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잃는 이들이 늘어감에 따라 자연스레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처음엔 단순한 사고사로 판단, 그러나 대다수의 피해자 지인들의 진술에서 뭔가 석연치 않음을 느끼게 된다.
'죽은이들이 죽기 얼마전부터 평소완 다른, 마치 얼굴은 똑같지만 다른 사람같은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는것.'
이에 경찰은 약물중독에 의한 인격장애등과 같은 부작용일것을 감안, 국과수에 정밀검사를 요청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검사결과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고 수사는 또다시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이러는 와중에도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은 계속 늘어만 갔고, 사실상 경찰은 속수무책으로 방관하기에 이른다.
일각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사고사로 목숨을 잃는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이는 명백한 연쇄살인이라 주장했고 그에따라 경찰의 무능함을 비판하는 여론 역시 들끓기 시작했다. 그런 주장이 제기되자 국민들은 '나도 언제 저렇게 죽을지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감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불안에 떨며 살아야했고, 이에 정부는 국민들을 안심시키는게 급선무라고 판단 말도안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 이가 나올때마다 '전과가 있는 사람'을 아무나 잡아들여 범인으로 단정지어 버리는 것이었다. 국민들은 정부의 이런 비인간적인 정책을 알리 만무했고, 점차 안심하는듯 혼란은 사그라드는것처럼 보여졌다.
한편 이미 오래전부터 각종 종교집단을 비롯한 일각에서는 '인간이 아닌 무언가의 개입'이라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제기했고, 세간에 소문이 퍼지는건 삽시간이었다, 정부에선 이를 탐탁치 못하게 여겼는데, 대외적인 나라망신이라는 판단이 그 이유였다. 자연스럽게 경찰은 이런 정부의 판단에 의해 허무맹랑한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개인 혹은 단체들을 와해시키며 소문을 덮어버리기에 급급했지만, 예상과 달리 그런 경찰의 과민반응은 독이되어 '소문이 사실이기에 저렇듯 정부가 과민반응으로 대응하는것이다.' 라는 타당한 근거까지 그들에게 내어주게 되었다.
그런이유에서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점차 의문의 죽음과 소문을 연관짓기 시작했고, 의문의 죽음이 정말 단순한 사고사 혹은 인간에 의한 살인이 아닌 영적인 어떤 존재에 의한것이라 믿기 시작했다. 정부역시 이렇다 할 명확한 해답은 없었고, 소문을 잠재우기 위한 행동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것에 대한 책임에서인지 섣불리 손쓰지 못한채 묵묵히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그렇게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채 하루가 멀다하고 의문의 죽음은 나날히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의문의 죽음이 너무도 당연한 하나의 사고로 인식되어 갈때쯤.. 사람들은 미세한 흔적은 커녕 그림자조차 드러내지 않은채 죽음을 안겨다주는 그 '무언가' 를 다크섀도우라 부르기 시작했다.
NIGHT MARE 2 - Dark Shadow 나이트메어 그 두번째 이야기 : 다크섀도우
1화. 긴 잠에서 깨어나다.
'후후훗 좋다아~'
벤치에 앉아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과 따사로운 햇빛에 취해 절로 미소짓는다. 수업이 없을때 가끔씩 이렇게 나와서 앉아 있으면 기분이 어찌나 좋은지 모르겠다. 물론 날씨가 좋아야 가능한 이야기지만. 오늘은 오전수업밖에 없는 관계로 다른날보다 좀더 이런 즐거움을 만끽할수 있었기에, 입가에 미소는 가실줄 몰랐다.
그.러.나
좋은일이 있으면 나쁜일도 있는법.
역시나 오늘도 어김없이 내 공강의 여유를 방해하는 못된년(?) 의 목소리가, 마치 활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날아와 마음을 아프게 했다.
"지윤찌잉~ 지윤찌잉~~"
저 기집애는 기차화통을 삶아먹었는지 체구는 조그마한게 목소리는 뭐저렇게 큰지 모르겠다. 난 익숙하게 구겨진 표정을 인위적인 미소로 바꾸는 현란한 스킬을 구사하며 손을 흔들었다.
"응~ 지혜양 왔쪄?"
"헥..응..헥헥.. 기지배..헥헥.. 여기있었냐? 헥..헥"
'얼마나 뛰었다고 숨을 그렇게 몰아쉬니.. 그러게 평소에 운동좀 해라 요년아, 누가보면 마라톤이라도 뛰고온줄 알겠어 아주'
난 속내와는 반대로 한껏 안쓰럽단 표정을 지으며 가방에서 물을 꺼내 건낸다.
'벌컥벌컥벌컥'
내 여유를 깨버린채 갑자니 나타나 개걸스럽게 물을 마셔대는 이 기집애의 이름은 박지혜. 같은 고등학교 단짝으로 운좋게 같은 대학까지 오게된 아이였다. 모든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긴 생머리의 여성스런 외모 덕택에 학교 선배오빠들의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말끝마다 누구누구찡, 그랬찡, 뭐했찡 찡찡찡 을 붙이며 귀여운척을 하는게 좀 재수없긴 해도 잘 맞는 기집애였다.
"캬하항~ 이제야 살겠어, 기집애 내가 너때문에 늘 이렇게 뛰어다녀야겠니!!"
"누가 뛰어오랬냐"
지혜는 매섭게 한번 째려보더니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양 호들갑을 떨었다.
"됐고~ 너 오늘 잊지않았지?"
"또..뭐가.."
"내가 너땜에 못산다 못살엉. 오늘 저녁에 소개팅하기로 했던거 까먹은거야? 내가 저번주부터 그렇게 말했건만.."
"학교앞 '카페인 콩' 에서 7시에 만나기로 했엉. 지난주에도 말했지만 대박 킹카라구! 진짜 후회 안할꺼야 후훗"
"너도참.. 난 남자한테 관심 없다니깐"
"이번엔 다를껄? 후훗, 아무튼 이따 늦지말구 난 수업하나 남아 있어서 들어가봐야겟땅. 그럼 지윤찡 저녁에봐앙~"
뭐가 그리좋은지 지혜는 붕붕거리며 저만치 멀어져간다. 난 그런 지혜를 바라보며 벤치에 등을 바짝 기대며 눈을 감았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이 머리카락을 어루만져 주는게 무척이나 기분좋다.
'킹카라... 좀 기대되긴 하네.. 후훗'
한참동안을 따사로운 날씨에 취해 여유를 즐기던 난 자리에서 일어나 책 몇가지와 가방을 챙기고는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슬슬 아르바이트 시간도 다되어가고 있었고, 늦은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기도 했다. 캠퍼스 모퉁이로 나있는 익숙한 돌담길을 지나 기숙사 입구에 다다른 난 우측에 달려있는 커다란 전신거울을 보며 부시시한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아 벌써 꼬불거리네.. 매직스트레이트 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냥 확 잘라버릴까'
허리까지 내려오는 어수선한 머리결을 한올한올 만지작거리던 나는 금새 제풀에 지쳐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는 정돈될리없는 머리를 뒤로하며 자리를 벗어난다. 한창 점심시간이었기에 붐비는 식당가와는 달리 기숙사 내부는 그 어느때보다 한산했고 그 탓에 약간은 쓸쓸함마져 자아내고 있었다. 물론 난 이런 한적함을 좋아하므로 별로 상관은 없었지만.
'1109호'
익숙한 방에 들어오자 문에 붙어있는 노란색 포스트잇을 발견할수 있었다.
'나 오늘 집에 내려가는거 알지? 나없다고 울지말고 ㅋㅋ 아참 오늘 소개팅 잘해 ㅋㅋ'
마음이 급했던탓인지 유난히 오늘따라 휘갈겨쓴 룸메이트의 쪽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녀석까지 소개팅에 대해 알고있는거 보면 역시 이번에도 지혜가 여기저기 떠들고 다닌게 분명했다.
'하여튼 지혜 고년은.. 에휴'
난 한숨을 푹 쉬며 책상위에 책몇가지와 가방을 아무렇게나 올려놓고는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역시 봄은 봄인건가? 요즘따라 몸이 너무 나른하다. 이런 기분이면 24시간도 잘수있을것 같았다.
'집이라....'
문득 룸메이트가 집에 내려갔다는 사실이 신경이 쓰인다. 혼자 보낼 주말이 외로워서가 아닌 그냥 뭐랄까 집에대한 막연한 기억이랄까? 집에 돌아가면 엄마, 아빠 언니 혹은 오빠, 아니 남동생 혹은 여동생일수도.. 아무튼 그런 가족들이 있는거겠지?
내겐 과거의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가족들 친구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대한 기억, 그리고 나의 대한 기억. 정확히 말하자면 3년전까지의 기억이 없다. 아빠 말로는 교통사고 였다고 하는데 당시의 내겐 사고의 기억조차 전혀 없었기에 처음엔 너무 당황스럽고 무서웠었다. 그러나 그럴때마다 늘 아빠 덕분에 버틸수 있었고, 이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해 대학생이 될수 있었던것 같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생때 이미 돌아가셨고, 그때부터 아빠 혼자서 힘들게 날 키워왔다는 사실에 어쩌면 무서움을 떨쳐내고 철이 들은건지도 몰랐다. 그러나 대학생이된 지금도 가끔씩 집에 내려간다는 친구들을 볼때면, 아빠한테 죄송스럽게도 마치 세상에 나혼자 남은것같은 쓸쓸함에 휩싸이곤 했다.
'후우.. 이러지말자. 내가 이러면 아빤 엄마가 얼마나 더 그립겠어'
가볍게 손으로 얼굴을 탁탁치며 자리에서 일어난 난 거울앞으로 가 앉고는 약간은 어설픈 솜씨로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딱히 화장이랄것도 없는 비비크림에 가벼운 아이라인 정도였지만.. 이제는 제법 그럴싸하게 아이라인을 그려넣고 스스로도 대견했는지 입가에 미소를 지은 난 옷장을 열고 뭘 입을지 이것저것 몸에 대보기 시작했다.
'하.. 입을옷이 없네'
옷은 많은데 입을게 하나도 없다는 말이 전혀 거짓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뭐 그렇다고 소개팅에서 잘보이기 위해 이러는건 절대 절.대 아니라고, 그냥 단순한 자기만족일 뿐이라며 스스로 최면을 걸던 난, 마지못해 울며 겨자먹기로 핑크색 롱후드티와 아이보리색 스키니진을 꺼내 입었다.
'이번달 월급타면 꼭 지를꺼야!'
결의에 찬 표정을 한껏 뽐내며 난 머리를 뒤로올리 질끈 묶는것을 끝으로 가방에 소지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시간이 가까웠음에 점심은 그냥 가서 샌드위치로 떼울 심산이었다. 종종 걸음으로 빨간색 캔버스화를 구겨 신으며 문을 열고 나온 난 여전히 한적한 기숙사 복도를 걸으며 익숙하게 이어폰을 귀에 꼽는다.
내가 일하는곳은 캠퍼스에서 20분정도 떨어진 거리에있는 작은 편의점이었는데, 다른곳에 비해 시급이 쎈건 아니었지만 주인아주머니의 푸근한 인상이 마음에 들어 하게된것 같다. 실제로 주인아주머니의 성격 또한 푸근한 인상처럼 따뜻했는데, 학교다니면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는게 대견하다며 줄곧 나를 잘 챙겨주셨다. 그런 덕분에 일하는것에 있어선 불편한게 전혀 없었고, 엄마의 기억이 전혀 없는 나로썬 가끔씩이나마 그런 아주머니가 마치 엄마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딸랑딸랑'
가게문에 달려있는 작은 종이 한껏 몸을 흔들며 멜로디를 만들어냈고 나를 확인한 주인아주머니가 사람좋게 웃으며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지윤양 왔어?"
"네에"
"밥은 먹었고?"
"이따가 간단히 샌드위치로 떼우려구여"
"젊은애가 그래가지고 공부나 잘 되겠어? 내 그럴줄 알고 도시락 시켜놨으니까 데워먹고 일해!"
"괜찮은데.. 헤헤"
"나야말로 괜찮아 얘~ 이따가 야간 교대자 오면 인수인계 잘 해주고~"
"네에, 들어가세요"
아주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가게를 나가셨고, 난 카운터 아래의 공간에 소지품을 집어넣고는 익숙하게 직원용 앞치마를 둘러멨다.
"자, 그럼 오늘도 화이팅 해볼까!"
여느때와 다를것 없이 기합을 팍 넣고는 물건 정리정돈 및 청소등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나였다.
'딸랑딸랑'
"어서오세요"
"에이씨라이트 한갑 주세요"
"여기 잔돈 2500원 이구요, 안녕히가세요"
'딸랑딸랑'
'딸랑딸랑'
"세분의마인드 한갑"
'딸랑딸랑'
'딸랑딸랑'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학교앞 '카페인 콩'에 다다르자 먼저 와있는 지혜와 소개팅남으로 보이는 낮선남자가 자리에 앉아있는게 보였다. 눈에 확 들어오는 이목구비와 날렵한 콧날 거기에 부리부리한 큰 눈을 가진 그 남자는 얼핏봐도 제법 호감형의 미남에 속해있었다. 뭐 그렇다고 첫눈에 반했다거나 그런건 아니었으므로 난 아무렇지 않게 차분한 표정을 유지한채 카페 문을열고 들어갔다.
"지윤찡 여기!!!"
문을 열고 들어가기 무섭게 매의눈을 가진 지혜가 손을 흔들며 호들갑을 떨었고 옆의 남자는 적잖히 당황한듯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알았어 알았어"
한숨을 푹 쉬며 테이블앞에 선 난 자연스럽게 그와 눈이마주쳤고 자연스럽게 간단한 인사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기집애 그렇게 싫다고 하더니만 안늦고 용케 왔넹 히히"
"알바가 조금 일찍 끝났을 뿐이거든!!"
"알았엉 기지배야.. 알바하느라 피곤했찡? 이리와 내가 안마해줄껭"
"됐어 괜찮아"
"치이-"
입을 삐쭉 내밀며 약간은 토라진듯한 표정을 짓던 지혜는 언제 그랬냐는듯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자, 오빠 이쪽은 내 절친이자 매일매일 남자따윈 관심없다고 부정하지만 속으론 외로움에 쩔어있는 차도녀 이지윤이라고 해, 사실 외로움보다 알바에 쩔어산다는게 함정."
"야!!"
"후후 그리고 지윤아, 이쪽은 우리과 최고 킹카 강진우오빠. 우리과 3학년 복학생 오빠야. 다들 뭐해 인사해야지!?"
지혜의 말에 멀뚱멀뚱 눈만 깜빡이고 있던 나는 그를 보며 작게 인사했고, 그역시 약간은 소심한 성격인지 얼굴이 새빨게져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킹카라며 지혜야? 앙? 저렇게 쑥맥이 대체 어딜봐서 킹칸데 이기지배야!!!!'
아무도 들을리없는 혼자만의 독백을 뒤로한채 말이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들었어요.."
"네.. 안녕하세요.. 헤헤.."
낮간지러운 소개가 끝나고 얼추 정리가 되자 지혜는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방해꾼은 사라질테니 즐거운 시간들 보내세요! 오빠 나가~ 지윤아 잘해!~"
"어..어?"
마치 일저질러놓고 도망가듯 지혜는 잘하란 한마디를 끝으로 카페를 후다닥 나가버렸고, 순간적으로 주선인이 사라진 우리 테이블은 얼음물을 끼얹은듯 조용해졌다. 어찌나 조용했는지 마치 공포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살인마의 눈을 피해 침대밑에 기어들어가 숨을 죽이고 있는것 같은 기분이 든것도 잠시, 이대론 안되겠다 싶었는지 그가 낮게 입을 열었다.
"저..저녁은.. 드셨나요..?"
"아.. 아뇨 아직요.."
"그럼 제가 근처에 맛있는집 아는데 자리를.. 옮길까요..?
"네..뭐.. 좋으실대로요, 저야 괜찮아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경직된 표정사이로 어렴풋이 아주 잠시 미소가 번졌다 사라졌다. 왠만한 사람이라면 이렇듯 짤막한 표정변화를 알아차릴리 만무했지만 난 예리한 여자니깐. 자리를 옮겨 그가 제안한곳은 다름아닌 데페 삼겹살집이었다. 나름 스파게티나 그런 여성스러움을 기대했건만 만나자마자 삼겹살이라니.. 이건 이미 소개팅이 아니었다..
'지글지글지글'
불판위에 핏기가 채 가시지않은 고깃덩어리들이 저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익어갔다. 그런데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유독 저 핏기가 남아있는 고깃 덩어리의 모습이 너무 징그럽게 느껴진다. 단순히 그냥 오랜만이라서가 아닌 뭔가 알수없는 찝찝한 기분이었다. 뭐 이젠 그냥 과거의 내가 좋아했나보다 라던가 싫어했었나보다 하고 그려러니 넘어가지만 말이다. 이런 나를 알리없는 그는 멋쩍게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괜찮으세요..? 안색..이.. 안좋아보이시는데.."
"아 아니예요 괜찮아요."
"괜히 제가 여기 오자고해서.. 이런.."
"괜찮대두요, 저 삼겹살 좋아해요 후후"
그는 소심함의 끝을 달리는 끝판왕이었다. 잔뜩 울상이 되어버려서는 자책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 난 과장된 제스쳐를 취하며 그를 달래기까지 해야했다. 이건 말이 복학생이지.. 마음같아선 휴학시키고 도로 군대에 보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 다행이고요.. 술한잔 하실래요?"
"네, 주세요"
난 자연스럽게 술을 따라받고는 한번에 들이켰다. 내 행동에 약간 놀랐는지 그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더니 나와 눈이마주치자 시선을 피하며 잽싸게 술을 들이켰다.
'큭 써..'
속마음과는 달리 태평하게 한잔 두잔.. 우리는 그렇게 술잔을 기울였고 테이블에는 어느덧 초록색 소주병이 5개나 올라와 있었다. 난 여자치고는 술이 과할만큼 쎈편이었기에 살짝 취기가 올라오고 있던 반면 그는 언제부턴가 혀가 꼬부라지기 시작하더니 이젠 눈까지 풀려가고 있었다. 이정도면 그는 내가 생각하는 진상의 조건을 두루 갖춘셈이었다.
"후우.. 지유나..내가 오빤니까 말펴나게 해도..데자너?"
"그러세요, 그나저나 많이 취하신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크그극.. 하나도 안취했엄마~ 딸꾹.."
"네네네.."
"나 되게..몬나보이지..? 술이나 취해가꼬.."
'다행히도 알긴아네'
"난진짜 벌어지가튼놈인거 가테.. 칭구가..주거버려도 가마니이꼬.. 크크.."
"친구가 죽다뇨? 무슨소리 하시는거예요.."
"한 3년됐나..고등학교 3학년때니까,,그때여써,, 그것을보게된게.."
"그것들?"
"다크섀도우라고 부른다지 요새는,, 그그ㅟ귀신나부랭이들를.."
"그 의문의죽음 말하는거에요? 그게 귀신짓이라구요?"
아마 3년전쯤부터인것같다. 의문의죽음이라는 사건으로 세상이 혼란스럽기 시작한게. 뭐 뉴스에서나 들은게 전부였고 적어도 나한테 혹은 내주변에서 그런일을 당한 사람은 없었기에, 나한텐 뜬구름 잡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었다. 지금에서야 무슨 다크새도우니 뭐니 시덥잖은 괴담같은 말로 퍼지고 있다지만, 그 전과 별단 다를건 없었기 때문에 허무맹랑한 소리라는 내생각은 변함없었다. 그런데 이건 무슨.. 소개팅 자리에서 취한것도 모자라.. 에휴.. 계속 들이킬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저기요, 정신차리세요. 집에 들어가셔야죠"
"그게,,내친구를,, 죽이는걸 봐써.. 봤는데,, 몸이 굳어서 안움직이더라..나란새끼는.."
"이봐요 오빠, 몸좀 일으켜봐요."
난 그의 팔을 내목에 감고는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여자혼자서 성인남자를 부축하는게 얼마나 힘든일인지 정말 겪어보지않은 사람은,, 아니 애초에 여자가 남자를 부축할일이 드문일이겠지만. 지혜한테 전화도 해보았지만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잔인한 음성에 오기가 생긴 난, 이 진상오빠를 택시타는곳까지만 이라도 직접 데려다 놓기로 마음먹었다.
어느덧 날은 까맣게 저물어 제법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나는 비틀거리며 한걸음 한걸음 떼기 바쁘게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그리고 그는 나한테 기댄채 비틀거리는 이와중에도 하소연아닌 하소연을 쉬지않고 내뱉고 있었다.
'이 진상아 좀 닥치고 있지 쫌! 하소연은 내가 하고싶단 말이야!!'
"사람이 언재죽을지 모른다는것은 당연한 운명같은것이지. 하지만 이건 그런 운명이랑은 다른이야기야. 명백히 목숨을 빼앗기는 것이니까 말야"
"알았으니까 오빠 가만히좀 있어봐요 힘들어죽겠다고!"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모를꺼야. 피가 사방으로 튀며 난도질당해 죽더라도 어차피 세간엔 흔한 사고중 하나라고 생각할뿐 누가 죽였냐라는 생각조차 할수없지. 왜냐고? 미세한 흔적조차 찾을수 없는데 어떻게 살인이라 생각하겠어? 하긴 처음엔 나도 몰랐으니까 큭큭"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는 그의 말이 이상하리만큼 낮익게 느껴진건 무엇때문이었을까? 순간적으로 알수없는 장면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와는 다른 이유로 내몸은 굳게 굳어져 움직일수가 없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흐르는 감각조차도 소름이 끼칠정도로 예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대체 언제부터 억양이 원래대로 돌아온거지?'
눈앞에 커다란 호랑이가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난 젖먹던 힘을 다해 그의팔을 뿌리치며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대..대체 뭐야.. 당신.."
"큭큭큭.. 뭐야 그표정은.. 쫄기라도 한거야?"
"........"
"부축해 주다말고 그렇게 놔버리면 얘가 많이 서운할것같은데? 얘가 너한테 관심이 있는것 같더라고 크크큭"
"대체.. 무슨.."
손가락으로 본인 스스로를 가르키며 '얘가' '애가'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되는듯양 기괴한 짓거리를 하는 그의 모습에 난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것만 같았다. 본능적인 위험신호로 인해 쓰러질듯 휘청이는 다리로 조금씩 뒷걸음 치는것 외엔 아무생각도 아무행동도 할수없었다.
"왜 도망가는건데? 얘가 너 좋다잖아 큭큭큭 아이고 크크크큭"
"꺄아악!!"
난 죽기살기로 비명을 지르며 몸을돌려 미친듯이 달렸다. 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도와주길 간절히 바란채. 그러나 그런 내 바램에도 불구하고 거리엔 사람이 단 한명도 보이질 않는다. 불과 좀전에 가게에서 나와 걸어올때만 해도 제법 눈에띄던 사람들이 지금은 터무니없게도 그림자조차 보이질 않는다. 거리라고 하기도 뭐한 온통 시커먼 어둠으로 덮혀 있는것이 마치 다른세상에 온것같은 착각이 들정도였다. 그리고 어느샌가 그는 내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이건 뭔가 잘못된것이 틀림없었다. 처음으로 세간에 떠돌던 허무맹랑한 소문이 뇌리에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다 도망 간거야? 아 진짜 너 재미없다."
'털썩'
더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다리가 한계를 맞이함에 따라 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런 나를 차갑게 노려보며 그가 천천히 한발 한발 다가온다.
'저벅 저벅'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손톱만큼의 힘조차 들어가질 않는다.
'저벅 저벅'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려간다...
'저벅 저벅'
바로 코앞까지 그가 다가왔다.....
'스윽'
그가 한손으로 내 목을 잡고 번쩍 들어올렸다. 목을 움켜쥔 악력에 숨이 막혀온다.
"컥"
기괴하게 입이 벌어지며 그가 웃고있는 모습이 눈에 각인되어 들어왔다. 이젠 정말 끝인걸까..? 서러운 눈물만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아빠.. 미안해요...'
"잘가라 그럼 크크큭큭"
목이 으스러지는것 같은 고통을 끝으로 난 눈을 질끈 감았다.
'서걱'
"크허허헉!!!!"
"케헥.. 야이 십새야 목뼈 뿌러져 뒤질뻔 했잖냐"
그는 괴기어린 비명을 지르며 한쪽팔을 움켜쥔채 뒷걸음 쳤다. 난 내목을 잡고있는, 그러나 지금은 반듯하게 잘려있는 그의 한쪽 팔을 목에서 떼어내며 죽는시늉을 했다.
"뭔놈의 힘이 이렇게 쎄, 시발 눈 뜨자마자 또 잠들뻔했네 썅!!"
"누..누구냐 너는...."
"내가 누구냐고..?"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에 한줄기 섬광이 번뜩인다.
'서걱'
무가 잘리는듯한 경쾌한 소리가 나며 놈의 몸에서 머리가 분리되어 떨어졌다.
'탁'
'데구르르르'
바닥에 떨어진 머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내 발밑까지 굴러왔다. 평생을 몸뚱이 위에 군림하고 있다가 처음으로 차디찬 바닥에 떨어져버렸으니 적응이 안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내 알바가 아니고, 그렇기에 망설임따위는 있을 턱이 없다. 차갑게 올려든 검을 놈의 정수리에 정확히 꽂아 넣는다.
'콰직'
'스르르르르'
수박 깨지는듯한 기분나쁜 효과음이 짤막한 멜로디가 되어 돌아온다. 그리고 그런 멜로디에 맞춰 놈의 시체는 춤을추듯 먼지가되어 공기중으로 흩어진다.
들고있던 검신을 허리춤에 갖다대며 손을 놓자, 검집으로 미끄러지듯 우아하게 빨려들어가며 청아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촤앙'
그리고 희미해지는 울림과 함께 허공에 흩어지며 자취를 감춘다.
"하나..."
"둘.."
"셋"
'와장창'
거울이 깨지듯 어두운 공간에 하나 둘씩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와르르 부서지며 잘린 공간의 파편 조각들이 낭자한다.
나이트메어 DS - 1화 -
출처 - 웃대(못된야옹)님 -
어느날부턴가 의문의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목숨을 잃는 이들이 늘어감에 따라 자연스레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처음엔 단순한 사고사로 판단, 그러나 대다수의 피해자 지인들의 진술에서 뭔가 석연치 않음을 느끼게 된다.
'죽은이들이 죽기 얼마전부터 평소완 다른, 마치 얼굴은 똑같지만 다른 사람같은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는것.'
이에 경찰은 약물중독에 의한 인격장애등과 같은 부작용일것을 감안, 국과수에 정밀검사를 요청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검사결과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고 수사는 또다시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이러는 와중에도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은 계속 늘어만 갔고, 사실상 경찰은 속수무책으로 방관하기에 이른다.
일각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사고사로 목숨을 잃는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이는 명백한 연쇄살인이라 주장했고 그에따라 경찰의 무능함을 비판하는 여론 역시 들끓기 시작했다.
그런 주장이 제기되자 국민들은 '나도 언제 저렇게 죽을지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감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불안에 떨며 살아야했고, 이에 정부는 국민들을 안심시키는게 급선무라고 판단 말도안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 이가 나올때마다 '전과가 있는 사람'을 아무나 잡아들여 범인으로 단정지어 버리는 것이었다. 국민들은 정부의 이런 비인간적인 정책을 알리 만무했고, 점차 안심하는듯 혼란은
사그라드는것처럼 보여졌다.
한편 이미 오래전부터 각종 종교집단을 비롯한 일각에서는 '인간이 아닌 무언가의 개입'이라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제기했고, 세간에 소문이 퍼지는건 삽시간이었다,
정부에선 이를 탐탁치 못하게 여겼는데, 대외적인 나라망신이라는 판단이 그 이유였다.
자연스럽게 경찰은 이런 정부의 판단에 의해 허무맹랑한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개인 혹은 단체들을 와해시키며 소문을 덮어버리기에 급급했지만, 예상과 달리 그런 경찰의 과민반응은 독이되어
'소문이 사실이기에 저렇듯 정부가 과민반응으로 대응하는것이다.' 라는 타당한 근거까지 그들에게 내어주게 되었다.
그런이유에서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점차 의문의 죽음과 소문을 연관짓기 시작했고, 의문의 죽음이 정말 단순한 사고사 혹은 인간에 의한 살인이 아닌 영적인 어떤 존재에 의한것이라 믿기 시작했다.
정부역시 이렇다 할 명확한 해답은 없었고, 소문을 잠재우기 위한 행동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것에 대한 책임에서인지 섣불리 손쓰지 못한채 묵묵히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그렇게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채 하루가 멀다하고 의문의 죽음은 나날히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의문의 죽음이 너무도 당연한 하나의 사고로 인식되어 갈때쯤..
사람들은 미세한 흔적은 커녕 그림자조차 드러내지 않은채 죽음을 안겨다주는 그 '무언가' 를 다크섀도우라 부르기 시작했다.
NIGHT MARE 2 - Dark Shadow
나이트메어 그 두번째 이야기 : 다크섀도우
1화. 긴 잠에서 깨어나다.
'후후훗 좋다아~'
벤치에 앉아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과 따사로운 햇빛에 취해 절로 미소짓는다. 수업이 없을때 가끔씩 이렇게 나와서 앉아 있으면 기분이 어찌나 좋은지 모르겠다. 물론 날씨가 좋아야 가능한 이야기지만.
오늘은 오전수업밖에 없는 관계로 다른날보다 좀더 이런 즐거움을 만끽할수 있었기에, 입가에 미소는 가실줄 몰랐다.
그.러.나
좋은일이 있으면 나쁜일도 있는법.
역시나 오늘도 어김없이 내 공강의 여유를 방해하는 못된년(?) 의 목소리가, 마치 활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날아와 마음을 아프게 했다.
"지윤찌잉~ 지윤찌잉~~"
저 기집애는 기차화통을 삶아먹었는지 체구는 조그마한게 목소리는 뭐저렇게 큰지 모르겠다. 난 익숙하게 구겨진 표정을 인위적인 미소로 바꾸는 현란한 스킬을 구사하며 손을 흔들었다.
"응~ 지혜양 왔쪄?"
"헥..응..헥헥.. 기지배..헥헥.. 여기있었냐? 헥..헥"
'얼마나 뛰었다고 숨을 그렇게 몰아쉬니.. 그러게 평소에 운동좀 해라 요년아, 누가보면 마라톤이라도 뛰고온줄 알겠어 아주'
난 속내와는 반대로 한껏 안쓰럽단 표정을 지으며 가방에서 물을 꺼내 건낸다.
'벌컥벌컥벌컥'
내 여유를 깨버린채 갑자니 나타나 개걸스럽게 물을 마셔대는 이 기집애의 이름은 박지혜. 같은 고등학교 단짝으로 운좋게 같은 대학까지 오게된 아이였다. 모든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긴 생머리의 여성스런 외모
덕택에 학교 선배오빠들의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말끝마다 누구누구찡, 그랬찡, 뭐했찡 찡찡찡 을 붙이며 귀여운척을 하는게 좀 재수없긴 해도 잘 맞는 기집애였다.
"캬하항~ 이제야 살겠어, 기집애 내가 너때문에 늘 이렇게 뛰어다녀야겠니!!"
"누가 뛰어오랬냐"
지혜는 매섭게 한번 째려보더니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양 호들갑을 떨었다.
"됐고~ 너 오늘 잊지않았지?"
"또..뭐가.."
"내가 너땜에 못산다 못살엉. 오늘 저녁에 소개팅하기로 했던거 까먹은거야? 내가 저번주부터 그렇게 말했건만.."
"그때 안나간다고 했잖아"
내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혜의 눈망울이 금방이라도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질듯 촉촉하다 못해 축축하게 젖어들어갔다.
"에휴, 알았어 알았어 나가면 되잖아. 기집애 울기는.."
"정말? 지윤찡.. 넌 정말 내 하나밖에없는 좋은 친구였엉 흐어엉"
"몇시에 어디서 보는건데."
"학교앞 '카페인 콩' 에서 7시에 만나기로 했엉. 지난주에도 말했지만 대박 킹카라구! 진짜 후회 안할꺼야 후훗"
"너도참.. 난 남자한테 관심 없다니깐"
"이번엔 다를껄? 후훗, 아무튼 이따 늦지말구 난 수업하나 남아 있어서 들어가봐야겟땅. 그럼 지윤찡 저녁에봐앙~"
뭐가 그리좋은지 지혜는 붕붕거리며 저만치 멀어져간다. 난 그런 지혜를 바라보며 벤치에 등을 바짝 기대며 눈을 감았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이 머리카락을 어루만져 주는게 무척이나 기분좋다.
'킹카라... 좀 기대되긴 하네.. 후훗'
한참동안을 따사로운 날씨에 취해 여유를 즐기던 난 자리에서 일어나 책 몇가지와 가방을 챙기고는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슬슬 아르바이트 시간도 다되어가고 있었고,
늦은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기도 했다. 캠퍼스 모퉁이로 나있는 익숙한 돌담길을 지나 기숙사 입구에 다다른 난 우측에 달려있는 커다란 전신거울을 보며 부시시한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아 벌써 꼬불거리네.. 매직스트레이트 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냥 확 잘라버릴까'
허리까지 내려오는 어수선한 머리결을 한올한올 만지작거리던 나는 금새 제풀에 지쳐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는 정돈될리없는 머리를 뒤로하며 자리를 벗어난다.
한창 점심시간이었기에 붐비는 식당가와는 달리 기숙사 내부는 그 어느때보다 한산했고 그 탓에 약간은 쓸쓸함마져 자아내고 있었다. 물론 난 이런 한적함을 좋아하므로 별로 상관은 없었지만.
'1109호'
익숙한 방에 들어오자 문에 붙어있는 노란색 포스트잇을 발견할수 있었다.
'나 오늘 집에 내려가는거 알지? 나없다고 울지말고 ㅋㅋ 아참 오늘 소개팅 잘해 ㅋㅋ'
마음이 급했던탓인지 유난히 오늘따라 휘갈겨쓴 룸메이트의 쪽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녀석까지 소개팅에 대해 알고있는거 보면 역시 이번에도 지혜가 여기저기 떠들고 다닌게 분명했다.
'하여튼 지혜 고년은.. 에휴'
난 한숨을 푹 쉬며 책상위에 책몇가지와 가방을 아무렇게나 올려놓고는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역시 봄은 봄인건가? 요즘따라 몸이 너무 나른하다. 이런 기분이면 24시간도 잘수있을것 같았다.
'집이라....'
문득 룸메이트가 집에 내려갔다는 사실이 신경이 쓰인다. 혼자 보낼 주말이 외로워서가 아닌 그냥 뭐랄까 집에대한 막연한 기억이랄까? 집에 돌아가면 엄마, 아빠 언니 혹은 오빠, 아니 남동생 혹은 여동생일수도..
아무튼 그런 가족들이 있는거겠지?
내겐 과거의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가족들 친구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대한 기억, 그리고 나의 대한 기억. 정확히 말하자면 3년전까지의 기억이 없다. 아빠 말로는 교통사고 였다고 하는데 당시의 내겐 사고의 기억조차
전혀 없었기에 처음엔 너무 당황스럽고 무서웠었다. 그러나 그럴때마다 늘 아빠 덕분에 버틸수 있었고, 이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해 대학생이 될수 있었던것 같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생때 이미 돌아가셨고, 그때부터
아빠 혼자서 힘들게 날 키워왔다는 사실에 어쩌면 무서움을 떨쳐내고 철이 들은건지도 몰랐다.
그러나 대학생이된 지금도 가끔씩 집에 내려간다는 친구들을 볼때면, 아빠한테 죄송스럽게도 마치 세상에 나혼자 남은것같은 쓸쓸함에 휩싸이곤 했다.
'후우.. 이러지말자. 내가 이러면 아빤 엄마가 얼마나 더 그립겠어'
가볍게 손으로 얼굴을 탁탁치며 자리에서 일어난 난 거울앞으로 가 앉고는 약간은 어설픈 솜씨로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딱히 화장이랄것도 없는 비비크림에 가벼운 아이라인 정도였지만..
이제는 제법 그럴싸하게 아이라인을 그려넣고 스스로도 대견했는지 입가에 미소를 지은 난 옷장을 열고 뭘 입을지 이것저것 몸에 대보기 시작했다.
'하.. 입을옷이 없네'
옷은 많은데 입을게 하나도 없다는 말이 전혀 거짓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뭐 그렇다고 소개팅에서 잘보이기 위해 이러는건 절대 절.대 아니라고, 그냥 단순한 자기만족일 뿐이라며 스스로 최면을 걸던 난, 마지못해 울며 겨자먹기로 핑크색 롱후드티와 아이보리색 스키니진을 꺼내 입었다.
'이번달 월급타면 꼭 지를꺼야!'
결의에 찬 표정을 한껏 뽐내며 난 머리를 뒤로올리 질끈 묶는것을 끝으로 가방에 소지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시간이 가까웠음에 점심은 그냥 가서 샌드위치로 떼울 심산이었다.
종종 걸음으로 빨간색 캔버스화를 구겨 신으며 문을 열고 나온 난 여전히 한적한 기숙사 복도를 걸으며 익숙하게 이어폰을 귀에 꼽는다.
내가 일하는곳은 캠퍼스에서 20분정도 떨어진 거리에있는 작은 편의점이었는데, 다른곳에 비해 시급이 쎈건 아니었지만 주인아주머니의 푸근한 인상이 마음에 들어 하게된것 같다.
실제로 주인아주머니의 성격 또한 푸근한 인상처럼 따뜻했는데, 학교다니면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는게 대견하다며 줄곧 나를 잘 챙겨주셨다. 그런 덕분에 일하는것에 있어선 불편한게 전혀 없었고,
엄마의 기억이 전혀 없는 나로썬 가끔씩이나마 그런 아주머니가 마치 엄마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딸랑딸랑'
가게문에 달려있는 작은 종이 한껏 몸을 흔들며 멜로디를 만들어냈고 나를 확인한 주인아주머니가 사람좋게 웃으며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지윤양 왔어?"
"네에"
"밥은 먹었고?"
"이따가 간단히 샌드위치로 떼우려구여"
"젊은애가 그래가지고 공부나 잘 되겠어? 내 그럴줄 알고 도시락 시켜놨으니까 데워먹고 일해!"
"괜찮은데.. 헤헤"
"나야말로 괜찮아 얘~ 이따가 야간 교대자 오면 인수인계 잘 해주고~"
"네에, 들어가세요"
아주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가게를 나가셨고, 난 카운터 아래의 공간에 소지품을 집어넣고는 익숙하게 직원용 앞치마를 둘러멨다.
"자, 그럼 오늘도 화이팅 해볼까!"
여느때와 다를것 없이 기합을 팍 넣고는 물건 정리정돈 및 청소등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나였다.
'딸랑딸랑'
"어서오세요"
"에이씨라이트 한갑 주세요"
"여기 잔돈 2500원 이구요, 안녕히가세요"
'딸랑딸랑'
'딸랑딸랑'
"세분의마인드 한갑"
'딸랑딸랑'
'딸랑딸랑'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학교앞 '카페인 콩'에 다다르자 먼저 와있는 지혜와 소개팅남으로 보이는 낮선남자가 자리에 앉아있는게 보였다. 눈에 확 들어오는 이목구비와 날렵한 콧날 거기에 부리부리한 큰 눈을 가진 그 남자는
얼핏봐도 제법 호감형의 미남에 속해있었다. 뭐 그렇다고 첫눈에 반했다거나 그런건 아니었으므로 난 아무렇지 않게 차분한 표정을 유지한채 카페 문을열고 들어갔다.
"지윤찡 여기!!!"
문을 열고 들어가기 무섭게 매의눈을 가진 지혜가 손을 흔들며 호들갑을 떨었고 옆의 남자는 적잖히 당황한듯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알았어 알았어"
한숨을 푹 쉬며 테이블앞에 선 난 자연스럽게 그와 눈이마주쳤고 자연스럽게 간단한 인사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기집애 그렇게 싫다고 하더니만 안늦고 용케 왔넹 히히"
"알바가 조금 일찍 끝났을 뿐이거든!!"
"알았엉 기지배야.. 알바하느라 피곤했찡? 이리와 내가 안마해줄껭"
"됐어 괜찮아"
"치이-"
입을 삐쭉 내밀며 약간은 토라진듯한 표정을 짓던 지혜는 언제 그랬냐는듯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자, 오빠 이쪽은 내 절친이자 매일매일 남자따윈 관심없다고 부정하지만 속으론 외로움에 쩔어있는 차도녀 이지윤이라고 해, 사실 외로움보다 알바에 쩔어산다는게 함정."
"야!!"
"후후 그리고 지윤아, 이쪽은 우리과 최고 킹카 강진우오빠. 우리과 3학년 복학생 오빠야. 다들 뭐해 인사해야지!?"
지혜의 말에 멀뚱멀뚱 눈만 깜빡이고 있던 나는 그를 보며 작게 인사했고, 그역시 약간은 소심한 성격인지 얼굴이 새빨게져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킹카라며 지혜야? 앙? 저렇게 쑥맥이 대체 어딜봐서 킹칸데 이기지배야!!!!'
아무도 들을리없는 혼자만의 독백을 뒤로한채 말이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들었어요.."
"네.. 안녕하세요.. 헤헤.."
낮간지러운 소개가 끝나고 얼추 정리가 되자 지혜는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방해꾼은 사라질테니 즐거운 시간들 보내세요! 오빠 나가~ 지윤아 잘해!~"
"어..어?"
마치 일저질러놓고 도망가듯 지혜는 잘하란 한마디를 끝으로 카페를 후다닥 나가버렸고, 순간적으로 주선인이 사라진 우리 테이블은 얼음물을 끼얹은듯 조용해졌다. 어찌나 조용했는지
마치 공포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살인마의 눈을 피해 침대밑에 기어들어가 숨을 죽이고 있는것 같은 기분이 든것도 잠시, 이대론 안되겠다 싶었는지 그가 낮게 입을 열었다.
"저..저녁은.. 드셨나요..?"
"아.. 아뇨 아직요.."
"그럼 제가 근처에 맛있는집 아는데 자리를.. 옮길까요..?
"네..뭐.. 좋으실대로요, 저야 괜찮아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경직된 표정사이로 어렴풋이 아주 잠시 미소가 번졌다 사라졌다. 왠만한 사람이라면 이렇듯 짤막한 표정변화를 알아차릴리 만무했지만 난 예리한 여자니깐.
자리를 옮겨 그가 제안한곳은 다름아닌 데페 삼겹살집이었다. 나름 스파게티나 그런 여성스러움을 기대했건만 만나자마자 삼겹살이라니.. 이건 이미 소개팅이 아니었다..
'지글지글지글'
불판위에 핏기가 채 가시지않은 고깃덩어리들이 저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익어갔다. 그런데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유독 저 핏기가 남아있는 고깃 덩어리의 모습이 너무 징그럽게 느껴진다. 단순히 그냥 오랜만이라서가 아닌 뭔가 알수없는
찝찝한 기분이었다. 뭐 이젠 그냥 과거의 내가 좋아했나보다 라던가 싫어했었나보다 하고 그려러니 넘어가지만 말이다. 이런 나를 알리없는 그는 멋쩍게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괜찮으세요..? 안색..이.. 안좋아보이시는데.."
"아 아니예요 괜찮아요."
"괜히 제가 여기 오자고해서.. 이런.."
"괜찮대두요, 저 삼겹살 좋아해요 후후"
그는 소심함의 끝을 달리는 끝판왕이었다. 잔뜩 울상이 되어버려서는 자책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 난 과장된 제스쳐를 취하며 그를 달래기까지 해야했다. 이건 말이 복학생이지.. 마음같아선 휴학시키고 도로 군대에
보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 다행이고요.. 술한잔 하실래요?"
"네, 주세요"
난 자연스럽게 술을 따라받고는 한번에 들이켰다. 내 행동에 약간 놀랐는지 그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더니 나와 눈이마주치자 시선을 피하며 잽싸게 술을 들이켰다.
'큭 써..'
속마음과는 달리 태평하게 한잔 두잔.. 우리는 그렇게 술잔을 기울였고 테이블에는 어느덧 초록색 소주병이 5개나 올라와 있었다. 난 여자치고는 술이 과할만큼 쎈편이었기에 살짝 취기가 올라오고 있던 반면
그는 언제부턴가 혀가 꼬부라지기 시작하더니 이젠 눈까지 풀려가고 있었다. 이정도면 그는 내가 생각하는 진상의 조건을 두루 갖춘셈이었다.
"후우.. 지유나..내가 오빤니까 말펴나게 해도..데자너?"
"그러세요, 그나저나 많이 취하신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크그극.. 하나도 안취했엄마~ 딸꾹.."
"네네네.."
"나 되게..몬나보이지..? 술이나 취해가꼬.."
'다행히도 알긴아네'
"난진짜 벌어지가튼놈인거 가테.. 칭구가..주거버려도 가마니이꼬.. 크크.."
"친구가 죽다뇨? 무슨소리 하시는거예요.."
"한 3년됐나..고등학교 3학년때니까,,그때여써,, 그것을보게된게.."
"그것들?"
"다크섀도우라고 부른다지 요새는,, 그그ㅟ귀신나부랭이들를.."
"그 의문의죽음 말하는거에요? 그게 귀신짓이라구요?"
아마 3년전쯤부터인것같다. 의문의죽음이라는 사건으로 세상이 혼란스럽기 시작한게. 뭐 뉴스에서나 들은게 전부였고 적어도 나한테 혹은 내주변에서 그런일을 당한 사람은 없었기에, 나한텐 뜬구름 잡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었다.
지금에서야 무슨 다크새도우니 뭐니 시덥잖은 괴담같은 말로 퍼지고 있다지만, 그 전과 별단 다를건 없었기 때문에 허무맹랑한 소리라는 내생각은 변함없었다.
그런데 이건 무슨.. 소개팅 자리에서 취한것도 모자라.. 에휴.. 계속 들이킬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저기요, 정신차리세요. 집에 들어가셔야죠"
"그게,,내친구를,, 죽이는걸 봐써.. 봤는데,, 몸이 굳어서 안움직이더라..나란새끼는.."
"이봐요 오빠, 몸좀 일으켜봐요."
난 그의 팔을 내목에 감고는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여자혼자서 성인남자를 부축하는게 얼마나 힘든일인지 정말 겪어보지않은 사람은,, 아니 애초에 여자가 남자를 부축할일이 드문일이겠지만.
지혜한테 전화도 해보았지만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잔인한 음성에 오기가 생긴 난, 이 진상오빠를 택시타는곳까지만 이라도 직접 데려다 놓기로 마음먹었다.
어느덧 날은 까맣게 저물어 제법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나는 비틀거리며 한걸음 한걸음 떼기 바쁘게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그리고 그는 나한테 기댄채 비틀거리는 이와중에도 하소연아닌 하소연을
쉬지않고 내뱉고 있었다.
'이 진상아 좀 닥치고 있지 쫌! 하소연은 내가 하고싶단 말이야!!'
"사람이 언재죽을지 모른다는것은 당연한 운명같은것이지. 하지만 이건 그런 운명이랑은 다른이야기야. 명백히 목숨을 빼앗기는 것이니까 말야"
"알았으니까 오빠 가만히좀 있어봐요 힘들어죽겠다고!"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모를꺼야. 피가 사방으로 튀며 난도질당해 죽더라도 어차피 세간엔 흔한 사고중 하나라고 생각할뿐 누가 죽였냐라는 생각조차 할수없지. 왜냐고?
미세한 흔적조차 찾을수 없는데 어떻게 살인이라 생각하겠어? 하긴 처음엔 나도 몰랐으니까 큭큭"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는 그의 말이 이상하리만큼 낮익게 느껴진건 무엇때문이었을까? 순간적으로 알수없는 장면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와는 다른 이유로 내몸은
굳게 굳어져 움직일수가 없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흐르는 감각조차도 소름이 끼칠정도로 예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대체 언제부터 억양이 원래대로 돌아온거지?'
눈앞에 커다란 호랑이가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난 젖먹던 힘을 다해 그의팔을 뿌리치며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대..대체 뭐야.. 당신.."
"큭큭큭.. 뭐야 그표정은.. 쫄기라도 한거야?"
"........"
"부축해 주다말고 그렇게 놔버리면 얘가 많이 서운할것같은데? 얘가 너한테 관심이 있는것 같더라고 크크큭"
"대체.. 무슨.."
손가락으로 본인 스스로를 가르키며 '얘가' '애가'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되는듯양 기괴한 짓거리를 하는 그의 모습에 난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것만 같았다. 본능적인 위험신호로 인해 쓰러질듯 휘청이는 다리로 조금씩 뒷걸음 치는것 외엔 아무생각도 아무행동도 할수없었다.
"왜 도망가는건데? 얘가 너 좋다잖아 큭큭큭 아이고 크크크큭"
"꺄아악!!"
난 죽기살기로 비명을 지르며 몸을돌려 미친듯이 달렸다. 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도와주길 간절히 바란채. 그러나 그런 내 바램에도 불구하고 거리엔 사람이 단 한명도 보이질 않는다. 불과 좀전에 가게에서 나와
걸어올때만 해도 제법 눈에띄던 사람들이 지금은 터무니없게도 그림자조차 보이질 않는다. 거리라고 하기도 뭐한 온통 시커먼 어둠으로 덮혀 있는것이 마치 다른세상에 온것같은 착각이 들정도였다. 그리고 어느샌가 그는 내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이건 뭔가 잘못된것이 틀림없었다. 처음으로 세간에 떠돌던 허무맹랑한 소문이 뇌리에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다 도망 간거야? 아 진짜 너 재미없다."
'털썩'
더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다리가 한계를 맞이함에 따라 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런 나를 차갑게 노려보며 그가 천천히 한발 한발 다가온다.
'저벅 저벅'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손톱만큼의 힘조차 들어가질 않는다.
'저벅 저벅'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려간다...
'저벅 저벅'
바로 코앞까지 그가 다가왔다.....
'스윽'
그가 한손으로 내 목을 잡고 번쩍 들어올렸다. 목을 움켜쥔 악력에 숨이 막혀온다.
"컥"
기괴하게 입이 벌어지며 그가 웃고있는 모습이 눈에 각인되어 들어왔다. 이젠 정말 끝인걸까..? 서러운 눈물만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아빠.. 미안해요...'
"잘가라 그럼 크크큭큭"
목이 으스러지는것 같은 고통을 끝으로 난 눈을 질끈 감았다.
'서걱'
"크허허헉!!!!"
"케헥.. 야이 십새야 목뼈 뿌러져 뒤질뻔 했잖냐"
그는 괴기어린 비명을 지르며 한쪽팔을 움켜쥔채 뒷걸음 쳤다. 난 내목을 잡고있는, 그러나 지금은 반듯하게 잘려있는 그의 한쪽 팔을 목에서 떼어내며 죽는시늉을 했다.
"뭔놈의 힘이 이렇게 쎄, 시발 눈 뜨자마자 또 잠들뻔했네 썅!!"
"누..누구냐 너는...."
"내가 누구냐고..?"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에 한줄기 섬광이 번뜩인다.
'서걱'
무가 잘리는듯한 경쾌한 소리가 나며 놈의 몸에서 머리가 분리되어 떨어졌다.
'탁'
'데구르르르'
바닥에 떨어진 머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내 발밑까지 굴러왔다. 평생을 몸뚱이 위에 군림하고 있다가 처음으로 차디찬 바닥에 떨어져버렸으니 적응이 안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내 알바가 아니고, 그렇기에 망설임따위는 있을 턱이 없다.
차갑게 올려든 검을 놈의 정수리에 정확히 꽂아 넣는다.
'콰직'
'스르르르르'
수박 깨지는듯한 기분나쁜 효과음이 짤막한 멜로디가 되어 돌아온다. 그리고 그런 멜로디에 맞춰 놈의 시체는 춤을추듯 먼지가되어 공기중으로 흩어진다.
들고있던 검신을 허리춤에 갖다대며 손을 놓자, 검집으로 미끄러지듯 우아하게 빨려들어가며 청아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촤앙'
그리고 희미해지는 울림과 함께 허공에 흩어지며 자취를 감춘다.
"하나..."
"둘.."
"셋"
'와장창'
거울이 깨지듯 어두운 공간에 하나 둘씩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와르르 부서지며 잘린 공간의 파편 조각들이 낭자한다.
그리고 좀전과 180도 달라진 세상을 바라보는 내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옅게 묻어있었다.
"이기준이다 새꺄"
2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