 그래 나때문에 죽은걸수도 있겠지.. 나때문에... 어쩌면 죽도록 쳐 맞아야되는 새끼는 나인지도 모르지..
어느샌가 억울한건지 미안한건지 여러가지 복잡 미묘한 감정으로 인해 눈가엔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그런 나를 쳐다보고있던 강준석은 약간은 마음을 다스렸는지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강준석은 뒤적뒤적 호주머니에서 힘겹게 담배각을 꺼내더니 이내 담배한개피를 입에 물고 불을붙이며 내게 한마디 던졌다.
"필래?"
내게 담배각을 흔들어 보이며 건넨 준석의 말에 왠지모르게 다가간 나는 담배를 받아물고 불을 붙이고는 깊게 빨아드렸다. 처음 펴보는 담배맛에 죽을듯이 기침을 콜록콜록 하던 나를 보며
강준석은 '초짜 티내기는' 하며 작게 중얼거리곤 능숙하게 들고있던 담배를 빨았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시작되었고 얼마후 이번에도 여지없이 강준석에 의해 침묵은 깨졌다.
"미안했다. 그동안.."
난 잘못들은게 아닌가 내귀를 의심하며 녀석을 바라보았으나 준석은 별것 아니라는듯 거의 다 타들어간 담배꽁초를 땅에 비벼끄며 입을열었다.
"니놈도 그렇고 반아이들도 나만보면 치를떨꺼야.. 내가 그동안 해온걸생각하면 당연한거지.."
마치 꺼내기 싫은 말을 억지로 꺼내는듯 준석의 눈은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아련한 과거를 회상하는것 처럼 보였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때였어. 부모님이 갑작스레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지.. 돌봐줄 사람이 없어지자 나는 고모네집에 맡겨져 키워지게되었는데 아마 그때부터였을거야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걸 알아차린게.. 고모네집에서 생활하면서 매일같이 부모님이 보고싶어 울다지쳐 잠이들곤했는데 ..
어느날 그렇게 그리워하던 부모님이 내앞에 나타났어 그러나 어찌된일인지 부모님은 아무말도 없이 날 가만히 바라만 보고 계셨어. 너무나 치가운 눈빛이었지만 당시 죽음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던 난 그저 부모님 기분이 좀 언짢으셨나보다 했어 기쁜 마음에 다음날 고모에게 이 사실을 말했고..
내말을 들은 고모는 내정신이 온전치않다고 판단했는지 얼마안있어 고아원에 난 맡겨졌고 그 뒤로 두번다시 고모의 얼굴은 볼수가 없었어.. 그렇게 나름대로 적응을 해가고 있을 무렵 고아원 또래아이들은 내가 기분나쁘다고 피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괴롭히기까지 했어. 그러던중 난 죽음의 개념을 알게되었지 그리고 내가 본건 귀신이었다는것까지.. 그 사실에 다다르자 너무 무서운거야.. 사실을 알아 차린탓인지 그 이후론 부모님으로 보이긴커녕 끔찍하기 짝이없는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난 정말
점점 미쳐가고있었어.. 그러던 어느날 문득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거야..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이렇게 나약해질수록 죽도밥도 안되겠다고 .. 그뒤로 나는 강해지기위해 악작같이 변하기 시작했어.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순간부터 날괴롭히던 녀석들을 오히려 내가 괴롭히고 있더라고.. 그렇게 중학교를 들어갔고 고등학교를 들어갔고 어느새 어딜가나 내 주위의 또래아이들은 나를 무서워하더라고. 너무 통쾌한거야. 귀신을 본다는것 하나로
날 업신여겼던 녀석들의 꼬라지를 보고있자니, 그녀석들을 괴롭히고 다니기엔 하루하루가 너무 짧아서 섭섭하기까지했오. 그렇게 점점 망나니가 되었는지도 몰라..
그러던중 지민이를 알게되었어 근데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거야. 이질적이지만 한편으론 너무나 익숙한... 난 그런 지민이와 왠지모를 동질감에 끌리기 시작했고 우연치않게 그녀가 무당의 딸인것까지도 알게되었어
난 역시 그녀와 운명이라는 혼자만의 상상은 점점 부풀어올랐고 어느순간 그녀도 날 좋아할거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녀에게 고백까지 하게 되었지.."
준석은 들고있던 담배각에서 한개피를 더 꺼내 입에물어 불을 붙이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후우...........근데 보기좋게 거절당했지. 내가 자신이 무당의딸 이라는걸 알고있다는 말에 따귀까지 날리더라고.. 이건아니다 싶었어.. 하지만 그 뒤에도 난 지민에게 집착할수밖에 없었고 그럴수록 그녀는 점점 날 경멸하기까지 했어.
그런데 문득 지나가던 편의점에서 지민을 보게되었지.. 행복한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너와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걸.. 화가나서 미칠것 같았어. 한참본 나보다도, 처음본 너와 그런 표정을 지을수 있다는게..
그뒤로 난 지독하리만큼 너한테 못되게 굴었지.. 네가 나보다 못하다는걸 그녀에게 일깨워주기위해.. "
준석의 말을 듣고 있던 내 머릿속엔 빵셔틀을 당하던 그당시 상황들이 스쳐지나갔지만 개의치 않았고. 담배를 한모금 더 깊게 빨아들였다 내쉬던 준석은 다시 입을열었다.
"그런데 그렇게 애를써도 지민은 변하지 않더군.. 오리혀 날 쳐다보는 눈빛은 더욱더 차가워져만 갔고 난 그런 그녀의 눈빛에서 과거.. 귀신을 본다는 이유하나로 괴롭히던 녀석들의 눈빛을 보게됐지.
나와같은 부류인 주제에 무당의 딸년인 주제에 날 내려다 보는듯한 시선에.. 결국 참다못한 나는 폭발했고 그로인해 인간으로썬 해서는 안되는 계획을 세웠지. 억지로라도 그녀의 몸을 취해 내것으로 만들기로..
그렇게 동혁과 민기까지 불러낸 나는 늦은밤 그녀를 학교로 유인하는데 성공했지.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갑자기 머리에 고통이 느껴졌고 통증을 호소하다 쓰러진 난 깨어나보니 내 방 안인거야.
서둘러 동혁과 민기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된건지 물었지. 그런데 이게 왠걸? 다들 나보고 꿈이라도 꿨냐며 장난하지 말라는거야. 지민을 학교로 불러내긴 커녕 나와 만난적도 없다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듯 했어.. 그 생생한게 꿈이라니..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지.. 그리곤 다음날 학교에서 멀쩡한 지민을보자 난 꿈이었다고 믿을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한편으론 또 화가 나는거야
너무나 멀쩡한 지민이한테 그냥 화가났지.. 지금생각해보면 그때의 난 참 최악이었지.. 결국 난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내일 다시 실행하기로 했어.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썩은 무라도 베야한다는 말도안되는 이유를 들먹이며말야.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 지민은 보이지 않았어.. 그 다음날도.. 그다음날도......
그리고..
지민이는......세상을 떠났지...
내가 죽인거 같았어... 아니 내가 죽인거야... 나때문에...
흐흐흑..."
준석은 죄책감이 컸는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그런 준석에게서 내 모습이 보인건 나만의 착각일까..? 어떻게보면 지민은 죽음을 피할수 없는 어쩔수 없는것일지도 모르겠다. 방법은 달랐어도 결과는 같았기에..
내가 만약 그날 지민이를 구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준석으로 인해 죽었을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난 생각을 잠시 접고 죄책감에 울고있는 준석에게 말을 건넸다.
"니가 죽인게 아냐.. 죄책감 같지마 더군다나 자살은 더더욱아니고.."
"흐흑.... 뭐..? 너 역시 뭔가 알고있는거지?"
어느샌가 울음을 그친 녀석은 내게 물었고 난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몰라 난감하기만 했다. 이래서 사람은 말을뱉을땐 머릿속에서 생각해보고 뱉어야하는건데.. 이미 입을떠난 말은 주워담을수 없는노릇이었다.
준석의 지민을 범하려던 것은 분명 내가 꿈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본것이 맞을것이고.. 내가 구해냈기때문에 준석은 실패하게된셈 즉, 꿈으로 인식되버렸다는 거라고 할수있겠고..
하지만 그뒤의 상황을 준석은 모른다. 그럼 지민의 죽음에 대한 특별한 단서는 없다는것. 그럼 내게 지민이를 죽였냐고 물어본건 단순히 자신의 죄책감을 떨쳐버리고 남에게 돌리고 싶었던 기분때문이었다는 건가..
"빵 뭐라고 말좀 하지? 그리고보니 좀전 식장에서의 일은 또 뭐고?"
재촉하는 준석에 의해 좀전의 장례식장에서의 상황이 떠올랐다.
아차, 중요한걸 빼먹고있었다.. 식장에서 지민이 어머니가 내게 했던말... '니놈 때문에 죽었다는.. 니놈때문에' ...
아까의 상황이 머릿속에 두둥실 차오르며 다시한번 죄책감의 후폭풍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그래.. 역시 나때문인건가.. 역시 나때문에 죽은거구나.. 지민인.. 어라?"
불꺼진 어두운방에 갑자기 불을킨듯 새하얀 빛이 머리를 감싸는듯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는 무언가가 있었던 난 서둘러 준석에게 소리쳤다.
"야 강준석 너아까 나한테 아까 뭐라고했지?"
"신발 이제 내말도 씹네? 이젠 빵한테 내가 굽실되야하는 처지가 된건가 .."
"아 됐고 아까 한말 다시 해보라고"
이제는 겁나기는커녕 귀엽게까지 보이는 투덜데는 녀석에게 난 말을 재촉했다.
"에이 신발.. 뭔가 알고있냐고 물었잖아"
"아니 그전에.. 아까 싸우기전 처음에 말이"
"처음에라.. 아.. 지민이 니가죽였냐고 한거밖엔 딱히 없는데? 아까 식장에서의 상황도 있고했으니.."
그래 분명 니가죽였냐고 물었었다. 식장에서의 일은 누가봐도 그렇게 생각할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곤 너무 화가나서 홧김에 내가죽였다고 했고.. 그렇게 지금 이상황까지 온것이었지.. 난 방금 느꼈던 감각을 유지한채 다시 준적에게 입을 열었다.
"넌 내가 죽였다고 판단했기에 그렇게 물은거지?"
"뭔소리야 뜬금없이 왜 같은말을 자꾸 물어. 니가 죽였다고 생각했으니 니가죽였냐고 물어봤지 그럼 .."
난 준석의 말을끊고 고맙단 한마디를 건낸뒤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어지럽게 늘어져있던 퍼즐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고 더이상 준석의 말을 듣고있을 여유는 없었기에..
홀로 골목길에 남겨진 준석은 엉기적 엉기적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사라진곳을 멍하니 바라보며 남아있던 마지막 한개피의 담배에 불을붙이며 중얼거렸다.
"신발 저새낀 도데체 정체가 뭐야?"
준석의 말에 뽀얀 담배연기만이 대답대신 주위를 멤돌고 있었고 그렇게 어느덧 날은 저물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막상 무작정 뛰다보니 집근처까지 오게 되었음을 알게된 나는 잠시 멈춰서 끼워맞춰진 퍼즐조각들을 떠올렸다.
지민이를 '니가 죽였냐'던 준석은 날 '범인으로 인정'했다는 말이다. 헌데 지민이어머니는 내게 '너 때문에 지민이가 죽었다'고 했다.
보통 범인에게 '너때문'이라고 말하는경우는 드물다 대놓고 '니가죽엿다'고 하는게 맞겠지.. 적어도 지민이 어머니는 '범인이 누군지 모른다'. 그런데도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라거나 '너때문에 죽었다' 란 말을
했다는건 '이미 날 알고있었다는것' 즉, 나이트메어의 존재를 알고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는건 내가 지민에게 말못했던 '나이트메어와 그녀의 아버지죽음과 관련이있다는 점'은 '가정 사실화가' 되는셈이다.
'지민이가 지금껏 화를 입지않고' 잘 성장해주었다는건 '어머니가 무당이되는조건. 즉, 계약이 성립되었음을 반증'하는것인데 돌연 갑자기 죽인다는건 앞뒤가 맞지않는다. 더군다나 '내몸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나이트메어는 지민을 죽이지 않았'다고 말했지 '관련이 없다'고는 하지않았다. 거기다 내가 꿈이라 생각한 그곳에서 지민을 보았다는건 내가 있었다는것.
여기까지 정리가 되자 마치 종이가 물을 흡수하듯 이질적인 감각과 함께 머릿속으로 익순한 느낌의 기억들이 빨려들어왔고 그게 나이트메어의 기억임을 알아차린 난 눈을 지긋이 감고 서둘러 그날의 기억을 끄집어내는데
정신을 집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긴잠에서 깨어나듯 천천히 눈을 뜬 나는 나지막히.. 차분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래..."
"그날밤...."
"..그곳에 있었던건.."
"...세명이었어"
'저벅 저벅 저벅'
한치앞도 분간할수없는 어느 컴컴한 지하공간. 한 사내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라도 하듯 소리내어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사내의 눈에선 빛이라도 나오는지 보통사람같으면 열두번도 더 넘어지고 부딪혀도 이상할게 없는 어둠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걷고있었다.
사실 지하란 것도 사내의 발소리를 토대로 추즉한것일뿐 어쩌면 지하가 아닐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얼마나 걸어 내려갔을까 앞이 막힌것을 발견한 사내는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는듯 오른손을 들어 무언가 제스쳐를 취했고, 그 순간 막혀있던 벽이 마치 회전문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신기했던건 그 육중한 벽같은 문이 돌아가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내는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으며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그곳은 언제그랬냐는듯 다시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 벽이되었다.
사내가 들어간 곳은 마치 작은 파티장같은 모습이었는데 거미줄이 꼼꼼하게 감겨있는 너덜너덜한 샹들리에는 아직 생명을 다하지 않았다는걸 증명하려는듯 미약한 불빛을 내고 있었고 그로인해 주변의 모습이 어느정도 드러나고 있었다.
바닥은 온통 피로보이는 붉은색 액체와 쓰레기들이 뒤엉켜 짖이겨져 있었고 중앙엔 몇십년은 된듯한 낡아빠진 원형 테이블과 의자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여기저기 널부러져있는 가구들역시 낡아빠져 흉측한모습인건 다르지않았다.
좌측 구석끝에는 칼과 도끼 전기톱등 보기만해도 섬뜩한 기구들이 즐비해 있었고, 이중에서도 우측 모퉁이에 걸려있는 거울은 가장 참혹했다.. 깨져 금이간건 둘째치고 사람의 손모양으로 보이는 핏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는데
만약 누군가 이모습을 본다면 섬뜩함에 오금이저려 기절할것은 자명해보였다.
그러나 사내는 자기집 안방에 온것마냥 온화한 표정이었고 심지어 그 거울앞에서 머리를 매만지기까지 했다. 왠지 이 사내앞에선 어지간한 귀신이 아니고선 명함도 못내밀것만 같은 그런 느낌...
깨진 거울 유리로 비치는 사내의 모습은 이십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호리호리하다못해 마른 체형이었고 남들보다 심하게 작은.. 그래서 떴는지 감았는지조차 자세히보지않으면 구별이안되는 눈만빼면 별다른 특이점은 없어보였다.
머리와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던 사내는 거울로비친 널부러져있는 가구뒷편에서 나타난 인영을 보곤 고개도 돌리지 않은채 입을 열었다.
"저기.. 박선우상? 먼저왔으면 좀 인기척좀 내고있으라고요"
"이상호. 내가 이름뒤에 상 좀 붙이지 말라고 했을텐데..?"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앳된 사내의 목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아무도 없던것만 같은 공간에서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가 깔렸다.
"아.. 미안요 요새 일본년 하나 물어서 데리고 노느라 입에 베었나봅니다.. 킥킥"
"그놈의 여자친구 타령은.."
"방금 말했죠 데리고 노는애라고.. 여자친구 그런거 아니그등요?"
"아 그래그래 알았다..알았어"
"킥킥 그러는 선배야 말로 여자친구나 만들라구요 킥키킥"
서로 친분이있는듯 장소와 어울리지않는 농담들이 한차례 지나갔고 이내 가구뒷편에서 박선우라 불린 인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얼듯봐도 백팔십센티미터는 훌쩍 넘어보이는 훤칠한 키에 군더더기하나 없이 다져진 몸매는 보는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낼만큼 훌륭했고 샹들리에의 불빛에 이내 살짝 드러난 얼굴은
대충 삼십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다부진 인상은 장소탓인지 약간 기괴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천천히 중앙 테이블까지 걸어온 박선우는 의자를 빼며 자리에 앉았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입고리엔 사악한 미소가 걸려있었는데 그 미소가 마치 악귀를 연상케 했다.
그는...
얼마전 기준을 찾아가 지민의죽음을 단순 자살로 몰고가려 했던 인물..
박형사였다.
4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