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나가지마시오2 1화

그라시아스2013.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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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웃대 삶이무의미함 님 -

 

 

 


온 몸에 가해지는 충격이 이제 익숙해져간다. 명치와 머리 부분을 보호하는 보호구가 거의 소용이 없을 정도로 상대의 타격은 내 전신을 흔들어 놓기 충분하다. 퍽. 퍼퍼퍽. 깔끔한 연속 스트레이트. 몸이 거의 한계라고 울부짖고 있지만 이를 악물고 두 다리로 버텨낸다.

지옥 같은 몇 차례의 공격이 더 오고나니 다리가 버티질 못한다. 스르륵. 풀려버리는 다리와 함께 내 몸도 앞으로 기울어진다. 상대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를 부축해주고서 링 가운데에 정중히 눕혀준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상대는 나를 잠시 지켜보고는 링을 나가버린다. 꿀꺽. 말라비틀어져 푸석한 입안에 짠 땀방울들과 침을 섞어 대충 삼키고 몸을 반쯤 일으킨다.

얇은 면티의 색이 진하게 물들정도로 흘린 땀의 양이 상당하다. 양손을 서서히 들어 천근이 된 보호구를 서서히 벗어 제치고는 아무렇게나 던진 후 다시 눕는다. 차가운 링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온 몸을 주무르듯 안마해주는 것 같다.

“10분뒤다.”

스윽. 탈모가 한참 진행 중인 마빡을 내밀며 내게 차가운 물병을 건네는 중년인. 감정을 읽을 수 없는 표정을 뻔히 보고서는 물병을 들어 입안에 꽂고 대충 식도 안으로 흘려 보낸다. 그렇게 거친 숨을 몇 번 몰아쉬자 다음 스파링 선수가 들어왔고 나는 축축하다 못해 눅눅해진 보호구를 몸에 맞추듯 끼고서 몸을 일으킨다. 퍽. 퍼퍼퍽. 퍼퍽.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주먹. 점점 기울어져가는 내 몸. 고통의 비명을 지르는 근육들.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일상이다. 중학교 중퇴 이후 따로 배운 기술들이 없는 나에게는 이런 식의 알바가 살아가는 유일한 밥줄이다. 부모가 손을 놓은지도 오래. 언제부터인가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것이 너무나 당연시 되어 이제는 남들과 어울리는 것이 거북할 정도다. 내가 이상한가? 아니다. 나는 그저 평범히 살아가는 사람에 불과하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간단히 밥을 먹고 일찍 자고 다시 일을 하고 먹고 자고 그런 반복된 삶을 살아가며 범죄 한 번 저지르지 않는다. 이정도면 모범시민 기준에 들지 않겠는가?

때앵-

종소리와 함께 스파링 상대는 몸을 멈추고서 내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링을 나간다. 링 밖에서는 내게 물병을 건넨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의 일이 끝났다는 신호다. 나는 물렁하다 못해 추욱 늘어진 보호구들을 대충 링 구석에 던져 놓고서 탈의실 안에 있는 샤워실로 간다. 쏴아아- 차가운 물로 몸을 진정시킨다. 아직 초겨울이지만 온 몸에 전해지고 있는 열기에 비하면 더울 정도다.

대충 몸의 열기를 식히고 적당한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그리고 곧장 신발을 신고 나갈 채비를 한다. 그러자 중년인이 내게 다가와 흰색 봉투를 건네고는 ‘수고했다.’라는 말과 함께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물끄러미 봉투를 바라보던 나는 대충 점퍼 주머니에 쑤셔 넣고서는 체육관을 나선다.

일년 째 이런 일을 하고 있지만 나에게 지속적으로 돈을 주고 있는 중년인의 어떤 정보도 알지 못한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출생이나 학력을 따지지 않고 일한 대가를 고스란히 주는 사람도 꽤 드물기 때문에 일년 씩이나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휘이잉-

날카로운 바람이 덜 말린 머리를 때린다. 스윽. 손을 들어 대충 머리를 털어 내고는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탄다. 상대적으로 건장한 내 체구에 사람들의 시선이 곧 쏠리지만 이내 좌석에 앉자 그것도 곧 사그러들었다. 목적지로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맡기면서 창가를 멍하니 바라본다.

부모와 그리 깊은 연은 아니지만 한 가지 감사한 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건장한 신체조건이라고 볼 수 있겠다. 2미터에 가까운 신장과 남들에 비해 1~2배는 더 많은 근육량을 갖고 있는 신체는 내 유일한 무기이자 자랑거리다. 물론 내 생김새가 그리 잘나지 않은 편이라 종종 오해를 받곤 하지만 이런 식의 일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것도 탁월한 신체 덕인지도 몰랐다.

부르릉-

점퍼 주머니에서 흰색 봉투를 꺼내 안을 살짝 들여다본다. 노랑 색의 지폐 5장이 꾸깃거리며 고이 모셔져 있다. 하루 꼬박 일하고 25만원이라.. 꽤 괜찮은 직업 아닌가? 다시 봉투를 주머니에 넣고 버스에서 내린다. 집으로 가는 길에 약국에 들려 파스와 비타민, 영양제를 사고서 걸음을 옮긴다.

19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상당히 어둑해졌다. 이런 거리라면 상당히 곤란하다. 사람들이 자칫 오해하고 나를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죄가 없어도 파출소에 앉아 여러 가지 진술을 하며 시간을 허비할바에 집으로 뛰어가는 것이 상책이다. 어차피 여기서 집까지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다. 오분이면 충분하다.

어둑해져가는 골목길 사이를 뛰어가며 낡고 초라한 빌라 앞에 멈춘다. 3층으로 가기전 우체통을 열어 내게 온 것이 없나 확인한다. 여러 가지 고지서와 납부금 그리고 정체모를 흰색의 봉투가 손에 잡힌다. 본 적도 없는 흰색의 봉투가 무료한 내 삶을 조금이나마 즐겁게 해주지 않을까라는 작은 기대감을 안고 3층으로 올라가 문을 연다.

남자 특유의 냄새가 나며 어두운 거실만이 나를 반겨준다. 거실 불을 키고 낡은 소파에 몸을 편하게 눕고서 처음 내 눈을 사로잡은 흰색의 봉투를 조심스럽게 뜯었다. 찌직. 거리며 연약하게 뜯어지는 봉투 사이로 금색의 재질이 좋아 보이는 종이가 손에 잡힌다. 조심스럽게 그 종이를 핀다.

[안녕하십니까?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고 있습니다. 건강에는 문제가 없으신지요?
이번 임상실험을 하는데 귀하와 같은 인재가 필요하기에 부득이하게 이렇게 연락을 드리는 점
양해바랍니다.
기타 자세한 사항은 아래 번호를 통해 연락바랍니다.
000-0000-0000 관리자 송00.]

라는 짧고 간결한 문구다. 어떻게 내 주소를 알았으며 내 신체를 눈여겨보고 있는거지? 실험이라는 단어보다 나를 어떻게 알아냈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더 강하게 일었다. 멍하니 내용을 다시 보고서는 망설임 없이 핸드폰을 들어 눈에 보이는 숫자를 찍었다. 몸으로하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매일 맞기만 하는 일도 서서히 질려가던 참이었다. 어쩌면 재밌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라는 기대감과 설렘이 내 심장을 조금씩 뛰게 했다.

뚜루루루-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차분한 목소리의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역시 연락해주셨군요.”
“....”
“그렇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은 당신 한 명이니까요. 필시 전화가 온다면 분명 당신이라고 생각했지요.”

미리 알고 있던건가.

“어떻게 내 주소를 알아냈습니까?”
“우연이죠. 우연히 그 동네를 지나가는데 아주 좋은 체구의 당신을 보고 곧 바로 따라가 주소를 알게 되었습니다. 무턱대고 당신 앞에 나타나 임상실험에 응해달라고 하면 거절할 확률이 높아 보였기에 편지를 했는데 생각외로 잘 되었군요.”
“....”
“하하하. 말수가 적으시군요.”
“보수는?”
“2억입니다.”
“2억?”

2억.. 평생을 맞으면서 살아도 만져보지도 못할 돈이다. 하지만 단순히 임상실험을 하는데 2억씩이나 준다는 말인가? 내 짧은 생각을 알고 있는지 전화 너머로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물론 실험 과정에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정도의 금액을 지급해드리는 겁니다.”

지극히 사무적이고 딱딱한 멘트에 할 말이 없어진다. 그간 사람 관계를 소흘히하며 홀로 지내온 내게도 이런 어눌한 면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작게 숨을 내뱉고는 다시 말을 한다.

“어느정도로 위험하기에 그 정도의 보수를 하는겁니까.”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이기 그렇죠. 뭐, 성과가 잘 나타난다면 5천까지 더 드릴수도 있습니다.”

2억 5천.. 구미가 당기는 것은 사실이다. 20평생을 좀 넘게 살아오면서 몸으로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자신이 있었다. 그 돈이면 매일 맞지 않아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금액이다. 길게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어디로 가면됩니까.”
“역시 명쾌하십니다. 딱히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내일 저희 직원들이 모시러 갈테니까요. 푹 쉬고 계십시오.”

그것을 끝으로 남자는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어버렸다. 뚜. 뚜. 뚜. 거리는 신호음을 여러번 듣고나서야 핸드폰을 내려 놓고 천장을 올려다본다. 살아서 돌아온다면 거액이 내게 들어온다. 사기일까? 아니다. 종이 아래 부분에 기관 명칭도 명시 되어 있었고, 광고를 통해 여러번 들어본 기관 이름이다.

“후..”

그 정도의 거액이라면 ‘못난 아들놈 하나 봐주지 않을까.’ 라는 일말의 희망이 점차 생겨나기 시작한다. 중학교 중퇴 후 20여년 동안 연락이 끊긴 부모와의 사이를 돈으로 이어보려는 나 자신이 한심스럽기는 하지만 뒤늦게나마 못 다한 효를 하고 싶었다.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는 것보다 금의환향을 해서 돌아가는 편이 더 멋지지 않겠는가. 물론 어디까지나 부모가 살아 있고 연락이 된다는 가정하지만 그 정도의 돈이라면 무엇이든 못할까.

길게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눈을 감는다. 정신을 말짱하지만 오늘 하루의 일로 인해 몸 여기저기가 거의 만신창이다. 내일은 맞으러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반복되는 일상에서 드디어 일탈이 오는 것인가.