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이석채 회장은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대구의 삼촌댁에서 학교를 다니던 나는 어느 날 우연히 삼국지를 발견했다고 합니다.글은 어려웠고 분량도 많았지만, 이석채회장 본인도 모르게 빠져들었다고 하는데요. 몇 달 후면 중학교 입학시험이 있을 예정이었지만, 책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시험준비 안 한다고 야단 맞을 때면 벽장 속에 숨어서 읽었다고하네요. 그 후의 성장과정에서도 아마 열 번 이상은 읽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삼국지를 처음 읽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KT 이석채 회장도 관우와 제갈량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특히 유교적 전통이 강한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기 때문에 ‘관우’가 보여준 신의, 절개와 기상에 크게 감복하였고, 제갈량의 천하삼분론은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주었다고합니다. 주유의 유서를 읽으면 그의 웅혼한 기상과 충성심에도 깊이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의 유서는 지금도 가끔 읽는다고 합니다.관우의 인간상에 대한 KT 이석채 회장의 몰입은 중학교에서 읽은月灘(월탄) 박종화 선생의 ‘임진왜란’에 그려진 충무공의 삶과 철학을 숭배하는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고합니다. 위의 몇 사람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은 여전하지만, 장성해서 삼국지를 다시 읽을 때쯤은조조에 대한 KT 이석채 회장의 평가도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인재라면 자기를 죽이려 하는 사람까지 쓰는 그의 정치력과 과단성 있는 의사결정능력,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통 큰 배포와 용기 등이야말로후세 사람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지도자의 자질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어릴 때의 영향으로, 그를 사랑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책을 통해 KT 이석채 회장도 모르게 형성된 성격과 인생관은,“범의 딸을 어찌 개의 아들에게 시집 보낼 수 있으랴” 라는 사려 깊지 않은 말로손권의 청혼을 거절한 관우가 겪은 운명처럼, 조선시대였다면 3족이 멸할 수 있는 어려움을 겪는 실마리를 제공하였습니다.자리를 구걸하지 않고, 어떤 시련에서도 가슴을 펼 수 있는 기개는 키웠지만,가족을 비롯한 수많은 친구와 친지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을 안겨주었다고 봅니다. 역사에서 ‘만약이란 것’이 성립될 수 없지만, 만약 관우가 쓸데없는 자존심을 죽이고좀 더 유연한 사고에 바탕을 둔 외교력을 펼쳤더라면,그와 유비 그리고 장비도 그렇게 죽지 않았을 것이고 중국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상상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당대 시인 杜牧이 오강 가에서 자살한 항우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烏江亭(오강정) 시 속의‘包羞忍恥 是男兒(포수인치시남아) ’라는 구절을 어려움에 처한 아끼는사람들에게 자주 일러주는 이유도 관우의 잘못,그리고 내 가까운 사람들이 나 때문에 당한 불필요한 고통에 대한 뼈저린 죄책감 때문일지 모릅니다.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 우연히 본 삼국지가 지금까지 살아온 내 모습의 상당부분을설명할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합니다. 아마 지금 kt라는 기업을 경영하는 방식에서도 삼국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말까지 하는데요.분명한 것은 1990년대 초 경제기획원 예산실장시절 파도처럼 밀려오는저항과 반대를 무릅쓰고 수 많은 재정 및 정책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이면에는KT 이석채 회장도 모르게 익힌 삼국지의 전략 전술의 역할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배운다! KT 이석채회장이 추천하는 삼국지!
KT 이석채 회장은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대구의 삼촌댁에서 학교를 다니던 나는 어느 날 우연히 삼국지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글은 어려웠고 분량도 많았지만, 이석채회장 본인도 모르게 빠져들었다고 하는데요.
몇 달 후면 중학교 입학시험이 있을 예정이었지만, 책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시험준비 안 한다고 야단 맞을 때면 벽장 속에 숨어서 읽었다고하네요.
그 후의 성장과정에서도 아마 열 번 이상은 읽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삼국지를 처음 읽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KT 이석채 회장도 관우와 제갈량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특히 유교적 전통이 강한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기 때문에 ‘관우’가 보여준 신의, 절개와 기상에 크게 감복하였고, 제갈량의 천하삼분론은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주었다고합니다.
주유의 유서를 읽으면 그의 웅혼한 기상과 충성심에도 깊이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의 유서는 지금도 가끔 읽는다고 합니다.
관우의 인간상에 대한 KT 이석채 회장의 몰입은 중학교에서 읽은
月灘(월탄) 박종화 선생의 ‘임진왜란’에 그려진 충무공의 삶과 철학을 숭배하는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고합니다.
위의 몇 사람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은 여전하지만, 장성해서 삼국지를 다시 읽을 때쯤은
조조에 대한 KT 이석채 회장의 평가도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인재라면 자기를 죽이려 하는 사람까지 쓰는 그의 정치력과 과단성 있는 의사결정능력,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통 큰 배포와 용기 등이야말로
후세 사람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지도자의 자질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
어릴 때의 영향으로, 그를 사랑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책을 통해 KT 이석채 회장도 모르게 형성된 성격과 인생관은,
“범의 딸을 어찌 개의 아들에게 시집 보낼 수 있으랴” 라는 사려 깊지 않은 말로
손권의 청혼을 거절한 관우가 겪은 운명처럼,
조선시대였다면 3족이 멸할 수 있는 어려움을 겪는 실마리를 제공하였습니다.
자리를 구걸하지 않고, 어떤 시련에서도 가슴을 펼 수 있는 기개는 키웠지만,
가족을 비롯한 수많은 친구와 친지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을 안겨주었다고 봅니다.
역사에서 ‘만약이란 것’이 성립될 수 없지만, 만약 관우가 쓸데없는 자존심을 죽이고
좀 더 유연한 사고에 바탕을 둔 외교력을 펼쳤더라면,
그와 유비 그리고 장비도 그렇게 죽지 않았을 것이고 중국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상상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당대 시인 杜牧이 오강 가에서 자살한 항우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烏江亭(오강정) 시 속의
‘包羞忍恥 是男兒(포수인치시남아) ’라는 구절을 어려움에 처한 아끼는
사람들에게 자주 일러주는 이유도 관우의 잘못,
그리고 내 가까운 사람들이 나 때문에 당한 불필요한 고통에 대한 뼈저린 죄책감 때문일지 모릅니다.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 우연히 본 삼국지가 지금까지 살아온 내 모습의 상당부분을
설명할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합니다.
아마 지금 kt라는 기업을 경영하는 방식에서도 삼국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말까지 하는데요.
분명한 것은 1990년대 초 경제기획원 예산실장시절 파도처럼 밀려오는
저항과 반대를 무릅쓰고 수 많은 재정 및 정책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이면에는
KT 이석채 회장도 모르게 익힌 삼국지의 전략 전술의 역할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