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가뿐 숨을 쉬며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심난한 심정이 쉽게 정리가 되지 않는다. 직접 나서지는 않았지만 괴물들이 아닌 멀쩡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비록 홀린 상태라고는 하지만 엄연한 정상인이었다. 과연 이게 옳은 일일까.. 준우 아저씨는 답답한 표정으로 바로 옆 창문을 내렸다.
휘이잉.
밴의 가속도에 비례해 거센 바람이 불어온다. 준우 아저씨는 노인들에게 한 행동을 씻어내기라도 하듯.. 그대로 바람을 묵묵히 맞기 시작한다.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우린 정당한 일을 한거야.”
묵묵히 밴을 몰던 아저씨가 말했다. 알고 있지만 노인들을 죽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아니지.. 지켜보는 내 심정이 이런데 아저씨들은 오죽할까. 민정 누나의 일이 있고난 후 독하게 먹었던 다짐들이 점점 무뎌져간다. 안된다.. 이래서는 안된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하고 현재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 모든걸 포기한 눈이었어.”
나직이 중얼거리는 동생의 말. 그 마지막 순간에 어르신의 얼굴을 살핀 것일까.. 아직도 귀에는 어르신의 마지막 발악에 가까이 포효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다.
“곧 해가 지겠군.”
아저씨 말에 앞 좌석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어 전자시계를 본다. 16시가 훌쩍 넘긴 시각. 17시가 다 되어간다. 1~2시간 뒷면 어두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은혜야.”
응? 조수석에 앉아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은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놀란 눈으로 아저씨를 바라보자 트렁크 쪽을 가리켰다.
“아..”
그럼 그렇지. 아저씨는 은혜를 두고 갈 사람이 아니다. 트렁크 뒤 남자 어깨에 기대어 있는 은혜의 뒷모습이 보인다. 다른 옷으로 입혀주자고 마음 먹은 것과는 다르게 여전히 남자와 같은 후드를 입고 있다. 그럴 여유도 없었지.. 은혜의 작은 어깨가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걸 보니 아마 잠들어 있는 것 같다.
“저 남자가 은혜를 확실하게 지켜주고 있었어. 조금 안심이 되더군.” “그래요?” “보지 못했겠지만 은혜에게 접근하는 노인들에게 가차없이 공격을 하더군. 물론, 괴물때처럼 피가 튀기지는 않았지만.”
괴물.. 피. 당구장에서 사신처럼 서있던 남자.. 그랬구나.. 은혜를 지켜주고 있었구나. 새삼 남자가 다르게 보인다. 물론 후드에 가려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는 없지만 아저씨들을 볼 때와 같이 듬직함이 느껴진다. 옆에 앉은 동생이 조수석의 윗부분을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세상 일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더니..” “그렇지.. 자네들보다 오래 살아온 나도 당장 오분. 십분의 일을 장담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내일이나 모레의 일은 오죽하겠는가.”
하아.. 다시 의자에 기대 창문을 살짝 연다. 낮과는 달리 제법 차가워진 바람과 붉은 빛의 노을이 시야에 가득 찬다. 낮에 그 맹렬한 기세로 눈을 따갑게 하던 태양이 서서히 저물어가는 모양이다. 그 순간까지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노을의 색이 유독 붉다.
“거리가 꽤 되는군. 오늘은 길에서 보내야겠어.”
아저씨 말대로 앞에 보이는 거라고는 끝이 없는 고속도로와 넓게 펼쳐진 풀들이 전부다. 가끔 보이는 주인을 잃은 폐차와 안성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제외하고는 황량하다. 50키로.. 1~2시간만에 갈 수 있는 거리일까. 만약 간다고 쳐도 무사히 밤을 지낼 곳을 찾을 수 있을까. 19시를 넘어서 돌아다니는 것은 자살 행위에 가깝다.
“그럼 간단히 요기할 것만 하고 일찍 자는게 좋겠습니다. 형님.”
준우 아저씨의 말에 모두 동의하는 눈치다. 아저씨는 마지막 밴의 속도를 높였다. 나와 동생. 준우 아저씨는 밴 안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과자 봉지나 초코바, 빵 등을 주섬주섬 챙겼다. 게다가 구석에 처박힌 우리들의 배낭을 열면 먹을거리가 꽤 될 것이다.
부우웅.
어느 정도 먹을 거리가 손에 잡히자 서서히 밴이 속도를 줄이더니 이내 멈췄다. 곧 19시가 되어간다. 어설프게 움직여서 들키는 것보다 이런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그 자리에서 대충 허기를 달래기 시작했다. 낮에 비하면 변변찮은 저녁 식사지만 아까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은 정말 불행중 다행이다.
“밤에 녀석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할거야. 지금 차안에 있다고 해서 무조건 안전하다고 볼 수 없으니 그제처럼 불침번을 서야 할 것 같군. 다들 동의하는가?” “그러죠.”
우리는 빠르게 허기를 채우고 의자에 편히 기댔다. 아직 잠을 자기에는 이른 시각이다.
“무사히 부산까지 갈 수나 있으려나..”
한 숨 섞인 준우 아저씨의 목소리. 이제 겨우 안성에 도착한 상태다. 밤 낮으로 교대를 해가며 밴을 몰면 비교적 빠르게 도착할 수 있겠지만 밤은 우리들의 영역이 아니다. 게다가 이 정도의 인원이 전부 가려면 충분한 먹을 거리도 있어야 하고 기름도 충분해야 한다. 게다가 은혜라는 변수 때문에 한치도 방심할 수가 없다.
“크윽..”
우민이 형의 신음소리. 우리는 일제히 우민이 형 안색을 살폈다. 땀을 뻘뻘흘리며 안색이 창백하다. 준우 아저씨는 우민이 형이 입고 있는 군복 상의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상체가 드러날수록 우리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정신없이 달려온 터라 우민군의 상태를 잊고 있었어..”
“준우 아저씨의 도움을 받으며 상의를 완전히 벗은 우민이 형의 상태가 꽤 심각했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으스러진 팔의 색이 점차 바래가고 있었다. 세포들이 죽어 부패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어떻게 아픈 소리 내지 않고 참아온 것일까.. 보고 있기만 해도 그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다.
“괜..찮습니다..” “장난해? 이게 괜찮은거냐?”
괜히 준우 아저씨가 역정을 냈다. 왜 더 화를 내는지 알 것 같았다. 준우 아저씨에게 김 대위와 민정 누나의 죽음이 상당히 큰 충격으로 다가와 마음을 초조하게 한 것이다. 우민이 형을 걱정하고 있지만 그 초조한 마음이 더 커서 이런 식으로 화를 내는 것이다.
“형님..”
준우 아저씨가 아저씨를 보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 아저씨는 잠시 주저했다.
“흐음..”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토하는 아저씨. 그렇다고 해서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당장 병원을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만약 찾았다고 해도 의사들이 과연 살아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괴물들의 습격에서 안전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면 답은 하나다. 하지만 은혜의 몸은 점점 야위어가고 있다. 커다란 후드 때문에 완전히 보이지는 않지만 전보다 은혜의 얼굴이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후우.”
어려운 결정임은 틀림 없다. 괴로워하는 우민이 형과 멍한 표정으로 창문 밖을 응시하는 은혜. 아저씨는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모르는 우민이 형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삼켜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기가 힘든지 준우 아저씨는 서둘러 은혜를 불렀다.
“....”
역시 반응이 없는 은혜. 준우 아저씨는 손을 뻗어 은혜를 부르려고 했지만 그림자처럼 은혜 곁에 있는 남자가 그것을 저지했다. 검은 털이 아닌 검은 색의 손이다. 흑인과는 다른.. 아주 짙은 검은 색이다. 준우 아저씨는 놀란 얼굴로 남자와 손을 번갈아 보았다. 적색의 눈을 조용히 빛내며 남자가 말했다.
“메시아께서 힘들어 하십니다.” “이거 안놔?”
준우 아저씨는 당황한 기색으로 손을 빼려고 했다. 그러나 남자의 악력은 상상이상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다. 은혜를 지키는 남자의 범위가 우리에게까지 미칠줄은 몰랐다.
“그럼 쟤는 어떡하라고!”
힘으로 되지 않자 준우 아저씨는 소리를 지르며 남자를 노려봤다. 남자는 예의 무표정으로 돌아가 괴로워하는 우민이 형을 보며 말했다.
“팔을 자르면 됩니다.” “..뭐라고?”
우민이 형도 예상한 일인지 크게 놀라지 않는다. 하지만 해결책을 알고 있는 우리들은 속이 탈 수 밖에 없었다. 멍한 우리들을 보며 남자는 반복해서 말했다.
“팔을 절단하십시오.” “미친놈아! 쟤 저 상태로 팔을 자르면 누가 봉합하고 치료해줄건데? 여기에 어디 의료도구라도 있는 줄 알아?”
잔뜩 흥분한 준우 아저씨가 침까지 튀겨가며 남자에게 대들었다. 하지만 남자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제가 멈추게 합니다.” “뭐..?”
그 말은 우리들을 멍하게 하기 충분했다. 의료기술을 따로 익히기라도 한건가? 우민이 형도 몸을 슬슬 움직이며 말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에요. 저 남자가 해준다는데.. 뭐가 문제에요.. 해가 지고 있어요.. 서둘러야 해요..”
한 글자. 한 글자를 고통스러운 것을 억지로 삼켜내며 말하는 우민이 형. 준우 아저씨는 그런 우민이 형을 보더니 한숨을 쉬며 옆문을 열었다.
드르륵.
밴의 문이 열리자 거의 저물어가고 있는 태양의 꼬리가 보인다. 시간이 없다. 우리 모두 밖으로 나와 소총을 들고 주위를 경계를 했다. 곧 우민이 형이 밖으로 나왔는데 왼쪽 팔 전체가 종잇장처럼 너덜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내 따라나온 남자는 자신의 옷 소매를 꽤 큰 면적으로 찢고는 동생에게 소매를 내밀었다.
“불을.”
동생은 얼결에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찢은 소매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슨 소재로 된건지 쉽게 불이 붙지가 않았다. 끈기있게 바람을 피해 한 곳에 오랫동안 열을 가하자 서서히 불이 붙기 시작하는 소매. 남자는 완전히 소매가 불에 휩싸일 때까지 소매를 들고 서 있었다. 찢어진 옷 사이로 튀어나온 검은 손이 자연과 동화가 되어 거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뜨겁지도 않나.. 괴물놈.”
준우 아저씨 말대로 뜨거운 화염이 이내 남자의 손을 집어 삼켰지만 남자의 표정은 여전히 편안해보였다. 이내 우민이 형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 우민이 형은 인상을 찡그리며 남자에게 다가갔다.
“빌어..먹을 놈. 날 이렇게 만들더니.. 치료를 해..주겠다? 병주고 약주는,, 것도 정도가 있지.. 크윽.” “아플겁니다.”
남자의 말에 우민이 형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자의 다른 손이 보이지도 않는 빠르기로 허공을 갈랐다.
피익.
깔끔하게 자로 잰 듯한 솜씨. 우민이 형의 몸이 허전해 보인다. 그제서야 몸을 떠나 바닥에 굴러 떨어진 팔이 눈에 들어온다. 취이익. 잘린 부분 사이로 피가 사방으로 튀며 우민이 형의 비명소리가 널리 퍼진다.
“끄아아악!”
그러나 남들과 다른 정신력을 가진 우민이 형은 두 눈을 빛내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를 분수처럼 피를 뿜어대고 있는 살갗에 가져다대었다.
“끄아아아악!”
엄청난 고통에 몸을 부들부들떠는 우민이 형. 보는 우리들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고기가 타는 냄새와 특유의 비릿한 피냄새가 어우러져 후각을 자극한다. 계속되는 격통에 우민이 형의 다리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스르르 무너지려는 우민이 형의 신형을 강하게 잡은 남자의 손에서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끄아아악!”
입에 하얀 거품을 물며 부들부들 몸을 떠는 우민이 형의 고개가 아래로 꺾였다. 혼절한 것이다. 그럼에도 남자는 계속 일정 부위를 불로 지져댔다. 5분 정도가 흐르자 남자는 허공을 빠르게 손으로 저어 불덩이를 꺼버리고는 우민이 형을 들어 밴안에 눕혔다. 아직도 고기가 타는 냄새와 특유의 향이 고속도로에 가득하다. 짧다면 짧은 시술이었지만 어느덧 해가 완전히 저물어 있었다.
“일단 여기를 떠야겠어. 너무 소음이 컸어.”
아저씨 말에 우리는 재빨리 밴에 올랐다.
“크아아아!”
빌어먹을 타미밍하고는.. 괴물들의 소리다. 분명 우민이 형이 내는 소음과 특유의 냄새를 맡고 근처까지 온 것이 확실하다. 동생이 서둘러 문을 닫자 아저씨는 밴을 빠르게 후진시켰다. 아직 고속도로에 녀석들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크아아아!”
꽤 가깝다. 아저씨는 바로 밴을 멈추고는 시동을 껐다. 20~30미터 왔을까? 고속도로에는 드문드문 빛나는 가로등 말고는 보이는게 없다. 곧 녀석들이 이리로 올 것이다. 숨을 최대한 죽이고 앞을 주시했다.
“크르르.”
바로 옆에서 놈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제발 지나가라.. 제발. 밴의 바로 옆에 다가온 두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밴 창문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붉은 색의 눈동자와 괴물 특유의 검은 털이 하나하나 온 몸의 세포들을 깨우기 시작한다. 낮이라면 희미하게 우리들의 실루엣이 보였겠지만 다행히 지금은 밤이었다.
“크르르르.”
날카로운 이빨을 빛내며 기다란 혀로 여기저기 밴 차체를 핥기 시작하는 녀석들. 아까 전, 우민이 형 몸에서 사방으로 튀던 피를 핥는 것 같다.
“크아아!”
그 때 앞에서 나타난 녀석들이 잘린 팔뚝 하나를 두고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소리에 차체를 핥던 녀석들도 팔을 차지하기 위해 앞으로 뛰쳐나갔다.
“크아아!”
우민이 형의 팔 하나를 두고 서로 먹어보겠다며 몸싸움을 벌이느 녀석들. 그런 녀석들의 악력을 견딜만큼 인간의 팔은 강하지 않다. 두둑. 거리며 부러진 팔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살덩이를 씹어대는 녀석들과 그런 녀석들을 잡기 위해 괴성을 지르는 다른 녀석들.
“생지옥이 따로 없구만.. 제길.”
모두 마른침을 삼키며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런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제발 이대로 녀석들이 밴을 지나쳐가기를..’ 하고 간절히 기도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지옥에서 사는 악귀들처럼 팔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녀석들은 손에 남은 살덩이까지 삭삭 핥으며 아쉬운 얼굴을 했다. 그 중에서도 불행히 살점 한입을 못 먹어본 녀석이 씩씩 대면서 다른 녀석들을 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연스럽게 다시 거리를 누비기 시작하는 녀석들.
“크아아!”
이내 녀석은 자기 성질을 못 이기고 앞에서 걷고 있는 녀석의 목을 강하게 물었다. 피가 사방으로 튀며 물린 녀석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양손으로 상대방의 머리를 강하게 두드려댔다. 하지만 독기가 오를 대로 오른 녀석은 그대로 목을 물어 뜯어버리고는 동료들을 보며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아!”
길고 긴 포효 속에 녀석의 절박한 심정이 조금이나마 느껴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괴물이라고는 하지만 녀석들도 나름대로 살아가려고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괴물이 되었다면 분명 저런식으로 살아가려고 발버둥을 쳤겠지.. 움직이지 않는 동료를 멍하니 보는 다른 괴물들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고개를 갸웃거린다.
“크르르.”
곧 무슨 상황인지 깨달은 녀석들은 동료를 죽인 녀석을 처단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숫자로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녀석은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얼씨구..” “정말 돈 주고도 못 볼 구경거리네요.”
이럴때일수록 준우 아저씨와 동생은 죽이 잘 맞는 것 같다. 그러나 틀린 말도 아니다. 인간의 본성 중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파괴의 욕구가 꿈틀거리며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더, 더 죽이라고 괴물에게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게 안타까웠다. 왜 UFC나 프라이드를 보며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알 것 같다.
녀석의 허기가 공포보다 큰 탓이다. 입에 물린 동료의 살덩이를 질겅질겅 씹으며 주욱 뒤로 물러나는 녀석. 가만! 이대로 주욱 이어지면 우리 밴과 부딪히게 된다.
“아저씨..” “알고 있네.”
최악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고작 저 한 놈 때문에 모든 걸 망칠 순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하지..? 밴을 두리번거리며 녀석들의 주의를 끌만한 것을 찾아본다. 그러다 문득 우민이 형의 런닝에 눈이 갔다. 아직 마르지도 않은 피로 인해 새빨갛게 염색된것 같은 착각을 주는 런닝.. 어쩌면 녀석들의 주의를 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혼절한 우민이 형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일단 상황을 좋게 흐르게 해야 한다. 부욱. 런닝을 손으로 찢어 초코바에 감싸고 묶는다. 멀리 던지기 위해서다. 아직 촉촉이 젖은 런닝. 비릿한 피 냄새가 코를 찌른다.
“조심해..”
지금 던져서는 안된다. 녀석들이 조금 더 다가온 후에.. 그 후에 던져야 한다.
“크르르.”
낮게 이를 갈기만 할뿐 공격을 섣불리 못하는 녀석과. 가소로운 미생물을 대하듯 여유를 부리며 압박해 가는 녀석들.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다. 제발 성공해야 할텐데.. 10미터.. 9미터.. 8미터. 지금이다! 작은 소리를 내는 순간 게임오버다. 수동으로 밴의 창문을 서서히 연다. 어설프게 창문을 여는 것보다 확실하게 연 뒤, 멀리 던지는 것이 가장 낳은 선택일 것 같다.
“크르르르.”
‘애초에 저 남자한테 부탁을 하면 일이 더 쉽게 끝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여지껏 봐온 남자의 태도를 보면 은혜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입히지 않는한, 나서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가 타개해 나가야한다는 소리다.
“크르르.”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손에 들린 런닝 조각을 단단히 쥐고 그대로 창문 밖으로 휙 던졌다. 빠르고 높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런닝 조각. 산뜻한 피 냄새 때문인지 녀석들의 고개가 순간적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있는 런닝 쪽으로 휙 돌아갔다.
“좋아..”
왼손으로 창문을 올리며 녀석들의 행동을 주시한다.
“크아아!”
효과가 있었다. 소리를 내며 떨어진 런닝 조각을 먹이로 인식한 녀석들이 거기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홀로 남은 녀석은 그러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맹렬한 속도로 뛰어오는 녀석. 설마.. 우리를 눈치챈건 아니겠지?
타다다닥.
빠른 속도로 밴 옆을 지나치는 녀석. 그러나 서서히 닫히는 문틈 사이로 녀석의 붉은 눈빛이 내 눈과 마주친다.
“!!” “크르르.”
그 찰나의 순간에 몸이 그대로 굳어져버렸다. 일이 꼬이는게 아닌가 하고 심히 걱정을 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녀석은 그대로 우리를 지나쳐갔다. 후우.. 서둘러 창문을 닦고 몸을 기댔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다. 십년.. 이십년을 족히 감수한 것 같다.
“최소한의 도리일지도 몰라.”
그것을 뻔히 지켜보던 준우 아저씨가 말했다. 과연 그럴까? 본능으로 움직이는 녀석이 그 짧은 순간에 우리를 배려할 여유가 있던건가? 몹시 배고픈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크아아아!”
이내 그것이 미끼였다는 것을 눈치챈 녀석들이 도로로 다시 뛰어와 거의 없어진 배신자를 보며 분노의 포효를 질러댔다. 씩씩거리며 동료들의 시체로 다가가는 녀석들. 그대로 쭈구려 앉아 동료의 시체를 뜯어먹기 시작한다. 아까 화를 내며 동료를 쫓던 녀석들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우리 모두 인상을 구겼다.
“쓰레기들이구만.. 정말.” “그래도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겠죠. 뭐..”
10분정도가 지나 야식을 마친 녀석들은 그대로 몸을 일으켜 미련 없이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밴 쪽으로 오지 않고 주욱 이어진 고속도로를 누볐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었다.
“후아..”
저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긴장감이 한순간 풀려서인지 스르르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고맙다라는 표시였습니다.”
고요한 남자의 목소리.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본다. 어두운 밴 안에서 빛나는 남자의 붉은 눈.. 영락없는 녀석들과 같은 그것이다. 남자의 입이 고요히 움직였다.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겁니다.” “저 녀석의 말을 알아 듣나?” “느낌일 뿐입니다.” “..괴물들도 그런 지성을 가졌나?”
준우 아저씨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서서히 진화합니다. 처음에는 본능으로 움직이다가 나중에는 생각을하고 의사소통을 하면서 움직이게 됩니다. 물론 인간의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전혀 하지 못하게 됩니다.” “개처럼 으르렁거리거나 짖는다는 식으로 대처하는건가?” “그렇습니다.” “그럼 당신도 그렇게 된건가? 시간이 오래 지나서 그런 지성을 갖고 유창하게 말을 하게 된거 말이야.”
남자는 미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일어나보니 모든 괴물들을 통제하고 있었고, 인간인 상태와 다를바 없었습니다. 다만 신체적인 능력이 인간의 기준을 훨씬 넘어서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다. 인간인 상태와 다를게 없다.. 괴물이 점점 진화한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위험해질지도 몰랐다. 소름이 돋는다. 모든 생물은 진화하기 마련이지만 그게 이토록 빠를 줄은 몰랐다. 인간의 몸이기 때문인건가?
“뭐야. 농담하지말라고. 그럼 괴물이 되고 안되고의 차이는 본인 의사와 관련이 있다는거냐?” “그럴지도.”
준우 아저씨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의자에 몸을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 시덥지도 않은 말에 우리 모두 준우 아저씨와 같은 생각이었지만 과학자의 입장이었던 아저씨만은 달랐다.
“컨트롤을 할 수만 있다면..” “....” “이건 진보.. 진화라고 할 수 있어.” “..진화요?”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두운 밴 안에서 아저씨의 두 눈이 반짝이는 것은 착각이었을까.
“저 남자 말마따나 본인 의지로 그것을 조종할 수 있게 된다면 진화라고 볼 수 있겠지.” “형님.. 진화론을 두고 얘기하는거에요?” “그게 얘기가 빠르겠군. 지금 같은 환경에서 살아 남으려면 괴물이 되는 입장이 더 편할지도 모르지. 먹이사슬이 깨지면서 괴물이 최상위로 올라갔다는 점을 보면 이해가 쉽게 되겠지.“ “‘환경에서 유리한 조건을 가진 생명체만이 살아남는다라..’ 흐음.”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던 인간마저 닥치는 대로 살육을 하는 녀석들. 저런 추한 모습이 과연 인류의 진화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환경에 유리한 조건을 가진거라면 괴물들의 상태가 딱 들어맞는다. 낮에는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다니다가 밤에는 괴물의 모습으로 돌아다닌다. 먹이감을 구하러 다니며 개체수를 서서히 늘린다.. 자연스레 인간들의 수는 줄어든다.
“그럼 우리 인간은 이대로 멸종하는건가요?” “원래 약육강식의 세계야. 뚜렷한 대책이 없으면 그렇게 되겠지.” “백신.. 한창 만들던 도중아니었나요?”
내 말에 아저씨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랬지.. 은혜를 통해 서서히 대량 생산에 들어가려는 찰나였어. 그러나 내가 그것을 막았지. 연구소에서 은혜를 빼낸 거야. 사실.. 은혜같은 케이스는 수많은 기간 동안 일하면서 단 한건이었어. 물론 이전의 데이터가 있긴 하지만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하늘에서 별따기지. 더군다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임상실험이 제대로 되겠나? 어려운 일이지.”
해결책이 거의 없다. 우린 지금 인류의 희망을 밴에 태우고 다니는 건지도 몰랐다. 은혜만 무사히 연구실로 갈 수 있다면.. 어쩌면 이 빌어먹을 상황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은혜는 이미 우리들의 마음 속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남도 아니고 우리의 가족 같은 일원이다. 대를 버리고 소를 선택하는가? 그게 정녕 옳은 선택인가? 마음 속에서 같은 질문을 해온다. 물어볼 것도 없이 대를 선택한다. 그러나.. 은혜는.. 은혜만은 안된다.
“다들 무슨 심정인지 이해해.”
아저씨 말에 우리 모두 침묵을 지켰다. 모두 나와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분명 무엇이 옳은 일이고 맞는 건지 다들 알고 있다. 하지만 선뜻 은혜를 다시 데려가고 싶지는 않다. 은혜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가 않다.
“메시아께서는 분명 악마를 구원해줄 구세주입니다.” “알고 있어..” “그러나 메시아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알고 있어.. 빌어먹을.”
남자는 곤히 잠든 은혜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쓰다 듬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조심스럽고 섬세해서 우리는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 어쩌면 남자의 말대로 은혜는 정말 메시아가 맞는 건지도 몰랐다. 백신..이라고도 불리겠지만 괴물 녀석들을 한 번에 치료할 수 있는 신적인 능력.. 메시아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왜 저 남자와 다른 신도들이 은혜를 그토록 떠받드는지 알 것 같다.
“일단 고비를 넘겼으니 쉬도록 하지. 녀석들이 올 것 같지는 않군..”
아저씨 말에 우리 모두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머리가 심난하다. 열어서는 안될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만 같다.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어린아이의 심정이 이런걸까. 하아.. 마음 속의 망설임이 점차 커져간다. 점차 지능을 갖고 진화를 한다면 녀석들과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는걸까. 평화적으로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없는걸까. 마음이 점차 무거워진다.
얼마나 잤을까. 저절로 눈이 떠진다. 뚫린 밴의 천장을 통해 빛이 보이는걸 보면 해가 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모두 일어났는지 밴 안에는 아무도 없고 옆문이 열려있다. 천천히 옆 좌석으로 이동해 밴에서 나온다. 어제 있었던 일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밴의 차체 여기저기에 붉게 굳은 핏방울들이 눈에 보인다.
햇빛이 따갑다. 한쪽 손으로 눈을 가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모두가 소총을 들고 폐차 안을 수색하고 있었다. 천천히 그 쪽으로 걸어간다.
“윽..”
뭔가 썩은 내가 난다. 아, 어제 그 시체.. 동료에 의해 처참히 개죽음을 맞이한 시체에서는 앙상한 뼈만 남아 있었다. 주위로 검게 물든 피와 작은 살덩이 조각들.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애쓰며 제일 앞에서 차를 뒤적거리는 동생에게 다가갔다.
“쓸만한거 있냐?” “아니.”
동생은 내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는 듯 몸을 빼지 않은 상태 그대로 말했다. 앞좌석과 뒷좌석을 샅샅히 둘러보던 동생은 이내 차 문을 닫고서 한숨을 쉬었다.
“어제만큼의 작은 수확도 없어.” “시간낭비하는거 아니야?” “그래도 기름은 챙길 수 있으니까 뭐..”
동생이 밴의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에는 여러개의 말통이 있었는데 투명한 액체를 반 정도 담고 있었다. 꽤 되는 양이다. 전부 기름이라는건가?
“전에 성당에서 녀석들 족칠때 기름을 너무 많이 썼나봐. 그래서 지금 이렇게 조금씩 모아서 보충하고 있지. 이미 밴 안은 만땅이고 저건 따로 모은거야.” “아아. 은혜는?” “저기.”
동생이 가리킨 곳을 보니 꽤 먼 곳에서 가만히 서있는 은혜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언제나처럼 남자가 그림자같이 서있었다. 저기서 뭐하는거지? 은혜의 속을 알 리가 없는 나는 다른 차를 뒤적거리는 우민이 형에게 다가갔다. 형은 내 발소리를 듣고는 차안에서 몸을 뺐다. 덜렁거리는 팔 소매가 낯설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바로 움직이다니.. 과연 체력적으로 남달랐다.
“형. 몸은 어때?” “그냥 그렇지 뭐. 이거나 좀 들어줘.”
우민이 형은 운전석에서 커다란 검은 비닐 봉투를 힘겹게 오른손으로 들어올렸다. 꽤 묵직해 보인다. 양손으로 받아든 나는 무거운 봉투 안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자동차 부품들이나 각종 수리 도구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걸 쓸데가 있나?
“이래 뵈도 정비 쪽 일도 조금 배워서 혹시 도움이 될까 하고 챙기는거야.” “아..”
건네 받은 검은 봉투를 밴 쪽으로 옮기기로 했다. 우민이 형은 아무 말이 없었다. 딱히 나도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여서 밴 안에 봉투를 잘 넣고 아침식사 준비를 하기로 했다. 구석진 곳에 비치된 배낭 하나를 우민이 형에게 내밀었다.
“먹고 싶은거 꺼내.”
우민이 형은 그 자리에 앉아 양다리로 가방을 지탱하고 오른 손을 이용해 배낭 자크를 열었다. 뒤적거리며 하나둘 꺼내기 시작하는 우민이 형. 나도 그 옆에서 앉아 배낭 안에서 여러 가지 배를 채울 만한 것들을 꺼냈다. 통조림 과일. 사탕. 이온음료. 물이 전부다.
그제서야 할 일을 마친 모두가 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손이 비어있다. 그래도 상관 없다. 오늘 내로 안성시에 도착할거고 필요한 것들을 거기서 충분히 보충하면 된다. 밴쪽으로 다가온 아저씨들은 말통을 밴 위에 비치된 여행용 밧줄로 단단히 묶고서 우리가 차려 놓은 여러 가지 식품들을 손으로 집었다. 식사를 하려는 도중에 은혜와 남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1시간 좀 넘어서 안성에 도착할 것 같군.” “거기서 최대한 챙기고 바로 떠나는게 좋겠군요.” “그래야지.”
어제처럼의 아침식사 분위기는 아니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밴에 올랐다.
부우웅.
이내 빠른 속도로 출발하는 밴. 딱히 할말도 없는 우리들은 멍하니 창문만 바라보았다. 휙. 휙. 빠른 속도로 지나쳐 가는 폐차들과 꺼져버린 가로등이 전부다. 문득 앞으로에 대한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부산까지의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어림잡아도 2~3일은 걸릴 것 같다. 물론 어디까지나 무사히 살아있을 때의 얘기지만..
부아앙.
고속도로에 있는 장애물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막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밴의 속도를 마음껏 낼 수 있었다. 덕분에 1시간이 조금 안되어 안성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 입구에 걸린 커다란 표지판에 ‘환영합니다.’ 라는 문구가 왜 하나도 반갑지 않은지..
우선 생필품등을 챙겨야 했기 때문에 다른 쪽으로 새기 보다 바로 대형마트나 편의점으로 가는 것이 현명했다. 그것을 잘 아는 아저씨는 좌우로 갈라진 아파트 단지 보다는 커다란 시내가 있는 중앙길로 주욱 밴을 몰았다. 저번에 머물렀던 번화가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다. 고층 빌딩이 심심찮게 보이고 저 멀리 보이는 백화점이 여러 개가 눈에 들어온다. 그렇지만 저기까지 가기엔 너무 멀다.
부르르.
이내 밴을 세우는 아저씨. 하나둘씩 밴에서 내리기 시작한다. 소총과 배낭을 소지한 채로 ‘D/C마트’ 라는 곳 문 앞에 선 우리들은 먼저 유리 너머로 보이는 마트 안을 들여다봤다. 40~50평은 되보일까 하는 커다란 마트다. 1층으로 되어 있고 뒤쪽에 또 다른 문이 있다.
“괜찮군.”
그렇게 판단한 아저씨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랫동안 사람의 흔적을 받지 않은 마트에서 퀘퀘한 냄새와 뭔가 썩어들어가는 냄새가 났다. 그 냄새를 따라 우리들은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곧 냄새의 원인이 식품코너에 있는 말라비틀어진 과일들과 썩어가는 고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서로를 보며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비교적 유통기한이 긴 음식들을 택했다. 그 중 통조림은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것이여서 있는대로 챙겼다.
“참치. 햄. 또 뭐가 있더라..”
저번 통조림에 과일만 챙겨서 약간 입이 심심하던 차였다. 참치 캔의 종류별로 그대로 쓸어모아 배낭안에 두둑히 담고 평소 비싸서 먹지 못했던 비싼 햄 종류도 배낭 안에 쓸어 담았다. 꽤 묵직하다. 그러나 군 시절 어깨에 맸던 군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오.. 콘 샐러드?”
이것도 먹어보고 싶었던거다. 배낭을 열고 5개 정도 챙긴다. 이제 뭘 챙길까..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다들 여기저기 먹을 것들과 마실 것들을 챙기기 바쁘다. 그 중에서도 은혜는 태평스럽게 과자 봉지를 뜯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과자를 꺼내 입에 가져가 오물오물 씹는 은혜. 자기만 먹는게 미안한지 뒤에 남자에게도 건넨다. 남자는 공손히 받아 들고는 과자를 입에 넣었다.
“쇼를 해요. 쇼를..”
물론 은혜에게 한 말은 아니다. 10분 정도 지나고 어느 정도 챙긴 우리들은 아침을 대충 해결한 것을 여기에서 마무리하자고 했다. 그러자 준우 아저씨가 방실방실 웃으며 한곳으로 뛰어갔다. 동생도 다른 곳으로 가서 가스버너와 부탄가스를 가져왔다.
“뭐에 쓰려고?”
내 물음에 동생은 씨익 웃기만 할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와 아저씨는 콧노래를 부르며 다가오는 준우 아저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양 손안에 들린 투명한 비닐 봉지에는 붉은 고기들이 담겨져 있다.
“어?”
내 말에 준우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브이를 하고는 고기를 흔들어댔다.
“얼마만에 먹는 고기냐! 크하하핫!” “아저씨 꽃등심이죠?”
동생의 은근한 어투에 준우 아저씨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듯 서로를 보며 씨익 웃고는 서둘러 세팅하기 시작했다. 불판은 따로 없어 생선을 굽는 그릴 같은 것으로 대신했다. 기름이 흐를 구멍을 대충 만들어 놓고 계산대 위에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치이익.
열이 바짝 가해진 그릴 위에 고기들을 얹자 빠르게 익어가기 시작했다.
“그거 상한거 아니에요?”
준우 아저씨는 검지 손가락을 좌우로 저으며 말했다.
“내가 직접 썰어온거야. 냉장고에 아직도 많더군.” “아~”
오랜만에 먹는 고기라 그런지 다들 기대하는 눈치다. 계산대 근처에 있는 나무젓가락을 가져온 동생이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아, 가위가 없네. 나는 아까 봐두었던 생필품 코너에서 새 가위와 집게를 꺼내 준우 아저씨에게 건넸다. 준우 아저씨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게 미소를 짓고는 고기를 구웠다.
치이익.
점차 맛있는 냄새가 마트 안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밖을 보며 주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딱히 걱정할 거리는 없지만 조심해서 나쁠거 없으니까.. 서서히 붉은 빛을 잃어가며 갈색을 띄기 시작하는 고기들. 준우 아저씨는 요령 있게 가위와 집게를 이용해 고기들을 조각조각냈다.
서서히 익어가는 고기 냄새를 맡자 아까 먹었던 것들이 빠르게 소화가 되는 것 같다. 꼬르륵. 위장이 경련을 일으킨다. 어느 정도 고기가 구워지자 준우 아저씨는 고기 한 점을 들어 아저씨에게 먼저 권했다. 아저씨는 옅게 웃고는 고기를 받아 먹었다.
“맛있네.” “먹자~”
그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정신없이 고기를 집어 먹기 시작했다. 따로 쌈장이나 상추 그런 것들은 필요가 없었다. 혀를 마비시킬 듯한 부드러운 육질과 맛이 오감을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우리가 열심히 고기를 먹을 동안에도 아저씨는 전처럼 은혜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고기를 비워낸 우리들은 다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뱃속에서는 아직 더 달라고 아우성을 쳐댄다. 콧노래를 부르며 고기를 굽는 준우 아저씨.
“그래도 이런 상황속에서 소소한 행복이라도 느낄 수 있다는게 좋은 것 같네요.”
동생의 말에 아저씨가 말했다.
“그렇지.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린 영원히 모르고 지냈을지도 몰라.” “그게 다 남자라서 아쉽긴 하지만요.” “하하하하하.”
준우 아저씨의 말에 마트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이런 기분을 언제까지나 느끼고 싶다. 비록 괴물들에 쫓겨 다니며 사는 신세에 지나지 않지만 살아 있는 순간을 감사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도우며 새롭게 시작을 하고 싶다. 과연 그게 순조롭게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딸랑. 딸랑.
마트 출입문을 열 때 나는 방울 소리에 우리들은 먹던 것을 멈추고 경직된 상태로 소총을 손에 들었다. 우민이 형은 계산대 아래로 기어들어가 바로 총을 쏠 자세를 취하고 나머지 우리들은 크게 놓여 있는 선반들 뒤에 적당히 은신했다. 냄새가 너무 퍼진 탓일까. 누군가가 마트로 들어왔다는 것은 우리들의 흔적을 발견했다는거다.
두근두근. 떨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게 위해 심호흡을 크게 한다. 나와 눈이 마주친 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는 우리들에게 수신호로 자신들이 먼저 나가겠다고 했다.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인다. 3.. 2.. 1. 아저씨들은 동시에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에 맞춰 우리 형제도 뒤를 따랐다.
“쏘.. 쏘지 마시오!”
거기에는 40대로 보이는 남자와 그의 딸로 보이는 소녀가 두려운 기색으로 우리를 보며 서있었다. 저 정도의 얼굴과 교복을 입고 있는거로 봐서 고등학생 같았다. 두 사람 겉으로는 감염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은혜에게서도 특별한 말이 없는걸 보니 정상인인것 같다. 우리는 부녀가 안심할 수 있도록 총을 내려 놓았다.
“어떻게 된겁니까?”
아저씨의 물음에 40대 남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그.. 그저 고기 냄새가 나길래 배고파서 나도 모르게 와봤소. 녀석들이 고기를 구워먹는다는 소리는 한 번도 본적도 들은 적이 없거든.. 분명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딸과 온 것이오.” “..실례가 많았소.”
아저씨가 사과의 뜻으로 손을 내밀었다. 40대 남자도 그 손을 맞잡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간단한 통성명을 한 우리들은 아저씨와 딸에게 잘 익은 고기들을 내주었다. 한 점. 한 점. 제대로 씹지 않고 넘기는 것 같아서 괜히 마음이 안쓰러워졌다. 부녀의 이름은 이봉수와 이해인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 왔소?”
아저씨의 물음에 봉수 아저씨는 급하게 먹느라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저씨와 우리들은 차분히 그것을 기다려주었다. 이내 우리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느낀 봉수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뭐라고 하셨지요?” “그간 어디서 지내왔소?”
그제서야 알아들은 봉수 아저씨는 한숨을 푹 쉬더니 말했다.
“저는 지하 물류 창고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업이 꽤 잘되는 편은 아니지만..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되지요. 그 일만 아니었어도..”
그 일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기 때문에 따로 부연 설명을 부탁하지 않았다. 봉수 아저씨는 계속 말을 이었다.
“밖은 정말 아수라장이였죠. 세상에 그런 괴물 놈들이 존재한다는게 믿기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무작정 하교하는 딸을 차에 태우고 지하 물류 창고로 무작정 숨었죠. 마누라 생사는 아직까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며칠을 전전긍긍 하면서 물류 창고로 통해 반입 반출되는 음식들로 하루하루를 버텼어요. 라디오를 통해 미약하게나마 세상 일에 대해 듣게 되었죠. 처참했어요.. 그러다 먹을 거리가 점점 떨어지자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온 겁니다.” “..그러셨군요.” “당신들은 어디로 가는 중이었습니까? 밴이 보이던데..”
봉수 아저씨의 말에 우리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쉽게 꺼내기 힘든 말인가? 나는 봉수 아저씨에게 있는 그대로 말했다.
“부산에 생존자를 태우러 오는 유람선이 온다고 해서 그리로 가고 있어요.” “생존자요?”
그 말에 부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리의 표정에서 한치의 거짓도 읽을 수 없자 봉수 아저씨는 두 눈을 글썽거리며 우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뜻밖의 태도에 우리들은 더 당혹스러워졌다.
“제발 데려가주십시오. 여기서 하루하루를 공포에 쩔어 사는 것보다 여러분들과 동행하는게 백배 천배는 나을 것 같아요. 제발 데려가주십시오.”
아저씨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예상 밖의 인원이 합류하게 된다면 여러모로 고려할 것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이렇게 멀쩡한 두 사람을 두고 우리끼리만 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같은 생존자끼리 돕고 도와야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아저씨.. 밴 뒷좌석에 두 자리가 남긴 하잖아요.”
내 말에 아저씨는 한숨을 쉬고 봉수 아저씨에게 물었다.
“총 같은거 다룰 줄 아시오?” “..모릅니다.” “저 활 같은건 쏠 줄 알아요..” “그.. 그래요. 해인이가 보기에는 이래도 양궁 선수에요.”
봉수 아저씨의 말에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밴에 안쓰던 석궁이 있으니 그걸로 감각을 익히도록 해. 그럼 빨리 먹고 일어납시다. 시간이 얼마 없소.”
봉수 아저씨는 눈물을 훔치면서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우리들은 다시 흩어져 서로 찾았던 물건들을 조금씩 보충하기로 했다. 인원수가 늘어났으니 당연한 일이다. 5분만에 다시 챙긴 우리들은 밴의 넓은 트렁크 쪽에 배낭을 차곡차곡 쌓았다. 봉수 아저씨와 해인이는 가장 뒷좌석에 앉아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 감정을 모를리 없는 우리들은 차례대로 밴에 올랐다. 이내 서서히 출발하는 밴. 부녀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그간 뜬눈으로 밤을 지새왔던 것 같다.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한 준우 아저씨가 아저씨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잘한걸까요.” “생존자끼리 도와야하니.. 별 수 없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침묵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하루 빨리 부산으로 가서 유람선에 타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찼다. 그리고 아빠 엄마의 멀쩡한 모습도 보고 싶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조금만..
뒷좌석에 잠들어 있는 부녀를 보자 문득 병원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3일.. 4일?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아주 오래전의 겪은 일처럼 희미해져간다. 괴물로 변한 자식을 끝까지 지키고 싶어 했던 창민 아저씨의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이 봉수 아저씨와 자꾸 겹쳐진다. 이번엔 두 부녀를 지켜주고 싶다. 두 번 다시 그런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다.
챙그랑.
상념에 잠기는 것도 잠시. 유리가 깨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우리들은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뒤다. 트렁크 쪽에 어른 주먹만한 크기의 구멍이 나있었는데 그 충격으로 인해 뚫린 구멍 근처의 유리들이 금이 가있다.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돌멩이를 손에 쥐고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누구지? 누가 우리들을 공격한거지?
“제길, 백미러로 뭔가 희끗 보이는가 싶더니 이거였군.”
아저씨의 표정이 좋지 않다. 확실한건 누군가가 우리에게 적의를 갖고 있다는거다.
“온다..”
조용히 내뱉은 은혜의 말로 상황이 확실해졌다. 주위에 녀석들이 있고 우리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낮인데..? 녀석들이 잠들 시간이 아닌가? 우리가 아까.. 그래. 마트에서 고기를 굽는 것이 영 좋은 선택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 그 냄새가 멀리 퍼져 녀석들을 깨운것일 수도 있다. 고기 몇 점의 대가가 이정도라니..
“제길..”
창문을 통해 주변을 살핀다. 좁고 어두운 골목길들이 유독 많이 보인다. 상가 건물들 사이사이 틈틈이 위치하고 있는 골목길. 낮이라도 녀석들이 수월하게는 아니더라도 힘들이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이다.
“!!”
뭔가가 내 앞으로 날아온다. 주먹만한.. 딱딱해 보이는 것..
퍼억.
다행히 창문이 닫혀 있는 상태라 내게 타격을 주지 않았지만 이대로 충격을 계속 받는다면 어떻게 될지 장담 할 수 없다. 주욱 늘어진 상가 길이 유독 길게만 보인다. 그렇다면 후진으로..? 아니다. 이 상황에서 후진은 오히려 상황만 악화될 뿐이다. 골목 여기저기서 대기하고 있던 녀석들이 그대로 달라붙을지도 모른다.
“도구를 사용하다니.. 미치고 팔짝 뛰겠군.”
준우 아저씨 말에 번개처럼 뭔가가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남자가 했던말.. 녀석들은 점차 진화하고 있다고. 설마 그런게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건가? 어서 빠져나가야 한다. 부우웅. 밴의 속도가 점차 올라간다. 길 앞에 폐차가 되어가는 것들만 제외하고는 한산한 편이다. 어떻게든 버티면 된다.
텅. 텅. 텅. 텅.
시간이 지날수록 녀석들의 공격이 거세져간다. 언제까지고 버틸 것 같던 창문도 서서히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큰일이다. 뭔가 대책을 취해야한다. 돌.. 받아낼만한게 없을까.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지이잉. 창문을 내리고 웃옷을 벗는다. 두툼하게 말아 돌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향한다.
쉬이익.
날아온다. 침착해. 받으면 되는거야.
텁.
생각보다 쉽게 잡힌다. 내 성공을 시작으로 모두가 웃옷을 벗고 그것을 따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녀석들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도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가끔 예상 궤도를 크게 벗어나거나 크기에 따라 다르게 날아오는 돌들을 완전히 막아내진 못했다.
퍼억.
“크윽..”
명치 아래 쪽에 전해지는 충격에 잠시 멍해진다. 정면으로 맞았더라면 충격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쿠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웃옷 덕분에 버틸만했다. 빌어먹을 놈들.. 두고보자고. 빠르게 좌석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돌을 꽈악 쥐고는 고개를 살짝 내민다. 다음 골목길까지 거리.. 3초 내외다.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망할 자식들.
휘익.
차 안이라 큰 동작으로 던지지 못하지만 돌멩이를 골목길 사이로 던지는 거로는 충분하다. 강하지도 빠르지도 않지만 어둠 속에서 방심하고 있는 녀석에게는 충분히 타격을 줄 수 있다.
“키엑!” “오예!”
고통스러워 하는 녀석의 신음 소리. 성공이다. 내 공격을 시작으로 모두가 돌멩이들을 골목길 사이사이로 던진다. 흡사 겨울에 하는 눈싸움을 보는 것 같아 이게 생사를 건 전투인지 착각이 든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다들 표정이 진지하다.
퍼억.
그러나 항상 상황이 좋게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우민이 형과 봉수 아저씨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줄줄줄. 양손을 타고 붉은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제길.. 아직 멀은건가.
“조금만 버텨!”
아저씨의 말을 듣기라도 했는지 인간의 모습을 한 녀석들이 골목길에서 우르르 나와 우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대로 있으면 밴과 정면으로 출동한다. 녀석들은 무사하지 못하겠지만 잘못하면 밴이 다른 방향으로 틀어지거나 심하면 전복이 될 수가 있다. 최악의 사태를 막아야한다.
“빌어먹을 놈들이!”
어느새 소총을 장전한 준우 아저씨는 밴 천장을 가리고 있던 비닐을 걷고 내고서 상체를 완전히 내밀었다. 녀석들도 뜻밖의 행동에 당황했는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준우 아저씨의 총에는 자비가 없었다.
두두두두.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닌 총알들이 녀석들의 몸을 그대로 꿰뚫는다. 한번에 즉사하는 놈은 거의 없었지만 대부분 치명상을 입은 상태다. 녀석들은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지르며 다시 골목길로 들어가버린다. 녀석들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공격은 멈춘게 아니었다.
텅. 텅. 텅. 텅.
준우 아저씨는 골목길 사이사이에 총알 몇발을 녀석들에게 선물해주었다. 그러나 양 옆을 다 맡기엔 부족하다. 내가 거들어줘야 한다. 서둘러 소총을 준비하고 준우 아저씨 옆에 선다.
“넌 오른쪽! 난 왼쪽!”
두두. 두두. 두두.
골목길을 지나가는 타이밍에 맞춰 2~3발씩 총알을 날렸다. 제대로 공격다운 공격을 해보지도 못하고 픽픽 쓰러지는 녀석들. 이대로만 간다면 무사히 상가로를 벗어날 수 있겠다.
“크아아!” “크우!”
괴물의 포효소리. 설마하는 심정으로 뒤를 돌아본다.
“역시나.. 정말 끈질기구만 제길.”
동료들의 시체를 뜯어먹는 녀석들이 괴물로 변해 우리 차 뒤를 맹렬히 쫓고 있는게 시야에 가득찬다. 정말 저놈의 집념 하나는 알아주어야 한다. 밴의 속도가 호락호락하지 않아 녀석들이 쫓는게 무리가 있겠지만 그래도 나중을 대비해 싹을 완전히 잘라둬야 한다.
철컥.
소총을 다시 녀석들에게 겨눈다. 방금전 동료들을 죽인 무기를 보고도 녀석들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다. 공포보다 본능이 더 큰 탓이다. 나와 준우 아저씨를 먹이로 인식한 녀석들의 눈이 붉게 빛난다. 너희들에게 잡힐까보냐. 그럴 수 없지.
두두두두.
하나둘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녀석들. 한 번에 절명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녀석들은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골목길에서 수많은 녀석들이 뛰쳐나와 동료들의 시체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과연 녀석들의 목적은 우리였을까 동료들이었을까.
“크아아아!”
고통스러워하며 동료들을 쳐내며 도망치려고 하는 녀석들. 그러나 사방이 막혀 있는 상태에서 도망갈 수가 없었다. 이내 허공에 떠오르는 녀석들의 사지. 그리고 목. 비명 소리가 점차 줄어만 간다. 그나마 다행인건 녀석들이 먹을 것에 정신이 팔려 우리를 눈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아앙.
완전히 상가로를 벗어난 밴은 그대로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10분.. 20분. 30분 정도를 달린 끝에 밴을 멈춰 세운 아저씨는 운전석에서 내려 우민이 형과 봉수 아저씨의 상태를 살폈다. 심하지는 않지만 살이 찢어진 것 같았다. 우민이 형은 워낙 경험이 많고 젊은 몸을 가져서인지 피가 서서히 멎기 시작했지만 봉수 아저씨는 그러지 못했다.
꾸물꾸물 나오는 핏물들을 손으로 받아내는 모습이 안쓰러워보였다. 일단 우리들은 밴의 옆문을 열고 우민이 형과 봉수 아저씨를 바닥에 눕게 했다.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는 거즈에 알콜을 잔뜩 묻히고는 두 사람의 상처 부위에 그대로 갖다 댔다.
“끄으으윽.”
상당히 고통스러운지 신음 소리를 흘리는 봉수 아저씨. 그 반면에 우민이 형은 살짝 인상만 찡그릴 뿐이다.
“이 정도는 아픈 축에도 못끼죠.”
장난스레 던지는 우민이 형 말에 우리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런 농담을 던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정신력을 가졌다라는 증거다. 반면 봉수 아저씨는 우민이 형과 다른 생활에서 자란 평범한 일반인이다. 이런 경험이 거의 전무할 것이다.
“대충 매면 되겠네.”
반창고 하나를 이마에 붙여주고 다른 거즈로 상처 부위를 중심적으로 둘둘 마는 것으로 우민이 형의 치료는 끝났다. 허나 봉수 아저씨의 상처는 바늘로 꼬매야 할 것 같았다. 상처 부위가 꽤 벌어져 피가 멎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벌떡 일어난 우민이 형은 봉수 아저씨의 상처를 유심히 살피더니 구급 상자에서 실과 바늘을 꺼냈다. 그제서야 자신에게 한팔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우민이 형은 허탈한 얼굴로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안타깝지만 우민이 형을 위로해줄 시간이 없다. 녀석들이 피 냄새를 맡고 몰려올 수도 있으니 빨리 치료를 하고 여기를 떠야한다. 아저씨는 우민이 형에게서 실과 바늘을 낚아채듯 가져와 봉수 아저씨의 상처 부위를 서서히 봉합하기 시작했다.
“끄.. 끄윽.”
마취도 없이 이루어지는 시술이라 봉수 아저씨는 상당히 고통스러워했다. 곁에서 지켜보는 해인이는 아예 울기 시작했다.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데 저렇게 슬퍼할 이유가 있을까 했지만 이제 겨우 고등학생의 나이로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에 딱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해.. 해인아. 아빠 괜찮으니까.. 차에 먼저 타있으렴.”
봉수 아저씨 말에 해인이는 고개를 저으며 그 자리를 지켰다. 우리도 그것을 말리지 않았다. 앞으로를 살아가려면 이보다 더한 것들을 보고 느껴야만 하기 때문이다. 5분.. 10분 정도가 지나자 완전히 봉합을 마친 아저씨는 서둘러 구급 상자를 챙겼다.
“생수 가져와 손에 묻은 핏물들을 씻어야 돼.”
동생이 얼른 밴 안으로 뛰어가 생수 두통을 가져왔다. 아저씨는 그것을 아낌없이 봉수 아저씨 상처 부위에 쏟으며 손으로 살살 닦아 내었다. 완전히 핏기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아저씨는 자신의 손도 마저 닦았다. 그리고 바닥에 아직 마르지 않은 핏방울 위에 물을 끼얹어 그 흔적을 없애기 시작했다.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자 우리는 서둘러 밴에 올랐다. 창문 여기저기 균열이 가있어 걱정되긴 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변변찮은 차를 구하는 것 역시 힘들다.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면서 결정을 해야 할 것 같다.
부우웅.
다시 출발하는 밴. 준우 아저씨는 밴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시트나 바닥에 피들이 너무 많이 묻어 있어. 차를 바꿔야겠는걸..”
이 인원을 모조리 수용할 수 있는 차가 있을까. 아니면 차를 나눠서 가야하는걸까. 고속도로에 널린게 차라고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전력을 분산하면 오히려 악화가 될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아저씨는 묵묵히 밴을 몰았다. 준우 아저씨도 자신의 소총을 들고 묵묵히 점검을 하기 시작했다.
“흐으윽.”
여전히 들리는 해인이의 울음 소리. 봉수 아저씨는 계속 같은 말로 해인이를 안심시켜주는 말들을 했다. 나도 처음에 저랬을까. 괴물을 처음 발견하고 도망치던 날.. 동생과 나는 지금의 해인이처럼 허약했었나? 고개를 돌려 동생의 옆을 본다.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창문 밖을 바라보는 동생.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다.
어릴적부터 우린 다른 형제들과 다르게 유독 우애가 돈독했다. 일란성 쌍둥이라는 점 때문인지 서로 말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무엇을 싫어하고 꺼려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내가 가는 곳에 늘 동생이 있어야 안심이 되었고 동생이 가는 곳에 내가 가야만 안심이 되었다. 마치 바늘과 실 같은.. 서로를 꼭 곁에 두고 봐야만 위안을 삼았던 것 같다. 희한한 것은 나와 동생 둘이 찍은 사진이 없다는 거다. 어릴 적에 그렇게 많이 붙어 다니면서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우리 둘의 사진을 한 번도 찍어준 적이 없다.
‘네가 형을 잘 지켜줘야 해.’
항상 같은 말. 주입시키듯 동생에게 말하는 부모님. 왜? 굳이 동생이 나를 지켜줘야 하는걸까. 내가 지키면 안되는 걸까. 유치원을 같이 다닐 때 아침마다 항상 그 말을 동생에게 하곤 했었다. 그 때마다 동생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었다. 그 말을 매일 들어서인지 동생은 나에 관한 일들을 자신의 일보다 우선시 했고 궃은 일도 도맡아 했었다. 학창 시절..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에도 어김없이 나타나 녀석들에게 주먹을 선사해주던 동생.
‘니가 애새끼냐?’
그런 말들로 항상 위기에서 나를 구해준 동생. 비슷한 신체 조건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유독 뭐든면에서 월등했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노래면 노래. 뭣 하나 빠지지 않는 축복 받은 능력을 갖고 태어난 것 같다. 당연히 동생은 학교내에서도 이슈거리가 되었고 그만큼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나는 어떤가? 평범한데다 공부도 어중간하고 운동 싫어하고 노래도 못한다. 여자친구? 여지껏 한 번 사귀어 온게 전부다. 그래서 유독 열등감이 심했다. 나와 동생 사이를 이간질하는 놈들 때문에 학창 시절 동생과 사이가 틀어졌었다. 동생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동생에게 신경질적으로 대하고 화풀이를 해댔다.
‘....’
그럴 때마다 아무 소리 없이 모든 것을 받아주던 동생. 왜.. 왜, 그랬던 것일까. 나 때문에 같이 놀림을 당해도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었던 동생. 그럴 때마다 동생의 얼굴은 차가운 얼음 같아서 나조차 말을 걸기가 힘들었었다. 보잘것 없는 내 인생의 반을 그렇게 보내 왔었다. 부모님은 내게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매일 동생에게 ‘형을 지켜주거라.’라고 말한 걸까.
빛과 어둠의 인생이라는게 바로 이런 꼴을 두고 얘기하는 것일까. 다행히 서서히 생각이 많아짐에 따라 동생을 이해하게 되었고 내 자신도 이해하는 단계가 오자 우리 사이는 다시 전처럼 돌아갈 수 있었지만 학창시절의 트라우마는 여전히 가슴에 새겨진 성흔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모든 상황 속에서 냉정을 유지하며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동생과 다르게 버둥거리는 면이 많은 나. 과연 우리는 형제가 맞는 걸까.
부우웅.
고속도로를 누비는 밴의 소리만 가득하다. 밴 천장을 통해 하늘을 보니 늦은 오후에 접어들고 있다. 곧 해가 저물거라는 신호다. 얼마 못가 밴을 세운 아저씨는 저녁을 먹고 다른 차를 알아보자고 했다. 그 말대로 지금 밴의 상태는 영 말이 아니다. 처음 우두머리의 공격에서 무사히 도망치게 해줄 때에도 이렇게 험한 꼴은 아니었다.
군데군데 푹푹 파이고 창문에는 작은 균열들이 일어나 있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다. 다행히 고속도로에는 주인을 잃은 차들이 많은 편이어서 우리의 선택폭은 넓은 편이었다. 배낭에서 각자 먹을 것들을 꺼내 고속도로 한복판에 앉아 먹기 시작한다.
“상처는 괜찮으시오?”
아저씨가 묻자 봉수 아저씨는 미약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색이 별로 좋지 않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것 같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해인이에게 말했다.
“해인양도 슬슬 석궁 다루는 법을 알아야겠어. 아까도 보았지?”
그 상황을 그대로 겪은 해인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상황이 기억나는지 해인이가 몸을 미약하게 떨었다. 평범한 날들이었다면 단순히 등하교를 하면서 공부만 하는 학생이었을텐데..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된건지..
“그러고 보니 해인이도 미인이네 남자 친구는 있어?”
우울한 분위기를 전환시키려는 듯 준우 아저씨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 말에 해인이는 볼을 붉히며 ‘있다.’라고 대답했으나 곧 이런 상황을 직시 했는지 우울한 얼굴이 되었다. 오히려 반감의 효과를 가져오자 준우 아저씨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 모습에 봉수 아저씨는 너털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저희들을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
그 때 동생의 눈이 매섭게 반짝였다. 팔꿈치로 준우 아저씨의 옆구리를 쿡 찌르는 동생.
“아저씨. 왜 해인이가 남자친구 있다고 하니까 실망한 표정을 지었죠?” “아니, 이자식이? 찰나의 순간에 어떻게 그걸?” “큰일 날 아저씨네 범죄라구요. 범죄.” “허허허허.” “하하하하.”
다행히 두 사람 덕에 우울한 분위기가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뒷정리를 하고 다시 밴에 올랐다. 천천히 밴을 몰며 주인을 잃은 차들을 물색하기 시작한다. 8~10명은 충분히 들어갈만한 차를 구해야 한다. 지금 타고 있는 밴과 같은 모델이 있으면 좋겠지만 항상 무언가를 찾을 때마다 안보이는게 세상의 원칙이라도 되는 것처럼 적당한 차가 보이지 않는다.
“흐음..”
마땅한 차가 보이지 않는다. 30분이 훌쩍 지났건만 전부 승용차거나 중형차 뿐이다. 평소에는 길만 다녀도 잘 보이던 밴이나 대형차들이 왜 이렇게 안 보이는걸까.
“저거 어때요?”
동생의 말에 우리는 일제히 동생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고속도로 반대편에 주차되어 있는 커다란 대형버스가 눈에 들어온다. 서서히 밴을 멈추고 일제히 내린 우리들은 소총을 들고 버스로 접근했다. ‘행운관광’이라고 쓰여진 관광버스다. 빙 돌면서 대충 겉면을 훑어 본다.
“외견상으로는 쓸만하겠어.”
외견상으로는 딱 좋은 조건을 갖춘 버스. 창문의 위치도 상당히 높아 아까와 같은 공격이 오더라도 완벽히는 아니지만 높은 차체 때문에 잘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고속도로 위주로 운행을 할거니까 높이는 크게 상관할 것이 아니다. 그럼 중요한건 내부다. 우리는 버스 출입구 쪽으로 서서히 걸어갔다.
“이거 열줄 아는 사람 있나?”
굳게 닫혀 있는 문을 발로 툭툭 차며 아저씨가 말했다. 모두 대답이 없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버스를 기웃거리는 아저씨. 그 때 봉수 아저씨가 슬쩍 나서서 버스 앞 부분에 있는 본래트 부분을 열더니 이것저것 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느 한 부분을 죽 잡아 당기더니 그대로 버스 문을 옆으로 밀었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스르르 열리는 버스 문. 아저씨는 봉수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먼저 버스에 올랐다. 그 뒤를 준우 아저씨 우민이 형이 오르고 우리 형제들은 주위를 경계하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저씨들은 죽어버린 사람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하나둘 빠져 나오는 사람들의 눈과 코. 입에 구더기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우욱.”
역겨운 냄새와 보기 흉한 광경에 해인이는 고개를 돌리고 헛구역질을 해댄다. 봉수 아저씨는 해인이를 부축하면서 좀 떨어진 곳으로 발을 옮겼다.
“다 자살한 것 같아.”
마지막 시체를 끌어낸 우민이 형이 그렇게 말했다. 모두의 손목에 자해를 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버틸 수 없는 현실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인가.. 절로 분위기가 엄숙해진다.
“일단 쓸만한 것 같으니 정리를 좀 해야겠어.”
아저씨는 버스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꽤 좋은 버스인지 한 번의 시동으로 엔진이 크게 울리며 버스 차체가 미세하기 흔들렸다.
부르르르.
이것저것 만져보며 앞문이 잘 닫히는지 확인한 아저씨는 버스 위에 달린 문을 열고 위로 올라와 전방을 살폈다. 남은 우리들은 싸늘히 식은 시체들을 버스와 최대한 멀리 좌우로 깔린 풀들 위로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녀석들은 분명 여기에 모일 것이다. 최대한 이곳과 멀어져야만 한다. 다시 버스로 돌아간다.
우선 봉수 아저씨와 해인이를 제외하고 버스에 올라 굳어버린 핏물들을 닦아내기로 했다. 좌석 곳곳에 굳을 대로 굳어져 잘 닦여지지 않는 핏물들. 운전석에 놓인 티슈를 이용해 정수기의 뜨거운 물을 받아 천천히 지워나가기 시작한다. 아직 버스 안에는 특유의 역한 냄새와 파리들이 꽤 많이 보인다. 준우 아저씨는 손짓을 해가며 파리들을 천천히 밖으로 내쫓기 시작한다.
“훠이.”
녀석들도 자신들의 상황을 깨달았는지 미련 없이 버스를 떠나 시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날아간다. 파리는 해결 됐지만 비위가 약한 해인이에게는 이 냄새를 버티기가 힘들 것 같다. 두리번 거리며 버스 천장 수납 공간을 뒤지자 방향제가 눈에 들어왔다.
칙. 칙. 칙.
버스 내부 곳곳에 방향제를 뿌리고 창문을 열 수 있는 곳은 모조리 열었다. 20~30분 정도가 지나자 버스의 상태가 꽤 말끔해졌다. 이 정도면 충분히 쓸 수 있겠다. 우리들은 모두 버스에서 내렸다. 준우 아저씨는 밴 쪽으로 빠르게 뛰어가 밴을 몰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모든 짐들을 버스에 옮기기 위해서다.
버스의 옆면. 물건들을 싣고 다니는 곳을 열어 여러 가지 물건들을 꺼냈다. 관광 여행을 가던 도중이었는지 술과 음식들이 가득했다. 마르고 포장된 음식들만 챙기고 나머지는 죄다 버린다. 술은 우리의 여행에 하등 쓸모 없는 것이다.
부우웅.
어느새 버스 쪽으로 다가온 밴. 우리 모두 밴의 물건들을 모조리 버스 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대형버스라 그런지 수납 공간이 상당히 넓어서 좋았다. 칸도 여러개라서 분류도 쉬웠다. 먹을 것들과 몇 개의 옷 종류. 구급상자나 공구함. 그리고 기름이 담긴 말통들을 각각 공간에 넣고 모두 버스에 올랐다.
“괜찮니?”
봉수 아저씨가 해인이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딸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신경이 쓰이는 것 같다. 해인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은 최대한 앞 좌석에 앉았다. 딱히 이유는 없지만 이렇게 넓은 버스 안에서 띄엄띄엄 앉아 가는 것도 영 찜찜했다. 물론 떨어져 앉는 편이 녀석들의 동태를 살피는데는 좋겠지만 아직 녀석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할 시각은 아니다.
부르릉.
언제나 그랬듯 아저씨가 버스를 몰았다. 처음 접하는 거라고 했지만 몇 번 핸들을 잡아보더니 금방 익숙해진 듯 한다. 하긴.. 고속도로에 장애가 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괴물들을 제외하고는 마음대로 운전을 해도 되기 때문에 금방 익숙해질 것 같다. 준우 아저씨는 의자를 뒤로 길게 젖히며 말했다.
“탑승감이 다른데? 편하고 좋네.”
그 옆에 있던 우민이 형도 의자를 젖히며 말했다.
“이거 정말 여행가는 기분이네요.” “맨날 이렇게 편하게 갔으면 좋겠다.”
관광버스 안은 상당히 편했다. 천장 위에 비치된 서랍 안에는 군것질거리가 가득했고 정수기에는 꽉 찬 물과 예비용으로 하나의 물통이 더 있었다. 밴을 버리고 버스로 옮겨 탄 선택은 정말 잘한 일인 것 같다. 물론 오늘 밤을 무사히 지나야겠지만..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거의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몸을 뒤로 돌려 우리가 지나 왔었던 길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아 두기로 한다. 그동안 우리의 몸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낸 밴이 나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비록 차라고 하지만 저 녀석 덕에 많은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고맙다. 잘 있어.”
반짝반짝. 노을빛에 빛나는 밴의 유리창이 빛난다. ‘잘가.’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단순한 느낌일까. 다시 창문을 닫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이 특유의 느낌이 이제는 편안하다. 서서히.. 그리고 확실히 몸이 적응을 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우르릉.
밴의 마음을 타일러주기라도 하듯 하늘에서 번개가 치기 시작한다. 낮고 멀리 퍼지는 소리에 우리들의 어깨가 절로 움츠려들었다. 날씨 예보를 보거나 들을 수가 없으니 대처를 완벽히 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 아쉬운 점이긴 하다만 차갑게 내리는 비 때문에 녀석들의 활동이 뜸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툭. 툭.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빗물이 버스 천장을 때리기 시작한다. 이윽고 후두두둑 하면서 맹렬한 기세로 비가 내린다. 버스를 천천히 멈춰 세운 아저씨는 시동을 끄고는 창문을 통해 내리는 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콰르릉.
엄청난 소음과 함께 하늘을 찢을 기세로 내리치는 천둥. 흰색의 빛이 저 멀리서 빛난다. 평소와 같은 밤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기 시작한다. 괜히 소총의 손잡이 부분을 꽈악 쥔다. 쉴새 없이 때려대는 빗방울들과 고막을 찢는 듯한 천둥의 소리. 아무래도 오늘 일찍 잠들기에는 틀린 것 같다.
비 덕분인지 해가 완전히 보이지 않는다. 19시가 조금 넘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밖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졌다. 우리는 초조한 마음을 달래며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드문드문 보이는 폐차들과 주위로 넓게 이어진 고속도로 그리고 평지. 어두운 밤 거리에 대항하듯 서서히 가로등의 불빛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무서운 얘기나 할까?”
준우 아저씨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무서운 얘기라니.. 그래도 상관없는지 준우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GOP에서 근무 할 때 얘기야.. 순찰식으로 경계를 교대하는 식이지. 총 10명의 교대 병사들이 있었고 그 앞에는 소대장이 인솔하고 있었지. 어두운 밤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거야. 은근 걱정이 된 소대장은 뒤에 병사들이 잘 걷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30분 단위로 걸음을 멈추고 뒤로 번호를 하게 했지.” “그래서요?”
어느새 흥미를 가진 동생이 준우 아저씨에게 완전히 빠져들었다. 딱히 시간을 보낼 것도 없는 우리들도 그 이야기에 점차 집중했다.
“처음엔 문제 없었어. 10번까지 그대로 이어졌지. 소대장은 안심하고 또 걸어갔어. 첫 번째 초소와 교대를 해줬지. 그리고 30분 정도를 걸어가서 번호를 시켰어. 역시 이번에도 이상이 없었어. 다시 30분을 걸어가고 교대를 해주고.. 다시 번호를 시켰지. 근데 번호가 9번까지만 하고 10번이 이어지지 않는거야. 소대장은 이상하게 여기고 9번을 외친 병사에게 물었지. 뒤에 오는 놈은 뭔데 대답 안하냐고. 그러니까 9번이 그러는거야. 그 병사가 지금 목이 다쳤다고. 소대장은 그런가부다 하고 다시 걸었어.” “....” “다시 30분.. 번호를 시켰지. 근데 이번에는 8번까지만 하는거야. 열받는거지. 병사들이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한 소대장은 8번 병사에게 물었어. 마찬가지 대답이었지. 소대장은 이를 바득바득갈면서 돌아가서 얼차려를 주겠다고 결심했어. 다시 교대를 해주고 30분이 지난후.. 번호를 시켰어. 이번엔 5번까지 말하는거야. 소대장은 어디까지 가나 보자는 식으로 주욱 갔지. 주둔지에 거의 돌아갈 때 즈음 다시 번호를 시켰어. 3번. 그러는거야. 그때 소대장은 뭔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한거야. 아무리 목이 아파도 그렇지 7명이 넘게 대답을 못할 리가 없잖아?” “그렇죠..” “더군다나 병사들의 목소리가 익히 듣던 목소리가 아니었어. 소대장은 슬슬 걱정을 지나 겁이 나기 시작했어. 차마 뒤를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는거야. 다시 걷기 시작한 소대장은 번호를 외치라고 말했어. 1번. 그러는거야. 바로 뒤잖아? 이 가까이 있는 병사가 유독 소대장과 친하게 지냈었는데 그 녀석 목소리가 아닌거야. 덜컥 겁이난 소대장은 그대로 몸을 돌려 총을 닥치는대로 난사했지.” “....” “5분정도 난사를 하자 후환이 두려운 소대장은 어떻게 할까 고민했어. 근데 주둔지 쪽에서 총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막 뛰어오더래. 소대장은 거의 포기 심정으로 최소 죽인 녀석들 얼굴을 보려고 랜턴을 비췄지. 근데!”
우르릉.
타이밍이 절묘하게 번개 소리가 준우 아저씨를 도와주었다. 덕분에 우리들은 헛바람을 들이킬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아저씨와 이 소위는 무덤덤하게 듣고 있을 뿐이다. 은혜와 남자는 말할 것도 없다.
“그게 전부 북한군이었던거야. 차례차례 한명씩 병사들의 목을 따면서 소대장의 뒤를 따랐던거지. 소름 돋지 않냐? 으으으.”
몸을 부르르 떨며 정수기의 물을 한 번에 들이키는 준우 아저씨. 뭔가 맥이 빠지는 것이 느껴진다. 툭. 툭. 툭. 오히려 버스 위를 때리는 빗소리가 더 무서웠다. 그 시작으로 봉수 아저씨도 장난기가 섞인 얼굴로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열심히 경청하던 중에 아저씨가 봉수 아저씨를 중지 시켰다. 검지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키며 버스 앞 창문 쪽에 시선을 주었다. 일렁거리는 붉은 불빛들. 녀석들이다. 다행히 저번처럼 대규모의 수가 아닌 꽤 소규모에 속하는 불빛들이다. 어제와 비슷한 형식이다. 10마리? 조금 넘나? 그 정도의 불빛이 고속도로의 끝 부분부터 반짝거리며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조용히 있으면 될거야..”
알고 있지만 초조해 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소총을 더 꽈악 쥐고 앞을 노려본다. 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 뒤를 살핀다. 봉수 아저씨는 덜덜 떠는 해인이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작은 목소리로 ‘괜찮아.’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서서히 다가오는 녀석들. 10미터 안팎이다. 아저씨는 봉수 아저씨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봉수 아저씨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꿀꺽. 긴장되는 순간이다. 안타깝게도 녀석들의 행동은 날씨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듯 하다. 굵은 빗줄기를 뚫으며 걸어다니는 녀석들의 모습은 정말 지옥에서나 볼 법한 악귀들과 하등 다를게 없어 보인다.
“크르르.”
녀석들의 특유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한 마리씩. 한 마리씩 버스 옆을 지나쳐간다. 그 중 한 마리가 유독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버스의 앞을 이리저리 훑어 보기 시작한다. 우리는 몸을 최대한 뒤로 빼 녀석이 조금이라도 눈치 챌 수 있는 꺼리를 제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우르르릉.
하늘에서 다시 번개소리가 크게 울린다. 녀석은 킁킁대며 버스 여기저기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설마 우리들의 채취를 발견한 건가? 이렇게 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미약하게 남은 우리들의 흔적을 추적하는건가?
“크르르.”
그 녀석의 행동이 너무 눈에 띈 탓인지 다른 녀석들도 서서히 버스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놈들이 킁킁대는 소리와 낮게 울부짖는 소리만이 가득하다. 제길.. 지나가라 제발.
번쩍.
환한 천둥이 녀석들의 모습을 한꺼번에 비춘다. 검은 털들 끝에 수없이 달려 있는 물방울들. 붉고 진한 눈동자는 먹이를 찾기 위해 번뜩거리고 있었다. 숨이 점차 가빠온다. 입술이 미약하게 떨려오기 시작한다.
“크르르.”
이내 얻을 게 없다고 판단한 녀석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녀석들도 천천히 버스를 지나쳐가기 시작했다. 후우.. 다행이다. 마지막 의심을 품고 있던 녀석도 서서히 옆을 지나쳐간다. 우리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식은 땀을 닦아 내었다.
“에취!” “!!”
해인이의 재채기 소리. 급하게 손을 막아 소리가 최대한 새어나가는 것을 방지하기는 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 소리가 너무나 컸다.
“크르르?”
덕분에 제 갈길을 가던 마지막 녀석이 슬그머니 돌아와 해인이가 있던 자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두워서 버스의 안이 보이지는 않겠지만 희미하게나마 녀석이 눈치챈 것 같다. 큰일이다.. 어쩌지? 녀석들의 수가 우리보다 많다. 확률적으로 우리가 불리하다.
“크르르르.”
다시 킁킁대며 해인이가 앉은 창가에 코를 대고 맡기 시작하는 녀석. 해인이는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어깨를 들썩였다. 너무 놀라 울고 있는 것이다. 봉수 아저씨는 그런 해인이를 꽉 안고 킁킁대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치 사파리 동물원에서 먹이를 더 달라고 보채는 사자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러나 저 녀석이 노리는 것은 우리들이다. 방심해서는 안된다.
“크아아아!”
콰앙.
녀석은 열이 받는지 버스 아래쪽을 강하게 내리쳤다. 흠칫. 놀란 우리들은 헛바람을 들이삼켰다. 씩씩거리며 버스 여기저기를 다시 훑어 보는 녀석. 정말 저 집념 하나에 소름이 돋는다. 절대 쉽게 포기하는 법이 없다. 빌어먹을..
“크아아!”
저 멀리 다른 녀석의 소리가 들린다. 뒤쪽이다. 그 소리를 들은 녀석은 버스를 다시 유심히 보고는 소리가 난 곳으로 뛰어가 버렸다. 녀석들과 싸우지도 않았는데 녹초가 된 기분이다. 깊은 한숨을 쉬며 의자에 털썩 기댔다.
“죄송해요.. 흐윽.”
울음을 삼키며 말하는 해인이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가 없다. 생리적인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그 작은 실수 때문에 모두가 위험에 빠질뻔 했다. 물론 이해를 못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 같이 민감한 상황에서 작은 것 하나하나에 생사가 오고갈 수 있다.
콰르릉.
“크아아아!”
녀석들의 분노 섞인 포효 소리. 나와 동생 그리고 준우 아저씨가 슬금슬금 이동해 버스 뒷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저 멀리 녀석들이 각자 손에 무언가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풍경에 우리들은 절로 눈살을 찌푸렸다. 아까 버렸던 시체 중 일부가 분명하다. 가로등 사이를 누비며 서로 먹겠다며 아웅다웅 다투는 녀석들의 꼴이란..
“쓰레기 자식들.. 저게 진화의 모습인가?” “....”
입은 많으나 고기가 한정적이여서 자연히 서로 다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라면 동료를 짓밟고서라도 배를 채우는 것이 녀석들의 생존 방식이다.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 빗줄기 속에서 하나의 춤을 추는 것처럼 검은 색과 붉은 색의 물결들이 빠르게 움직여댄다. 처음 보는 광경은 아니지만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완전히 식사를 마친 녀석들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가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게 쭉 가라.
투두두두둑.
버스 위를 때리는 굵은 빗줄기가 유독 귀에 거슬린다. 별거 아닌 상황인데도 괜시리 마음이 다급해진다. 빌어먹을 날씨. 우리를 놀리기라도 하듯 하늘에 내리는 비는 그칠 생각이 없다.
“저 자식 설마..”
동생의 말에 앞을 가만히 보니 아까 마지막에 남아 있던 녀석이 계속 이 쪽을 주시하고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마치 우리가 안에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 붉은 빛이 맹렬하게 빛난다. 제발.. 제발.
휙.
그대로 고개를 돌려 동료들과 합류하는 녀석. 하아.. 하아.
“아, 진짜 제 명에 못살겠네.. 이거 원.”
준우 아저씨가 몸을 추욱 늘어트리며 땀을 닦았다. 갈증이 난다. 버스 앞까지 걸어가 종이컵을 들어 물을 가득 담아 단숨에 비웠다. 후우.. 이제 겨우 숨이 트인다. 모두 극도의 긴장이 일순간에 풀려서인지 저마다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다. 차례대로 물을 한 모금씩 마신 우리들은 의자에 편하게 몸을 뉘었다.
“고생했습니다. 오늘 하루..”
우민이 형의 목소리를 끝으로 서서히 잠이 든 것 같다.
번쩍. 눈이 떠진다. 딱히 누군가가 깨운 것도 아닌데 저절로 몸이 일으켜진다. 이상하게 정신이 맑다. 자리에서 일어나 정수기 앞에 다가가 물을 마시고 시계를 봤다. 새벽 3시.. 아직 해가 뜨려면 한참 남은 시각이다. 사람들이 잘 자고 있는지 좌석 하나하나를 둘러본다.
“드르렁.”
미약하게 코고는 소리와 잠꼬대 소리가 들린다. 잘 자고 있군.. 다시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뭔가가 허전한 느낌이다. 다시 일어나 좌석들을 둘러본다. 없다. 은혜와 남자가 없다. 어딜 간거야. 제길.. 소총을 들고 버스 창문 여기저기에 붙어 밖을 내다본다. 넓고 황량한 고속도로에 희미하게 빛나는 가로등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남자의 능력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10마리가 넘는 녀석들 상대로 은혜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시 앞 좌석으로 와 넓은 창문을 통해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아.”
저 멀리 30~4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꾸물거리는 두 개의 인영이 보인다. 느릿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인간의 걸음걸이.. 은혜와 남자다. 왜 항상 은혜는 밤마다 저렇게 돌아다니는걸까. 저럴려고 저녁시간에 그렇게 일찍 자는 건가. 이해할 수가 없다. 괜시리 걱정이 된 나는 버스 문을 수동으로 열고 밖으로 나왔다.
툭. 툭. 툭.
미약하게나마 내리는 비가 버스 천장을 때린다. 아직까지도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린건가. 은혜가 감기에 걸리면 어쩌지? 주위를 둘러보며 은혜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움직일 배짱도 없었을텐데.. 이진성.. 정말 많이 발전했다.
내가 다가가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은혜는 계속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내 마음을 애타게했다. 정말 물가에 어린아이를 풀어 놓은 부모의 심정보다 더 간이 떨린다.
“?”
착각일까. 은혜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뭔가 반짝거리는 것이 보인다. 빠르게 움직이며 폐차 뒤에 숨었다. 내 눈이 잘못되기를 바라며 반짝이는 곳을 가만히 주시했다. 불행히도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 어두운 자연 속에서 미약하지만 확실하게 빛나는 두 개의 붉은 빛.
“한 놈인가..”
이상하게 녀석은 무리 생활을 하지 않았다. 다만 은혜와 일정 거리를 두고 그 자리에 굳은 듯이 서 있는게 전부다. 은혜는 모르고 있는 눈치지만 그 옆에 선 남자는 아니었다. 은혜에게 더 이상 접근하면 용서하지 않을거라는 포스를 흉흉히 내뿜고 있다. 폐차 옆으로 살살 돌아 넓은 평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욱 이대로 돌면 은혜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번뜩.
얼마 가지 않아 뭔가 석연찮은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은혜를 보고 있던 녀석의 시선이 내게로 꽂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멈칫. 반사적으로 몸이 그 자리에서 굳었다. 가만.. 저 녀석 설마 어제의 그 녀석인가? 몸을 제대로 피고 가만히 녀석들 바라보았다.
희미한 가로등의 빛 때문에 제대로 분간하지 힘들었지만 내 직감이 맞다면 분명 어제 그 녀석이 분명했다. 뭐야, 날 먹기라도 하겠다는거야? 너를 도와준 은인이라구. 다행히도 녀석이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이내 몸을 돌려 넓은 평지 너머로 사라졌다. 후우.. 다시 주위를 둘러본다. ♡♡ 내리는 비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은혜에게로 걸어간다.
“하여간 꼭 이렇게 사람을 걱정시키게 만든다니까..”
은혜는 쭈구려 앉은 상태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 보고 있었다. 남자는 나를 힐끗 보고는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은혜에게 다가가 옆에 쭈구려 앉았다.
“뭐 보고 있어?” “....”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은혜의 눈. 투명한 은혜의 눈을 통해 미약하게 빛을 내는 자그마한 별들이 여러개 보이는 것 같다. 뽀얀 은혜 볼 위로 하나둘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서서히 턱 끝에 모여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진다. 은혜의 손을 잡고 천천히 일으킨다. 힘없이 몸을 일으킨 은혜는 여전히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은혜야 왜 자꾸 밤에 나오는거야. 위험하잖아..” “....” “보고 있는 겁니다.”
남자의 말에 이해가 되지 않는 나는 은혜를 한 번 보고는 남자에게 물었다.
“뭐가..?” “앞으로의 일들을 보고 있는 겁니다.” “예언이라도 한단거야?” “비슷하지만 아닙니다. 메시아께서는 자신의 남은 날들을 보고 계시는 겁니다.”
남은 날..? 은혜도 자신이 곧 죽을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
“은혜와 말이 통하는거야?” “느낌입니다.” “그래서.. 매일 이렇게 새벽녘쯤에 나와 하늘을 멍하니 보는거야. 은혜가?” “메시아께서는 완전히 죽을 날을 선택하고 계십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남자의 표정에서 괴물과 비슷한 공포가 느껴졌다. 정말 저 남자의 모습이 우리 인류의 진화라고 할 수 있는걸까.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저런 허수아비 같은 태도가? 물론 은혜가 죽을거라는 말은 아저씨에게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게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전혀 느끼지 못했었다. 그만큼 상황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는거다.
“언제.. 언제 죽는데?” “그건 메시아께서 정하는겁니다.” “..그럼 넌 은혜가 죽을 때 가만히 있을거야?” “메시아의 뜻이라면..”
답답하다. 남자는 이제 공과 사를 완전히 구별하지 못하는건가?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 은혜의 손을 잡고 버스로 이끌었다. 힘없이 딸려오는 은혜. 확실히.. 전과는 다르게 많이 수척해져 있다.
“은혜야.. 죽으면 안돼.” “....” “약속하자. 응?”
응해줄리 없겠지만 새끼 손가락을 은혜에게 내민다. 멍한 눈으로 내 손가락을 보던 은혜는 이내 작고 여린 손으로 내 검지 손가락을 잡았다. 그래, 어찌되었든 약속한거야. 괜시리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고개를 세차게 젓고 버스 쪽으로 걸어간다.
“크아아!” “크우!”
저 멀리 녀석들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제길! 빠른 걸음으로 버스로 다가간다. 아까 녀석들이 사라진 곳에서 나는 소리다. 포효소리가 점차 거세진다. 우리의 냄새를 맡기라도 한걸까. 버스 너머로 빠른 검은 물체 여러 마리가 이쪽으로 접근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 갔을 때와는 달리 그 수가 반으로 줄어 있다. 뭐지? 아니다. 지금은 저런거에 일일이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빨리 은혜야.”
일단 은혜를 버스에 태워놔야 안심이 될 것 같다. 버스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치이익. 그 때 버스의 문이 열리며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 동생이 내렸다. 잠결에 녀석들의 소리를 듣고 나와 은혜가 없다는 것을 알고 바로 내린 것 같았다. 내 모습을 보던 세 사람은 빨리 오라며 손짓을 했다.
“크아아아!”
녀석들에게도 절박한 상황이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잡아야 배가 골리는 것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필사적이다. 소총의 커다란 소음 때문에 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다행히 전체적으로 비가 내리 있어서 빗소리와 섞여 그리 멀리 퍼지지는 못할 것 같다.
철컥.
장전을 마친 세 사람은 버스와 상당히 가까워진 녀석들에게 소총을 겨누고 2~3발씩 총알을 퍼부었다. 어둠 속에서 빠르게 목적으로 날아가는 총알을 피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총알이 몸에 박힌 녀석들은 달려오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크에엑.” “쿠엑.”
피를 토하며 비틀거리며 일어서려는 녀석. 순식간에 어두운 대지위로 붉은 피로 가득찬다. 몸 여기저기 뜯겨져 있는 상처.. 아무래도 녀석들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서로를 먹이로 인식하고 치열하게 싸운 것 같다. 그 중 살아남은 녀석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도중에 우리를 발견한 것이고, 배를 채울 수 있다는 희망으로 우리에게 달려든 것 같았다. 결과는 물론 참혹했지만..
“크으으.”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녀석들에게 다가간 세 사람은 각자 들고 있던 단검으로 녀석들의 머릿통을 강하게 쑤셨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절명한 녀석들. 내리는 비에 단검을 대충 씻어낸 세 사람은 다시 버스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어서 타.”
동생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든 나는 은혜를 먼저 버스에 태웠다. 남자가 타는 것을 끝으로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 보고 버스에 올랐다. 사람들 모두 그 소리에 잠이 깼는지 일어나 있었다. 우민이 형이 내게 마른 수건을 내밀었다.
“고마워..”
수건으로 먼저 은혜의 얼굴과 촉촉이 젖은 머리카락을 털어 주었다. 머리가 길어서 그런지 꽤 오래 걸린다. 힘없이 고개를 숙인 은혜의 하얀 목덜미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과연..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주어야 할까. 은혜도 곧 자신이 죽을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그저 온전히 죽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크르르.”
작게 울리는 소리에 우리들의 몸이 그대로 굳어졌다. 서로 간에 수신호를 보내며 다시 소총을 챙긴다. 다시 들리는 소리. 한 녀석이다. 각자 창문 쪽에 붙어 아래를 살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붉은 눈빛이 빛나는 것이 들어온다. 서서히 버스 쪽으로 다가오는 녀석.
“한 놈이야. 괜한 말썽일으키지 말자구.”
아저씨 말에 우리는 일단 대기하기로 했다. 만약에 사태에는 아낌 없이 녀석에게 총알 세례를 퍼붓겠지만 특별한 악의가 없다면 그대로 두자는 말이다. 가만히 녀석을 주시한다. 붉은 눈을 번뜩거리며 이리저리 주위를 살피던 녀석은 몇 번 킁킁거리더니 버스 뒤쪽으로 걸어갔다. 천천히 녀석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크르르르.”
차가운 대지 위에 따스한 온기를 가진 시체 더미를 보자 녀석은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그리고 서서히 식사를 시작하는 녀석.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준우 아저씨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거 혹시 어제 그 놈아냐?” “..맞아요.” “우리를 따라다니는 것 같은데?” “....”
준우 아저씨 옆에 있던 동생이 열심히 식사를 하는 녀석을 가만히 보며 말했다.
“우리를 따라다니면 배를 채울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 같은데.. 봐봐. 우리가 지나온 곳을 보면 전부 녀석들의 시체로 가득했잖아. 그래서 저 놈은 멀리 떠돌아다닐 필요 없이 우리 뒤를 졸졸 쫓는거 같아.” “죽여야할까.” “..근데 저 놈 은혜를 봐도 전혀 공격적으로 나오지 않더라구요. 다른 놈들 같았으면 은혜 냄새만 맡아도 광분하면서 달려들었잖아요. 저 놈은 뭔가 달라요.”
내 말에 둘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다른 녀석들과 분명 다른 태도를 가진 놈이지만 그 원본이 괴물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게걸스럽게 동료들의 고기를 먹어 치우는 녀석.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먹는 양이 엄청나다. 벌써 동료의 몸뚱아리 반을 뱃속에 넣은 녀석은 다른 부위에 손을 가져가기 시작한다.
“상부상조인가.” “에?” “그럴수도 있잖아. 저 녀석의 채취가 버스에 묻으면 다른 녀석들이 이 버스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거 아니야?” “그런가..” “우린 녀석에게 고기만 제공해주면 된다구. 어차피 한 놈이야. 총알 1~2개면 끝나는 놈이라구.”
꽤 설득력 있는 준우 아저씨의 말이다. 우리는 바보처럼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녀석이 식사를 마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20분이 조금 넘어서 동료 하나를 완전히 먹어 치운 녀석은 해가 곧 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다른 동료들의 시체를 질질 끌고 넓은 평지 쪽으로 사라졌다.
다시 앞좌석으로 와 몸을 편하게 누웠다. 고개만 살짝 들어 시계를 보니 5시가 다 되어간다.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어 사방이 캄캄하다. 아저씨는 우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1~2시간만 더 자고 이동합시다. 이따 오후에 졸지 않으려면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는게 좋겠습니다.”
그 말에 다들 동의했는지 몸을 편하게 하고 눈을 감기 시작했다. 축축히 젖은 옷이 몸이 착 달라붙어 찝찝한 느낌이 자꾸 들었지만 방금 전의 일을 겪어서인지 금방 잠이 온다. 육체와 정신이 급격히 피로해진다. 서서히 눈을 감는다.
누군가 내 몸을 흔든다. 서서히 잠에서 깨어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동생이다.
“아침 먹으래.”
그리운 단어.. 매일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기 싫어 빵이나 시리얼로 때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항상 잔소리를 들어 놓았었다. 나중에 몸이 망가진다고.. 아침을 먹어야 공부가 잘된다고.. 하지만 그럴수록 부모님에게 점점 반항기가 세져갔다. 동생에 대한 열등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항상 부모님 말에 군소리 없이 묵묵히 따르던 녀석이 꼴보기가 싫었다. 그래.. 어쩌면 내가 동생으로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몇시야?” “7시 조금 넘었어.” “그래?”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모두 밖으로 나간 듯 고요하다. 목을 좌우로 돌리며 버스에서 내린다. 어제 하루 종일 내린 비 때문인지 온 대지가 촉촉하게 젖어있다. 어두운 어제와는 다르게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햇살이 내 눈을 따갑게 했다. 눈을 찌푸리고 두리번 거린다.
“으응?”
이 맛있는 냄새.. 익숙한 냄새다. 버스 앞 쪽에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천천히 걸어가니 저번 라면을 삶아 먹었던 냄비에 찌개가 끓고 있었다. 주변에 굴러다니는 빈 참치 캔들과 포장용 김치와 식어버린 밥. 언제 챙긴거지? 꼬르르륵. 위장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준우 아저씨는 내 표정을 보더니 씨익 웃었다.
“오늘은 해인이가 만든거야.”
해인이는 발그레한 볼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에 모두가 희미하게 웃었다. 동생 옆에 앉으니 수저와 젓가락을 주었다. 봉수 아저씨가 은근 자랑스러워하는 어조로 말했다.
“애가 요리에 흥미가 많아서 집에서 자주 요리를 했었지요. 아마 못먹을 정도는 아닐겁니다.” “아유. 냄새만 맡아도 숨 넘어가겠는데요.”
낯선 사람에게 말을 잘 못하는 해인이가 택한 방법은 요리였다. 해인이의 나름대로 사과의 방식일 것이다. 모두 어제의 일이 크게 번지지 않았기 때문에 해인이에게 딱히 뭐라고 하지도 않았다.
“근데 이 밥이며 김치는 뭐야?” “밥은 마트에서 데운거야. 찬밥이긴 해도 먹을만 할거야. 김치도 가져온거지. 쉬었을거야 아마.” “그래?”
그래도 상관 없었다. 아침 다운 아침을 먹는게 더 중요했으니까. 어느 정도 찌개가 끓자 불을 끈 아저씨가 수저를 들었다. 한 입 맛을 본 아저씨는 해인이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로 답했다.
“정말 잘하는걸? 잘 먹을게.”
그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빠르게 식사를 시작했다. 뜨거운 찌개.. 김치와 어우러진 참치를 적당히 건져 한입에 넣는다.
“후하. 후..”
뜨거운 온도를 견디지 못하는 연약한 혀와 입안의 살들이 덴 것 같다. 그렇지만 맛은 최고였다. 차가운 찬밥이 입안에서 녹는 것 같다. 모두 한 마디의 대화도 하지 않은채 입에 넣기 바쁘다.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던 해인이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천천히 드세요..” “넌.. 이걸.. 후우. 천천히.. 후우. 먹으라는.. 거냐?”
입안 가득 음식물을 우물거리며 말하는 준우 아저씨. 동생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한다.
“아유 정말 거지가 따로 없네.” “맛있는걸 먹을땐 거지가 되어야 해.”
그 말에 동생은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그건 어디 논리에요?” “몰라.”
둘의 모습에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아저씨는 여전히 은혜부터 챙기고 있다. 남자는 뒤에서 묵묵히 밥을 먹을 뿐이고 봉수 아저씨와 해인이도 그제서야 식사를 시작했다. 우리의 저돌적인 모습에 약간 당황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따스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도 꽤 오랜만이다. 다들 집안에서 먹었던 음식들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잘 먹었다.” “해인이가 요리를 잘하네. 종종 맡겨야겠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준우 아저씨와 동생. 거의 밥을 비운 나도 둘을 따라나섰다. 버스 뒤편으로 느리게 걸어가는 둘. 그리고 한 곳에서 멈춰 선다. 빗물에 다 씻겨나갈 줄 알았던 피들이 바닥에 흡수가 된 듯 그대로 남아 있다. 준우 아저씨는 담배를 꺼내 나와 동생에게 나눠주었다.
치직.
불을 붙이고 서서히 타들어가는 담배를 힘껏 빨았다.
“저기로 간 것 같네.”
녀석이 사라진 경로를 가리키는 준우 아저씨. 그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굵은 핏자국이 주욱 이어져있다. 노란 풀들 위를 적색으로 만들어버린 많은 양의 피들. 꽤 멀리도 갔다. 보이지도 않을 정도니..
“아저씨 말대로 그 녀석이 정말 우리에게 도움을 줄까요?” “모르지. 우리 중 하나라도 홀로 남겨진다면 저 녀석이 우리를 먹이로 인식하고 공격하겠지.. 아마?”
후우.. 연기를 길게 내뱉으며 동생이 말했다.
“하긴.. 어차피 괴물 시체를 어디다 쓸 것도 아닌데..” “하이에나라고 생각해. 어딜 가나 뒤처리 반은 꼭 있으니까 말이야.”
우리는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담배를 태웠다. 곧 완전히 타버린 담배 꽁초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리고 다시 버스 앞으로 갔다. 사람들은 거의 식사를 마쳤는지 슬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정리를 도우며 버릴 것들은 바닥에 대충 두고 남은 물건들을 버스 옆 공간에 넣었다.
10분 정도가 소요되자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다. 모두 버스에 탑승한 것을 확인한 아저씨는 서서히 버스를 몰았다. 서서히 속도가 올라가는 버스. 어느 정도 가니 커다란 표지판 위에 ‘감사합니다.’라고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작게 안성시장이라고 써 있다. 감사는 개뿔.. 마트에서 있었던 일.. 상가로에서 있었던 일.. 밴을 버리고 온 일들.. 하나하나 머릿속에 찬찬히 그려진다.
부우우웅.
막힐 것이 없는 버스의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우리들은 자리에 편하게 누워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본다. 저 멀리 안성시에 있는 건물들이 보인다. 수많은 괴물들이 저곳에서 서로를 죽여가며 살아가고 있겠지.. 그리고 옆으로는 커다란 산과 평지가 전부다.
톡톡.
익숙한 소리. 마이크가 켜지는 소리다. 아저씨는 ‘아아.’ 테스트를 몇 번 하고서 말했다.
“휴게소 들릴 사람 있나?” “관광가는 기분이네 정말..”
동생이 뒷좌석에서 그렇게 중얼거린 것 같다. 별로 내키지 않았다. 특별히 먹을 것도 부족한 것도 아닌데 괜히 들려서 시간을 뺏기는건 아닌지.. 그러나 준우 아저씨는 단박에 말했다.
“가야죠! 여행의 필수 코스 휴게소를 빼 놓으면 섭합니다.” “5키로 정도 남았어.”
다시 꺼지는 마이크 소리. 고개를 쑥 내밀어 앞 좌석 창 밖을 보니 휴게소라고 크게 적힌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몸을 일으켜 준우 아저씨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준우 아저씨는 의아한 눈빛으로 날 본다.
“혹시 안에 뭐라도 있으면 어쩌죠?” “낮이야. 그리고 휴게소는 사방이 트인 공간이야. 그늘진 곳은 없어. 괜찮아. 다들 옷 좀 보라구. 버스 칸에 여벌의 옷이 있긴 하지만 어디 그걸 입을 수나 있냐?”
그 말대로 버스 안에 있는 옷들이 전부 노인들을 위한 옷이었다. 농촌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커다란 바지나 낡아 보이는 얇은 셔츠들.. 우리들 인원이 다 입으려면 턱없이 모자르다. 게다가 실용적이지도 않다. 무조건 오래 입을 수 있고 단단한 소재의 옷을 입어야한다.
“그렇겠네요..” “거기서 해인이 석궁 연습도 시킬겸.. 좋잖아. 겸사겸사.”
준우 아저씨는 항상 긍정적이고 밝았다. 저번 당구장에 일이 있고 난후부터 그렇게 변한 것 같다. 그 모습이 썩 보기가 좋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것 같다. 하긴.. 이런 우울한 여행 속에도 희망을 잃어서는 안되는거니까.. 물론, 준우 아저씨가 담고 있는 상처나 두려움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준우 아저씨의 모습.. 왠지 모르게 닮고 싶어진다.
부우웅.
버스가 서서히 우측으로 돌기 시작한다. 앞에 커다란 간판으로 써져있는 ‘휴게소’라는 세글자가 눈에 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채비를 한다. 각자 들고 갈 소총들과 배낭. 그리고 해인이에게 가르쳐줄 석궁을 챙긴다. 무기들이 한정적이여서 봉수 아저씨에게는 주지 못하지만 안에 쓸만한 것들이 있으면 챙겨줄 생각이다. 게다가 총알도 언제까지나 무한이 아니기 때문에 타격류의 무기가 필요했다.
커다란 휴게소 앞 공터에 서서히 멈추는 버스. 창 밖을 통해서 봤을 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한적한 공간이었다. 치이익. 문이 열리고 우리는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곳곳에 주차가 되어 있는 소수의 차들과 휴게소에 있는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점이 없었다.
“가지..”
아저씨가 제일 앞에 섰다.
“....”
그리 크게 걱정이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은혜라는 변수가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녀석들의 위치를 알 수가 있다. 모르고 대비하는 것보다 알고 대비하는게 확실히 생존 확률이 높아서 준우 아저씨 말대로 심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화장실 좀..”
해인이의 작은 목소리. 우리는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아무래도 남자끼리의 여행이다 보니 해인이의 안위를 생각하는 것을 잊은 것 같다. 물론 은혜가 있기야 하지만 은혜가 화장실에 가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에 해인이의 편의를 생각지도 않은 것 같았다.
“아, 미안하게 됐네.. 은혜랑 같이 가고..”
아저씨는 해인이에게 은혜를 붙여주며 말했다. 해인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은혜 손을 잡고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 뒤를 남자가 그림자처럼 따라 붙었다. 무슨 일이야 있겠어? 남은 우리들은 꽤 빠른 걸음으로 휴게소 가운데 부분에 있는 편의점 비슷한 곳에 멈춰섰다.
지이잉.
아직까지도 작동되는 자동문. 마치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악어의 그것과 비슷해서 선뜻 걸음을 옮기기가 두려웠다. 대충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아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이지만 어제 마트의 일처럼 녀석들이 몰려올 것 같은 나쁜 예감이 자꾸만 든다.
소총을 앞으로 겨누고 좁지도 크지도 않은 편의점 안을 둘러본다. 비릿한 피 냄새를 제외하고는 특이한 점은 없다. 우리들은 가져온 배낭에 여러 가지 물건 등이나 음식류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5분 만에 끝마친 우리들은 편의점에서 나와서 바로 옆 스포츠용품 가게에 들어갔다. 일을 마치고 온 해인이도 우리의 뒤를 따랐다.
지이잉.
빠르게 열리는 자동문. 고요한 가게 안. 우리들은 각자가 입을 것들을 빠르게 챙기기 시작했다. 활동하기 편한 등산복 위주로 택했다.
“해인아, 은혜도 챙겨주고 저기 탈의실에서 갈아 입고 올래?”
준우 아저씨 말에 해인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것과 은혜의 것을 챙겨 탈의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 뒤를 따라가려는 남자의 어깨를 잡은 준우 아저씨가 걸려 있는 옷들을 보며 턱짓을 했다.
“너도 그 후드 벗어버려. 멀리서 보면 오인한다구.” “....”
남자는 말없이 우리와 비슷한 옷들을 골라 그 자리에서 입기 시작했다. 앙상히 마른 흑색의 몸이다. 저런 몸으로 어떻게 상상이상의 힘을 내는거지? 신기하네.. 탈의실로 들어간 해인이와 은혜를 확인한 후 우리들도 서둘러 옷을 갈아 입기 시작했다. 상의를 벗을때 나는 매캐한 냄새 때문에 절로 눈이 찌푸려진다. 이런 쓰레기 같은 옷을 입고 여지껏 잘 버텨왔다니..
10분정도가 지나 말끔히 차려입은 우리들은 남은 옷가지들도 양손 가득 챙겼다. 그에 맞춰 탈의실에서 나온 해인이와 은혜도 여러 가지 옷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모두 챙긴 것들을 확인한 아저씨는 밖으로 나가 버스 쪽으로 향했다. 고요한 거리에 우리들의 발소리만 가득 울린다.
“온다..”
지이잉.
은혜의 목소리. 그에 맞춰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우리들은 일제히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크으.”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명백히 괴물인 한 녀석이 스포츠용품 옆 건물에서 튀어나와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잡힌다. 한 마리 정도라면 무시할 수 있다. 우리는 빠르게 버스 쪽으로 뛰다시피 했다.
지이잉.
어렴풋이 들리는 자동문소리. 슬쩍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불어난 5마리의 녀석들. 흉흉한 기세로 붉은 안광을 빛내는 녀석들의 입에서 침이 줄줄 흐르고 있다. 위험하다. 서둘러야 한다. 빠르게 버스에 오른 우리들은 대충 옷들을 아무렇게나 팽개쳐놓았다. 아저씨는 바로 버스 시동을 걸고 서서히 버스를 출발시켰다. 워낙 대형 버스라 단번에 가속도를 내기 힘든 것이다.
“크아아!”
우리들이 떠난다는 것을 눈치챈 녀석들이 빠른 속도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불어났는지 수가 8마리 이상이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동료를 이용해 언제 변할지 모르는 일이다. 휴게소 출구 쪽으로 빠져나가려는 찰나에 다닥다닥 붙은 녀석들. 날카로운 손톱을 이용해 매끄러운 버스 옆면에 붙은 것 같다.
“꽉 잡아!”
서서히 올라가는 버스의 속도. 녀석들의 울음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 바싹바싹 마르는 입술. 소총을 다시 장전하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다. 녀석들은 분명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녀석들과 우리들은 필사적이었다. 배를 채우려는 쪽과 도망치려는 쪽.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다.
부아앙.
버스의 속도가 서서히 올라간다. 녀석들은 버스의 가속력을 이기지 못하고 더욱 괴성을 지른다. 하지만 어느 하나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역시 끈질긴 녀석들이다. 다행히 녀석들은 점차 올라가는 가속력 때문에 버스 위쪽으로 오르지 못했다. 창문 아래 쪽에서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라니.. 우습지도 않다.
부아아앙.
서서히 올라가는 버스의 속도.
“키에에엑!”
드디어 한 녀석이 나가떨어졌다. 바닥에 볼썽사납게 굴러 떨어진 녀석은 그대로 추욱 늘어진다.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다른 녀석들이 문제다.
“크으으으”
이것을 놓치면 영영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 녀석들은 죽을 힘을 다해 매달려 있었다. 동생이 준우 아저씨에게 따지듯 말한다.
“아저씨! 안에 아무것도 없을거라면서요!” “누.. 누가 이렇게 될줄 알았냐?!”
준우 아저씨도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안전한 상태이지만 녀석들이 계속 매달려 있는 꼴을 보기가 싫었다. 아저씨는 큰 소리로 우리들에게 외쳤다.
“안전벨트 꽉 매! 브레이크 밟을거니까!”
관성으로 녀석들을 떨구려는거다. 우리는 모두 군말 없이 안전벨트를 매고 단단히 채비를 했다. 아저씨는 ‘간다!’라고 외친뒤 바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익.
커다란 마찰 소리와 함께 몸이 급격하게 앞으로 기운다. 크윽.. 밴과는 비교도 안되는 압력에 상체가 거의 바닥에 닿을 정도다. 그 충격에 안전벨트 끈을 통해 직접적으로 압력이 가해진 배가 땡겨져 온다. 숨을 쉬기가 어려워진다.
“키에엑!” “크아악!”
성과는 대단했다. 관성의 힘을 이기지 못한 7마리 녀석들이 그대로 앞으로 나가떨어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꽤 충격이 컸는지 몸을 꿈틀거리며 일어나려고 애쓰고 있다. 아저씨는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부아앙.
바로 버스 가속 페달을 밟고 출발하기 시작한다. 여전히 단번에 큰 속도가 붙지는 않았지만 저 멀리 있는 녀석들에게 당도하기 전까지 충분한 속도가 붙을 것이다. 상당히 빠른 버스 속도에 몇몇 녀석들은 차마 대비하지 못하고 그대로 버스 밑에 깔렸다.
덜컹. 덜컹.
“키에에엑!”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녀석들을 뭉개버렸다. 그나마 좌우로 피한 1~2마리 녀석들은 온 몸을 비틀거리며 다른 동료를 가만히 보고 있다. 그리고 살아 남은 녀석들의 눈이 점차 광기로 물든다.
“크아아아!”
그대로 죽은 동료의 살을 뜯어 먹은 두 녀석이 빠르게 변신하고 버스 뒤를 쫓기 시작한다. 온 몸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전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다. 그 자리에서 동료들을 뜯어 먹을 줄만 알았던 녀석들이 내 예상과 크게 벗어난 행동을 한다. 적어도 최소한의 동료애라는 것이 있는건가.
부아아앙.
그러나 녀석들의 체력으로 버스를 쫓는건 무리가 있다. 얼마 가지 않아 지친 두 녀석은 어깨를 들썩이며 버스를 노려보고는 도로가 떠내려가라 소리를 질러댄다.
“휴.. 미친놈들 정말..”
이내 녀석들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한숨을 크게 쉬고 흐르는 땀을 닦는다. 방심하고 있다가 크게 당할뻔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아까 전에 챙겨 두었던 배낭 쪽으로 걸어가 이온 음료를 꺼내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아저씨에게는 따로 병을 따서 입에 대주었다.
“고맙네.” “제가 더 고맙죠.” “많이 달라졌어. 진성군.” “예?” “전보다 상황 전환이 많이 빨라졌어. 안심이 되는데?” “에이, 제가 뭘 한게 있다구..”
아저씨는 말없이 희미하게 웃었다. 왠지 그 웃음이 멀리 여행을 떠나려고 준비하는 사람의 그것과 같아서 나도 모르게 낯설었다. 착각이겠지.. 뚜껑을 닫아주고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멀리.. 표지판이 보인다. 충주.. 남은 거리는 40키로라고 적혀있다. 이대로만 주욱 간다면 해가 지기 전에 여유롭게 충주에 도착할 것 같다.
부르르.
그렇게 잘 달릴 것 같던 버스가 서서히 멈추기 시작한다. 우리들은 궁금한 표정으로 앞 창문을 바라본다. 저 멀리 뭔가가 보이긴 하는데.. 자세히 보이진 않는다. 아저씨는 운전석에서 일어나 창문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한참을 같은 곳을 바라본다.
“설마..”
그 말에 대충 상황 파악이 된 우리들은 아저씨 옆에 서서 창문 밖의 상황을 유심이 눈에 담기 시작한다. 멀리.. 꽤 되는 거리에 뭔가가 일자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걸음걸이로 봐서는 사람이지만.. 손과 발에 뭔가가 묶여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두 마리의 괴물 녀석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사람들을 다그치는 것이 보인다.
“낮에도.. 자유롭게 괴물의 모습이라니.. 설마?”
준우 아저씨 말에 모두 조용해진다. 낮에도 저런 괴물의 상태를 하고도 흥분하지 않는 모습.. 그렇다면 우두머리라는 확률이 높다. 두 마리의 우두마리라니.. 게다가 두 녀석은 서로 협동하는 관계처럼 보인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건가. 우두머리 녀석들은 단독 행동을 하면서 평범한 놈들을 다스리며 일정 지역에 있던 것이 아닌가.. 아, 그 덩치 큰 우두머리.. 그래, 상황이 상황인만큼 녀석들도 뭉치는거겠지.
“일단.. 조용히 있고 총은 언제라도 쓸 수 있게 대기해.”
아저씨의 시력이 좋아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녀석들의 눈에 버스 움직임이 포착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찾아온 긴장 속에 소총을 꽉 쥐고 앞이 뚫어져라 쳐다본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두 괴물과 사람들. 괴물들은 전부 평범한 체격이었다. 그러나 일반 녀석들과 달리 기형적으로 발달된 상체가 그 힘을 어렴풋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쓰레기 같은 새끼들..”
남자 2명과 여자 3명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보이는데 하나같이 힘이 없는 걸음이었다. 모두 얼굴에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다. 꽤 젊어 보이는 사람들인데 어쩌다가 저런 꼴을 당한건지.. 서서히 이쪽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몸을 숙여 고개만 내밀고 녀석들의 행렬을 지켜보기로 했다.
‘이기적인 놈.’
마음 속에서 그렇게 말한다. 닥쳐. 지금 우리 상황도 어렵긴 마찬가지야.
‘멀쩡한 사람들이잖아. 버릴거냐?’
닥쳐.. 닥쳐!
‘너희들도 저 괴물과 다를게 없다.’
닥쳐.. 나도 도와주고 싶다고! 젠장! 부득부득 이를 갈며 두 녀석을 가만히 노려본다. 우두머리 두 마리.. 상상을 훨씬 넘는 전투력을 가진 놈들일 것이다. 이건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도 지켜야할 사람이 있고 나아가야할 목표가 있다.
“도저히.. 못 걷..겠어요.”
그때 여자 2명이 그 말을 뱉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여파로 줄로 이어진 다른 사람들도 그 자리에 눕듯이 쓰러져버린다. 우두머리 두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혀를 낼름거린다.
“그럼 죽여줘?” “허..억.. 어차피.. 우릴 못.. 먹잖아요.”
못먹어..? 이건 무슨 소리지? 여자의 말에 괴물은 화가 단단히 난듯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크아아아!”
화풀이를 하듯 지상에 그대로 주먹을 꽂는다. 콰앙. 소리와 함께 꽤 커다란 원이 생기며 스르르 땅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던 다른 괴물이 손을 저으며 만류한다.
“그만. 먹잇감에 흠이라도 생기면 두목께서 불쾌해하신다.”
두목..? 저 우두머리들 보다 더 강한 놈이 위에 있다는건가? 그렇다면 괴물 놈들끼리 뭉친 집단이 따로 있다는건가? 우리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왠지 도움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어..엄마.”
해인이의 작은 목소리. 우리는 일제히 해인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뜬 해인이의 몸이 서서히 떨린다. 그 말에 봉수 아저씨도 밖을 가만히 보더니 신음성을 삼키며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해인 엄마..” “....”
이런 개같은 경우가 또 있을까. 하필 저 사람들 중에 한 명이 두 사람의 엄마이며 부인이라니.. 봉수 아저씨는 말없이 해인이를 안고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해인이의 어깨도 들썩거린다. 최대한 울음을 참아내려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
“무슨 소리 들리지 않나?”
정말 귀신같은 감각이다. 광분한 녀석을 만류하던 녀석이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그 소리를 들은 부녀는 손으로 입을 막고 숨도 쉬지 않았다. 제발.. 제발.
“소리는 무슨.. 네 녀석은 쓸데없이 신경을 많이 써.”
다행히 다른 녀석은 느끼지 못했는지 투덜거린다. 곧 그 녀석도 팔짱을 끼고서 인간들을 훑어 보았다.
“배가 고프긴한데..”
그 말에 번뜩 귀가 트인 다른 녀석이 찢어져라 웃으며 말했다.
“하나만 슬쩍 하자. 두목도 이해하실거야.” “..괜찮겠지.”
그 말이 끝나자 마자 성격이 더러운 녀석은 자리에서 껑충껑충 뛰며 사람들 주위를 맴돌았다. 사람들은 사시나무 떨듯이 고개를 숙이고 자신이 표적이 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 같다.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도 지금 당장 죽는건 무섭다는건가..
“이 년으로 하지!”
제일 뒤에 있는 비교적 젊은 여자를 가리킨 성질 드러운 괴물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여자는 사색이 된 얼굴로 두 괴물을 번갈아 바라보며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쉬이익. 작은 소리와 함께 여자의 바지가 축축히 젖기 시작한다.
“에이, 제길!”
눈을 찡그리며 손을 저은 괴물은 그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여자의 머리채를 붙잡고 들어 올렸다.
“끄..헉!”
괴물의 상상 이상의 악력을 이기지 못하고 몸이 그대로 들어 올려진 여성은 고통스러운 듯 두 손으로 괴물의 손을 잡으며 매달렸다. 그 여성은 바로 봉수 아저씨와 해인이의 어머니이자 부인이었다. 봉수 아저씨와 비슷한 동년배겠지만 상당히 동안의 외모와 날씬한 몸을 갖고 있어서 멀리서 본다면 아가씨로 오인할 정도였다. 괴물도 그런 착각을 했는지 혀를 낼름거리며 여자의 목을 거칠게 핥았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애절한 여자의 목소리에 부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떨었다. 우리는 그런 부녀를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마음 한켠에 남아 있는 작은 양심이 자꾸 가슴을 푹푹 찌른다. 제길..
“나름 맛있게 익은 것 같구만.. 낄낄낄.” “흐윽.. 흑흑.”
여자는 이내 체념한 듯 굵은 눈망울을 흘리기 시작했다. 괴물은 몸 여기저기를 핥으며 말했다.
“내가 상체를 먹을테니 네가 남은 부위를 먹어라.” “좋지.”
괴물의 날카로운 입이 번뜩거린다. 커다랗게 입을 벌린 녀석은 그대로 여자의 얇은 목을 언제든지 물어 뜯을 기세로 빠르게 다가간다.
날카로운 톱 같은 녀석의 이빨이 당장이라도 여자의 목을 물어 뜯을 기세다. 어쩌지..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건가. 부녀에게 또 다시 슬픔을 안겨주어야만 하는건가. 안돼.. 그럴 수 없다. 나도 모르게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한 걸음.. 한 걸음.
텁.
동생이 내 손을 잡고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고개를 젓는다. 큭.. 이를 악물고 겁에 질려 벌벌 떠는 여자를 가만히 본다. 제길! 동생의 표정을 보고 다시 몸 상태가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 때, 봉수 아저씨가 빠른 속도로 내 총을 뺏더니 버스문을 강하게 발로 찼다.
“응?”
그 소리에 여자를 먹으려고 했던 우두머리 녀석이 고개를 획 돌린다. 봉수 아저씨는 그대로 버스 문을 수동으로 열어 밖으로 나가 녀석들에게 총을 겨누었다. 어깨를 심하게 들썩거린다. 처음 녀석들과 대면할 때 내 모습이 그려진다. 심하게 긴장했었지..
“해인 엄마!” “여.. 여보.” “오호. 설마 했지만 진짜로 있을 줄은 몰랐는걸.”
처음 귀신같이 감각이 좋은 녀석이 말했다. 제길.. 어쩔 수 없다. 우리 모두 버스 밖으로 나와 녀석들과 마주섰다. 물론 은혜와 해인이는 버스 안에 그대로 둔 상태다. 사람들은 우리의 존재를 보고 희망적인 표정을 지었지만 우두머리의 힘을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은 긴장될 수 밖에 없었다.
묘한 대치 상태. 두 녀석은 슬금슬금 자리를 옮겨 사람들을 자신의 앞으로 내세웠다. 벌벌 떠는 사람들은 우리를 보며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지만 선뜻 나서기에는 상황이 너무 애매하다.
“쏠 건가? 응?”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우두머리 녀석이 말했다. 봉수 아저씨에게 소총을 다시 건네 받고 단단히 잡는다. 서서히 녀석들에게 겨눈다. 내 모습에 사람들은 대경하여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나에게 말했다.
“사.. 살려주세요!”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우두머리 녀석이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재밌군! 누가 누굴 보고 살려 달라는거지? 이러니 너희 같은 하등 생물들이 멸종해가는거다.”
교묘하게 사람으로 자신의 몸을 가린 녀석들을 향해서 크윽.. 총을 쏠 수가 없다. 그 때 다른 녀석이 코를 킁킁대더니 이내 환한 얼굴로 웃음을 지었다.
“어이. 이 냄새..”
그 말에 다른 녀석도 코를 벌름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들은적이 있는 냄새군.. 두목께서 그토록 찾아 헤맨다는 그 냄새.. 예상외의 수확이야.”
두 녀석의 눈이 번뜩거린다. 두목.. 냄새. 설마.. 전에 은혜를 노렸던 그 덩치큰 녀석을 말하는건가? 저런 놈들까지 부릴만큼 녀석의 힘이 그렇게 강했었나? 두 녀석은 서서히 왼쪽으로 크게 돌기 시작한다. 이대로 가면 버스의 옆면을 그냥 내주게 된다. 제길..
“큭큭큭.”
녀석들은 우리의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는듯하다. 빼도 박도 못하는 이 상황..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누굴 선택해야 옳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걸까. 사람의 무게를 저울질 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잘못된 일일지도 모른다. 슬금슬금. 녀석들의 보폭이 넓다. 곧 버스 옆면에 닿을 것이다.
두두두.
착각이었을까. 내 옆에 커다랗게 울리는 소리가 달팽이관을 때린다. 총소리다. 고개를 돌리자 아저씨가 굳은 얼굴로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녀석들을 본다.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한 남자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우두머리. 남자의 연약한 몸을 그대로 총알이 뚫어 녀석에게로 향한 것이다.
“아저씨..”
나지막이 아저씨를 부른다. 아무 말이 없는 아저씨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크아아아!”
우두머리 녀석은 가슴 팍에 흐르는 피를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주춤거린다. 곧 분노에 못 이긴 녀석이 피를 흘리는 남자의 머리를 그대로 분리 시키고는 우리에게 던져버렸다. 휘이잉. 우리들은 그것을 아무렇게나 피해내고 앞이 빈 녀석에게 총알 세례를 퍼부어댔다.
두두두두두.
그러나 녀석도 미리 대비하고 있었는지 높은 도약을 통해 단번에 버스 창문 쪽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크게 주먹을 휘둘러 버스 창문들을 모조리 깨부수기 시작했다.
와장창.
힘없이 깨지는 버스의 창문. 이내 다른 녀석도 합류해 동료를 돕기 시작한다. 서둘러 녀석들에게 뛰어간 우리들은 힐끔 보이는 녀석들의 옆모습에 그대로 총알을 퍼부어댔다.
두두두두.
완전히는 아니지만 녀석들의 옆을 스쳐지나갔는지 몸에서 피가 새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녀석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도 우리를 돌아보지 않았다. 마침내 단단한 창문을 깨부순 녀석들은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안에는 은혜와 해인이.. 그리고 남자가 있다.
퍼억.
“크아아!”
박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들린다. 이내 빠른 속도로 버스 밖으로 튕겨져 나온 녀석은 충격이 꽤 컸는지 피를 한 움큼 토하고는 일어나려고 애쓰기 시작한다. 부들부들 떨면서 우리를 노려보는 우두머리 녀석. 그것을 그냥 놓칠 우리들이 아니었다.
두두두두.
사정 봐주지 않고 총알을 녀석에게 퍼부어댔다.
“크어어억.”
녀석은 그대로 총알에 몸이 꿰뚫리며 이리저리 몸을 비틀대다가 바닥에 추욱 늘어졌다.
와장창.
그 때 남은 창문들이 완전히 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남은 우두머리 녀석이 빠른 속도로 도주하는게 눈에 들어왔다. 온 몸에 피를 흘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중상이 확실해보였다. 그러나 녀석을 이대로 놓친다면 후에 다가올 일들을 완전히 감당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후우..”
우리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소총을 들고 점점 멀어져가는 녀석의 등 뒤를 겨누었다. 호흡을 멈추고.. 천천히 방아쇠를 당긴다.
두두두.
동시에 날아가는 우리들의 총알. 그 소리가 너무 컸던 탓일까. 녀석은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돌렸다.
“크아아아!”
그러나 온전히 피할 수 없었는지 녀석의 몸이 그대로 픽 쓰러진다. 성공인가? 하지만 녀석은 바로 자리를 박차더니 넓은 평지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다. 소총을 다시 겨누고 녀석을 향해 쏘지만 애석하게도 맞지 않는다.
“제길..”
점차 점이 되어가는 녀석을 보며 우리는 허탈한 감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그 녀석이 올거다. 처음 우리에게 총 공세를 가했던 그 녀석이.. 반드시!
“....”
이제 완전히 없어져버린 녀석에게 미련을 버리고 우리들은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이대로 꼬리가 잡힌다면 정말 큰일이다. 경험으로 보건대 덩치 큰 녀석은 절대 예삿놈이 아니었다. 저런 우두머리 급 녀석들을 마음대로 다룰 정도면 그 힘이 실로 어마어마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머리와 몸이 분리된 남자 시체를 제외하고 모두 버스에 올라타게 했다. 봉수 아저씨와 해인이는 굵은 눈물을 흘리며 처음 녀석에게 당할 뻔한 여자에게 다가가 꽈악 안았다.
“흐어어엉.” “흐윽. 흐윽.”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못 다한 한을 풀기라도 하듯 하염없이 울어제꼈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상황도 급했다.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는 세 사람을 강제로 버스에 밀다시피 타게 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탄 것을 확인한 아저씨가 버스를 출발시켰다.
“....”
버스 내부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그간 녀석들에게서 단단히 우리를 보호해주던 그 위풍당당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마치 폐차 직전에 내놓은 차처럼 버스 왼쪽 부분이 기하학적으로 찌그러져 있다. 창문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었다는 듯 휑하게 뚫려있다. 덕분에 모두 오른쪽 좌석에 앉아야만 했지만 일부 사람들은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에 크게 기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을 지나쳐 은혜와 남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은혜는 여전히 전과 같은 무표정이고 남자도 마찬가지었다. 다만 다른게 있다면 남자의 상의가 보기 흉하게 찢어져 있다는 것이다. 녀석도 아주 당한 것만은 아닌것 같았다. 남자의 찢어진 상의 안으로 흉몰스러운 상처가 보인다. 눈이 절로 찡그려지는 상황이다.
“괜찮냐?” “곧 나을겁니다.” “낫는다고?” “재생이 가능합니다.”
역시.. 남자는 우리 기준으로 생각해서는 안되는거였다. 저 정도의 상처를 입고도 아픈 기색 하나 없이 곧 나을거라며 덤덤하게 말하는 표정이라니..
“야, 진성아. 빨리 앉아라. 떨어질라.”
준우 아저씨가 옆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대로 휑하니 뚫린 왼쪽 공간으로부터 불어오는 풍압이 실로 엄청났기 때문이다. 서서히 버스가 속도를 내며 자연스럽게 바람이 거세진거다. 천천히 준우 아저씨 옆 의자에 앉아 안전벨트를 꽉 맸다.
픽.
뭔가 따끔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려보니 아직 완전히 깨지지 않은 창문 조각들이 거센 바람을 못 이겨 여기저기 날려대고 있었다. ‘위험하다.’ 라고 머릿속에서 신호를 보내온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비교적 앞에 앉은 동생이 아저씨에게 다가가 버스를 세우게 했다.
“일단 이 위험요소가 될 만한 유리조각들만 없애고 가자구.”
아저씨 말에 우리는 소총의 딱딱한 밑바닥 부분으로 망설임 없이 유리창에 붙은 조각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와장창. 쨍그랑. 귀에 거슬리는 날카로운 소리들을 애써 무시하며 작업을 계속 해나갔다. 어느 정도 모인 유리조각들은 버스 옆 깊게 파인 공간에 전부 밀어 넣었다. 대강 어느 정도 깨끗해지자 아저씨가 다시 버스를 몰기 시작했다.
“후우..”
숨을 크게 내쉬고 자리에 앉았다. 앞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아직까지 충격이 가시지 않는지 몸을 심하게 떨어댔다. 이상하게 사람들을 봐도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까 전 괴물의 손에서 허무하게 생명의 빛이 꺼진 남자가 죽을 때도 그랬다. 무섭다기 보다 괴물을 꼭 죽여야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었다. 아저씨 말대로 정말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상황판단 능력이 향상 되어가는건가? 과연.. 이게 좋은 일인걸까.
거세고 세찬 바람 때문에 숨을 쉬기가 어렵다. 몸을 앞으로 숙여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내 모습을 보던 준우 아저씨도 나와 같은 자세를 하며 내게 약간 큰 소리로 말한다. 거센 바람의 소음 때문이다.
“저 많은 사람들을 전부 지켜줄 수 없어.” “..그럼요?‘
준우 아저씨는 말없이 고개를 젓고 다시 원래의 자세로 돌아갔다. 4명의 사람..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들이다. 기댈곳이라고는 우리 밖에 없는데.. 지켜줄 수 없다니.. 준우 아저씨 말대로라면 저 사람들 모두 버리고 가겠다는건가? 사람들이 순순히 응할까?
“....”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을 알기나 할까.. 나는 몸을 일으켜 준우 아저씨에게 말한다.
“저들도 훈련을 하면 충분히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내 말에 준우 아저씨는 눈을 감으며 손을 저었다.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 게다가 우리 소총에는 총알도 얼마 남지 않았어. 이 총알이 다 떨어지면 우리 몸 하나 지키기도 힘들어져.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너도 알잖아? 녀석들은 무리 단위로 움직이고 있다구.” “저 사람들한텐 뭐라고 하게요.” “나한테 생각이 있어.”
그 말을 끝으로 준우 아저씨는 그대로 몸을 뒤로 젖혔다. 아저씨의 품 안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 소총이 눈에 들어온다. 대강 상상이간다. 가만히 준우 아저씨의 얼굴을 본다. 처음 PC방 건물에서 우리를 구해주던 그 아저씨가 정말 맞나 싶을 정도다. 수많은 괴물들에게 쫓김에도 불구하고 거리낌 없이 우리를 도와주던 준우 아저씨의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간걸까.
“....”
뭐라도 말이라도 하고 싶지만 준우 아저씨의 말도 틀린게 아니라 딱히 어떤 말을 할 수가 없다. 준우 아저씨 말대로 우리들이 가진 총알이 서서히 떨어져간다. 언제까지나 무한으로 있을 것 같았던 총알.. 총알이 떨어지면 타격류 무기로 녀석들에게 대항해야 한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소총과 석궁 1개가 전부다. 그 급박한 상황에서도 용케 석궁을 챙긴게 용하지만 그렇다고 석궁이라는게 무한으로 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타격 무기들로 녀석들에게 잡아 먹히지 않을 수 있을까.
철컥.
안전벨트를 풀고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우민이 형에게 다가간다. 거센 풍압 때문인지 우민이 형의 오른쪽 소매가 심하게 나풀거린다. 우민이 형은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한 채 나를 보며 물었다.
“할.. 말 ..어?‘
커다란 바람 소리 때문에 우민이 형의 목소리가 희미하다. 나는 바로 우민이 형 옆에 앉아 귀에 대고 말했다.
“충주에도 여러 부대가 있겠지?” “부대는 전국 어딜가나 있지. 잘 보이지 않게 주둔해 있는것 뿐이지만.” “그럼.. 총을 얻을 수 있을까?”
우민이 형은 입술을 다물고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겠어. 제대로 남아 있는 부대가 과연 몇 개나 될지도 의문이고..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선뜻 개인화기를 내어줄 것 같지도 않고..” “역시 그렇지?” “그럴 가능성이 크지. 하지만 가 볼만해. 군대라는 곳이 워낙 말이 안통하는데라서 잘될지 모르겠지만.. 지휘관을 만나 잘 구슬리면 될지도 모르겠지. 물론 멀쩡히 부대가 남아 있다는 전제하에 말이야.”
그럼 아직 희망이 있다는 얘기인가. 설마 우리 같은 사람들을 매몰차게 내쫓지는 않겠지.. 우리들도 나름대로의 악전고투를 벌여오며 여기까지 달려왔다.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만약 온전한 상태의 부대로 간다면 저 사람들을 버리고 가지 않아도 된다.
“좋아..”
충주에 도착하면 아저씨에게 얘기해 봐야겠다. 은혜를 빌미로 삼아 얘기를 해보면 응해줄지도 모른다.
부우웅.
얼마나 지났을까. ‘충주.’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시계를 보니 아직 13시에 불과하다. 충분히 시내를 돌며 부대 위치를 확인할 시간이 있다. 빠르게 충주 시내로 접어드는 버스. ‘탄금교’라는 다리 길 위를 빠르게 지나자 충주역이 보인다.
부르르.
역 앞에서 버스를 세운 아저씨는 모두에게 손짓을 했다.
“다들 내리시오.”
그 말에 사람들은 부들거리는 몸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차례대로 내리기 시작했다. 남은 우리들은 배낭을 매고서 소총과 석궁을 챙겼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해인이에게 석궁을 주고 화살통을 건넸다. 아직 두려워하는 표정이 가득한 해인이.
“네가 지켜줘야 해. 알겠지?”
내 말에 해인이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눈동자를 몇 번 깜빡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 달라져있다. 좋아, 그 눈이야. 해인이에게 석궁 사용법을 간단히 알려주고 장전을 시켜본다.
퉁.
해인이는 현을 조심스럽게 잡아 당기며 강도가 어느정도 인지 가늠해 보고는 이내 한 번에 장전에 성공했다. 확실히 양궁을 다루고 있던터라 처음 우리들과는 다르다. 해인이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제일 선두에 있는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아저씨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왜.’라고 대답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얘기를 아저씨에게 전했다. 물론 우리 둘만 듣도록 목소리를 작게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중에서 나는 ‘총’이란 얘기와 ‘은혜’라는 부분을 강점적으로 설명했다.
“흐음..”
효과가 있는지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좋은 생각이야. 일단 인터넷을 통해 부대 위치를 알아보도록 하고.. 지금은 빨리 이동하는게 좋아. 모두 모이시오.”
아저씨 말에 사람들이 쭈뼛거리며 모여든다. 아저씨는 사람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중간 정도 크기로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차를 통해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4명당 1조로 나누겠습니다. 여성분들은 전부 여기에 남아 계시고 차를 몰줄 아는 세 명만 근처에 있는 차를 구해서 이리로 오는 것으로 하지요.”
아저씨 말에 여자들은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많이 지친 탓이다. 해인이와 어머니는 서로를 놓을 생각이 없는지 아직까지도 꼭 끌어안고 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봉수 아저씨가 나섰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역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재빨리 봉수 아저씨가 따랐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나머지 사람들은 대기하고 있게. 금방 올터이니.”
아저씨 말에 남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무말 없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적당한 차가 있는지 물색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역 부근이라 주인을 잃은 차들이 상당히 많았다. 봉수 아저씨는 그 중 제일 앞에 있는 SUV차량으로 다가갔다. 검은 색으로 선텐이 되어 있어 안을 한번에 보기가 힘들었다.
“신호를 하면 여시오.” “알겠습니다.”
봉수 아저씨는 긴장된 표정으로 차량의 운전석에 손을 가져갔다. 우리는 소총을 겨누고 준비를 마쳤다. 나는 봉수 아저씨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봉수 아저씨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단번에 운전석을 열어제꼈다.
“....”
다행히 내부는 깨끗했다. 봉수 아저씨는 슬쩍 고개만 들이밀어 뒷좌석도 조심스레 살폈다. 마지막으로 열쇠가 꽂혀 있는지 확인한 봉수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차량 한 대가 확보되었으니 다른 두 대를 구해야했다. 바로 걸음을 옮겨 SUV차량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되어 있는 중형차가 보인다.
“흐음..”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렸다. 앞 창문이 전부 검은색이 아닌 붉은 색으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저것을 다 닦아낼 여유 같은건 없다. 우리에겐 아직 뽑지 않은 카드가 많다. 걸음을 옮겨 역 근처로 다가갔다. 주욱 줄선 택시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좋아.”
한눈에 봐도 상태가 멀쩡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들은 대충 밖에서 살펴본 뒤 택시 3대를 이끌었다. 아까 보았던 SUV차량은 잊은지 오래다.
부우웅.
시동이 걸리며 매끄럽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택시. 신호나 도로를 전부 무시하고 사람들에게 되돌아간다. 운전면허를 따본 후 처음 차를 만지는거라 약간 흥분도 된다. 사람들에게 다가간 우리들은 사람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먼저 아저씨 차량에는 평범한 남자 둘과 우민이 형이 탔고 봉수 아저씨 차량에는 해인이와 어머니. 그리고 준우 아저씨가 탔다. 마지막으로 내 차량에는 평범한 여자 한명과 동생. 그리고 은혜와 남자가 탔다.
부우웅.
천천히 시동을 걸고 아저씨가 제일 선두 그 다음은 봉수 아저씨. 후미는 내가 따랐다. 처음 왔을 때와는 다르게 상당히 규모가 커져 있는 상태다. 준우 아저씨 말대로 이 사람들을 온전히 지켜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우선 역을 벗어나 큰 도로 쪽으로 차를 몬다.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주유소가 눈에 들어왔다. 차례대로 주유소 쪽으로 운행을 하기 시작한다.
“....”
차 안은 고요했다. 조수석에는 남자가 앉고 그 위에 은혜가 겹쳐 앉는 식이다. 뒤에는 동생과 평범하고 젊어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다. 무심한 표정으로 밖을 보는 동생과 달리 여자는 잔뜩 긴장한 얼굴이다. 조금이라도 건드린다면 울음을 터트릴 것 같다.
“걱정하지 마세요. 누나.” “..네?” “누나가 아닌가? 하하. 어찌되었든 우리가 꼭 지켜줄거니까요. 걱정하지마세요.” “네에..”
내 말이 효과가 없는 것 같다. 여자의 표정은 여전히 그대로다. 녀석들에게 당한 것들이 너무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 탓인것 같다. 얼마가지 않아 주유소에 도착한 우리들은 나란히 차를 세워고는 한명씩 내렸다. 막상 주유소 기계를 만지려고 하니 머리가 멍해진다. 아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해줄게. 기다려.”
준우 아저씨의 목소리. 어느새 첫 번째 차량에 기름을 넣어주고 두 번째 차량에도 기름을 넣고 있었다. 좋아.. 남은건 컴퓨터로 알아보는 것뿐이다. 주유소 안쪽을 유심히 본다. 특별한 생명체의 반응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동생을 데리고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저벅. 저벅.
꽤 넓은 공간에 우리들의 발소리가 크게 울리는 것 같다. 빠르게 카운터로 도달한 우리들은 활짝 열려있는 문을 한 번보고는 창문을 통해 내부를 대강 훑어봤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대량의 핏자국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 거의 꺼져가는 모니터 앞에 섰다.
“깨끗하게 좀 쓰지..”
동생이 투덜거리며 마우스를 움직였다. 왜 그러지? 고개를 돌려 키보드를 보니 덕지덕지 붙은 피들 때문에 자판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동생은 인상을 찌푸리고는 검색 사이트에 들어가 충주 군부대를 검색했다. 하지만 나오는거라고는 ‘충주 부대찌개’가 전부였다.
“이런거에 나오겠냐.. 병무청에 가봐야지.”
내 말에 동생은 투덜거리며 병무청에 들어가 충주로 카테고리를 맞추고 이리저리 검색을 한다. 그러자 수루룩 여러 부대의 전화번호가 나왔다. 정확한 위치는 나오지 않았지만 대강 근처에는 다가갈 수 있는 비슷한 주소도 있었다. 카운터 주변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펜과 종이에 그것들을 다 받아 적은 후 빠르게 나왔다.
“다 됐어.”
어느새 마친 준우 아저씨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는 차에 올라탔다. 나는 빠르게 아저씨에게 다가가 종이를 내밀었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차를 출발시키기 시작했다. 나와 동생도 차에 탑승한 뒤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는 꺼져 있는 내비의 전원 스위치를 눌렀다.
띠딕.
기계음과 함께 켜지기 시작하는 내비. 잘됐다. 이거라도 있으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 같다. 택시 별로 내비가 다 설치 되어 있으니 아저씨도 크게 헤매지는 않을 것 같다.
부아앙.
점점 속도를 높이며 빠르게 도로를 질주해간다. 시내를 벗어나 한참 운행을 한 끝에 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법한 길로 차를 몰았다. 5분 정도 지나자 ‘00대대.’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인다. 드디어.. 안전한 장소로 온건가? 설레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구부정거리는 길들을 여러번 지나자 저 멀리 위병소가 눈에 들어온다.
부르르.
하나둘 차를 멈춰 세우고는 조심스럽게 나와 위병소로 다가간다.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보이는 자대 건물을 유심히 봐도 아무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아저씨는 빠른 걸음으로 위병 초소를 대강 훑어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여긴 아니야. 다른 곳을 가봐야겠어.”
우리는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부우웅.
다시 빠르게 이동하는 3대의 차량. 처음 들어왔던 길을 지나 옆으로 주욱 꺾어 차를 몰았다. 얼마나 몰았을까.. 다시 작은 골목길로 들어가는 아저씨의 차. 우리도 그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마찬가지로 ‘00대대.’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인다. 아까와는 다르게 직선인 길이 이어져 있어서 한결 차를 모는데 수월했다.
부르르.
서서히 멈춰서는 차. 저 멀리 보이는 위병소에는 세 명의 군인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우리는 느린 걸음으로 위병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세 명의 군인들은 우리가 다가오는 것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특별히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으나 확신할 수 있는건 그들이 우리를 반기는 눈치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서서히 군인들과 가까워진다. 제일 앞에선 아저씨는 가운데에 있는 중사에게 말을 걸었다.
“상황이 어떻게 되가고 있습니까?”
중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좋습니다.” “..심각한 정도입니까?” “예.. 많이 심각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들은 우리를 들여보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예상과 다른 전개에 우리들은 점점 속이 타들어갔다. 우리들이 갖고 있는 소총 때문에 그런 것인가?
“저희를 좀 도와주십시오..” “..그럴 수 없습니다.” “....”
중사의 얼굴은 아까전 아저씨가 남자를 향해 총을 쏘던 표정과 같았다. 그러자 뒤에 서있던 사람들이 나서며 항의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러는 법이 어딨어요?” “국민을 지켜야하는게 군인들 아닙니까?!”
하지만 중사의 표정은 한결 같았다. 돌처럼 굳은 입술을 천천히 열며 말하는 중사.
“나라가 우릴 버렸습니다. 제가 왜 당신들을 지켜야하는거죠? 당신들 때문에 죽어나간 전우의 수를 셀 수가 없습니다.” “그게 왜 우리 때문이라는겁니까!” “괴물이 생겨 피해를 입은게 전부 우리들 때문이라는거에요?!”
사람들은 흥분하여 언성을 높였다. 그도 그럴 것이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기댈 곳이 남아 있지 않았다. 여기가 최후의 보루인 셈이었다. 물론.. 우리도 머지 않아 이들과 같아질테지만.. 중사는 예의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 돌아간다면 쏘지 않겠습니다.” “....”
사람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중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게 소총을 잡은 손에 힘이 꽈악 들어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것인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던 김 대위의 그 군인정신이 이들에게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인가.
“이럴 수는 없습니다!” “우리를 들여보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중사는 고개를 저으며 위병소 벽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삐익-
길게 울리는 소리에 우리는 멍한 표정으로 중사를 바라보았다. 이내 10초가 되지 않아 위병소 뒷길에서 10명의 중무장한 군인들이 튀어나왔다. 하나같이 위장을 단단히 한 상태였다. 빠르게 이쪽으로 뛰어오던 군인들은 우리를 보고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 중 제일 앞에 선 하사가 입을 열었다.
“박 중사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 하사. 이들은 감염되었어.”
박 중사의 충격적인 말에 우리들은 그대로 공황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러자 당황하던 이 하사도 표정을 사납게 굳히더니 총구를 우리 쪽으로 겨누기 시작했다.
“아.. 아니.”
당황해서 말도 안나온다. 감염자라니. 사람들이 그런 우리의 심정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말했다.
“저희 모습을 보시고 말씀하세요! 이게 어딜 봐서 감염된 상태라는거죠?”
그 말에 박 중사는 기다렸다는 듯 남자를 턱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몰골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
남자의 특성상 괴물과 완전히 일치 했기 때문에 박 중사의 오해를 산 것이다. 그것을 잘 풀어보려고 준우 아저씨가 한걸음 나서며 말했다.
“저기.. 그러니까 이게 말하자면..” “닥치시오! 한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쏘겠소!”
살벌한 그의 태도에서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어 보였다. 우리들은 이를 악물고 서서히 뒤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서서히 그들과 멀어진다. 박 중사는 우리를 유심히 보더니 이내 표정이 일그러져갔다. 괜히 불안해진 마음에 우리들은 뒤를 돌아보았다.
“허억..” “흑..”
저 멀리 좁은 길에 꾸물거리며 뭔가가 다가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잊을 수 없는 ‘붉은 색의 물결’이다. 우리들은 망설일 것도 없이 위병소 앞으로 뛰어가 그들에게 말했다. 그 중 한 여자가 박 중사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봐요! 이래도 우리가 감염됐다고 말할 수 있어요? 저 뒤에 있는 괴물들 좀 보라구요!” “크윽..”
박 중사는 이를 악물고 전방을 계속 주시했다. 그 사태를 가만히 지켜보던 이 하사가 소대원들을 데리고 위병소 바로 앞까지 나가 진열을 가다듬었다. 한명씩 다닥다닥 붙어 일렬로 선 상태에서 가만히 녀석들을 바라본다. 박 중사는 분에 못이겨 몸을 부들부들 떨고는 여자를 거칠게 뿌리쳤다.
“꺄악!”
그 충격에 바닥에 나동그라진 여자는 두려움과 공포심을 못 이겨 그 자리에서 울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당신들이 전부 이리로 끌고 온거였군!”
그렇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박 중사와 그 옆 병사들도 이 하사가 선 대열에 나란히 합류했다. 남은 우리들도 서로 멀뚱히 보다가 점차 가까워지는 녀석들의 소리가 들려오자 머뭇거림 없이 그들 옆에 나란히 섰다.
철컥. 철컥. 철컥.
셀수도 없는 많은 소리들이 오갔다. 군인들은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K-2를 전부 착용하고 있었는데 개개인의 단독군장에는 작은 수류탄이 하나씩 꽂혀져 있었고 탄알집에도 모든 실탄들이 들어 있는지 꽤 두둑해보였다. 일제히 안전핀을 격발로 맞춘 그들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대기했다.
“기다려..”
박중사의 말. 아직 녀석들이 가까워지려면 멀었지만 찰나의 방심이 죽음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낮 시간인데도 저 정도의 수가 모여 이곳까지 활보할 정도라면 결론은 하나였다. 그 빌어먹을 우두머리 녀석이다.
“배..고파.. 크으.” “고기.. 고기..”
가래가 잔뜩 끓는 목소리로 말하며 서서히 다가온다. 번뜩이는 붉은 눈은 낮이나 밤이나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안겨주기엔 충분했다. 박 중사는 그 녀석들을 언제까지고 내버려두지 않았다.
“사격!”
두두두두두.
번개와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귀가 금새 멍멍해지며 몸이 슬슬 떨려온다. 수많은 개인화기에서 내뿜는 불꽃들이 거침없이 녀석들의 살갗을 꿰뚫었다.
“끄아아아!” “크아아아!” “사.. 살려..”
엄청난 화력을 이기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녀석들. 그 와중에도 배고픔을 못이겨 쓰러진 동료들의 고기를 뜯어먹는 놈들도 있었고 괴물로 변신해 우리에게 다가오려는 녀석들도 있었다.
두두두두.
그러나 우리들의 총에는 자비가 없었다. 그렇게 5분도 안되는 시간동안 거리가 온통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박 중사는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고 그에 맞춰 모두가 탄알집을 분리했다. 익숙하지 않는 화약 냄새가 후각을 강하게 찔렀다.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부아아앙.
엄청난 바퀴소리와 함께 위병소 뒤쪽에서 레토나 한 대가 빠르게 다가오는게 보인다. 엄청난 소음의 총소리 때문일 것이다. 그대로 우리를 박을 기세로 빠르게 다가온 레토나는 사람들 바로 앞에 칼같이 맞춰서 멈췄다. 선탑자석이 열리며 베레모를 쓴 나이가 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내렸다. 계급을 보니 중령이었다. 굳은 표정으로 걸어오는 중령에게 박 중사는 경직된 얼굴로 한발 나아가 경례를 했다.
“충성!”
박 중사의 경례를 대충 받아준 중령이 앞에 깔린 수많은 시체들을 보며 말했다.
“습격인가?” “....”
박 중사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중령도 그것을 다그치지 않았다. 묘한 대치 상태가 이어지자 이 하사가 조심스럽게 나서며 말했다.
“대대장님.. 그게 저 사람들이 괴물들을 데리고 온 것 같습니다.”
이 하사의 말에 대대장은 우리를 가만히 훑어 보았다. 일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매우 딱딱한 얼굴이었다. 대대장은 고개를 돌려 박 중사에게 다가가 자조적인 미소를 띄며 물었다. 상당히 빠르게 변하는 표정변화다.
“저번처럼 그런 상황인건가?” “....” “지휘관 말에 그렇게 침묵으로 대답하게 되어있나?” “....”
상황이 점차 안좋게 흘러가는 것을 눈치챈 이 하사는 박 중사를 옆으로 밀어내며 대대장에게 말했다.
“대대장님 그게 아닙니다. 박 중사가 단지 오해를 한 것..”
짝.
경쾌한 소리와 함께 이 하사의 얼굴이 크게 돌아갔다. 일말의 신음성도 흘리지 않은 이 하사는 그대로 뒤로 물러나 고개를 숙였다. 모든 군인들도 고개를 숙인 상태였다. 익숙하지 않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우리들은 그저 멀뚱멀뚱하게 서서 대대장과 박 중사의 상태를 지켜볼 뿐이었다.
“사람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게 군인의 철칙 아니었나!”
쩌렁쩌렁한 대대장의 목소리에 모두가 움츠려들었다. 그러나 박 중사만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저런 인간들을 지키려다가 대대장님 아들과 제 아들이 그렇게 개처럼 죽어나간 겁니까?” “박 중사!” “말해보십시오! 저런 인간들이 과연 피 같은 자식들을 희생시켜가며 구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겁니까!”
짧은 대화를 통해 어렴풋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있었지만 자세한 내막은 역시 본인들의 입을 통해 들어아먄 할 것 같았다. 처음 무표정을 유지하던 박 중사의 표정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그건 대대장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서로를 못 잡아 먹어 안달이 난 것처럼 아무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위계질서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라고는 하지만 중령과 중사의 관계는 엄연한 지켜야할 선이 있고 따라야하는 법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둘의 모습은 그런 것과는 하등 상관이 없어 보인다.
“자네처럼 그렇게 과거에 연연하니 미래에 대비를 못하는거야.” “....”
대대장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레토나 선탑자석으로 향했다. 우리들은 그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대대장은 선탑자석 문을 열며 이 하사에게 말했다.
“잘 모시도록 해.” “충성!”
이 하사는 대대장에게 경례를 하고서 주변을 슬슬 정리하기 시작했다.
부우웅.
레토나의 시동이 걸리며 처음과 같이 빠른 속도로 위병소 뒤쪽으로 사라져버렸다. 박 중사는 신경질적으로 위병소 철문을 강하게 발로 차버리고는 레토나가 사라진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 버렸다. 이 하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아저씨에게 다가와 말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처음 저 남자를 보고 너무 놀라 단번에 믿어버렸습니다.” “아.. 아닙니다.” “정리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끝나는대로 막사로 모시겠습니다.” “그러지요.”
우리들은 이 하사와 남은 군인들을 돕기 시작했다. 물론 길에 무수히 널린 괴물들의 시체 운반작업이었다. 비위가 약한 여자들은 위병소 뒤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게 했고 남은 남자들은 괴물들의 시체를 한 곳에 모으기 시작했다.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녀석들의 거친 털들과 단단한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감촉은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걸 다 어디로 옮기는겁니까?”
아저씨 말에 이 하사는 힘들게 괴물의 시체를 옮기며 말했다.
“5톤 차에 모조리 싣고 최대한 멀리 있는 곳에 아무렇게나 버립니다. 하지만 낮에 이정도의 수가 공격을 해온것은 처음이라.. 당황스럽습니다.” “그렇군요..”
그게 하나의 존재 때문이라는 것을 이들은 모르고 있는걸까. 아무튼 우리는 무사히 쉴 곳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기적인 마음도 필요하다. 아직 그 사실을 알려서는 안될 것 같다. 20마리.. 30마리가 넘어가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하사는 이대로는 안되겠는지 군인 셋을 따로 불러 뭐라고 말했다. 곧 고개를 끄덕인 군인들은 위병소 뒤편으로 뛰어갔다.
“어딜 가는겁니까?” “포크레인하고 차를 갖고 오라고 했습니다. 이대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진작에 부를걸..”
이 하사는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볼에 생긴 새빨간 손자국이 유독 크게 보였다. 많이 아팠을텐데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은 이 하사가 새삼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대대장에게 맞은 충격 때문에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나자 꽤 커다란 규모의 포크레인과 5톤 트럭이 위병소 밖을 나왔다.
지이잉.
서서히 움직이는 포크레인과 트럭. 그 뒤로는 작업이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1시간도 안되어 끝나자 이 하사는 포크레인을 다시 보내고 두 명의 군인을 따로 선출해 트럭 옆에 타게 한 후에 출발을 시켰다. 거친 엔진 소리를 내며 부대와 점점 멀어져가는 트럭.
부우웅.
서서히 멀어져가는 트럭. 녀석들의 시체를 치우긴 했지만 남은 핏물들은 어쩌지 못했다. 일렬로 된 흙길이 온통 붉은 색으로 염색이라도 된 것처럼 변해 있다. 그것을 가만히 보던 우리들은 어느새 까맣게 된 손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붉은 피에 손이 염색이라도 된 것 같았다. 끈적거리는 이 느낌..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았다.
“고생했습니다. 들어가시죠.”
이 하사는 앞으로 서며 우리들을 안내했다.
“우웩!”
그렇게 걷는 도중 봉수 아저씨가 그 자리에서 먹은 것들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젊은 남자 둘도 구토를 해댔다. 이 하사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세 사람을 보고 말했다.
“적응하기 힘드실테지만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제서야 주위를 가득 매운 비릿한 피 냄새가 머리가 아플 정도로 강해져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거기에 화약 특유의 냄새까지 섞여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분명 구토를 유발하는 냄새가 분명했다. 더군다나 세 사람은 시체를 직접 만지고 운반했었다. 그 과정에서 참고 참았던 것들이 한순간에 올라온 것이다.
“허억.. 허억.”
간신히 진정을 한 세 사람은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하사도 다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준우 아저씨와 동생은 허옇게 남은 위액들을 대충 흙으로 덮어 버리고는 뒤를 따랐다. 천천히 위병소 뒤쪽으로 가자 앉아 있던 해인이와 어머니가 봉수 아저씨의 몰골을 보고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괜찮아..”
그렇게 말한 봉수 아저씨는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젊은 여자가 따라갔고 멍하니 서있는 은혜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자 준우 아저씨가 얼른 뛰어가 손을 잡고 데려오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레토나가 갔던 바퀴 자국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저 멀리 막사로 보이는 건물이 한 눈에 쏙 들어왔다. 곳곳에 세워진 레토나 여러대와 앰블런스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아저씨가 이 하사에게 물었다. 이 하사는 힘없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꽤 된일.. 이라고 해야 하나요? 괴물들이 본격적으로 활개를 시작하기 전날.. 각 부대에 비상소집령이 내려졌었습니다. 곧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했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부대에 최소 운영 인원들만 제외하고는 모든 병력을 최전방으로 투입시켰습니다. 그런데..” “..연락이 없군요?” “예.. 처음에는 잘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뚝 하고 끊겼습니다. 그 뒤로 그 많은 병력들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전쟁.. 현재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로 나오고 있는 북한과의 전쟁인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을 먹이로 인식하고 돌아다니는 괴물놈들을 말하는것일까. 중요한것은 그들과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것이고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건 분명 예삿일이 아니다. 뭔가가 일어나고 있는게 틀림 없다. 분명.. 뭔가가 있다.
막사 내부는 내가 생활하던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층에는 좌우로 봉쇄된 입구가 보였는데 중앙 통로만 이용하는 것 같았다.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고 주욱 좌우로 뻗은 통로를 보니 제각각 푯말들이 붙어 있다. P.X나 기타 행정부서들 그리고 지휘통제실이 있었다. 걸리적거리는 물건들을 전부 치웠는지 1층 내부가 휑했다.
“일단 쉬는게 우선일 것 같군요. 2층으로 올라가셔서 아무 생활관을 쓰시면 됩니다. 보급품은.. 김 상병!”
이 하사에 말에 소총을 점검하던 김 상병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 하사는 김 상병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사람들 좀 부탁해.” “예. 따라오시죠.”
김 상병은 계단위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하사는 다른 소대원들을 이끌고 지휘통제실이라고 적힌 곳으로 들어갔다. 저벅. 저벅. 문득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서 느낀건데 모든 창문이란 창문을 다 검은 색으로 막아 놓은 것이 눈에 보였다. 나는 그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김 상병에게 물었다.
“창문들은.. 왜 다 막아 놓은거죠?” “아.. 별로 좋은 광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아 있는 병사들 사기도 있고 해서..”
김 상병은 그렇게 대답을 회피해버렸다. 뭐, 상관없다. 일단은 이 지독한 피로를 떨쳐내고 싶었고 시큼하게 나는 땀냄새를 지우고 싶었다. 2층으로 올라와 김 상병은 곧장 왼쪽으로 꺾었다.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보니 철문으로 굳게 봉쇄되어 있었고 3층으로 올라가는 통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돌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왼쪽에 있는 행정실과 전방으로 주욱 위치한 생활관의 푯말들이었다. 그 옆으로 샤워실, 세면장, 세탁실이 있었다.
“우와..”
군대 시설을 처음 와보는 여자들은 나지막한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 중에서 가장 활발한 것은 단연 은혜였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이곳저곳을 누비기 시작하는 은혜. 나는 김 상병에게 양해의 말을 해야만 했다.
“죄송합니다.. 저 친구가 정신지체아라서요.” “괜찮습니다. 이쪽 생활관에서 보급품들을 쓰시면 되고 아무데서나 쉬시면 됩니다. 그럼..”
그렇게 말한 김 상병은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고요한 2층 내부에는 은혜가 뛰어다니는 발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치이잉. 철컹.
그 때 행정부 안에서 쇠문을 여닫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한 사람이 우리를 보고는 놀란 기색을 했다. 군복 상의 카라의 계급을 보니 중위였다. 그는 곧 옅게 웃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생존자들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본의 아니게 신세좀 지게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인걸요. 푹 쉬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말한 중위는 이곳저곳에 널린 서류더미들을 들추기 시작했다. 상당히 바쁘게 움직이는걸로 보아 우리가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서둘러 김 상병에 말한 보급품이 있는 생활관으로 들어가 각종 속옷류들이나 수건 군복들을 챙겼다. 이런 일에 익숙치 않은 여자들에게는 우리가 세세히 알려줘야만 했다.
“해인아. 은혜도 좀 챙겨줄래?”
준우 아저씨 말에 해인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체형도 거의 비슷해서 얼추 고르면 맞을 것 같았다. 품 안에 가득 보급품을 안고서 아저씨들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일단 거지꼴을 면해야 하니까.. 씻도록 합시다. 여자분들께서 먼저 샤워실에서 들어가시고 남은 우리들은 바로 옆 생활관에서 정리하도록 하자구.”
저마다 쉬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들었기 때문일까.. 그 말에 사람들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인이는 저 멀리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뛰어다니는 은혜의 손을 잡고 샤워실로 들어가버렸다. 남은 우리들은 바로 옆 생활관으로 들어가 가져온 보급품들을 비어 있는 침대 위에 대충 올려 놓고 각자 배정된 침대 위로 몸을 뉘었다. 물론 은혜를 끝까지 따라가려는 남자를 강제적으로 잡아둬야만 했다.
“흐아아아.”
몸이 그대로 녹아내릴 것 같았다. 기지개를 크게 펴고 한숨을 크게 내쉰다. 하얀 백색의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모포에서 나는 텁텁한 냄새가 왜 이렇게 향기롭게 느껴지는 것일까.
“일단 여기까지 오는데 성공했어..”
그렇게 중얼거린 준우 아저씨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 뒤에 우리들이 할 일들은..? 소총과 실탄을 챙기고 다시 부산으로 떠나야하는 것인가. 아직도 유람선을 운영하고 있을까. 우리가 갔을 때 이미 늦어버리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때 아저씨가 몸을 반만 일으켜 두 남자와 봉수 아저씨를 보며 물었다.
“우린 여길 떠날겁니다. 당신들은 어쩌겠소?”
그 말을 들은 세 사람은 서로를 멀뚱멀뚱 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중 봉수 아저씨가 대표로 말했다.
“여기 남겠습니다. 어딜 가시려고 그러는겁니까?” “부산에 제주도로 운행하는 유람선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위험한 일입니다. 여기가 더 안전하지 않습니까? 여기에 우리와 같이 있는게..”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정한일입니다.”
봉수 아저씨는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곧 여러분들과 헤어지게 되겠군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받았던 은혜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저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세 남자의 말을 들으니 왠지 가슴이 울적해진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걸까. 아빠가 말한 것들은 전부 사실인걸까. 그리고 아빠의 정체는 대체 뭐지..? 어떻게 그날 아무런 제재 없이 녀석들을 뚫고 온 것일까. 생각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머리가 지끈거린다.
“후우.”
의문의 꼬리를 잡으면 잡을수록 주욱 늘어나 아무것도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저..”
20분 정도 지났을까.. 해인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촉촉이 젖은 머릿결과 발그레하게 생기된 볼. 샤워를 마친 것 같았다. 손을 완전히 덮어버린 소매를 보아하니 군복이 너무 큰 것 같았다. 우리들은 몸을 일으켜 따로 두었던 보급품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응. 알았어.”
내 말에 해인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 생활관으로 걸어가는 것 같았다. 작고 폭이 좁은 발소리가 그 증거다. 채비를 마친 우리들도 생활관에서 나와 샤워실이라고 적힌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문득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어설프게 군복을 차려 입은 여자들이 낑낑대며 군화를 신고 있었다. 버스에 있던 등산복을 챙겨올 걸 그랬나.. 하긴 그 땐 그럴 겨를조차 없었으니까..
철컥.
샤워실 문을 열자 사우나 특유의 냄새가 우리를 반겼다. 매일 화약과 피비릿내를 맡은 우리들에게는 향수나 다름 없었다. 훌렁훌렁 대충 옷을 벗고 샤워실 안으로 들어간다. 샴푸와 바디린스 비누 칫솔 치약 등 많은 도구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공기가 후덥지근한 것을 보니 뜨거운 물이 나오는 듯 싶었다. 아, 지금 밟고 있는 물들이 미지근한 것을 보아하니 확실하게 나오는 것 같다.
쏴아아.
샤워기를 틀자 기다렸다는 듯 뜨거운 물들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온 몸을 가볍게 두드리는 수압에 기분이 좋아진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그대로 물을 받아들인다. 온 몸에 찌든 때가 한 번에 사라지는 느낌이다. 근처에 있는 샴푸를 짜내 머리를 벅벅 긁어낸다. 기름기가 좌악 빠지는 것이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 같다. 어느 정도 거품을 낸 후에 물로 그것들을 씻어 낸다.
“푸하.”
머리가 한결 개운해진 것 같다. 이어 비누로 세수를 하고.. 타월로 바디 샴푸로 거품을 내 온 몸 구석구석을 닦아 낸다. 검고 붉은 핏물들이 샤워실 바닥에 스멀스멀 모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배수구 쪽으로 쭈욱 빠진다. 마치 우리들이 저지른 살생의 흔적이라도 되는 것 같아서 마음 한켠이 씁쓸해진다.
벅. 벅.
이제 자주 씻을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구석구석 닦아내고 물을 오랫동안 몸을 씻어냈다. 대충 정리가 끝나자 우리들은 차례차례 샤워실에서 나와 따로 두었던 수건으로 물기들을 쫘악 흡수하고 보급품들을 입기 시작했다.
“오, 이제 보니 신형이네 이거?”
준우 아저씨가 신형 전투복을 이리저리 훑어 보며 씨익 웃었다. 나 때에도 저런 전투복은 아니었는데 참 많이 바뀐 것 같았다. 적당히 군복을 차려 입은 다음 군화를 신기 시작한다. 예전 신었었던 무거운 구형 군화가 아니었다. 상당히 가벼워서 활동하기가 편해보였다.
“아, 개운하다. 정말.”
제일 먼저 옷을 차려입은 동생이 그 말을 하고 샤워실 밖으로 나갔다. 휑. 차가운 바람이 샤워실 틈으로 들어온다. 볼에 닿은 차가운 한기가 나쁘지 않다. 모두 군복을 차려입은 우리들은 밖으로 나가 여자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아직 익숙치 않은 군복과 군화 때문에 쩔쩔매는 여자들을 도와주고 저마다 남은 침대에 앉았다.
“씻고 나니 정말 몰라보겠군요.”
아저씨의 농담 섞인 말에 사람들은 옅게 웃기만 했다. 아저씨는 몇 번 헛기침을 하고서 여자들을 보며 말했다.
“우린 곧 떠날겁니다. 여기 남자분들은 여기에 남는다고 했어요. 여러분들 생각을 듣고 싶군요.”
아저씨 말에 여자들은 볼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해인이 어머니가 그 중 대표로 말했다.
“우리도 여기에 남겠어요.” “그렇군요.”
사람들은 드디어 ‘쉴 곳이 생겼다.’라는 사실 때문인지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가만히 있던 해인이가 아저씨를 보며 말했다.
“은혜 언니도 데려가시나요?”
짧은 기간이지만 그간 정이 많이 들었는지 해인이의 얼굴에서 아쉬움이 진하게 뭍어났다. 아저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해인이는 우울한 얼굴로 은혜의 손을 잡았다. 곧 해인이의 손을 뿌리친 은혜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성한 걸음으로 생활관 밖을 나갔다. 주위를 더 둘러보고 싶기 때문이다.
“발이 너무 작아서 걷는데 불편하겠군..”
은혜의 걸음을 보며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군화가 다른 운동화보다 튼튼하게 오래가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당분간은 은혜에게 다른 것을 신게 하는 것은 좋지 않아 보인다. 그러자 우리 옆에 있던 남자도 바로 은혜를 따라 나섰다. 이상적인 체격을 갖춘 남자라 그런지 군복이 상당히 잘 어울렸다. 단지 저 검은 피부와 붉은 눈을 제외한다면 엄연한 사람으로 보겠지만.. 아저씨는 다시 사람들에게 말했다.
“일단 푹 쉬는걸로 합시다. 추후에 우리들은 떠나기로 되어 있으니 내일 바로 떠나도록 하고.. 여러분들은 여기에 계속 남아 군인분들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사람들은 아저씨와 우리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언제까지나 여기가 완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최종적으로 가게 될 제주도는 안전하다는 뜻인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날 보았던 아빠의 표정에서는 한치의 거짓도 없었다. 내가 알던 아빠가 맞다면 충분히 믿어 볼만하다.
“그럼..”
아저씨는 몸을 돌려 여자들이 편히 쉴 수 있게 생활관 밖으로 나갔다. 남은 우리들도 그 뒤를 따랐고 제일 마지막에 나온 동생이 문을 가볍게 닫아 주었다. 그런 우리들에게 행정부에서 나온 중위가 느리게 걸어오며 말했다.
“대대장님이 뵙고 싶어하십니다.” “알겠습니다. 쉴 사람들은 쉬도록 하십시오.”
아저씨 말에 남겠다고 한 사람들은 전부 우리가 정한 생활관으로 들어가버렸다.
“1층에 지휘통제실 옆 C.P실이 있을겁니다. 거기로 가십시오.”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한 중위는 다시 행정부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우리들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1층으로 내려왔다. 중앙 통로로 보이는 전방에는 넓은 연병장에 아무렇게나 서있는 차량들이 있었고 저 멀리 위병소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이 전부였다. 그리고 희끄무레하지만 확실히 보이는 붉은 색의 길. 녀석들과 생사를 건 사투의 흔적이다.
저벅. 저벅.
지휘통제실을 지나 중위가 말했던 C.P 라고 적힌 문 앞에 멈춘 우리들. 아저씨가 가볍게 두 세번 노크를 하자 아까 들었던 음성이 들려져 왔다.
“들어오시오.”
아저씨는 천천히 문을 열고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들도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10평 정도 되보이는 내부. 중앙에 커다랗게 놓인 테이블 위에 커다란 지도가 있었고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사무용으로 쓰는 책상 두 개가 붙어 있었다. 컴퓨터가 있긴 했지만 전원이 꺼진 상태였다. 그리고 테이블 위쪽 창가에는 뒷짐을 쥐고 서있는 대대장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까 일은 감사했습니다.”
아저씨 말에 대대장은 몸을 돌려 우리를 보고는 테이블 근처에 있는 의자들을 권했다. 우리는 사양하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곧 대대장도 의자에 앉아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밖이 저렇게 돌아가도 여기까지 살아오신 것을 보면 분명 운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예.. 그렇지요.”
대대장의 말투는 우리에게 관심이 있다기 보다 무언가를 궁금해하는 눈치였었다. 그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아저씨가 먼저 말했다.
“그.. 남자 때문에 그러시는겁니까?” “..얘기가 빠르군요.” “그건 저희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길에서 쓰러진 사람을 구해준 것 뿐인데 저런 상태였습니다.” “그렇군요.”
아저씨는 은혜 덕분에 저렇게 된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은혜에 대해 대대장이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일이 크게 틀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대대장은 아저씨의 거짓말을 그대로 믿는 눈치였다. 일단 우리에게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협상을 해야 한다. 가만히 있던 동생이 대대장을 보며 물었다.
“그러고보니.. 지휘관이신데 나가지 않으셨네요?”
그 말에 대대장은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작은 미소에 쓸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착각이었을까.
“이라크 파견을 막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일어나는 일이었지요. 자대에 돌아왔을 때 이미 이렇게 된 꼴이었습니다.” “..그럼 이라크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있나요?”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지요.”
해외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만 국한되게 일어난다는 말이 되는건가? 아니다. 어설픈 추측으로 모든 것들을 결정지을 수 없다. 지금도 시시각각 전 세계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대대장은 무거운 분위기를 깨려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어찌되었든 여러분들이 이리로 온 이상 최대한 지켜드리겠습니다. 물론 근무나 사격훈련에서 예외는 없지만..” “아뇨.. 저희는 떠날겁니다.”
아저씨의 말에 대대장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어디로 간다는 겁니까?” “..일단은 부산으로 갈 생각입니다만.” “부산이라.. 부산.”
대대장은 팔짱을 끼고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굵게 자라 있는 콧수염과 턱수염이 그의 강인한 인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대대장은 이내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듣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 유람선이 아직까지 운행을 하고 있을지..” “최소한의 희망을 거는거죠.” “알겠습니다. 모두 떠나는 겁니까?” “아닙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과 아까 보았던 검은 피부의 남자. 그리고 제 딸입니다.”
아저씨 말에 대대장은 선선히 수긍했다. 이제 중요한 부탁을 할 차례였다. 아저씨는 잠시 입을 다물고 헛기침을 몇 번했다. 그 미묘한 차이를 대대장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먼저 입을 열었다.
“필요한건 무기겠지요.” “그렇습니다만..” “어차피 미재고로 잡힌 총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줄 정도는 되지요. 이 마당에 군 재산 갖고 뭐라 할 사람도 없고..” “..그럼.”
대대장은 흔쾌히 아저씨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못할 것 없지요. 탄약도 넉넉히 있으니 챙겨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제야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선뜻 우리에게 무기를 내준 대대장이 천사처럼 보였다. 이제 조금이나마 부산에 가기 수월해질지도 모르겠다. 벌써부터 부산에 있을 유람선에 몸을 맡기는 모습이 상상된다. 하지만 대대장은 그렇게 선뜻 내줄 마음이 없었나보다.
“다만..” “다만?”
대대장은 처음 박 중사에게 보였던 얼굴로 우리들에게 말했다.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긴다는 가정하에 말이죠.”
“밤마다 녀석들을..?”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밤에 최적화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예상이 들어맞는 다면 필시 우두머리 녀석은 밤에 이곳으로 올 것이다. 처음 우리 집은 습격하던 그 날처럼.. 수많은 녀석들을 이끌고 오겠지. 이번에는 기필코 막아야 한다. 그 빌어먹을 집념 하나로 우리를 얼마든지 사지에 내몰 수 있기 때문에 오늘만큼은 녀석의 숨을 끊어야 한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마침 해도 저물어가니.. 있는 힘껏 돕겠습니다.” “녀석들이 본격적으로 오는 시각은 대개 20시나 21시부터입니다. 그 전까지는 잠을 자두십시오. 식사는 행정부에 있는 녀석에게 말하시면 될겁니다.”
대대장은 일어나지 않고 우리에게 말했다. 그의 두 눈은 상당히 지쳐있었다. 큰 희망을 갖고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아직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서둘러 C.P실에서 나와 2층으로 올라와 행정부에서 열심히 서류를 뒤적거리는 중위에게 말했다. 바쁘게 일하는 중위를 보며 동생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식사를.. 말하면 준비해주신다고 해서.” “아!”
그제서야 뭔가 생각난 듯이 중위가 행정부 다른 공간으로 뛰어갔다. 부스럭 부스럭. 아무래도 지금 밥을 먹고 저녁때까지 푹 자둬야 녀석들에게 제대로 대항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깄습니다. 지금은 이거 밖에 없네요.”
중위가 가져온 것은 컵라면과 식은 밥이었다. 우리들은 그것을 감사히 받아들었다. 곤란해 하는 중위를 보며 준우 아저씨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정도도 과분합니다. 감사합니다.” “예.”
중위는 다시 서류더미에 파묻혔다. 대체 뭘 찾고 있는거지? 지금은 총을 들고 만약에 사태를 대비하는 것이 좋지 않나? 어쨌든 우리는 라면을 먹기 위해 복도 끝에 있는 정수기 쪽으로 걸어갔다.
저벅. 저벅.
걸어가면서 여자들이 자는 방을 힘끔 보니 모두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은혜도 어느새 침대 위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남자는 그 옆에 서서 가만히 은혜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걸 가만히 보던 동생이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남자를 끌고 나왔다.
“일단 먹고 나중을 대비하자. 너도 뭐 좀 먹어야 힘을 쓸거아냐.”
그 말에 남자는 별다른 항의 없이 우리를 따랐다. 정수기 앞에서 차례대로 라면에 물을 붓고 다시 우리 생활관으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 앉았다. 군화를 벗고 최대한 편하게 앉아 라면이 익기만을 기다렸다. 아저씨는 다른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총은 쏠 줄 아시겠죠?” “군대에 다녀왔으니 알지요.” “실전과는 많이 다를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세 사람의 표정은 결연했다. 마지막 안식처인 이곳을 꼭 지켜야겠다는 그런 각오가 느껴진다. 우리도 오늘 하루만 버티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 충분히 우두머리의 공격을 막아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전보다 인원이 훨씬 많았고 경험이 있는 우리들과 여러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 전문병력들이다. 충분히 해볼만하다.
라면이 익을 때가 된것 같다. 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대충 면을 젓자 부드럽게 면들이 갈라진다. 몇 번 대충 휘젓고 입으로 가져간다.
후룩. 후루룩.
라면 먹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나중에 있을 일에 대비라도 하는 것일까. 극도로 긴장한 것일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라면을 비워내고서 찬밥을 대충 말아 컵라면을 들고 젓가락으로 퍼먹는 식으로 우리들의 식사가 끝났다. 포만감이 가득한 것을 느끼면서 그대로 몸을 뉘었다.
“하아암.”
5~6시간뒤에 생사를 건 전투를 해야하는 상황이지만 이상하게도 잠이 잘 온다. 그간 제대로 쉬지 못해서인지 눕자마자 스르르 힘이 풀린다. 머리가 점점 멍해지면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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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잤을까.. 번쩍 눈이 떠진다. 일어나서 눈을 몇 번 깜빡거리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문 틈으로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아하니 저녁 시간대에 이른 것 같았다. 침대 밑에 있는 군화를 신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행정부와 여자들이 있는 생활관을 제외하고는 2층 전체가 어두웠다. 행정부에는 아직 그 중위가 있을까.. 느리게 행정부 쪽으로 걸어간다.
“....”
혼자 문서 더미와 씨름을 하던 중위가 고개를 숙이고 잠들어 있었다. 그것을 가만히 보던 나는 문득 중위가 무엇을 그토록 찾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발소리를 최대한 줄이고 아무렇게나 널린 서류들을 대충 눈으로 훑어 보았다.
“흐음..”
그리 중요해 보이는 서류들은 없었다. 여러 장의 비문들이나 계획서.. 부대 일지 등이 전부다. 서서히 중위에게 다가가 끌어 안다시피 한 서류를 가만히 본다.
“!?”
이건.. 백신 보급? 그에 해당하는 내용은 중위가 완전히 가리고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한가지 확신할 수 있는건 이 부대에서 뭔가 알아낸 것이 틀림없다는거다. 이 종이를 찾으려고 그 많던 서류들 사이에서 씨름을 해왔던건가? 아니야. 애초에 이런 중요한 사항의 문서라면 쉽게 내버려 둘리가 없다.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거지? 중위를 깨워 당장에라도 묻고 싶지만 순순히 답해줄 것 같지도 않았다.
천천히 몸을 돌려 행정부에서 나와 여자들이 있는 생활관 쪽으로 걸어갔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는데 모두 깬 상태였다. 언제 일어났는지 봉수 아저씨네 가족은 서로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언제나 그렇듯 남자는 은혜 곁에 서서 가만히 내려다 보기만 할뿐이었다.
저벅. 저벅.
희미하게 들리는 발소리. 고개를 돌리자 저 끝에서 유리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걸어온다. 어두운 복도였지만 특유의 발걸음과 덩치로 누군지 구별할 수 있었다. 바로 준우 아저씨와 동생이었다. 나는 둘에게 다가갔다.
“어디 있다 왔어?”
내 물음에 동생은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뒤에 넓은 테라스가 있더라구. 담배 피고 왔지.”
그 말대로 동생과 준우 아저씨 몸에 미약하게나마 담배의 냄새가 났다. 나는 두 사람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약간 숙이고 말했다.
“아까.. 행정부에서 내가 뭔가를 봤거든?” “응?” “백신.. 백신 보급이라고 적힌 종이를 봤었어.”
내 말에 둘은 어둠속에서도 보일 만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일단 둘을 진정시키고 말을이었다.
“근데 이상해.. 그런거라면 대대장도 알고 있을테고 우리들에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준우 아저씨는 행정부를 힐끔 보고는 내게 말했다.
“혹시 예전 신종플루가 터졌을 때 나누어주던 그 백신을 말하는거 아닐까?” “..그 백신요?” “그래. 만약 백신이 나왔다면 정부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파를 했겠지.” “하지만.. 그 백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천분의 일 확률이라고..”
내 말에 가만히 있던 동생이 갑자기 뭐가 생각난 듯 박수를 치며 말했다.
“대충 알 것 같다. 그 많은 임상실험을 하기 위해 군인들을 모조리 이용한거야.” “..그건 좀 억지가 아닐까.” “아냐. 생각해봐. 거기서 후유증이 있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 못가고 죽었다고 했잖아. 게다가 전쟁에 나간 군인들 대부분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어. 만약 북한과 전쟁이 났다고 쳐. 그렇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전혀 다른 군인들은 보지 못했잖아? 우민이 형은 뒤에서 은밀히 움직이는 군인들이라 그렇다 해도.. 우리와 우호 관계에 있던 미군의 모습도 보이지 않잖아?”
준우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가만.. 듣고보니 그렇기도 하고.. 전쟁이 나면 먼저 미사일부터 날리기 마련이야. 부산까지도 닿는 그 장거리 미사일들이 우리가 살던 동네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어. 뭐가 터지기는 커녕 녀석들만 우글거렸지. 진우 말대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걸수도 있겠다.” “..그럼 그 많은 인원들을 전부 어디다가 수용한단 말이에요. 그것도 중무장을 한 군인들을.”
내 말에 둘은 할 말이 없는 듯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내 직감은 신종플라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백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중위가 뭔가를 숨기고 있거나 대대장이 우리를 속이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복잡하다. 이 사실을 아저씨에게 말해야만 할까.
“됐어. 지금은 무사히 오늘 밤을 보내는 것부터 생각하자.”
그렇게 말한 준우 아저씨는 앞으로 걸어갔다. 동생도 나를 힐끔 보고는 준우 아저씨의 뒤를 따랐다. 저 멀리 환하게 빛나는 행정부를 가만히 바라본다. 분명.. 뭔가가 있을 것 같다. 정부의 유일한 무력이 군인들인데 그렇게 쉽게 버릴 리가 있나?
“빨리 와. 꾸물대지말고.”
준우 아저씨 말에 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채 그 뒤를 따랐다. 다시 우리들이 있던 생활관으로 가니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모두 일어나 있는 상태였다. 잠을 푹 잔듯한 얼굴이다. 그에 맞춰 처음 우리를 안내해주었던 김 상병이 문 앞으로 다가왔다.
“준비하실 시간입니다.”
드디어 때가 온건가. 우리들은 천천히 몸을 움직여 김 상병의 뒤를 따랐다. 행정부에서는 중위가 여전히 잠들어 있다. 나는 내 앞에서 천천히 가고 있는 김 상병에게 물었다.
“저 중위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멈칫. 잠시 걸음을 멈춘 김 상병은 그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평범한 중위입니다.” “저분은 매일 저렇게 지내는건가요?” “그게 저 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지금 상황과 동떨어져 있다. 녀석들이 난무하는 와중에 서류더미들 사이에서 살아야하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역시.. 뭔가 중요한 것을 숨기고 있는게 틀림 없다. 그리고 박 중사의 말도 걸렸다. 우리 같은 사람들 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죽었다고 말했었다. 왜? 아들도 군인이었나?
“후우..”
차츰차츰 거대한 베일을 벗겨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진다. 1층으로 내려가자 준비를 마친 군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20명 조금 남짓. 하나같이 모두 중무장을 한 상태였다. 그 중 제일 선두에 서있던 이 하사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총과 실탄을 넉넉히 준비해뒀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감사의 표시를 하자 이 하사는 겸연쩍게 웃으며 다른 군인들에게 말했다.
“너희 둘. 이분들 총이랑 탄약 따로 빼둔거 가져와라.”
군인들은 재빠른 동작으로 지휘통제실로 들어가 K-2소총과 실탄이 담겨져 있는 크로스백 비슷한 걸을 가져왔다. 우린 그것을 적당히 나누어 가지고는 소총에 실탄을 삽입했다.
철컥. 철컥.
맑은 소리가 난다. 우리들이 준비를 마칠 동안 가만히 지켜보던 이 하사가 말했다.
“밤은 녀석들의 무대입니다. 작은 방심 조차 용납이 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합니다.”
그 말에 아저씨는 보이지도 않는 깜깜한 전방을 가만히 보며 말했다.
“생각보다 부대가 넓을텐데 이 인원들로 지킬 수 있는겁니까?” “위병소를 제외한 나머지 구역 모두 지뢰와 부비트랩을 충분히 설치해 놨습니다. 녀석들도 처음엔 산 쪽으로 오다 크게 당하고 난 다음부터 위병소 쪽에서 많이 기웃거립니다.” “그럼 20명 전부 위병소에서 대기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전부 외곽쪽을 순찰하고 있죠. 10명 단위로 오전오후로 풀타임으로 근무를 서고 있지요.”
지금은 20명인데..? 뭐지? 그런 우리들의 표정을 읽었는지 이 하사가 말했다.
“오늘은 왠지 무사히 보내기 힘들 것 같다고 대대장님이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전 병력이 투입하기로 했지요.”
우린 대대장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있는거지? 단순히 눈치가 빠른건가? 아니면 낮의 일을 보고 그렇게 판단한걸까. 아아, 행정부의 일 때문에 모든 것에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이러면 안된다. 일단은 오늘을 무사히 넘기는데 최선을 다하고 다음날 부산으로 가는 것을 우선적으로 해야한다.
“자, 그럼 가시지요.”
이 하사는 우리를 안내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뒤를 20명의 군인들이 바로 뒤따르고 남은 우리들은 제일 후미를 맡았다. 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어둠속을 군인들은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자연스럽게 걸어나간다.
저벅. 저벅. 저벅.
수많은 발소리만 들린다. 우리도 최대한 뒤처지지 않게 그 뒤를 바싹 붙었다. 서서히 눈이 어둠에 적응이 되자 앞서 걸어가는 군인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대충 주위를 둘러보니 연병장을 벗어나 다른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녀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긴장이 된다.
야-옹.
고양이 소리에 흠칫 놀란다. 후우.. 망할 고양이. 다시 묵묵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군화가 땅에 닿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저 멀리 우거진 산이 마치 커다란 괴물의 등 같아서 오싹 소름이 돋았다. 왜 이러지? 필요이상으로 떨고 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게 아니었나?
‘위험해.’
마음속에서 말하는 소리에도 크게 놀란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옆에서 걷고 있는 동생을 바라본다. 역시 한결같은 표정으로 묵묵히 걷고 있다. 정말 녀석은 이런 때일수록 심각하게 침착해지는 것 같다. 그런 녀석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된다.
저벅. 저벅.
걷는 소리가 점차 희미해진다. 앞을 보니 군인들이 멈춰서고 있는게 들어왔다. 그에 맞춰 멈춘 우리들도 느리게 숨을 쉬며 주위를 경계했다.
사라라락.
바람에 휘날리는 나무들 소리에 긴장감이 더해져간다. 스르륵. 군인들이 서서히 앉기 시작한다. 우리들도 서있기 뭐해서 바로 바닥에 앉았다. 딱딱하고 자잘한 느낌.. 모래로 된 길 위인가. 그 중 제일 앞서 가던 이 하사가 우리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저.. 산 보이십니까?” “예?”
이 하사가 가리킨 곳을 보지만 우리들의 눈에는 그저 어두운 공간일뿐이었다. 이 하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손가락을 들어 한 곳을 가만히 가리켰다.
“저 곳.. 잘 보십시오.”
우리는 그 말에 집중적으로 이 하사가 가리킨 곳을 봤다. 어두운 산기슭..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과는 다르게 유독 한 군데가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언뜻 보이는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불빛. 빨간.. 녀석들의 특징인 그 눈이다. 어떻게 발견한거지? 우리들의 표정을 가만히 보던 이 하사가 말을이었다.
“저런 식으로 우리를 지켜보는겁니다. 녀석들도 멍청하지 않아요. 저러고 있으면서 서로 뭔가를 주고 받습니다. 물론 다가오지는 못하지요. 그 앞에 무수히 많이 깔린 지뢰들과 부비트랩을 맨 몸으로 받아낼 자신이 없을테니까요.” “저기서 뭐하는거죠?” “모릅니다. 그냥 저렇게 우리를 지켜봅니다.”
동생도 눈을 찡그려가며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더니 이내 녀석이 있는 곳을 찾은 듯 이 하사에게 물었다.
“죽여야 하지 않나요?” “아뇨.. 밤에 퍼지는 총소리는 생각보다 길어서 다른 녀석들까지 끌어올 수가 있습니다.” “그럼 저렇게 방치하는거에요?” “딱히.. 우리에게 해를 가하지도 않고 해서 일단은 두고 있습니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쉰 다음 다시 일어나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힐끔. 이 하사가 가리킨 곳을 바라본다. 다시 어두운 공간만이 눈에 들어온다. 제길.. 그 어두운 털이 산속에서는 보호색으로 작용하고 있었군.
저벅. 저벅.
걸음을 옮긴다.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인다. 가만히 보니 처음 우리를 반겨주던 위병소였다. 한 바퀴정도를 돈 것일까. 어두운 곳에서 빛을 본 탓인지 우리들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져갔다. 하지만 그 때.
삐-익.
처음 박 중사가 우리를 보며 눌렀던 벨소리가 귀에 날카롭게 꽂혔다. 제일 앞 쪽에서 이 하사가 ‘제길’이라고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위병소로 뛰어가기 시작한다. 뒤쳐질 수 없다. 우리들도 빠르게 군인들의 뒤를 따른다.
삐-익.
이 소리가 났다는 것은.. 분명 녀석들의 공격해 왔다는 것이다. 그 우두머리 녀석.. 모습을 드러냈을까? 순식간에 위병소에 있는 군인들을 덮친다면 지금 가도 늦을지도 모른다. 서둘러야한다.
터벅. 터벅. 터벅.
어두운 공간에서 우리들의 군화소리만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녀석들의 비명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불길하다. 총소리도 들리지 않고.. 뭐가 잘못된 걸까? 괴물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슈슉.
그 때. 허공에서 뭔가가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것이 어렴풋이 눈에 잡혔다. 붉은 색의 가느다란 선이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앞서 가던 군인들 틈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낯선 소리.
푸슉. 푸슈슉.
어두운 공간에서도 보일정도로 붉은 피들이 분수처럼 튀어오르기 시작한다. 순간 몸이 자동적으로 경직되어간다.
“으아악!”
고통에 찬 비명소리. 그리고 소총에서 뿜어져나오는 불줄기. 시끄러운 소음과 매캐한 화약 냄새.
“크아아!”
녀석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곧 꽤 커다란 검은색의 그림자가 우리 쪽으로 느리게 기어오는 것이 보인다. 어둠속에서 빛나는 저 두 눈. 나를 강하게 노려보고 있는게 확실하다. 주루룩.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군인들은 동료를 잃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예리한 대검을 꺼내 녀석의 정수리에 무차별적으로 박아댔다.
“끅.. 끄."
녀석은 두 눈을 꿈뻑거리며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쉽게 숨을 끊지 못하자 군인들의 대검 세례가 더욱 거세져간다. 푹. 푹. 푸욱. 붉은 빛이 점차 사그러져간다. 마침내 녀석은 그대로 숨을 거둔다. 녀석이 숨을 거뒀나 확인을 위해 다른 군인이 랜턴을 녀석의 몸을 비춘다.
“흐음..”
일반 녀석들과는 달리 상당히 커다란 덩치다. 낮에 봤었던 그 녀석과 많이 흡사해보였다. 어떻게 넘어온거지? 고개를 돌려 녀석이 튀어온 곳을 본다. 검은 색의 산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하사의 말은 거짓이었나? 아니면 녀석은 교묘하게 지뢰나 부비트랩을 전부 피한것인가?
“부상자는?”
감정 없는 이 하사의 목소리. 그리고 즉각 대답하는 군인들.
“박 일병과 이 병장이 당했습니다.”
마치 이런 일이 익숙하기라도 한 듯 군인들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이 하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전리품을 챙기고 앞으로 간다.” “예.”
괴물에게 비춘 랜턴을 끄고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앞에 있던 다른 군인들이 사상자를 랜턴으로 비추며 소총과 수류탄, 실탄 등을 챙기기 시작한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두 시체가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마치 강제로 반을 갈라 놓은 것처럼 사지가 이상하게 절단이 되어 있다. 차마 보기 힘든 꼴이지만 녀석이 우리를 향해 덤벼들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이기적인 새끼.’
마음 속에서 그렇게 말해온다. 별 수 없다. 살기 위한 본능은 누구라도 다 같은거니까. 서둘러 전리품을 챙긴 군인들은 빠른 걸음으로 위병소로 뛰어간다. 아까 전 습격을 받아서인지 그 속도가 더욱 빠르다.
“헉. 헉.”
금새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많이 긴장한 탓일까. 내 몸이 이렇게 허약했었나? 제길.. 이런 때에 말썽을 부리다니 빌어먹을 몸뚱아리. 이런 어둠 속에서 홀로 남겨지는 사양이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빠르게 발을 놀린다. 마침내 위병소에 다다른 우리들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없어..”
아까 전 위병소를 지키던 세 명의 군인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벨을 눌렀던 스위치를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뭐지?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한다. 뭔가가 올 것 같은 느낌이다. 이 하사는 차분하게 소대원들을 진정시키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이 하사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극도의 불안으로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이 하사를 보며 아저씨가 말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어찌할 수가 없군요.” “이런.. 것은 본적도 들은적도 없습니다.” “..일단 침착하고 주위를 경계해야겠습니다.”
우리들은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상상이상의 속도와 파괴력. 우두머리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동안 어떻게 세 명의 군인들을 처리할 수 있었지? 그것도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분명 경계를 스던 군인들은 뭔가를 봤기 때문에 벨을 울린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역시?
“혹시.. 녀석들 중 유독 특이하게 강한 녀석이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내 말에 이 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특이한거라뇨?” “일반 괴물 녀석들과는 차원이 다른.. 상상이상의 힘을 가진 녀석이 존재하기도 해요. 그 녀석은 평범한 녀석들을 통제하고 사람과 똑같은 사고를 가졌어요.” “그런게..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이 하사는 우리의 말을 인정하기 싫은 듯 고개를 저었다. 이런 암담한 상황에서 그런 절망적인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이해한다. 우리도 수많은 경험을 통해 그런 비슷한 감정들을 느껴왔었으니까. 나는 좀 더 이 하사에게 진실되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두머리라고도.. 칭해요. 처음 우리집을 습격했을 때에도 그 녀석이 다른 놈들을 이끌고 공격을 해왔어요. 우린 운이 좋게 살아남았고.. 그 뒤로도 그 녀석과 마주친 적이 있었어요. 게다가 낮에 우글거리며 몰려온 녀석들도 어쩌면 그 우두머리 녀석이 시킨 걸지도 몰라요.” “....”
이 하사는 아무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내 표정과 눈에서 거짓을 읽어내려는 듯 하다. 그러나 나는 한치의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생생한 경험을 그대로 얘기했다. 이 하사의 눈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자 이내 이 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대강이나마 이 상황이 설명되는군요.” “하지만.. 제가 느낀 바로는 이 짧은 시간 만에 그 우두머리 녀석이 세 명을 모조리 없앴을 리가 없어요. 그것도 피 한 방울 남기지 않은 채로 말이죠.” “그럼.. 누군가가 군인들을 불러낸 것이 아닐까?”
준우 아저씨 말에 사고가 바뀌기 시작한다. 그래, 너무 국한적으로 생각한 내 잘못도 있다. 말끔하게 경계를 스던 인원들이 순식간에 사라질리 없다. 그렇다면 유력한 후보는 군인들이 아닌 그들을 통솔하는 간부급이 된다는 건가? 중위는 행정부에서 서류더미들을 안고 자고 있었고.. 박 중사는 아까이후로 보이지도 않고 대대장은.. C.P실에 있으려나?
“그게 더 와닿는군요. 그러나.. 우리가 정한 규율상 위병소 경계를 스는 인원에게 어떤 명령도 하지 않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충분히 거스를만큼의 지위를 가진 자라면 말이 틀려지지요.”
준우 아저씨 말에 이 하사는 눈매를 좁히며 C.P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말했다.
“대대장님은 그럴리 없습니다. 괜한 오해를 하시는 것 같군요.” “지금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제대로 알고 하는 말이요? 세상이 이 지경으로 돌아가는데 나쁜 마음을 먹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있다는거죠?”
준우 아저씨 말에 딱히 변명거리는 찾지 못하는 이 하사는 굳건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대대장님은 그럴분이 아닙니다. 박 중사라면 모르겠지만..” “예?”
우리의 의문 섞인 표정을 빤히 보던 이 하사는 곧 한숨을 쉬며 말을이었다.
“박 중사..는 애초에 군인이 되기를 싫어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군인이 된거지요.” “그런 것 치고는 계급이.. 중사인데요?” “그건 대대장님의 든든한 후원덕이죠.”
대대장과.. 박 중사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거지? 후원? 우리는 이 하사의 말에 경청하기 시작했다.
“대대장님과 박 중사는 배다른 형제입니다. 나이 차이가 좀 나긴해도 둘의 아버지는 같은 사람입니다.” “..이복 형제요?” “예. 저도 그 사실을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원래 사이가 저렇게 나쁘진 않았었는데.. 아들들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그래서 박 중사가 당당하게 대대장에게 대들었던거구나. 생전 모르는 남도 아니고 친 형제는 아니지만 배 다른 형제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들도 군인이었나요?” “..아뇨. 둘 다 감염이 되었습니다.” “감염이라면..”
우리들의 말에 이 하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괴물과 같은 증세를 보였죠. 실제로 몸에 검은 털들이 듬성듬성 나있었구요.” “좀 더 자세히 알려주시겠습니까?”
아저씨의 말에 이 하사는 남은 군인들에게 전방을 경계하라고 시키고는 우리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딱히.. 얘기할 거리는 아니지만 여러분들에게는 왠지 털어 놓고 싶군요. 저도 이 사실을 계속 안고 산다는 것이 영 꺼림직 했으니까요. 괴물들이 본격적으로 활개를 치는 다음날이었습니다. 우리 대대에 남은 병력이라고는 간부까지 포함에 24~25명이 전부였지요. 소수의 인원으로 넓은 대대를 지키기 어려워 위병소를 제외한 곳곳에 여러 가지 살상 무기들을 매설하고 24시간 내내 위병소를 지키는 방식을 이어왔었지요.” “....” “그날도 평범한 날이었지요. 괴물 몇 놈들이 밤에 나와 우리들의 심장을 놀래키는 것을 제외하면요. 낮이었습니다. 여러명의 사람들이 위병소 쪽으로 몰려오더군요. 그날.. 제가 병사들과 같이 근무를 섰기 때문에 명확히 기억합니다. 다가오는 사람들을 멍하니 보는데.. 점점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몸에 돋아난 털들이 이상하게 눈이 가더군요.”
이 하사는 그날이 뚜렷히 떠오르는지 입술을 달달 떨었다. 보는 우리까지 긴장되서 마른침을 삼켜야했다.
“그건.. 사람이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했습니다. 붉게 충혈된 두 눈과 이상하리만큼 발달된 송곳니들.. 우리는 바로 막사에 있는 병사들과 간부에게 알렸죠. 저 스위치를 통해서 말입니다.”
저 스위치는 아까 위병소에서 났던 커다란 소음을 내는 스위치가 분명하다. 이 하사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전 병력들이 위병소로 모여들었죠.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그런데 유독 대대장님과 박 중사의 표정이 보기 흉할정도로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딱히 이유를 묻지 않아도 왜 그런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죠. 우연히.. 박 중사의 가족사진을 본적이 있는데 고등학생이었나.. 아무튼 박중사의 아들이 사람들 틈에 껴있었던 거지요.” “그렇군요..” “아이러니하게도 대대장의 아들도 그 틈에 껴있었나 봅니다. 참 웃기는 일이죠. 하늘이 장난도 이런 식으로 치나 하고 묻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온전히 살려둘 수는 없었습니다. 딱 보기에도 ‘그것’들은 사람의 범주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두 사람.. 예. 대대장님과 박 중사는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쏴야한다는 대대장의 말과 일단 격리하자는 박 중사의 말.. 당연히 우리들은 지휘관의 명령을 우선시 해야했지요. 머뭇거림 없이 ‘그것’들에게 총알을 날려주었습니다.”
사라라락.
거센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가지들이 내는 소리에도 놀랄 정도로 긴장이 되어 있는 상태. 괜히 주위를 둘러보지만 위병소에서 묵묵히 경계를 하고 있는 군인들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어두웠다. 괜히 어두운 곳을 빤히 보기가 싫어 이 하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결과는 여러분들이 아시는대로..입니다. 박 중사가 그렇게 오열하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그런 박 중사의 모습을 본체만체하며 대대장은 서둘러 시체들을 치우라고 했지요. 우리들은 바로 트럭을 가져와 시체들을 멀리 내다버리기 위해 싣기 시작했습니다. 다 싣고 출발하려는데 박 중사가 기어이 운전하겠다고 하더군요. 대대장도 그거까진 관섭하지 않고 그대로 막사로 올라갔습니다.” “....” “그렇게 박 중사는 시체 더미들을 혼자서 처리하고 왔지요. 그 때부터 박 중사의 태도가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첫날에는 우울하던 모습을 보이더니 둘 째날부터는 괜한 병사들에게 화풀이를 하고 대대장의 명령을 제대로 듣지 않기 시작했지요. 우린 그려려니 했습니다. 자식을 잃은 충격을 직접 겪어봐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어머니를 여윈 저로서는 그게 약간이나마 이해가 되기도 했으니까요.”
박 중사.. 처음 우리를 보며 극도로 경계를 하며 아들이 우리 때문에 죽었다고 괜한 화를 냈었다. 그게 단순히 이 하사가 말한 것들 때문인가.
“그 후로부터 박 중사는 우리와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필요한 말들을 제외하고는 아예 입을 닫고 살았죠. 더군다나 씻지도 않았어요. 그의 곁에는 항상 땀에 찌든 냄새와 역한 냄새만이 가득했지요.”
그러고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나기 시작한다. 그 땐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었지만 희미하게 박 중사의 몸에서 낯설지 않은 악취가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제길! 그걸 왜 이제야 알아차린 것일까? 큰일이다. 사태가 어쩌면..
“박 중사님!”
그 때 위병 경계를 스고 있던 군인 한명이 전방을 향해 외쳤다. 화들짝 놀란 우리들은 그대로 그 군인 옆으로 뛰어갔다.
“....”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하나의 인영. 빨지도 않았는지 군복 여기저기가 더럽혀져 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식별하는 수단은 오직 카라에 달린 중사라는 계급과 그 왼쪽 아래에 있는 이름표 뿐이다. 서서히 위병소의 얕은 빛으로 드러내는 박 중사. 희미하게 풍기는 이 악취.. 고개를 들어 박 중사의 얼굴을 가만히 본다. 빨간.. 아주 빨간 두 눈이 빛나고 있었다.
이 하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작게 중얼거렸다.
“박 중사님..”
그 말에 붉은 두 눈을 빛내며 박 중사가 이 하사를 보며 말했다.
“더 이상.. 날 그렇게 부르지 말게.”
녀석들과 같은.. 가래가 잔뜩 낀 목소리었다. 그의 두 손에는 아직도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뚝뚝. 떨어지는 핏물들이 땅으로 점차 떨어져 연하게 퍼져간다. 이 하사는 부들부들 떨면서 소총을 박 중사에게 겨누었다.
“제기랄! 박 중사!”
금방이라도 이 하사가 방아쇠를 당길 태세다. 그러나 박 중사는 여유를 잃지 않은 모습 그대로 이 하사를 보며 말했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마당에 죽음을 두려워 할 것 같나?”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발작적으로 외치는 이 하사를 보며 박 중사는 서글픈 미소를 띄었다. 여지껏 봐왔던 괴물들과는 전혀 다른 행동이다. 감염이 된지 얼마 안되서 그런가? 괴물의 특징적인 점만 제외하면 박 중사는 인간일 때 그대로 모습이었다.
“세상에 유일한 낙은 바로 내 아들이었지. 사춘기라 많은 말썽을 일으키고 속도 썩였지만 마누라도 없는 시점에 나에게 남은 거라고는 아들 뿐이었어. 그런 아들이 내 눈 앞에서 총알 세례를 받고 더 이상 숨 쉬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줄 아는가?” “그래도..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살아가야할 사람은 살아야하는거 아닙니까!”
박 중사는 서서히 고개를 저었다. 그의 두 눈은 투명한 무언가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희미한 위병소의 빛을 받아 그것이 미약하게 반짝거린다.
“아니, 난 삶의 이유를 잃었어. 평생을 살아오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어디 떳떳하게 한 적이 있어야지 말이야. 그런 점에서는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 그러나.. 결과는 참혹하더군.” “어떻게.. 감염이 된겁니까?” “그나마 미약하게 살아 있는 녀석에게 일부러 내 팔뚝을 내주었지. 다 죽어가는 판인데도 녀석은 내 팔을 아주 맛깔나게 뜯어먹더군. 그러나 치명상을 입은 탓에 녀석은 곧 죽고 말았지만 서서히 변하는 내 몸을 보면서 나도 아들과 같은 곳에 갈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더군.”
처음 우리에게 냉대를 하며 쫓아내려는 박 중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은 그저 아들을 잃고 슬픔을 못이기는 평범한 아버지에 불과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지 이 하사는 굵은 눈물을 흘리며 방아쇠를 천천히 당기기 시작했다.
“쏘게. 더 이상 내게 미련은 없어.” “크흑.. 제길.. 큭..”
이 하사는 너무나 무기력한 박 중사의 태도에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눈물만 흘렸다. 박 중사는 서서히 고개를 돌려 우리를 보며 말했다.
“낮엔 정말 미안하게 되었소. 당신들이 나를 도와주시오.”
한치의 살기도 느껴지지 않는 박 중사의 태도에 우리들은 쉽사리 총을 들지 못했다. 박 중사를 볼 때마다 은혜를 지켜주던 남자의 모습이 자꾸 생각이 났기 때문일까. 괴물의 특성을 하고도 저런 지성을 가진 상태라면.. 어쩌면 박 중사 역시..
“부탁드립니다. 나를.. 어서 아들의 곁으로 보내주십시오.”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는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총을 들었다. 박 중사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는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을 체념한 태도다. 하지만.. 박 중사는 다른 녀석들과는 다르다.
“잠깐.. 박 중사님.. 물린지 얼마나 되었죠?”
내 물음에 박 중사는 슬며시 눈을 뜨고는 나를 보며 물었다.
“그게 왜 중요하지?” “중요해요. 얼마나 되었어요?” “2일.. 3일 되었나..” “근데 그렇게 온전히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이에요?”
내 말에 박 중사는 뭐가 잘못됐냐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말 뜻을 알아챈 준우 아저씨가 나를 만류했다.
“우두머리같은 과정을 겪는다고 생각하는거냐? 하지만 결국 죽여야하는 대상에 지나지 않아. 사사로운 정에 휘말리지 마. 저 남자를 본 건 오늘이 처음이야.” “하지만 그 동안 괴물의 특색을 나타내는 단계도 늦었고.. 저렇게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지성 그대로에요. 우리에게 적의를 가진 것 같지도 않구요.”
내 말에 박 중사는 뭔가가 생각났는지 박수를 치며 나를 보며 웃었다.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송곳니들이 나를 움츠려들게 했다.
“적의라. 그래 생각났군. 대대장 자식은 내 손으로 죽여야겠어. 왜 그 생각을 못햇을까? 고맙군. 청년.”
그제서야 묵묵히 눈물을 흘리던 이 하사가 퍼뜩 고개를 들고 박 중사에게 총을 겨누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 때문에 총구가 심하게 흔들렸다. 이 하사는 이를 악물고 박 중사를 보며 발작적으로 외쳤다.
“안됩니다! 아무리 박 중사님이라고 해도 이 이상 접근은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허..”
박 중사는 빙긋 웃으며 손을 까딱거렸다.
“그렇지 않으면 어쩔건데?” “..쏠겁니다!”
말을 마친 이 하사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커다란 소음 소리와 함께 이 하사의 상체가 약간 들썩였다. 그리고 우리들은 박 중사가 총에 맞았는지 확인을 위해 고개를 돌렸다.
슈우우우.
그러나 박 중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엄청난 스피드와 반사신경으로 총알을 피해낸 것인가. 자신의 조준이 빗나간 것을 확인한 이 하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소대원들을 다그쳤다.
“어서 찾아! 빌어먹을!”
소대원들은 명에 못이겨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부 겁을 먹고 있는 상태인지 어깨가 심하게 움츠려 있었다. 우린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생각보다 박 중사의 능력은 엄청났다. 과거.. 남자가 우두머리였을 시절을 보는 것 같아 시린처럼 그날의 고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가만히 생각에 잠긴 내 등을 누군가가 강하게 친다.
“정신 놓지마.”
동생이었다. 예의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동생. 나는 고개만 끄덕거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때였다.
“크아아아!”
와장창.
괴물의 소리와 함께 유리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소리가 난 곳은..? 막사다! 우리들은 볼 것도 없이 바로 몸을 돌려 막사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어느 틈에 저기까지 간거지? 정말 놀랍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막사에는 남자가 있긴 하지만 지켜야할 사람이 너무 많다. 아니지. 남자는 은혜만 지키려고 들테고.. 그럼 남은 사람들은 모조리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서둘러야해요!”
내 말에 우리들은 더욱 속도를 낸다. 하지만 우리들의 속도는 그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크르르.”
어두운 공간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는 괴물들 때문에 우리는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제길.. 이렇게 급한 때에!
“지뢰나 부비트랩이 설치 되어 있는거 아니였소?”
아저씨 물음에 이 하사는 이를 갈며 답했다.
“맞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온전하게 들어왔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그 때 뒤에서 묵묵히 서있던 우민이 형이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박 중사.. 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죠. 그 정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아까 위병소 앞에서 미련 없이 죽겠다고 한걸수도 있어요. 괴물들이 곧 여기를 덮친다는 것을 안거죠.”
그 말이 상황 파악이 빠르게 정리된 우리들은 소총을 들어 앞을 막고 있는 붉은 불빛들에게 총알을 날려주었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하나둘 꺼져가는 불빛을 보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크르르.”
그러나 또 다시 앞을 가로막는 녀석들. 아까보다 수가 많아졌다. 이렇게 되면 시간이 계속 지체될 수 밖에 없다. 녀석들이 노리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끄는 걸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았는지 이 하사가 굳은 얼굴로 군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너희 4명 여기에 남아 녀석들을 저지하고 따라와라. 그리고 다음 4명이 다른 녀석들을 막는 식으로 릴레이로 한다.” “예!”
이 하사가 지목한 4명이 괴물들의 앞을 막아섰다. 우리들은 그 틈을 노려 왼쪽으로 크게 뛰어가기 시작한다. 괴물들은 우리를 잡으려고 몸을 돌렸지만 4명의 군인들에 의해 무참히 깨져버리고 말았다.
“크아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4명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다가가는 괴물들을 뒤로 하고 계속 걸음을 옮긴다. 아직 막사까지 거리는 꽤 되는 것 같다. 어두워서 그런지 제대로 거리 식별이 되지도 않는다. 일단은 무조건 달리고 봐야한다.
“크르르.”
얼마 가지 못하고 다른 녀석들이 앞을 가로 막는다. 우리는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녀석들을 따돌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차례.. 남은 인원들이라고는 우리들과 이 하사. 그리고 3명의 군인이 전부였다. 막사 앞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불안한 전력이었다. 게다가 처음 녀석들을 막아선 4명과.. 그 뒤의 4명이 전혀 합류하지 못하고 있다. 일이 틀어지고 있다.
“일단.. C.P실부터 가지요.”
이 하사는 숨을 고르며 막사 중앙 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창문이 모두 막혀 있는 상태라 통로가 상당히 어두웠다. 처음 나올 때 작은 불이라도 켜져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어두웠다. 더군다나 하늘에도 떠있는 별들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새까매서 앞을 제대로 식별해내기가 어려웠다.
저벅. 저벅.
느린 발걸음으로 움직이는 이 하사와 군인들. 오랫동안 생활을 해온 그들이라면 보이지 않아도 충분히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들이 있는 방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일단 전력이 분산되면 더 큰 위험이 따를 것 같아 일단은 이 하사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어쩌면 자연스레 이 하사의 뒤를 따르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은혜 곁에 있는 남자라는 존재 때문일지도 몰랐다.
슈우우우.
통로에 가득차는 바람 소리를 제외하고는 너무나 고요했다. 천천히 C.P실 앞으로 다가간다. 그 때. 지휘통제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괴물 녀석 여러마리가 튀어나왔다.
“크아아!”
녀석들은 곧바로 군인들과 이 하사를 덮치기 시작했다. 급작스러운 공격에 소총을 제대로 겨누지 못한 군인들은 속수 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 하사는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괴물을 피해 총알을 퍼부어댔다. 남은 우리들도 군인들을 덮친 괴물들을 향해 총알을 퍼부었다.
“끄으으.”
종잇장처럼 꿰뚫린 몸으로 휘청거리던 괴물들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그러나 녀석들의 성과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우리 쪽에서도 두 명의 군인이 서서히 숨을 거두고 있었다. 이 하사와 남은 군인 한명이 묵묵히 그들의 전리품을 챙기기 시작한다. 이 하사는 점차 숨을 거두어가는 군인의 군번줄을 뜯고는 물었다.
“가족이 있나?” “..없...습..니..다.”
입에 고인 피를 힘없이 뱉어내며 말하는 군인은 그대로 목을 푹 숙였다. 이 하사는 이어 다른 군인의 군번줄을 뜯고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어..머니가.. 있습..니다..” “남길 말은?” “사.. 살아..만..”
군인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숨을 거두어버렸다. 이 하사는 두 개의 군번줄을 강하게 움켜쥐고는 자신의 목에 걸었다. 그리고 두 명의 군인.. 이제는 시체로 변해 고기덩어리에 불과한 둘의 머리에 각각 1발씩 총알을 날리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
우리는 아무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C.P실에 다다른 우리들은 서로를 보며 심호흡을 했다. 제일 앞에 선 이 하사가 문고리를 잡고 서서히 C.P문을 열기 시작한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소총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강하게 준다.
끼이익.
아까 전엔 들리지 않았던 낮은 마찰음이 들린다.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머릿속에서 말하고 있지만 이미 이 하사의 몸 절반 이상이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신속하게 그 뒤를 따른다.
“....”
어두운 C.P실에는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아까 우리가 나가기 전 의자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나온 흔적들이 눈에 보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점이 없었다. 이 하사는 초조한 얼굴로 우리를 보며 말했다.
“여.. 여긴 없는 것 같군요. 일단 2층으로 가는게 좋겠습니다.”
우리는 말없이 C.P실을 나와 싸늘하게 식어가는 시체들을 지나 계단에 올랐다. 저벅. 저벅. 계단을 통해 울려퍼지는 군화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녀석들의 포효소리나 사람들의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상하다. 너무 조용해.. 여기서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건 그게 그리 좋은 현상임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저벅. 저벅.
계단을 올라 바로 왼쪽으로 트니 아직도 불빛이 새어나오는 행정부와 여자들이 있는 생활관이 눈에 들어온다.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행정부 쪽으로 걸어간다. 언제라도 녀석들에게 총알을 날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제 그 빌어먹을 놈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된다. 앞서 가던 이 하사가 수신호로 자기가 먼저 들어가겠다고 얘기를 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행정부 옆 벽면에 찰싹 붙고는 심호흡을 크게 한 이 하사는 단숨에 몸을 돌려 행정부 안으로 들어갔다.
“흡.”
우리도 뒤질새라 이 하사의 뒤를 빠르게 따랐다.
“....”
하지만 보이는 것은 중위로 추정되는 잘게 찢어진 고깃덩어리가 전부였다. 행정부 바닥 전체가 붉은 피들로 뒤덮여 있다. 아무렇게나 널린 서류더미들 위에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붉은 덩어리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이 하사는 이를 꽉 물고 행정부에서 미련 없이 나간다. 잔인한 방식.. 박 중사의 짓인가?
“!!”
그럼 아까 봤던 백신 보급 자료는? 서둘러 책상 쪽으로 다가가 중사가 엎드려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을 유심히 본다. 피와 붉은 덩어리들로 범벅이 되어 글씨를 알아보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슬쩍 손을 뻗어 서류더미들을 살짝 옆으로 밀어본다.
사라락.
없다. 보이는 거라고는 엉뚱한 것들의 일부분이다. 죄다 피에 절어버려서 알아볼 수가 없다. 젠장. 유일하게 희망을 걸어볼 단서일 수도 있었는데!
“야, 뭐해. 빨리 와.”
동생이 고개를 살짝 내밀고는 나를 재촉한다.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은혜라도 무사히 구해서 여기를 벗어나야한다. 그 우두머리 녀석을 처치하는 것은.. 이런 전력으로는 많이 힘들 것 같다.
“어.. 어.”
서둘러 동생을 따른다. 나와 동생은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미 여자 생활관에 들어간 상태였다. 우리는 주위를 경계하면서 생활관 쪽으로 걸어간다. 저벅. 저벅. 몇 걸음 가지 않아 생활관의 불이 꺼지며 사람들이 천천히 나온다. 이 하사는 나를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한 명이 처참히 당했습니다.”
그 말에 아저씨는 봉수 아저씨를 보며 물었다.
“부인분이 아닌게 확실합니까?”
봉수 아저씨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증거는 없지만 확신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어디로 가야하지요? 이하사?”
아저씨는 저번과 같은 얼굴을 하고 이 하사에게 물었다. 이 하사는 잠시 생각을 하는 표정을 지으며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당연히 우리도 그 뒤를 따랐다. 걸음을 옮기던 이 하사는 김 상병이 창문을 막아 놨던 것들을 거침없이 떼어내기 시작했다.
지직. 지지직.
테이프가 뜯겨져 나가며 어두운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왜 김 상병은 이걸 숨기려고 했던 것일까.
“저 이 하사님.” “예?” “아까 김 상병한테 물어보니까.. 사기 저하 때문에 여길 막아 놨다고 하던데요?”
이 하사는 손가락으로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저 아래에 무수히 많은 괴물들의 시체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는 우리 부대원들의 시체도 섞여 있고.. 주민들의 시체도 섞여 있지요. 병사들이 그것을 볼 때마다 자신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자연스레 갖게 되더군요. 그래서 저와 김 상병이 여기를 막아 놓은 겁니다.” “..아.”
이 하사는 창문에 바짝 얼굴을 붙이고 어디 한 곳을 유심히 바라보기만 했다. 뭐가 보이기는 하나? 우리들은 그저 멀뚱히 서서 주위를 경계할 수 밖에 없었다. 2분? 3분 정도가 지난 끝에 창문에서 얼굴을 뗀 이 하사는 아래쪽으로 내려가며 말했다.
“혹시 모르지만 지하창고를 한 번 가보는게 좋겠습니다.” “..창고요?” “지하에 있기 때문에 주민들을 거기로 벙커식으로 삼아 대피시키고 했었지요.” “아깐.. 주민들이 다 시체로..”
동생의 말에 이 하사는 보일듯 말듯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앞으로 계속 걸어나갔다.
“당시 주민들은 괴물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인간인채로 구걸하는 주민에게 창고 문을 열어주었다가 모조리 당하고 말았지요. 그 사건 이후로 이용한 적이 없지만 몇 사람을 제외하고 흔적이 없는걸 보니 그리로 피신 한 것 같습니다. ”
피신이라.. 중위는 죽어 있는 상태라 가지 못했을테고 사람들은 지하 창고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대대장이 사람들을 데리고 간건가? 가만.. 생활관에 이 하사가 말했던 그 시체는 뭐지? 다 같이 데리고 간 것이 아니었나? 게다가 행정부는? 분명 중요한 서류를 중위가 담당하고 있지 않았었나?
저벅. 저벅.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뭔가 하나라도 잡고 싶은데 다가가면 다가 갈수록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다. 짧은 1층 복도를 지나 넓고 어두운 밖으로 나온다. 처음 순찰을 돌던 코스로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이제는 제법 적응이 되었는지 뚜렷하진 않지만 사물들이 제법 분간이 가기 시작한다.
“잠깐.”
앞서 가던 이 하사가 멈춰선다. 기계적으로 멈춘 우리들은 주위를 경계하며 이 하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 하사는 그대로 몸을 돌려 우리가 나왔던 길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물어보고 싶은 욕구가 치솟아 오르지만 워낙 진중한 표정에 그럴 수가 없다.
..벅. 저벅. 저벅.
그 때 희미하지만 우리와 비슷한 소리가 이 하사가 바라보는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어떻게 알아낸거지? 새삼 이 하사의 청력에 감탄하게 되었다. 아까 차례대로 남겨졌던 군인들인가? 이 하사는 그대로 소총을 들고는 어둠 속을 가만히 주시했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소리.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곧 다가온다. 이 하사는 총을 쏘기 전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관등성명 대봐.” “상병 김00.”
김 상병이었다. 목소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이 하사는 약간 경계를 늦추며 말했다.
“몇 명인가?” “8명입니다.” “..당한건가?” “그렇습니다.”
덤덤히 대화를 이어가는 둘. 이어 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김 상병과 다른 군인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굴과 옷에 피로 염색이라도 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아직 마르지 않은 핏물이 그들의 손을 서서히 덮어가고 있었다.
“막사엔.. 없었습니까?” “아아. 중위님은 죽어 있는 상태였고 다른 여자분 한명 역시 마찬가지야.” “..중위님이.. 죽었다고 하셨습니까?”
김 상병의 목소리가 유난히 떨렸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떨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어렴풋이 눈치챈 이 하사가 김 상병에게 바싹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중위님이랑 아니 중위랑 무슨 사이냐 너.” “아, 아무것도.”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나려는 김 상병의 멱살을 거칠게 잡은 이 하사는 이를 갈면서 말했다.
“신발.. 거짓말하지마 새꺄. 내가 널 하루 이틀 보는 줄 알어? 말해라.” “....” “최근.. 아니지. 중위가 전임 온 이후로 너 유독 그 새끼랑 잘 어울려다니더라? 특히..”
이 하사는 그 마지막 단어에 강한 악센트를 주면서 김 상병의 멱살을 더 강하게 잡아 올렸다. 컥컥대며 헛기침을 해대는 김 상병. 그러나 이 하사는 그런 것에 배려를 두지 않았다.
“괴물 녀석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때부터.. 그랬지 아마?” “그.. 그게 이 하사님.”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이 좁아터진 공간에서? 니가 아무리 몰래 움직인다고 하지만 사방에 눈이 달려 있기 마련이지.”
이 하사의 표정은 확고했다. 아까 전 박 중사와 관련되어 생긴 감정이 아니었다. 김 상병은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으로 컥컥거렸다. 그제서야 슬며시 멱살을 잡은 손을 놓은 이 하사는 낮게 으르렁댔다.
“말해. 한 톨의 거짓도 보태지 말고.” “..사실.. 그게.” “죽고 싶냐? 여기서 죽여줘?”
당장이라도 대검을 뽑아 김 상병의 목을 뚫을 자세를 취하는 이 하사. 김 상병은 헛바람을 들이키며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사실.. 중위분은 정부에서 파견된 연구원입니다.”
아저씨가 약간 놀라는 것 같았지만 워낙 빠르게 지나간 터라 자세히 보진 못했다. 이 하사는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그럴 것 같았어. 그 새끼 중위씩이나 달고서 아는게 없었지. 마치 샌님 같단 말이야. 계속 해.” “백신.. 치료제를 한창 연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자신에게 괴물들의 시체만 제공해주면 모든 사람들을 낫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 전. 그것 역시 사람들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중위.. 아니 그 사람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네가 그 창문을 막자고 먼저 제안한거냐? 어쩐지.. 그 새끼 유독 그쪽으로 들락날락거리더라. 그래서?”
괴물들이 나타난 것은 사실적으로 5년 전의 일이다. 은혜가 연구소를 탈출한 시점도.. 2~3년 전후. 괴물들이 본격화되어 사람들을 해치기 시작한 것은 1주일도 되지 않는다. 아저씨 말로는 연구소에 많은 인력들이 투입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왜 굳이 하나씩 군 시설에 보내어 백신을 실험하게 했을까. 오히려 괴물들을 잡아 들여 안전하게 실험을 하게 할 수는 없었나? 역시 은혜와 같은 케이스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은 것일까.
“하지만 성과는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계속 실험을 했었죠.” “어디서? 실험할 곳이라도 있나?” “그게.. 지하창고입니다.” “뭐?”
이 하사는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 상병은 다시 한 번 정확하게 말했다.
“지하창고입니다.” “개소리 하지마. 거긴 사람들이 대피하던 곳이잖아.” “예..” “예?”
김 상병은 우물쭈물거리며 이 하사의 눈을 피했다. 뭔가 있다고 판단한 이 하사는 김 상병의 양 팔뚝을 강하게 잡으며 말했다.
“빨리 말해 새꺄." “사실.. 그 사람이 사람들을 통해 여러 가지 실험을 했었습니다.” “..뭐?” “그.. 과정에서 죽어나간 사람들도 있었고 괴물로 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하사는 김 상병의 몸을 거칠게 흔들며 물었다.
“너, 그게 사실이야?”
김 상병은 인상을 찡그리며 슬며시 잡힌 팔뚝을 풀어내고는 말했다.
“예.”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왜?” “..대대장님이 뒤를 봐주셨습니다.”
그 말에 이 하사는 큰 충격을 받은 듯 입만 벙긋거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서서히 뭔가가 잡혀가기 시작했다. 박 중사가 대대장을 그렇게 증오하던 이유가 굳이 아들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대대장과 중위. 둘은 각별한 관계가 분명했다. 처음부터 중위가 행정부에서 소총을 잡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끝까지 의심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럴리 없어..”
이 하사는 고개를 저으며 비틀거렸다. 김 상병은 그것을 보기 힘든지 울상을지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전 단지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이 하사는 아무 말 없이 한 곳을 멍하니 응시할 뿐이었다. 괜시리 숙연해진 분위기. 하지만 지금 이럴 시간이 없다. 한시라도 빨리 그 지하창고인지에 가서 사람들이 안전하게 있는지 확인부터 해야만 했다. 아저씨는 이 하사를 부축하면서 다른 군인들에게 말했다.
“정신차리십시오. 그리고 다른 분들. 지하창고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예.” “알고 있습니다.” “그리로 가지요.”
그제서야 퍼뜩 정신을 차린 이 하사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 아저씨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너 이 새끼 김 상병.” “예..” “네가 지은 행동에 대한 책임.. 내가 확실하게 물을테니까 죽지 말고 따라와라.” “....”
상대적으로 수가 늘어난 우리들은 다시 빠르게 지하창고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감에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어쩌면 조그마한 실마리가 손에 잡힐지도 모르겠다.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한시라도 지하 창고에 있는 은혜와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피해야 한다. 서둘러라 다리야.. 막사 뒤편쪽을 지나 조금 가니 동산 같은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망설임 없이 동산을 넘는다. 그리고 힐끔 뒤를 돌아본다.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이제 사용하지 않아 보이는 수송부와 식당이 전부다.
저벅. 저벅. 저벅.
거의 다 도착했는지 이 하사의 걸음이 빨라진다. 아직 녀석들이 나타나지는 않은 상태다. 최악의 경우 창고 근처에서 녀석들과 사투를 벌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얼마나 갔을까.. 앞에 약간 둥그스름한 지형이 보인다. 그 옆으로는 내려가는 길처럼 보이는 나무 계단이 있다.
“잠깐..”
이 하사는 우리들을 멈추게 하고 몸을 최대한 숙여 지형 위를 기다시피 다가간다. 분명 뭔가가 있기 때문에 이 하사가 저토록 조심스럽게 행동하는거겠지.. 마침내 지형 끝부분에 다다른 이 하사는 고개만 살짝 들어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는 다시 천천히 내려온다. 서서히 다가오는 이 하사 표정이 그리 밝지가 않다. 아무래도 내 예상이 들어맞을 것 같다.
“앞에 놈들이 있습니다.” “....”
사람들은 절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수가 많고 적고를 떠나 사람들을 구하는데 있어 녀석들은 큰 장애물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계속 냉정을 유지하던 아저씨가 이 하사에게 물었다.
“숫자는 어느정도 입니까.” “아주 많습니다. 많은데..”
이 하사는 할말이 남았는지 말끝을 흐렸다. 우리는 그것을 계속 기다려주었다. 어렴풋이 짐작은 갔지만 이 하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더 믿고 싶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이 하사가 말을이었다.
“그.. 녀석들끼리 싸우고 있는게 보여서..” “싸우다니요..?” “그게..”
이 하사의 답답한 행동을 못 참은 동생은 빠르게 앞으로 걸어나갔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성큼성큼 지형위로 올라간 동생은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한 곳만 응시했다.
“왜 그래?”
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나도 동생을 따른다. 이번에도 역시 나를 말리는 사람이 없다. 전부 궁금한 것이다. 한 걸음. 두 걸음. 동생과의 거리가 좁혀진다. 그럼에 따라 희미하지만 잊을 수 없는 녀석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오오!” “크아아!”
녀석들의 비명소리다. 자동적으로 양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한다.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꿀꺽. 마른침을 애써 삼켜내며 앞으로 걷는다.
“크..”
바로 옆길을 따라 주욱 늘어진 괴물들의 시체가 눈에 들어온다. 정면에서는 볼 땐 몰랐었는데 이렇게 조금이나마 위에서 보니 상당히 난장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욱 길을 따라 시선을 움직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빨간 색의 불빛들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키에에엑!”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하나의 불빛이 꺼진다. 이어서 또 꺼지는 불빛. 그러나 수가 너무 많다. 누가 저 녀석들을 상대하는거지? 그 남자인가? 박 중사는 어디에 있는거지? 우두머리 녀석은?
“가자구. 아무리 그 남자가 힘이 세다고 하지만 저 많은 녀석들 상대로는 무리야.”
어느새 내 옆에 선 준우 아저씨가 말했다. 옆으로는 아저씨와 다른 군인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동생은 고개를 돌려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사람들을 구하되 죽으면 안돼.” “....” “알아들었어?” “어, 어.”
동생은 거침없이 몸을 돌려 그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리 높은 위치도 아니었기에 다칠 일은 없겠지만 아래에 잔뜩 깔려 있는 괴물들의 시체와 피가 동생의 발과 옷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것이 자극이 되었는지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뛰어내린다. 에이 제기랄. 나만 모양 빠지게 길로 돌아갈 순 없잖아? 짧게 호흡을 뱉으며 가볍게 점프를 한다.
철퍽.
역시나 기분이 드러운 감촉이다. 이동할 때 마다 철벅거리며 발이 약간 빠지는 듯한 느낌.. 수많은 핏물들 때문에 마치 빗물 위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 하지만 이 빌어먹을 냄새는 너무나 분명하다.
철벅. 철벅. 철벅.
사람들은 말없이 걷기 시작하며 소총을 굳게 잡는다. 점점 녀석들의 고통소리가 귀에 크게 들려온다. 머릿속에서는 이대로 도망치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럴 수가 없다. 은혜와 다른 사람들을 무사히 구해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만약 이대로 도망친다면 평생을 죄책감에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크아아아!” “크오오오!”
가깝다. 10미터 남짓. 우리는 일렬로 서서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수류탄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만약의 경우 괴물들과 싸우고 있는 남자가 다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검지 손가락을 방아쇠에 닿을 듯 말듯하게 가져간다. 와라!
“크르르?”
그런 우리들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한 녀석이 붉은 빛을 켜며 우리를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는게 보인다. 정신 없이 싸우는 와중에도 주위를 살필 여유가 있었나보다. 이내 녀석은 우리를 빤히 보더니 코를 몇 번 킁킁거리더니 침을 질질 흘리며 고개를 높이 들고 포효를 했다.
“크오오오!”
그게 시발점이 되었는지 한 쪽에서 혈투를 벌이던 녀석들 중 일부가 우리 쪽에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이어 숨어 있던 녀석들도 서서히 눈에 불을 켜며 모습을 드러냈다. 금방이라도 덮쳐질 것 같은 상황. 선제공격을 날려야 한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지 이 하사가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총을 쏘기 시작했다.
“죽어라. 이 강아지들아!”
두두두두.
어둠속에서 환한 불꽃을 내뿜으며 총알들이 거침 없이 괴물들의 몸을 꿰뚫기 시작한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녀석들과 혼비백산하며 도망가는 녀석들이 주 부류였다. 그러나 녀석들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어느새 다른 군인들2명과 평범한 남자 1명을 저승길로 보내버렸다. 물론 그 녀석들조차 우리들의 총알 앞에서 무릎을 꿇었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3명의 전력을 잃는다는 것은 큰 손해다.
두두두두.
멈추지 않는 사격. 참다 못한 괴물들은 그대로 몸을 돌려 줄행랑을 치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대지가 피로 붉게 물들었다. 주위에는 괴물들의 시체가 원을 길게 그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후우..”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는 괴물들을 해치고 앞으로 걸어나간다. 이제는 길이라는 개념이 없을 정도로 녀석들의 시체가 가득매우고 있다. 방금 전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탓에 군화에 느껴지는 낯선 느낌에 별 감흥이 없다. 빠르게 앞으로 걸어가 어둠 속에서 고요히 서있는 두 눈을 빛내는 하나의 존재에게 걸어간다.
“너..?”
우리가 다가가도 적의를 드러내지 않고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서있는 인영. 저 정도의 키와 군복.. 남자가 확실하다. 서둘러 걸음을 옮겨 남자에게 다가갔다. 몸 여기저기가 뜯겨져 있는 상처로 즐비하다. 회색 빛깔의 군복은 어느새 붉은 빛으로 묽게 염색이 되어 있었다.
“안 아프냐?” “....”
준우 아저씨 말에 남자는 아무말 없이 몸을 돌려 한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우린 그 장소가 지하창고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남자의 뒤를 따르며 주위를 경계한다. 이 하사도 특별한 말이 없는걸 보니 여기가 우리가 찾던 목적지가 맞는 것 같다. 얼마 가지 않아 상대적으로 깊게 파인 땅과 철로 된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계단 끝에는 진한 검은 색의 철문이 있다. 서서히 계단을 내려가는 남자.
“중사 아저씨는 못봤냐?”
남자 뒤에서 걷고 있던 동생이 물었다. 남자는 몸을 멈칫거리더니 손을 뻗어 문을 가리켰다.
“..안에 있다고?” “....”
남자는 말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어떻계? 그냥 들여보내준 건가? 같은 종류의 사람.. 아니 괴물이라서? 만약 안에 대대장이 있다면 분명히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온전히 놔둘 수 있단 말인가?
턱. 턱. 턱.
철 계단에 나는 군화 소리가 맑게 울린다. 은혜에게 아무런 위협이 가해지지 않아 이렇게 여유롭게 행동하는것인가. 어찌되었든 곧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조급해하지 말아야한다. 5계단 남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철문 앞에 멈춰선 남자는 문고리를 잡고 강하게 당겼다.
끼기기기긱.
마치 고통스러워하는 비명 소리다. 느릿느릿 철문이 열리며 희미한 불빛이 눈에 잡힌다. 어느 정도 공간이 확보되자 남자는 머뭇거림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서둘러 남자의 뒤를 따른다. 문을 통해 들어서고 나니 지유 특유의 냄새와 싸늘한 기운이 온 몸을 휘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눈 앞에 있는 통로 위쪽에 붙은 불이 아직도 켜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데가..”
동생이 감탄사를 흘리며 벽 여기저기를 두드려댔다. 첫 번째 통로에서 외길인 좌측으로 몸을 꺾자 꽤 커다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15평은 되어보이는 넓직한 공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천장에서는 얕은 불빛이 아직도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각종 실험을 했었던 도구들이나 여러 대의 컴퓨터들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이 하사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른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계속 앞으로 걸어나갔다. 주위를 살피던 군인들을 뒤로하고 우리들은 남자를 따른다. 느리게 앞으로 걸어간 남자는 벽 앞에 서서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이내 한 곳을 잡고 당기기 시작한다.
그그그극.
어둠 속에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법한 문이 서서히 열린다. 그러자 아까와 같은 통로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다시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하는 남자. 지체할 것 없이 걸음을 옮긴다. 통로를 걸으면 걸을수록 익숙하지 않은 악취에 눈살을 찌푸렸다.
“윽..”
금방이라도 구토가 나올 것 같아 이를 악물었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냄새다. 그러나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왠지 이대로 가면 앞에 뭔가가 나올 것 같기 때문이다.
저벅. 저벅. 저벅.
좁은 공간에서 울려퍼지는 군화 소리가 멀리 퍼져나간다. 얼마나 걸었을까. 곧 넓직한 아까와 비슷한 규모의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공간 한쪽 구석에는 큰 유리병들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투명한 액체와 함께 괴물들의 장기나 신체들이 고이 담겨져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중앙을 본다. 거기에는 박 중사가 우리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용케도 여기까지 왔군.” “박 중사..”
그의 손은 이미 붉게 물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대대장으로 추정되는 사지와 절단되고 목이 달아난 몸뚱아리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준우 아저씨는 소총을 박 중사에게 겨누며 주위를 힐끔거리며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딨지?” “저기 안보이나?”
박 중사가 어두운 구석을 손가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기절한 것처럼 추욱 늘어져 있었다. 특별히 몸에 이상이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아무튼 다행이었다. 박 중사가 복수를 삼은 대상이 대대장으로 끝나서 천만다행이었다. 너무 이기적인가?
“너, 저 자식이 어떤 상태인지 보고도 들여보낸거냐?”
준우 아저씨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르지 않다. 나와.”
그 말에 할말을 잃은 준우 아저씨는 멍하니 박 중사를 바라보았다. 박 중사는 날카로운 이를 훤히 드러내며 웃었다.
“약속했거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건들지 않는 조건으로 길을 내달라고 말이야.” “..그래서 대대장과 이 사람들을 교환한건가?” “뭐, 얘기가 그렇게 되나?”
박 중사는 유들유들한 웃음을 흘리며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고는 양손에 묻은 피들을 대충 허공에 저으며 털어냈다. 그래 우리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진게 아니야. 숫적으로도 우리가 우세해. 제발 이대로 지나가라. 느릿하게 걸어가는 박 중사는 우리를 보며 말했다.
“그런 생각이 들더군. 어쩌면 이런 몸이 인간에게 최적화된게 아닐까하고 말야.” “....”
우리가 아무 말없이 박 중사를 빤히 바라보자 박 중사는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우리가 왔던 통로로 걸어나갔다. 서둘러 사람들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핀다. 다행히 모두 무사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우리들은 벽에 아무렇게나 기대어 눈을 감았다. 몸이 축 처지는 기분이다.
탕. 타타타탕.
그 때. 귀를 찌르는 듯한 거친 총소리가 통로 저편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지? 이 하사가 박 중사를 보자마자 총을 쏜건가? 그렇게 되면 아무리 박 중사라도 이 하사를 가만히 둘리가 없다. 도와야하나?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전할지도 모르는데? 어떡해야 하지?
“빌어먹을.”
준우 아저씨가 벽에서 튕기듯이 몸을 움직여 박 중사가 사라진 통로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한다. 남은 우리들은 서로를 잠시 보고는 준우 아저씨의 뒤를 쫓았다.
빠르게 뛴다. 짧게 느껴졌던 통로가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 것인지.. 소총을 가슴 안쪽으로 껴안는 식으로 통로를 벗어난다. 빨리.. 빨리! 통로를 벗어나 바로 소총을 겨눈다. 그러나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뭐지..?”
바닥에 미약하게 숨 쉬고 있는 녀석들을 보며 우민이 형이 중얼거렸다. 박 중사는 우리의 우려와는 다르게 통로 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출구로 향하는 통로 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통로 주위로는 이 하사와 남은 군인들이 소총을 겨누며 서 있었다. 준우 아저씨는 대검을 꺼내 미약하게 숨 쉬고 있는 녀석들을 마무리 하고서 천천히 이 하사에게 다가갔다.
“제길.. 당했습니다.”
이 하사는 준우 아저씨는 힐끔 보고는 불이 꺼진 통로를 노려보았다. 준우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예? 당하다니요.” “애초에 녀석들이 노리고 있던게 이겁니다. 밖에 지금 엄청난 수의 녀석들이 몰려 있어요.”
아까 총알 세례를 받고 완전히 도망간 것이 아니었나? 단순히 우리를 여기까지 몰기 위해 그런거라면 너무 계획적인 움직임이다. 역시.. 우두머리 녀석이 있는게 분명하다. 소총을 꺼내 어두운 통로 쪽을 겨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많은 붉은 불빛들이 한순간에 깜빡거린다.
“크르르르.”
먹이를 찾았다는 기쁨 때문인지 녀석들의 소리가 한층 업 되어있다. 이내 반짝 거리는 불빛들이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소총 방아쇠를 당긴다.
두두두두.
“크아아아!”
일렬로 된 좁은 통로라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크게 당할 뻔했다. 녀석들은 그대로 손 한 번 뻗지 못하고 바닥에 추욱 늘어진다. 그에 따라 바닥에 흐르는 피의 양도 점차 많아져간다. 저번과 같은 상황이다. 문득 김 대위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번에 천장을 뚫은 놈은 없겠지?”
동생의 중얼거림을 시작으로 녀석들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크아아!”
끊임없이 이어지는 녀석들의 공격.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다. 우리들은 좀 더 효율적으로 녀석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총알을 날리기로 했다. 좁은 통로의 여건을 충분히 이용한 것이다. 빠르고 강력한 총알들이 괴물들의 몸을 꿰뚫으며 뒤의 녀석들에게까지 치명상을 입힌다.
두두두두.
총알이 점점 떨어져가는게 느껴진다. 남은 우리들은 이를 악물고 어둠속을 향해 총알을 날려대는 두 사람을 초조하게 바라본다.
“후우..”
두 사람은 한숨을 쉬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녀석들의 움직임 또한 잠잠해졌다. 이 하사는 손목에 찬 전자시계를 보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직 해가 뜨려면 한참 남았습니다.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나는 시계를 보지 않기로 했다. 그저 소총을 꽈악 잡는 것과 녀석들에게 총알을 날려줄 준비를 하는게 다였다. 5분.. 10분이 지나도 녀석들의 공세는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안심할 수가 없었다. 인간과는 다르게 체력적인 한계가 거의 없는 녀석들. 어쩌면 우리가 방심하는 틈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던 그 때.
“오랜만이군.”
잊을 수 없는 목소리다. 온 몸에 소름이 주루룩 돋으며 살살 떨리기 시작한다.
“설마 나를 잊은건 아니겠지?”
가까이서 느껴지는 이 빌어먹을 목소리에 정신이 혼란스러워 질것만 같다.
“저번에도 말했듯 내 용건은 간단하다. 계집을 내놔라.” “....” “오래 안기다린다. 허나 충분히 상의할 시간은 주지. 5분이다.”
처음 듣는 목소리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이 하사가 우리를 보며 물었다.
“방금.. 그게 뭐죠?” “..처음 우리를 덮쳤던 그 우두머리 자식입니다.” “우두머리..”
익숙하지 않은 경험에 이 하사와 군인들의 표정이 그리 밝지가 않다. 일반 사람과 봉수 아저씨 역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목소리만으로도 상대를 충분히 공포에 떨게 할 수 있는 녀석이다. 전과 같은 목소리었지만 저번에 보았던 우두머리급 녀석들을 다룰 정도라면 더 강해진 모습으로 우리들을 공격할지도 모른다.
“저번에 분명 팔이 떨어져 나갔었지 아마?”
그 때의 일이 생각난 듯 준우 아저씨는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잊을 수 없는 일이지. 처음으로 포기를 하던 시점이었으니까. 김 대위와 민정 누나도 그 지역에서.. 생을 마감 했으니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각인 되어 버렸다.
“하지만 우두머리급 녀석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잖아요. 방심할 수 없어요.”
우민이 형의 말에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저 녀석은 우리가 봐왔던 것과는 많이 달라. 방심해서는 안돼.” “2분 남았다. 빨리 정해라 빌어먹을 하등 생물들아.”
초조함에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도중 박 중사와 남자에게 시선이 갔다. 나는 멍하니 어두운 통로를 보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 말했다.
“어떻게 가능성이 있을까요?”
내 말에 남자는 아무 말도 없었고 박 중사는 나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내가 왜 너희들을 도와야하지? 어차피 곧 죽을건데.” “..여기에 우리와 같이 있기 때문이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
그 말에 가만히 있던 이 하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 중사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강하게 움켜 잡았다.
“너 이 강아지! 대대장님은 어딨어!” “물어볼 필요가 있나?”
귀찮다는 듯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이 하사를 바라보는 박 중사. 이 하사는 분을 못 이기는지 이를 부득부득 갈고는 이내 한 손을 들어 박 중사의 얼굴 쪽으로 주먹을 날린다. 하지만 박 중사는 이미 인간의 범주를 크게 벗어난 괴물과 같은 능력을 지녔다.
텁.
자연스럽게 이 하사의 손을 잡은 박 중사는 다른 한 손으로 이 하사의 가슴을 강하게 밀었다.
퍼억.
소리와 함께 벽 끝까지 밀려나는 이 하사. 벽에 강하게 부딪힌 이 하사는 헛바람을 크게 들이마쉬더니 바닥에 그대로 주저 앉아 버렸다.
“쿨럭. 쿨럭.”
잦은 기침을 해대며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이 하사. 박 중사는 그런 이 하사는 힐끔 보고는 관심이 없다는 듯 말했다.
“저승 길동무라고 생각하지.” “....”
박 중사의 태도로 보아 우리들에게 협조적으로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이번 공격을 통해 우두머리 녀석도 직접적으로 가세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뭔가 뾰족한 수가 필요하다. 머리를 싸매고 이리저리 생각을 해본다. 그러던 중 남자가 다른 쪽으로 연결된 통로를 가만히 보더니 입을 열었다.
“메시아시여..”
메시아? 은혜? 남자의 시선을 따라 통로 쪽을 보니 작고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가만히 있던 아저씨가 통로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은혜는 멍한 눈으로 우리들을 한 번 훑어 보았다. 아저씨는 그런 은혜를 가볍게 껴안고는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은혜야.. 은혜야.”
놓치기 싫다는 듯 꽉 껴안은 아저씨를 가볍게 밀어낸 은혜는 느리게 남자 쪽으로 걸어갔다. 남자는 은혜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제대로 지혈을 하지 못한 몸 여기저기에서 피가 아직도 새어 나오고 있다. 은혜는 그것을 물끄러미 보더니 이내 왼쪽 손목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은혜야!”
그것이 곧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 아저씨가 다가가 말리려고 했지만 남자의 행동이 빨랐다.
“감사합니다. 메시아여.”
남자는 은혜의 가늘고 흰 손목을 조심스럽게 받들어 크게 깨물고 피를 빨기 시작했다. 그 낯선 광경에 박 중사는 물론 이 하사와 다른 군인들.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우리는 그것이 은혜의 수명을 단축시킬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눈 뜨고 볼 수만은 없었다.
“은혜야..”
아저씨의 애가타는 목소리에 조심스럽게 은혜의 손목에게서 입을 뗀 남자는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났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남자의 몸은 상당히 깨끗해져 있었다. 그것을 유심히 보던 박 중사는 두 눈을 빛내며 은혜에게 다가갔다.
“네가 살아 있다면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뀔지도 모르겠구나.” “....” “어쩌면.. 아들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박 중사는 처연한 표정으로 은혜를 바라보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행이다. 박 중사의 마음이 상당히 돌아선 것 같다. 분명 우리에게 큰 전력이 되겠지만 상대는 보통 내기가 아니다. 서서히 시간이 다 되어간다. 이 하사는 초조한 심정을 숨기지 못하고 두리번 거리다가 체념한 듯한 표정의 김 상병을 보고는 물었다.
“너 그 새끼 일을 여러 가지로 도왔으면 뭔가 알아낸 게 있을거아냐.” “..알아낸거라고 하셨습니까?”
김 상병은 잠깐 골몰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여러 가지 실험 도구들을 들추면서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서랍 여기저기를 뒤적거리던 김 상병은 아직 밀봉된 상태의 주사기 여러 개를 꺼내었다. 대충 상태를 체크한 김 상병은 실험대 위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작은 약품들을 뒤적거리며 찾더니 고개를 저었다.
“언뜻 비슷한걸 본거 같기도 한데..” “뭔데 그게.” “그.. 치료제는 아니고 괴물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게 있었습니다.” “그래?”
그 때 어두운 통로 쪽에서 여러 마리의 괴물들이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방심하고 있던 것이 화근이었다. 5마리가 되는 괴물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멍하니 서있는 은혜를 발견하고는 침을 질질 흘리며 빠르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크아아!”
그러나 녀석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은혜 옆에 서있는 남자와 박 중사를 염두해 두지 않은 것이다.
퍼퍽. 퍼퍼퍽.
빛의 속도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둘의 공격이 보이지도 않았다. 덕분에 5마리의 괴물들은 그대로 피떡이 되어 바닥에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그제서야 퍼뜩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고 이 하사는 김 상병을 데리고 우리가 왔던 통로 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시간을 벌어야 돼.. 최대한.”
그렇게 중얼거린 동생은 긴장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어두운 통로를 가만히 주시했다.
쿵! 쿵! 쿵!
그 때. 엄청난 굉음이 귀에 강하게 울려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바깥 쪽이다. 우리들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소총을 들고 소리가 크게 나는 쪽으로 겨누었다.
쿵! 쿵!
소리가 점차 반복될수록 튼튼하기만 할 것만 같던 벽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엄청난 괴력이다. 일이 안 좋게 돌아가는 것을 느낀 남자는 은혜에게 무릎을 꿇고 말했다.
“메시아시여. 여기는 위험합니다. 부디 안전한 곳에 대기해주십시오.” “....”
은혜는 남자를 빤히 보더니 몸을 돌려 자신이 왔던 통로 쪽으로 느리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아슬아슬한 걸음이다. 마음이 아파오지만 내가 은혜에게 해줄 수 있는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저 빌어먹을 우두머리 놈에게 은혜를 뺏기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책이다.
쿵! 쿵! 쿵!
서서히 흔들리던 벽이 이제 눈에 띄게 흔들거린다.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벽들. 우리는 침을 삼키며 크게 심호홉을 했다. 마침내 녀석과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녀석과 결판을 내야 부산까지의 여정이 순탄할 것이다. 침착해라 이진성. 이 고비만 넘기면 된다!
쿵! 파각! 파각!
마침내 벽들이 부서지면서 꽤 커다란 어두운 공간이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
“크으.. 크으.”
2미터보다 더 높은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적안. 어두운 공간에서도 녀석의 포스가 그대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녀석이 뚫어놓은 틈을 타 다른 자잘한 녀석들이 빠르게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한다. 싱싱한 먹잇감들을 발견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녀석들의 눈은 하나같이 웃고 있었다.
저벅. 저벅.
우두머리 녀석이 서서히 걸어나온다. 그 존재만으로도 이 넓은 공간이 꽉 채워지는 것 같다. 이내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녀석은 전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은 상태였다. 어떻게 붙였는지 몰라도 버젓히 붙어 있는 왼팔과 우리들의 총알과 석궁 세례를 받았던 단단한 몸에는 보기 흉할 정도의 흉터가 남아 있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녀석은 은혜가 없다는 것을 느꼈는지 커다란 입이 찢어지도록 웃었다.
“크하하하하! 술래잡기인가? 좋지!” “크윽..”
절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박 중사와 남자가 가세한다고 해도 저 우두머리 녀석은 차원이 다른 괴력을 갖고 있다. 게다가 그 주위를 가득 매운 자잘한 녀석들까지 우리들에게는 하나 같이 생사를 걸어야 하는 순간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우리를 노려보는 녀석들. 우두머리 녀석의 명령이 떨어지면 망설임 없이 달려들 기세다.
“자아, 선택권을 주지.” “닥쳐!”
준우 아저씨의 외침에 우두머리는 싱긋 웃고는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커다란 입을 통해 넓은 공간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쳤다.
“좋아! 여기서 다 죽여주마!”
우두머리의 외침을 시작으로 남은 녀석들이 일제히 우리들에게 달려든다. 거대하나 흑막과 드문드문 보이는 붉은 색의 점들이 혐오스러웠다. 우리는 재빨리 실험대들을 아무렇게나 쓰러트리고 몸을 숨겨 소총을 무작정으로 갈겨댔다.
두두두두.
저번보다 상황이 더 안좋다. 어쩌면 살아남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니야 이런 생각할 겨를에 녀석들에게 하나라도 더 총알을 먹여줘야 한다. 푸학. 끈적한 피와 진득한 살덩이들이 옷과 얼굴에 묻기 시작한다.
“끄아아악!”
수가 너무 많았다. 꾸역꾸역 몰려드는 녀석들을 온전히 막지 못하고 다른 쪽에 서있던 군인 한명이 녀석들에게 끌려가버린다.
빠직. 빠직.
3초도 되지 않아 군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린다. 마치 파라냐에게 피가 줄줄 흐르는 고기를 던져주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 군인을 충분히 맛본 녀석들은 더욱 괴성을 질러대며 우리들에게 뛰어 들었고 그러지 못한 놈들 역시 배를 채우기 위해 맹렬하게 뛰어다닌다.
두두두두.
이를 악물고 천천히 뒤로 물러난다. 15평의 공간이 이렇게 불리하게 작용될 줄은 몰랐다. 그나마 우리가 이렇게 버티는 것도 앞에서 녀석들을 막아내는 남자와 박 중사 덕인지도 몰랐다. 일격 하나 하나에 저세상으로 보내 버리는 둘 때문에 꽤 많은 녀석들이 걸러졌고 우리는 그런 녀석들에게 총알만 선사해주면 된다.
“크아아아!”
고통스러운 비명을 흘리며 멀리 날아나려는 녀석들. 그러나 치명상을 입어 다 죽어가는 녀석들에게는 동료들의 일격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 허기진 탓에 살기 힘들다고 판단되는 녀석들을 죄다 먹어치우기 시작하는 녀석들.
“크아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려고 했지만 이미 녀석들의 팔 다리가 뜯겨져나간 상태다. 진한 혈향이 나면서 녀석들의 광란은 더욱 강해져만 갔다. 그럼에도 아슬아슬하게 버텨내며 우리들은 천천히 뒷걸음질치며 좁은 통로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물론 총알을 쏘는 것은 잊지 않은 상태다.
“크르르.”
그 때 멀찍이 지켜보던 우두머리 녀석이 서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든든한 대장이 움직인다는 사실 때문인지 녀석들은 더욱 큰 포효를 지르며 우리들에게 달려들었다.
퍼퍼퍽. 퍼퍽.
그러나 박 중사와 남자의 손에 모두 저지가 되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둘의 상태가 그리 온전한 것은 아니었다. 언제 찢겨졌는지 군복 여기저기가 누더기처럼 되어 있었고 군데군데 살이 파인 흔적들이 보인다. 꾸물꾸물 흘러나오는 피를 지혈할 생각도 하지 못한채 녀석들을 저지하기에 바쁘다.
“크르르르.”
이런 상황에서 저 우두머리 녀석이 합세한다면 가망성이 희박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가 너무 많다. 어떡하지? 제기랄!
“크아아!”
일정 사거리가 되자 우두머리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번에 봤던 그 스피드에서 더 상승된 수준인 것 같다. 대체 녀석은 어디까지 강해진거야?
슈슉. 퍽. 퍼퍽.
커다란 덩치 때문인지 자잘한 녀석들이 좌우로 밀려나기 시작한다. 거기서 우두머리 녀석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이 우두머리가 지나간 자리에는 녀석들의 사지나 몸뚱아리가 아무렇게나 잘려져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편이라는 개념이 없는건가? 분명 녀석의 성격상 귀찮은 것들을 모조리 쳐낸 거다.
타다다다.
녀석이 빠르게 다가오는게 눈에 보인다. 거구의 덩치로 저렇게 빠른 스피드를 낼 수 있다니.. 이대로 부딪히면 우리들은 그대로 저세상으로 갈게 뻔하다.
슈슉. 슉.
그 녀석의 힘을 감지했는지 박 중사와 남자가 동시에 앞으로 달려나간다.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의 두 사람이지만 보통 내기가 아니기 때문에 기대해 볼만하다. 그러는 사이 둘의 틈을 파고드는 녀석들이 우리들에게로 빠르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쉬는 시간도 없구만 제기랄!”
누가 그렇게 내뱉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자동적으로 녀석들에게 총알 세례를 퍼부어주었다. 힘 없이 픽픽 쓰러지는 녀석들. 하지만 내 마음은 점차 초조해져가기 시작했다. 총알이 언제까지나 무한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다 쓴 총알들은 얼른 탄알집에서 새로 바꿔서 장전하기는 했지만 총이 완전히 버틸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철컥.
동생의 총이 말썽이다. 노리쇠가 완전히 전진되지 않은 상태로 총알을 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낑낑대며 소총을 분리하여 노리쇠 부분을 다시 제대로 맞춰 끼우고는 탄알집을 끼워 장전을 한다.
철컥.
상당히 빠르게 기능고장이 해결된 동생은 다시 총알을 날려대기 시작한다. 열을 너무 많이 받은 탓일까. 총알을 거침없이 쏴대서 그런것일까. 다른 사람들의 총도 심심찮게 말썽을 부리며 우리들의 애를 태웠다. 다행히 우리 모두가 조금이나마 소총에 대한 지식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에 곧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두두두두.
바닥에는 녀석들의 시체로 길게 둘러 쌓여진다. 우리들은 멈추지 않고 반대편 통로 쪽으로 이동한다. 이 하사와 김 상병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아직인가? 이런 중요한 때에?
퍼억.
그 때 우리들의 시야에서 뭔가 빠르게 날아가 벽으로 부딪히는 것이 보인다. 고개를 돌려보니 남자가 피를 토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퍼억.
이어 남자 쪽으로 날아와 아무렇게나 엉켜버리는 박 중사까지.. 우두머리의 힘은 상상이상이었다.
“크아아!”
거대한 소리. 그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거대한 우두머리가 박 중사와 남자를 보며 거친 포효를 해대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래도 둘의 성과는 아예 없지는 않았는지 우두머리의 한쪽 다리가 괴상한 각도로 꺾여져 있었다. 게다가 몸 여기저기에는 자잘하고 커다란 상처가 즐비했다.
“쿨럭. 쿨럭.”
그러나 둘의 상처가 더 심각했다.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몸을 가누면서 일어나려는 두 사람을 다가가 부축하고 싶지만 이미 녀석들이 두 사람을 에워싼 상태였다. 총을 쏴야 하는건가? 그럼 저 두 사람에게도 피해가 갈텐데? 이대로 녀석들에게 먹힐 바에 고통 없이 보내주는 것이 최소한의 배려인걸까.
“지독한 새끼들..”
그렇게 중얼거린 우두머리는 우리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 악마와도 같은 모습에 우리들은 저도 모르게 방아쇠를 거칠게 당겨댔다.
두두두두.
빠르게 날아가는 총알들을 옆으로 몸을 굴려 피해내는 우두머리. 그러나 온전히 피하지는 못했는지 등과 옆구리 쪽에 총알이 박힌 것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박힌 총알들을 힐끔 보고는 우리를 보며 커다랗게 고함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아아!”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소리에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뛰어!”
누군가의 목소리인지 몰랐지만 거의 다다른 반대쪽 통로로 한 명이 뛰기 시작하자 우르르 그쪽을 따르기 시작했다. 박 중사와 남자는? 살짝 고개를 돌려 동그랗게 에워싸인 공간을 바라본다. 아직 둘은 죽지는 않았는지 괴물들의 시체가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조금만 버텨줘..”
서둘러 통로 쪽으로 몸을 틀었다. 이리로 가면 해결책이 나오는건가? 저 놈들을 전부 막아낼 수 있는건가? 숨이 금새 턱까지 차오른다. 다리가 서서히 풀리려고 한다. 너무 큰 고비에 직면해서인지 몸이 지나칠 정도로 뜨거운 것 같다. 하아.. 하아. 정신차려야 된다.
“어딜!”
내 모습을 그대로 놔둘 우두머리 녀석이 아니었다. 좁은 통로를 그대로 통과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녀석이 네 발로 기어오며 나를 추격해오기 시작한다. 제길! 직립보행만 하는게 아니었나? 다리 한쪽이 뒤틀렸는데도 저렇게 달릴 수 있단 말인가?
“크아아!”
좁은 통로에 꽉 들어차는 녀석의 모습은 정말 오금이 지릴 정도로 공포 그 자체였다.
“빨리 와!”
동생이 나를 보며 소리친다. 뒤에 녀석이 바짝 오고 있는 것은 알고 있는건가? 그 옆으로는 이 하사와 김 상병이 주사기를 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보라색의.. 액체. 그게 녀석에게 치명상을 준다는 건가? 좋아, 일단은 내 다리를 믿어보는 수 밖에 없다.
타다다다닥.
소총을 들고 제속력을 내는게 쉽지가 않다. 그것을 잘 아는지 동생과 준우 아저씨가 내 쪽으로 소총을 겨누며 몸을 숙이라는 수신호를 보낸다. 망설일 것 없이 몸을 숙인다. 그러자 날카로운 총알 소리가 나며 그대로 내 몸 위를 통과해 우두머리 녀석으로 향한다.
퓨퓩. 퓩.
단단한 근육에 박힌 총알들 때문인지 우두머리 녀석은 잠깐 멈칫한다. 이때다! 재빨리 동생에게로 뛰어간다. 짧게만 느껴졌던 통로가 왜 이렇게 긴 것인지.. 한 걸음.. 두 걸음 다 왔어!
“크워어어!”
내가 서서히 멀어지는 것을 눈치챈 녀석이 빠른 속도로 뛰어오기 시작한다. 그에 맞춰 김 상병과 이 하사는 통로 옆에 찰싹 붙어 주사기를 꽈악 쥐었다. 남은 우리들은 그대로 녀석에게 정면을 보이며 소총을 겨누었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녀석. 그래, 조금만 더 와라. 조금만.
타다다다다.
빠르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우리들은 동시에 방아쇠에 검지 손가락을 가져간다. 쏴야한다. 녀석의 시선을 돌려야 둘의 작전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꿀꺽. 긴장하지마. 이진성. 평소대로 하던대로.. 그래. 그렇게 방아쇠를 당겨. 지금!
“으.. 은혜야!”
동생의 목소리에 우리들은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버린다. 어느 틈에 나타난건지 은혜가 통로 바로 앞에 서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을 진즉에 발견한 우두머리 녀석은 더욱 빠른 속도를 내어 은혜에게 다가간다. 찰나의 순간이다. 제길.. 안돼!
“은혜야!”
약속이라도 한듯 우리들의 몸이 동시에 앞으로 튀어나간다. 막아야 한다. 놈에게 은혜를 넘겨줄 수 없다. 절대로!
우두머리 녀석과 금방이라도 닿을 듯한 거리다. 이대로는 늦는다. 저 녀석에게는 수많은 총알을 퍼부어도 쉽게 멈출것 같지가 않다. 이 순간을 위해 우리를 추적해오던 놈이라면 절대 그럴 리가 없다. 거리가 상당히 가깝다. 이대로라면 은혜가 위험하다. 이대로는 안되겠는지 아저씨가 이 하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 하사!”
그 말에 이 하사는 갈등하는 듯 주사기와 은혜를 번갈아 보았다. 분명 우두머리가 은혜를 덮칠 때 생기는 작은 틈을 이용해 주사기를 놓을 수 있는 상황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김 상병.. 김 상병에게 맡기면 되지 않나? 뭘 망설이고 있는거지?
“이 하사!”
다급한 아저씨의 외침에 이 하사는 주사기를 건빵 주머니에 넣고 은혜에게 뛰어 들었다.
“크오오!”
갑자기 생겨난 이 하사의 모습에 흥분한 우두머리 녀석이 단단한 손을 뻗어 이 하사를 쳐내려고 한다. 이대로 있다가 이 하사가 튕겨져 나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쉬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정도로 녀석의 힘은 무지막지 하다.
퍼억.
둔탁한 소리. 예상외로 날아간 것은 이 하사가 아니였다. 빠른 속도로 튕겨져 나가 바닥 끝에서 힘없이 굴러다니는 하나의 물체. 저 정도의 체구와..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 남자였다. 그 작은 틈을 이용해 이 하사는 은혜를 가로채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빌어먹을 놈들! 어디까지나 발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겠나!”
점차 멀어지는 은혜를 보며 우두머리 녀석이 흥분한 듯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다시 빠르게 우리 쪽으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워낙에 빠른 속도에 타이밍을 못 맞춘 김 상병은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제길.. 망설일 것 없이 소총의 방아쇠를 당겨댄다.
두두두두.
빠르게 날아가는 총알. 우두머리는 그것을 피하기 위해 크게 몸을 옆으로 굴리면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너무 큰 덩치 탓에 우리들의 총알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는지 몸에서 전보다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우두머리는 급소만을 교묘하게 피하며 속도를 늦추지 않는 상태였다.
“크아아!”
거센 괴성과 함께 우리를 금방이라도 덮칠 기세다. 녀석의 단단한 두 팔이 위로 올라간다. 그대로 내리칠 기세다.
“흡!”
그것을 충분히 감지한 우리들은 저마다 산개하여 다른 방향으로 몸을 굴렀다.
콰앙!
목표를 잃은 우두머리의 공격이 그대로 지면을 강타했고 곳 엄청난 소음과 함께 바닥이 푸욱 꺼졌다. 그 여파로 돌들이 조각조각 나서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피픽. 픽.
미세한 돌조각들이 살갗에 닿으며 작은 생채기들을 낸다. 그러나 우두머리 녀석에게 눈을 뗄 수가 없다. 녀석은 자신의 공격이 무의로 돌아간 것을 느끼자 바로 옆으로 구른 한 군인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워낙 빠른 속도에 도망치지 못할 것은 예감한 군인은 소리를 지르며 우두머리에게 총알 세례를 퍼부어댔다.
두두두두.
최후의 일격에 잠깐 멈칫하던 녀석은 그대로 몸을 틀어 단단한 한 손으로 군인의 몸을 찍어버렸다.
퍼억!
소리와 함께 군인의 총에서는 더 이상 불빛이 반짝이지 않았다.
파앙!
그리고 이어지는 폭발음. 수류탄인가? 저런 충격에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건가? 다행히 우두머리 녀석이 바닥에 주먹을 꽂고 있는 상태라 그 여파가 우리들에게 전해지지는 않은 상태였다. 몸을 크게 움찔거린 우두머리는 서서히 주먹을 떼고는 수건처럼 후들거리는 손을 보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크아아아아아!”
고통의 비명인지 분노의 비명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녀석의 포효 소리가 정말 대단하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다시 소총을 들어 녀석에게 겨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두두두두.
내 사격을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 역시 우두머리 녀석에게 총알 세례를 퍼붓기 시작한다.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우두머리는 몸을 이리저리 틀며 도망가기 바빴다. 넓직한 공간에서 2미터 남짓한 녀석이 허둥대며 도망가는 꼴이란.. 처음으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크오오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날뛰는 우두머리 녀석. 이내 우두머리는 곧 결심을 했는지 후들거리는 손의 살을 단단히 잡고 그대로 떼어 내기 시작한다.
찌익. 찌이익.
단단한 살들을 뜯으며 비명 하나 지르지 않는 우두머리 녀석. 점차 드러내는 허옇고 단단한 뼈. 녀석은 대체 뭘 하려는거지? 그렇다고 사격을 멈춰서는 안된다. 확실하게 기회를 잡은 이상 놓치지 말아야 한다.
뿌득. 뿌득.
하얗게 드러낸 손가락 마디마디 뼈를 손으로 잘게 뜯어내기 시작하는 우두 머리 녀석. 어느 정도 그 양이 모였다고 생각했는지 그대로 몸을 틀어 우리 쪽에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수많은 총알들이 몸에 박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뛰어다니고 있다니.. 대체 녀석은 어떻게 된거지?
푸슉.
몰아치는 총알들 사이로 뭔가가 빠르게 옆을 지나간다.
“끄아악!”
그리고 들려오는 비명소리. 다급하게 뒤를 돌아보니 이 하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명치 부분에 박힌 단단한 뼈.. 정말 지독한 녀석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타개책을 끊임없이 생각해 내고 있었다니. 그러던 찰나.
푸슉. 푹.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빠르기다. 오직 소리로 녀석이 우리들에게 뭔가를 던진다는 것을 감지해야만 했다. 그리고 방금과 같이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으아악!” “끄윽.”
상태가 안 좋은 한 남자는 그대로 입에서 피를 토하며 앞으로 쓰러졌고 우민이 형 역시 남은 팔뚝에 뭔가가 박힌 채로 자리에서 주저 앉아 버렸다. 현저하게 줄어든 우리의 화력.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우두머리 녀석은 빠른 속도로 남은 우리들에게 원을 그리며 접근하기 시작한다.
두두두두.
이를 악물고 녀석의 움직임을 쫓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속도가 너무 빨라 눈으로 제대로 쫓기가 힘들다. 하는 수 없이 예상 지점에 대고 총알을 날려대지만 용케도 알아챈 녀석은 간단한 구르기나 점프로 그것들을 교묘하게 피해낸다. 서서히 접근하는 녀석. 녀석의 시선은 오직 우리 가운데에 있는 은혜로 고정되어 있었다.
“으아아아! 제기랄!”
누군가가 그렇게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녀석에게 박히는 총알의 수는 이제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나 멈출 수 없다. 이대로 손을 놓아버리면 그대로 우리가 죽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때 뭔가가 빠른 속도로 우두머리 곁을 지나쳐 가는 것이 눈에 언뜻 보였다.
푸학.
엄청난 양의 피가 허공으로 튀며 우두머리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그 ‘뭔가’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쓰러져 있는 남자 바로 옆에 박 중사가 날카로운 대검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서 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상의가 거의 없어질 정도로 찢겨져 있었고 온 몸에서는 크고 작은 상처들 틈으로 피가 쉴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거칠게 숨을 고르며 우두머리를 빤히 바라보는 박 중사.
“쥐새끼 같은 놈이..”
우두머리는 박 중사를 노려보며 낮게 이를 갈았다. 크고 단단하게 박힌 바위 같은 근육과 온 몸에서 피어나는 수증기.. 흡사 한 마리의 괴수를 보는 것 같았다. 박 중사는 우두머리 녀석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상태로 말했다.
“놈들이 온다. 통로를 엄호해.”
우리는 말 없이 박 중사의 말을 따랐다. 서둘러 통로 쪽으로 뛰어간다. 한 쪽에서 김 상병이 창백한 안색으로 멍하니 서 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왼손에는 주사기를 단단히 잡고 있는 상태다. 그 모습에 준우 아저씨가 빠르게 뛰어가 김 상병의 볼을 강하게 때렸다.
짜악.
“정신 차려! 죽고 싶어?”
그제야 눈을 껌뻑거리며 준우 아저씨를 바라보는 김 상병. 서서히 눈에 생기가 돌아온다. 그는 곧 소총과 주사기를 강하게 잡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저런 상태라면 이것을 쓸 기회가 없어요.” “알아. 기회는 반드시 온다. 일단은 여기를 막고 있는 수밖에 없어.”
준우 아저씨의 말을 시작으로 통로 저편에서 녀석들의 날카로운 포효소리가 들려온다. 앞 뒤가 꽉 막힌 상황이다. 탄알집에 남은 총알의 여유분도 이제 30~40발이 전부다. 이대로 버틸 수 있을까? 동생은 내 마음을 읽었는지 빠르게 부상당한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서둘러!”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은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는 통로를 예의주시했다.
“크르르르.” “크르르.”
녀석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서서히 통로 저편에서 붉은 빛들이 반짝거리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녀석들은 우리를 빤히 보더니 뒤에서 들려오는 우두머리의 비명에 괴상한 소리를 작게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 들려오는 우두머리의 비명 소리에 녀석들은 몸을 잔뜩 웅크리고는 튀어나갈 자세를 했다.
“쏴! 지금 쏴야 돼!”
준우 아저씨의 말에 우리는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
소총이 거세게 흔들리며 총알이 빠르게 나아간다. 녀석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픽픽 쓰러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뒤에 있는 놈들의 수가 더 많은 듯 바로바로 보충이 된 녀석들이 불물가리지 않고 무작정 돌진하기 시작한다. 완전히 달라진 공세다. 우두머리 녀석 때문에 그러는 것인가?
두두두두.
그러나 사정 봐줄 시간이 없다. 서서히 떨어져가는 총알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받어!”
남은 탄알집들을 챙겨 온 동생이 우리들에게 적당히 나눠주고 바로 가세했다. 슬쩍 탄알 집을 보니 그다지 양이 많은 상태가 아니었다. 이대로 온전히 버티는 것도 이제 시간 문제다.
“크아아아!”
그런 우리들의 상황을 알았는지 녀석들의 공세가 더욱 거세져가고 끊임이 없었다. 점점 상황이 절망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철컥.
드디어 우려했던 순간이 왔다. 준우 아저씨의 총알이 모두 떨어진 것이다. 우리들은 그것을 안타깝게 바라볼 시간이 없었다.
“젠장!”
준우 아저씨는 신경질적으로 소총을 바닥에 던져버리고는 대검을 뽑아 들었다. 준우 아저씨의 표정이 많이 어둡다. 초조하게 앞을 보고 있던 준우 아저씨.. 갑자기 뭔가가 생각났는지 우리 뒤쪽으로 빠르게 뛰어가기 시작한다.
“진성야 김 상병 나 좀 도와줘!”
준우 아저씨의 목소리. 하지만 여기 상황도 그렇게 좋은 상황이 아닌데..? 어떡해야 하지? 김 상병도 나와 같은 심정인지 준우 아저씨와 정면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그런 우리들에게 아저씨가 말했다.
“탄알집 하나씩 주고 가. 최대한 버텨볼테니까.”
그 옆에 선 사람들도 우리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고마워요. 인사는 살아남은 다음에 꼭 할테니까 무사히 있어줘요. 서둘러 탄알집 하나를 동생에게 건네고 준우 아저씨 쪽으로 뛰어간다. 이 하사의 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적거리는 준우 아저씨. 곧 자그마한 주사기를 발견하고는 서서히 일어났다.
“아저씨 설마?” “그래. 이 방법 밖에 없어. 우두머리 녀석을 저지해야 저 녀석들도 도망갈거야.”
준우 아저씨는 굳은 얼굴로 주사기를 꽈악 잡았다. 그 옆에 김 상병도 왼손에 쥔 주사기를 멍하니 바라보고는 준우 아저씨를 보고 말했다.
머뭇거림 없이 박 중사와 혈투를 벌이고 있는 우두머리에게 다가간다. 녀석은 나의 접근을 모르는 눈치인지 박 중사에게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아니 나한테 신경쓸 여력이 없는 것인가? 녀석의 몸에는 전보다 많은 양의 피들이 흘러내리고 있어 작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다.
푸슉. 푸푸푹.
날카로운 단검을 이용해 우두머리 녀석에 흠집을 내는 박 중사. 하지만 급소를 노리지 못해 둘의 사투가 쉽게 끝날 것 같지가 않다. 우두머리 역시 지치지도 않는지 빠른 몸 놀림으로 박 중사를 거세게 압박해간다.
퍼억. 퍽.
뼈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손과 그나마 상태가 멀쩡한 손으로 박 중사의 몸을 가격해 나가는 우두머리. 그러나 박 중사는 요령 있게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뒤로 물러난다. 호신술에 대해 상당히 조예가 깊은 것 같다.
부웅.
허공에 주먹을 휘두른 우두머리가 그 힘의 영향으로 몸이 빙글 반바퀴 돌았다.
“!!”
순간 소총을 잡고 자신을 조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우두머리는 거친 호흡을 뱉으며 내게 달려들었다. 거대한 몸에 온통 피칠갑을 한 녀석의 존재감 하나로 내 몸이 빳빳히 굳어져간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는다.
슈슉.
그 때 몸이 붕 뜬 느낌이 들었다. 호기심에 눈을 떠보니 피로 범벅이 된 남자가 나를 안고 뒤로 물러나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남자의 몸이 휘청거린다. 나는 반사적으로 남자를 부축한다.
“괜찮아?” “....”
남자는 말없이 우두머리를 바라보았다. 그런 우리 둘은 잠시 바라보는 우두머리. 곧 자신의 몸에 전해지는 충격에 몸을 돌려 박 중사를 다시 압박해가기 시작한다. 점차 양상이 과열되자 몰래 숨어 있던 준우 아저씨와 김 상병에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이. 몸 좀 움직일 수 있겠어?” “..가능하다.” “시간 좀 끌어줘. 우리가 이 주사기로 저 놈을 멈추게할테니까.”
남자는 준우 아저씨를 빤히 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다친 몸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속도를 내며 우두머리에게 다가간다.
타타탁.
놀라운 속도에 우두머리가 고개를 힐끗 돌려 남자를 본다. 남자의 손에는 어느새 들린 단검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우두머리는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뒤로 크게 점프를 하여 남자의 일격을 피해냈지만 박 중사의 존재를 너무 과시하고 있었다.
푸욱!
전보다 큰 파육음이 들린다. 우두머리의 품으로 파고든 박 중사의 단검이 살을 꿰뚫은 것이다.
“크아아아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명치 쪽에 붙어서 대검을 비틀어대는 박 중사를 강하게 옆으로 쳐낸다. 퍼억. 소리와 함께 힘 없이 나가떨어지는 박 중사. 그 찰나의 순간을 남자는 놓치지 않고 우두머리의 머리 쪽으로 다가가 강하게 단검을 내려 찍는다.
쉬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우두머리의 정수리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위협을 감지한 우두머리는 뼈 밖에 남지 않은 손으로 머리를 보호했다.
푸욱!
그러나 성과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두머리의 뼈 밖에 남지 않은 손 사이로 대검을 깊게 찔러 넣은 남자는 미련 없이 몸을 뒤로 덤블링을 하여 우두머리와 이격시켰다.
“크아아아!”
오른쪽 눈에 빛나는 단검이 박힌 우두머리 녀석은 괴로워하며 다른 손으로 단검을 천천히 빼내었다. 한 쪽 눈이 완전히 마비가 된 우두머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남자와 우리들을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애벌레 새끼들! 내가 죽더라도 살아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는게 좋을거다!”
그렇게 말한 우두머리가 조금은 느려진 속도로 남자를 압박해갔다. 준우 아저씨가 내 등을 떠밀었다.
“지금이다. 기회는 많지 않아.”
꿀꺽. 침을 삼키고 우두머리의 옆구리로 파고들어 소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긴다.
두두두두.
얼마 남지 않은 총알이다. 내 생명의 무게와 다름없는 소총. 부디 우두머리 녀석의 발을 묶었으면한다.
“크으으.”
몸을 살짝 앞으로 구부린 우두머리는 나를 보지도 않고 다른 손을 휘두른다. 부웅. 몸이 마비될 것 같은 소리에 나는 얼른 납작하게 몸을 숙였다. 휘잉. 바로 머리 위를 향해 나아가는 거대한 손. 제길.. 보이지도 않는다. 소리로 모든 것을 판단해야만 한다.
“으아아아!”
다시 몸을 일으켜 녀석에게 총알 세례를 퍼붓는다. 우두머리 녀석은 괴로워 하며 앞으로 주욱 뻗어나간다. 그 틈에 남자는 우두머리의 등에 올라타 미친듯이 대검을 단단한 살에 꽂아 넣기 시작한다.
“크아아아아!”
괴로운 괴성을 지르며 남자를 떼어내려고 몸을 세차게 흔들어대는 우두머리. 남자는 아예 대검을 강하게 살 안쪽으로 찔러 놓고 거기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식으로 버텨낸다. 그에 따라 세차게 흔들어대는 우두머리의 등이 넓게 베어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느낀 우두머리는 그대로 몸을 돌려 벽쪽으로 빠르게 달려간다.
타다다닥.
이대로 몸을 돌려 남자를 뭉개버릴 심산이다. 그것을 가만히 보던 준우 아저씨와 김 상병도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구경하면 안된다. 서둘러 나도 움직인다. 저 멀리 튀어나간 박 중사도 몸을 꿈틀거리며 일어나려고 애쓰고 있다.
콰앙!
벽에 강하게 충격을 준 우두머리는 자신의 몸에 가해진 충격이 비명을 토해내며 우리를 지긋히 노려보았다. 하지만 온전히 남자를 없앤 것은 아니었다. 그 찰나에 날렵하게 몸을 빼낸 남자가 대검을 들고 우두머리의 허벅지를 길게 베어나갔다.
푸슉.
“이 빌어먹을 새끼!”
우두머리는 괴성을 지르며 빠져나가려고 하는 남자의 몸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남자는 두 발을 버둥대며 괴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너무 거센 악력 때문에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서둘러 녀석에게 다가간다. 남자를 도와야 해! 바로 소총을 들고 우두머리의 머리 쪽으로 조준해 방아쇠를 당긴다.
두두두두.
우두머리의 입안에 그대로 총알들이 박혀나간다. 고개를 심하게 뒤로 젖힌 우두머리는 격하게 피를 토해내며 남자를 더욱 꽉 움켜 잡았다. 뿌득. 뿌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두 다리가 추욱 늘어진다. 그 순간 어느 정도 몸을 일으킨 박 중사가 빠르게 다가가 괴물의 목 쪽에 대검을 꽂아 놓는다.
푸욱!
“크르르르.”
목에 차오르는 피 때문에 비명을 제대로 못 지르는 우두머리는 남자를 내려 놓고 빠르게 움직여 박 중사의 몸을 움켜 잡았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박 중사도 보내버리려는 듯 하다. 그제서야 우두머리의 근처에 접근한 준우 아저씨와 김 상병이 몸을 날려 우두머리의 양 허벅지에 주사를 강하게 꽂아 넣었다.
“크르르..”
하찮은 눈빛으로 둘을 번갈아 본 우두머리는 강하게 다리를 틀어 김 상병과 준우 아저씨를 걷어 차버렸다.
퍼억.
그러나 한 없이 날아갈 것만 같았던 둘은 몸을 뒤로 휘청거리기만 할 뿐 날아가지는 않았다. 그 광경에 당황한 것은 우두머리나 우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틈을 이용해 박 중사가 우두머리의 손아귀를 힘겹게 풀어내고는 가볍게 착지를 하고서 몸을 날려 우두머리의 명치에 박힌 단검을 빼내 그대로 심장 쪽으로 노리고 들어갔다.
퍼억.
하지만 우두머리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양 손으로 박 중사를 강하게 밀쳐낸 우두머리. 하지만 그 충격이 그리 강하지 않아 박 중사는 허공에서 몸을 돌려 낙법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했다.
“크..르.. 크르르..”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는 우두머리. 그리고 우두머리의 몸에서 미세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처음 남자가 모습을 변할 때 처럼 우두머리의 몸에 빳빳히 나있던 털들이 바람에 슬슬 휘날리기 시작한다. 한 쪽 눈을 크게 뜨며 한 없이 날려대는 털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우두머리.
“지금이야! 박 중사!”
가슴팍에 전해진 충격 때문인지 무릎을 꿇고 있던 준우 아저씨가 박 중사에게 다가가 빠르게 부축한다. 박 중사는 거칠게 입안에 고인 피를 뱉어내고는 빠르게 우두머리를 향해 도약한다. 한 손에 들린 단검이 유독 빛나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 멍하니 서있는 우두머리의 정수리에 그대로 대검을 내려 꽂는 박 중사.
푸욱!
자신의 머리에 뭔가가 꽂혀 있다는 것을 그제야 인식한 우두머리는 멍한 얼굴을 들어 그나마 멀쩡한 손으로 더듬거리며 대검을 찾기 위해 머리를 톡톡 두드린다. 하지만 점차 빠져나가는 피들과 힘 때문에 우두머리는 서서히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쿵. 쿵.
단단한 양 무릎이 땅에 닿자 땅이 낮게 울린다. 멍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우두머리.
“어.. 떻..크르르.. 게?”
우리에게 보였던 모습이 무색해질 정도로 가녀린 모습이다.
“시발.. 시발 새끼..”
그러나 저 우두머리 녀석 때문에 소중한 친구를 잃었고 여기에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잃게 되었다. 용서하면 안된다. 망설이지마 이진성! 소총 방아쇠를 당기는거야! 뭘 병신 같이 서있는거야? 당겨 어서!
철컥.
하지만 어느새 다 써버린 총알 때문에 방아쇠가 단순히 당겨지는 소리가 날 뿐이었다. 주위를 살핀다. 쓰러진 남자에게 다가가 아직도 쥐고 있는 단검을 거칠게 빼앗아 들고 우두머리에게로 달려간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단검을 저 녀석 몸에 꽂아 넣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릴 뿐이다.
“이야아아아아!”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우두머리. 어느새 털들이 거의 다 빠져버려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너는 지옥 끝까지 따라가서라도 죽여줄테다! 개자식아!”
사정거리 안이다. 내가 뛸 수 있는 거리를 도약하여 우두머리의 심장 쪽에 거칠게 대검을 꽂아 넣는다. 살들이 꿰뚫리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피가 내 몸을 뒤덮는다. 미적지근한 느낌.. 낯선 느낌이 아니다. 개자식. 개자식!
푹. 푹. 푹.
단검을 다시 빼 녀석의 심장 부근을 거침없이 쑤셔댄다.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이 빌어먹을 새끼야! 서서히 육중한 몸이 옆으로 기울어진다. 어느새 다 빠져버린 털들이 사방에 휘날린다. 준우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와 나를 말린다. 그렇지 않았으면 언제까지고 녀석의 몸에 대검을 꽂아 댔을거다.
“허억.. 허억.”
평온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육중한 체구의 남성. 온 바닥을 색칠한 빨간 피들과 바닥에 무수히 깔린 털들을 보며 바닥에 주저 앉는다. 마침내.. 마침내..
“수고했어..”
준우 아저씨의 말에 눈물이 흐른다. 왜 흐르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양 쪽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리기 시작한다.
흐르는 눈물 때문에 앞이 뿌옇다. 옷 소매로 물기를 거칠게 닦아내며 이제는 완전한 사람의 모습이 되어 버린 우두머리 녀석에게 천천히 걸어간다. 진한 갈색의 피부와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는 근육들. 남성으로서 이상적인 몸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들에게 입은 상처들은 그대로 간직한 채였다.
저벅. 저벅.
내가 다가가는 것을 감지했는지 우두머리 녀석이 힘겹게 한쪽 눈을 치켜 뜬다. 그리고 무심히 나를 올려다본다.
“....”
아무 말 없이 녀석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녀석의 입술이 달싹거리며 천천히 열린다.
“이..유.. 삶..의..” “....” “내..유..일...한..이..유...”
한자 한자 힘겹게 내뱉을 수 있는게 신기할 정도다. 그런 녀석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다. 곧 숨이 꺼질 것이다.
저벅. 저벅.
구석진 곳에서 들려오는 작은 발소리. 고개를 돌려보니 은혜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은혜의 시선은 우두머리 녀석에게로 꽂혀 있다. 그것을 느끼고 있었는지 우두머리의 눈동자가 서서히 움직여 다가오고 있는 은혜를 멍하니 바라본다.
“..너..”
바로 옆에 다가온 은혜를 보며 꿈틀거리는 우두머리. 하지만 우리들에게 당한 피해 때문인지 미약하게 몸을 튕기는 것이 전부였다. 은혜는 우두머리의 상태를 알고 있었는지 손을 뻗어 우두머리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기 시작한다. 한쪽눈이 파이고 일이 길게 찢어진 보기 흉한 몰골이지만 은혜는 개의치 않는 듯 하다.
“잘가.”
오랜만에 듣는 은혜의 목소리. 나와 다른 사람들 모두 놀란 얼굴로 은혜를 바라보았다. 은혜는 여전히 우두머리의 얼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큭.. 크윽.. 큭.”
따스한 은혜의 손길에 우두머리는 기어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슬프지 않았다. 녀석 때문에 죽어나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 찢여 죽여도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다.
“큭... 크윽..”
힘겹게 눈물을 한차례 쏟아낸 우두머리는 천천히 말을이었다.
“너..와.. 마주.. 보는.. 댓..가..가.. 상당..히.. 크..”
우두머리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멈췄다. 더 이상 숨을 쉬지 않고 바닥에 추욱 늘어진 우두머리. 은혜는 두 손을 뻗어 아직도 눈을 뜨고 있는 우두머리의 한 쪽 눈을 살며시 감겨 주고는 살살 쓰다듬었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던 준우 아저씨가 은혜를 강제로 일으켜 세우고는 말했다.
“이제 끝이야.”
준우 아저씨를 빤히 보던 은혜는 멀찌감치 쓰러져 있는 남자에게 다가간다. 우리들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은혜의 뒷모습에서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느릿느릿하게 남자에게 다가간 은혜는 쭈구려 앉아 남자에게 팔을 내밀었다.
“....” “은혜야..”
그것이 곧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말려야 하는건가? 그렇지 않으면 남자가 이대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죽어버리면.. 앞으로 나아가는데 있어 에로사항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럼.. 은혜는? 저런 몸에서 피를 빼버리면..
“은혜야..”
아무 행동도 취할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살고 싶다는 욕망이 너무 큰 탓이다. 비겁하게도 나는 그것을 빤히 바라보았다.
“....”
미약하게 숨을 쉬고 있는 남자. 고개를 들 기력도 없는 것 같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은혜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뾰족한 돌 파편으로 자신의 손아귀를 길게 그었다. 뚝. 뚝. 녹색의 액체가 한 방울씩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은혜는 손을 천천히 옮겨 남자의 입가에 가져간다.
“....”
한 방울. 한 방울. 차곡차곡 남자의 입안에 녹색의 액체가 들어간다. 10방울.. 20방울.. 30방울.. 쯤에 남자가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남자의 몸은 원래 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쭈구려 앉아 있는 은혜를 보고 조용히 중얼거린다.
“메시아시여..” “....”
남자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처음으로 보는 표정변화다. 하지만 그거에 계속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남자 옆에 앉아 있던 은혜의 몸이 서서히 옆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남자는 다급하게 은혜를 붙잡아 바닥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메시아시여..”
은혜의 손에서는 아직 미약하지만 작은 양의 피가 새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가만히 보던 박 중사는 은혜에게 다가가 흘러내리는 피들을 핥아내기 시작했다. 그런 박 중사를 특별히 제재를 가하지 않는 남자. 서서히 은혜의 피가 멎어감에 따라 박 중사의 몸도 눈에 띄게 회복되어져 간다.
“그만...”
남자의 말에 몸을 일으킨 박 중사는 자신의 몸을 한 번 훑어 보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거짓말처럼 깨끗해진 박 중사의 몸. 이어 박 중사는 주변에 떨어진 대검을 들고는 통로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일단 여기서 벗어나고 보자고.”
두두두두.
그제서야 사람들의 총소리가 들려온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통로 쪽에는 아직 사람들이 우리를 엄호해주고 있었다. 어느새 가세했는지 우민이 형이 소총을 아슬아슬하게 들고 서 있는게 보인다. 비교적 총알이 남은 이 하사와 김 상병이 빠르게 통로 쪽으로 뛰어간다.
“메시아를.. 부디.”
그렇게 말한 남자도 통로 쪽으로 뛰어간다.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고요히 눈을 감고 있는 은혜에게 다가가 얼굴과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따스하고 보드라운 감촉.. 금방이라도 눈을 뜰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고생했어 은혜야.”
들릴리 없겠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 나중에.. 아니, 내일이면 전처럼 일어나서 돌아다니겠지? 그럴거지? 은혜야. 저번에 나랑 약속한거.. 잊지 않았잖아? 그 날.. 버스에서 한 약속.. 나 아직도 기억해. 그러니까 기운내야 해. 알았지?
“크아아아!”
통로 쪽에서 녀석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박 중사와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둘이서 녀석들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제서야 한 숨 돌릴 틈에 생긴 사람들은 힘 없이 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그 중 봉수 아저씨는 구석진 곳에 기절한 듯 축 늘어진 부녀에게 다가가 앉았다.
“크오오!”
점점 녀석들의 비명소리가 멀어져간다. 둘의 활약이 상당한 것 같다. 은혜의 목을 가볍게 들어 무릎 위에 올려 놓고 나도 바닥에 몸을 뉘었다. 축축한 피가 옷을 적시기 시작하지만 상관없었다. 상황이 좋게 끝났고 우리들은 결국 살아 남았으니까..
“..아아!”
이제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다. 너무 안심한 탓인지 눈이 스르르 감긴다. 이런 더러운 환경 속에서 잠이라니.. 정말 이놈에 몸은.. 왜 이렇게 약해빠진거야.
우민이 형의 목소리. 번쩍 눈이 떠진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우민이 형의 얼굴이 보인다. 스르르 상체를 일으키며 아직도 무릎을 베고 잠들어 있는 은혜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우민이 형에게 묻는다.
“몇시야..?” “아침이야. 7시.” “아..”
우민이 형은 잠들어 있는 은혜를 빤히 바라보고는 말했다.
“아직이지?” “응.. 평소에는 제일 먼저 일어나서 돌아다니던 애가.. 오늘은 아니네.” “그래.. 일단은 여기서 벗어나는게 좋겠다.”
우민이 형 말에 주위를 둘러본다. 바닥 여기저기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붉은 피웅덩이들과 서서히 부패하기 시작하는 살덩이들이 전부다. 어느새 냄새를 맡았는지 파리 녀석들이 벌써부터 득실대기 시작한다. 저절로 눈이 찌푸려지는 광경에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야겠네. 은혜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은혜를 흔들어 깨워보지만 일어나지 못한다. 그런 은혜에게 어느샌가 다가온 남자가 무릎을 꿇어 은혜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어제 보았던 그 감정이 느껴졌었던 표정이 아닌 평소와 같은 표정이다. 남자에게 따로 인사를 하지 않고 몸을 일으킨다.
찌릿. 찌릿.
양쪽 무릎에 전기가 지르르 통한다. 장기간동안 은혜의 머리 무게를 견딘 탓이었는지 다리가 순간 말을 듣지 않는다. 찌릿거리는 미약한 통증을 참으며 앞으로 걸어나간다.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우민이 형을 돌아보며 궁금한 표정을 짓자 우민이 형은 손가락을 뻗어 통로 쪽을 가리켰다.
“이미 다 나갔어. 네가 제일 늦잠자서 깨우러 온거야.” “..빨리 깨워도 되는데.” “워낙 곤히 자고 있길래.. 둘 다.” “..고마워.” “고맙긴. 가자.”
우민이 형이 앞서서 걷기 시작한다. 남자는 여전히 은혜를 품안에 꼬옥 안은채로 뒤에 서있을 뿐이다.
“가야 돼.”
내 말에 남자는 은혜를 빤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메시아께서 살아계시지 않는다면 저 역시 살아갈 의미가 없습니다.” “무슨 소리야.. 은혜 그렇게 빨리 안 죽어. 저번에 나랑 약속했어.”
남자는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단순히 당신이 좋아서 그런겁니다. 메시아께서는 약속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릅니다.” “..아니야. 빨리 나가자 우선.” “메시아께서는..”
남자의 말을 애써 담아 두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통로 쪽으로 걸어 나간다. 희미하게 빛을 내는 작은 램프가 붉은 피들로 뒤덮여 있어 그 빛이 상당히 미묘하다. 마치 우리들의 상황인 것 같아서 나는 그것을 가만히 보지 않고 까치발을 들어 군복 소매로 램프를 천천히 닦아 내었다.
“너도.. 힘내.”
묽은 피들을 닦아내자 환하게 빛을 내는 램프. 그래, 그렇게 빛나는거야. 빠르게 통로를 벗어난다. 셀 수도 없는 괴물들의 시체가 앞을 가로 막는다. 다리를 들어 그것들을 다 피해내며 걷는다. 고인 핏물들과 여기저기 흩어진 살덩이들을 보지 않으려고 애쓴다.
위위윙.
시체여기저기에 붙어 있던 파리들이 내 움직임을 감지하고는 순간적으로 날아든다. 손을 저어가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수 밖에 없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남자가 묵묵히 따라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고요하게 눈을 감고 있는 은혜도 보인다.
“그럴리 없잖아. 그럴리 없어..”
기나긴 지하를 지나 환하게 빛나고 있는 밖으로 몸을 내민다. 상쾌한 바람과 공기가 기분을 좋게 해주었다.
“일어났냐?‘ “수고했다.” “잠이 제일 많다니까.”
모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저마다 살아있는 상태였다. 물론.. 몇몇이 희생되는 것은 막을 수 없었지만.. 뜨거운 뭔가가 올라오려고 한다. 애써 그것을 삼켜내며 간신히 말을한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내 말에 모두 아무 말없이 서로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왔었던 곳으로 천천히 몸을 돌려 걷기 시작한다. 아직 부산에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큰 고비 하나를 넘긴 것 같아서 마음이 홀가분했다. 앞으로는 평탄한 일들만 일어났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물론 그게 내 뜻대로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잃고 싶지가 않다.
시원한 미풍을 받으며 막사로 빠르게 복귀한다. 그 동안에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기만 한데 모든게 정리된 것 같다. 왠지 이대로 주욱 가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막사에 도착한 우리들은 1층 복도에 있는 시체더미들을 애써 외면하고 2층으로 올라간다.
“일단은 씻고 가지. 이런 몰골로 다니기에는 찝찝하니까.”
아저씨 말에 모두 동의하고 보급품이 있는 생활관으로 움직인다. 그 와중에도 행정실에 언뜻 보이는 고기덩어리들을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서둘러 보급품들을 챙기고 저번과 같이 여자부터 샤워실을 쓰게 하고 남은 우리들은 남은 침대에 누워 은혜를 돌봤다.
“은혜.. 일어날 수 있겠죠?”
동생의 말에 아저씨는 손을 뻗어 은혜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이제.. 힘들지도 몰라.” “....”
그 말에 모두가 침묵을 지킨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거다. 은혜가 곧 제대로 서지도 못한다는 날이 올거라는 것을.. 저번에도 남자가 그렇게 말했었지. 은혜는 죽을 날을 고르고 있다고. 그게 점점 다가오고 있는 걸까. 이런 분위기가 익숙치 않은 준우 아저씨와 동생이 몸을 일으켜 생활관 밖으로 걸어 나간다.
“행정부에 뭐가 있나 좀 보고 올게요.” “....”
아저씨는 애정어린 눈길로 은혜를 바라보며 말했다.
“행복했었지..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내게 행복이란 것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것도 은혜였어.” “아저씨..”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아저씨는 말을 잇지 못하고 은혜의 머리카락만 조심스레 쓰다듬기만 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준우 아저씨와 동생이 같이 들어온다. 양손 가득 컵라면들을 안고 있었다. 준우 아저씨는 애써 웃는 얼굴로 우리에게 말했다.
“굶고 출발하지는 않겠어요.” “좋지.”
모두가 좋아하는 표시를 했지만 그것이 너무 어색했다. 그동안의 시간 동안 은혜라는 존재가 마음 속에서 너무나 크게 잡혀버린 것 같다. 그 때 샤워를 마친 해인이가 우리들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제 씻으셔도 되요.” “응.”
서둘러 갈아 입은 것들을 챙기고 밖을 나선다. 남자는 끝까지 은혜 옆에 앉아 있었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던 박 중사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남자를 끌고 나온다.
“메시안지 뭔지. 일어날 거니까 깔끔한 모습으로 좀 있어라. 나중에 쟤가 일어났을 때 너의 그 드러운 모습을 보면 좋아하겠냐?”
박 중사의 말에 남자는 묵묵히 샤워실 쪽으로 걸어간다. 그 모습에 박 중사는 쓴웃음을 짓고는 그 뒤를 따랐다. 하나 둘 샤워실 안으로 들어선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다. 최대한 빨리 옷들을 벗고 온 몸에 덕지덕지 묻은 것들을 씻어내기 시작한다.
쏴아아.
모두 나와 비슷한 생각인지 서로 아무 말없이 신속하게 몸을 씻어내기만 한다. 처음 이곳을 쓸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숨이 막힐 것 같다.
쏴아아아.
대충 머리와 몸들을 씻어낸 후 밖으로 나와 물기들을 닦아 내며 새로운 군복을 입는다. 새 옷을 입을 때의 느낌이 온 몸을 휘감는다. 기분이 좋지가 않다. 잘되고 있는게 분명하지만 마음이 자꾸 텁텁하다. 서둘러 옷을 차려 입고 밖으로 나온다. 차갑고 약한 바람이 불어온다.
꼬르르륵.
그래도 살아 있음을 증명해주는 듯 뱃속의 시계가 울려댄다. 은혜가 있는 생활관 쪽으로 걸어간다. 여전히 잠들어 있는 은혜 곁에 앉아 있는 해인이 부녀. 안으로 들어오는 나를 보고는 해인이가 물었다.
“은혜 언니는요?” “..일어날거야.” “네..” “밥이나 먹자. 출발해야 하니까.”
비어 있는 침대 위로 쌓여 있는 컵라면들을 품 안에 가득 안고서 생활관을 나온다. 해인이도 허둥지둥 내 뒤를 따라온다. 긴 복도 안에 울려 퍼지는 군화 소리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정수기 위에 컵라면들을 대충 쌓아 놓고 포장을 뜯어 물을 받는다. 1개. 2개. 3개. 쯤에 해인이에게 건넨다.
“다 들 수 있겠어?” “네.”
해인이는 요령 있게 컵라면을 쌓은 상태 그대로 생활관 쪽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다시 기계적으로 컵라면의 포장을 뜯고 물을 받는다. 주루룩. 주루룩.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용기가 점차 뜨거워져간다. 멍하니 그것을 움켜쥔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주세요.”
어느새 다가온 해인이가 손을 내민다. 그제서야 퍼뜩 정신이 든 나는 다시 컵라면들을 건네고 물을 따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2~3번을 반복하자 모두가 먹을 정도의 양이 되었다. 남은 컵라면 모두 물을 받고 생활관 쪽으로 걸어간다.
“후우..”
생활관으로 들어가니 모두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아무렇게나 앉아 컵라면을 입에 가져가기 시작한다. 이상하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물을 너무 많이 넣었나? 스프를 안 넣은건가? 아니다. 국물 색이 빨간데.. 왜..
후루룩. 후룩.
말 없이 라면을 먹는 우리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남은 라면들을 대충 자리에 놓고는 떠날 채비를 한다.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은혜는 남자가 조심스럽게 안아 든다. 웬만큼 필요한 것들은 위병소 밖에 있는 택시 안에 있으니 따로 챙길 것들은 극히 적었다.
“가지요..”
모두 상태를 확인한 아저씨가 앞에 서서 걷기 시작한다. 1층으로 내려와 중앙 계단을 지나.. 연병장을 가로질러간다. 사방에 괴물들의 시체가 즐비하게 깔려있다. 이젠 괴물들의 시체를 봐도 아무렇지가 않다. 익숙해져버린 건가. 거리낌 없이 생명체를 죽이는 일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다. 살기 위해..? 하지만 괴물들도 살기 위해 한 일들이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을까?
저벅. 저벅.
단순히 내가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의 인권이 소중하기 때문에? 그럼 괴물들의 입장에서는?
“무슨 생각을 그리해?”
우민이 형이 내 옆에 서서 묻는다. 나는 말 없이 점차 가까워지는 위병소를 바라보기만 한다.
“이제 거의 다 왔어. 힘내자.” “..응.”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된 택시가 우리들을 반겨주었다. 물론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부산까지 가는데 지장이 없을 것 같다. 택시 쪽으로 모두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그러나 박 중사와 이 하사. 김 상병과 남은 몇몇의 군인들은 위병소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안가요?”
준우 아저씨가 뒤를 돌아보며 묻자 박 중사가 고개를 저었다.
“남아 있는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군.” “미쳤어요? 지금 그런걸 따질 때가 아니라구요.”
준우 아저씨는 답답하다는 듯 언성을 높였지만 이미 그들은 뜻을 굳힌 상태였다. 이 하사도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그 표정과 태도가 너무나 확고해 우리들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김 상병도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말했다.
“조심하세요.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봅시다.”
그렇게 말한 아저씨는 서둘러 택시에 타고는 시동을 걸었다. 남은 우리들도 각자 택시 운전석에 탄다. 그 중 몸이 성치 않은 우민이 형과 해인이 가족 그리고 남자는 아무렇게나 택시에 올라탔다. 부르릉. 시동이 걸리며 아저씨가 제일 먼저 택시를 몰았다.
“가자..”
동생의 말에 아직 꽂혀 있는 차키를 힘껏 돌린다. 부르릉. 엔진음이 들리며 택시가 미약하게 흔들린다. 운전대를 잡고 앞 창문을 본다. 남아 있는 사람들 모두가 우리 쪽을 보며 손을 흔들고 있다. 나도 손을 마주 흔들어주고는 운전대를 크게 돌렸다. 부드럽게 차체가 회전하며 나아간다.
“어느 책에서 읽었어. 사람들이 헤어질 때 마지막 모습을 끝까지 기억한다고 말이야. 적어도 웃으면서 작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한 동생은 조수석 창문을 열고 상체를 길게 빼내 위병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꼭 살아서 봐요! 꼭이요!”
그렇게 말하며 양손을 크게 흔드는 동생. 백미러로 위병소에 남은 사람들을 보니 모두 희미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마지막 모습.. 제대로 인사를 하려면 지금 이 순간 밖에 없을 것 같다. 차를 잠시 멈추고 문을 열고 내려 아직까지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외친다.
“고마웠습니다! 꼭 살아있어야해요!”
주룩. 두 눈에 뭔가가 흐르는 것 같았다. 눈앞이 점점 흐려져간다. 왠지 이대로 있다가는 울음이 터져나올 것 같아 서둘러 문을 열고 운전대를 잡아 빠르게 택시를 몬다. 동생도 이어 창문을 닫고 말 없이 조수석에 앉아 의자를 조금 뒤로 젖힌다.
“이제.. 가는거야.”
그렇게 말한 동생은 슬며시 눈을 감았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앞서 가는 택시들을 쫓는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평범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고요히 잠을 자며 대기하고 있는 녀석들이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부아앙.
택시의 속도가 점차 올라간다. 점차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다. 과연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찬란한 빛의 희망일까 어두운 절망일까.
밖.에.나.가.지.마.시.오. [최종편] 장편 스압!
안녕하세요. 엽기&호러 판 여러분.. 저의 글의 출처는 항상 명시에 두었
지만 웃긴대학에서 퍼온 글이며 "삶이무의미함"님의 작품 이였습니다.
다른 작품을 더 찾으시려면 "웃긴대학" 에서 공포 게시판에서 "삶이무의
미함" 님으로 검색하시면 다른 작품도 나오니 감상 하시면 될 것 같네요.
끝으로 출처 "삶이무의미함"님의 글은 이 장편으로 마지막으로 12시간
이후 자삭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을 끝으로 좋은 글이 있다면 다시 올려 드리 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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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허억.”
“후우.”
모두 가뿐 숨을 쉬며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심난한 심정이 쉽게 정리가 되지 않는다. 직접 나서지는 않았지만 괴물들이 아닌 멀쩡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비록 홀린 상태라고는 하지만 엄연한 정상인이었다. 과연 이게 옳은 일일까.. 준우 아저씨는 답답한 표정으로 바로 옆 창문을 내렸다.
휘이잉.
밴의 가속도에 비례해 거센 바람이 불어온다. 준우 아저씨는 노인들에게 한 행동을 씻어내기라도 하듯.. 그대로 바람을 묵묵히 맞기 시작한다.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우린 정당한 일을 한거야.”
묵묵히 밴을 몰던 아저씨가 말했다. 알고 있지만 노인들을 죽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아니지.. 지켜보는 내 심정이 이런데 아저씨들은 오죽할까. 민정 누나의 일이 있고난 후 독하게 먹었던 다짐들이 점점 무뎌져간다. 안된다.. 이래서는 안된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하고 현재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 모든걸 포기한 눈이었어.”
나직이 중얼거리는 동생의 말. 그 마지막 순간에 어르신의 얼굴을 살핀 것일까.. 아직도 귀에는 어르신의 마지막 발악에 가까이 포효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다.
“곧 해가 지겠군.”
아저씨 말에 앞 좌석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어 전자시계를 본다. 16시가 훌쩍 넘긴 시각. 17시가 다 되어간다. 1~2시간 뒷면 어두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은혜야.”
응? 조수석에 앉아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은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놀란 눈으로 아저씨를 바라보자 트렁크 쪽을 가리켰다.
“아..”
그럼 그렇지. 아저씨는 은혜를 두고 갈 사람이 아니다. 트렁크 뒤 남자 어깨에 기대어 있는 은혜의 뒷모습이 보인다. 다른 옷으로 입혀주자고 마음 먹은 것과는 다르게 여전히 남자와 같은 후드를 입고 있다. 그럴 여유도 없었지.. 은혜의 작은 어깨가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걸 보니 아마 잠들어 있는 것 같다.
“저 남자가 은혜를 확실하게 지켜주고 있었어. 조금 안심이 되더군.”
“그래요?”
“보지 못했겠지만 은혜에게 접근하는 노인들에게 가차없이 공격을 하더군. 물론, 괴물때처럼 피가 튀기지는 않았지만.”
괴물.. 피. 당구장에서 사신처럼 서있던 남자.. 그랬구나.. 은혜를 지켜주고 있었구나. 새삼 남자가 다르게 보인다. 물론 후드에 가려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는 없지만 아저씨들을 볼 때와 같이 듬직함이 느껴진다. 옆에 앉은 동생이 조수석의 윗부분을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세상 일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더니..”
“그렇지.. 자네들보다 오래 살아온 나도 당장 오분. 십분의 일을 장담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내일이나 모레의 일은 오죽하겠는가.”
하아.. 다시 의자에 기대 창문을 살짝 연다. 낮과는 달리 제법 차가워진 바람과 붉은 빛의 노을이 시야에 가득 찬다. 낮에 그 맹렬한 기세로 눈을 따갑게 하던 태양이 서서히 저물어가는 모양이다. 그 순간까지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노을의 색이 유독 붉다.
“거리가 꽤 되는군. 오늘은 길에서 보내야겠어.”
아저씨 말대로 앞에 보이는 거라고는 끝이 없는 고속도로와 넓게 펼쳐진 풀들이 전부다. 가끔 보이는 주인을 잃은 폐차와 안성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제외하고는 황량하다. 50키로.. 1~2시간만에 갈 수 있는 거리일까. 만약 간다고 쳐도 무사히 밤을 지낼 곳을 찾을 수 있을까. 19시를 넘어서 돌아다니는 것은 자살 행위에 가깝다.
“그럼 간단히 요기할 것만 하고 일찍 자는게 좋겠습니다. 형님.”
준우 아저씨의 말에 모두 동의하는 눈치다. 아저씨는 마지막 밴의 속도를 높였다. 나와 동생. 준우 아저씨는 밴 안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과자 봉지나 초코바, 빵 등을 주섬주섬 챙겼다. 게다가 구석에 처박힌 우리들의 배낭을 열면 먹을거리가 꽤 될 것이다.
부우웅.
어느 정도 먹을 거리가 손에 잡히자 서서히 밴이 속도를 줄이더니 이내 멈췄다. 곧 19시가 되어간다. 어설프게 움직여서 들키는 것보다 이런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그 자리에서 대충 허기를 달래기 시작했다. 낮에 비하면 변변찮은 저녁 식사지만 아까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은 정말 불행중 다행이다.
“밤에 녀석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할거야. 지금 차안에 있다고 해서 무조건 안전하다고 볼 수 없으니 그제처럼 불침번을 서야 할 것 같군. 다들 동의하는가?”
“그러죠.”
우리는 빠르게 허기를 채우고 의자에 편히 기댔다. 아직 잠을 자기에는 이른 시각이다.
“무사히 부산까지 갈 수나 있으려나..”
한 숨 섞인 준우 아저씨의 목소리. 이제 겨우 안성에 도착한 상태다. 밤 낮으로 교대를 해가며 밴을 몰면 비교적 빠르게 도착할 수 있겠지만 밤은 우리들의 영역이 아니다. 게다가 이 정도의 인원이 전부 가려면 충분한 먹을 거리도 있어야 하고 기름도 충분해야 한다. 게다가 은혜라는 변수 때문에 한치도 방심할 수가 없다.
“크윽..”
우민이 형의 신음소리. 우리는 일제히 우민이 형 안색을 살폈다. 땀을 뻘뻘흘리며 안색이 창백하다. 준우 아저씨는 우민이 형이 입고 있는 군복 상의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상체가 드러날수록 우리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정신없이 달려온 터라 우민군의 상태를 잊고 있었어..”
“준우 아저씨의 도움을 받으며 상의를 완전히 벗은 우민이 형의 상태가 꽤 심각했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으스러진 팔의 색이 점차 바래가고 있었다. 세포들이 죽어 부패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어떻게 아픈 소리 내지 않고 참아온 것일까.. 보고 있기만 해도 그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다.
“괜..찮습니다..”
“장난해? 이게 괜찮은거냐?”
괜히 준우 아저씨가 역정을 냈다. 왜 더 화를 내는지 알 것 같았다. 준우 아저씨에게 김 대위와 민정 누나의 죽음이 상당히 큰 충격으로 다가와 마음을 초조하게 한 것이다. 우민이 형을 걱정하고 있지만 그 초조한 마음이 더 커서 이런 식으로 화를 내는 것이다.
“형님..”
준우 아저씨가 아저씨를 보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 아저씨는 잠시 주저했다.
“흐음..”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토하는 아저씨. 그렇다고 해서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당장 병원을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만약 찾았다고 해도 의사들이 과연 살아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괴물들의 습격에서 안전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면 답은 하나다. 하지만 은혜의 몸은 점점 야위어가고 있다. 커다란 후드 때문에 완전히 보이지는 않지만 전보다 은혜의 얼굴이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후우.”
어려운 결정임은 틀림 없다. 괴로워하는 우민이 형과 멍한 표정으로 창문 밖을 응시하는 은혜. 아저씨는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모르는 우민이 형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삼켜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기가 힘든지 준우 아저씨는 서둘러 은혜를 불렀다.
“....”
역시 반응이 없는 은혜. 준우 아저씨는 손을 뻗어 은혜를 부르려고 했지만 그림자처럼 은혜 곁에 있는 남자가 그것을 저지했다. 검은 털이 아닌 검은 색의 손이다. 흑인과는 다른.. 아주 짙은 검은 색이다. 준우 아저씨는 놀란 얼굴로 남자와 손을 번갈아 보았다. 적색의 눈을 조용히 빛내며 남자가 말했다.
“메시아께서 힘들어 하십니다.”
“이거 안놔?”
준우 아저씨는 당황한 기색으로 손을 빼려고 했다. 그러나 남자의 악력은 상상이상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다. 은혜를 지키는 남자의 범위가 우리에게까지 미칠줄은 몰랐다.
“그럼 쟤는 어떡하라고!”
힘으로 되지 않자 준우 아저씨는 소리를 지르며 남자를 노려봤다. 남자는 예의 무표정으로 돌아가 괴로워하는 우민이 형을 보며 말했다.
“팔을 자르면 됩니다.”
“..뭐라고?”
우민이 형도 예상한 일인지 크게 놀라지 않는다. 하지만 해결책을 알고 있는 우리들은 속이 탈 수 밖에 없었다. 멍한 우리들을 보며 남자는 반복해서 말했다.
“팔을 절단하십시오.”
“미친놈아! 쟤 저 상태로 팔을 자르면 누가 봉합하고 치료해줄건데? 여기에 어디 의료도구라도 있는 줄 알아?”
잔뜩 흥분한 준우 아저씨가 침까지 튀겨가며 남자에게 대들었다. 하지만 남자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제가 멈추게 합니다.”
“뭐..?”
그 말은 우리들을 멍하게 하기 충분했다. 의료기술을 따로 익히기라도 한건가? 우민이 형도 몸을 슬슬 움직이며 말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에요. 저 남자가 해준다는데.. 뭐가 문제에요.. 해가 지고 있어요.. 서둘러야 해요..”
한 글자. 한 글자를 고통스러운 것을 억지로 삼켜내며 말하는 우민이 형. 준우 아저씨는 그런 우민이 형을 보더니 한숨을 쉬며 옆문을 열었다.
드르륵.
밴의 문이 열리자 거의 저물어가고 있는 태양의 꼬리가 보인다. 시간이 없다. 우리 모두 밖으로 나와 소총을 들고 주위를 경계를 했다. 곧 우민이 형이 밖으로 나왔는데 왼쪽 팔 전체가 종잇장처럼 너덜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내 따라나온 남자는 자신의 옷 소매를 꽤 큰 면적으로 찢고는 동생에게 소매를 내밀었다.
“불을.”
동생은 얼결에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찢은 소매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슨 소재로 된건지 쉽게 불이 붙지가 않았다. 끈기있게 바람을 피해 한 곳에 오랫동안 열을 가하자 서서히 불이 붙기 시작하는 소매. 남자는 완전히 소매가 불에 휩싸일 때까지 소매를 들고 서 있었다. 찢어진 옷 사이로 튀어나온 검은 손이 자연과 동화가 되어 거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뜨겁지도 않나.. 괴물놈.”
준우 아저씨 말대로 뜨거운 화염이 이내 남자의 손을 집어 삼켰지만 남자의 표정은 여전히 편안해보였다. 이내 우민이 형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 우민이 형은 인상을 찡그리며 남자에게 다가갔다.
“빌어..먹을 놈. 날 이렇게 만들더니.. 치료를 해..주겠다? 병주고 약주는,, 것도 정도가 있지.. 크윽.”
“아플겁니다.”
남자의 말에 우민이 형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자의 다른 손이 보이지도 않는 빠르기로 허공을 갈랐다.
피익.
깔끔하게 자로 잰 듯한 솜씨. 우민이 형의 몸이 허전해 보인다. 그제서야 몸을 떠나 바닥에 굴러 떨어진 팔이 눈에 들어온다. 취이익. 잘린 부분 사이로 피가 사방으로 튀며 우민이 형의 비명소리가 널리 퍼진다.
“끄아아악!”
그러나 남들과 다른 정신력을 가진 우민이 형은 두 눈을 빛내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를 분수처럼 피를 뿜어대고 있는 살갗에 가져다대었다.
“끄아아아악!”
엄청난 고통에 몸을 부들부들떠는 우민이 형. 보는 우리들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고기가 타는 냄새와 특유의 비릿한 피냄새가 어우러져 후각을 자극한다. 계속되는 격통에 우민이 형의 다리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스르르 무너지려는 우민이 형의 신형을 강하게 잡은 남자의 손에서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끄아아악!”
입에 하얀 거품을 물며 부들부들 몸을 떠는 우민이 형의 고개가 아래로 꺾였다. 혼절한 것이다. 그럼에도 남자는 계속 일정 부위를 불로 지져댔다. 5분 정도가 흐르자 남자는 허공을 빠르게 손으로 저어 불덩이를 꺼버리고는 우민이 형을 들어 밴안에 눕혔다. 아직도 고기가 타는 냄새와 특유의 향이 고속도로에 가득하다. 짧다면 짧은 시술이었지만 어느덧 해가 완전히 저물어 있었다.
“일단 여기를 떠야겠어. 너무 소음이 컸어.”
아저씨 말에 우리는 재빨리 밴에 올랐다.
“크아아아!”
빌어먹을 타미밍하고는.. 괴물들의 소리다. 분명 우민이 형이 내는 소음과 특유의 냄새를 맡고 근처까지 온 것이 확실하다. 동생이 서둘러 문을 닫자 아저씨는 밴을 빠르게 후진시켰다. 아직 고속도로에 녀석들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크아아아!”
꽤 가깝다. 아저씨는 바로 밴을 멈추고는 시동을 껐다. 20~30미터 왔을까? 고속도로에는 드문드문 빛나는 가로등 말고는 보이는게 없다. 곧 녀석들이 이리로 올 것이다. 숨을 최대한 죽이고 앞을 주시했다.
“크르르.”
바로 옆에서 놈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제발 지나가라.. 제발. 밴의 바로 옆에 다가온 두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밴 창문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붉은 색의 눈동자와 괴물 특유의 검은 털이 하나하나 온 몸의 세포들을 깨우기 시작한다. 낮이라면 희미하게 우리들의 실루엣이 보였겠지만 다행히 지금은 밤이었다.
“크르르르.”
날카로운 이빨을 빛내며 기다란 혀로 여기저기 밴 차체를 핥기 시작하는 녀석들. 아까 전, 우민이 형 몸에서 사방으로 튀던 피를 핥는 것 같다.
“크아아!”
그 때 앞에서 나타난 녀석들이 잘린 팔뚝 하나를 두고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소리에 차체를 핥던 녀석들도 팔을 차지하기 위해 앞으로 뛰쳐나갔다.
“크아아!”
우민이 형의 팔 하나를 두고 서로 먹어보겠다며 몸싸움을 벌이느 녀석들. 그런 녀석들의 악력을 견딜만큼 인간의 팔은 강하지 않다. 두둑. 거리며 부러진 팔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살덩이를 씹어대는 녀석들과 그런 녀석들을 잡기 위해 괴성을 지르는 다른 녀석들.
“생지옥이 따로 없구만.. 제길.”
모두 마른침을 삼키며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런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제발 이대로 녀석들이 밴을 지나쳐가기를..’ 하고 간절히 기도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지옥에서 사는 악귀들처럼 팔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녀석들은 손에 남은 살덩이까지 삭삭 핥으며 아쉬운 얼굴을 했다. 그 중에서도 불행히 살점 한입을 못 먹어본 녀석이 씩씩 대면서 다른 녀석들을 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연스럽게 다시 거리를 누비기 시작하는 녀석들.
“크아아!”
이내 녀석은 자기 성질을 못 이기고 앞에서 걷고 있는 녀석의 목을 강하게 물었다. 피가 사방으로 튀며 물린 녀석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양손으로 상대방의 머리를 강하게 두드려댔다. 하지만 독기가 오를 대로 오른 녀석은 그대로 목을 물어 뜯어버리고는 동료들을 보며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아!”
길고 긴 포효 속에 녀석의 절박한 심정이 조금이나마 느껴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괴물이라고는 하지만 녀석들도 나름대로 살아가려고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괴물이 되었다면 분명 저런식으로 살아가려고 발버둥을 쳤겠지.. 움직이지 않는 동료를 멍하니 보는 다른 괴물들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고개를 갸웃거린다.
“크르르.”
곧 무슨 상황인지 깨달은 녀석들은 동료를 죽인 녀석을 처단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숫자로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녀석은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얼씨구..”
“정말 돈 주고도 못 볼 구경거리네요.”
이럴때일수록 준우 아저씨와 동생은 죽이 잘 맞는 것 같다. 그러나 틀린 말도 아니다. 인간의 본성 중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파괴의 욕구가 꿈틀거리며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더, 더 죽이라고 괴물에게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게 안타까웠다. 왜 UFC나 프라이드를 보며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알 것 같다.
녀석의 허기가 공포보다 큰 탓이다. 입에 물린 동료의 살덩이를 질겅질겅 씹으며 주욱 뒤로 물러나는 녀석. 가만! 이대로 주욱 이어지면 우리 밴과 부딪히게 된다.
“아저씨..”
“알고 있네.”
최악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고작 저 한 놈 때문에 모든 걸 망칠 순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하지..? 밴을 두리번거리며 녀석들의 주의를 끌만한 것을 찾아본다. 그러다 문득 우민이 형의 런닝에 눈이 갔다. 아직 마르지도 않은 피로 인해 새빨갛게 염색된것 같은 착각을 주는 런닝.. 어쩌면 녀석들의 주의를 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혼절한 우민이 형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일단 상황을 좋게 흐르게 해야 한다. 부욱. 런닝을 손으로 찢어 초코바에 감싸고 묶는다. 멀리 던지기 위해서다. 아직 촉촉이 젖은 런닝. 비릿한 피 냄새가 코를 찌른다.
“조심해..”
지금 던져서는 안된다. 녀석들이 조금 더 다가온 후에.. 그 후에 던져야 한다.
“크르르.”
낮게 이를 갈기만 할뿐 공격을 섣불리 못하는 녀석과. 가소로운 미생물을 대하듯 여유를 부리며 압박해 가는 녀석들.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다. 제발 성공해야 할텐데.. 10미터.. 9미터.. 8미터. 지금이다! 작은 소리를 내는 순간 게임오버다. 수동으로 밴의 창문을 서서히 연다. 어설프게 창문을 여는 것보다 확실하게 연 뒤, 멀리 던지는 것이 가장 낳은 선택일 것 같다.
“크르르르.”
‘애초에 저 남자한테 부탁을 하면 일이 더 쉽게 끝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여지껏 봐온 남자의 태도를 보면 은혜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입히지 않는한, 나서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가 타개해 나가야한다는 소리다.
“크르르.”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손에 들린 런닝 조각을 단단히 쥐고 그대로 창문 밖으로 휙 던졌다. 빠르고 높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런닝 조각. 산뜻한 피 냄새 때문인지 녀석들의 고개가 순간적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있는 런닝 쪽으로 휙 돌아갔다.
“좋아..”
왼손으로 창문을 올리며 녀석들의 행동을 주시한다.
“크아아!”
효과가 있었다. 소리를 내며 떨어진 런닝 조각을 먹이로 인식한 녀석들이 거기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홀로 남은 녀석은 그러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맹렬한 속도로 뛰어오는 녀석. 설마.. 우리를 눈치챈건 아니겠지?
타다다닥.
빠른 속도로 밴 옆을 지나치는 녀석. 그러나 서서히 닫히는 문틈 사이로 녀석의 붉은 눈빛이 내 눈과 마주친다.
“!!”
“크르르.”
그 찰나의 순간에 몸이 그대로 굳어져버렸다. 일이 꼬이는게 아닌가 하고 심히 걱정을 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녀석은 그대로 우리를 지나쳐갔다. 후우.. 서둘러 창문을 닦고 몸을 기댔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다. 십년.. 이십년을 족히 감수한 것 같다.
“최소한의 도리일지도 몰라.”
그것을 뻔히 지켜보던 준우 아저씨가 말했다. 과연 그럴까? 본능으로 움직이는 녀석이 그 짧은 순간에 우리를 배려할 여유가 있던건가? 몹시 배고픈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크아아아!”
이내 그것이 미끼였다는 것을 눈치챈 녀석들이 도로로 다시 뛰어와 거의 없어진 배신자를 보며 분노의 포효를 질러댔다. 씩씩거리며 동료들의 시체로 다가가는 녀석들. 그대로 쭈구려 앉아 동료의 시체를 뜯어먹기 시작한다. 아까 화를 내며 동료를 쫓던 녀석들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우리 모두 인상을 구겼다.
“쓰레기들이구만.. 정말.”
“그래도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겠죠. 뭐..”
10분정도가 지나 야식을 마친 녀석들은 그대로 몸을 일으켜 미련 없이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밴 쪽으로 오지 않고 주욱 이어진 고속도로를 누볐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었다.
“후아..”
저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긴장감이 한순간 풀려서인지 스르르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고맙다라는 표시였습니다.”
고요한 남자의 목소리.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본다. 어두운 밴 안에서 빛나는 남자의 붉은 눈.. 영락없는 녀석들과 같은 그것이다. 남자의 입이 고요히 움직였다.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겁니다.”
“저 녀석의 말을 알아 듣나?”
“느낌일 뿐입니다.”
“..괴물들도 그런 지성을 가졌나?”
준우 아저씨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서서히 진화합니다. 처음에는 본능으로 움직이다가 나중에는 생각을하고 의사소통을 하면서 움직이게 됩니다. 물론 인간의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전혀 하지 못하게 됩니다.”
“개처럼 으르렁거리거나 짖는다는 식으로 대처하는건가?”
“그렇습니다.”
“그럼 당신도 그렇게 된건가? 시간이 오래 지나서 그런 지성을 갖고 유창하게 말을 하게 된거 말이야.”
남자는 미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일어나보니 모든 괴물들을 통제하고 있었고, 인간인 상태와 다를바 없었습니다. 다만 신체적인 능력이 인간의 기준을 훨씬 넘어서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다. 인간인 상태와 다를게 없다.. 괴물이 점점 진화한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위험해질지도 몰랐다. 소름이 돋는다. 모든 생물은 진화하기 마련이지만 그게 이토록 빠를 줄은 몰랐다. 인간의 몸이기 때문인건가?
“그러고 보니.. 당신은 괴물일 때의 힘을 그대로 갖고 있더군?”
아저씨의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우 아저씨가 그 말을 받았다.
“어떻게 된거지?”
“그저.. 그렇게 원했기 때문입니다.”
“뭘..?”
“메시아를 지키게 해달라고 간절히 바랬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 준우 아저씨는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뭐야. 농담하지말라고. 그럼 괴물이 되고 안되고의 차이는 본인 의사와 관련이 있다는거냐?”
“그럴지도.”
준우 아저씨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의자에 몸을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 시덥지도 않은 말에 우리 모두 준우 아저씨와 같은 생각이었지만 과학자의 입장이었던 아저씨만은 달랐다.
“컨트롤을 할 수만 있다면..”
“....”
“이건 진보.. 진화라고 할 수 있어.”
“..진화요?”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두운 밴 안에서 아저씨의 두 눈이 반짝이는 것은 착각이었을까.
“저 남자 말마따나 본인 의지로 그것을 조종할 수 있게 된다면 진화라고 볼 수 있겠지.”
“형님.. 진화론을 두고 얘기하는거에요?”
“그게 얘기가 빠르겠군. 지금 같은 환경에서 살아 남으려면 괴물이 되는 입장이 더 편할지도 모르지. 먹이사슬이 깨지면서 괴물이 최상위로 올라갔다는 점을 보면 이해가 쉽게 되겠지.“
“‘환경에서 유리한 조건을 가진 생명체만이 살아남는다라..’ 흐음.”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던 인간마저 닥치는 대로 살육을 하는 녀석들. 저런 추한 모습이 과연 인류의 진화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환경에 유리한 조건을 가진거라면 괴물들의 상태가 딱 들어맞는다. 낮에는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다니다가 밤에는 괴물의 모습으로 돌아다닌다. 먹이감을 구하러 다니며 개체수를 서서히 늘린다.. 자연스레 인간들의 수는 줄어든다.
“그럼 우리 인간은 이대로 멸종하는건가요?”
“원래 약육강식의 세계야. 뚜렷한 대책이 없으면 그렇게 되겠지.”
“백신.. 한창 만들던 도중아니었나요?”
내 말에 아저씨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랬지.. 은혜를 통해 서서히 대량 생산에 들어가려는 찰나였어. 그러나 내가 그것을 막았지. 연구소에서 은혜를 빼낸 거야. 사실.. 은혜같은 케이스는 수많은 기간 동안 일하면서 단 한건이었어. 물론 이전의 데이터가 있긴 하지만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하늘에서 별따기지. 더군다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임상실험이 제대로 되겠나? 어려운 일이지.”
해결책이 거의 없다. 우린 지금 인류의 희망을 밴에 태우고 다니는 건지도 몰랐다. 은혜만 무사히 연구실로 갈 수 있다면.. 어쩌면 이 빌어먹을 상황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은혜는 이미 우리들의 마음 속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남도 아니고 우리의 가족 같은 일원이다. 대를 버리고 소를 선택하는가? 그게 정녕 옳은 선택인가? 마음 속에서 같은 질문을 해온다. 물어볼 것도 없이 대를 선택한다. 그러나.. 은혜는.. 은혜만은 안된다.
“다들 무슨 심정인지 이해해.”
아저씨 말에 우리 모두 침묵을 지켰다. 모두 나와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분명 무엇이 옳은 일이고 맞는 건지 다들 알고 있다. 하지만 선뜻 은혜를 다시 데려가고 싶지는 않다. 은혜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가 않다.
“메시아께서는 분명 악마를 구원해줄 구세주입니다.”
“알고 있어..”
“그러나 메시아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알고 있어.. 빌어먹을.”
남자는 곤히 잠든 은혜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쓰다 듬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조심스럽고 섬세해서 우리는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 어쩌면 남자의 말대로 은혜는 정말 메시아가 맞는 건지도 몰랐다. 백신..이라고도 불리겠지만 괴물 녀석들을 한 번에 치료할 수 있는 신적인 능력.. 메시아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왜 저 남자와 다른 신도들이 은혜를 그토록 떠받드는지 알 것 같다.
“일단 고비를 넘겼으니 쉬도록 하지. 녀석들이 올 것 같지는 않군..”
아저씨 말에 우리 모두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머리가 심난하다. 열어서는 안될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만 같다.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어린아이의 심정이 이런걸까. 하아.. 마음 속의 망설임이 점차 커져간다. 점차 지능을 갖고 진화를 한다면 녀석들과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는걸까. 평화적으로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없는걸까. 마음이 점차 무거워진다.
얼마나 잤을까. 저절로 눈이 떠진다. 뚫린 밴의 천장을 통해 빛이 보이는걸 보면 해가 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모두 일어났는지 밴 안에는 아무도 없고 옆문이 열려있다. 천천히 옆 좌석으로 이동해 밴에서 나온다. 어제 있었던 일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밴의 차체 여기저기에 붉게 굳은 핏방울들이 눈에 보인다.
햇빛이 따갑다. 한쪽 손으로 눈을 가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모두가 소총을 들고 폐차 안을 수색하고 있었다. 천천히 그 쪽으로 걸어간다.
“윽..”
뭔가 썩은 내가 난다. 아, 어제 그 시체.. 동료에 의해 처참히 개죽음을 맞이한 시체에서는 앙상한 뼈만 남아 있었다. 주위로 검게 물든 피와 작은 살덩이 조각들.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애쓰며 제일 앞에서 차를 뒤적거리는 동생에게 다가갔다.
“쓸만한거 있냐?”
“아니.”
동생은 내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는 듯 몸을 빼지 않은 상태 그대로 말했다. 앞좌석과 뒷좌석을 샅샅히 둘러보던 동생은 이내 차 문을 닫고서 한숨을 쉬었다.
“어제만큼의 작은 수확도 없어.”
“시간낭비하는거 아니야?”
“그래도 기름은 챙길 수 있으니까 뭐..”
동생이 밴의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에는 여러개의 말통이 있었는데 투명한 액체를 반 정도 담고 있었다. 꽤 되는 양이다. 전부 기름이라는건가?
“전에 성당에서 녀석들 족칠때 기름을 너무 많이 썼나봐. 그래서 지금 이렇게 조금씩 모아서 보충하고 있지. 이미 밴 안은 만땅이고 저건 따로 모은거야.”
“아아. 은혜는?”
“저기.”
동생이 가리킨 곳을 보니 꽤 먼 곳에서 가만히 서있는 은혜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언제나처럼 남자가 그림자같이 서있었다. 저기서 뭐하는거지? 은혜의 속을 알 리가 없는 나는 다른 차를 뒤적거리는 우민이 형에게 다가갔다. 형은 내 발소리를 듣고는 차안에서 몸을 뺐다. 덜렁거리는 팔 소매가 낯설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바로 움직이다니.. 과연 체력적으로 남달랐다.
“형. 몸은 어때?”
“그냥 그렇지 뭐. 이거나 좀 들어줘.”
우민이 형은 운전석에서 커다란 검은 비닐 봉투를 힘겹게 오른손으로 들어올렸다. 꽤 묵직해 보인다. 양손으로 받아든 나는 무거운 봉투 안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자동차 부품들이나 각종 수리 도구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걸 쓸데가 있나?
“이래 뵈도 정비 쪽 일도 조금 배워서 혹시 도움이 될까 하고 챙기는거야.”
“아..”
건네 받은 검은 봉투를 밴 쪽으로 옮기기로 했다. 우민이 형은 아무 말이 없었다. 딱히 나도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여서 밴 안에 봉투를 잘 넣고 아침식사 준비를 하기로 했다. 구석진 곳에 비치된 배낭 하나를 우민이 형에게 내밀었다.
“먹고 싶은거 꺼내.”
우민이 형은 그 자리에 앉아 양다리로 가방을 지탱하고 오른 손을 이용해 배낭 자크를 열었다. 뒤적거리며 하나둘 꺼내기 시작하는 우민이 형. 나도 그 옆에서 앉아 배낭 안에서 여러 가지 배를 채울 만한 것들을 꺼냈다. 통조림 과일. 사탕. 이온음료. 물이 전부다.
그제서야 할 일을 마친 모두가 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손이 비어있다. 그래도 상관 없다. 오늘 내로 안성시에 도착할거고 필요한 것들을 거기서 충분히 보충하면 된다. 밴쪽으로 다가온 아저씨들은 말통을 밴 위에 비치된 여행용 밧줄로 단단히 묶고서 우리가 차려 놓은 여러 가지 식품들을 손으로 집었다. 식사를 하려는 도중에 은혜와 남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1시간 좀 넘어서 안성에 도착할 것 같군.”
“거기서 최대한 챙기고 바로 떠나는게 좋겠군요.”
“그래야지.”
어제처럼의 아침식사 분위기는 아니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밴에 올랐다.
부우웅.
이내 빠른 속도로 출발하는 밴. 딱히 할말도 없는 우리들은 멍하니 창문만 바라보았다. 휙. 휙. 빠른 속도로 지나쳐 가는 폐차들과 꺼져버린 가로등이 전부다. 문득 앞으로에 대한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부산까지의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어림잡아도 2~3일은 걸릴 것 같다. 물론 어디까지나 무사히 살아있을 때의 얘기지만..
부아앙.
고속도로에 있는 장애물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막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밴의 속도를 마음껏 낼 수 있었다. 덕분에 1시간이 조금 안되어 안성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 입구에 걸린 커다란 표지판에 ‘환영합니다.’ 라는 문구가 왜 하나도 반갑지 않은지..
우선 생필품등을 챙겨야 했기 때문에 다른 쪽으로 새기 보다 바로 대형마트나 편의점으로 가는 것이 현명했다. 그것을 잘 아는 아저씨는 좌우로 갈라진 아파트 단지 보다는 커다란 시내가 있는 중앙길로 주욱 밴을 몰았다. 저번에 머물렀던 번화가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다. 고층 빌딩이 심심찮게 보이고 저 멀리 보이는 백화점이 여러 개가 눈에 들어온다. 그렇지만 저기까지 가기엔 너무 멀다.
부르르.
이내 밴을 세우는 아저씨. 하나둘씩 밴에서 내리기 시작한다. 소총과 배낭을 소지한 채로 ‘D/C마트’ 라는 곳 문 앞에 선 우리들은 먼저 유리 너머로 보이는 마트 안을 들여다봤다. 40~50평은 되보일까 하는 커다란 마트다. 1층으로 되어 있고 뒤쪽에 또 다른 문이 있다.
“괜찮군.”
그렇게 판단한 아저씨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랫동안 사람의 흔적을 받지 않은 마트에서 퀘퀘한 냄새와 뭔가 썩어들어가는 냄새가 났다. 그 냄새를 따라 우리들은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곧 냄새의 원인이 식품코너에 있는 말라비틀어진 과일들과 썩어가는 고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서로를 보며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비교적 유통기한이 긴 음식들을 택했다. 그 중 통조림은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것이여서 있는대로 챙겼다.
“참치. 햄. 또 뭐가 있더라..”
저번 통조림에 과일만 챙겨서 약간 입이 심심하던 차였다. 참치 캔의 종류별로 그대로 쓸어모아 배낭안에 두둑히 담고 평소 비싸서 먹지 못했던 비싼 햄 종류도 배낭 안에 쓸어 담았다. 꽤 묵직하다. 그러나 군 시절 어깨에 맸던 군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오.. 콘 샐러드?”
이것도 먹어보고 싶었던거다. 배낭을 열고 5개 정도 챙긴다. 이제 뭘 챙길까..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다들 여기저기 먹을 것들과 마실 것들을 챙기기 바쁘다. 그 중에서도 은혜는 태평스럽게 과자 봉지를 뜯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과자를 꺼내 입에 가져가 오물오물 씹는 은혜. 자기만 먹는게 미안한지 뒤에 남자에게도 건넨다. 남자는 공손히 받아 들고는 과자를 입에 넣었다.
“쇼를 해요. 쇼를..”
물론 은혜에게 한 말은 아니다. 10분 정도 지나고 어느 정도 챙긴 우리들은 아침을 대충 해결한 것을 여기에서 마무리하자고 했다. 그러자 준우 아저씨가 방실방실 웃으며 한곳으로 뛰어갔다. 동생도 다른 곳으로 가서 가스버너와 부탄가스를 가져왔다.
“뭐에 쓰려고?”
내 물음에 동생은 씨익 웃기만 할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와 아저씨는 콧노래를 부르며 다가오는 준우 아저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양 손안에 들린 투명한 비닐 봉지에는 붉은 고기들이 담겨져 있다.
“어?”
내 말에 준우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브이를 하고는 고기를 흔들어댔다.
“얼마만에 먹는 고기냐! 크하하핫!”
“아저씨 꽃등심이죠?”
동생의 은근한 어투에 준우 아저씨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듯 서로를 보며 씨익 웃고는 서둘러 세팅하기 시작했다. 불판은 따로 없어 생선을 굽는 그릴 같은 것으로 대신했다. 기름이 흐를 구멍을 대충 만들어 놓고 계산대 위에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치이익.
열이 바짝 가해진 그릴 위에 고기들을 얹자 빠르게 익어가기 시작했다.
“그거 상한거 아니에요?”
준우 아저씨는 검지 손가락을 좌우로 저으며 말했다.
“내가 직접 썰어온거야. 냉장고에 아직도 많더군.”
“아~”
오랜만에 먹는 고기라 그런지 다들 기대하는 눈치다. 계산대 근처에 있는 나무젓가락을 가져온 동생이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아, 가위가 없네. 나는 아까 봐두었던 생필품 코너에서 새 가위와 집게를 꺼내 준우 아저씨에게 건넸다. 준우 아저씨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게 미소를 짓고는 고기를 구웠다.
치이익.
점차 맛있는 냄새가 마트 안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밖을 보며 주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딱히 걱정할 거리는 없지만 조심해서 나쁠거 없으니까.. 서서히 붉은 빛을 잃어가며 갈색을 띄기 시작하는 고기들. 준우 아저씨는 요령 있게 가위와 집게를 이용해 고기들을 조각조각냈다.
서서히 익어가는 고기 냄새를 맡자 아까 먹었던 것들이 빠르게 소화가 되는 것 같다. 꼬르륵. 위장이 경련을 일으킨다. 어느 정도 고기가 구워지자 준우 아저씨는 고기 한 점을 들어 아저씨에게 먼저 권했다. 아저씨는 옅게 웃고는 고기를 받아 먹었다.
“맛있네.”
“먹자~”
그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정신없이 고기를 집어 먹기 시작했다. 따로 쌈장이나 상추 그런 것들은 필요가 없었다. 혀를 마비시킬 듯한 부드러운 육질과 맛이 오감을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우리가 열심히 고기를 먹을 동안에도 아저씨는 전처럼 은혜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고기를 비워낸 우리들은 다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뱃속에서는 아직 더 달라고 아우성을 쳐댄다. 콧노래를 부르며 고기를 굽는 준우 아저씨.
“그래도 이런 상황속에서 소소한 행복이라도 느낄 수 있다는게 좋은 것 같네요.”
동생의 말에 아저씨가 말했다.
“그렇지.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린 영원히 모르고 지냈을지도 몰라.”
“그게 다 남자라서 아쉽긴 하지만요.”
“하하하하하.”
준우 아저씨의 말에 마트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이런 기분을 언제까지나 느끼고 싶다. 비록 괴물들에 쫓겨 다니며 사는 신세에 지나지 않지만 살아 있는 순간을 감사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도우며 새롭게 시작을 하고 싶다. 과연 그게 순조롭게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딸랑. 딸랑.
마트 출입문을 열 때 나는 방울 소리에 우리들은 먹던 것을 멈추고 경직된 상태로 소총을 손에 들었다. 우민이 형은 계산대 아래로 기어들어가 바로 총을 쏠 자세를 취하고 나머지 우리들은 크게 놓여 있는 선반들 뒤에 적당히 은신했다. 냄새가 너무 퍼진 탓일까. 누군가가 마트로 들어왔다는 것은 우리들의 흔적을 발견했다는거다.
두근두근. 떨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게 위해 심호흡을 크게 한다. 나와 눈이 마주친 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는 우리들에게 수신호로 자신들이 먼저 나가겠다고 했다.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인다. 3.. 2.. 1. 아저씨들은 동시에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에 맞춰 우리 형제도 뒤를 따랐다.
“쏘.. 쏘지 마시오!”
거기에는 40대로 보이는 남자와 그의 딸로 보이는 소녀가 두려운 기색으로 우리를 보며 서있었다. 저 정도의 얼굴과 교복을 입고 있는거로 봐서 고등학생 같았다. 두 사람 겉으로는 감염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은혜에게서도 특별한 말이 없는걸 보니 정상인인것 같다. 우리는 부녀가 안심할 수 있도록 총을 내려 놓았다.
“어떻게 된겁니까?”
아저씨의 물음에 40대 남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그.. 그저 고기 냄새가 나길래 배고파서 나도 모르게 와봤소. 녀석들이 고기를 구워먹는다는 소리는 한 번도 본적도 들은 적이 없거든.. 분명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딸과 온 것이오.”
“..실례가 많았소.”
아저씨가 사과의 뜻으로 손을 내밀었다. 40대 남자도 그 손을 맞잡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간단한 통성명을 한 우리들은 아저씨와 딸에게 잘 익은 고기들을 내주었다. 한 점. 한 점. 제대로 씹지 않고 넘기는 것 같아서 괜히 마음이 안쓰러워졌다. 부녀의 이름은 이봉수와 이해인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 왔소?”
아저씨의 물음에 봉수 아저씨는 급하게 먹느라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저씨와 우리들은 차분히 그것을 기다려주었다. 이내 우리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느낀 봉수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뭐라고 하셨지요?”
“그간 어디서 지내왔소?”
그제서야 알아들은 봉수 아저씨는 한숨을 푹 쉬더니 말했다.
“저는 지하 물류 창고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업이 꽤 잘되는 편은 아니지만..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되지요. 그 일만 아니었어도..”
그 일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기 때문에 따로 부연 설명을 부탁하지 않았다. 봉수 아저씨는 계속 말을 이었다.
“밖은 정말 아수라장이였죠. 세상에 그런 괴물 놈들이 존재한다는게 믿기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무작정 하교하는 딸을 차에 태우고 지하 물류 창고로 무작정 숨었죠. 마누라 생사는 아직까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며칠을 전전긍긍 하면서 물류 창고로 통해 반입 반출되는 음식들로 하루하루를 버텼어요. 라디오를 통해 미약하게나마 세상 일에 대해 듣게 되었죠. 처참했어요.. 그러다 먹을 거리가 점점 떨어지자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온 겁니다.”
“..그러셨군요.”
“당신들은 어디로 가는 중이었습니까? 밴이 보이던데..”
봉수 아저씨의 말에 우리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쉽게 꺼내기 힘든 말인가? 나는 봉수 아저씨에게 있는 그대로 말했다.
“부산에 생존자를 태우러 오는 유람선이 온다고 해서 그리로 가고 있어요.”
“생존자요?”
그 말에 부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리의 표정에서 한치의 거짓도 읽을 수 없자 봉수 아저씨는 두 눈을 글썽거리며 우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뜻밖의 태도에 우리들은 더 당혹스러워졌다.
“제발 데려가주십시오. 여기서 하루하루를 공포에 쩔어 사는 것보다 여러분들과 동행하는게 백배 천배는 나을 것 같아요. 제발 데려가주십시오.”
아저씨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예상 밖의 인원이 합류하게 된다면 여러모로 고려할 것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이렇게 멀쩡한 두 사람을 두고 우리끼리만 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같은 생존자끼리 돕고 도와야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아저씨.. 밴 뒷좌석에 두 자리가 남긴 하잖아요.”
내 말에 아저씨는 한숨을 쉬고 봉수 아저씨에게 물었다.
“총 같은거 다룰 줄 아시오?”
“..모릅니다.”
“저 활 같은건 쏠 줄 알아요..”
“그.. 그래요. 해인이가 보기에는 이래도 양궁 선수에요.”
봉수 아저씨의 말에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밴에 안쓰던 석궁이 있으니 그걸로 감각을 익히도록 해. 그럼 빨리 먹고 일어납시다. 시간이 얼마 없소.”
봉수 아저씨는 눈물을 훔치면서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우리들은 다시 흩어져 서로 찾았던 물건들을 조금씩 보충하기로 했다. 인원수가 늘어났으니 당연한 일이다. 5분만에 다시 챙긴 우리들은 밴의 넓은 트렁크 쪽에 배낭을 차곡차곡 쌓았다. 봉수 아저씨와 해인이는 가장 뒷좌석에 앉아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 감정을 모를리 없는 우리들은 차례대로 밴에 올랐다. 이내 서서히 출발하는 밴. 부녀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그간 뜬눈으로 밤을 지새왔던 것 같다.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한 준우 아저씨가 아저씨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잘한걸까요.”
“생존자끼리 도와야하니.. 별 수 없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침묵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하루 빨리 부산으로 가서 유람선에 타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찼다. 그리고 아빠 엄마의 멀쩡한 모습도 보고 싶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조금만..
뒷좌석에 잠들어 있는 부녀를 보자 문득 병원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3일.. 4일?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아주 오래전의 겪은 일처럼 희미해져간다. 괴물로 변한 자식을 끝까지 지키고 싶어 했던 창민 아저씨의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이 봉수 아저씨와 자꾸 겹쳐진다. 이번엔 두 부녀를 지켜주고 싶다. 두 번 다시 그런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다.
챙그랑.
상념에 잠기는 것도 잠시. 유리가 깨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우리들은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뒤다. 트렁크 쪽에 어른 주먹만한 크기의 구멍이 나있었는데 그 충격으로 인해 뚫린 구멍 근처의 유리들이 금이 가있다.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돌멩이를 손에 쥐고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누구지? 누가 우리들을 공격한거지?
“제길, 백미러로 뭔가 희끗 보이는가 싶더니 이거였군.”
아저씨의 표정이 좋지 않다. 확실한건 누군가가 우리에게 적의를 갖고 있다는거다.
“온다..”
조용히 내뱉은 은혜의 말로 상황이 확실해졌다. 주위에 녀석들이 있고 우리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낮인데..? 녀석들이 잠들 시간이 아닌가? 우리가 아까.. 그래. 마트에서 고기를 굽는 것이 영 좋은 선택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 그 냄새가 멀리 퍼져 녀석들을 깨운것일 수도 있다. 고기 몇 점의 대가가 이정도라니..
“제길..”
창문을 통해 주변을 살핀다. 좁고 어두운 골목길들이 유독 많이 보인다. 상가 건물들 사이사이 틈틈이 위치하고 있는 골목길. 낮이라도 녀석들이 수월하게는 아니더라도 힘들이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이다.
“!!”
뭔가가 내 앞으로 날아온다. 주먹만한.. 딱딱해 보이는 것..
퍼억.
다행히 창문이 닫혀 있는 상태라 내게 타격을 주지 않았지만 이대로 충격을 계속 받는다면 어떻게 될지 장담 할 수 없다. 주욱 늘어진 상가 길이 유독 길게만 보인다. 그렇다면 후진으로..? 아니다. 이 상황에서 후진은 오히려 상황만 악화될 뿐이다. 골목 여기저기서 대기하고 있던 녀석들이 그대로 달라붙을지도 모른다.
“도구를 사용하다니.. 미치고 팔짝 뛰겠군.”
준우 아저씨 말에 번개처럼 뭔가가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남자가 했던말.. 녀석들은 점차 진화하고 있다고. 설마 그런게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건가? 어서 빠져나가야 한다. 부우웅. 밴의 속도가 점차 올라간다. 길 앞에 폐차가 되어가는 것들만 제외하고는 한산한 편이다. 어떻게든 버티면 된다.
텅. 텅. 텅. 텅.
시간이 지날수록 녀석들의 공격이 거세져간다. 언제까지고 버틸 것 같던 창문도 서서히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큰일이다. 뭔가 대책을 취해야한다. 돌.. 받아낼만한게 없을까.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지이잉. 창문을 내리고 웃옷을 벗는다. 두툼하게 말아 돌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향한다.
쉬이익.
날아온다. 침착해. 받으면 되는거야.
텁.
생각보다 쉽게 잡힌다. 내 성공을 시작으로 모두가 웃옷을 벗고 그것을 따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녀석들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도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가끔 예상 궤도를 크게 벗어나거나 크기에 따라 다르게 날아오는 돌들을 완전히 막아내진 못했다.
퍼억.
“크윽..”
명치 아래 쪽에 전해지는 충격에 잠시 멍해진다. 정면으로 맞았더라면 충격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쿠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웃옷 덕분에 버틸만했다. 빌어먹을 놈들.. 두고보자고. 빠르게 좌석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돌을 꽈악 쥐고는 고개를 살짝 내민다. 다음 골목길까지 거리.. 3초 내외다.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망할 자식들.
휘익.
차 안이라 큰 동작으로 던지지 못하지만 돌멩이를 골목길 사이로 던지는 거로는 충분하다. 강하지도 빠르지도 않지만 어둠 속에서 방심하고 있는 녀석에게는 충분히 타격을 줄 수 있다.
“키엑!”
“오예!”
고통스러워 하는 녀석의 신음 소리. 성공이다. 내 공격을 시작으로 모두가 돌멩이들을 골목길 사이사이로 던진다. 흡사 겨울에 하는 눈싸움을 보는 것 같아 이게 생사를 건 전투인지 착각이 든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다들 표정이 진지하다.
퍼억.
그러나 항상 상황이 좋게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우민이 형과 봉수 아저씨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줄줄줄. 양손을 타고 붉은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제길.. 아직 멀은건가.
“조금만 버텨!”
아저씨의 말을 듣기라도 했는지 인간의 모습을 한 녀석들이 골목길에서 우르르 나와 우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대로 있으면 밴과 정면으로 출동한다. 녀석들은 무사하지 못하겠지만 잘못하면 밴이 다른 방향으로 틀어지거나 심하면 전복이 될 수가 있다. 최악의 사태를 막아야한다.
“빌어먹을 놈들이!”
어느새 소총을 장전한 준우 아저씨는 밴 천장을 가리고 있던 비닐을 걷고 내고서 상체를 완전히 내밀었다. 녀석들도 뜻밖의 행동에 당황했는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준우 아저씨의 총에는 자비가 없었다.
두두두두.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닌 총알들이 녀석들의 몸을 그대로 꿰뚫는다. 한번에 즉사하는 놈은 거의 없었지만 대부분 치명상을 입은 상태다. 녀석들은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지르며 다시 골목길로 들어가버린다. 녀석들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공격은 멈춘게 아니었다.
텅. 텅. 텅. 텅.
준우 아저씨는 골목길 사이사이에 총알 몇발을 녀석들에게 선물해주었다. 그러나 양 옆을 다 맡기엔 부족하다. 내가 거들어줘야 한다. 서둘러 소총을 준비하고 준우 아저씨 옆에 선다.
“넌 오른쪽! 난 왼쪽!”
두두. 두두. 두두.
골목길을 지나가는 타이밍에 맞춰 2~3발씩 총알을 날렸다. 제대로 공격다운 공격을 해보지도 못하고 픽픽 쓰러지는 녀석들. 이대로만 간다면 무사히 상가로를 벗어날 수 있겠다.
“크아아!”
“크우!”
괴물의 포효소리. 설마하는 심정으로 뒤를 돌아본다.
“역시나.. 정말 끈질기구만 제길.”
동료들의 시체를 뜯어먹는 녀석들이 괴물로 변해 우리 차 뒤를 맹렬히 쫓고 있는게 시야에 가득찬다. 정말 저놈의 집념 하나는 알아주어야 한다. 밴의 속도가 호락호락하지 않아 녀석들이 쫓는게 무리가 있겠지만 그래도 나중을 대비해 싹을 완전히 잘라둬야 한다.
철컥.
소총을 다시 녀석들에게 겨눈다. 방금전 동료들을 죽인 무기를 보고도 녀석들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다. 공포보다 본능이 더 큰 탓이다. 나와 준우 아저씨를 먹이로 인식한 녀석들의 눈이 붉게 빛난다. 너희들에게 잡힐까보냐. 그럴 수 없지.
두두두두.
하나둘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녀석들. 한 번에 절명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녀석들은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골목길에서 수많은 녀석들이 뛰쳐나와 동료들의 시체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과연 녀석들의 목적은 우리였을까 동료들이었을까.
“크아아아!”
고통스러워하며 동료들을 쳐내며 도망치려고 하는 녀석들. 그러나 사방이 막혀 있는 상태에서 도망갈 수가 없었다. 이내 허공에 떠오르는 녀석들의 사지. 그리고 목. 비명 소리가 점차 줄어만 간다. 그나마 다행인건 녀석들이 먹을 것에 정신이 팔려 우리를 눈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아앙.
완전히 상가로를 벗어난 밴은 그대로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10분.. 20분. 30분 정도를 달린 끝에 밴을 멈춰 세운 아저씨는 운전석에서 내려 우민이 형과 봉수 아저씨의 상태를 살폈다. 심하지는 않지만 살이 찢어진 것 같았다. 우민이 형은 워낙 경험이 많고 젊은 몸을 가져서인지 피가 서서히 멎기 시작했지만 봉수 아저씨는 그러지 못했다.
꾸물꾸물 나오는 핏물들을 손으로 받아내는 모습이 안쓰러워보였다. 일단 우리들은 밴의 옆문을 열고 우민이 형과 봉수 아저씨를 바닥에 눕게 했다.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는 거즈에 알콜을 잔뜩 묻히고는 두 사람의 상처 부위에 그대로 갖다 댔다.
“끄으으윽.”
상당히 고통스러운지 신음 소리를 흘리는 봉수 아저씨. 그 반면에 우민이 형은 살짝 인상만 찡그릴 뿐이다.
“이 정도는 아픈 축에도 못끼죠.”
장난스레 던지는 우민이 형 말에 우리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런 농담을 던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정신력을 가졌다라는 증거다. 반면 봉수 아저씨는 우민이 형과 다른 생활에서 자란 평범한 일반인이다. 이런 경험이 거의 전무할 것이다.
“대충 매면 되겠네.”
반창고 하나를 이마에 붙여주고 다른 거즈로 상처 부위를 중심적으로 둘둘 마는 것으로 우민이 형의 치료는 끝났다. 허나 봉수 아저씨의 상처는 바늘로 꼬매야 할 것 같았다. 상처 부위가 꽤 벌어져 피가 멎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벌떡 일어난 우민이 형은 봉수 아저씨의 상처를 유심히 살피더니 구급 상자에서 실과 바늘을 꺼냈다. 그제서야 자신에게 한팔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우민이 형은 허탈한 얼굴로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안타깝지만 우민이 형을 위로해줄 시간이 없다. 녀석들이 피 냄새를 맡고 몰려올 수도 있으니 빨리 치료를 하고 여기를 떠야한다. 아저씨는 우민이 형에게서 실과 바늘을 낚아채듯 가져와 봉수 아저씨의 상처 부위를 서서히 봉합하기 시작했다.
“끄.. 끄윽.”
마취도 없이 이루어지는 시술이라 봉수 아저씨는 상당히 고통스러워했다. 곁에서 지켜보는 해인이는 아예 울기 시작했다.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데 저렇게 슬퍼할 이유가 있을까 했지만 이제 겨우 고등학생의 나이로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에 딱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해.. 해인아. 아빠 괜찮으니까.. 차에 먼저 타있으렴.”
봉수 아저씨 말에 해인이는 고개를 저으며 그 자리를 지켰다. 우리도 그것을 말리지 않았다. 앞으로를 살아가려면 이보다 더한 것들을 보고 느껴야만 하기 때문이다. 5분.. 10분 정도가 지나자 완전히 봉합을 마친 아저씨는 서둘러 구급 상자를 챙겼다.
“생수 가져와 손에 묻은 핏물들을 씻어야 돼.”
동생이 얼른 밴 안으로 뛰어가 생수 두통을 가져왔다. 아저씨는 그것을 아낌없이 봉수 아저씨 상처 부위에 쏟으며 손으로 살살 닦아 내었다. 완전히 핏기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아저씨는 자신의 손도 마저 닦았다. 그리고 바닥에 아직 마르지 않은 핏방울 위에 물을 끼얹어 그 흔적을 없애기 시작했다.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자 우리는 서둘러 밴에 올랐다. 창문 여기저기 균열이 가있어 걱정되긴 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변변찮은 차를 구하는 것 역시 힘들다.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면서 결정을 해야 할 것 같다.
부우웅.
다시 출발하는 밴. 준우 아저씨는 밴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시트나 바닥에 피들이 너무 많이 묻어 있어. 차를 바꿔야겠는걸..”
이 인원을 모조리 수용할 수 있는 차가 있을까. 아니면 차를 나눠서 가야하는걸까. 고속도로에 널린게 차라고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전력을 분산하면 오히려 악화가 될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아저씨는 묵묵히 밴을 몰았다. 준우 아저씨도 자신의 소총을 들고 묵묵히 점검을 하기 시작했다.
“흐으윽.”
여전히 들리는 해인이의 울음 소리. 봉수 아저씨는 계속 같은 말로 해인이를 안심시켜주는 말들을 했다. 나도 처음에 저랬을까. 괴물을 처음 발견하고 도망치던 날.. 동생과 나는 지금의 해인이처럼 허약했었나? 고개를 돌려 동생의 옆을 본다.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창문 밖을 바라보는 동생.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다.
어릴적부터 우린 다른 형제들과 다르게 유독 우애가 돈독했다. 일란성 쌍둥이라는 점 때문인지 서로 말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무엇을 싫어하고 꺼려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내가 가는 곳에 늘 동생이 있어야 안심이 되었고 동생이 가는 곳에 내가 가야만 안심이 되었다. 마치 바늘과 실 같은.. 서로를 꼭 곁에 두고 봐야만 위안을 삼았던 것 같다. 희한한 것은 나와 동생 둘이 찍은 사진이 없다는 거다. 어릴 적에 그렇게 많이 붙어 다니면서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우리 둘의 사진을 한 번도 찍어준 적이 없다.
‘네가 형을 잘 지켜줘야 해.’
항상 같은 말. 주입시키듯 동생에게 말하는 부모님. 왜? 굳이 동생이 나를 지켜줘야 하는걸까. 내가 지키면 안되는 걸까. 유치원을 같이 다닐 때 아침마다 항상 그 말을 동생에게 하곤 했었다. 그 때마다 동생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었다. 그 말을 매일 들어서인지 동생은 나에 관한 일들을 자신의 일보다 우선시 했고 궃은 일도 도맡아 했었다. 학창 시절..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에도 어김없이 나타나 녀석들에게 주먹을 선사해주던 동생.
‘니가 애새끼냐?’
그런 말들로 항상 위기에서 나를 구해준 동생. 비슷한 신체 조건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유독 뭐든면에서 월등했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노래면 노래. 뭣 하나 빠지지 않는 축복 받은 능력을 갖고 태어난 것 같다. 당연히 동생은 학교내에서도 이슈거리가 되었고 그만큼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나는 어떤가? 평범한데다 공부도 어중간하고 운동 싫어하고 노래도 못한다. 여자친구? 여지껏 한 번 사귀어 온게 전부다. 그래서 유독 열등감이 심했다. 나와 동생 사이를 이간질하는 놈들 때문에 학창 시절 동생과 사이가 틀어졌었다. 동생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동생에게 신경질적으로 대하고 화풀이를 해댔다.
‘....’
그럴 때마다 아무 소리 없이 모든 것을 받아주던 동생. 왜.. 왜, 그랬던 것일까. 나 때문에 같이 놀림을 당해도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었던 동생. 그럴 때마다 동생의 얼굴은 차가운 얼음 같아서 나조차 말을 걸기가 힘들었었다. 보잘것 없는 내 인생의 반을 그렇게 보내 왔었다. 부모님은 내게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매일 동생에게 ‘형을 지켜주거라.’라고 말한 걸까.
빛과 어둠의 인생이라는게 바로 이런 꼴을 두고 얘기하는 것일까. 다행히 서서히 생각이 많아짐에 따라 동생을 이해하게 되었고 내 자신도 이해하는 단계가 오자 우리 사이는 다시 전처럼 돌아갈 수 있었지만 학창시절의 트라우마는 여전히 가슴에 새겨진 성흔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모든 상황 속에서 냉정을 유지하며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동생과 다르게 버둥거리는 면이 많은 나. 과연 우리는 형제가 맞는 걸까.
부우웅.
고속도로를 누비는 밴의 소리만 가득하다. 밴 천장을 통해 하늘을 보니 늦은 오후에 접어들고 있다. 곧 해가 저물거라는 신호다. 얼마 못가 밴을 세운 아저씨는 저녁을 먹고 다른 차를 알아보자고 했다. 그 말대로 지금 밴의 상태는 영 말이 아니다. 처음 우두머리의 공격에서 무사히 도망치게 해줄 때에도 이렇게 험한 꼴은 아니었다.
군데군데 푹푹 파이고 창문에는 작은 균열들이 일어나 있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다. 다행히 고속도로에는 주인을 잃은 차들이 많은 편이어서 우리의 선택폭은 넓은 편이었다. 배낭에서 각자 먹을 것들을 꺼내 고속도로 한복판에 앉아 먹기 시작한다.
“상처는 괜찮으시오?”
아저씨가 묻자 봉수 아저씨는 미약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색이 별로 좋지 않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것 같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해인이에게 말했다.
“해인양도 슬슬 석궁 다루는 법을 알아야겠어. 아까도 보았지?”
그 상황을 그대로 겪은 해인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상황이 기억나는지 해인이가 몸을 미약하게 떨었다. 평범한 날들이었다면 단순히 등하교를 하면서 공부만 하는 학생이었을텐데..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된건지..
“그러고 보니 해인이도 미인이네 남자 친구는 있어?”
우울한 분위기를 전환시키려는 듯 준우 아저씨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 말에 해인이는 볼을 붉히며 ‘있다.’라고 대답했으나 곧 이런 상황을 직시 했는지 우울한 얼굴이 되었다. 오히려 반감의 효과를 가져오자 준우 아저씨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 모습에 봉수 아저씨는 너털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저희들을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
그 때 동생의 눈이 매섭게 반짝였다. 팔꿈치로 준우 아저씨의 옆구리를 쿡 찌르는 동생.
“아저씨. 왜 해인이가 남자친구 있다고 하니까 실망한 표정을 지었죠?”
“아니, 이자식이? 찰나의 순간에 어떻게 그걸?”
“큰일 날 아저씨네 범죄라구요. 범죄.”
“허허허허.”
“하하하하.”
다행히 두 사람 덕에 우울한 분위기가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뒷정리를 하고 다시 밴에 올랐다. 천천히 밴을 몰며 주인을 잃은 차들을 물색하기 시작한다. 8~10명은 충분히 들어갈만한 차를 구해야 한다. 지금 타고 있는 밴과 같은 모델이 있으면 좋겠지만 항상 무언가를 찾을 때마다 안보이는게 세상의 원칙이라도 되는 것처럼 적당한 차가 보이지 않는다.
“흐음..”
마땅한 차가 보이지 않는다. 30분이 훌쩍 지났건만 전부 승용차거나 중형차 뿐이다. 평소에는 길만 다녀도 잘 보이던 밴이나 대형차들이 왜 이렇게 안 보이는걸까.
“저거 어때요?”
동생의 말에 우리는 일제히 동생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고속도로 반대편에 주차되어 있는 커다란 대형버스가 눈에 들어온다. 서서히 밴을 멈추고 일제히 내린 우리들은 소총을 들고 버스로 접근했다. ‘행운관광’이라고 쓰여진 관광버스다. 빙 돌면서 대충 겉면을 훑어 본다.
“외견상으로는 쓸만하겠어.”
외견상으로는 딱 좋은 조건을 갖춘 버스. 창문의 위치도 상당히 높아 아까와 같은 공격이 오더라도 완벽히는 아니지만 높은 차체 때문에 잘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고속도로 위주로 운행을 할거니까 높이는 크게 상관할 것이 아니다. 그럼 중요한건 내부다. 우리는 버스 출입구 쪽으로 서서히 걸어갔다.
“이거 열줄 아는 사람 있나?”
굳게 닫혀 있는 문을 발로 툭툭 차며 아저씨가 말했다. 모두 대답이 없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버스를 기웃거리는 아저씨. 그 때 봉수 아저씨가 슬쩍 나서서 버스 앞 부분에 있는 본래트 부분을 열더니 이것저것 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느 한 부분을 죽 잡아 당기더니 그대로 버스 문을 옆으로 밀었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스르르 열리는 버스 문. 아저씨는 봉수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먼저 버스에 올랐다. 그 뒤를 준우 아저씨 우민이 형이 오르고 우리 형제들은 주위를 경계하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저씨들은 죽어버린 사람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하나둘 빠져 나오는 사람들의 눈과 코. 입에 구더기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우욱.”
역겨운 냄새와 보기 흉한 광경에 해인이는 고개를 돌리고 헛구역질을 해댄다. 봉수 아저씨는 해인이를 부축하면서 좀 떨어진 곳으로 발을 옮겼다.
“다 자살한 것 같아.”
마지막 시체를 끌어낸 우민이 형이 그렇게 말했다. 모두의 손목에 자해를 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버틸 수 없는 현실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인가.. 절로 분위기가 엄숙해진다.
“일단 쓸만한 것 같으니 정리를 좀 해야겠어.”
아저씨는 버스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꽤 좋은 버스인지 한 번의 시동으로 엔진이 크게 울리며 버스 차체가 미세하기 흔들렸다.
부르르르.
이것저것 만져보며 앞문이 잘 닫히는지 확인한 아저씨는 버스 위에 달린 문을 열고 위로 올라와 전방을 살폈다. 남은 우리들은 싸늘히 식은 시체들을 버스와 최대한 멀리 좌우로 깔린 풀들 위로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녀석들은 분명 여기에 모일 것이다. 최대한 이곳과 멀어져야만 한다. 다시 버스로 돌아간다.
우선 봉수 아저씨와 해인이를 제외하고 버스에 올라 굳어버린 핏물들을 닦아내기로 했다. 좌석 곳곳에 굳을 대로 굳어져 잘 닦여지지 않는 핏물들. 운전석에 놓인 티슈를 이용해 정수기의 뜨거운 물을 받아 천천히 지워나가기 시작한다. 아직 버스 안에는 특유의 역한 냄새와 파리들이 꽤 많이 보인다. 준우 아저씨는 손짓을 해가며 파리들을 천천히 밖으로 내쫓기 시작한다.
“훠이.”
녀석들도 자신들의 상황을 깨달았는지 미련 없이 버스를 떠나 시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날아간다. 파리는 해결 됐지만 비위가 약한 해인이에게는 이 냄새를 버티기가 힘들 것 같다. 두리번 거리며 버스 천장 수납 공간을 뒤지자 방향제가 눈에 들어왔다.
칙. 칙. 칙.
버스 내부 곳곳에 방향제를 뿌리고 창문을 열 수 있는 곳은 모조리 열었다. 20~30분 정도가 지나자 버스의 상태가 꽤 말끔해졌다. 이 정도면 충분히 쓸 수 있겠다. 우리들은 모두 버스에서 내렸다. 준우 아저씨는 밴 쪽으로 빠르게 뛰어가 밴을 몰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모든 짐들을 버스에 옮기기 위해서다.
버스의 옆면. 물건들을 싣고 다니는 곳을 열어 여러 가지 물건들을 꺼냈다. 관광 여행을 가던 도중이었는지 술과 음식들이 가득했다. 마르고 포장된 음식들만 챙기고 나머지는 죄다 버린다. 술은 우리의 여행에 하등 쓸모 없는 것이다.
부우웅.
어느새 버스 쪽으로 다가온 밴. 우리 모두 밴의 물건들을 모조리 버스 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대형버스라 그런지 수납 공간이 상당히 넓어서 좋았다. 칸도 여러개라서 분류도 쉬웠다. 먹을 것들과 몇 개의 옷 종류. 구급상자나 공구함. 그리고 기름이 담긴 말통들을 각각 공간에 넣고 모두 버스에 올랐다.
“괜찮니?”
봉수 아저씨가 해인이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딸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신경이 쓰이는 것 같다. 해인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은 최대한 앞 좌석에 앉았다. 딱히 이유는 없지만 이렇게 넓은 버스 안에서 띄엄띄엄 앉아 가는 것도 영 찜찜했다. 물론 떨어져 앉는 편이 녀석들의 동태를 살피는데는 좋겠지만 아직 녀석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할 시각은 아니다.
부르릉.
언제나 그랬듯 아저씨가 버스를 몰았다. 처음 접하는 거라고 했지만 몇 번 핸들을 잡아보더니 금방 익숙해진 듯 한다. 하긴.. 고속도로에 장애가 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괴물들을 제외하고는 마음대로 운전을 해도 되기 때문에 금방 익숙해질 것 같다. 준우 아저씨는 의자를 뒤로 길게 젖히며 말했다.
“탑승감이 다른데? 편하고 좋네.”
그 옆에 있던 우민이 형도 의자를 젖히며 말했다.
“이거 정말 여행가는 기분이네요.”
“맨날 이렇게 편하게 갔으면 좋겠다.”
관광버스 안은 상당히 편했다. 천장 위에 비치된 서랍 안에는 군것질거리가 가득했고 정수기에는 꽉 찬 물과 예비용으로 하나의 물통이 더 있었다. 밴을 버리고 버스로 옮겨 탄 선택은 정말 잘한 일인 것 같다. 물론 오늘 밤을 무사히 지나야겠지만..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거의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몸을 뒤로 돌려 우리가 지나 왔었던 길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아 두기로 한다. 그동안 우리의 몸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낸 밴이 나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비록 차라고 하지만 저 녀석 덕에 많은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고맙다. 잘 있어.”
반짝반짝. 노을빛에 빛나는 밴의 유리창이 빛난다. ‘잘가.’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단순한 느낌일까. 다시 창문을 닫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이 특유의 느낌이 이제는 편안하다. 서서히.. 그리고 확실히 몸이 적응을 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우르릉.
밴의 마음을 타일러주기라도 하듯 하늘에서 번개가 치기 시작한다. 낮고 멀리 퍼지는 소리에 우리들의 어깨가 절로 움츠려들었다. 날씨 예보를 보거나 들을 수가 없으니 대처를 완벽히 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 아쉬운 점이긴 하다만 차갑게 내리는 비 때문에 녀석들의 활동이 뜸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툭. 툭.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빗물이 버스 천장을 때리기 시작한다. 이윽고 후두두둑 하면서 맹렬한 기세로 비가 내린다. 버스를 천천히 멈춰 세운 아저씨는 시동을 끄고는 창문을 통해 내리는 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콰르릉.
엄청난 소음과 함께 하늘을 찢을 기세로 내리치는 천둥. 흰색의 빛이 저 멀리서 빛난다. 평소와 같은 밤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기 시작한다. 괜히 소총의 손잡이 부분을 꽈악 쥔다. 쉴새 없이 때려대는 빗방울들과 고막을 찢는 듯한 천둥의 소리. 아무래도 오늘 일찍 잠들기에는 틀린 것 같다.
비 덕분인지 해가 완전히 보이지 않는다. 19시가 조금 넘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밖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졌다. 우리는 초조한 마음을 달래며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드문드문 보이는 폐차들과 주위로 넓게 이어진 고속도로 그리고 평지. 어두운 밤 거리에 대항하듯 서서히 가로등의 불빛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무서운 얘기나 할까?”
준우 아저씨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무서운 얘기라니.. 그래도 상관없는지 준우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GOP에서 근무 할 때 얘기야.. 순찰식으로 경계를 교대하는 식이지. 총 10명의 교대 병사들이 있었고 그 앞에는 소대장이 인솔하고 있었지. 어두운 밤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거야. 은근 걱정이 된 소대장은 뒤에 병사들이 잘 걷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30분 단위로 걸음을 멈추고 뒤로 번호를 하게 했지.”
“그래서요?”
어느새 흥미를 가진 동생이 준우 아저씨에게 완전히 빠져들었다. 딱히 시간을 보낼 것도 없는 우리들도 그 이야기에 점차 집중했다.
“처음엔 문제 없었어. 10번까지 그대로 이어졌지. 소대장은 안심하고 또 걸어갔어. 첫 번째 초소와 교대를 해줬지. 그리고 30분 정도를 걸어가서 번호를 시켰어. 역시 이번에도 이상이 없었어. 다시 30분을 걸어가고 교대를 해주고.. 다시 번호를 시켰지. 근데 번호가 9번까지만 하고 10번이 이어지지 않는거야. 소대장은 이상하게 여기고 9번을 외친 병사에게 물었지. 뒤에 오는 놈은 뭔데 대답 안하냐고. 그러니까 9번이 그러는거야. 그 병사가 지금 목이 다쳤다고. 소대장은 그런가부다 하고 다시 걸었어.”
“....”
“다시 30분.. 번호를 시켰지. 근데 이번에는 8번까지만 하는거야. 열받는거지. 병사들이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한 소대장은 8번 병사에게 물었어. 마찬가지 대답이었지. 소대장은 이를 바득바득갈면서 돌아가서 얼차려를 주겠다고 결심했어. 다시 교대를 해주고 30분이 지난후.. 번호를 시켰어. 이번엔 5번까지 말하는거야. 소대장은 어디까지 가나 보자는 식으로 주욱 갔지. 주둔지에 거의 돌아갈 때 즈음 다시 번호를 시켰어. 3번. 그러는거야. 그때 소대장은 뭔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한거야. 아무리 목이 아파도 그렇지 7명이 넘게 대답을 못할 리가 없잖아?”
“그렇죠..”
“더군다나 병사들의 목소리가 익히 듣던 목소리가 아니었어. 소대장은 슬슬 걱정을 지나 겁이 나기 시작했어. 차마 뒤를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는거야. 다시 걷기 시작한 소대장은 번호를 외치라고 말했어. 1번. 그러는거야. 바로 뒤잖아? 이 가까이 있는 병사가 유독 소대장과 친하게 지냈었는데 그 녀석 목소리가 아닌거야. 덜컥 겁이난 소대장은 그대로 몸을 돌려 총을 닥치는대로 난사했지.”
“....”
“5분정도 난사를 하자 후환이 두려운 소대장은 어떻게 할까 고민했어. 근데 주둔지 쪽에서 총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막 뛰어오더래. 소대장은 거의 포기 심정으로 최소 죽인 녀석들 얼굴을 보려고 랜턴을 비췄지. 근데!”
우르릉.
타이밍이 절묘하게 번개 소리가 준우 아저씨를 도와주었다. 덕분에 우리들은 헛바람을 들이킬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아저씨와 이 소위는 무덤덤하게 듣고 있을 뿐이다. 은혜와 남자는 말할 것도 없다.
“그게 전부 북한군이었던거야. 차례차례 한명씩 병사들의 목을 따면서 소대장의 뒤를 따랐던거지. 소름 돋지 않냐? 으으으.”
몸을 부르르 떨며 정수기의 물을 한 번에 들이키는 준우 아저씨. 뭔가 맥이 빠지는 것이 느껴진다. 툭. 툭. 툭. 오히려 버스 위를 때리는 빗소리가 더 무서웠다. 그 시작으로 봉수 아저씨도 장난기가 섞인 얼굴로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열심히 경청하던 중에 아저씨가 봉수 아저씨를 중지 시켰다. 검지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키며 버스 앞 창문 쪽에 시선을 주었다. 일렁거리는 붉은 불빛들. 녀석들이다. 다행히 저번처럼 대규모의 수가 아닌 꽤 소규모에 속하는 불빛들이다. 어제와 비슷한 형식이다. 10마리? 조금 넘나? 그 정도의 불빛이 고속도로의 끝 부분부터 반짝거리며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조용히 있으면 될거야..”
알고 있지만 초조해 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소총을 더 꽈악 쥐고 앞을 노려본다. 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 뒤를 살핀다. 봉수 아저씨는 덜덜 떠는 해인이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작은 목소리로 ‘괜찮아.’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서서히 다가오는 녀석들. 10미터 안팎이다. 아저씨는 봉수 아저씨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봉수 아저씨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꿀꺽. 긴장되는 순간이다. 안타깝게도 녀석들의 행동은 날씨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듯 하다. 굵은 빗줄기를 뚫으며 걸어다니는 녀석들의 모습은 정말 지옥에서나 볼 법한 악귀들과 하등 다를게 없어 보인다.
“크르르.”
녀석들의 특유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한 마리씩. 한 마리씩 버스 옆을 지나쳐간다. 그 중 한 마리가 유독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버스의 앞을 이리저리 훑어 보기 시작한다. 우리는 몸을 최대한 뒤로 빼 녀석이 조금이라도 눈치 챌 수 있는 꺼리를 제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우르르릉.
하늘에서 다시 번개소리가 크게 울린다. 녀석은 킁킁대며 버스 여기저기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설마 우리들의 채취를 발견한 건가? 이렇게 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미약하게 남은 우리들의 흔적을 추적하는건가?
“크르르.”
그 녀석의 행동이 너무 눈에 띈 탓인지 다른 녀석들도 서서히 버스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놈들이 킁킁대는 소리와 낮게 울부짖는 소리만이 가득하다. 제길.. 지나가라 제발.
번쩍.
환한 천둥이 녀석들의 모습을 한꺼번에 비춘다. 검은 털들 끝에 수없이 달려 있는 물방울들. 붉고 진한 눈동자는 먹이를 찾기 위해 번뜩거리고 있었다. 숨이 점차 가빠온다. 입술이 미약하게 떨려오기 시작한다.
“크르르.”
이내 얻을 게 없다고 판단한 녀석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녀석들도 천천히 버스를 지나쳐가기 시작했다. 후우.. 다행이다. 마지막 의심을 품고 있던 녀석도 서서히 옆을 지나쳐간다. 우리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식은 땀을 닦아 내었다.
“에취!”
“!!”
해인이의 재채기 소리. 급하게 손을 막아 소리가 최대한 새어나가는 것을 방지하기는 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 소리가 너무나 컸다.
“크르르?”
덕분에 제 갈길을 가던 마지막 녀석이 슬그머니 돌아와 해인이가 있던 자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두워서 버스의 안이 보이지는 않겠지만 희미하게나마 녀석이 눈치챈 것 같다. 큰일이다.. 어쩌지? 녀석들의 수가 우리보다 많다. 확률적으로 우리가 불리하다.
“크르르르.”
다시 킁킁대며 해인이가 앉은 창가에 코를 대고 맡기 시작하는 녀석. 해인이는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어깨를 들썩였다. 너무 놀라 울고 있는 것이다. 봉수 아저씨는 그런 해인이를 꽉 안고 킁킁대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치 사파리 동물원에서 먹이를 더 달라고 보채는 사자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러나 저 녀석이 노리는 것은 우리들이다. 방심해서는 안된다.
“크아아아!”
콰앙.
녀석은 열이 받는지 버스 아래쪽을 강하게 내리쳤다. 흠칫. 놀란 우리들은 헛바람을 들이삼켰다. 씩씩거리며 버스 여기저기를 다시 훑어 보는 녀석. 정말 저 집념 하나에 소름이 돋는다. 절대 쉽게 포기하는 법이 없다. 빌어먹을..
“크아아!”
저 멀리 다른 녀석의 소리가 들린다. 뒤쪽이다. 그 소리를 들은 녀석은 버스를 다시 유심히 보고는 소리가 난 곳으로 뛰어가 버렸다. 녀석들과 싸우지도 않았는데 녹초가 된 기분이다. 깊은 한숨을 쉬며 의자에 털썩 기댔다.
“죄송해요.. 흐윽.”
울음을 삼키며 말하는 해인이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가 없다. 생리적인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그 작은 실수 때문에 모두가 위험에 빠질뻔 했다. 물론 이해를 못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 같이 민감한 상황에서 작은 것 하나하나에 생사가 오고갈 수 있다.
콰르릉.
“크아아아!”
녀석들의 분노 섞인 포효 소리. 나와 동생 그리고 준우 아저씨가 슬금슬금 이동해 버스 뒷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저 멀리 녀석들이 각자 손에 무언가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풍경에 우리들은 절로 눈살을 찌푸렸다. 아까 버렸던 시체 중 일부가 분명하다. 가로등 사이를 누비며 서로 먹겠다며 아웅다웅 다투는 녀석들의 꼴이란..
“쓰레기 자식들.. 저게 진화의 모습인가?”
“....”
입은 많으나 고기가 한정적이여서 자연히 서로 다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라면 동료를 짓밟고서라도 배를 채우는 것이 녀석들의 생존 방식이다.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 빗줄기 속에서 하나의 춤을 추는 것처럼 검은 색과 붉은 색의 물결들이 빠르게 움직여댄다. 처음 보는 광경은 아니지만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완전히 식사를 마친 녀석들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가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게 쭉 가라.
투두두두둑.
버스 위를 때리는 굵은 빗줄기가 유독 귀에 거슬린다. 별거 아닌 상황인데도 괜시리 마음이 다급해진다. 빌어먹을 날씨. 우리를 놀리기라도 하듯 하늘에 내리는 비는 그칠 생각이 없다.
“저 자식 설마..”
동생의 말에 앞을 가만히 보니 아까 마지막에 남아 있던 녀석이 계속 이 쪽을 주시하고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마치 우리가 안에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 붉은 빛이 맹렬하게 빛난다. 제발.. 제발.
휙.
그대로 고개를 돌려 동료들과 합류하는 녀석. 하아.. 하아.
“아, 진짜 제 명에 못살겠네.. 이거 원.”
준우 아저씨가 몸을 추욱 늘어트리며 땀을 닦았다. 갈증이 난다. 버스 앞까지 걸어가 종이컵을 들어 물을 가득 담아 단숨에 비웠다. 후우.. 이제 겨우 숨이 트인다. 모두 극도의 긴장이 일순간에 풀려서인지 저마다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다. 차례대로 물을 한 모금씩 마신 우리들은 의자에 편하게 몸을 뉘었다.
“고생했습니다. 오늘 하루..”
우민이 형의 목소리를 끝으로 서서히 잠이 든 것 같다.
번쩍. 눈이 떠진다. 딱히 누군가가 깨운 것도 아닌데 저절로 몸이 일으켜진다. 이상하게 정신이 맑다. 자리에서 일어나 정수기 앞에 다가가 물을 마시고 시계를 봤다. 새벽 3시.. 아직 해가 뜨려면 한참 남은 시각이다. 사람들이 잘 자고 있는지 좌석 하나하나를 둘러본다.
“드르렁.”
미약하게 코고는 소리와 잠꼬대 소리가 들린다. 잘 자고 있군.. 다시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뭔가가 허전한 느낌이다. 다시 일어나 좌석들을 둘러본다. 없다. 은혜와 남자가 없다. 어딜 간거야. 제길.. 소총을 들고 버스 창문 여기저기에 붙어 밖을 내다본다. 넓고 황량한 고속도로에 희미하게 빛나는 가로등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남자의 능력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10마리가 넘는 녀석들 상대로 은혜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시 앞 좌석으로 와 넓은 창문을 통해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아.”
저 멀리 30~4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꾸물거리는 두 개의 인영이 보인다. 느릿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인간의 걸음걸이.. 은혜와 남자다. 왜 항상 은혜는 밤마다 저렇게 돌아다니는걸까. 저럴려고 저녁시간에 그렇게 일찍 자는 건가. 이해할 수가 없다. 괜시리 걱정이 된 나는 버스 문을 수동으로 열고 밖으로 나왔다.
툭. 툭. 툭.
미약하게나마 내리는 비가 버스 천장을 때린다. 아직까지도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린건가. 은혜가 감기에 걸리면 어쩌지? 주위를 둘러보며 은혜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움직일 배짱도 없었을텐데.. 이진성.. 정말 많이 발전했다.
내가 다가가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은혜는 계속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내 마음을 애타게했다. 정말 물가에 어린아이를 풀어 놓은 부모의 심정보다 더 간이 떨린다.
“?”
착각일까. 은혜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뭔가 반짝거리는 것이 보인다. 빠르게 움직이며 폐차 뒤에 숨었다. 내 눈이 잘못되기를 바라며 반짝이는 곳을 가만히 주시했다. 불행히도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 어두운 자연 속에서 미약하지만 확실하게 빛나는 두 개의 붉은 빛.
“한 놈인가..”
이상하게 녀석은 무리 생활을 하지 않았다. 다만 은혜와 일정 거리를 두고 그 자리에 굳은 듯이 서 있는게 전부다. 은혜는 모르고 있는 눈치지만 그 옆에 선 남자는 아니었다. 은혜에게 더 이상 접근하면 용서하지 않을거라는 포스를 흉흉히 내뿜고 있다. 폐차 옆으로 살살 돌아 넓은 평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욱 이대로 돌면 은혜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번뜩.
얼마 가지 않아 뭔가 석연찮은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은혜를 보고 있던 녀석의 시선이 내게로 꽂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멈칫. 반사적으로 몸이 그 자리에서 굳었다. 가만.. 저 녀석 설마 어제의 그 녀석인가? 몸을 제대로 피고 가만히 녀석들 바라보았다.
희미한 가로등의 빛 때문에 제대로 분간하지 힘들었지만 내 직감이 맞다면 분명 어제 그 녀석이 분명했다. 뭐야, 날 먹기라도 하겠다는거야? 너를 도와준 은인이라구. 다행히도 녀석이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이내 몸을 돌려 넓은 평지 너머로 사라졌다. 후우.. 다시 주위를 둘러본다. ♡♡ 내리는 비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은혜에게로 걸어간다.
“하여간 꼭 이렇게 사람을 걱정시키게 만든다니까..”
은혜는 쭈구려 앉은 상태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 보고 있었다. 남자는 나를 힐끗 보고는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은혜에게 다가가 옆에 쭈구려 앉았다.
“뭐 보고 있어?”
“....”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은혜의 눈. 투명한 은혜의 눈을 통해 미약하게 빛을 내는 자그마한 별들이 여러개 보이는 것 같다. 뽀얀 은혜 볼 위로 하나둘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서서히 턱 끝에 모여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진다. 은혜의 손을 잡고 천천히 일으킨다. 힘없이 몸을 일으킨 은혜는 여전히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은혜야 왜 자꾸 밤에 나오는거야. 위험하잖아..”
“....”
“보고 있는 겁니다.”
남자의 말에 이해가 되지 않는 나는 은혜를 한 번 보고는 남자에게 물었다.
“뭐가..?”
“앞으로의 일들을 보고 있는 겁니다.”
“예언이라도 한단거야?”
“비슷하지만 아닙니다. 메시아께서는 자신의 남은 날들을 보고 계시는 겁니다.”
남은 날..? 은혜도 자신이 곧 죽을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
“은혜와 말이 통하는거야?”
“느낌입니다.”
“그래서.. 매일 이렇게 새벽녘쯤에 나와 하늘을 멍하니 보는거야. 은혜가?”
“메시아께서는 완전히 죽을 날을 선택하고 계십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남자의 표정에서 괴물과 비슷한 공포가 느껴졌다. 정말 저 남자의 모습이 우리 인류의 진화라고 할 수 있는걸까.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저런 허수아비 같은 태도가? 물론 은혜가 죽을거라는 말은 아저씨에게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게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전혀 느끼지 못했었다. 그만큼 상황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는거다.
“언제.. 언제 죽는데?”
“그건 메시아께서 정하는겁니다.”
“..그럼 넌 은혜가 죽을 때 가만히 있을거야?”
“메시아의 뜻이라면..”
답답하다. 남자는 이제 공과 사를 완전히 구별하지 못하는건가?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 은혜의 손을 잡고 버스로 이끌었다. 힘없이 딸려오는 은혜. 확실히.. 전과는 다르게 많이 수척해져 있다.
“은혜야.. 죽으면 안돼.”
“....”
“약속하자. 응?”
응해줄리 없겠지만 새끼 손가락을 은혜에게 내민다. 멍한 눈으로 내 손가락을 보던 은혜는 이내 작고 여린 손으로 내 검지 손가락을 잡았다. 그래, 어찌되었든 약속한거야. 괜시리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고개를 세차게 젓고 버스 쪽으로 걸어간다.
“크아아!”
“크우!”
저 멀리 녀석들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제길! 빠른 걸음으로 버스로 다가간다. 아까 녀석들이 사라진 곳에서 나는 소리다. 포효소리가 점차 거세진다. 우리의 냄새를 맡기라도 한걸까. 버스 너머로 빠른 검은 물체 여러 마리가 이쪽으로 접근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 갔을 때와는 달리 그 수가 반으로 줄어 있다. 뭐지? 아니다. 지금은 저런거에 일일이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빨리 은혜야.”
일단 은혜를 버스에 태워놔야 안심이 될 것 같다. 버스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치이익. 그 때 버스의 문이 열리며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 동생이 내렸다. 잠결에 녀석들의 소리를 듣고 나와 은혜가 없다는 것을 알고 바로 내린 것 같았다. 내 모습을 보던 세 사람은 빨리 오라며 손짓을 했다.
“크아아아!”
녀석들에게도 절박한 상황이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잡아야 배가 골리는 것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필사적이다. 소총의 커다란 소음 때문에 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다행히 전체적으로 비가 내리 있어서 빗소리와 섞여 그리 멀리 퍼지지는 못할 것 같다.
철컥.
장전을 마친 세 사람은 버스와 상당히 가까워진 녀석들에게 소총을 겨누고 2~3발씩 총알을 퍼부었다. 어둠 속에서 빠르게 목적으로 날아가는 총알을 피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총알이 몸에 박힌 녀석들은 달려오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크에엑.”
“쿠엑.”
피를 토하며 비틀거리며 일어서려는 녀석. 순식간에 어두운 대지위로 붉은 피로 가득찬다. 몸 여기저기 뜯겨져 있는 상처.. 아무래도 녀석들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서로를 먹이로 인식하고 치열하게 싸운 것 같다. 그 중 살아남은 녀석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도중에 우리를 발견한 것이고, 배를 채울 수 있다는 희망으로 우리에게 달려든 것 같았다. 결과는 물론 참혹했지만..
“크으으.”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녀석들에게 다가간 세 사람은 각자 들고 있던 단검으로 녀석들의 머릿통을 강하게 쑤셨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절명한 녀석들. 내리는 비에 단검을 대충 씻어낸 세 사람은 다시 버스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어서 타.”
동생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든 나는 은혜를 먼저 버스에 태웠다. 남자가 타는 것을 끝으로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 보고 버스에 올랐다. 사람들 모두 그 소리에 잠이 깼는지 일어나 있었다. 우민이 형이 내게 마른 수건을 내밀었다.
“고마워..”
수건으로 먼저 은혜의 얼굴과 촉촉이 젖은 머리카락을 털어 주었다. 머리가 길어서 그런지 꽤 오래 걸린다. 힘없이 고개를 숙인 은혜의 하얀 목덜미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과연..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주어야 할까. 은혜도 곧 자신이 죽을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그저 온전히 죽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크르르.”
작게 울리는 소리에 우리들의 몸이 그대로 굳어졌다. 서로 간에 수신호를 보내며 다시 소총을 챙긴다. 다시 들리는 소리. 한 녀석이다. 각자 창문 쪽에 붙어 아래를 살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붉은 눈빛이 빛나는 것이 들어온다. 서서히 버스 쪽으로 다가오는 녀석.
“한 놈이야. 괜한 말썽일으키지 말자구.”
아저씨 말에 우리는 일단 대기하기로 했다. 만약에 사태에는 아낌 없이 녀석에게 총알 세례를 퍼붓겠지만 특별한 악의가 없다면 그대로 두자는 말이다. 가만히 녀석을 주시한다. 붉은 눈을 번뜩거리며 이리저리 주위를 살피던 녀석은 몇 번 킁킁거리더니 버스 뒤쪽으로 걸어갔다. 천천히 녀석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크르르르.”
차가운 대지 위에 따스한 온기를 가진 시체 더미를 보자 녀석은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그리고 서서히 식사를 시작하는 녀석.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준우 아저씨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거 혹시 어제 그 놈아냐?”
“..맞아요.”
“우리를 따라다니는 것 같은데?”
“....”
준우 아저씨 옆에 있던 동생이 열심히 식사를 하는 녀석을 가만히 보며 말했다.
“우리를 따라다니면 배를 채울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 같은데.. 봐봐. 우리가 지나온 곳을 보면 전부 녀석들의 시체로 가득했잖아. 그래서 저 놈은 멀리 떠돌아다닐 필요 없이 우리 뒤를 졸졸 쫓는거 같아.”
“죽여야할까.”
“..근데 저 놈 은혜를 봐도 전혀 공격적으로 나오지 않더라구요. 다른 놈들 같았으면 은혜 냄새만 맡아도 광분하면서 달려들었잖아요. 저 놈은 뭔가 달라요.”
내 말에 둘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다른 녀석들과 분명 다른 태도를 가진 놈이지만 그 원본이 괴물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게걸스럽게 동료들의 고기를 먹어 치우는 녀석.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먹는 양이 엄청나다. 벌써 동료의 몸뚱아리 반을 뱃속에 넣은 녀석은 다른 부위에 손을 가져가기 시작한다.
“상부상조인가.”
“에?”
“그럴수도 있잖아. 저 녀석의 채취가 버스에 묻으면 다른 녀석들이 이 버스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거 아니야?”
“그런가..”
“우린 녀석에게 고기만 제공해주면 된다구. 어차피 한 놈이야. 총알 1~2개면 끝나는 놈이라구.”
꽤 설득력 있는 준우 아저씨의 말이다. 우리는 바보처럼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녀석이 식사를 마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20분이 조금 넘어서 동료 하나를 완전히 먹어 치운 녀석은 해가 곧 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다른 동료들의 시체를 질질 끌고 넓은 평지 쪽으로 사라졌다.
다시 앞좌석으로 와 몸을 편하게 누웠다. 고개만 살짝 들어 시계를 보니 5시가 다 되어간다.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어 사방이 캄캄하다. 아저씨는 우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1~2시간만 더 자고 이동합시다. 이따 오후에 졸지 않으려면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는게 좋겠습니다.”
그 말에 다들 동의했는지 몸을 편하게 하고 눈을 감기 시작했다. 축축히 젖은 옷이 몸이 착 달라붙어 찝찝한 느낌이 자꾸 들었지만 방금 전의 일을 겪어서인지 금방 잠이 온다. 육체와 정신이 급격히 피로해진다. 서서히 눈을 감는다.
누군가 내 몸을 흔든다. 서서히 잠에서 깨어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동생이다.
“아침 먹으래.”
그리운 단어.. 매일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기 싫어 빵이나 시리얼로 때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항상 잔소리를 들어 놓았었다. 나중에 몸이 망가진다고.. 아침을 먹어야 공부가 잘된다고.. 하지만 그럴수록 부모님에게 점점 반항기가 세져갔다. 동생에 대한 열등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항상 부모님 말에 군소리 없이 묵묵히 따르던 녀석이 꼴보기가 싫었다. 그래.. 어쩌면 내가 동생으로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몇시야?”
“7시 조금 넘었어.”
“그래?”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모두 밖으로 나간 듯 고요하다. 목을 좌우로 돌리며 버스에서 내린다. 어제 하루 종일 내린 비 때문인지 온 대지가 촉촉하게 젖어있다. 어두운 어제와는 다르게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햇살이 내 눈을 따갑게 했다. 눈을 찌푸리고 두리번 거린다.
“으응?”
이 맛있는 냄새.. 익숙한 냄새다. 버스 앞 쪽에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천천히 걸어가니 저번 라면을 삶아 먹었던 냄비에 찌개가 끓고 있었다. 주변에 굴러다니는 빈 참치 캔들과 포장용 김치와 식어버린 밥. 언제 챙긴거지? 꼬르르륵. 위장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준우 아저씨는 내 표정을 보더니 씨익 웃었다.
“오늘은 해인이가 만든거야.”
해인이는 발그레한 볼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에 모두가 희미하게 웃었다. 동생 옆에 앉으니 수저와 젓가락을 주었다. 봉수 아저씨가 은근 자랑스러워하는 어조로 말했다.
“애가 요리에 흥미가 많아서 집에서 자주 요리를 했었지요. 아마 못먹을 정도는 아닐겁니다.”
“아유. 냄새만 맡아도 숨 넘어가겠는데요.”
낯선 사람에게 말을 잘 못하는 해인이가 택한 방법은 요리였다. 해인이의 나름대로 사과의 방식일 것이다. 모두 어제의 일이 크게 번지지 않았기 때문에 해인이에게 딱히 뭐라고 하지도 않았다.
“근데 이 밥이며 김치는 뭐야?”
“밥은 마트에서 데운거야. 찬밥이긴 해도 먹을만 할거야. 김치도 가져온거지. 쉬었을거야 아마.”
“그래?”
그래도 상관 없었다. 아침 다운 아침을 먹는게 더 중요했으니까. 어느 정도 찌개가 끓자 불을 끈 아저씨가 수저를 들었다. 한 입 맛을 본 아저씨는 해인이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로 답했다.
“정말 잘하는걸? 잘 먹을게.”
그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빠르게 식사를 시작했다. 뜨거운 찌개.. 김치와 어우러진 참치를 적당히 건져 한입에 넣는다.
“후하. 후..”
뜨거운 온도를 견디지 못하는 연약한 혀와 입안의 살들이 덴 것 같다. 그렇지만 맛은 최고였다. 차가운 찬밥이 입안에서 녹는 것 같다. 모두 한 마디의 대화도 하지 않은채 입에 넣기 바쁘다.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던 해인이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천천히 드세요..”
“넌.. 이걸.. 후우. 천천히.. 후우. 먹으라는.. 거냐?”
입안 가득 음식물을 우물거리며 말하는 준우 아저씨. 동생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한다.
“아유 정말 거지가 따로 없네.”
“맛있는걸 먹을땐 거지가 되어야 해.”
그 말에 동생은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그건 어디 논리에요?”
“몰라.”
둘의 모습에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아저씨는 여전히 은혜부터 챙기고 있다. 남자는 뒤에서 묵묵히 밥을 먹을 뿐이고 봉수 아저씨와 해인이도 그제서야 식사를 시작했다. 우리의 저돌적인 모습에 약간 당황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따스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도 꽤 오랜만이다. 다들 집안에서 먹었던 음식들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잘 먹었다.”
“해인이가 요리를 잘하네. 종종 맡겨야겠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준우 아저씨와 동생. 거의 밥을 비운 나도 둘을 따라나섰다. 버스 뒤편으로 느리게 걸어가는 둘. 그리고 한 곳에서 멈춰 선다. 빗물에 다 씻겨나갈 줄 알았던 피들이 바닥에 흡수가 된 듯 그대로 남아 있다. 준우 아저씨는 담배를 꺼내 나와 동생에게 나눠주었다.
치직.
불을 붙이고 서서히 타들어가는 담배를 힘껏 빨았다.
“저기로 간 것 같네.”
녀석이 사라진 경로를 가리키는 준우 아저씨. 그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굵은 핏자국이 주욱 이어져있다. 노란 풀들 위를 적색으로 만들어버린 많은 양의 피들. 꽤 멀리도 갔다. 보이지도 않을 정도니..
“아저씨 말대로 그 녀석이 정말 우리에게 도움을 줄까요?”
“모르지. 우리 중 하나라도 홀로 남겨진다면 저 녀석이 우리를 먹이로 인식하고 공격하겠지.. 아마?”
후우.. 연기를 길게 내뱉으며 동생이 말했다.
“하긴.. 어차피 괴물 시체를 어디다 쓸 것도 아닌데..”
“하이에나라고 생각해. 어딜 가나 뒤처리 반은 꼭 있으니까 말이야.”
우리는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담배를 태웠다. 곧 완전히 타버린 담배 꽁초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리고 다시 버스 앞으로 갔다. 사람들은 거의 식사를 마쳤는지 슬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정리를 도우며 버릴 것들은 바닥에 대충 두고 남은 물건들을 버스 옆 공간에 넣었다.
10분 정도가 소요되자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다. 모두 버스에 탑승한 것을 확인한 아저씨는 서서히 버스를 몰았다. 서서히 속도가 올라가는 버스. 어느 정도 가니 커다란 표지판 위에 ‘감사합니다.’라고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작게 안성시장이라고 써 있다. 감사는 개뿔.. 마트에서 있었던 일.. 상가로에서 있었던 일.. 밴을 버리고 온 일들.. 하나하나 머릿속에 찬찬히 그려진다.
부우우웅.
막힐 것이 없는 버스의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우리들은 자리에 편하게 누워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본다. 저 멀리 안성시에 있는 건물들이 보인다. 수많은 괴물들이 저곳에서 서로를 죽여가며 살아가고 있겠지.. 그리고 옆으로는 커다란 산과 평지가 전부다.
톡톡.
익숙한 소리. 마이크가 켜지는 소리다. 아저씨는 ‘아아.’ 테스트를 몇 번 하고서 말했다.
“휴게소 들릴 사람 있나?”
“관광가는 기분이네 정말..”
동생이 뒷좌석에서 그렇게 중얼거린 것 같다. 별로 내키지 않았다. 특별히 먹을 것도 부족한 것도 아닌데 괜히 들려서 시간을 뺏기는건 아닌지.. 그러나 준우 아저씨는 단박에 말했다.
“가야죠! 여행의 필수 코스 휴게소를 빼 놓으면 섭합니다.”
“5키로 정도 남았어.”
다시 꺼지는 마이크 소리. 고개를 쑥 내밀어 앞 좌석 창 밖을 보니 휴게소라고 크게 적힌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몸을 일으켜 준우 아저씨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준우 아저씨는 의아한 눈빛으로 날 본다.
“혹시 안에 뭐라도 있으면 어쩌죠?”
“낮이야. 그리고 휴게소는 사방이 트인 공간이야. 그늘진 곳은 없어. 괜찮아. 다들 옷 좀 보라구. 버스 칸에 여벌의 옷이 있긴 하지만 어디 그걸 입을 수나 있냐?”
그 말대로 버스 안에 있는 옷들이 전부 노인들을 위한 옷이었다. 농촌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커다란 바지나 낡아 보이는 얇은 셔츠들.. 우리들 인원이 다 입으려면 턱없이 모자르다. 게다가 실용적이지도 않다. 무조건 오래 입을 수 있고 단단한 소재의 옷을 입어야한다.
“그렇겠네요..”
“거기서 해인이 석궁 연습도 시킬겸.. 좋잖아. 겸사겸사.”
준우 아저씨는 항상 긍정적이고 밝았다. 저번 당구장에 일이 있고 난후부터 그렇게 변한 것 같다. 그 모습이 썩 보기가 좋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것 같다. 하긴.. 이런 우울한 여행 속에도 희망을 잃어서는 안되는거니까.. 물론, 준우 아저씨가 담고 있는 상처나 두려움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준우 아저씨의 모습.. 왠지 모르게 닮고 싶어진다.
부우웅.
버스가 서서히 우측으로 돌기 시작한다. 앞에 커다란 간판으로 써져있는 ‘휴게소’라는 세글자가 눈에 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채비를 한다. 각자 들고 갈 소총들과 배낭. 그리고 해인이에게 가르쳐줄 석궁을 챙긴다. 무기들이 한정적이여서 봉수 아저씨에게는 주지 못하지만 안에 쓸만한 것들이 있으면 챙겨줄 생각이다. 게다가 총알도 언제까지나 무한이 아니기 때문에 타격류의 무기가 필요했다.
커다란 휴게소 앞 공터에 서서히 멈추는 버스. 창 밖을 통해서 봤을 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한적한 공간이었다. 치이익. 문이 열리고 우리는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곳곳에 주차가 되어 있는 소수의 차들과 휴게소에 있는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점이 없었다.
“가지..”
아저씨가 제일 앞에 섰다.
“....”
그리 크게 걱정이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은혜라는 변수가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녀석들의 위치를 알 수가 있다. 모르고 대비하는 것보다 알고 대비하는게 확실히 생존 확률이 높아서 준우 아저씨 말대로 심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화장실 좀..”
해인이의 작은 목소리. 우리는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아무래도 남자끼리의 여행이다 보니 해인이의 안위를 생각하는 것을 잊은 것 같다. 물론 은혜가 있기야 하지만 은혜가 화장실에 가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에 해인이의 편의를 생각지도 않은 것 같았다.
“아, 미안하게 됐네.. 은혜랑 같이 가고..”
아저씨는 해인이에게 은혜를 붙여주며 말했다. 해인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은혜 손을 잡고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 뒤를 남자가 그림자처럼 따라 붙었다. 무슨 일이야 있겠어? 남은 우리들은 꽤 빠른 걸음으로 휴게소 가운데 부분에 있는 편의점 비슷한 곳에 멈춰섰다.
지이잉.
아직까지도 작동되는 자동문. 마치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악어의 그것과 비슷해서 선뜻 걸음을 옮기기가 두려웠다. 대충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아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이지만 어제 마트의 일처럼 녀석들이 몰려올 것 같은 나쁜 예감이 자꾸만 든다.
소총을 앞으로 겨누고 좁지도 크지도 않은 편의점 안을 둘러본다. 비릿한 피 냄새를 제외하고는 특이한 점은 없다. 우리들은 가져온 배낭에 여러 가지 물건 등이나 음식류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5분 만에 끝마친 우리들은 편의점에서 나와서 바로 옆 스포츠용품 가게에 들어갔다. 일을 마치고 온 해인이도 우리의 뒤를 따랐다.
지이잉.
빠르게 열리는 자동문. 고요한 가게 안. 우리들은 각자가 입을 것들을 빠르게 챙기기 시작했다. 활동하기 편한 등산복 위주로 택했다.
“해인아, 은혜도 챙겨주고 저기 탈의실에서 갈아 입고 올래?”
준우 아저씨 말에 해인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것과 은혜의 것을 챙겨 탈의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 뒤를 따라가려는 남자의 어깨를 잡은 준우 아저씨가 걸려 있는 옷들을 보며 턱짓을 했다.
“너도 그 후드 벗어버려. 멀리서 보면 오인한다구.”
“....”
남자는 말없이 우리와 비슷한 옷들을 골라 그 자리에서 입기 시작했다. 앙상히 마른 흑색의 몸이다. 저런 몸으로 어떻게 상상이상의 힘을 내는거지? 신기하네.. 탈의실로 들어간 해인이와 은혜를 확인한 후 우리들도 서둘러 옷을 갈아 입기 시작했다. 상의를 벗을때 나는 매캐한 냄새 때문에 절로 눈이 찌푸려진다. 이런 쓰레기 같은 옷을 입고 여지껏 잘 버텨왔다니..
10분정도가 지나 말끔히 차려입은 우리들은 남은 옷가지들도 양손 가득 챙겼다. 그에 맞춰 탈의실에서 나온 해인이와 은혜도 여러 가지 옷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모두 챙긴 것들을 확인한 아저씨는 밖으로 나가 버스 쪽으로 향했다. 고요한 거리에 우리들의 발소리만 가득 울린다.
“온다..”
지이잉.
은혜의 목소리. 그에 맞춰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우리들은 일제히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크으.”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명백히 괴물인 한 녀석이 스포츠용품 옆 건물에서 튀어나와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잡힌다. 한 마리 정도라면 무시할 수 있다. 우리는 빠르게 버스 쪽으로 뛰다시피 했다.
지이잉.
어렴풋이 들리는 자동문소리. 슬쩍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불어난 5마리의 녀석들. 흉흉한 기세로 붉은 안광을 빛내는 녀석들의 입에서 침이 줄줄 흐르고 있다. 위험하다. 서둘러야 한다. 빠르게 버스에 오른 우리들은 대충 옷들을 아무렇게나 팽개쳐놓았다. 아저씨는 바로 버스 시동을 걸고 서서히 버스를 출발시켰다. 워낙 대형 버스라 단번에 가속도를 내기 힘든 것이다.
“크아아!”
우리들이 떠난다는 것을 눈치챈 녀석들이 빠른 속도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불어났는지 수가 8마리 이상이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동료를 이용해 언제 변할지 모르는 일이다. 휴게소 출구 쪽으로 빠져나가려는 찰나에 다닥다닥 붙은 녀석들. 날카로운 손톱을 이용해 매끄러운 버스 옆면에 붙은 것 같다.
“꽉 잡아!”
서서히 올라가는 버스의 속도. 녀석들의 울음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 바싹바싹 마르는 입술. 소총을 다시 장전하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다. 녀석들은 분명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녀석들과 우리들은 필사적이었다. 배를 채우려는 쪽과 도망치려는 쪽.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다.
부아앙.
버스의 속도가 서서히 올라간다. 녀석들은 버스의 가속력을 이기지 못하고 더욱 괴성을 지른다. 하지만 어느 하나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역시 끈질긴 녀석들이다. 다행히 녀석들은 점차 올라가는 가속력 때문에 버스 위쪽으로 오르지 못했다. 창문 아래 쪽에서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라니.. 우습지도 않다.
부아아앙.
서서히 올라가는 버스의 속도.
“키에에엑!”
드디어 한 녀석이 나가떨어졌다. 바닥에 볼썽사납게 굴러 떨어진 녀석은 그대로 추욱 늘어진다.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다른 녀석들이 문제다.
“크으으으”
이것을 놓치면 영영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 녀석들은 죽을 힘을 다해 매달려 있었다. 동생이 준우 아저씨에게 따지듯 말한다.
“아저씨! 안에 아무것도 없을거라면서요!”
“누.. 누가 이렇게 될줄 알았냐?!”
준우 아저씨도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안전한 상태이지만 녀석들이 계속 매달려 있는 꼴을 보기가 싫었다. 아저씨는 큰 소리로 우리들에게 외쳤다.
“안전벨트 꽉 매! 브레이크 밟을거니까!”
관성으로 녀석들을 떨구려는거다. 우리는 모두 군말 없이 안전벨트를 매고 단단히 채비를 했다. 아저씨는 ‘간다!’라고 외친뒤 바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익.
커다란 마찰 소리와 함께 몸이 급격하게 앞으로 기운다. 크윽.. 밴과는 비교도 안되는 압력에 상체가 거의 바닥에 닿을 정도다. 그 충격에 안전벨트 끈을 통해 직접적으로 압력이 가해진 배가 땡겨져 온다. 숨을 쉬기가 어려워진다.
“키에엑!”
“크아악!”
성과는 대단했다. 관성의 힘을 이기지 못한 7마리 녀석들이 그대로 앞으로 나가떨어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꽤 충격이 컸는지 몸을 꿈틀거리며 일어나려고 애쓰고 있다. 아저씨는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부아앙.
바로 버스 가속 페달을 밟고 출발하기 시작한다. 여전히 단번에 큰 속도가 붙지는 않았지만 저 멀리 있는 녀석들에게 당도하기 전까지 충분한 속도가 붙을 것이다. 상당히 빠른 버스 속도에 몇몇 녀석들은 차마 대비하지 못하고 그대로 버스 밑에 깔렸다.
덜컹. 덜컹.
“키에에엑!”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녀석들을 뭉개버렸다. 그나마 좌우로 피한 1~2마리 녀석들은 온 몸을 비틀거리며 다른 동료를 가만히 보고 있다. 그리고 살아 남은 녀석들의 눈이 점차 광기로 물든다.
“크아아아!”
그대로 죽은 동료의 살을 뜯어 먹은 두 녀석이 빠르게 변신하고 버스 뒤를 쫓기 시작한다. 온 몸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전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다. 그 자리에서 동료들을 뜯어 먹을 줄만 알았던 녀석들이 내 예상과 크게 벗어난 행동을 한다. 적어도 최소한의 동료애라는 것이 있는건가.
부아아앙.
그러나 녀석들의 체력으로 버스를 쫓는건 무리가 있다. 얼마 가지 않아 지친 두 녀석은 어깨를 들썩이며 버스를 노려보고는 도로가 떠내려가라 소리를 질러댄다.
“휴.. 미친놈들 정말..”
이내 녀석들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한숨을 크게 쉬고 흐르는 땀을 닦는다. 방심하고 있다가 크게 당할뻔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아까 전에 챙겨 두었던 배낭 쪽으로 걸어가 이온 음료를 꺼내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아저씨에게는 따로 병을 따서 입에 대주었다.
“고맙네.”
“제가 더 고맙죠.”
“많이 달라졌어. 진성군.”
“예?”
“전보다 상황 전환이 많이 빨라졌어. 안심이 되는데?”
“에이, 제가 뭘 한게 있다구..”
아저씨는 말없이 희미하게 웃었다. 왠지 그 웃음이 멀리 여행을 떠나려고 준비하는 사람의 그것과 같아서 나도 모르게 낯설었다. 착각이겠지.. 뚜껑을 닫아주고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멀리.. 표지판이 보인다. 충주.. 남은 거리는 40키로라고 적혀있다. 이대로만 주욱 간다면 해가 지기 전에 여유롭게 충주에 도착할 것 같다.
부르르.
그렇게 잘 달릴 것 같던 버스가 서서히 멈추기 시작한다. 우리들은 궁금한 표정으로 앞 창문을 바라본다. 저 멀리 뭔가가 보이긴 하는데.. 자세히 보이진 않는다. 아저씨는 운전석에서 일어나 창문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한참을 같은 곳을 바라본다.
“설마..”
그 말에 대충 상황 파악이 된 우리들은 아저씨 옆에 서서 창문 밖의 상황을 유심이 눈에 담기 시작한다. 멀리.. 꽤 되는 거리에 뭔가가 일자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걸음걸이로 봐서는 사람이지만.. 손과 발에 뭔가가 묶여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두 마리의 괴물 녀석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사람들을 다그치는 것이 보인다.
“낮에도.. 자유롭게 괴물의 모습이라니.. 설마?”
준우 아저씨 말에 모두 조용해진다. 낮에도 저런 괴물의 상태를 하고도 흥분하지 않는 모습.. 그렇다면 우두머리라는 확률이 높다. 두 마리의 우두마리라니.. 게다가 두 녀석은 서로 협동하는 관계처럼 보인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건가. 우두머리 녀석들은 단독 행동을 하면서 평범한 놈들을 다스리며 일정 지역에 있던 것이 아닌가.. 아, 그 덩치 큰 우두머리.. 그래, 상황이 상황인만큼 녀석들도 뭉치는거겠지.
“일단.. 조용히 있고 총은 언제라도 쓸 수 있게 대기해.”
아저씨의 시력이 좋아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녀석들의 눈에 버스 움직임이 포착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찾아온 긴장 속에 소총을 꽉 쥐고 앞이 뚫어져라 쳐다본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두 괴물과 사람들. 괴물들은 전부 평범한 체격이었다. 그러나 일반 녀석들과 달리 기형적으로 발달된 상체가 그 힘을 어렴풋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쓰레기 같은 새끼들..”
남자 2명과 여자 3명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보이는데 하나같이 힘이 없는 걸음이었다. 모두 얼굴에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다. 꽤 젊어 보이는 사람들인데 어쩌다가 저런 꼴을 당한건지.. 서서히 이쪽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몸을 숙여 고개만 내밀고 녀석들의 행렬을 지켜보기로 했다.
‘이기적인 놈.’
마음 속에서 그렇게 말한다. 닥쳐. 지금 우리 상황도 어렵긴 마찬가지야.
‘멀쩡한 사람들이잖아. 버릴거냐?’
닥쳐.. 닥쳐!
‘너희들도 저 괴물과 다를게 없다.’
닥쳐.. 나도 도와주고 싶다고! 젠장! 부득부득 이를 갈며 두 녀석을 가만히 노려본다. 우두머리 두 마리.. 상상을 훨씬 넘는 전투력을 가진 놈들일 것이다. 이건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도 지켜야할 사람이 있고 나아가야할 목표가 있다.
“도저히.. 못 걷..겠어요.”
그때 여자 2명이 그 말을 뱉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여파로 줄로 이어진 다른 사람들도 그 자리에 눕듯이 쓰러져버린다. 우두머리 두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혀를 낼름거린다.
“그럼 죽여줘?”
“허..억.. 어차피.. 우릴 못.. 먹잖아요.”
못먹어..? 이건 무슨 소리지? 여자의 말에 괴물은 화가 단단히 난듯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크아아아!”
화풀이를 하듯 지상에 그대로 주먹을 꽂는다. 콰앙. 소리와 함께 꽤 커다란 원이 생기며 스르르 땅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던 다른 괴물이 손을 저으며 만류한다.
“그만. 먹잇감에 흠이라도 생기면 두목께서 불쾌해하신다.”
두목..? 저 우두머리들 보다 더 강한 놈이 위에 있다는건가? 그렇다면 괴물 놈들끼리 뭉친 집단이 따로 있다는건가? 우리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왠지 도움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어..엄마.”
해인이의 작은 목소리. 우리는 일제히 해인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뜬 해인이의 몸이 서서히 떨린다. 그 말에 봉수 아저씨도 밖을 가만히 보더니 신음성을 삼키며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해인 엄마..”
“....”
이런 개같은 경우가 또 있을까. 하필 저 사람들 중에 한 명이 두 사람의 엄마이며 부인이라니.. 봉수 아저씨는 말없이 해인이를 안고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해인이의 어깨도 들썩거린다. 최대한 울음을 참아내려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
“무슨 소리 들리지 않나?”
정말 귀신같은 감각이다. 광분한 녀석을 만류하던 녀석이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그 소리를 들은 부녀는 손으로 입을 막고 숨도 쉬지 않았다. 제발.. 제발.
“소리는 무슨.. 네 녀석은 쓸데없이 신경을 많이 써.”
다행히 다른 녀석은 느끼지 못했는지 투덜거린다. 곧 그 녀석도 팔짱을 끼고서 인간들을 훑어 보았다.
“배가 고프긴한데..”
그 말에 번뜩 귀가 트인 다른 녀석이 찢어져라 웃으며 말했다.
“하나만 슬쩍 하자. 두목도 이해하실거야.”
“..괜찮겠지.”
그 말이 끝나자 마자 성격이 더러운 녀석은 자리에서 껑충껑충 뛰며 사람들 주위를 맴돌았다. 사람들은 사시나무 떨듯이 고개를 숙이고 자신이 표적이 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 같다.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도 지금 당장 죽는건 무섭다는건가..
“이 년으로 하지!”
제일 뒤에 있는 비교적 젊은 여자를 가리킨 성질 드러운 괴물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여자는 사색이 된 얼굴로 두 괴물을 번갈아 바라보며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쉬이익. 작은 소리와 함께 여자의 바지가 축축히 젖기 시작한다.
“에이, 제길!”
눈을 찡그리며 손을 저은 괴물은 그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여자의 머리채를 붙잡고 들어 올렸다.
“끄..헉!”
괴물의 상상 이상의 악력을 이기지 못하고 몸이 그대로 들어 올려진 여성은 고통스러운 듯 두 손으로 괴물의 손을 잡으며 매달렸다. 그 여성은 바로 봉수 아저씨와 해인이의 어머니이자 부인이었다. 봉수 아저씨와 비슷한 동년배겠지만 상당히 동안의 외모와 날씬한 몸을 갖고 있어서 멀리서 본다면 아가씨로 오인할 정도였다. 괴물도 그런 착각을 했는지 혀를 낼름거리며 여자의 목을 거칠게 핥았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애절한 여자의 목소리에 부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떨었다. 우리는 그런 부녀를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마음 한켠에 남아 있는 작은 양심이 자꾸 가슴을 푹푹 찌른다. 제길..
“나름 맛있게 익은 것 같구만.. 낄낄낄.”
“흐윽.. 흑흑.”
여자는 이내 체념한 듯 굵은 눈망울을 흘리기 시작했다. 괴물은 몸 여기저기를 핥으며 말했다.
“내가 상체를 먹을테니 네가 남은 부위를 먹어라.”
“좋지.”
괴물의 날카로운 입이 번뜩거린다. 커다랗게 입을 벌린 녀석은 그대로 여자의 얇은 목을 언제든지 물어 뜯을 기세로 빠르게 다가간다.
날카로운 톱 같은 녀석의 이빨이 당장이라도 여자의 목을 물어 뜯을 기세다. 어쩌지..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건가. 부녀에게 또 다시 슬픔을 안겨주어야만 하는건가. 안돼.. 그럴 수 없다. 나도 모르게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한 걸음.. 한 걸음.
텁.
동생이 내 손을 잡고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고개를 젓는다. 큭.. 이를 악물고 겁에 질려 벌벌 떠는 여자를 가만히 본다. 제길! 동생의 표정을 보고 다시 몸 상태가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 때, 봉수 아저씨가 빠른 속도로 내 총을 뺏더니 버스문을 강하게 발로 찼다.
“응?”
그 소리에 여자를 먹으려고 했던 우두머리 녀석이 고개를 획 돌린다. 봉수 아저씨는 그대로 버스 문을 수동으로 열어 밖으로 나가 녀석들에게 총을 겨누었다. 어깨를 심하게 들썩거린다. 처음 녀석들과 대면할 때 내 모습이 그려진다. 심하게 긴장했었지..
“해인 엄마!”
“여.. 여보.”
“오호. 설마 했지만 진짜로 있을 줄은 몰랐는걸.”
처음 귀신같이 감각이 좋은 녀석이 말했다. 제길.. 어쩔 수 없다. 우리 모두 버스 밖으로 나와 녀석들과 마주섰다. 물론 은혜와 해인이는 버스 안에 그대로 둔 상태다. 사람들은 우리의 존재를 보고 희망적인 표정을 지었지만 우두머리의 힘을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은 긴장될 수 밖에 없었다.
묘한 대치 상태. 두 녀석은 슬금슬금 자리를 옮겨 사람들을 자신의 앞으로 내세웠다. 벌벌 떠는 사람들은 우리를 보며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지만 선뜻 나서기에는 상황이 너무 애매하다.
“쏠 건가? 응?”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우두머리 녀석이 말했다. 봉수 아저씨에게 소총을 다시 건네 받고 단단히 잡는다. 서서히 녀석들에게 겨눈다. 내 모습에 사람들은 대경하여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나에게 말했다.
“사.. 살려주세요!”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우두머리 녀석이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재밌군! 누가 누굴 보고 살려 달라는거지? 이러니 너희 같은 하등 생물들이 멸종해가는거다.”
교묘하게 사람으로 자신의 몸을 가린 녀석들을 향해서 크윽.. 총을 쏠 수가 없다. 그 때 다른 녀석이 코를 킁킁대더니 이내 환한 얼굴로 웃음을 지었다.
“어이. 이 냄새..”
그 말에 다른 녀석도 코를 벌름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들은적이 있는 냄새군.. 두목께서 그토록 찾아 헤맨다는 그 냄새.. 예상외의 수확이야.”
두 녀석의 눈이 번뜩거린다. 두목.. 냄새. 설마.. 전에 은혜를 노렸던 그 덩치큰 녀석을 말하는건가? 저런 놈들까지 부릴만큼 녀석의 힘이 그렇게 강했었나? 두 녀석은 서서히 왼쪽으로 크게 돌기 시작한다. 이대로 가면 버스의 옆면을 그냥 내주게 된다. 제길..
“큭큭큭.”
녀석들은 우리의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는듯하다. 빼도 박도 못하는 이 상황..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누굴 선택해야 옳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걸까. 사람의 무게를 저울질 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잘못된 일일지도 모른다. 슬금슬금. 녀석들의 보폭이 넓다. 곧 버스 옆면에 닿을 것이다.
두두두.
착각이었을까. 내 옆에 커다랗게 울리는 소리가 달팽이관을 때린다. 총소리다. 고개를 돌리자 아저씨가 굳은 얼굴로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녀석들을 본다.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한 남자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우두머리. 남자의 연약한 몸을 그대로 총알이 뚫어 녀석에게로 향한 것이다.
“아저씨..”
나지막이 아저씨를 부른다. 아무 말이 없는 아저씨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크아아아!”
우두머리 녀석은 가슴 팍에 흐르는 피를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주춤거린다. 곧 분노에 못 이긴 녀석이 피를 흘리는 남자의 머리를 그대로 분리 시키고는 우리에게 던져버렸다. 휘이잉. 우리들은 그것을 아무렇게나 피해내고 앞이 빈 녀석에게 총알 세례를 퍼부어댔다.
두두두두두.
그러나 녀석도 미리 대비하고 있었는지 높은 도약을 통해 단번에 버스 창문 쪽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크게 주먹을 휘둘러 버스 창문들을 모조리 깨부수기 시작했다.
와장창.
힘없이 깨지는 버스의 창문. 이내 다른 녀석도 합류해 동료를 돕기 시작한다. 서둘러 녀석들에게 뛰어간 우리들은 힐끔 보이는 녀석들의 옆모습에 그대로 총알을 퍼부어댔다.
두두두두.
완전히는 아니지만 녀석들의 옆을 스쳐지나갔는지 몸에서 피가 새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녀석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도 우리를 돌아보지 않았다. 마침내 단단한 창문을 깨부순 녀석들은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안에는 은혜와 해인이.. 그리고 남자가 있다.
퍼억.
“크아아!”
박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들린다. 이내 빠른 속도로 버스 밖으로 튕겨져 나온 녀석은 충격이 꽤 컸는지 피를 한 움큼 토하고는 일어나려고 애쓰기 시작한다. 부들부들 떨면서 우리를 노려보는 우두머리 녀석. 그것을 그냥 놓칠 우리들이 아니었다.
두두두두.
사정 봐주지 않고 총알을 녀석에게 퍼부어댔다.
“크어어억.”
녀석은 그대로 총알에 몸이 꿰뚫리며 이리저리 몸을 비틀대다가 바닥에 추욱 늘어졌다.
와장창.
그 때 남은 창문들이 완전히 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남은 우두머리 녀석이 빠른 속도로 도주하는게 눈에 들어왔다. 온 몸에 피를 흘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중상이 확실해보였다. 그러나 녀석을 이대로 놓친다면 후에 다가올 일들을 완전히 감당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후우..”
우리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소총을 들고 점점 멀어져가는 녀석의 등 뒤를 겨누었다. 호흡을 멈추고.. 천천히 방아쇠를 당긴다.
두두두.
동시에 날아가는 우리들의 총알. 그 소리가 너무 컸던 탓일까. 녀석은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돌렸다.
“크아아아!”
그러나 온전히 피할 수 없었는지 녀석의 몸이 그대로 픽 쓰러진다. 성공인가? 하지만 녀석은 바로 자리를 박차더니 넓은 평지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다. 소총을 다시 겨누고 녀석을 향해 쏘지만 애석하게도 맞지 않는다.
“제길..”
점차 점이 되어가는 녀석을 보며 우리는 허탈한 감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그 녀석이 올거다. 처음 우리에게 총 공세를 가했던 그 녀석이.. 반드시!
“....”
이제 완전히 없어져버린 녀석에게 미련을 버리고 우리들은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이대로 꼬리가 잡힌다면 정말 큰일이다. 경험으로 보건대 덩치 큰 녀석은 절대 예삿놈이 아니었다. 저런 우두머리 급 녀석들을 마음대로 다룰 정도면 그 힘이 실로 어마어마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머리와 몸이 분리된 남자 시체를 제외하고 모두 버스에 올라타게 했다. 봉수 아저씨와 해인이는 굵은 눈물을 흘리며 처음 녀석에게 당할 뻔한 여자에게 다가가 꽈악 안았다.
“흐어어엉.”
“흐윽. 흐윽.”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못 다한 한을 풀기라도 하듯 하염없이 울어제꼈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상황도 급했다.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는 세 사람을 강제로 버스에 밀다시피 타게 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탄 것을 확인한 아저씨가 버스를 출발시켰다.
“....”
버스 내부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그간 녀석들에게서 단단히 우리를 보호해주던 그 위풍당당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마치 폐차 직전에 내놓은 차처럼 버스 왼쪽 부분이 기하학적으로 찌그러져 있다. 창문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었다는 듯 휑하게 뚫려있다. 덕분에 모두 오른쪽 좌석에 앉아야만 했지만 일부 사람들은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에 크게 기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을 지나쳐 은혜와 남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은혜는 여전히 전과 같은 무표정이고 남자도 마찬가지었다. 다만 다른게 있다면 남자의 상의가 보기 흉하게 찢어져 있다는 것이다. 녀석도 아주 당한 것만은 아닌것 같았다. 남자의 찢어진 상의 안으로 흉몰스러운 상처가 보인다. 눈이 절로 찡그려지는 상황이다.
“괜찮냐?”
“곧 나을겁니다.”
“낫는다고?”
“재생이 가능합니다.”
역시.. 남자는 우리 기준으로 생각해서는 안되는거였다. 저 정도의 상처를 입고도 아픈 기색 하나 없이 곧 나을거라며 덤덤하게 말하는 표정이라니..
“야, 진성아. 빨리 앉아라. 떨어질라.”
준우 아저씨가 옆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대로 휑하니 뚫린 왼쪽 공간으로부터 불어오는 풍압이 실로 엄청났기 때문이다. 서서히 버스가 속도를 내며 자연스럽게 바람이 거세진거다. 천천히 준우 아저씨 옆 의자에 앉아 안전벨트를 꽉 맸다.
픽.
뭔가 따끔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려보니 아직 완전히 깨지지 않은 창문 조각들이 거센 바람을 못 이겨 여기저기 날려대고 있었다. ‘위험하다.’ 라고 머릿속에서 신호를 보내온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비교적 앞에 앉은 동생이 아저씨에게 다가가 버스를 세우게 했다.
“일단 이 위험요소가 될 만한 유리조각들만 없애고 가자구.”
아저씨 말에 우리는 소총의 딱딱한 밑바닥 부분으로 망설임 없이 유리창에 붙은 조각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와장창. 쨍그랑. 귀에 거슬리는 날카로운 소리들을 애써 무시하며 작업을 계속 해나갔다. 어느 정도 모인 유리조각들은 버스 옆 깊게 파인 공간에 전부 밀어 넣었다. 대강 어느 정도 깨끗해지자 아저씨가 다시 버스를 몰기 시작했다.
“후우..”
숨을 크게 내쉬고 자리에 앉았다. 앞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아직까지 충격이 가시지 않는지 몸을 심하게 떨어댔다. 이상하게 사람들을 봐도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까 전 괴물의 손에서 허무하게 생명의 빛이 꺼진 남자가 죽을 때도 그랬다. 무섭다기 보다 괴물을 꼭 죽여야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었다. 아저씨 말대로 정말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상황판단 능력이 향상 되어가는건가? 과연.. 이게 좋은 일인걸까.
거세고 세찬 바람 때문에 숨을 쉬기가 어렵다. 몸을 앞으로 숙여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내 모습을 보던 준우 아저씨도 나와 같은 자세를 하며 내게 약간 큰 소리로 말한다. 거센 바람의 소음 때문이다.
“저 많은 사람들을 전부 지켜줄 수 없어.”
“..그럼요?‘
준우 아저씨는 말없이 고개를 젓고 다시 원래의 자세로 돌아갔다. 4명의 사람..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들이다. 기댈곳이라고는 우리 밖에 없는데.. 지켜줄 수 없다니.. 준우 아저씨 말대로라면 저 사람들 모두 버리고 가겠다는건가? 사람들이 순순히 응할까?
“....”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을 알기나 할까.. 나는 몸을 일으켜 준우 아저씨에게 말한다.
“저들도 훈련을 하면 충분히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내 말에 준우 아저씨는 눈을 감으며 손을 저었다.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 게다가 우리 소총에는 총알도 얼마 남지 않았어. 이 총알이 다 떨어지면 우리 몸 하나 지키기도 힘들어져.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너도 알잖아? 녀석들은 무리 단위로 움직이고 있다구.”
“저 사람들한텐 뭐라고 하게요.”
“나한테 생각이 있어.”
그 말을 끝으로 준우 아저씨는 그대로 몸을 뒤로 젖혔다. 아저씨의 품 안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 소총이 눈에 들어온다. 대강 상상이간다. 가만히 준우 아저씨의 얼굴을 본다. 처음 PC방 건물에서 우리를 구해주던 그 아저씨가 정말 맞나 싶을 정도다. 수많은 괴물들에게 쫓김에도 불구하고 거리낌 없이 우리를 도와주던 준우 아저씨의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간걸까.
“....”
뭐라도 말이라도 하고 싶지만 준우 아저씨의 말도 틀린게 아니라 딱히 어떤 말을 할 수가 없다. 준우 아저씨 말대로 우리들이 가진 총알이 서서히 떨어져간다. 언제까지나 무한으로 있을 것 같았던 총알.. 총알이 떨어지면 타격류 무기로 녀석들에게 대항해야 한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소총과 석궁 1개가 전부다. 그 급박한 상황에서도 용케 석궁을 챙긴게 용하지만 그렇다고 석궁이라는게 무한으로 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타격 무기들로 녀석들에게 잡아 먹히지 않을 수 있을까.
철컥.
안전벨트를 풀고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우민이 형에게 다가간다. 거센 풍압 때문인지 우민이 형의 오른쪽 소매가 심하게 나풀거린다. 우민이 형은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한 채 나를 보며 물었다.
“할.. 말 ..어?‘
커다란 바람 소리 때문에 우민이 형의 목소리가 희미하다. 나는 바로 우민이 형 옆에 앉아 귀에 대고 말했다.
“충주에도 여러 부대가 있겠지?”
“부대는 전국 어딜가나 있지. 잘 보이지 않게 주둔해 있는것 뿐이지만.”
“그럼.. 총을 얻을 수 있을까?”
우민이 형은 입술을 다물고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겠어. 제대로 남아 있는 부대가 과연 몇 개나 될지도 의문이고..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선뜻 개인화기를 내어줄 것 같지도 않고..”
“역시 그렇지?”
“그럴 가능성이 크지. 하지만 가 볼만해. 군대라는 곳이 워낙 말이 안통하는데라서 잘될지 모르겠지만.. 지휘관을 만나 잘 구슬리면 될지도 모르겠지. 물론 멀쩡히 부대가 남아 있다는 전제하에 말이야.”
그럼 아직 희망이 있다는 얘기인가. 설마 우리 같은 사람들을 매몰차게 내쫓지는 않겠지.. 우리들도 나름대로의 악전고투를 벌여오며 여기까지 달려왔다.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만약 온전한 상태의 부대로 간다면 저 사람들을 버리고 가지 않아도 된다.
“좋아..”
충주에 도착하면 아저씨에게 얘기해 봐야겠다. 은혜를 빌미로 삼아 얘기를 해보면 응해줄지도 모른다.
부우웅.
얼마나 지났을까. ‘충주.’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시계를 보니 아직 13시에 불과하다. 충분히 시내를 돌며 부대 위치를 확인할 시간이 있다. 빠르게 충주 시내로 접어드는 버스. ‘탄금교’라는 다리 길 위를 빠르게 지나자 충주역이 보인다.
부르르.
역 앞에서 버스를 세운 아저씨는 모두에게 손짓을 했다.
“다들 내리시오.”
그 말에 사람들은 부들거리는 몸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차례대로 내리기 시작했다. 남은 우리들은 배낭을 매고서 소총과 석궁을 챙겼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해인이에게 석궁을 주고 화살통을 건넸다. 아직 두려워하는 표정이 가득한 해인이.
“네가 지켜줘야 해. 알겠지?”
내 말에 해인이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눈동자를 몇 번 깜빡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 달라져있다. 좋아, 그 눈이야. 해인이에게 석궁 사용법을 간단히 알려주고 장전을 시켜본다.
퉁.
해인이는 현을 조심스럽게 잡아 당기며 강도가 어느정도 인지 가늠해 보고는 이내 한 번에 장전에 성공했다. 확실히 양궁을 다루고 있던터라 처음 우리들과는 다르다. 해인이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제일 선두에 있는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아저씨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왜.’라고 대답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얘기를 아저씨에게 전했다. 물론 우리 둘만 듣도록 목소리를 작게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중에서 나는 ‘총’이란 얘기와 ‘은혜’라는 부분을 강점적으로 설명했다.
“흐음..”
효과가 있는지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좋은 생각이야. 일단 인터넷을 통해 부대 위치를 알아보도록 하고.. 지금은 빨리 이동하는게 좋아. 모두 모이시오.”
아저씨 말에 사람들이 쭈뼛거리며 모여든다. 아저씨는 사람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중간 정도 크기로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차를 통해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4명당 1조로 나누겠습니다. 여성분들은 전부 여기에 남아 계시고 차를 몰줄 아는 세 명만 근처에 있는 차를 구해서 이리로 오는 것으로 하지요.”
아저씨 말에 여자들은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많이 지친 탓이다. 해인이와 어머니는 서로를 놓을 생각이 없는지 아직까지도 꼭 끌어안고 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봉수 아저씨가 나섰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역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재빨리 봉수 아저씨가 따랐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나머지 사람들은 대기하고 있게. 금방 올터이니.”
아저씨 말에 남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무말 없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적당한 차가 있는지 물색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역 부근이라 주인을 잃은 차들이 상당히 많았다. 봉수 아저씨는 그 중 제일 앞에 있는 SUV차량으로 다가갔다. 검은 색으로 선텐이 되어 있어 안을 한번에 보기가 힘들었다.
“신호를 하면 여시오.”
“알겠습니다.”
봉수 아저씨는 긴장된 표정으로 차량의 운전석에 손을 가져갔다. 우리는 소총을 겨누고 준비를 마쳤다. 나는 봉수 아저씨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봉수 아저씨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단번에 운전석을 열어제꼈다.
“....”
다행히 내부는 깨끗했다. 봉수 아저씨는 슬쩍 고개만 들이밀어 뒷좌석도 조심스레 살폈다. 마지막으로 열쇠가 꽂혀 있는지 확인한 봉수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차량 한 대가 확보되었으니 다른 두 대를 구해야했다. 바로 걸음을 옮겨 SUV차량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되어 있는 중형차가 보인다.
“흐음..”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렸다. 앞 창문이 전부 검은색이 아닌 붉은 색으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저것을 다 닦아낼 여유 같은건 없다. 우리에겐 아직 뽑지 않은 카드가 많다. 걸음을 옮겨 역 근처로 다가갔다. 주욱 줄선 택시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좋아.”
한눈에 봐도 상태가 멀쩡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들은 대충 밖에서 살펴본 뒤 택시 3대를 이끌었다. 아까 보았던 SUV차량은 잊은지 오래다.
부우웅.
시동이 걸리며 매끄럽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택시. 신호나 도로를 전부 무시하고 사람들에게 되돌아간다. 운전면허를 따본 후 처음 차를 만지는거라 약간 흥분도 된다. 사람들에게 다가간 우리들은 사람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먼저 아저씨 차량에는 평범한 남자 둘과 우민이 형이 탔고 봉수 아저씨 차량에는 해인이와 어머니. 그리고 준우 아저씨가 탔다. 마지막으로 내 차량에는 평범한 여자 한명과 동생. 그리고 은혜와 남자가 탔다.
부우웅.
천천히 시동을 걸고 아저씨가 제일 선두 그 다음은 봉수 아저씨. 후미는 내가 따랐다. 처음 왔을 때와는 다르게 상당히 규모가 커져 있는 상태다. 준우 아저씨 말대로 이 사람들을 온전히 지켜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우선 역을 벗어나 큰 도로 쪽으로 차를 몬다.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주유소가 눈에 들어왔다. 차례대로 주유소 쪽으로 운행을 하기 시작한다.
“....”
차 안은 고요했다. 조수석에는 남자가 앉고 그 위에 은혜가 겹쳐 앉는 식이다. 뒤에는 동생과 평범하고 젊어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다. 무심한 표정으로 밖을 보는 동생과 달리 여자는 잔뜩 긴장한 얼굴이다. 조금이라도 건드린다면 울음을 터트릴 것 같다.
“걱정하지 마세요. 누나.”
“..네?”
“누나가 아닌가? 하하. 어찌되었든 우리가 꼭 지켜줄거니까요. 걱정하지마세요.”
“네에..”
내 말이 효과가 없는 것 같다. 여자의 표정은 여전히 그대로다. 녀석들에게 당한 것들이 너무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 탓인것 같다. 얼마가지 않아 주유소에 도착한 우리들은 나란히 차를 세워고는 한명씩 내렸다. 막상 주유소 기계를 만지려고 하니 머리가 멍해진다. 아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해줄게. 기다려.”
준우 아저씨의 목소리. 어느새 첫 번째 차량에 기름을 넣어주고 두 번째 차량에도 기름을 넣고 있었다. 좋아.. 남은건 컴퓨터로 알아보는 것뿐이다. 주유소 안쪽을 유심히 본다. 특별한 생명체의 반응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동생을 데리고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저벅. 저벅.
꽤 넓은 공간에 우리들의 발소리가 크게 울리는 것 같다. 빠르게 카운터로 도달한 우리들은 활짝 열려있는 문을 한 번보고는 창문을 통해 내부를 대강 훑어봤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대량의 핏자국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 거의 꺼져가는 모니터 앞에 섰다.
“깨끗하게 좀 쓰지..”
동생이 투덜거리며 마우스를 움직였다. 왜 그러지? 고개를 돌려 키보드를 보니 덕지덕지 붙은 피들 때문에 자판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동생은 인상을 찌푸리고는 검색 사이트에 들어가 충주 군부대를 검색했다. 하지만 나오는거라고는 ‘충주 부대찌개’가 전부였다.
“이런거에 나오겠냐.. 병무청에 가봐야지.”
내 말에 동생은 투덜거리며 병무청에 들어가 충주로 카테고리를 맞추고 이리저리 검색을 한다. 그러자 수루룩 여러 부대의 전화번호가 나왔다. 정확한 위치는 나오지 않았지만 대강 근처에는 다가갈 수 있는 비슷한 주소도 있었다. 카운터 주변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펜과 종이에 그것들을 다 받아 적은 후 빠르게 나왔다.
“다 됐어.”
어느새 마친 준우 아저씨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는 차에 올라탔다. 나는 빠르게 아저씨에게 다가가 종이를 내밀었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차를 출발시키기 시작했다. 나와 동생도 차에 탑승한 뒤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는 꺼져 있는 내비의 전원 스위치를 눌렀다.
띠딕.
기계음과 함께 켜지기 시작하는 내비. 잘됐다. 이거라도 있으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 같다. 택시 별로 내비가 다 설치 되어 있으니 아저씨도 크게 헤매지는 않을 것 같다.
부아앙.
점점 속도를 높이며 빠르게 도로를 질주해간다. 시내를 벗어나 한참 운행을 한 끝에 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법한 길로 차를 몰았다. 5분 정도 지나자 ‘00대대.’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인다. 드디어.. 안전한 장소로 온건가? 설레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구부정거리는 길들을 여러번 지나자 저 멀리 위병소가 눈에 들어온다.
부르르.
하나둘 차를 멈춰 세우고는 조심스럽게 나와 위병소로 다가간다.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보이는 자대 건물을 유심히 봐도 아무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아저씨는 빠른 걸음으로 위병 초소를 대강 훑어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여긴 아니야. 다른 곳을 가봐야겠어.”
우리는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부우웅.
다시 빠르게 이동하는 3대의 차량. 처음 들어왔던 길을 지나 옆으로 주욱 꺾어 차를 몰았다. 얼마나 몰았을까.. 다시 작은 골목길로 들어가는 아저씨의 차. 우리도 그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마찬가지로 ‘00대대.’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인다. 아까와는 다르게 직선인 길이 이어져 있어서 한결 차를 모는데 수월했다.
부르르.
서서히 멈춰서는 차. 저 멀리 보이는 위병소에는 세 명의 군인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우리는 느린 걸음으로 위병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세 명의 군인들은 우리가 다가오는 것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특별히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으나 확신할 수 있는건 그들이 우리를 반기는 눈치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서서히 군인들과 가까워진다. 제일 앞에선 아저씨는 가운데에 있는 중사에게 말을 걸었다.
“상황이 어떻게 되가고 있습니까?”
중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좋습니다.”
“..심각한 정도입니까?”
“예.. 많이 심각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들은 우리를 들여보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예상과 다른 전개에 우리들은 점점 속이 타들어갔다. 우리들이 갖고 있는 소총 때문에 그런 것인가?
“저희를 좀 도와주십시오..”
“..그럴 수 없습니다.”
“....”
중사의 얼굴은 아까전 아저씨가 남자를 향해 총을 쏘던 표정과 같았다. 그러자 뒤에 서있던 사람들이 나서며 항의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러는 법이 어딨어요?”
“국민을 지켜야하는게 군인들 아닙니까?!”
하지만 중사의 표정은 한결 같았다. 돌처럼 굳은 입술을 천천히 열며 말하는 중사.
“나라가 우릴 버렸습니다. 제가 왜 당신들을 지켜야하는거죠? 당신들 때문에 죽어나간 전우의 수를 셀 수가 없습니다.”
“그게 왜 우리 때문이라는겁니까!”
“괴물이 생겨 피해를 입은게 전부 우리들 때문이라는거에요?!”
사람들은 흥분하여 언성을 높였다. 그도 그럴 것이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기댈 곳이 남아 있지 않았다. 여기가 최후의 보루인 셈이었다. 물론.. 우리도 머지 않아 이들과 같아질테지만.. 중사는 예의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 돌아간다면 쏘지 않겠습니다.”
“....”
사람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중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게 소총을 잡은 손에 힘이 꽈악 들어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것인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던 김 대위의 그 군인정신이 이들에게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인가.
“이럴 수는 없습니다!”
“우리를 들여보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중사는 고개를 저으며 위병소 벽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삐익-
길게 울리는 소리에 우리는 멍한 표정으로 중사를 바라보았다. 이내 10초가 되지 않아 위병소 뒷길에서 10명의 중무장한 군인들이 튀어나왔다. 하나같이 위장을 단단히 한 상태였다. 빠르게 이쪽으로 뛰어오던 군인들은 우리를 보고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 중 제일 앞에 선 하사가 입을 열었다.
“박 중사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 하사. 이들은 감염되었어.”
박 중사의 충격적인 말에 우리들은 그대로 공황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러자 당황하던 이 하사도 표정을 사납게 굳히더니 총구를 우리 쪽으로 겨누기 시작했다.
“아.. 아니.”
당황해서 말도 안나온다. 감염자라니. 사람들이 그런 우리의 심정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말했다.
“저희 모습을 보시고 말씀하세요! 이게 어딜 봐서 감염된 상태라는거죠?”
그 말에 박 중사는 기다렸다는 듯 남자를 턱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몰골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
남자의 특성상 괴물과 완전히 일치 했기 때문에 박 중사의 오해를 산 것이다. 그것을 잘 풀어보려고 준우 아저씨가 한걸음 나서며 말했다.
“저기.. 그러니까 이게 말하자면..”
“닥치시오! 한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쏘겠소!”
살벌한 그의 태도에서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어 보였다. 우리들은 이를 악물고 서서히 뒤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서서히 그들과 멀어진다. 박 중사는 우리를 유심히 보더니 이내 표정이 일그러져갔다. 괜히 불안해진 마음에 우리들은 뒤를 돌아보았다.
“허억..”
“흑..”
저 멀리 좁은 길에 꾸물거리며 뭔가가 다가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잊을 수 없는 ‘붉은 색의 물결’이다. 우리들은 망설일 것도 없이 위병소 앞으로 뛰어가 그들에게 말했다. 그 중 한 여자가 박 중사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봐요! 이래도 우리가 감염됐다고 말할 수 있어요? 저 뒤에 있는 괴물들 좀 보라구요!”
“크윽..”
박 중사는 이를 악물고 전방을 계속 주시했다. 그 사태를 가만히 지켜보던 이 하사가 소대원들을 데리고 위병소 바로 앞까지 나가 진열을 가다듬었다. 한명씩 다닥다닥 붙어 일렬로 선 상태에서 가만히 녀석들을 바라본다. 박 중사는 분에 못이겨 몸을 부들부들 떨고는 여자를 거칠게 뿌리쳤다.
“꺄악!”
그 충격에 바닥에 나동그라진 여자는 두려움과 공포심을 못 이겨 그 자리에서 울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당신들이 전부 이리로 끌고 온거였군!”
그렇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박 중사와 그 옆 병사들도 이 하사가 선 대열에 나란히 합류했다. 남은 우리들도 서로 멀뚱히 보다가 점차 가까워지는 녀석들의 소리가 들려오자 머뭇거림 없이 그들 옆에 나란히 섰다.
철컥. 철컥. 철컥.
셀수도 없는 많은 소리들이 오갔다. 군인들은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K-2를 전부 착용하고 있었는데 개개인의 단독군장에는 작은 수류탄이 하나씩 꽂혀져 있었고 탄알집에도 모든 실탄들이 들어 있는지 꽤 두둑해보였다. 일제히 안전핀을 격발로 맞춘 그들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대기했다.
“기다려..”
박중사의 말. 아직 녀석들이 가까워지려면 멀었지만 찰나의 방심이 죽음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낮 시간인데도 저 정도의 수가 모여 이곳까지 활보할 정도라면 결론은 하나였다. 그 빌어먹을 우두머리 녀석이다.
“배..고파.. 크으.”
“고기.. 고기..”
가래가 잔뜩 끓는 목소리로 말하며 서서히 다가온다. 번뜩이는 붉은 눈은 낮이나 밤이나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안겨주기엔 충분했다. 박 중사는 그 녀석들을 언제까지고 내버려두지 않았다.
“사격!”
두두두두두.
번개와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귀가 금새 멍멍해지며 몸이 슬슬 떨려온다. 수많은 개인화기에서 내뿜는 불꽃들이 거침없이 녀석들의 살갗을 꿰뚫었다.
“끄아아아!”
“크아아아!”
“사.. 살려..”
엄청난 화력을 이기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녀석들. 그 와중에도 배고픔을 못이겨 쓰러진 동료들의 고기를 뜯어먹는 놈들도 있었고 괴물로 변신해 우리에게 다가오려는 녀석들도 있었다.
두두두두.
그러나 우리들의 총에는 자비가 없었다. 그렇게 5분도 안되는 시간동안 거리가 온통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박 중사는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고 그에 맞춰 모두가 탄알집을 분리했다. 익숙하지 않는 화약 냄새가 후각을 강하게 찔렀다.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부아아앙.
엄청난 바퀴소리와 함께 위병소 뒤쪽에서 레토나 한 대가 빠르게 다가오는게 보인다. 엄청난 소음의 총소리 때문일 것이다. 그대로 우리를 박을 기세로 빠르게 다가온 레토나는 사람들 바로 앞에 칼같이 맞춰서 멈췄다. 선탑자석이 열리며 베레모를 쓴 나이가 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내렸다. 계급을 보니 중령이었다. 굳은 표정으로 걸어오는 중령에게 박 중사는 경직된 얼굴로 한발 나아가 경례를 했다.
“충성!”
박 중사의 경례를 대충 받아준 중령이 앞에 깔린 수많은 시체들을 보며 말했다.
“습격인가?”
“....”
박 중사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중령도 그것을 다그치지 않았다. 묘한 대치 상태가 이어지자 이 하사가 조심스럽게 나서며 말했다.
“대대장님.. 그게 저 사람들이 괴물들을 데리고 온 것 같습니다.”
이 하사의 말에 대대장은 우리를 가만히 훑어 보았다. 일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매우 딱딱한 얼굴이었다. 대대장은 고개를 돌려 박 중사에게 다가가 자조적인 미소를 띄며 물었다. 상당히 빠르게 변하는 표정변화다.
“저번처럼 그런 상황인건가?”
“....”
“지휘관 말에 그렇게 침묵으로 대답하게 되어있나?”
“....”
상황이 점차 안좋게 흘러가는 것을 눈치챈 이 하사는 박 중사를 옆으로 밀어내며 대대장에게 말했다.
“대대장님 그게 아닙니다. 박 중사가 단지 오해를 한 것..”
짝.
경쾌한 소리와 함께 이 하사의 얼굴이 크게 돌아갔다. 일말의 신음성도 흘리지 않은 이 하사는 그대로 뒤로 물러나 고개를 숙였다. 모든 군인들도 고개를 숙인 상태였다. 익숙하지 않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우리들은 그저 멀뚱멀뚱하게 서서 대대장과 박 중사의 상태를 지켜볼 뿐이었다.
“사람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게 군인의 철칙 아니었나!”
쩌렁쩌렁한 대대장의 목소리에 모두가 움츠려들었다. 그러나 박 중사만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저런 인간들을 지키려다가 대대장님 아들과 제 아들이 그렇게 개처럼 죽어나간 겁니까?”
“박 중사!”
“말해보십시오! 저런 인간들이 과연 피 같은 자식들을 희생시켜가며 구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겁니까!”
짧은 대화를 통해 어렴풋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있었지만 자세한 내막은 역시 본인들의 입을 통해 들어아먄 할 것 같았다. 처음 무표정을 유지하던 박 중사의 표정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그건 대대장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서로를 못 잡아 먹어 안달이 난 것처럼 아무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위계질서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라고는 하지만 중령과 중사의 관계는 엄연한 지켜야할 선이 있고 따라야하는 법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둘의 모습은 그런 것과는 하등 상관이 없어 보인다.
“자네처럼 그렇게 과거에 연연하니 미래에 대비를 못하는거야.”
“....”
대대장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레토나 선탑자석으로 향했다. 우리들은 그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대대장은 선탑자석 문을 열며 이 하사에게 말했다.
“잘 모시도록 해.”
“충성!”
이 하사는 대대장에게 경례를 하고서 주변을 슬슬 정리하기 시작했다.
부우웅.
레토나의 시동이 걸리며 처음과 같이 빠른 속도로 위병소 뒤쪽으로 사라져버렸다. 박 중사는 신경질적으로 위병소 철문을 강하게 발로 차버리고는 레토나가 사라진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 버렸다. 이 하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아저씨에게 다가와 말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처음 저 남자를 보고 너무 놀라 단번에 믿어버렸습니다.”
“아.. 아닙니다.”
“정리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끝나는대로 막사로 모시겠습니다.”
“그러지요.”
우리들은 이 하사와 남은 군인들을 돕기 시작했다. 물론 길에 무수히 널린 괴물들의 시체 운반작업이었다. 비위가 약한 여자들은 위병소 뒤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게 했고 남은 남자들은 괴물들의 시체를 한 곳에 모으기 시작했다.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녀석들의 거친 털들과 단단한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감촉은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걸 다 어디로 옮기는겁니까?”
아저씨 말에 이 하사는 힘들게 괴물의 시체를 옮기며 말했다.
“5톤 차에 모조리 싣고 최대한 멀리 있는 곳에 아무렇게나 버립니다. 하지만 낮에 이정도의 수가 공격을 해온것은 처음이라.. 당황스럽습니다.”
“그렇군요..”
그게 하나의 존재 때문이라는 것을 이들은 모르고 있는걸까. 아무튼 우리는 무사히 쉴 곳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기적인 마음도 필요하다. 아직 그 사실을 알려서는 안될 것 같다. 20마리.. 30마리가 넘어가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하사는 이대로는 안되겠는지 군인 셋을 따로 불러 뭐라고 말했다. 곧 고개를 끄덕인 군인들은 위병소 뒤편으로 뛰어갔다.
“어딜 가는겁니까?”
“포크레인하고 차를 갖고 오라고 했습니다. 이대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진작에 부를걸..”
이 하사는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볼에 생긴 새빨간 손자국이 유독 크게 보였다. 많이 아팠을텐데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은 이 하사가 새삼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대대장에게 맞은 충격 때문에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나자 꽤 커다란 규모의 포크레인과 5톤 트럭이 위병소 밖을 나왔다.
지이잉.
서서히 움직이는 포크레인과 트럭. 그 뒤로는 작업이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1시간도 안되어 끝나자 이 하사는 포크레인을 다시 보내고 두 명의 군인을 따로 선출해 트럭 옆에 타게 한 후에 출발을 시켰다. 거친 엔진 소리를 내며 부대와 점점 멀어져가는 트럭.
부우웅.
서서히 멀어져가는 트럭. 녀석들의 시체를 치우긴 했지만 남은 핏물들은 어쩌지 못했다. 일렬로 된 흙길이 온통 붉은 색으로 염색이라도 된 것처럼 변해 있다. 그것을 가만히 보던 우리들은 어느새 까맣게 된 손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붉은 피에 손이 염색이라도 된 것 같았다. 끈적거리는 이 느낌..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았다.
“고생했습니다. 들어가시죠.”
이 하사는 앞으로 서며 우리들을 안내했다.
“우웩!”
그렇게 걷는 도중 봉수 아저씨가 그 자리에서 먹은 것들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젊은 남자 둘도 구토를 해댔다. 이 하사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세 사람을 보고 말했다.
“적응하기 힘드실테지만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제서야 주위를 가득 매운 비릿한 피 냄새가 머리가 아플 정도로 강해져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거기에 화약 특유의 냄새까지 섞여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분명 구토를 유발하는 냄새가 분명했다. 더군다나 세 사람은 시체를 직접 만지고 운반했었다. 그 과정에서 참고 참았던 것들이 한순간에 올라온 것이다.
“허억.. 허억.”
간신히 진정을 한 세 사람은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하사도 다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준우 아저씨와 동생은 허옇게 남은 위액들을 대충 흙으로 덮어 버리고는 뒤를 따랐다. 천천히 위병소 뒤쪽으로 가자 앉아 있던 해인이와 어머니가 봉수 아저씨의 몰골을 보고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괜찮아..”
그렇게 말한 봉수 아저씨는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젊은 여자가 따라갔고 멍하니 서있는 은혜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자 준우 아저씨가 얼른 뛰어가 손을 잡고 데려오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레토나가 갔던 바퀴 자국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저 멀리 막사로 보이는 건물이 한 눈에 쏙 들어왔다. 곳곳에 세워진 레토나 여러대와 앰블런스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아저씨가 이 하사에게 물었다. 이 하사는 힘없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꽤 된일.. 이라고 해야 하나요? 괴물들이 본격적으로 활개를 시작하기 전날.. 각 부대에 비상소집령이 내려졌었습니다. 곧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했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부대에 최소 운영 인원들만 제외하고는 모든 병력을 최전방으로 투입시켰습니다. 그런데..”
“..연락이 없군요?”
“예.. 처음에는 잘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뚝 하고 끊겼습니다. 그 뒤로 그 많은 병력들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전쟁.. 현재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로 나오고 있는 북한과의 전쟁인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을 먹이로 인식하고 돌아다니는 괴물놈들을 말하는것일까. 중요한것은 그들과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것이고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건 분명 예삿일이 아니다. 뭔가가 일어나고 있는게 틀림 없다. 분명.. 뭔가가 있다.
막사 내부는 내가 생활하던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층에는 좌우로 봉쇄된 입구가 보였는데 중앙 통로만 이용하는 것 같았다.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고 주욱 좌우로 뻗은 통로를 보니 제각각 푯말들이 붙어 있다. P.X나 기타 행정부서들 그리고 지휘통제실이 있었다. 걸리적거리는 물건들을 전부 치웠는지 1층 내부가 휑했다.
“일단 쉬는게 우선일 것 같군요. 2층으로 올라가셔서 아무 생활관을 쓰시면 됩니다. 보급품은.. 김 상병!”
이 하사에 말에 소총을 점검하던 김 상병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 하사는 김 상병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사람들 좀 부탁해.”
“예. 따라오시죠.”
김 상병은 계단위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하사는 다른 소대원들을 이끌고 지휘통제실이라고 적힌 곳으로 들어갔다. 저벅. 저벅. 문득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서 느낀건데 모든 창문이란 창문을 다 검은 색으로 막아 놓은 것이 눈에 보였다. 나는 그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김 상병에게 물었다.
“창문들은.. 왜 다 막아 놓은거죠?”
“아.. 별로 좋은 광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아 있는 병사들 사기도 있고 해서..”
김 상병은 그렇게 대답을 회피해버렸다. 뭐, 상관없다. 일단은 이 지독한 피로를 떨쳐내고 싶었고 시큼하게 나는 땀냄새를 지우고 싶었다. 2층으로 올라와 김 상병은 곧장 왼쪽으로 꺾었다.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보니 철문으로 굳게 봉쇄되어 있었고 3층으로 올라가는 통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돌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왼쪽에 있는 행정실과 전방으로 주욱 위치한 생활관의 푯말들이었다. 그 옆으로 샤워실, 세면장, 세탁실이 있었다.
“우와..”
군대 시설을 처음 와보는 여자들은 나지막한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 중에서 가장 활발한 것은 단연 은혜였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이곳저곳을 누비기 시작하는 은혜. 나는 김 상병에게 양해의 말을 해야만 했다.
“죄송합니다.. 저 친구가 정신지체아라서요.”
“괜찮습니다. 이쪽 생활관에서 보급품들을 쓰시면 되고 아무데서나 쉬시면 됩니다. 그럼..”
그렇게 말한 김 상병은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고요한 2층 내부에는 은혜가 뛰어다니는 발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치이잉. 철컹.
그 때 행정부 안에서 쇠문을 여닫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한 사람이 우리를 보고는 놀란 기색을 했다. 군복 상의 카라의 계급을 보니 중위였다. 그는 곧 옅게 웃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생존자들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본의 아니게 신세좀 지게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인걸요. 푹 쉬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말한 중위는 이곳저곳에 널린 서류더미들을 들추기 시작했다. 상당히 바쁘게 움직이는걸로 보아 우리가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서둘러 김 상병에 말한 보급품이 있는 생활관으로 들어가 각종 속옷류들이나 수건 군복들을 챙겼다. 이런 일에 익숙치 않은 여자들에게는 우리가 세세히 알려줘야만 했다.
“해인아. 은혜도 좀 챙겨줄래?”
준우 아저씨 말에 해인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체형도 거의 비슷해서 얼추 고르면 맞을 것 같았다. 품 안에 가득 보급품을 안고서 아저씨들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일단 거지꼴을 면해야 하니까.. 씻도록 합시다. 여자분들께서 먼저 샤워실에서 들어가시고 남은 우리들은 바로 옆 생활관에서 정리하도록 하자구.”
저마다 쉬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들었기 때문일까.. 그 말에 사람들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인이는 저 멀리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뛰어다니는 은혜의 손을 잡고 샤워실로 들어가버렸다. 남은 우리들은 바로 옆 생활관으로 들어가 가져온 보급품들을 비어 있는 침대 위에 대충 올려 놓고 각자 배정된 침대 위로 몸을 뉘었다. 물론 은혜를 끝까지 따라가려는 남자를 강제적으로 잡아둬야만 했다.
“흐아아아.”
몸이 그대로 녹아내릴 것 같았다. 기지개를 크게 펴고 한숨을 크게 내쉰다. 하얀 백색의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모포에서 나는 텁텁한 냄새가 왜 이렇게 향기롭게 느껴지는 것일까.
“일단 여기까지 오는데 성공했어..”
그렇게 중얼거린 준우 아저씨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 뒤에 우리들이 할 일들은..? 소총과 실탄을 챙기고 다시 부산으로 떠나야하는 것인가. 아직도 유람선을 운영하고 있을까. 우리가 갔을 때 이미 늦어버리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때 아저씨가 몸을 반만 일으켜 두 남자와 봉수 아저씨를 보며 물었다.
“우린 여길 떠날겁니다. 당신들은 어쩌겠소?”
그 말을 들은 세 사람은 서로를 멀뚱멀뚱 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중 봉수 아저씨가 대표로 말했다.
“여기 남겠습니다. 어딜 가시려고 그러는겁니까?”
“부산에 제주도로 운행하는 유람선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위험한 일입니다. 여기가 더 안전하지 않습니까? 여기에 우리와 같이 있는게..”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정한일입니다.”
봉수 아저씨는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곧 여러분들과 헤어지게 되겠군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받았던 은혜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저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세 남자의 말을 들으니 왠지 가슴이 울적해진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걸까. 아빠가 말한 것들은 전부 사실인걸까. 그리고 아빠의 정체는 대체 뭐지..? 어떻게 그날 아무런 제재 없이 녀석들을 뚫고 온 것일까. 생각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머리가 지끈거린다.
“후우.”
의문의 꼬리를 잡으면 잡을수록 주욱 늘어나 아무것도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저..”
20분 정도 지났을까.. 해인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촉촉이 젖은 머릿결과 발그레하게 생기된 볼. 샤워를 마친 것 같았다. 손을 완전히 덮어버린 소매를 보아하니 군복이 너무 큰 것 같았다. 우리들은 몸을 일으켜 따로 두었던 보급품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응. 알았어.”
내 말에 해인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 생활관으로 걸어가는 것 같았다. 작고 폭이 좁은 발소리가 그 증거다. 채비를 마친 우리들도 생활관에서 나와 샤워실이라고 적힌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문득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어설프게 군복을 차려 입은 여자들이 낑낑대며 군화를 신고 있었다. 버스에 있던 등산복을 챙겨올 걸 그랬나.. 하긴 그 땐 그럴 겨를조차 없었으니까..
철컥.
샤워실 문을 열자 사우나 특유의 냄새가 우리를 반겼다. 매일 화약과 피비릿내를 맡은 우리들에게는 향수나 다름 없었다. 훌렁훌렁 대충 옷을 벗고 샤워실 안으로 들어간다. 샴푸와 바디린스 비누 칫솔 치약 등 많은 도구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공기가 후덥지근한 것을 보니 뜨거운 물이 나오는 듯 싶었다. 아, 지금 밟고 있는 물들이 미지근한 것을 보아하니 확실하게 나오는 것 같다.
쏴아아.
샤워기를 틀자 기다렸다는 듯 뜨거운 물들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온 몸을 가볍게 두드리는 수압에 기분이 좋아진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그대로 물을 받아들인다. 온 몸에 찌든 때가 한 번에 사라지는 느낌이다. 근처에 있는 샴푸를 짜내 머리를 벅벅 긁어낸다. 기름기가 좌악 빠지는 것이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 같다. 어느 정도 거품을 낸 후에 물로 그것들을 씻어 낸다.
“푸하.”
머리가 한결 개운해진 것 같다. 이어 비누로 세수를 하고.. 타월로 바디 샴푸로 거품을 내 온 몸 구석구석을 닦아 낸다. 검고 붉은 핏물들이 샤워실 바닥에 스멀스멀 모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배수구 쪽으로 쭈욱 빠진다. 마치 우리들이 저지른 살생의 흔적이라도 되는 것 같아서 마음 한켠이 씁쓸해진다.
벅. 벅.
이제 자주 씻을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구석구석 닦아내고 물을 오랫동안 몸을 씻어냈다. 대충 정리가 끝나자 우리들은 차례차례 샤워실에서 나와 따로 두었던 수건으로 물기들을 쫘악 흡수하고 보급품들을 입기 시작했다.
“오, 이제 보니 신형이네 이거?”
준우 아저씨가 신형 전투복을 이리저리 훑어 보며 씨익 웃었다. 나 때에도 저런 전투복은 아니었는데 참 많이 바뀐 것 같았다. 적당히 군복을 차려 입은 다음 군화를 신기 시작한다. 예전 신었었던 무거운 구형 군화가 아니었다. 상당히 가벼워서 활동하기가 편해보였다.
“아, 개운하다. 정말.”
제일 먼저 옷을 차려입은 동생이 그 말을 하고 샤워실 밖으로 나갔다. 휑. 차가운 바람이 샤워실 틈으로 들어온다. 볼에 닿은 차가운 한기가 나쁘지 않다. 모두 군복을 차려입은 우리들은 밖으로 나가 여자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아직 익숙치 않은 군복과 군화 때문에 쩔쩔매는 여자들을 도와주고 저마다 남은 침대에 앉았다.
“씻고 나니 정말 몰라보겠군요.”
아저씨의 농담 섞인 말에 사람들은 옅게 웃기만 했다. 아저씨는 몇 번 헛기침을 하고서 여자들을 보며 말했다.
“우린 곧 떠날겁니다. 여기 남자분들은 여기에 남는다고 했어요. 여러분들 생각을 듣고 싶군요.”
아저씨 말에 여자들은 볼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해인이 어머니가 그 중 대표로 말했다.
“우리도 여기에 남겠어요.”
“그렇군요.”
사람들은 드디어 ‘쉴 곳이 생겼다.’라는 사실 때문인지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가만히 있던 해인이가 아저씨를 보며 말했다.
“은혜 언니도 데려가시나요?”
짧은 기간이지만 그간 정이 많이 들었는지 해인이의 얼굴에서 아쉬움이 진하게 뭍어났다. 아저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해인이는 우울한 얼굴로 은혜의 손을 잡았다. 곧 해인이의 손을 뿌리친 은혜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성한 걸음으로 생활관 밖을 나갔다. 주위를 더 둘러보고 싶기 때문이다.
“발이 너무 작아서 걷는데 불편하겠군..”
은혜의 걸음을 보며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군화가 다른 운동화보다 튼튼하게 오래가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당분간은 은혜에게 다른 것을 신게 하는 것은 좋지 않아 보인다. 그러자 우리 옆에 있던 남자도 바로 은혜를 따라 나섰다. 이상적인 체격을 갖춘 남자라 그런지 군복이 상당히 잘 어울렸다. 단지 저 검은 피부와 붉은 눈을 제외한다면 엄연한 사람으로 보겠지만.. 아저씨는 다시 사람들에게 말했다.
“일단 푹 쉬는걸로 합시다. 추후에 우리들은 떠나기로 되어 있으니 내일 바로 떠나도록 하고.. 여러분들은 여기에 계속 남아 군인분들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사람들은 아저씨와 우리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언제까지나 여기가 완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최종적으로 가게 될 제주도는 안전하다는 뜻인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날 보았던 아빠의 표정에서는 한치의 거짓도 없었다. 내가 알던 아빠가 맞다면 충분히 믿어 볼만하다.
“그럼..”
아저씨는 몸을 돌려 여자들이 편히 쉴 수 있게 생활관 밖으로 나갔다. 남은 우리들도 그 뒤를 따랐고 제일 마지막에 나온 동생이 문을 가볍게 닫아 주었다. 그런 우리들에게 행정부에서 나온 중위가 느리게 걸어오며 말했다.
“대대장님이 뵙고 싶어하십니다.”
“알겠습니다. 쉴 사람들은 쉬도록 하십시오.”
아저씨 말에 남겠다고 한 사람들은 전부 우리가 정한 생활관으로 들어가버렸다.
“1층에 지휘통제실 옆 C.P실이 있을겁니다. 거기로 가십시오.”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한 중위는 다시 행정부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우리들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1층으로 내려왔다. 중앙 통로로 보이는 전방에는 넓은 연병장에 아무렇게나 서있는 차량들이 있었고 저 멀리 위병소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이 전부였다. 그리고 희끄무레하지만 확실히 보이는 붉은 색의 길. 녀석들과 생사를 건 사투의 흔적이다.
저벅. 저벅.
지휘통제실을 지나 중위가 말했던 C.P 라고 적힌 문 앞에 멈춘 우리들. 아저씨가 가볍게 두 세번 노크를 하자 아까 들었던 음성이 들려져 왔다.
“들어오시오.”
아저씨는 천천히 문을 열고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들도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10평 정도 되보이는 내부. 중앙에 커다랗게 놓인 테이블 위에 커다란 지도가 있었고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사무용으로 쓰는 책상 두 개가 붙어 있었다. 컴퓨터가 있긴 했지만 전원이 꺼진 상태였다. 그리고 테이블 위쪽 창가에는 뒷짐을 쥐고 서있는 대대장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까 일은 감사했습니다.”
아저씨 말에 대대장은 몸을 돌려 우리를 보고는 테이블 근처에 있는 의자들을 권했다. 우리는 사양하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곧 대대장도 의자에 앉아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밖이 저렇게 돌아가도 여기까지 살아오신 것을 보면 분명 운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예.. 그렇지요.”
대대장의 말투는 우리에게 관심이 있다기 보다 무언가를 궁금해하는 눈치였었다. 그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아저씨가 먼저 말했다.
“그.. 남자 때문에 그러시는겁니까?”
“..얘기가 빠르군요.”
“그건 저희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길에서 쓰러진 사람을 구해준 것 뿐인데 저런 상태였습니다.”
“그렇군요.”
아저씨는 은혜 덕분에 저렇게 된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은혜에 대해 대대장이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일이 크게 틀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대대장은 아저씨의 거짓말을 그대로 믿는 눈치였다. 일단 우리에게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협상을 해야 한다. 가만히 있던 동생이 대대장을 보며 물었다.
“그러고보니.. 지휘관이신데 나가지 않으셨네요?”
그 말에 대대장은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작은 미소에 쓸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착각이었을까.
“이라크 파견을 막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일어나는 일이었지요. 자대에 돌아왔을 때 이미 이렇게 된 꼴이었습니다.”
“..그럼 이라크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있나요?”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지요.”
해외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만 국한되게 일어난다는 말이 되는건가? 아니다. 어설픈 추측으로 모든 것들을 결정지을 수 없다. 지금도 시시각각 전 세계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대대장은 무거운 분위기를 깨려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어찌되었든 여러분들이 이리로 온 이상 최대한 지켜드리겠습니다. 물론 근무나 사격훈련에서 예외는 없지만..”
“아뇨.. 저희는 떠날겁니다.”
아저씨의 말에 대대장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어디로 간다는 겁니까?”
“..일단은 부산으로 갈 생각입니다만.”
“부산이라.. 부산.”
대대장은 팔짱을 끼고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굵게 자라 있는 콧수염과 턱수염이 그의 강인한 인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대대장은 이내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듣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 유람선이 아직까지 운행을 하고 있을지..”
“최소한의 희망을 거는거죠.”
“알겠습니다. 모두 떠나는 겁니까?”
“아닙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과 아까 보았던 검은 피부의 남자. 그리고 제 딸입니다.”
아저씨 말에 대대장은 선선히 수긍했다. 이제 중요한 부탁을 할 차례였다. 아저씨는 잠시 입을 다물고 헛기침을 몇 번했다. 그 미묘한 차이를 대대장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먼저 입을 열었다.
“필요한건 무기겠지요.”
“그렇습니다만..”
“어차피 미재고로 잡힌 총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줄 정도는 되지요. 이 마당에 군 재산 갖고 뭐라 할 사람도 없고..”
“..그럼.”
대대장은 흔쾌히 아저씨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못할 것 없지요. 탄약도 넉넉히 있으니 챙겨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제야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선뜻 우리에게 무기를 내준 대대장이 천사처럼 보였다. 이제 조금이나마 부산에 가기 수월해질지도 모르겠다. 벌써부터 부산에 있을 유람선에 몸을 맡기는 모습이 상상된다. 하지만 대대장은 그렇게 선뜻 내줄 마음이 없었나보다.
“다만..”
“다만?”
대대장은 처음 박 중사에게 보였던 얼굴로 우리들에게 말했다.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긴다는 가정하에 말이죠.”
“밤마다 녀석들을..?”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밤에 최적화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예상이 들어맞는 다면 필시 우두머리 녀석은 밤에 이곳으로 올 것이다. 처음 우리 집은 습격하던 그 날처럼.. 수많은 녀석들을 이끌고 오겠지. 이번에는 기필코 막아야 한다. 그 빌어먹을 집념 하나로 우리를 얼마든지 사지에 내몰 수 있기 때문에 오늘만큼은 녀석의 숨을 끊어야 한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마침 해도 저물어가니.. 있는 힘껏 돕겠습니다.”
“녀석들이 본격적으로 오는 시각은 대개 20시나 21시부터입니다. 그 전까지는 잠을 자두십시오. 식사는 행정부에 있는 녀석에게 말하시면 될겁니다.”
대대장은 일어나지 않고 우리에게 말했다. 그의 두 눈은 상당히 지쳐있었다. 큰 희망을 갖고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아직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서둘러 C.P실에서 나와 2층으로 올라와 행정부에서 열심히 서류를 뒤적거리는 중위에게 말했다. 바쁘게 일하는 중위를 보며 동생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식사를.. 말하면 준비해주신다고 해서.”
“아!”
그제서야 뭔가 생각난 듯이 중위가 행정부 다른 공간으로 뛰어갔다. 부스럭 부스럭. 아무래도 지금 밥을 먹고 저녁때까지 푹 자둬야 녀석들에게 제대로 대항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깄습니다. 지금은 이거 밖에 없네요.”
중위가 가져온 것은 컵라면과 식은 밥이었다. 우리들은 그것을 감사히 받아들었다. 곤란해 하는 중위를 보며 준우 아저씨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정도도 과분합니다. 감사합니다.”
“예.”
중위는 다시 서류더미에 파묻혔다. 대체 뭘 찾고 있는거지? 지금은 총을 들고 만약에 사태를 대비하는 것이 좋지 않나? 어쨌든 우리는 라면을 먹기 위해 복도 끝에 있는 정수기 쪽으로 걸어갔다.
저벅. 저벅.
걸어가면서 여자들이 자는 방을 힘끔 보니 모두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은혜도 어느새 침대 위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남자는 그 옆에 서서 가만히 은혜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걸 가만히 보던 동생이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남자를 끌고 나왔다.
“일단 먹고 나중을 대비하자. 너도 뭐 좀 먹어야 힘을 쓸거아냐.”
그 말에 남자는 별다른 항의 없이 우리를 따랐다. 정수기 앞에서 차례대로 라면에 물을 붓고 다시 우리 생활관으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 앉았다. 군화를 벗고 최대한 편하게 앉아 라면이 익기만을 기다렸다. 아저씨는 다른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총은 쏠 줄 아시겠죠?”
“군대에 다녀왔으니 알지요.”
“실전과는 많이 다를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세 사람의 표정은 결연했다. 마지막 안식처인 이곳을 꼭 지켜야겠다는 그런 각오가 느껴진다. 우리도 오늘 하루만 버티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 충분히 우두머리의 공격을 막아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전보다 인원이 훨씬 많았고 경험이 있는 우리들과 여러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 전문병력들이다. 충분히 해볼만하다.
라면이 익을 때가 된것 같다. 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대충 면을 젓자 부드럽게 면들이 갈라진다. 몇 번 대충 휘젓고 입으로 가져간다.
후룩. 후루룩.
라면 먹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나중에 있을 일에 대비라도 하는 것일까. 극도로 긴장한 것일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라면을 비워내고서 찬밥을 대충 말아 컵라면을 들고 젓가락으로 퍼먹는 식으로 우리들의 식사가 끝났다. 포만감이 가득한 것을 느끼면서 그대로 몸을 뉘었다.
“하아암.”
5~6시간뒤에 생사를 건 전투를 해야하는 상황이지만 이상하게도 잠이 잘 온다. 그간 제대로 쉬지 못해서인지 눕자마자 스르르 힘이 풀린다. 머리가 점점 멍해지면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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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잤을까.. 번쩍 눈이 떠진다. 일어나서 눈을 몇 번 깜빡거리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문 틈으로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아하니 저녁 시간대에 이른 것 같았다. 침대 밑에 있는 군화를 신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행정부와 여자들이 있는 생활관을 제외하고는 2층 전체가 어두웠다. 행정부에는 아직 그 중위가 있을까.. 느리게 행정부 쪽으로 걸어간다.
“....”
혼자 문서 더미와 씨름을 하던 중위가 고개를 숙이고 잠들어 있었다. 그것을 가만히 보던 나는 문득 중위가 무엇을 그토록 찾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발소리를 최대한 줄이고 아무렇게나 널린 서류들을 대충 눈으로 훑어 보았다.
“흐음..”
그리 중요해 보이는 서류들은 없었다. 여러 장의 비문들이나 계획서.. 부대 일지 등이 전부다. 서서히 중위에게 다가가 끌어 안다시피 한 서류를 가만히 본다.
“!?”
이건.. 백신 보급? 그에 해당하는 내용은 중위가 완전히 가리고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한가지 확신할 수 있는건 이 부대에서 뭔가 알아낸 것이 틀림없다는거다. 이 종이를 찾으려고 그 많던 서류들 사이에서 씨름을 해왔던건가? 아니야. 애초에 이런 중요한 사항의 문서라면 쉽게 내버려 둘리가 없다.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거지? 중위를 깨워 당장에라도 묻고 싶지만 순순히 답해줄 것 같지도 않았다.
천천히 몸을 돌려 행정부에서 나와 여자들이 있는 생활관 쪽으로 걸어갔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는데 모두 깬 상태였다. 언제 일어났는지 봉수 아저씨네 가족은 서로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언제나 그렇듯 남자는 은혜 곁에 서서 가만히 내려다 보기만 할뿐이었다.
저벅. 저벅.
희미하게 들리는 발소리. 고개를 돌리자 저 끝에서 유리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걸어온다. 어두운 복도였지만 특유의 발걸음과 덩치로 누군지 구별할 수 있었다. 바로 준우 아저씨와 동생이었다. 나는 둘에게 다가갔다.
“어디 있다 왔어?”
내 물음에 동생은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뒤에 넓은 테라스가 있더라구. 담배 피고 왔지.”
그 말대로 동생과 준우 아저씨 몸에 미약하게나마 담배의 냄새가 났다. 나는 두 사람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약간 숙이고 말했다.
“아까.. 행정부에서 내가 뭔가를 봤거든?”
“응?”
“백신.. 백신 보급이라고 적힌 종이를 봤었어.”
내 말에 둘은 어둠속에서도 보일 만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일단 둘을 진정시키고 말을이었다.
“근데 이상해.. 그런거라면 대대장도 알고 있을테고 우리들에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준우 아저씨는 행정부를 힐끔 보고는 내게 말했다.
“혹시 예전 신종플루가 터졌을 때 나누어주던 그 백신을 말하는거 아닐까?”
“..그 백신요?”
“그래. 만약 백신이 나왔다면 정부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파를 했겠지.”
“하지만.. 그 백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천분의 일 확률이라고..”
내 말에 가만히 있던 동생이 갑자기 뭐가 생각난 듯 박수를 치며 말했다.
“대충 알 것 같다. 그 많은 임상실험을 하기 위해 군인들을 모조리 이용한거야.”
“..그건 좀 억지가 아닐까.”
“아냐. 생각해봐. 거기서 후유증이 있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 못가고 죽었다고 했잖아. 게다가 전쟁에 나간 군인들 대부분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어. 만약 북한과 전쟁이 났다고 쳐. 그렇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전혀 다른 군인들은 보지 못했잖아? 우민이 형은 뒤에서 은밀히 움직이는 군인들이라 그렇다 해도.. 우리와 우호 관계에 있던 미군의 모습도 보이지 않잖아?”
준우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가만.. 듣고보니 그렇기도 하고.. 전쟁이 나면 먼저 미사일부터 날리기 마련이야. 부산까지도 닿는 그 장거리 미사일들이 우리가 살던 동네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어. 뭐가 터지기는 커녕 녀석들만 우글거렸지. 진우 말대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걸수도 있겠다.”
“..그럼 그 많은 인원들을 전부 어디다가 수용한단 말이에요. 그것도 중무장을 한 군인들을.”
내 말에 둘은 할 말이 없는 듯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내 직감은 신종플라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백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중위가 뭔가를 숨기고 있거나 대대장이 우리를 속이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복잡하다. 이 사실을 아저씨에게 말해야만 할까.
“됐어. 지금은 무사히 오늘 밤을 보내는 것부터 생각하자.”
그렇게 말한 준우 아저씨는 앞으로 걸어갔다. 동생도 나를 힐끔 보고는 준우 아저씨의 뒤를 따랐다. 저 멀리 환하게 빛나는 행정부를 가만히 바라본다. 분명.. 뭔가가 있을 것 같다. 정부의 유일한 무력이 군인들인데 그렇게 쉽게 버릴 리가 있나?
“빨리 와. 꾸물대지말고.”
준우 아저씨 말에 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채 그 뒤를 따랐다. 다시 우리들이 있던 생활관으로 가니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모두 일어나 있는 상태였다. 잠을 푹 잔듯한 얼굴이다. 그에 맞춰 처음 우리를 안내해주었던 김 상병이 문 앞으로 다가왔다.
“준비하실 시간입니다.”
드디어 때가 온건가. 우리들은 천천히 몸을 움직여 김 상병의 뒤를 따랐다. 행정부에서는 중위가 여전히 잠들어 있다. 나는 내 앞에서 천천히 가고 있는 김 상병에게 물었다.
“저 중위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멈칫. 잠시 걸음을 멈춘 김 상병은 그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평범한 중위입니다.”
“저분은 매일 저렇게 지내는건가요?”
“그게 저 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지금 상황과 동떨어져 있다. 녀석들이 난무하는 와중에 서류더미들 사이에서 살아야하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역시.. 뭔가 중요한 것을 숨기고 있는게 틀림 없다. 그리고 박 중사의 말도 걸렸다. 우리 같은 사람들 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죽었다고 말했었다. 왜? 아들도 군인이었나?
“후우..”
차츰차츰 거대한 베일을 벗겨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진다. 1층으로 내려가자 준비를 마친 군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20명 조금 남짓. 하나같이 모두 중무장을 한 상태였다. 그 중 제일 선두에 서있던 이 하사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총과 실탄을 넉넉히 준비해뒀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감사의 표시를 하자 이 하사는 겸연쩍게 웃으며 다른 군인들에게 말했다.
“너희 둘. 이분들 총이랑 탄약 따로 빼둔거 가져와라.”
군인들은 재빠른 동작으로 지휘통제실로 들어가 K-2소총과 실탄이 담겨져 있는 크로스백 비슷한 걸을 가져왔다. 우린 그것을 적당히 나누어 가지고는 소총에 실탄을 삽입했다.
철컥. 철컥.
맑은 소리가 난다. 우리들이 준비를 마칠 동안 가만히 지켜보던 이 하사가 말했다.
“밤은 녀석들의 무대입니다. 작은 방심 조차 용납이 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합니다.”
그 말에 아저씨는 보이지도 않는 깜깜한 전방을 가만히 보며 말했다.
“생각보다 부대가 넓을텐데 이 인원들로 지킬 수 있는겁니까?”
“위병소를 제외한 나머지 구역 모두 지뢰와 부비트랩을 충분히 설치해 놨습니다. 녀석들도 처음엔 산 쪽으로 오다 크게 당하고 난 다음부터 위병소 쪽에서 많이 기웃거립니다.”
“그럼 20명 전부 위병소에서 대기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전부 외곽쪽을 순찰하고 있죠. 10명 단위로 오전오후로 풀타임으로 근무를 서고 있지요.”
지금은 20명인데..? 뭐지? 그런 우리들의 표정을 읽었는지 이 하사가 말했다.
“오늘은 왠지 무사히 보내기 힘들 것 같다고 대대장님이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전 병력이 투입하기로 했지요.”
우린 대대장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있는거지? 단순히 눈치가 빠른건가? 아니면 낮의 일을 보고 그렇게 판단한걸까. 아아, 행정부의 일 때문에 모든 것에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이러면 안된다. 일단은 오늘을 무사히 넘기는데 최선을 다하고 다음날 부산으로 가는 것을 우선적으로 해야한다.
“자, 그럼 가시지요.”
이 하사는 우리를 안내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뒤를 20명의 군인들이 바로 뒤따르고 남은 우리들은 제일 후미를 맡았다. 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어둠속을 군인들은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자연스럽게 걸어나간다.
저벅. 저벅. 저벅.
수많은 발소리만 들린다. 우리도 최대한 뒤처지지 않게 그 뒤를 바싹 붙었다. 서서히 눈이 어둠에 적응이 되자 앞서 걸어가는 군인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대충 주위를 둘러보니 연병장을 벗어나 다른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녀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긴장이 된다.
야-옹.
고양이 소리에 흠칫 놀란다. 후우.. 망할 고양이. 다시 묵묵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군화가 땅에 닿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저 멀리 우거진 산이 마치 커다란 괴물의 등 같아서 오싹 소름이 돋았다. 왜 이러지? 필요이상으로 떨고 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게 아니었나?
‘위험해.’
마음속에서 말하는 소리에도 크게 놀란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옆에서 걷고 있는 동생을 바라본다. 역시 한결같은 표정으로 묵묵히 걷고 있다. 정말 녀석은 이런 때일수록 심각하게 침착해지는 것 같다. 그런 녀석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된다.
저벅. 저벅.
걷는 소리가 점차 희미해진다. 앞을 보니 군인들이 멈춰서고 있는게 들어왔다. 그에 맞춰 멈춘 우리들도 느리게 숨을 쉬며 주위를 경계했다.
사라라락.
바람에 휘날리는 나무들 소리에 긴장감이 더해져간다. 스르륵. 군인들이 서서히 앉기 시작한다. 우리들도 서있기 뭐해서 바로 바닥에 앉았다. 딱딱하고 자잘한 느낌.. 모래로 된 길 위인가. 그 중 제일 앞서 가던 이 하사가 우리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저.. 산 보이십니까?”
“예?”
이 하사가 가리킨 곳을 보지만 우리들의 눈에는 그저 어두운 공간일뿐이었다. 이 하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손가락을 들어 한 곳을 가만히 가리켰다.
“저 곳.. 잘 보십시오.”
우리는 그 말에 집중적으로 이 하사가 가리킨 곳을 봤다. 어두운 산기슭..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과는 다르게 유독 한 군데가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언뜻 보이는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불빛. 빨간.. 녀석들의 특징인 그 눈이다. 어떻게 발견한거지? 우리들의 표정을 가만히 보던 이 하사가 말을이었다.
“저런 식으로 우리를 지켜보는겁니다. 녀석들도 멍청하지 않아요. 저러고 있으면서 서로 뭔가를 주고 받습니다. 물론 다가오지는 못하지요. 그 앞에 무수히 많이 깔린 지뢰들과 부비트랩을 맨 몸으로 받아낼 자신이 없을테니까요.”
“저기서 뭐하는거죠?”
“모릅니다. 그냥 저렇게 우리를 지켜봅니다.”
동생도 눈을 찡그려가며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더니 이내 녀석이 있는 곳을 찾은 듯 이 하사에게 물었다.
“죽여야 하지 않나요?”
“아뇨.. 밤에 퍼지는 총소리는 생각보다 길어서 다른 녀석들까지 끌어올 수가 있습니다.”
“그럼 저렇게 방치하는거에요?”
“딱히.. 우리에게 해를 가하지도 않고 해서 일단은 두고 있습니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쉰 다음 다시 일어나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힐끔. 이 하사가 가리킨 곳을 바라본다. 다시 어두운 공간만이 눈에 들어온다. 제길.. 그 어두운 털이 산속에서는 보호색으로 작용하고 있었군.
저벅. 저벅.
걸음을 옮긴다.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인다. 가만히 보니 처음 우리를 반겨주던 위병소였다. 한 바퀴정도를 돈 것일까. 어두운 곳에서 빛을 본 탓인지 우리들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져갔다. 하지만 그 때.
삐-익.
처음 박 중사가 우리를 보며 눌렀던 벨소리가 귀에 날카롭게 꽂혔다. 제일 앞 쪽에서 이 하사가 ‘제길’이라고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위병소로 뛰어가기 시작한다. 뒤쳐질 수 없다. 우리들도 빠르게 군인들의 뒤를 따른다.
삐-익.
이 소리가 났다는 것은.. 분명 녀석들의 공격해 왔다는 것이다. 그 우두머리 녀석.. 모습을 드러냈을까? 순식간에 위병소에 있는 군인들을 덮친다면 지금 가도 늦을지도 모른다. 서둘러야한다.
터벅. 터벅. 터벅.
어두운 공간에서 우리들의 군화소리만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녀석들의 비명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불길하다. 총소리도 들리지 않고.. 뭐가 잘못된 걸까? 괴물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슈슉.
그 때. 허공에서 뭔가가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것이 어렴풋이 눈에 잡혔다. 붉은 색의 가느다란 선이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앞서 가던 군인들 틈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낯선 소리.
푸슉. 푸슈슉.
어두운 공간에서도 보일정도로 붉은 피들이 분수처럼 튀어오르기 시작한다. 순간 몸이 자동적으로 경직되어간다.
“으아악!”
고통에 찬 비명소리. 그리고 소총에서 뿜어져나오는 불줄기. 시끄러운 소음과 매캐한 화약 냄새.
“크아아!”
녀석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곧 꽤 커다란 검은색의 그림자가 우리 쪽으로 느리게 기어오는 것이 보인다. 어둠속에서 빛나는 저 두 눈. 나를 강하게 노려보고 있는게 확실하다. 주루룩.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군인들은 동료를 잃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예리한 대검을 꺼내 녀석의 정수리에 무차별적으로 박아댔다.
“끅.. 끄."
녀석은 두 눈을 꿈뻑거리며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쉽게 숨을 끊지 못하자 군인들의 대검 세례가 더욱 거세져간다. 푹. 푹. 푸욱. 붉은 빛이 점차 사그러져간다. 마침내 녀석은 그대로 숨을 거둔다. 녀석이 숨을 거뒀나 확인을 위해 다른 군인이 랜턴을 녀석의 몸을 비춘다.
“흐음..”
일반 녀석들과는 달리 상당히 커다란 덩치다. 낮에 봤었던 그 녀석과 많이 흡사해보였다. 어떻게 넘어온거지? 고개를 돌려 녀석이 튀어온 곳을 본다. 검은 색의 산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하사의 말은 거짓이었나? 아니면 녀석은 교묘하게 지뢰나 부비트랩을 전부 피한것인가?
“부상자는?”
감정 없는 이 하사의 목소리. 그리고 즉각 대답하는 군인들.
“박 일병과 이 병장이 당했습니다.”
마치 이런 일이 익숙하기라도 한 듯 군인들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이 하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전리품을 챙기고 앞으로 간다.”
“예.”
괴물에게 비춘 랜턴을 끄고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앞에 있던 다른 군인들이 사상자를 랜턴으로 비추며 소총과 수류탄, 실탄 등을 챙기기 시작한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두 시체가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마치 강제로 반을 갈라 놓은 것처럼 사지가 이상하게 절단이 되어 있다. 차마 보기 힘든 꼴이지만 녀석이 우리를 향해 덤벼들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이기적인 새끼.’
마음 속에서 그렇게 말해온다. 별 수 없다. 살기 위한 본능은 누구라도 다 같은거니까. 서둘러 전리품을 챙긴 군인들은 빠른 걸음으로 위병소로 뛰어간다. 아까 전 습격을 받아서인지 그 속도가 더욱 빠르다.
“헉. 헉.”
금새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많이 긴장한 탓일까. 내 몸이 이렇게 허약했었나? 제길.. 이런 때에 말썽을 부리다니 빌어먹을 몸뚱아리. 이런 어둠 속에서 홀로 남겨지는 사양이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빠르게 발을 놀린다. 마침내 위병소에 다다른 우리들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없어..”
아까 전 위병소를 지키던 세 명의 군인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벨을 눌렀던 스위치를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뭐지?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한다. 뭔가가 올 것 같은 느낌이다. 이 하사는 차분하게 소대원들을 진정시키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이 하사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극도의 불안으로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이 하사를 보며 아저씨가 말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어찌할 수가 없군요.”
“이런.. 것은 본적도 들은적도 없습니다.”
“..일단 침착하고 주위를 경계해야겠습니다.”
우리들은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상상이상의 속도와 파괴력. 우두머리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동안 어떻게 세 명의 군인들을 처리할 수 있었지? 그것도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분명 경계를 스던 군인들은 뭔가를 봤기 때문에 벨을 울린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역시?
“혹시.. 녀석들 중 유독 특이하게 강한 녀석이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내 말에 이 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특이한거라뇨?”
“일반 괴물 녀석들과는 차원이 다른.. 상상이상의 힘을 가진 녀석이 존재하기도 해요. 그 녀석은 평범한 녀석들을 통제하고 사람과 똑같은 사고를 가졌어요.”
“그런게..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이 하사는 우리의 말을 인정하기 싫은 듯 고개를 저었다. 이런 암담한 상황에서 그런 절망적인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이해한다. 우리도 수많은 경험을 통해 그런 비슷한 감정들을 느껴왔었으니까. 나는 좀 더 이 하사에게 진실되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두머리라고도.. 칭해요. 처음 우리집을 습격했을 때에도 그 녀석이 다른 놈들을 이끌고 공격을 해왔어요. 우린 운이 좋게 살아남았고.. 그 뒤로도 그 녀석과 마주친 적이 있었어요. 게다가 낮에 우글거리며 몰려온 녀석들도 어쩌면 그 우두머리 녀석이 시킨 걸지도 몰라요.”
“....”
이 하사는 아무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내 표정과 눈에서 거짓을 읽어내려는 듯 하다. 그러나 나는 한치의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생생한 경험을 그대로 얘기했다. 이 하사의 눈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자 이내 이 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대강이나마 이 상황이 설명되는군요.”
“하지만.. 제가 느낀 바로는 이 짧은 시간 만에 그 우두머리 녀석이 세 명을 모조리 없앴을 리가 없어요. 그것도 피 한 방울 남기지 않은 채로 말이죠.”
“그럼.. 누군가가 군인들을 불러낸 것이 아닐까?”
준우 아저씨 말에 사고가 바뀌기 시작한다. 그래, 너무 국한적으로 생각한 내 잘못도 있다. 말끔하게 경계를 스던 인원들이 순식간에 사라질리 없다. 그렇다면 유력한 후보는 군인들이 아닌 그들을 통솔하는 간부급이 된다는 건가? 중위는 행정부에서 서류더미들을 안고 자고 있었고.. 박 중사는 아까이후로 보이지도 않고 대대장은.. C.P실에 있으려나?
“그게 더 와닿는군요. 그러나.. 우리가 정한 규율상 위병소 경계를 스는 인원에게 어떤 명령도 하지 않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충분히 거스를만큼의 지위를 가진 자라면 말이 틀려지지요.”
준우 아저씨 말에 이 하사는 눈매를 좁히며 C.P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말했다.
“대대장님은 그럴리 없습니다. 괜한 오해를 하시는 것 같군요.”
“지금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제대로 알고 하는 말이요? 세상이 이 지경으로 돌아가는데 나쁜 마음을 먹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있다는거죠?”
준우 아저씨 말에 딱히 변명거리는 찾지 못하는 이 하사는 굳건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대대장님은 그럴분이 아닙니다. 박 중사라면 모르겠지만..”
“예?”
우리의 의문 섞인 표정을 빤히 보던 이 하사는 곧 한숨을 쉬며 말을이었다.
“박 중사..는 애초에 군인이 되기를 싫어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군인이 된거지요.”
“그런 것 치고는 계급이.. 중사인데요?”
“그건 대대장님의 든든한 후원덕이죠.”
대대장과.. 박 중사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거지? 후원? 우리는 이 하사의 말에 경청하기 시작했다.
“대대장님과 박 중사는 배다른 형제입니다. 나이 차이가 좀 나긴해도 둘의 아버지는 같은 사람입니다.”
“..이복 형제요?”
“예. 저도 그 사실을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원래 사이가 저렇게 나쁘진 않았었는데.. 아들들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그래서 박 중사가 당당하게 대대장에게 대들었던거구나. 생전 모르는 남도 아니고 친 형제는 아니지만 배 다른 형제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들도 군인이었나요?”
“..아뇨. 둘 다 감염이 되었습니다.”
“감염이라면..”
우리들의 말에 이 하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괴물과 같은 증세를 보였죠. 실제로 몸에 검은 털들이 듬성듬성 나있었구요.”
“좀 더 자세히 알려주시겠습니까?”
아저씨의 말에 이 하사는 남은 군인들에게 전방을 경계하라고 시키고는 우리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딱히.. 얘기할 거리는 아니지만 여러분들에게는 왠지 털어 놓고 싶군요. 저도 이 사실을 계속 안고 산다는 것이 영 꺼림직 했으니까요. 괴물들이 본격적으로 활개를 치는 다음날이었습니다. 우리 대대에 남은 병력이라고는 간부까지 포함에 24~25명이 전부였지요. 소수의 인원으로 넓은 대대를 지키기 어려워 위병소를 제외한 곳곳에 여러 가지 살상 무기들을 매설하고 24시간 내내 위병소를 지키는 방식을 이어왔었지요.”
“....”
“그날도 평범한 날이었지요. 괴물 몇 놈들이 밤에 나와 우리들의 심장을 놀래키는 것을 제외하면요. 낮이었습니다. 여러명의 사람들이 위병소 쪽으로 몰려오더군요. 그날.. 제가 병사들과 같이 근무를 섰기 때문에 명확히 기억합니다. 다가오는 사람들을 멍하니 보는데.. 점점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몸에 돋아난 털들이 이상하게 눈이 가더군요.”
이 하사는 그날이 뚜렷히 떠오르는지 입술을 달달 떨었다. 보는 우리까지 긴장되서 마른침을 삼켜야했다.
“그건.. 사람이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했습니다. 붉게 충혈된 두 눈과 이상하리만큼 발달된 송곳니들.. 우리는 바로 막사에 있는 병사들과 간부에게 알렸죠. 저 스위치를 통해서 말입니다.”
저 스위치는 아까 위병소에서 났던 커다란 소음을 내는 스위치가 분명하다. 이 하사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전 병력들이 위병소로 모여들었죠.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그런데 유독 대대장님과 박 중사의 표정이 보기 흉할정도로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딱히 이유를 묻지 않아도 왜 그런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죠. 우연히.. 박 중사의 가족사진을 본적이 있는데 고등학생이었나.. 아무튼 박중사의 아들이 사람들 틈에 껴있었던 거지요.”
“그렇군요..”
“아이러니하게도 대대장의 아들도 그 틈에 껴있었나 봅니다. 참 웃기는 일이죠. 하늘이 장난도 이런 식으로 치나 하고 묻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온전히 살려둘 수는 없었습니다. 딱 보기에도 ‘그것’들은 사람의 범주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두 사람.. 예. 대대장님과 박 중사는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쏴야한다는 대대장의 말과 일단 격리하자는 박 중사의 말.. 당연히 우리들은 지휘관의 명령을 우선시 해야했지요. 머뭇거림 없이 ‘그것’들에게 총알을 날려주었습니다.”
사라라락.
거센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가지들이 내는 소리에도 놀랄 정도로 긴장이 되어 있는 상태. 괜히 주위를 둘러보지만 위병소에서 묵묵히 경계를 하고 있는 군인들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어두웠다. 괜히 어두운 곳을 빤히 보기가 싫어 이 하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결과는 여러분들이 아시는대로..입니다. 박 중사가 그렇게 오열하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그런 박 중사의 모습을 본체만체하며 대대장은 서둘러 시체들을 치우라고 했지요. 우리들은 바로 트럭을 가져와 시체들을 멀리 내다버리기 위해 싣기 시작했습니다. 다 싣고 출발하려는데 박 중사가 기어이 운전하겠다고 하더군요. 대대장도 그거까진 관섭하지 않고 그대로 막사로 올라갔습니다.”
“....”
“그렇게 박 중사는 시체 더미들을 혼자서 처리하고 왔지요. 그 때부터 박 중사의 태도가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첫날에는 우울하던 모습을 보이더니 둘 째날부터는 괜한 병사들에게 화풀이를 하고 대대장의 명령을 제대로 듣지 않기 시작했지요. 우린 그려려니 했습니다. 자식을 잃은 충격을 직접 겪어봐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어머니를 여윈 저로서는 그게 약간이나마 이해가 되기도 했으니까요.”
박 중사.. 처음 우리를 보며 극도로 경계를 하며 아들이 우리 때문에 죽었다고 괜한 화를 냈었다. 그게 단순히 이 하사가 말한 것들 때문인가.
“그 후로부터 박 중사는 우리와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필요한 말들을 제외하고는 아예 입을 닫고 살았죠. 더군다나 씻지도 않았어요. 그의 곁에는 항상 땀에 찌든 냄새와 역한 냄새만이 가득했지요.”
그러고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나기 시작한다. 그 땐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었지만 희미하게 박 중사의 몸에서 낯설지 않은 악취가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제길! 그걸 왜 이제야 알아차린 것일까? 큰일이다. 사태가 어쩌면..
“박 중사님!”
그 때 위병 경계를 스고 있던 군인 한명이 전방을 향해 외쳤다. 화들짝 놀란 우리들은 그대로 그 군인 옆으로 뛰어갔다.
“....”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하나의 인영. 빨지도 않았는지 군복 여기저기가 더럽혀져 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식별하는 수단은 오직 카라에 달린 중사라는 계급과 그 왼쪽 아래에 있는 이름표 뿐이다. 서서히 위병소의 얕은 빛으로 드러내는 박 중사. 희미하게 풍기는 이 악취.. 고개를 들어 박 중사의 얼굴을 가만히 본다. 빨간.. 아주 빨간 두 눈이 빛나고 있었다.
이 하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작게 중얼거렸다.
“박 중사님..”
그 말에 붉은 두 눈을 빛내며 박 중사가 이 하사를 보며 말했다.
“더 이상.. 날 그렇게 부르지 말게.”
녀석들과 같은.. 가래가 잔뜩 낀 목소리었다. 그의 두 손에는 아직도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뚝뚝. 떨어지는 핏물들이 땅으로 점차 떨어져 연하게 퍼져간다. 이 하사는 부들부들 떨면서 소총을 박 중사에게 겨누었다.
“제기랄! 박 중사!”
금방이라도 이 하사가 방아쇠를 당길 태세다. 그러나 박 중사는 여유를 잃지 않은 모습 그대로 이 하사를 보며 말했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마당에 죽음을 두려워 할 것 같나?”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발작적으로 외치는 이 하사를 보며 박 중사는 서글픈 미소를 띄었다. 여지껏 봐왔던 괴물들과는 전혀 다른 행동이다. 감염이 된지 얼마 안되서 그런가? 괴물의 특징적인 점만 제외하면 박 중사는 인간일 때 그대로 모습이었다.
“세상에 유일한 낙은 바로 내 아들이었지. 사춘기라 많은 말썽을 일으키고 속도 썩였지만 마누라도 없는 시점에 나에게 남은 거라고는 아들 뿐이었어. 그런 아들이 내 눈 앞에서 총알 세례를 받고 더 이상 숨 쉬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줄 아는가?”
“그래도..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살아가야할 사람은 살아야하는거 아닙니까!”
박 중사는 서서히 고개를 저었다. 그의 두 눈은 투명한 무언가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희미한 위병소의 빛을 받아 그것이 미약하게 반짝거린다.
“아니, 난 삶의 이유를 잃었어. 평생을 살아오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어디 떳떳하게 한 적이 있어야지 말이야. 그런 점에서는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 그러나.. 결과는 참혹하더군.”
“어떻게.. 감염이 된겁니까?”
“그나마 미약하게 살아 있는 녀석에게 일부러 내 팔뚝을 내주었지. 다 죽어가는 판인데도 녀석은 내 팔을 아주 맛깔나게 뜯어먹더군. 그러나 치명상을 입은 탓에 녀석은 곧 죽고 말았지만 서서히 변하는 내 몸을 보면서 나도 아들과 같은 곳에 갈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더군.”
처음 우리에게 냉대를 하며 쫓아내려는 박 중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은 그저 아들을 잃고 슬픔을 못이기는 평범한 아버지에 불과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지 이 하사는 굵은 눈물을 흘리며 방아쇠를 천천히 당기기 시작했다.
“쏘게. 더 이상 내게 미련은 없어.”
“크흑.. 제길.. 큭..”
이 하사는 너무나 무기력한 박 중사의 태도에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눈물만 흘렸다. 박 중사는 서서히 고개를 돌려 우리를 보며 말했다.
“낮엔 정말 미안하게 되었소. 당신들이 나를 도와주시오.”
한치의 살기도 느껴지지 않는 박 중사의 태도에 우리들은 쉽사리 총을 들지 못했다. 박 중사를 볼 때마다 은혜를 지켜주던 남자의 모습이 자꾸 생각이 났기 때문일까. 괴물의 특성을 하고도 저런 지성을 가진 상태라면.. 어쩌면 박 중사 역시..
“부탁드립니다. 나를.. 어서 아들의 곁으로 보내주십시오.”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는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총을 들었다. 박 중사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는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을 체념한 태도다. 하지만.. 박 중사는 다른 녀석들과는 다르다.
“잠깐.. 박 중사님.. 물린지 얼마나 되었죠?”
내 물음에 박 중사는 슬며시 눈을 뜨고는 나를 보며 물었다.
“그게 왜 중요하지?”
“중요해요. 얼마나 되었어요?”
“2일.. 3일 되었나..”
“근데 그렇게 온전히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이에요?”
내 말에 박 중사는 뭐가 잘못됐냐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말 뜻을 알아챈 준우 아저씨가 나를 만류했다.
“우두머리같은 과정을 겪는다고 생각하는거냐? 하지만 결국 죽여야하는 대상에 지나지 않아. 사사로운 정에 휘말리지 마. 저 남자를 본 건 오늘이 처음이야.”
“하지만 그 동안 괴물의 특색을 나타내는 단계도 늦었고.. 저렇게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지성 그대로에요. 우리에게 적의를 가진 것 같지도 않구요.”
내 말에 박 중사는 뭔가가 생각났는지 박수를 치며 나를 보며 웃었다.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송곳니들이 나를 움츠려들게 했다.
“적의라. 그래 생각났군. 대대장 자식은 내 손으로 죽여야겠어. 왜 그 생각을 못햇을까? 고맙군. 청년.”
그제서야 묵묵히 눈물을 흘리던 이 하사가 퍼뜩 고개를 들고 박 중사에게 총을 겨누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 때문에 총구가 심하게 흔들렸다. 이 하사는 이를 악물고 박 중사를 보며 발작적으로 외쳤다.
“안됩니다! 아무리 박 중사님이라고 해도 이 이상 접근은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허..”
박 중사는 빙긋 웃으며 손을 까딱거렸다.
“그렇지 않으면 어쩔건데?”
“..쏠겁니다!”
말을 마친 이 하사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커다란 소음 소리와 함께 이 하사의 상체가 약간 들썩였다. 그리고 우리들은 박 중사가 총에 맞았는지 확인을 위해 고개를 돌렸다.
슈우우우.
그러나 박 중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엄청난 스피드와 반사신경으로 총알을 피해낸 것인가. 자신의 조준이 빗나간 것을 확인한 이 하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소대원들을 다그쳤다.
“어서 찾아! 빌어먹을!”
소대원들은 명에 못이겨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부 겁을 먹고 있는 상태인지 어깨가 심하게 움츠려 있었다. 우린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생각보다 박 중사의 능력은 엄청났다. 과거.. 남자가 우두머리였을 시절을 보는 것 같아 시린처럼 그날의 고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가만히 생각에 잠긴 내 등을 누군가가 강하게 친다.
“정신 놓지마.”
동생이었다. 예의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동생. 나는 고개만 끄덕거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때였다.
“크아아아!”
와장창.
괴물의 소리와 함께 유리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소리가 난 곳은..? 막사다! 우리들은 볼 것도 없이 바로 몸을 돌려 막사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어느 틈에 저기까지 간거지? 정말 놀랍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막사에는 남자가 있긴 하지만 지켜야할 사람이 너무 많다. 아니지. 남자는 은혜만 지키려고 들테고.. 그럼 남은 사람들은 모조리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서둘러야해요!”
내 말에 우리들은 더욱 속도를 낸다. 하지만 우리들의 속도는 그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크르르.”
어두운 공간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는 괴물들 때문에 우리는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제길.. 이렇게 급한 때에!
“지뢰나 부비트랩이 설치 되어 있는거 아니였소?”
아저씨 물음에 이 하사는 이를 갈며 답했다.
“맞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온전하게 들어왔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그 때 뒤에서 묵묵히 서있던 우민이 형이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박 중사.. 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죠. 그 정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아까 위병소 앞에서 미련 없이 죽겠다고 한걸수도 있어요. 괴물들이 곧 여기를 덮친다는 것을 안거죠.”
그 말이 상황 파악이 빠르게 정리된 우리들은 소총을 들어 앞을 막고 있는 붉은 불빛들에게 총알을 날려주었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하나둘 꺼져가는 불빛을 보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크르르.”
그러나 또 다시 앞을 가로막는 녀석들. 아까보다 수가 많아졌다. 이렇게 되면 시간이 계속 지체될 수 밖에 없다. 녀석들이 노리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끄는 걸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았는지 이 하사가 굳은 얼굴로 군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너희 4명 여기에 남아 녀석들을 저지하고 따라와라. 그리고 다음 4명이 다른 녀석들을 막는 식으로 릴레이로 한다.”
“예!”
이 하사가 지목한 4명이 괴물들의 앞을 막아섰다. 우리들은 그 틈을 노려 왼쪽으로 크게 뛰어가기 시작한다. 괴물들은 우리를 잡으려고 몸을 돌렸지만 4명의 군인들에 의해 무참히 깨져버리고 말았다.
“크아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4명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다가가는 괴물들을 뒤로 하고 계속 걸음을 옮긴다. 아직 막사까지 거리는 꽤 되는 것 같다. 어두워서 그런지 제대로 거리 식별이 되지도 않는다. 일단은 무조건 달리고 봐야한다.
“크르르.”
얼마 가지 못하고 다른 녀석들이 앞을 가로 막는다. 우리는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녀석들을 따돌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차례.. 남은 인원들이라고는 우리들과 이 하사. 그리고 3명의 군인이 전부였다. 막사 앞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불안한 전력이었다. 게다가 처음 녀석들을 막아선 4명과.. 그 뒤의 4명이 전혀 합류하지 못하고 있다. 일이 틀어지고 있다.
“일단.. C.P실부터 가지요.”
이 하사는 숨을 고르며 막사 중앙 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창문이 모두 막혀 있는 상태라 통로가 상당히 어두웠다. 처음 나올 때 작은 불이라도 켜져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어두웠다. 더군다나 하늘에도 떠있는 별들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새까매서 앞을 제대로 식별해내기가 어려웠다.
저벅. 저벅.
느린 발걸음으로 움직이는 이 하사와 군인들. 오랫동안 생활을 해온 그들이라면 보이지 않아도 충분히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들이 있는 방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일단 전력이 분산되면 더 큰 위험이 따를 것 같아 일단은 이 하사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어쩌면 자연스레 이 하사의 뒤를 따르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은혜 곁에 있는 남자라는 존재 때문일지도 몰랐다.
슈우우우.
통로에 가득차는 바람 소리를 제외하고는 너무나 고요했다. 천천히 C.P실 앞으로 다가간다. 그 때. 지휘통제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괴물 녀석 여러마리가 튀어나왔다.
“크아아!”
녀석들은 곧바로 군인들과 이 하사를 덮치기 시작했다. 급작스러운 공격에 소총을 제대로 겨누지 못한 군인들은 속수 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 하사는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괴물을 피해 총알을 퍼부어댔다. 남은 우리들도 군인들을 덮친 괴물들을 향해 총알을 퍼부었다.
“끄으으.”
종잇장처럼 꿰뚫린 몸으로 휘청거리던 괴물들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그러나 녀석들의 성과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우리 쪽에서도 두 명의 군인이 서서히 숨을 거두고 있었다. 이 하사와 남은 군인 한명이 묵묵히 그들의 전리품을 챙기기 시작한다. 이 하사는 점차 숨을 거두어가는 군인의 군번줄을 뜯고는 물었다.
“가족이 있나?”
“..없...습..니..다.”
입에 고인 피를 힘없이 뱉어내며 말하는 군인은 그대로 목을 푹 숙였다. 이 하사는 이어 다른 군인의 군번줄을 뜯고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어..머니가.. 있습..니다..”
“남길 말은?”
“사.. 살아..만..”
군인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숨을 거두어버렸다. 이 하사는 두 개의 군번줄을 강하게 움켜쥐고는 자신의 목에 걸었다. 그리고 두 명의 군인.. 이제는 시체로 변해 고기덩어리에 불과한 둘의 머리에 각각 1발씩 총알을 날리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
우리는 아무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C.P실에 다다른 우리들은 서로를 보며 심호흡을 했다. 제일 앞에 선 이 하사가 문고리를 잡고 서서히 C.P문을 열기 시작한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소총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강하게 준다.
끼이익.
아까 전엔 들리지 않았던 낮은 마찰음이 들린다.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머릿속에서 말하고 있지만 이미 이 하사의 몸 절반 이상이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신속하게 그 뒤를 따른다.
“....”
어두운 C.P실에는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아까 우리가 나가기 전 의자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나온 흔적들이 눈에 보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점이 없었다. 이 하사는 초조한 얼굴로 우리를 보며 말했다.
“여.. 여긴 없는 것 같군요. 일단 2층으로 가는게 좋겠습니다.”
우리는 말없이 C.P실을 나와 싸늘하게 식어가는 시체들을 지나 계단에 올랐다. 저벅. 저벅. 계단을 통해 울려퍼지는 군화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녀석들의 포효소리나 사람들의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상하다. 너무 조용해.. 여기서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건 그게 그리 좋은 현상임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저벅. 저벅.
계단을 올라 바로 왼쪽으로 트니 아직도 불빛이 새어나오는 행정부와 여자들이 있는 생활관이 눈에 들어온다.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행정부 쪽으로 걸어간다. 언제라도 녀석들에게 총알을 날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제 그 빌어먹을 놈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된다. 앞서 가던 이 하사가 수신호로 자기가 먼저 들어가겠다고 얘기를 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행정부 옆 벽면에 찰싹 붙고는 심호흡을 크게 한 이 하사는 단숨에 몸을 돌려 행정부 안으로 들어갔다.
“흡.”
우리도 뒤질새라 이 하사의 뒤를 빠르게 따랐다.
“....”
하지만 보이는 것은 중위로 추정되는 잘게 찢어진 고깃덩어리가 전부였다. 행정부 바닥 전체가 붉은 피들로 뒤덮여 있다. 아무렇게나 널린 서류더미들 위에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붉은 덩어리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이 하사는 이를 꽉 물고 행정부에서 미련 없이 나간다. 잔인한 방식.. 박 중사의 짓인가?
“!!”
그럼 아까 봤던 백신 보급 자료는? 서둘러 책상 쪽으로 다가가 중사가 엎드려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을 유심히 본다. 피와 붉은 덩어리들로 범벅이 되어 글씨를 알아보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슬쩍 손을 뻗어 서류더미들을 살짝 옆으로 밀어본다.
사라락.
없다. 보이는 거라고는 엉뚱한 것들의 일부분이다. 죄다 피에 절어버려서 알아볼 수가 없다. 젠장. 유일하게 희망을 걸어볼 단서일 수도 있었는데!
“야, 뭐해. 빨리 와.”
동생이 고개를 살짝 내밀고는 나를 재촉한다.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은혜라도 무사히 구해서 여기를 벗어나야한다. 그 우두머리 녀석을 처치하는 것은.. 이런 전력으로는 많이 힘들 것 같다.
“어.. 어.”
서둘러 동생을 따른다. 나와 동생은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미 여자 생활관에 들어간 상태였다. 우리는 주위를 경계하면서 생활관 쪽으로 걸어간다. 저벅. 저벅. 몇 걸음 가지 않아 생활관의 불이 꺼지며 사람들이 천천히 나온다. 이 하사는 나를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한 명이 처참히 당했습니다.”
그 말에 아저씨는 봉수 아저씨를 보며 물었다.
“부인분이 아닌게 확실합니까?”
봉수 아저씨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증거는 없지만 확신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어디로 가야하지요? 이하사?”
아저씨는 저번과 같은 얼굴을 하고 이 하사에게 물었다. 이 하사는 잠시 생각을 하는 표정을 지으며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당연히 우리도 그 뒤를 따랐다. 걸음을 옮기던 이 하사는 김 상병이 창문을 막아 놨던 것들을 거침없이 떼어내기 시작했다.
지직. 지지직.
테이프가 뜯겨져 나가며 어두운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왜 김 상병은 이걸 숨기려고 했던 것일까.
“저 이 하사님.”
“예?”
“아까 김 상병한테 물어보니까.. 사기 저하 때문에 여길 막아 놨다고 하던데요?”
이 하사는 손가락으로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저 아래에 무수히 많은 괴물들의 시체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는 우리 부대원들의 시체도 섞여 있고.. 주민들의 시체도 섞여 있지요. 병사들이 그것을 볼 때마다 자신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자연스레 갖게 되더군요. 그래서 저와 김 상병이 여기를 막아 놓은 겁니다.”
“..아.”
이 하사는 창문에 바짝 얼굴을 붙이고 어디 한 곳을 유심히 바라보기만 했다. 뭐가 보이기는 하나? 우리들은 그저 멀뚱히 서서 주위를 경계할 수 밖에 없었다. 2분? 3분 정도가 지난 끝에 창문에서 얼굴을 뗀 이 하사는 아래쪽으로 내려가며 말했다.
“혹시 모르지만 지하창고를 한 번 가보는게 좋겠습니다.”
“..창고요?”
“지하에 있기 때문에 주민들을 거기로 벙커식으로 삼아 대피시키고 했었지요.”
“아깐.. 주민들이 다 시체로..”
동생의 말에 이 하사는 보일듯 말듯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앞으로 계속 걸어나갔다.
“당시 주민들은 괴물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인간인채로 구걸하는 주민에게 창고 문을 열어주었다가 모조리 당하고 말았지요. 그 사건 이후로 이용한 적이 없지만 몇 사람을 제외하고 흔적이 없는걸 보니 그리로 피신 한 것 같습니다. ”
피신이라.. 중위는 죽어 있는 상태라 가지 못했을테고 사람들은 지하 창고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대대장이 사람들을 데리고 간건가? 가만.. 생활관에 이 하사가 말했던 그 시체는 뭐지? 다 같이 데리고 간 것이 아니었나? 게다가 행정부는? 분명 중요한 서류를 중위가 담당하고 있지 않았었나?
저벅. 저벅.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뭔가 하나라도 잡고 싶은데 다가가면 다가 갈수록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다. 짧은 1층 복도를 지나 넓고 어두운 밖으로 나온다. 처음 순찰을 돌던 코스로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이제는 제법 적응이 되었는지 뚜렷하진 않지만 사물들이 제법 분간이 가기 시작한다.
“잠깐.”
앞서 가던 이 하사가 멈춰선다. 기계적으로 멈춘 우리들은 주위를 경계하며 이 하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 하사는 그대로 몸을 돌려 우리가 나왔던 길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물어보고 싶은 욕구가 치솟아 오르지만 워낙 진중한 표정에 그럴 수가 없다.
..벅. 저벅. 저벅.
그 때 희미하지만 우리와 비슷한 소리가 이 하사가 바라보는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어떻게 알아낸거지? 새삼 이 하사의 청력에 감탄하게 되었다. 아까 차례대로 남겨졌던 군인들인가? 이 하사는 그대로 소총을 들고는 어둠 속을 가만히 주시했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소리.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곧 다가온다. 이 하사는 총을 쏘기 전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관등성명 대봐.”
“상병 김00.”
김 상병이었다. 목소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이 하사는 약간 경계를 늦추며 말했다.
“몇 명인가?”
“8명입니다.”
“..당한건가?”
“그렇습니다.”
덤덤히 대화를 이어가는 둘. 이어 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김 상병과 다른 군인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굴과 옷에 피로 염색이라도 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아직 마르지 않은 핏물이 그들의 손을 서서히 덮어가고 있었다.
“막사엔.. 없었습니까?”
“아아. 중위님은 죽어 있는 상태였고 다른 여자분 한명 역시 마찬가지야.”
“..중위님이.. 죽었다고 하셨습니까?”
김 상병의 목소리가 유난히 떨렸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떨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어렴풋이 눈치챈 이 하사가 김 상병에게 바싹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중위님이랑 아니 중위랑 무슨 사이냐 너.”
“아, 아무것도.”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나려는 김 상병의 멱살을 거칠게 잡은 이 하사는 이를 갈면서 말했다.
“신발.. 거짓말하지마 새꺄. 내가 널 하루 이틀 보는 줄 알어? 말해라.”
“....”
“최근.. 아니지. 중위가 전임 온 이후로 너 유독 그 새끼랑 잘 어울려다니더라? 특히..”
이 하사는 그 마지막 단어에 강한 악센트를 주면서 김 상병의 멱살을 더 강하게 잡아 올렸다. 컥컥대며 헛기침을 해대는 김 상병. 그러나 이 하사는 그런 것에 배려를 두지 않았다.
“괴물 녀석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때부터.. 그랬지 아마?”
“그.. 그게 이 하사님.”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이 좁아터진 공간에서? 니가 아무리 몰래 움직인다고 하지만 사방에 눈이 달려 있기 마련이지.”
이 하사의 표정은 확고했다. 아까 전 박 중사와 관련되어 생긴 감정이 아니었다. 김 상병은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으로 컥컥거렸다. 그제서야 슬며시 멱살을 잡은 손을 놓은 이 하사는 낮게 으르렁댔다.
“말해. 한 톨의 거짓도 보태지 말고.”
“..사실.. 그게.”
“죽고 싶냐? 여기서 죽여줘?”
당장이라도 대검을 뽑아 김 상병의 목을 뚫을 자세를 취하는 이 하사. 김 상병은 헛바람을 들이키며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사실.. 중위분은 정부에서 파견된 연구원입니다.”
아저씨가 약간 놀라는 것 같았지만 워낙 빠르게 지나간 터라 자세히 보진 못했다. 이 하사는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그럴 것 같았어. 그 새끼 중위씩이나 달고서 아는게 없었지. 마치 샌님 같단 말이야. 계속 해.”
“백신.. 치료제를 한창 연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자신에게 괴물들의 시체만 제공해주면 모든 사람들을 낫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 전. 그것 역시 사람들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중위.. 아니 그 사람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네가 그 창문을 막자고 먼저 제안한거냐? 어쩐지.. 그 새끼 유독 그쪽으로 들락날락거리더라. 그래서?”
괴물들이 나타난 것은 사실적으로 5년 전의 일이다. 은혜가 연구소를 탈출한 시점도.. 2~3년 전후. 괴물들이 본격화되어 사람들을 해치기 시작한 것은 1주일도 되지 않는다. 아저씨 말로는 연구소에 많은 인력들이 투입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왜 굳이 하나씩 군 시설에 보내어 백신을 실험하게 했을까. 오히려 괴물들을 잡아 들여 안전하게 실험을 하게 할 수는 없었나? 역시 은혜와 같은 케이스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은 것일까.
“하지만 성과는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계속 실험을 했었죠.”
“어디서? 실험할 곳이라도 있나?”
“그게.. 지하창고입니다.”
“뭐?”
이 하사는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 상병은 다시 한 번 정확하게 말했다.
“지하창고입니다.”
“개소리 하지마. 거긴 사람들이 대피하던 곳이잖아.”
“예..”
“예?”
김 상병은 우물쭈물거리며 이 하사의 눈을 피했다. 뭔가 있다고 판단한 이 하사는 김 상병의 양 팔뚝을 강하게 잡으며 말했다.
“빨리 말해 새꺄."
“사실.. 그 사람이 사람들을 통해 여러 가지 실험을 했었습니다.”
“..뭐?”
“그.. 과정에서 죽어나간 사람들도 있었고 괴물로 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하사는 김 상병의 몸을 거칠게 흔들며 물었다.
“너, 그게 사실이야?”
김 상병은 인상을 찡그리며 슬며시 잡힌 팔뚝을 풀어내고는 말했다.
“예.”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왜?”
“..대대장님이 뒤를 봐주셨습니다.”
그 말에 이 하사는 큰 충격을 받은 듯 입만 벙긋거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서서히 뭔가가 잡혀가기 시작했다. 박 중사가 대대장을 그렇게 증오하던 이유가 굳이 아들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대대장과 중위. 둘은 각별한 관계가 분명했다. 처음부터 중위가 행정부에서 소총을 잡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끝까지 의심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럴리 없어..”
이 하사는 고개를 저으며 비틀거렸다. 김 상병은 그것을 보기 힘든지 울상을지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전 단지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이 하사는 아무 말 없이 한 곳을 멍하니 응시할 뿐이었다. 괜시리 숙연해진 분위기. 하지만 지금 이럴 시간이 없다. 한시라도 빨리 그 지하창고인지에 가서 사람들이 안전하게 있는지 확인부터 해야만 했다. 아저씨는 이 하사를 부축하면서 다른 군인들에게 말했다.
“정신차리십시오. 그리고 다른 분들. 지하창고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예.”
“알고 있습니다.”
“그리로 가지요.”
그제서야 퍼뜩 정신을 차린 이 하사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 아저씨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너 이 새끼 김 상병.”
“예..”
“네가 지은 행동에 대한 책임.. 내가 확실하게 물을테니까 죽지 말고 따라와라.”
“....”
상대적으로 수가 늘어난 우리들은 다시 빠르게 지하창고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감에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어쩌면 조그마한 실마리가 손에 잡힐지도 모르겠다.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한시라도 지하 창고에 있는 은혜와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피해야 한다. 서둘러라 다리야.. 막사 뒤편쪽을 지나 조금 가니 동산 같은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망설임 없이 동산을 넘는다. 그리고 힐끔 뒤를 돌아본다.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이제 사용하지 않아 보이는 수송부와 식당이 전부다.
저벅. 저벅. 저벅.
거의 다 도착했는지 이 하사의 걸음이 빨라진다. 아직 녀석들이 나타나지는 않은 상태다. 최악의 경우 창고 근처에서 녀석들과 사투를 벌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얼마나 갔을까.. 앞에 약간 둥그스름한 지형이 보인다. 그 옆으로는 내려가는 길처럼 보이는 나무 계단이 있다.
“잠깐..”
이 하사는 우리들을 멈추게 하고 몸을 최대한 숙여 지형 위를 기다시피 다가간다. 분명 뭔가가 있기 때문에 이 하사가 저토록 조심스럽게 행동하는거겠지.. 마침내 지형 끝부분에 다다른 이 하사는 고개만 살짝 들어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는 다시 천천히 내려온다. 서서히 다가오는 이 하사 표정이 그리 밝지가 않다. 아무래도 내 예상이 들어맞을 것 같다.
“앞에 놈들이 있습니다.”
“....”
사람들은 절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수가 많고 적고를 떠나 사람들을 구하는데 있어 녀석들은 큰 장애물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계속 냉정을 유지하던 아저씨가 이 하사에게 물었다.
“숫자는 어느정도 입니까.”
“아주 많습니다. 많은데..”
이 하사는 할말이 남았는지 말끝을 흐렸다. 우리는 그것을 계속 기다려주었다. 어렴풋이 짐작은 갔지만 이 하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더 믿고 싶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이 하사가 말을이었다.
“그.. 녀석들끼리 싸우고 있는게 보여서..”
“싸우다니요..?”
“그게..”
이 하사의 답답한 행동을 못 참은 동생은 빠르게 앞으로 걸어나갔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성큼성큼 지형위로 올라간 동생은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한 곳만 응시했다.
“왜 그래?”
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나도 동생을 따른다. 이번에도 역시 나를 말리는 사람이 없다. 전부 궁금한 것이다. 한 걸음. 두 걸음. 동생과의 거리가 좁혀진다. 그럼에 따라 희미하지만 잊을 수 없는 녀석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오오!”
“크아아!”
녀석들의 비명소리다. 자동적으로 양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한다.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꿀꺽. 마른침을 애써 삼켜내며 앞으로 걷는다.
“크..”
바로 옆길을 따라 주욱 늘어진 괴물들의 시체가 눈에 들어온다. 정면에서는 볼 땐 몰랐었는데 이렇게 조금이나마 위에서 보니 상당히 난장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욱 길을 따라 시선을 움직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빨간 색의 불빛들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키에에엑!”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하나의 불빛이 꺼진다. 이어서 또 꺼지는 불빛. 그러나 수가 너무 많다. 누가 저 녀석들을 상대하는거지? 그 남자인가? 박 중사는 어디에 있는거지? 우두머리 녀석은?
“가자구. 아무리 그 남자가 힘이 세다고 하지만 저 많은 녀석들 상대로는 무리야.”
어느새 내 옆에 선 준우 아저씨가 말했다. 옆으로는 아저씨와 다른 군인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동생은 고개를 돌려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사람들을 구하되 죽으면 안돼.”
“....”
“알아들었어?”
“어, 어.”
동생은 거침없이 몸을 돌려 그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리 높은 위치도 아니었기에 다칠 일은 없겠지만 아래에 잔뜩 깔려 있는 괴물들의 시체와 피가 동생의 발과 옷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것이 자극이 되었는지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뛰어내린다. 에이 제기랄. 나만 모양 빠지게 길로 돌아갈 순 없잖아? 짧게 호흡을 뱉으며 가볍게 점프를 한다.
철퍽.
역시나 기분이 드러운 감촉이다. 이동할 때 마다 철벅거리며 발이 약간 빠지는 듯한 느낌.. 수많은 핏물들 때문에 마치 빗물 위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 하지만 이 빌어먹을 냄새는 너무나 분명하다.
철벅. 철벅. 철벅.
사람들은 말없이 걷기 시작하며 소총을 굳게 잡는다. 점점 녀석들의 고통소리가 귀에 크게 들려온다. 머릿속에서는 이대로 도망치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럴 수가 없다. 은혜와 다른 사람들을 무사히 구해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만약 이대로 도망친다면 평생을 죄책감에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크아아아!”
“크오오오!”
가깝다. 10미터 남짓. 우리는 일렬로 서서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수류탄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만약의 경우 괴물들과 싸우고 있는 남자가 다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검지 손가락을 방아쇠에 닿을 듯 말듯하게 가져간다. 와라!
“크르르?”
그런 우리들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한 녀석이 붉은 빛을 켜며 우리를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는게 보인다. 정신 없이 싸우는 와중에도 주위를 살필 여유가 있었나보다. 이내 녀석은 우리를 빤히 보더니 코를 몇 번 킁킁거리더니 침을 질질 흘리며 고개를 높이 들고 포효를 했다.
“크오오오!”
그게 시발점이 되었는지 한 쪽에서 혈투를 벌이던 녀석들 중 일부가 우리 쪽에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이어 숨어 있던 녀석들도 서서히 눈에 불을 켜며 모습을 드러냈다. 금방이라도 덮쳐질 것 같은 상황. 선제공격을 날려야 한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지 이 하사가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총을 쏘기 시작했다.
“죽어라. 이 강아지들아!”
두두두두.
어둠속에서 환한 불꽃을 내뿜으며 총알들이 거침 없이 괴물들의 몸을 꿰뚫기 시작한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녀석들과 혼비백산하며 도망가는 녀석들이 주 부류였다. 그러나 녀석들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어느새 다른 군인들2명과 평범한 남자 1명을 저승길로 보내버렸다. 물론 그 녀석들조차 우리들의 총알 앞에서 무릎을 꿇었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3명의 전력을 잃는다는 것은 큰 손해다.
두두두두.
멈추지 않는 사격. 참다 못한 괴물들은 그대로 몸을 돌려 줄행랑을 치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대지가 피로 붉게 물들었다. 주위에는 괴물들의 시체가 원을 길게 그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후우..”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는 괴물들을 해치고 앞으로 걸어나간다. 이제는 길이라는 개념이 없을 정도로 녀석들의 시체가 가득매우고 있다. 방금 전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탓에 군화에 느껴지는 낯선 느낌에 별 감흥이 없다. 빠르게 앞으로 걸어가 어둠 속에서 고요히 서있는 두 눈을 빛내는 하나의 존재에게 걸어간다.
“너..?”
우리가 다가가도 적의를 드러내지 않고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서있는 인영. 저 정도의 키와 군복.. 남자가 확실하다. 서둘러 걸음을 옮겨 남자에게 다가갔다. 몸 여기저기가 뜯겨져 있는 상처로 즐비하다. 회색 빛깔의 군복은 어느새 붉은 빛으로 묽게 염색이 되어 있었다.
“안 아프냐?”
“....”
준우 아저씨 말에 남자는 아무말 없이 몸을 돌려 한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우린 그 장소가 지하창고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남자의 뒤를 따르며 주위를 경계한다. 이 하사도 특별한 말이 없는걸 보니 여기가 우리가 찾던 목적지가 맞는 것 같다. 얼마 가지 않아 상대적으로 깊게 파인 땅과 철로 된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계단 끝에는 진한 검은 색의 철문이 있다. 서서히 계단을 내려가는 남자.
“중사 아저씨는 못봤냐?”
남자 뒤에서 걷고 있던 동생이 물었다. 남자는 몸을 멈칫거리더니 손을 뻗어 문을 가리켰다.
“..안에 있다고?”
“....”
남자는 말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어떻계? 그냥 들여보내준 건가? 같은 종류의 사람.. 아니 괴물이라서? 만약 안에 대대장이 있다면 분명히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온전히 놔둘 수 있단 말인가?
턱. 턱. 턱.
철 계단에 나는 군화 소리가 맑게 울린다. 은혜에게 아무런 위협이 가해지지 않아 이렇게 여유롭게 행동하는것인가. 어찌되었든 곧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조급해하지 말아야한다. 5계단 남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철문 앞에 멈춰선 남자는 문고리를 잡고 강하게 당겼다.
끼기기기긱.
마치 고통스러워하는 비명 소리다. 느릿느릿 철문이 열리며 희미한 불빛이 눈에 잡힌다. 어느 정도 공간이 확보되자 남자는 머뭇거림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서둘러 남자의 뒤를 따른다. 문을 통해 들어서고 나니 지유 특유의 냄새와 싸늘한 기운이 온 몸을 휘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눈 앞에 있는 통로 위쪽에 붙은 불이 아직도 켜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데가..”
동생이 감탄사를 흘리며 벽 여기저기를 두드려댔다. 첫 번째 통로에서 외길인 좌측으로 몸을 꺾자 꽤 커다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15평은 되어보이는 넓직한 공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천장에서는 얕은 불빛이 아직도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각종 실험을 했었던 도구들이나 여러 대의 컴퓨터들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이 하사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른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계속 앞으로 걸어나갔다. 주위를 살피던 군인들을 뒤로하고 우리들은 남자를 따른다. 느리게 앞으로 걸어간 남자는 벽 앞에 서서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이내 한 곳을 잡고 당기기 시작한다.
그그그극.
어둠 속에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법한 문이 서서히 열린다. 그러자 아까와 같은 통로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다시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하는 남자. 지체할 것 없이 걸음을 옮긴다. 통로를 걸으면 걸을수록 익숙하지 않은 악취에 눈살을 찌푸렸다.
“윽..”
금방이라도 구토가 나올 것 같아 이를 악물었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냄새다. 그러나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왠지 이대로 가면 앞에 뭔가가 나올 것 같기 때문이다.
저벅. 저벅. 저벅.
좁은 공간에서 울려퍼지는 군화 소리가 멀리 퍼져나간다. 얼마나 걸었을까. 곧 넓직한 아까와 비슷한 규모의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공간 한쪽 구석에는 큰 유리병들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투명한 액체와 함께 괴물들의 장기나 신체들이 고이 담겨져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중앙을 본다. 거기에는 박 중사가 우리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용케도 여기까지 왔군.”
“박 중사..”
그의 손은 이미 붉게 물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대대장으로 추정되는 사지와 절단되고 목이 달아난 몸뚱아리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준우 아저씨는 소총을 박 중사에게 겨누며 주위를 힐끔거리며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딨지?”
“저기 안보이나?”
박 중사가 어두운 구석을 손가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기절한 것처럼 추욱 늘어져 있었다. 특별히 몸에 이상이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아무튼 다행이었다. 박 중사가 복수를 삼은 대상이 대대장으로 끝나서 천만다행이었다. 너무 이기적인가?
“너, 저 자식이 어떤 상태인지 보고도 들여보낸거냐?”
준우 아저씨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르지 않다. 나와.”
그 말에 할말을 잃은 준우 아저씨는 멍하니 박 중사를 바라보았다. 박 중사는 날카로운 이를 훤히 드러내며 웃었다.
“약속했거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건들지 않는 조건으로 길을 내달라고 말이야.”
“..그래서 대대장과 이 사람들을 교환한건가?”
“뭐, 얘기가 그렇게 되나?”
박 중사는 유들유들한 웃음을 흘리며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고는 양손에 묻은 피들을 대충 허공에 저으며 털어냈다. 그래 우리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진게 아니야. 숫적으로도 우리가 우세해. 제발 이대로 지나가라. 느릿하게 걸어가는 박 중사는 우리를 보며 말했다.
“그런 생각이 들더군. 어쩌면 이런 몸이 인간에게 최적화된게 아닐까하고 말야.”
“....”
우리가 아무 말없이 박 중사를 빤히 바라보자 박 중사는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우리가 왔던 통로로 걸어나갔다. 서둘러 사람들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핀다. 다행히 모두 무사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우리들은 벽에 아무렇게나 기대어 눈을 감았다. 몸이 축 처지는 기분이다.
탕. 타타타탕.
그 때. 귀를 찌르는 듯한 거친 총소리가 통로 저편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지? 이 하사가 박 중사를 보자마자 총을 쏜건가? 그렇게 되면 아무리 박 중사라도 이 하사를 가만히 둘리가 없다. 도와야하나?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전할지도 모르는데? 어떡해야 하지?
“빌어먹을.”
준우 아저씨가 벽에서 튕기듯이 몸을 움직여 박 중사가 사라진 통로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한다. 남은 우리들은 서로를 잠시 보고는 준우 아저씨의 뒤를 쫓았다.
빠르게 뛴다. 짧게 느껴졌던 통로가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 것인지.. 소총을 가슴 안쪽으로 껴안는 식으로 통로를 벗어난다. 빨리.. 빨리! 통로를 벗어나 바로 소총을 겨눈다. 그러나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뭐지..?”
바닥에 미약하게 숨 쉬고 있는 녀석들을 보며 우민이 형이 중얼거렸다. 박 중사는 우리의 우려와는 다르게 통로 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출구로 향하는 통로 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통로 주위로는 이 하사와 남은 군인들이 소총을 겨누며 서 있었다. 준우 아저씨는 대검을 꺼내 미약하게 숨 쉬고 있는 녀석들을 마무리 하고서 천천히 이 하사에게 다가갔다.
“제길.. 당했습니다.”
이 하사는 준우 아저씨는 힐끔 보고는 불이 꺼진 통로를 노려보았다. 준우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예? 당하다니요.”
“애초에 녀석들이 노리고 있던게 이겁니다. 밖에 지금 엄청난 수의 녀석들이 몰려 있어요.”
아까 총알 세례를 받고 완전히 도망간 것이 아니었나? 단순히 우리를 여기까지 몰기 위해 그런거라면 너무 계획적인 움직임이다. 역시.. 우두머리 녀석이 있는게 분명하다. 소총을 꺼내 어두운 통로 쪽을 겨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많은 붉은 불빛들이 한순간에 깜빡거린다.
“크르르르.”
먹이를 찾았다는 기쁨 때문인지 녀석들의 소리가 한층 업 되어있다. 이내 반짝 거리는 불빛들이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소총 방아쇠를 당긴다.
두두두두.
“크아아아!”
일렬로 된 좁은 통로라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크게 당할 뻔했다. 녀석들은 그대로 손 한 번 뻗지 못하고 바닥에 추욱 늘어진다. 그에 따라 바닥에 흐르는 피의 양도 점차 많아져간다. 저번과 같은 상황이다. 문득 김 대위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번에 천장을 뚫은 놈은 없겠지?”
동생의 중얼거림을 시작으로 녀석들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크아아!”
끊임없이 이어지는 녀석들의 공격.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다. 우리들은 좀 더 효율적으로 녀석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총알을 날리기로 했다. 좁은 통로의 여건을 충분히 이용한 것이다. 빠르고 강력한 총알들이 괴물들의 몸을 꿰뚫으며 뒤의 녀석들에게까지 치명상을 입힌다.
두두두두.
총알이 점점 떨어져가는게 느껴진다. 남은 우리들은 이를 악물고 어둠속을 향해 총알을 날려대는 두 사람을 초조하게 바라본다.
“후우..”
두 사람은 한숨을 쉬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녀석들의 움직임 또한 잠잠해졌다. 이 하사는 손목에 찬 전자시계를 보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직 해가 뜨려면 한참 남았습니다.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나는 시계를 보지 않기로 했다. 그저 소총을 꽈악 잡는 것과 녀석들에게 총알을 날려줄 준비를 하는게 다였다. 5분.. 10분이 지나도 녀석들의 공세는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안심할 수가 없었다. 인간과는 다르게 체력적인 한계가 거의 없는 녀석들. 어쩌면 우리가 방심하는 틈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던 그 때.
“오랜만이군.”
잊을 수 없는 목소리다. 온 몸에 소름이 주루룩 돋으며 살살 떨리기 시작한다.
“설마 나를 잊은건 아니겠지?”
가까이서 느껴지는 이 빌어먹을 목소리에 정신이 혼란스러워 질것만 같다.
“저번에도 말했듯 내 용건은 간단하다. 계집을 내놔라.”
“....”
“오래 안기다린다. 허나 충분히 상의할 시간은 주지. 5분이다.”
처음 듣는 목소리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이 하사가 우리를 보며 물었다.
“방금.. 그게 뭐죠?”
“..처음 우리를 덮쳤던 그 우두머리 자식입니다.”
“우두머리..”
익숙하지 않은 경험에 이 하사와 군인들의 표정이 그리 밝지가 않다. 일반 사람과 봉수 아저씨 역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목소리만으로도 상대를 충분히 공포에 떨게 할 수 있는 녀석이다. 전과 같은 목소리었지만 저번에 보았던 우두머리급 녀석들을 다룰 정도라면 더 강해진 모습으로 우리들을 공격할지도 모른다.
“저번에 분명 팔이 떨어져 나갔었지 아마?”
그 때의 일이 생각난 듯 준우 아저씨는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잊을 수 없는 일이지. 처음으로 포기를 하던 시점이었으니까. 김 대위와 민정 누나도 그 지역에서.. 생을 마감 했으니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각인 되어 버렸다.
“하지만 우두머리급 녀석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잖아요. 방심할 수 없어요.”
우민이 형의 말에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저 녀석은 우리가 봐왔던 것과는 많이 달라. 방심해서는 안돼.”
“2분 남았다. 빨리 정해라 빌어먹을 하등 생물들아.”
초조함에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도중 박 중사와 남자에게 시선이 갔다. 나는 멍하니 어두운 통로를 보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 말했다.
“어떻게 가능성이 있을까요?”
내 말에 남자는 아무 말도 없었고 박 중사는 나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내가 왜 너희들을 도와야하지? 어차피 곧 죽을건데.”
“..여기에 우리와 같이 있기 때문이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
그 말에 가만히 있던 이 하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 중사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강하게 움켜 잡았다.
“너 이 강아지! 대대장님은 어딨어!”
“물어볼 필요가 있나?”
귀찮다는 듯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이 하사를 바라보는 박 중사. 이 하사는 분을 못 이기는지 이를 부득부득 갈고는 이내 한 손을 들어 박 중사의 얼굴 쪽으로 주먹을 날린다. 하지만 박 중사는 이미 인간의 범주를 크게 벗어난 괴물과 같은 능력을 지녔다.
텁.
자연스럽게 이 하사의 손을 잡은 박 중사는 다른 한 손으로 이 하사의 가슴을 강하게 밀었다.
퍼억.
소리와 함께 벽 끝까지 밀려나는 이 하사. 벽에 강하게 부딪힌 이 하사는 헛바람을 크게 들이마쉬더니 바닥에 그대로 주저 앉아 버렸다.
“쿨럭. 쿨럭.”
잦은 기침을 해대며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이 하사. 박 중사는 그런 이 하사는 힐끔 보고는 관심이 없다는 듯 말했다.
“저승 길동무라고 생각하지.”
“....”
박 중사의 태도로 보아 우리들에게 협조적으로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이번 공격을 통해 우두머리 녀석도 직접적으로 가세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뭔가 뾰족한 수가 필요하다. 머리를 싸매고 이리저리 생각을 해본다. 그러던 중 남자가 다른 쪽으로 연결된 통로를 가만히 보더니 입을 열었다.
“메시아시여..”
메시아? 은혜? 남자의 시선을 따라 통로 쪽을 보니 작고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가만히 있던 아저씨가 통로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은혜는 멍한 눈으로 우리들을 한 번 훑어 보았다. 아저씨는 그런 은혜를 가볍게 껴안고는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은혜야.. 은혜야.”
놓치기 싫다는 듯 꽉 껴안은 아저씨를 가볍게 밀어낸 은혜는 느리게 남자 쪽으로 걸어갔다. 남자는 은혜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제대로 지혈을 하지 못한 몸 여기저기에서 피가 아직도 새어 나오고 있다. 은혜는 그것을 물끄러미 보더니 이내 왼쪽 손목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은혜야!”
그것이 곧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 아저씨가 다가가 말리려고 했지만 남자의 행동이 빨랐다.
“감사합니다. 메시아여.”
남자는 은혜의 가늘고 흰 손목을 조심스럽게 받들어 크게 깨물고 피를 빨기 시작했다. 그 낯선 광경에 박 중사는 물론 이 하사와 다른 군인들.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우리는 그것이 은혜의 수명을 단축시킬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눈 뜨고 볼 수만은 없었다.
“은혜야..”
아저씨의 애가타는 목소리에 조심스럽게 은혜의 손목에게서 입을 뗀 남자는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났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남자의 몸은 상당히 깨끗해져 있었다. 그것을 유심히 보던 박 중사는 두 눈을 빛내며 은혜에게 다가갔다.
“백신이구나?”
“....”
은혜는 말없이 박 중사는 올려다보았다. 박 중사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순식간에 아물어가는 은혜의 손목을 가만히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살아 있다면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뀔지도 모르겠구나.”
“....”
“어쩌면.. 아들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박 중사는 처연한 표정으로 은혜를 바라보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행이다. 박 중사의 마음이 상당히 돌아선 것 같다. 분명 우리에게 큰 전력이 되겠지만 상대는 보통 내기가 아니다. 서서히 시간이 다 되어간다. 이 하사는 초조한 심정을 숨기지 못하고 두리번 거리다가 체념한 듯한 표정의 김 상병을 보고는 물었다.
“너 그 새끼 일을 여러 가지로 도왔으면 뭔가 알아낸 게 있을거아냐.”
“..알아낸거라고 하셨습니까?”
김 상병은 잠깐 골몰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여러 가지 실험 도구들을 들추면서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서랍 여기저기를 뒤적거리던 김 상병은 아직 밀봉된 상태의 주사기 여러 개를 꺼내었다. 대충 상태를 체크한 김 상병은 실험대 위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작은 약품들을 뒤적거리며 찾더니 고개를 저었다.
“언뜻 비슷한걸 본거 같기도 한데..”
“뭔데 그게.”
“그.. 치료제는 아니고 괴물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게 있었습니다.”
“그래?”
그 때 어두운 통로 쪽에서 여러 마리의 괴물들이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방심하고 있던 것이 화근이었다. 5마리가 되는 괴물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멍하니 서있는 은혜를 발견하고는 침을 질질 흘리며 빠르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크아아!”
그러나 녀석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은혜 옆에 서있는 남자와 박 중사를 염두해 두지 않은 것이다.
퍼퍽. 퍼퍼퍽.
빛의 속도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둘의 공격이 보이지도 않았다. 덕분에 5마리의 괴물들은 그대로 피떡이 되어 바닥에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그제서야 퍼뜩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고 이 하사는 김 상병을 데리고 우리가 왔던 통로 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시간을 벌어야 돼.. 최대한.”
그렇게 중얼거린 동생은 긴장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어두운 통로를 가만히 주시했다.
쿵! 쿵! 쿵!
그 때. 엄청난 굉음이 귀에 강하게 울려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바깥 쪽이다. 우리들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소총을 들고 소리가 크게 나는 쪽으로 겨누었다.
쿵! 쿵!
소리가 점차 반복될수록 튼튼하기만 할 것만 같던 벽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엄청난 괴력이다. 일이 안 좋게 돌아가는 것을 느낀 남자는 은혜에게 무릎을 꿇고 말했다.
“메시아시여. 여기는 위험합니다. 부디 안전한 곳에 대기해주십시오.”
“....”
은혜는 남자를 빤히 보더니 몸을 돌려 자신이 왔던 통로 쪽으로 느리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아슬아슬한 걸음이다. 마음이 아파오지만 내가 은혜에게 해줄 수 있는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저 빌어먹을 우두머리 놈에게 은혜를 뺏기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책이다.
쿵! 쿵! 쿵!
서서히 흔들리던 벽이 이제 눈에 띄게 흔들거린다.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벽들. 우리는 침을 삼키며 크게 심호홉을 했다. 마침내 녀석과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녀석과 결판을 내야 부산까지의 여정이 순탄할 것이다. 침착해라 이진성. 이 고비만 넘기면 된다!
쿵! 파각! 파각!
마침내 벽들이 부서지면서 꽤 커다란 어두운 공간이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
“크으.. 크으.”
2미터보다 더 높은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적안. 어두운 공간에서도 녀석의 포스가 그대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녀석이 뚫어놓은 틈을 타 다른 자잘한 녀석들이 빠르게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한다. 싱싱한 먹잇감들을 발견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녀석들의 눈은 하나같이 웃고 있었다.
저벅. 저벅.
우두머리 녀석이 서서히 걸어나온다. 그 존재만으로도 이 넓은 공간이 꽉 채워지는 것 같다. 이내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녀석은 전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은 상태였다. 어떻게 붙였는지 몰라도 버젓히 붙어 있는 왼팔과 우리들의 총알과 석궁 세례를 받았던 단단한 몸에는 보기 흉할 정도의 흉터가 남아 있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녀석은 은혜가 없다는 것을 느꼈는지 커다란 입이 찢어지도록 웃었다.
“크하하하하! 술래잡기인가? 좋지!”
“크윽..”
절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박 중사와 남자가 가세한다고 해도 저 우두머리 녀석은 차원이 다른 괴력을 갖고 있다. 게다가 그 주위를 가득 매운 자잘한 녀석들까지 우리들에게는 하나 같이 생사를 걸어야 하는 순간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우리를 노려보는 녀석들. 우두머리 녀석의 명령이 떨어지면 망설임 없이 달려들 기세다.
“자아, 선택권을 주지.”
“닥쳐!”
준우 아저씨의 외침에 우두머리는 싱긋 웃고는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커다란 입을 통해 넓은 공간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쳤다.
“좋아! 여기서 다 죽여주마!”
우두머리의 외침을 시작으로 남은 녀석들이 일제히 우리들에게 달려든다. 거대하나 흑막과 드문드문 보이는 붉은 색의 점들이 혐오스러웠다. 우리는 재빨리 실험대들을 아무렇게나 쓰러트리고 몸을 숨겨 소총을 무작정으로 갈겨댔다.
두두두두.
저번보다 상황이 더 안좋다. 어쩌면 살아남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니야 이런 생각할 겨를에 녀석들에게 하나라도 더 총알을 먹여줘야 한다. 푸학. 끈적한 피와 진득한 살덩이들이 옷과 얼굴에 묻기 시작한다.
“끄아아악!”
수가 너무 많았다. 꾸역꾸역 몰려드는 녀석들을 온전히 막지 못하고 다른 쪽에 서있던 군인 한명이 녀석들에게 끌려가버린다.
빠직. 빠직.
3초도 되지 않아 군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린다. 마치 파라냐에게 피가 줄줄 흐르는 고기를 던져주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 군인을 충분히 맛본 녀석들은 더욱 괴성을 질러대며 우리들에게 뛰어 들었고 그러지 못한 놈들 역시 배를 채우기 위해 맹렬하게 뛰어다닌다.
두두두두.
이를 악물고 천천히 뒤로 물러난다. 15평의 공간이 이렇게 불리하게 작용될 줄은 몰랐다. 그나마 우리가 이렇게 버티는 것도 앞에서 녀석들을 막아내는 남자와 박 중사 덕인지도 몰랐다. 일격 하나 하나에 저세상으로 보내 버리는 둘 때문에 꽤 많은 녀석들이 걸러졌고 우리는 그런 녀석들에게 총알만 선사해주면 된다.
“크아아아!”
고통스러운 비명을 흘리며 멀리 날아나려는 녀석들. 그러나 치명상을 입어 다 죽어가는 녀석들에게는 동료들의 일격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 허기진 탓에 살기 힘들다고 판단되는 녀석들을 죄다 먹어치우기 시작하는 녀석들.
“크아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려고 했지만 이미 녀석들의 팔 다리가 뜯겨져나간 상태다. 진한 혈향이 나면서 녀석들의 광란은 더욱 강해져만 갔다. 그럼에도 아슬아슬하게 버텨내며 우리들은 천천히 뒷걸음질치며 좁은 통로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물론 총알을 쏘는 것은 잊지 않은 상태다.
“크르르.”
그 때 멀찍이 지켜보던 우두머리 녀석이 서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든든한 대장이 움직인다는 사실 때문인지 녀석들은 더욱 큰 포효를 지르며 우리들에게 달려들었다.
퍼퍼퍽. 퍼퍽.
그러나 박 중사와 남자의 손에 모두 저지가 되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둘의 상태가 그리 온전한 것은 아니었다. 언제 찢겨졌는지 군복 여기저기가 누더기처럼 되어 있었고 군데군데 살이 파인 흔적들이 보인다. 꾸물꾸물 흘러나오는 피를 지혈할 생각도 하지 못한채 녀석들을 저지하기에 바쁘다.
“크르르르.”
이런 상황에서 저 우두머리 녀석이 합세한다면 가망성이 희박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가 너무 많다. 어떡하지? 제기랄!
“크아아!”
일정 사거리가 되자 우두머리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번에 봤던 그 스피드에서 더 상승된 수준인 것 같다. 대체 녀석은 어디까지 강해진거야?
슈슉. 퍽. 퍼퍽.
커다란 덩치 때문인지 자잘한 녀석들이 좌우로 밀려나기 시작한다. 거기서 우두머리 녀석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이 우두머리가 지나간 자리에는 녀석들의 사지나 몸뚱아리가 아무렇게나 잘려져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편이라는 개념이 없는건가? 분명 녀석의 성격상 귀찮은 것들을 모조리 쳐낸 거다.
타다다다.
녀석이 빠르게 다가오는게 눈에 보인다. 거구의 덩치로 저렇게 빠른 스피드를 낼 수 있다니.. 이대로 부딪히면 우리들은 그대로 저세상으로 갈게 뻔하다.
슈슉. 슉.
그 녀석의 힘을 감지했는지 박 중사와 남자가 동시에 앞으로 달려나간다.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의 두 사람이지만 보통 내기가 아니기 때문에 기대해 볼만하다. 그러는 사이 둘의 틈을 파고드는 녀석들이 우리들에게로 빠르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쉬는 시간도 없구만 제기랄!”
누가 그렇게 내뱉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자동적으로 녀석들에게 총알 세례를 퍼부어주었다. 힘 없이 픽픽 쓰러지는 녀석들. 하지만 내 마음은 점차 초조해져가기 시작했다. 총알이 언제까지나 무한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다 쓴 총알들은 얼른 탄알집에서 새로 바꿔서 장전하기는 했지만 총이 완전히 버틸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철컥.
동생의 총이 말썽이다. 노리쇠가 완전히 전진되지 않은 상태로 총알을 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낑낑대며 소총을 분리하여 노리쇠 부분을 다시 제대로 맞춰 끼우고는 탄알집을 끼워 장전을 한다.
철컥.
상당히 빠르게 기능고장이 해결된 동생은 다시 총알을 날려대기 시작한다. 열을 너무 많이 받은 탓일까. 총알을 거침없이 쏴대서 그런것일까. 다른 사람들의 총도 심심찮게 말썽을 부리며 우리들의 애를 태웠다. 다행히 우리 모두가 조금이나마 소총에 대한 지식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에 곧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두두두두.
바닥에는 녀석들의 시체로 길게 둘러 쌓여진다. 우리들은 멈추지 않고 반대편 통로 쪽으로 이동한다. 이 하사와 김 상병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아직인가? 이런 중요한 때에?
퍼억.
그 때 우리들의 시야에서 뭔가 빠르게 날아가 벽으로 부딪히는 것이 보인다. 고개를 돌려보니 남자가 피를 토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퍼억.
이어 남자 쪽으로 날아와 아무렇게나 엉켜버리는 박 중사까지.. 우두머리의 힘은 상상이상이었다.
“크아아!”
거대한 소리. 그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거대한 우두머리가 박 중사와 남자를 보며 거친 포효를 해대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래도 둘의 성과는 아예 없지는 않았는지 우두머리의 한쪽 다리가 괴상한 각도로 꺾여져 있었다. 게다가 몸 여기저기에는 자잘하고 커다란 상처가 즐비했다.
“쿨럭. 쿨럭.”
그러나 둘의 상처가 더 심각했다.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몸을 가누면서 일어나려는 두 사람을 다가가 부축하고 싶지만 이미 녀석들이 두 사람을 에워싼 상태였다. 총을 쏴야 하는건가? 그럼 저 두 사람에게도 피해가 갈텐데? 이대로 녀석들에게 먹힐 바에 고통 없이 보내주는 것이 최소한의 배려인걸까.
“지독한 새끼들..”
그렇게 중얼거린 우두머리는 우리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 악마와도 같은 모습에 우리들은 저도 모르게 방아쇠를 거칠게 당겨댔다.
두두두두.
빠르게 날아가는 총알들을 옆으로 몸을 굴려 피해내는 우두머리. 그러나 온전히 피하지는 못했는지 등과 옆구리 쪽에 총알이 박힌 것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박힌 총알들을 힐끔 보고는 우리를 보며 커다랗게 고함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아아!”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소리에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뛰어!”
누군가의 목소리인지 몰랐지만 거의 다다른 반대쪽 통로로 한 명이 뛰기 시작하자 우르르 그쪽을 따르기 시작했다. 박 중사와 남자는? 살짝 고개를 돌려 동그랗게 에워싸인 공간을 바라본다. 아직 둘은 죽지는 않았는지 괴물들의 시체가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조금만 버텨줘..”
서둘러 통로 쪽으로 몸을 틀었다. 이리로 가면 해결책이 나오는건가? 저 놈들을 전부 막아낼 수 있는건가? 숨이 금새 턱까지 차오른다. 다리가 서서히 풀리려고 한다. 너무 큰 고비에 직면해서인지 몸이 지나칠 정도로 뜨거운 것 같다. 하아.. 하아. 정신차려야 된다.
“어딜!”
내 모습을 그대로 놔둘 우두머리 녀석이 아니었다. 좁은 통로를 그대로 통과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녀석이 네 발로 기어오며 나를 추격해오기 시작한다. 제길! 직립보행만 하는게 아니었나? 다리 한쪽이 뒤틀렸는데도 저렇게 달릴 수 있단 말인가?
“크아아!”
좁은 통로에 꽉 들어차는 녀석의 모습은 정말 오금이 지릴 정도로 공포 그 자체였다.
“빨리 와!”
동생이 나를 보며 소리친다. 뒤에 녀석이 바짝 오고 있는 것은 알고 있는건가? 그 옆으로는 이 하사와 김 상병이 주사기를 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보라색의.. 액체. 그게 녀석에게 치명상을 준다는 건가? 좋아, 일단은 내 다리를 믿어보는 수 밖에 없다.
타다다다닥.
소총을 들고 제속력을 내는게 쉽지가 않다. 그것을 잘 아는지 동생과 준우 아저씨가 내 쪽으로 소총을 겨누며 몸을 숙이라는 수신호를 보낸다. 망설일 것 없이 몸을 숙인다. 그러자 날카로운 총알 소리가 나며 그대로 내 몸 위를 통과해 우두머리 녀석으로 향한다.
퓨퓩. 퓩.
단단한 근육에 박힌 총알들 때문인지 우두머리 녀석은 잠깐 멈칫한다. 이때다! 재빨리 동생에게로 뛰어간다. 짧게만 느껴졌던 통로가 왜 이렇게 긴 것인지.. 한 걸음.. 두 걸음 다 왔어!
“크워어어!”
내가 서서히 멀어지는 것을 눈치챈 녀석이 빠른 속도로 뛰어오기 시작한다. 그에 맞춰 김 상병과 이 하사는 통로 옆에 찰싹 붙어 주사기를 꽈악 쥐었다. 남은 우리들은 그대로 녀석에게 정면을 보이며 소총을 겨누었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녀석. 그래, 조금만 더 와라. 조금만.
타다다다다.
빠르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우리들은 동시에 방아쇠에 검지 손가락을 가져간다. 쏴야한다. 녀석의 시선을 돌려야 둘의 작전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꿀꺽. 긴장하지마. 이진성. 평소대로 하던대로.. 그래. 그렇게 방아쇠를 당겨. 지금!
“으.. 은혜야!”
동생의 목소리에 우리들은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버린다. 어느 틈에 나타난건지 은혜가 통로 바로 앞에 서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을 진즉에 발견한 우두머리 녀석은 더욱 빠른 속도를 내어 은혜에게 다가간다. 찰나의 순간이다. 제길.. 안돼!
“은혜야!”
약속이라도 한듯 우리들의 몸이 동시에 앞으로 튀어나간다. 막아야 한다. 놈에게 은혜를 넘겨줄 수 없다. 절대로!
우두머리 녀석과 금방이라도 닿을 듯한 거리다. 이대로는 늦는다. 저 녀석에게는 수많은 총알을 퍼부어도 쉽게 멈출것 같지가 않다. 이 순간을 위해 우리를 추적해오던 놈이라면 절대 그럴 리가 없다. 거리가 상당히 가깝다. 이대로라면 은혜가 위험하다. 이대로는 안되겠는지 아저씨가 이 하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 하사!”
그 말에 이 하사는 갈등하는 듯 주사기와 은혜를 번갈아 보았다. 분명 우두머리가 은혜를 덮칠 때 생기는 작은 틈을 이용해 주사기를 놓을 수 있는 상황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김 상병.. 김 상병에게 맡기면 되지 않나? 뭘 망설이고 있는거지?
“이 하사!”
다급한 아저씨의 외침에 이 하사는 주사기를 건빵 주머니에 넣고 은혜에게 뛰어 들었다.
“크오오!”
갑자기 생겨난 이 하사의 모습에 흥분한 우두머리 녀석이 단단한 손을 뻗어 이 하사를 쳐내려고 한다. 이대로 있다가 이 하사가 튕겨져 나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쉬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정도로 녀석의 힘은 무지막지 하다.
퍼억.
둔탁한 소리. 예상외로 날아간 것은 이 하사가 아니였다. 빠른 속도로 튕겨져 나가 바닥 끝에서 힘없이 굴러다니는 하나의 물체. 저 정도의 체구와..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 남자였다. 그 작은 틈을 이용해 이 하사는 은혜를 가로채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빌어먹을 놈들! 어디까지나 발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겠나!”
점차 멀어지는 은혜를 보며 우두머리 녀석이 흥분한 듯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다시 빠르게 우리 쪽으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워낙에 빠른 속도에 타이밍을 못 맞춘 김 상병은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제길.. 망설일 것 없이 소총의 방아쇠를 당겨댄다.
두두두두.
빠르게 날아가는 총알. 우두머리는 그것을 피하기 위해 크게 몸을 옆으로 굴리면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너무 큰 덩치 탓에 우리들의 총알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는지 몸에서 전보다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우두머리는 급소만을 교묘하게 피하며 속도를 늦추지 않는 상태였다.
“크아아!”
거센 괴성과 함께 우리를 금방이라도 덮칠 기세다. 녀석의 단단한 두 팔이 위로 올라간다. 그대로 내리칠 기세다.
“흡!”
그것을 충분히 감지한 우리들은 저마다 산개하여 다른 방향으로 몸을 굴렀다.
콰앙!
목표를 잃은 우두머리의 공격이 그대로 지면을 강타했고 곳 엄청난 소음과 함께 바닥이 푸욱 꺼졌다. 그 여파로 돌들이 조각조각 나서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피픽. 픽.
미세한 돌조각들이 살갗에 닿으며 작은 생채기들을 낸다. 그러나 우두머리 녀석에게 눈을 뗄 수가 없다. 녀석은 자신의 공격이 무의로 돌아간 것을 느끼자 바로 옆으로 구른 한 군인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워낙 빠른 속도에 도망치지 못할 것은 예감한 군인은 소리를 지르며 우두머리에게 총알 세례를 퍼부어댔다.
두두두두.
최후의 일격에 잠깐 멈칫하던 녀석은 그대로 몸을 틀어 단단한 한 손으로 군인의 몸을 찍어버렸다.
퍼억!
소리와 함께 군인의 총에서는 더 이상 불빛이 반짝이지 않았다.
파앙!
그리고 이어지는 폭발음. 수류탄인가? 저런 충격에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건가? 다행히 우두머리 녀석이 바닥에 주먹을 꽂고 있는 상태라 그 여파가 우리들에게 전해지지는 않은 상태였다. 몸을 크게 움찔거린 우두머리는 서서히 주먹을 떼고는 수건처럼 후들거리는 손을 보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크아아아아아!”
고통의 비명인지 분노의 비명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녀석의 포효 소리가 정말 대단하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다시 소총을 들어 녀석에게 겨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두두두두.
내 사격을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 역시 우두머리 녀석에게 총알 세례를 퍼붓기 시작한다.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우두머리는 몸을 이리저리 틀며 도망가기 바빴다. 넓직한 공간에서 2미터 남짓한 녀석이 허둥대며 도망가는 꼴이란.. 처음으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크오오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날뛰는 우두머리 녀석. 이내 우두머리는 곧 결심을 했는지 후들거리는 손의 살을 단단히 잡고 그대로 떼어 내기 시작한다.
찌익. 찌이익.
단단한 살들을 뜯으며 비명 하나 지르지 않는 우두머리 녀석. 점차 드러내는 허옇고 단단한 뼈. 녀석은 대체 뭘 하려는거지? 그렇다고 사격을 멈춰서는 안된다. 확실하게 기회를 잡은 이상 놓치지 말아야 한다.
뿌득. 뿌득.
하얗게 드러낸 손가락 마디마디 뼈를 손으로 잘게 뜯어내기 시작하는 우두 머리 녀석. 어느 정도 그 양이 모였다고 생각했는지 그대로 몸을 틀어 우리 쪽에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수많은 총알들이 몸에 박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뛰어다니고 있다니.. 대체 녀석은 어떻게 된거지?
푸슉.
몰아치는 총알들 사이로 뭔가가 빠르게 옆을 지나간다.
“끄아악!”
그리고 들려오는 비명소리. 다급하게 뒤를 돌아보니 이 하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명치 부분에 박힌 단단한 뼈.. 정말 지독한 녀석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타개책을 끊임없이 생각해 내고 있었다니. 그러던 찰나.
푸슉. 푹.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빠르기다. 오직 소리로 녀석이 우리들에게 뭔가를 던진다는 것을 감지해야만 했다. 그리고 방금과 같이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으아악!”
“끄윽.”
상태가 안 좋은 한 남자는 그대로 입에서 피를 토하며 앞으로 쓰러졌고 우민이 형 역시 남은 팔뚝에 뭔가가 박힌 채로 자리에서 주저 앉아 버렸다. 현저하게 줄어든 우리의 화력.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우두머리 녀석은 빠른 속도로 남은 우리들에게 원을 그리며 접근하기 시작한다.
두두두두.
이를 악물고 녀석의 움직임을 쫓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속도가 너무 빨라 눈으로 제대로 쫓기가 힘들다. 하는 수 없이 예상 지점에 대고 총알을 날려대지만 용케도 알아챈 녀석은 간단한 구르기나 점프로 그것들을 교묘하게 피해낸다. 서서히 접근하는 녀석. 녀석의 시선은 오직 우리 가운데에 있는 은혜로 고정되어 있었다.
“으아아아! 제기랄!”
누군가가 그렇게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녀석에게 박히는 총알의 수는 이제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나 멈출 수 없다. 이대로 손을 놓아버리면 그대로 우리가 죽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때 뭔가가 빠른 속도로 우두머리 곁을 지나쳐 가는 것이 눈에 언뜻 보였다.
푸학.
엄청난 양의 피가 허공으로 튀며 우두머리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그 ‘뭔가’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쓰러져 있는 남자 바로 옆에 박 중사가 날카로운 대검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서 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상의가 거의 없어질 정도로 찢겨져 있었고 온 몸에서는 크고 작은 상처들 틈으로 피가 쉴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거칠게 숨을 고르며 우두머리를 빤히 바라보는 박 중사.
“쥐새끼 같은 놈이..”
우두머리는 박 중사를 노려보며 낮게 이를 갈았다. 크고 단단하게 박힌 바위 같은 근육과 온 몸에서 피어나는 수증기.. 흡사 한 마리의 괴수를 보는 것 같았다. 박 중사는 우두머리 녀석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상태로 말했다.
“놈들이 온다. 통로를 엄호해.”
우리는 말 없이 박 중사의 말을 따랐다. 서둘러 통로 쪽으로 뛰어간다. 한 쪽에서 김 상병이 창백한 안색으로 멍하니 서 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왼손에는 주사기를 단단히 잡고 있는 상태다. 그 모습에 준우 아저씨가 빠르게 뛰어가 김 상병의 볼을 강하게 때렸다.
짜악.
“정신 차려! 죽고 싶어?”
그제야 눈을 껌뻑거리며 준우 아저씨를 바라보는 김 상병. 서서히 눈에 생기가 돌아온다. 그는 곧 소총과 주사기를 강하게 잡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저런 상태라면 이것을 쓸 기회가 없어요.”
“알아. 기회는 반드시 온다. 일단은 여기를 막고 있는 수밖에 없어.”
준우 아저씨의 말을 시작으로 통로 저편에서 녀석들의 날카로운 포효소리가 들려온다. 앞 뒤가 꽉 막힌 상황이다. 탄알집에 남은 총알의 여유분도 이제 30~40발이 전부다. 이대로 버틸 수 있을까? 동생은 내 마음을 읽었는지 빠르게 부상당한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서둘러!”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은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는 통로를 예의주시했다.
“크르르르.”
“크르르.”
녀석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서서히 통로 저편에서 붉은 빛들이 반짝거리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녀석들은 우리를 빤히 보더니 뒤에서 들려오는 우두머리의 비명에 괴상한 소리를 작게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 들려오는 우두머리의 비명 소리에 녀석들은 몸을 잔뜩 웅크리고는 튀어나갈 자세를 했다.
“쏴! 지금 쏴야 돼!”
준우 아저씨의 말에 우리는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
소총이 거세게 흔들리며 총알이 빠르게 나아간다. 녀석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픽픽 쓰러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뒤에 있는 놈들의 수가 더 많은 듯 바로바로 보충이 된 녀석들이 불물가리지 않고 무작정 돌진하기 시작한다. 완전히 달라진 공세다. 우두머리 녀석 때문에 그러는 것인가?
두두두두.
그러나 사정 봐줄 시간이 없다. 서서히 떨어져가는 총알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받어!”
남은 탄알집들을 챙겨 온 동생이 우리들에게 적당히 나눠주고 바로 가세했다. 슬쩍 탄알 집을 보니 그다지 양이 많은 상태가 아니었다. 이대로 온전히 버티는 것도 이제 시간 문제다.
“크아아아!”
그런 우리들의 상황을 알았는지 녀석들의 공세가 더욱 거세져가고 끊임이 없었다. 점점 상황이 절망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철컥.
드디어 우려했던 순간이 왔다. 준우 아저씨의 총알이 모두 떨어진 것이다. 우리들은 그것을 안타깝게 바라볼 시간이 없었다.
“젠장!”
준우 아저씨는 신경질적으로 소총을 바닥에 던져버리고는 대검을 뽑아 들었다. 준우 아저씨의 표정이 많이 어둡다. 초조하게 앞을 보고 있던 준우 아저씨.. 갑자기 뭔가가 생각났는지 우리 뒤쪽으로 빠르게 뛰어가기 시작한다.
“진성야 김 상병 나 좀 도와줘!”
준우 아저씨의 목소리. 하지만 여기 상황도 그렇게 좋은 상황이 아닌데..? 어떡해야 하지? 김 상병도 나와 같은 심정인지 준우 아저씨와 정면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그런 우리들에게 아저씨가 말했다.
“탄알집 하나씩 주고 가. 최대한 버텨볼테니까.”
그 옆에 선 사람들도 우리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고마워요. 인사는 살아남은 다음에 꼭 할테니까 무사히 있어줘요. 서둘러 탄알집 하나를 동생에게 건네고 준우 아저씨 쪽으로 뛰어간다. 이 하사의 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적거리는 준우 아저씨. 곧 자그마한 주사기를 발견하고는 서서히 일어났다.
“아저씨 설마?”
“그래. 이 방법 밖에 없어. 우두머리 녀석을 저지해야 저 녀석들도 도망갈거야.”
준우 아저씨는 굳은 얼굴로 주사기를 꽈악 잡았다. 그 옆에 김 상병도 왼손에 쥔 주사기를 멍하니 바라보고는 준우 아저씨를 보고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기회는 온다.. 대기하고 있자구.. 진성아 네가 시선 좀 끌어줘.”
“네.”
머뭇거림 없이 박 중사와 혈투를 벌이고 있는 우두머리에게 다가간다. 녀석은 나의 접근을 모르는 눈치인지 박 중사에게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아니 나한테 신경쓸 여력이 없는 것인가? 녀석의 몸에는 전보다 많은 양의 피들이 흘러내리고 있어 작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다.
푸슉. 푸푸푹.
날카로운 단검을 이용해 우두머리 녀석에 흠집을 내는 박 중사. 하지만 급소를 노리지 못해 둘의 사투가 쉽게 끝날 것 같지가 않다. 우두머리 역시 지치지도 않는지 빠른 몸 놀림으로 박 중사를 거세게 압박해간다.
퍼억. 퍽.
뼈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손과 그나마 상태가 멀쩡한 손으로 박 중사의 몸을 가격해 나가는 우두머리. 그러나 박 중사는 요령 있게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뒤로 물러난다. 호신술에 대해 상당히 조예가 깊은 것 같다.
부웅.
허공에 주먹을 휘두른 우두머리가 그 힘의 영향으로 몸이 빙글 반바퀴 돌았다.
“!!”
순간 소총을 잡고 자신을 조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우두머리는 거친 호흡을 뱉으며 내게 달려들었다. 거대한 몸에 온통 피칠갑을 한 녀석의 존재감 하나로 내 몸이 빳빳히 굳어져간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는다.
슈슉.
그 때 몸이 붕 뜬 느낌이 들었다. 호기심에 눈을 떠보니 피로 범벅이 된 남자가 나를 안고 뒤로 물러나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남자의 몸이 휘청거린다. 나는 반사적으로 남자를 부축한다.
“괜찮아?”
“....”
남자는 말없이 우두머리를 바라보았다. 그런 우리 둘은 잠시 바라보는 우두머리. 곧 자신의 몸에 전해지는 충격에 몸을 돌려 박 중사를 다시 압박해가기 시작한다. 점차 양상이 과열되자 몰래 숨어 있던 준우 아저씨와 김 상병에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이. 몸 좀 움직일 수 있겠어?”
“..가능하다.”
“시간 좀 끌어줘. 우리가 이 주사기로 저 놈을 멈추게할테니까.”
남자는 준우 아저씨를 빤히 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다친 몸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속도를 내며 우두머리에게 다가간다.
타타탁.
놀라운 속도에 우두머리가 고개를 힐끗 돌려 남자를 본다. 남자의 손에는 어느새 들린 단검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우두머리는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뒤로 크게 점프를 하여 남자의 일격을 피해냈지만 박 중사의 존재를 너무 과시하고 있었다.
푸욱!
전보다 큰 파육음이 들린다. 우두머리의 품으로 파고든 박 중사의 단검이 살을 꿰뚫은 것이다.
“크아아아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명치 쪽에 붙어서 대검을 비틀어대는 박 중사를 강하게 옆으로 쳐낸다. 퍼억. 소리와 함께 힘 없이 나가떨어지는 박 중사. 그 찰나의 순간을 남자는 놓치지 않고 우두머리의 머리 쪽으로 다가가 강하게 단검을 내려 찍는다.
쉬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우두머리의 정수리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위협을 감지한 우두머리는 뼈 밖에 남지 않은 손으로 머리를 보호했다.
푸욱!
그러나 성과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두머리의 뼈 밖에 남지 않은 손 사이로 대검을 깊게 찔러 넣은 남자는 미련 없이 몸을 뒤로 덤블링을 하여 우두머리와 이격시켰다.
“크아아아!”
오른쪽 눈에 빛나는 단검이 박힌 우두머리 녀석은 괴로워하며 다른 손으로 단검을 천천히 빼내었다. 한 쪽 눈이 완전히 마비가 된 우두머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남자와 우리들을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애벌레 새끼들! 내가 죽더라도 살아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는게 좋을거다!”
그렇게 말한 우두머리가 조금은 느려진 속도로 남자를 압박해갔다. 준우 아저씨가 내 등을 떠밀었다.
“지금이다. 기회는 많지 않아.”
꿀꺽. 침을 삼키고 우두머리의 옆구리로 파고들어 소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긴다.
두두두두.
얼마 남지 않은 총알이다. 내 생명의 무게와 다름없는 소총. 부디 우두머리 녀석의 발을 묶었으면한다.
“크으으.”
몸을 살짝 앞으로 구부린 우두머리는 나를 보지도 않고 다른 손을 휘두른다. 부웅. 몸이 마비될 것 같은 소리에 나는 얼른 납작하게 몸을 숙였다. 휘잉. 바로 머리 위를 향해 나아가는 거대한 손. 제길.. 보이지도 않는다. 소리로 모든 것을 판단해야만 한다.
“으아아아!”
다시 몸을 일으켜 녀석에게 총알 세례를 퍼붓는다. 우두머리 녀석은 괴로워 하며 앞으로 주욱 뻗어나간다. 그 틈에 남자는 우두머리의 등에 올라타 미친듯이 대검을 단단한 살에 꽂아 넣기 시작한다.
“크아아아아!”
괴로운 괴성을 지르며 남자를 떼어내려고 몸을 세차게 흔들어대는 우두머리. 남자는 아예 대검을 강하게 살 안쪽으로 찔러 놓고 거기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식으로 버텨낸다. 그에 따라 세차게 흔들어대는 우두머리의 등이 넓게 베어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느낀 우두머리는 그대로 몸을 돌려 벽쪽으로 빠르게 달려간다.
타다다닥.
이대로 몸을 돌려 남자를 뭉개버릴 심산이다. 그것을 가만히 보던 준우 아저씨와 김 상병도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구경하면 안된다. 서둘러 나도 움직인다. 저 멀리 튀어나간 박 중사도 몸을 꿈틀거리며 일어나려고 애쓰고 있다.
콰앙!
벽에 강하게 충격을 준 우두머리는 자신의 몸에 가해진 충격이 비명을 토해내며 우리를 지긋히 노려보았다. 하지만 온전히 남자를 없앤 것은 아니었다. 그 찰나에 날렵하게 몸을 빼낸 남자가 대검을 들고 우두머리의 허벅지를 길게 베어나갔다.
푸슉.
“이 빌어먹을 새끼!”
우두머리는 괴성을 지르며 빠져나가려고 하는 남자의 몸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남자는 두 발을 버둥대며 괴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너무 거센 악력 때문에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서둘러 녀석에게 다가간다. 남자를 도와야 해! 바로 소총을 들고 우두머리의 머리 쪽으로 조준해 방아쇠를 당긴다.
두두두두.
우두머리의 입안에 그대로 총알들이 박혀나간다. 고개를 심하게 뒤로 젖힌 우두머리는 격하게 피를 토해내며 남자를 더욱 꽉 움켜 잡았다. 뿌득. 뿌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두 다리가 추욱 늘어진다. 그 순간 어느 정도 몸을 일으킨 박 중사가 빠르게 다가가 괴물의 목 쪽에 대검을 꽂아 놓는다.
푸욱!
“크르르르.”
목에 차오르는 피 때문에 비명을 제대로 못 지르는 우두머리는 남자를 내려 놓고 빠르게 움직여 박 중사의 몸을 움켜 잡았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박 중사도 보내버리려는 듯 하다. 그제서야 우두머리의 근처에 접근한 준우 아저씨와 김 상병이 몸을 날려 우두머리의 양 허벅지에 주사를 강하게 꽂아 넣었다.
“크르르..”
하찮은 눈빛으로 둘을 번갈아 본 우두머리는 강하게 다리를 틀어 김 상병과 준우 아저씨를 걷어 차버렸다.
퍼억.
그러나 한 없이 날아갈 것만 같았던 둘은 몸을 뒤로 휘청거리기만 할 뿐 날아가지는 않았다. 그 광경에 당황한 것은 우두머리나 우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틈을 이용해 박 중사가 우두머리의 손아귀를 힘겹게 풀어내고는 가볍게 착지를 하고서 몸을 날려 우두머리의 명치에 박힌 단검을 빼내 그대로 심장 쪽으로 노리고 들어갔다.
퍼억.
하지만 우두머리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양 손으로 박 중사를 강하게 밀쳐낸 우두머리. 하지만 그 충격이 그리 강하지 않아 박 중사는 허공에서 몸을 돌려 낙법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했다.
“크..르.. 크르르..”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는 우두머리. 그리고 우두머리의 몸에서 미세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처음 남자가 모습을 변할 때 처럼 우두머리의 몸에 빳빳히 나있던 털들이 바람에 슬슬 휘날리기 시작한다. 한 쪽 눈을 크게 뜨며 한 없이 날려대는 털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우두머리.
“지금이야! 박 중사!”
가슴팍에 전해진 충격 때문인지 무릎을 꿇고 있던 준우 아저씨가 박 중사에게 다가가 빠르게 부축한다. 박 중사는 거칠게 입안에 고인 피를 뱉어내고는 빠르게 우두머리를 향해 도약한다. 한 손에 들린 단검이 유독 빛나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 멍하니 서있는 우두머리의 정수리에 그대로 대검을 내려 꽂는 박 중사.
푸욱!
자신의 머리에 뭔가가 꽂혀 있다는 것을 그제야 인식한 우두머리는 멍한 얼굴을 들어 그나마 멀쩡한 손으로 더듬거리며 대검을 찾기 위해 머리를 톡톡 두드린다. 하지만 점차 빠져나가는 피들과 힘 때문에 우두머리는 서서히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쿵. 쿵.
단단한 양 무릎이 땅에 닿자 땅이 낮게 울린다. 멍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우두머리.
“어.. 떻..크르르.. 게?”
우리에게 보였던 모습이 무색해질 정도로 가녀린 모습이다.
“시발.. 시발 새끼..”
그러나 저 우두머리 녀석 때문에 소중한 친구를 잃었고 여기에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잃게 되었다. 용서하면 안된다. 망설이지마 이진성! 소총 방아쇠를 당기는거야! 뭘 병신 같이 서있는거야? 당겨 어서!
철컥.
하지만 어느새 다 써버린 총알 때문에 방아쇠가 단순히 당겨지는 소리가 날 뿐이었다. 주위를 살핀다. 쓰러진 남자에게 다가가 아직도 쥐고 있는 단검을 거칠게 빼앗아 들고 우두머리에게로 달려간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단검을 저 녀석 몸에 꽂아 넣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릴 뿐이다.
“이야아아아아!”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우두머리. 어느새 털들이 거의 다 빠져버려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너는 지옥 끝까지 따라가서라도 죽여줄테다! 개자식아!”
사정거리 안이다. 내가 뛸 수 있는 거리를 도약하여 우두머리의 심장 쪽에 거칠게 대검을 꽂아 넣는다. 살들이 꿰뚫리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피가 내 몸을 뒤덮는다. 미적지근한 느낌.. 낯선 느낌이 아니다. 개자식. 개자식!
푹. 푹. 푹.
단검을 다시 빼 녀석의 심장 부근을 거침없이 쑤셔댄다.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이 빌어먹을 새끼야! 서서히 육중한 몸이 옆으로 기울어진다. 어느새 다 빠져버린 털들이 사방에 휘날린다. 준우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와 나를 말린다. 그렇지 않았으면 언제까지고 녀석의 몸에 대검을 꽂아 댔을거다.
“허억.. 허억.”
평온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육중한 체구의 남성. 온 바닥을 색칠한 빨간 피들과 바닥에 무수히 깔린 털들을 보며 바닥에 주저 앉는다. 마침내.. 마침내..
“수고했어..”
준우 아저씨의 말에 눈물이 흐른다. 왜 흐르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양 쪽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리기 시작한다.
흐르는 눈물 때문에 앞이 뿌옇다. 옷 소매로 물기를 거칠게 닦아내며 이제는 완전한 사람의 모습이 되어 버린 우두머리 녀석에게 천천히 걸어간다. 진한 갈색의 피부와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는 근육들. 남성으로서 이상적인 몸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들에게 입은 상처들은 그대로 간직한 채였다.
저벅. 저벅.
내가 다가가는 것을 감지했는지 우두머리 녀석이 힘겹게 한쪽 눈을 치켜 뜬다. 그리고 무심히 나를 올려다본다.
“....”
아무 말 없이 녀석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녀석의 입술이 달싹거리며 천천히 열린다.
“이..유.. 삶..의..”
“....”
“내..유..일...한..이..유...”
한자 한자 힘겹게 내뱉을 수 있는게 신기할 정도다. 그런 녀석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다. 곧 숨이 꺼질 것이다.
저벅. 저벅.
구석진 곳에서 들려오는 작은 발소리. 고개를 돌려보니 은혜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은혜의 시선은 우두머리 녀석에게로 꽂혀 있다. 그것을 느끼고 있었는지 우두머리의 눈동자가 서서히 움직여 다가오고 있는 은혜를 멍하니 바라본다.
“..너..”
바로 옆에 다가온 은혜를 보며 꿈틀거리는 우두머리. 하지만 우리들에게 당한 피해 때문인지 미약하게 몸을 튕기는 것이 전부였다. 은혜는 우두머리의 상태를 알고 있었는지 손을 뻗어 우두머리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기 시작한다. 한쪽눈이 파이고 일이 길게 찢어진 보기 흉한 몰골이지만 은혜는 개의치 않는 듯 하다.
“잘가.”
오랜만에 듣는 은혜의 목소리. 나와 다른 사람들 모두 놀란 얼굴로 은혜를 바라보았다. 은혜는 여전히 우두머리의 얼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큭.. 크윽.. 큭.”
따스한 은혜의 손길에 우두머리는 기어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슬프지 않았다. 녀석 때문에 죽어나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 찢여 죽여도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다.
“큭... 크윽..”
힘겹게 눈물을 한차례 쏟아낸 우두머리는 천천히 말을이었다.
“너..와.. 마주.. 보는.. 댓..가..가.. 상당..히.. 크..”
우두머리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멈췄다. 더 이상 숨을 쉬지 않고 바닥에 추욱 늘어진 우두머리. 은혜는 두 손을 뻗어 아직도 눈을 뜨고 있는 우두머리의 한 쪽 눈을 살며시 감겨 주고는 살살 쓰다듬었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던 준우 아저씨가 은혜를 강제로 일으켜 세우고는 말했다.
“이제 끝이야.”
준우 아저씨를 빤히 보던 은혜는 멀찌감치 쓰러져 있는 남자에게 다가간다. 우리들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은혜의 뒷모습에서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느릿느릿하게 남자에게 다가간 은혜는 쭈구려 앉아 남자에게 팔을 내밀었다.
“....”
“은혜야..”
그것이 곧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말려야 하는건가? 그렇지 않으면 남자가 이대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죽어버리면.. 앞으로 나아가는데 있어 에로사항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럼.. 은혜는? 저런 몸에서 피를 빼버리면..
“은혜야..”
아무 행동도 취할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살고 싶다는 욕망이 너무 큰 탓이다. 비겁하게도 나는 그것을 빤히 바라보았다.
“....”
미약하게 숨을 쉬고 있는 남자. 고개를 들 기력도 없는 것 같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은혜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뾰족한 돌 파편으로 자신의 손아귀를 길게 그었다. 뚝. 뚝. 녹색의 액체가 한 방울씩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은혜는 손을 천천히 옮겨 남자의 입가에 가져간다.
“....”
한 방울. 한 방울. 차곡차곡 남자의 입안에 녹색의 액체가 들어간다. 10방울.. 20방울.. 30방울.. 쯤에 남자가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남자의 몸은 원래 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쭈구려 앉아 있는 은혜를 보고 조용히 중얼거린다.
“메시아시여..”
“....”
남자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처음으로 보는 표정변화다. 하지만 그거에 계속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남자 옆에 앉아 있던 은혜의 몸이 서서히 옆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남자는 다급하게 은혜를 붙잡아 바닥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메시아시여..”
은혜의 손에서는 아직 미약하지만 작은 양의 피가 새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가만히 보던 박 중사는 은혜에게 다가가 흘러내리는 피들을 핥아내기 시작했다. 그런 박 중사를 특별히 제재를 가하지 않는 남자. 서서히 은혜의 피가 멎어감에 따라 박 중사의 몸도 눈에 띄게 회복되어져 간다.
“그만...”
남자의 말에 몸을 일으킨 박 중사는 자신의 몸을 한 번 훑어 보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거짓말처럼 깨끗해진 박 중사의 몸. 이어 박 중사는 주변에 떨어진 대검을 들고는 통로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일단 여기서 벗어나고 보자고.”
두두두두.
그제서야 사람들의 총소리가 들려온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통로 쪽에는 아직 사람들이 우리를 엄호해주고 있었다. 어느새 가세했는지 우민이 형이 소총을 아슬아슬하게 들고 서 있는게 보인다. 비교적 총알이 남은 이 하사와 김 상병이 빠르게 통로 쪽으로 뛰어간다.
“메시아를.. 부디.”
그렇게 말한 남자도 통로 쪽으로 뛰어간다.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고요히 눈을 감고 있는 은혜에게 다가가 얼굴과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따스하고 보드라운 감촉.. 금방이라도 눈을 뜰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고생했어 은혜야.”
들릴리 없겠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 나중에.. 아니, 내일이면 전처럼 일어나서 돌아다니겠지? 그럴거지? 은혜야. 저번에 나랑 약속한거.. 잊지 않았잖아? 그 날.. 버스에서 한 약속.. 나 아직도 기억해. 그러니까 기운내야 해. 알았지?
“크아아아!”
통로 쪽에서 녀석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박 중사와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둘이서 녀석들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제서야 한 숨 돌릴 틈에 생긴 사람들은 힘 없이 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그 중 봉수 아저씨는 구석진 곳에 기절한 듯 축 늘어진 부녀에게 다가가 앉았다.
“크오오!”
점점 녀석들의 비명소리가 멀어져간다. 둘의 활약이 상당한 것 같다. 은혜의 목을 가볍게 들어 무릎 위에 올려 놓고 나도 바닥에 몸을 뉘었다. 축축한 피가 옷을 적시기 시작하지만 상관없었다. 상황이 좋게 끝났고 우리들은 결국 살아 남았으니까..
“..아아!”
이제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다. 너무 안심한 탓인지 눈이 스르르 감긴다. 이런 더러운 환경 속에서 잠이라니.. 정말 이놈에 몸은.. 왜 이렇게 약해빠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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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아.”
우민이 형의 목소리. 번쩍 눈이 떠진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우민이 형의 얼굴이 보인다. 스르르 상체를 일으키며 아직도 무릎을 베고 잠들어 있는 은혜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우민이 형에게 묻는다.
“몇시야..?”
“아침이야. 7시.”
“아..”
우민이 형은 잠들어 있는 은혜를 빤히 바라보고는 말했다.
“아직이지?”
“응.. 평소에는 제일 먼저 일어나서 돌아다니던 애가.. 오늘은 아니네.”
“그래.. 일단은 여기서 벗어나는게 좋겠다.”
우민이 형 말에 주위를 둘러본다. 바닥 여기저기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붉은 피웅덩이들과 서서히 부패하기 시작하는 살덩이들이 전부다. 어느새 냄새를 맡았는지 파리 녀석들이 벌써부터 득실대기 시작한다. 저절로 눈이 찌푸려지는 광경에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야겠네. 은혜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은혜를 흔들어 깨워보지만 일어나지 못한다. 그런 은혜에게 어느샌가 다가온 남자가 무릎을 꿇어 은혜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어제 보았던 그 감정이 느껴졌었던 표정이 아닌 평소와 같은 표정이다. 남자에게 따로 인사를 하지 않고 몸을 일으킨다.
찌릿. 찌릿.
양쪽 무릎에 전기가 지르르 통한다. 장기간동안 은혜의 머리 무게를 견딘 탓이었는지 다리가 순간 말을 듣지 않는다. 찌릿거리는 미약한 통증을 참으며 앞으로 걸어나간다.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우민이 형을 돌아보며 궁금한 표정을 짓자 우민이 형은 손가락을 뻗어 통로 쪽을 가리켰다.
“이미 다 나갔어. 네가 제일 늦잠자서 깨우러 온거야.”
“..빨리 깨워도 되는데.”
“워낙 곤히 자고 있길래.. 둘 다.”
“..고마워.”
“고맙긴. 가자.”
우민이 형이 앞서서 걷기 시작한다. 남자는 여전히 은혜를 품안에 꼬옥 안은채로 뒤에 서있을 뿐이다.
“가야 돼.”
내 말에 남자는 은혜를 빤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메시아께서 살아계시지 않는다면 저 역시 살아갈 의미가 없습니다.”
“무슨 소리야.. 은혜 그렇게 빨리 안 죽어. 저번에 나랑 약속했어.”
남자는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단순히 당신이 좋아서 그런겁니다. 메시아께서는 약속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릅니다.”
“..아니야. 빨리 나가자 우선.”
“메시아께서는..”
남자의 말을 애써 담아 두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통로 쪽으로 걸어 나간다. 희미하게 빛을 내는 작은 램프가 붉은 피들로 뒤덮여 있어 그 빛이 상당히 미묘하다. 마치 우리들의 상황인 것 같아서 나는 그것을 가만히 보지 않고 까치발을 들어 군복 소매로 램프를 천천히 닦아 내었다.
“너도.. 힘내.”
묽은 피들을 닦아내자 환하게 빛을 내는 램프. 그래, 그렇게 빛나는거야. 빠르게 통로를 벗어난다. 셀 수도 없는 괴물들의 시체가 앞을 가로 막는다. 다리를 들어 그것들을 다 피해내며 걷는다. 고인 핏물들과 여기저기 흩어진 살덩이들을 보지 않으려고 애쓴다.
위위윙.
시체여기저기에 붙어 있던 파리들이 내 움직임을 감지하고는 순간적으로 날아든다. 손을 저어가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수 밖에 없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남자가 묵묵히 따라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고요하게 눈을 감고 있는 은혜도 보인다.
“그럴리 없잖아. 그럴리 없어..”
기나긴 지하를 지나 환하게 빛나고 있는 밖으로 몸을 내민다. 상쾌한 바람과 공기가 기분을 좋게 해주었다.
“일어났냐?‘
“수고했다.”
“잠이 제일 많다니까.”
모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저마다 살아있는 상태였다. 물론.. 몇몇이 희생되는 것은 막을 수 없었지만.. 뜨거운 뭔가가 올라오려고 한다. 애써 그것을 삼켜내며 간신히 말을한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내 말에 모두 아무 말없이 서로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왔었던 곳으로 천천히 몸을 돌려 걷기 시작한다. 아직 부산에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큰 고비 하나를 넘긴 것 같아서 마음이 홀가분했다. 앞으로는 평탄한 일들만 일어났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물론 그게 내 뜻대로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잃고 싶지가 않다.
시원한 미풍을 받으며 막사로 빠르게 복귀한다. 그 동안에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기만 한데 모든게 정리된 것 같다. 왠지 이대로 주욱 가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막사에 도착한 우리들은 1층 복도에 있는 시체더미들을 애써 외면하고 2층으로 올라간다.
“일단은 씻고 가지. 이런 몰골로 다니기에는 찝찝하니까.”
아저씨 말에 모두 동의하고 보급품이 있는 생활관으로 움직인다. 그 와중에도 행정실에 언뜻 보이는 고기덩어리들을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서둘러 보급품들을 챙기고 저번과 같이 여자부터 샤워실을 쓰게 하고 남은 우리들은 남은 침대에 누워 은혜를 돌봤다.
“은혜.. 일어날 수 있겠죠?”
동생의 말에 아저씨는 손을 뻗어 은혜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이제.. 힘들지도 몰라.”
“....”
그 말에 모두가 침묵을 지킨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거다. 은혜가 곧 제대로 서지도 못한다는 날이 올거라는 것을.. 저번에도 남자가 그렇게 말했었지. 은혜는 죽을 날을 고르고 있다고. 그게 점점 다가오고 있는 걸까. 이런 분위기가 익숙치 않은 준우 아저씨와 동생이 몸을 일으켜 생활관 밖으로 걸어 나간다.
“행정부에 뭐가 있나 좀 보고 올게요.”
“....”
아저씨는 애정어린 눈길로 은혜를 바라보며 말했다.
“행복했었지..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내게 행복이란 것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것도 은혜였어.”
“아저씨..”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아저씨는 말을 잇지 못하고 은혜의 머리카락만 조심스레 쓰다듬기만 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준우 아저씨와 동생이 같이 들어온다. 양손 가득 컵라면들을 안고 있었다. 준우 아저씨는 애써 웃는 얼굴로 우리에게 말했다.
“굶고 출발하지는 않겠어요.”
“좋지.”
모두가 좋아하는 표시를 했지만 그것이 너무 어색했다. 그동안의 시간 동안 은혜라는 존재가 마음 속에서 너무나 크게 잡혀버린 것 같다. 그 때 샤워를 마친 해인이가 우리들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제 씻으셔도 되요.”
“응.”
서둘러 갈아 입은 것들을 챙기고 밖을 나선다. 남자는 끝까지 은혜 옆에 앉아 있었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던 박 중사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남자를 끌고 나온다.
“메시안지 뭔지. 일어날 거니까 깔끔한 모습으로 좀 있어라. 나중에 쟤가 일어났을 때 너의 그 드러운 모습을 보면 좋아하겠냐?”
박 중사의 말에 남자는 묵묵히 샤워실 쪽으로 걸어간다. 그 모습에 박 중사는 쓴웃음을 짓고는 그 뒤를 따랐다. 하나 둘 샤워실 안으로 들어선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다. 최대한 빨리 옷들을 벗고 온 몸에 덕지덕지 묻은 것들을 씻어내기 시작한다.
쏴아아.
모두 나와 비슷한 생각인지 서로 아무 말없이 신속하게 몸을 씻어내기만 한다. 처음 이곳을 쓸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숨이 막힐 것 같다.
쏴아아아.
대충 머리와 몸들을 씻어낸 후 밖으로 나와 물기들을 닦아 내며 새로운 군복을 입는다. 새 옷을 입을 때의 느낌이 온 몸을 휘감는다. 기분이 좋지가 않다. 잘되고 있는게 분명하지만 마음이 자꾸 텁텁하다. 서둘러 옷을 차려 입고 밖으로 나온다. 차갑고 약한 바람이 불어온다.
꼬르르륵.
그래도 살아 있음을 증명해주는 듯 뱃속의 시계가 울려댄다. 은혜가 있는 생활관 쪽으로 걸어간다. 여전히 잠들어 있는 은혜 곁에 앉아 있는 해인이 부녀. 안으로 들어오는 나를 보고는 해인이가 물었다.
“은혜 언니는요?”
“..일어날거야.”
“네..”
“밥이나 먹자. 출발해야 하니까.”
비어 있는 침대 위로 쌓여 있는 컵라면들을 품 안에 가득 안고서 생활관을 나온다. 해인이도 허둥지둥 내 뒤를 따라온다. 긴 복도 안에 울려 퍼지는 군화 소리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정수기 위에 컵라면들을 대충 쌓아 놓고 포장을 뜯어 물을 받는다. 1개. 2개. 3개. 쯤에 해인이에게 건넨다.
“다 들 수 있겠어?”
“네.”
해인이는 요령 있게 컵라면을 쌓은 상태 그대로 생활관 쪽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다시 기계적으로 컵라면의 포장을 뜯고 물을 받는다. 주루룩. 주루룩.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용기가 점차 뜨거워져간다. 멍하니 그것을 움켜쥔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주세요.”
어느새 다가온 해인이가 손을 내민다. 그제서야 퍼뜩 정신이 든 나는 다시 컵라면들을 건네고 물을 따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2~3번을 반복하자 모두가 먹을 정도의 양이 되었다. 남은 컵라면 모두 물을 받고 생활관 쪽으로 걸어간다.
“후우..”
생활관으로 들어가니 모두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아무렇게나 앉아 컵라면을 입에 가져가기 시작한다. 이상하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물을 너무 많이 넣었나? 스프를 안 넣은건가? 아니다. 국물 색이 빨간데.. 왜..
후루룩. 후룩.
말 없이 라면을 먹는 우리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남은 라면들을 대충 자리에 놓고는 떠날 채비를 한다.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은혜는 남자가 조심스럽게 안아 든다. 웬만큼 필요한 것들은 위병소 밖에 있는 택시 안에 있으니 따로 챙길 것들은 극히 적었다.
“가지요..”
모두 상태를 확인한 아저씨가 앞에 서서 걷기 시작한다. 1층으로 내려와 중앙 계단을 지나.. 연병장을 가로질러간다. 사방에 괴물들의 시체가 즐비하게 깔려있다. 이젠 괴물들의 시체를 봐도 아무렇지가 않다. 익숙해져버린 건가. 거리낌 없이 생명체를 죽이는 일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다. 살기 위해..? 하지만 괴물들도 살기 위해 한 일들이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을까?
저벅. 저벅.
단순히 내가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의 인권이 소중하기 때문에? 그럼 괴물들의 입장에서는?
“무슨 생각을 그리해?”
우민이 형이 내 옆에 서서 묻는다. 나는 말 없이 점차 가까워지는 위병소를 바라보기만 한다.
“이제 거의 다 왔어. 힘내자.”
“..응.”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된 택시가 우리들을 반겨주었다. 물론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부산까지 가는데 지장이 없을 것 같다. 택시 쪽으로 모두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그러나 박 중사와 이 하사. 김 상병과 남은 몇몇의 군인들은 위병소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안가요?”
준우 아저씨가 뒤를 돌아보며 묻자 박 중사가 고개를 저었다.
“남아 있는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군.”
“미쳤어요? 지금 그런걸 따질 때가 아니라구요.”
준우 아저씨는 답답하다는 듯 언성을 높였지만 이미 그들은 뜻을 굳힌 상태였다. 이 하사도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그 표정과 태도가 너무나 확고해 우리들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김 상병도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말했다.
“조심하세요.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봅시다.”
그렇게 말한 아저씨는 서둘러 택시에 타고는 시동을 걸었다. 남은 우리들도 각자 택시 운전석에 탄다. 그 중 몸이 성치 않은 우민이 형과 해인이 가족 그리고 남자는 아무렇게나 택시에 올라탔다. 부르릉. 시동이 걸리며 아저씨가 제일 먼저 택시를 몰았다.
“가자..”
동생의 말에 아직 꽂혀 있는 차키를 힘껏 돌린다. 부르릉. 엔진음이 들리며 택시가 미약하게 흔들린다. 운전대를 잡고 앞 창문을 본다. 남아 있는 사람들 모두가 우리 쪽을 보며 손을 흔들고 있다. 나도 손을 마주 흔들어주고는 운전대를 크게 돌렸다. 부드럽게 차체가 회전하며 나아간다.
“어느 책에서 읽었어. 사람들이 헤어질 때 마지막 모습을 끝까지 기억한다고 말이야. 적어도 웃으면서 작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한 동생은 조수석 창문을 열고 상체를 길게 빼내 위병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꼭 살아서 봐요! 꼭이요!”
그렇게 말하며 양손을 크게 흔드는 동생. 백미러로 위병소에 남은 사람들을 보니 모두 희미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마지막 모습.. 제대로 인사를 하려면 지금 이 순간 밖에 없을 것 같다. 차를 잠시 멈추고 문을 열고 내려 아직까지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외친다.
“고마웠습니다! 꼭 살아있어야해요!”
주룩. 두 눈에 뭔가가 흐르는 것 같았다. 눈앞이 점점 흐려져간다. 왠지 이대로 있다가는 울음이 터져나올 것 같아 서둘러 문을 열고 운전대를 잡아 빠르게 택시를 몬다. 동생도 이어 창문을 닫고 말 없이 조수석에 앉아 의자를 조금 뒤로 젖힌다.
“이제.. 가는거야.”
그렇게 말한 동생은 슬며시 눈을 감았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앞서 가는 택시들을 쫓는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평범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고요히 잠을 자며 대기하고 있는 녀석들이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부아앙.
택시의 속도가 점차 올라간다. 점차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다. 과연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찬란한 빛의 희망일까 어두운 절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