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인생 실패뿐이었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봉창. 과연 우리가 인식하는 성공과 훌륭한 사람의 조건이란 올바른 것인가?
참의부2013.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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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걸까요? 21세기 우리 나라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는 사람은 과연 어떤 조건을 갖춘 사람을 가리키는 걸까요? 우리 부모들은 항상 어린 자녀들에게 이 다음에 커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공부를 못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도 경고합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대입수능시험에서 전교 수석을 하고 국내 최고의 명문 서울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은 항상 신문지 제1면을 장식하고 TV 뉴스 인터뷰 섭외 경쟁이 치열해집니다. 반면 수능에서 점수가 잘 나오지 않은 학생 일부는 낙관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훌륭한 사람이란 명문대학에 진학해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법조인이 되는 사람, 외국 유학을 다녀와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국내 정상급 재벌기업에 특별채용되거나 공기업에 입사 혹은 정부기관의 간부급 공무직에 앉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란 창업을 해서 고수입 매출을 올리거나 기업의 성장에 크게 공을 세운 사람을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기업은 창의력이나 도전정신을 보고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여 채용하지 않습니다. 기업에 일방적으로 희생하면서 정작 자신은 요구하는 게 없는 사람이나 기업의 이윤을 위해 도구로 활용되기 쉬운 사람 혹은 고위급 임원과 인맥이 있는 사람을 채용할 뿐이죠.
우리 사회는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경제적 권력이 한쪽으로 편중화된 현상에 빠져 오직 돈과 신분이 성공의 척도이며 사람을 생각하고 사람을 기르는 교육과 제도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의로운 사람은 이런 사회에서 실패자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이기적인 방식으로 살벌한 경쟁 구도를 만들어 남을 짓밟지 않고는 내가 살아남지 못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뛰지 않으면 낙오되기 십상입니다.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은 어리석고 오직 나 자신을 위해 남도 짓밟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자인 겁니다.
지금으로부터 80여년 전의 인물이었던 이봉창이란 청년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분명히 실패한 인생입니다. 그 당시의 현실로 봤을 때도 그는 매우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서울 용산의 문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없었습니다. 고학력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어릴 때부터 실패한 삶이었습니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화전 상점에서 점원으로 일했으나 2년만에 해고당했고, 용산역 만선철도 기차운전견습소의 역부로 일했으나 임금 차별을 받다가 해고당했습니다. 일본으로 건너가서는 한국인이란 이유로 임금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 일본식 이름으로 생활하면서 가스 회사에서 막일을 했으며 일본인 표구사의 보조원으로 생계를 꾸렸습니다. 이봉창에게 처음부터 일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저항정신이나 민족의식 같은 건 없었고 그저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하류 노동자 생활로 전전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봉창은 한국인에 대한 민족차별에 불만을 갖고 상해의 임시정부를 찾아가 백범 김구 지사에게 일본 국왕을 죽이겠다는 뜻을 전합니다. 임시정부 민단사무소 직원들도 그를 환영하지 않았지만 백범은 이봉창을 한인애국단에 가입시키고 의거에 사용할 폭탄과 용돈을 지급하면서 그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겼습니다. 백범은 항상 실패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봉창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봉창은 1932년 1월 8일 도쿄 사쿠라다문 앞에서 일본 국왕이 탄 마차에 폭탄을 던졌지만 역시 일왕을 암살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될지도 모를 이 의거마저 실패하고 체포돼 생애에 단 한번도 성공을 맛보지 못한 채 10월 10일 이치가야형무소에서 사형당했습니다.
이렇게 한 번도 성공해 본 적 없는 실패의 생애만을 살았던 이봉창이었지만 그는 중·고교 국사 교과서에서 그 이름이 실렸고, 항일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흔적을 남긴 인물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공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버린 그 살신성인의 행동을 높이 사 그는 대한민국 건국 공로자로 추앙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이봉창처럼 공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을 실패자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봉창 같은 사람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돈을 잘 버는 사람, 높은 직책에 앉아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모든 사람들의 추앙과 부러움을 받게 되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공의를 저버리고 특정 계층의 이익만을 좇고 개인의 영달과 승진을 위해서만 치열한 경쟁을 하는 사람들이 판치는 이 세상, 과연 공정한 사회일까요?
짧은 인생 실패뿐이었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봉창. 과연 우리가 인식하는 성공과 훌륭한 사람의 조건이란 올바른 것인가?
2010년대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걸까요? 21세기 우리 나라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는 사람은 과연 어떤 조건을 갖춘 사람을 가리키는 걸까요? 우리 부모들은 항상 어린 자녀들에게 이 다음에 커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공부를 못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도 경고합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대입수능시험에서 전교 수석을 하고 국내 최고의 명문 서울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은 항상 신문지 제1면을 장식하고 TV 뉴스 인터뷰 섭외 경쟁이 치열해집니다. 반면 수능에서 점수가 잘 나오지 않은 학생 일부는 낙관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훌륭한 사람이란 명문대학에 진학해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법조인이 되는 사람, 외국 유학을 다녀와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국내 정상급 재벌기업에 특별채용되거나 공기업에 입사 혹은 정부기관의 간부급 공무직에 앉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란 창업을 해서 고수입 매출을 올리거나 기업의 성장에 크게 공을 세운 사람을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기업은 창의력이나 도전정신을 보고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여 채용하지 않습니다. 기업에 일방적으로 희생하면서 정작 자신은 요구하는 게 없는 사람이나 기업의 이윤을 위해 도구로 활용되기 쉬운 사람 혹은 고위급 임원과 인맥이 있는 사람을 채용할 뿐이죠.
우리 사회는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경제적 권력이 한쪽으로 편중화된 현상에 빠져 오직 돈과 신분이 성공의 척도이며 사람을 생각하고 사람을 기르는 교육과 제도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의로운 사람은 이런 사회에서 실패자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이기적인 방식으로 살벌한 경쟁 구도를 만들어 남을 짓밟지 않고는 내가 살아남지 못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뛰지 않으면 낙오되기 십상입니다.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은 어리석고 오직 나 자신을 위해 남도 짓밟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자인 겁니다.
지금으로부터 80여년 전의 인물이었던 이봉창이란 청년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분명히 실패한 인생입니다. 그 당시의 현실로 봤을 때도 그는 매우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서울 용산의 문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없었습니다. 고학력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어릴 때부터 실패한 삶이었습니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화전 상점에서 점원으로 일했으나 2년만에 해고당했고, 용산역 만선철도 기차운전견습소의 역부로 일했으나 임금 차별을 받다가 해고당했습니다. 일본으로 건너가서는 한국인이란 이유로 임금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 일본식 이름으로 생활하면서 가스 회사에서 막일을 했으며 일본인 표구사의 보조원으로 생계를 꾸렸습니다. 이봉창에게 처음부터 일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저항정신이나 민족의식 같은 건 없었고 그저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하류 노동자 생활로 전전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봉창은 한국인에 대한 민족차별에 불만을 갖고 상해의 임시정부를 찾아가 백범 김구 지사에게 일본 국왕을 죽이겠다는 뜻을 전합니다. 임시정부 민단사무소 직원들도 그를 환영하지 않았지만 백범은 이봉창을 한인애국단에 가입시키고 의거에 사용할 폭탄과 용돈을 지급하면서 그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겼습니다. 백범은 항상 실패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봉창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봉창은 1932년 1월 8일 도쿄 사쿠라다문 앞에서 일본 국왕이 탄 마차에 폭탄을 던졌지만 역시 일왕을 암살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될지도 모를 이 의거마저 실패하고 체포돼 생애에 단 한번도 성공을 맛보지 못한 채 10월 10일 이치가야형무소에서 사형당했습니다.
이렇게 한 번도 성공해 본 적 없는 실패의 생애만을 살았던 이봉창이었지만 그는 중·고교 국사 교과서에서 그 이름이 실렸고, 항일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흔적을 남긴 인물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공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버린 그 살신성인의 행동을 높이 사 그는 대한민국 건국 공로자로 추앙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이봉창처럼 공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을 실패자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봉창 같은 사람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돈을 잘 버는 사람, 높은 직책에 앉아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모든 사람들의 추앙과 부러움을 받게 되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공의를 저버리고 특정 계층의 이익만을 좇고 개인의 영달과 승진을 위해서만 치열한 경쟁을 하는 사람들이 판치는 이 세상, 과연 공정한 사회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